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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진화 혹은 성서 어느 쪽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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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진화 혹은 성서 어느 쪽을 믿는가?
  • 깨어라!—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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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4
깨74 1/22 17-18면

당신은 진화 혹은 성서 어느 쪽을 믿는가?

당신은 “진화 혹은 성서, 어느 쪽을 믿는가?” 이것은 결코 단순한 학술적인 질문이 아니다. 그 대답에는 훨씬 더 포괄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만일 진화가 옳다면, 성서가 그릇된 것이다. ‘거짓말하지 말찌니라’라고 가르치는 성서가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거짓말 한다면, 다른 문제에 관한 그 가르침들을 존경할 이유가 무엇인가?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간음하지 말찌니라’는 가르침을 믿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의로운 새 질서에서의 삶에 대한 그 약속을 믿을 이유가 무엇인가? 인간의 현재 상태에 관한 그것의 설명을 믿을 이유가 무엇인가?

반면, 성서가 인간의 기원에 관하여 올바르게 가르쳐준다면, 진화론이 그릇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의 진술은 참된 것이다.

둘다 올바를 수 있는가?

진화와 성서 둘다 올바를 수는 없는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진화가 그 수단이었다고 성서가 말하지는 않는가?

때때로 교직자들은 그렇게 가르친다. 1969년 4월 ‘앨라배마’ 주, ‘모빌’ 주재 ‘에이피’ 통신사의 한 특파원은 이렇게 말하였다. “미국 장로 교회 제 109차 총회는 성서와 진화론이 상호 모순되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가톨릭 백과사전」(1967)은 “기원에 관한 과학적 해설과 「창세기」의 종교적 해설의 일치조화는 가능하다”고 기술하였다.

그러나 진화론과 성서의 창조 기록이 상호 교환될 수 있으며, 한쪽이 다른 쪽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우리는 앞의 여러 기사에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구별되게 창조되었다고 성서는 가르치고 있음을 보아왔다. 동물들과 식물들 처럼 사람은 ‘종류대로’만 번식한다. 진화론은 사람이 저등한 “종류”, 즉 동물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둘다 올바를 수는 없다.—창세 1:11, 12, 21, 24, 25.

우리는 또한 첫 사람 ‘아담’을 약 6,000년 전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성서가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의 족보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창세 5:1-32; 역대 상 1:1-27; 마태 1:1-17; 누가 3:23-38) 그러나 진화론은 인간이 수백만년의 진화 과정을 거친 후, 약 백만여년전에 나타났다고 한다. 한쪽의 가르침은 그릇된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이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성서는 완전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상실한 것에 대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지상에 오셨음을 가르쳐준다. (로마 5:12; 디모데 전 2:5, 6, 신세) 만일 사람이, 성서대로 ‘아담’의 죄를 유전받지 않았다면, 예수의 대속은 무효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린도 전 15:19) 그렇다. 양쪽을 다 믿을 수는 없다. 진화와 성서 둘 중에서 한쪽만이 올바르며 남어지는 그릇된 것이다.

당신 앞에 있는 도전을 받아들이라

그러므로 모든 진리의 애호자들은 하나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증거를 조사해보고 스스로 진화론을 받아들일 것인지 성서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아무도 대신 이 결정을 내려줄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많은 교회가 공식적으로 혹은 비공식적으로 그것을 믿기 때문에 진화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교직자들은 왜 진화론을 받아들이는가?

왜냐하면 그것이 대중적 가르침이기 대문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과 우정적 유대를 견지하려는 또 하나의 예다. 「빅토리아 데일리 뉴스」(‘브리티쉬 콜럼비아’)는 “교회는 세상의 일부다 ··· 번번히 그리고 장구히 그것은 인간이 만든, 인간이 이끌어가는 제도로서의 모습을 나타내왔다.”고 지적하였다.

“인간이 만든, 인간이 이끌어가는 제도”가 세상의 유력자들에게 인기있는 것에 매달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는가? 그러나 자기네가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성서의 가르침을 타협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본을 당신이 따라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그것이 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진화를 믿는다. 그러나 진화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명망있는 과학자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 처럼 이 제목에 대한 과학자들의 견해도 분열되어 있다. 그러므로 만일 과학자의 결정을 따르려 한다면, 당신은 어느 쪽의 과학자를 따르겠는가?

그러한 선택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새번역」 성서는 “장성한 사람들[은] ···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천명하였다. (히브리 5:14) 그렇다. 장성한 사람은 이러한 결정을 스스로 처리한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게 그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본 잡지에서 제시된 증거들을 주의 깊히 저울질해 보라. 동시에 당신 자신의 경험을 고려해보라. 성서를 믿는 사람들의 말과 진화론자들의 말을 당신의 생활상의 실제 경험에 비추어 비교해보라. 당신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도록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어떤 대 사원이 수세기전에 건축되어, 당신이 그 건축 과정을 직접 목격할 수 없었다고 하자. 만일 누가 그것이 저절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말을 믿겠는가? 물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말은 당신이 생활하는 중에 직접 관찰해온 모든 것과 어긋나는 것이다.

인간의 ‘건축’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첫 사람이 출현할 때 보지 못하였다. 진화론자들이 당신에게 아무도 만든 자없이 사람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믿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일관성 있는 말로 들리는가? 만들어진 것은 무엇이든지 만든 자가 있다.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오늘날 인류는 도전적인 질문들을 직면하고 있다. 진화를 믿는 것 혹은 성서를 믿는 것—어느 쪽이 문제들을 타개해 나가도록 최선의 도움을 줄 것인가? 그것을 알면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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