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4 7/15 21-23면
  • 나는 불기둥 속에서 죽고 말 것인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나는 불기둥 속에서 죽고 말 것인가?
  • 깨어라!—1984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날 것인가?
  •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가?
  • 현실을 직면함
  • ‘그 일이 나의 가족에게 발생했다’
  • 성경은 핵전쟁에 관해 어떤 점을 알려 줍니까?
    그 밖의 주제
  • 핵전쟁—누가 위협이 되고 있는가?
    깨어라!—2004
  • 이 세상의 때는 끝나가고 있는가?
    깨어라!—1985
  • 핵위협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깨어라!—1999
더 보기
깨어라!—1984
깨84 7/15 21-23면

청소년들은 묻는다 ·⁠·⁠·

나는 불기둥 속에서 죽고 말 것인가?

1945년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수많은 청소년들이 원자 폭탄 폭발로 말미암아 사망했다. 그런 참화의 공포—그 뒤 수십년간 잊혀지지 않음—가 다시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그것은 많은 청소년들의 생각을 교란시키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러한 결론을 내린 ‘캘리포오니아’의 육학년 소녀와 공감할 수 있다: “만일 핵 전쟁이 일어나면, 내가 생애를 통하여 노력해 온 것들 모두가 해변가의 모래와 같이 깨끗이 씻겨져 나가고 말 것이다. 대학, 직업, 삶에 관한 나의 모든 꿈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일어날 것인가?

핵 전쟁. 그것의 가능성은 청소년들의 의식속에 자리잡는 것 같다. 1978년으로 소급해 보면 그 점은 434명의 미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표본 조사에서 밝혀졌다. 칠십 ‘퍼센트’가 미국이 핵 공격을 살아 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리드」(학생들을 위한 잡지)지가 1982년에 행한 한 “두려움에 관한 조사”에 수천명이 응답하였다. 소년들은 “핵 전쟁”을 그들의 최대의 두려움으로 평가하였다; 소녀들은 그것을 “자기 부모의 죽음” 바로 다음으로 두번째로 큰 두려움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십대가 ‘콜로라도’ 주지사의 부인인 자기 친구 어머니에게 “내가 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걱정을 해야 합니까? 세상은 어차피 폭파되고 말텐데요” 하고 항의하였을 때 그것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세상이 폭파되고 말 가능성을 저울질해 보는 것은 결코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1983년 11월 20일에, ‘그 날 이후’(The Day After)라는 영화가 미국에서 방영되었다. 집단 죽음과 증발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정신에 핵 전쟁의 공포를 한층 증가시켜 준 것 같다. 세상이 그처럼 위험하므로, 당신은 아마 모든 성인의 목표와 이상이 다 비현실적이지 않는가 하는 의아심을 갖게 될지 모른다. ‘하버드’ 대학교의 두 정신병 학자는 많은 젊은이들이 바로 그런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한다. ‘윌리암 베어드슬리’ 박사와 ‘요한 매크’ 박사는 1982년에 “그런 세상에서는, 계획을 세우는 일이 무의미해 보이게 되며 일상적 가치관과 이상은 고지식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고 보고하였다.

세상이 재난에 이처럼 가까이 와 있으므로 어떤 가치관들은 의의가 없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 정치에 있어서 전문가들의 실패를 인정하지만, 이것은 당신에게 미래가 없음을 의미하는가? 또는, 숙제를 하고 음식물을 적절히 섭취하고 이를 잘 닦으라는 어머니의 충고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다는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당면해 있는 핵의 위협이, 인간이 무장 해제 문제를 해결하든지 아니면 인간이 땅을 멸망시키든지 양자 택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무장 해제를 하고 어떻게든 탐욕과 호전성을 극복할 것으로 믿기는 사실 어렵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그 양자 택일에서 빠져 있는 것을 알려 준다. 그렇다. 인간 지도자들이 모든 대답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예레미야 10:23) 그러나 인간의 무능력을 시인한다고 해서 이 지구가 방사능에 의해 파멸될 운명에 있다는 것은 아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땅은 그 위의 거민과 함께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땅은 인간의 악용으로 인한 맹공격을 살아 남을 것이며 생태학적 균형이 잡히기까지 할 것이다.a 이러한 전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다.—계시록 11:18.

실제로, 성서에서는 인간이 오늘날의 위기에 도달할 것을 내다보기까지 하였다. 성서는 독자들에게 “민족들이 ·⁠·⁠· 혼란한 중에 곤고하[고] 사람들이 ·⁠·⁠·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는 것을 보면 주의하라고 충고한다.—누가 21:25, 26.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는 핵의 위협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누가 21:28, 31.

인간이 갑자기 자기 자신의 능력을 초월한 도움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말은 이치적인가? ‘미국 행동 심리학자들의 최고참자’인 ‘B. F. 스키너’는 인간의 무력함을 지각한다. 「과학」지(1981년 7월 31일자)에 실은 학문적인 수필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인류는 지금 위협받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진화론적인] 도태에 의해 인구 과잉, 자원 고갈, 환경 오염, 핵 참사 문제가 해결되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그는 그 후 「뉴우요오크 타임즈」에다 “나는 매우 비관적이다. 우리는 확실히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현실을 직면함

물론, 성인 사회가 핵 참사와 정면 충돌할 길로 나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불안스러운 일이다. 당신은 아마 ‘어떻게 그들이 아무런 위험이 없는 듯이 일상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질문할지 모른다. ‘예일’ 대학교 정신병 학자 ‘로버어트 J. 리프톤’ 씨는 그처럼 성인들이 파멸에 관한 생각을 모두 배제할 때를 가리켜, “정신적 폐쇄” 또는 “정신적 마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베어드슬리’와 ‘매크’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청소년들은 그 문제를 완전히 잊어 버릴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청소년들은 현실을 직면하고는 있지만 자신들의 정신의 평화를 위하여는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당신은 정신을 마비시켜, 불유쾌한 사실들을 부인해 버리고, 매일의 생활에만 몰두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그분은 우리 시대를 ‘노아’의 때에 비하시면서 세상 상태에 ‘깨어’ 있어야 한다고 충고하셨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태 24:38, 39.

1945년에 소년 ‘미우라 쓰토무’는 이 충고를 시험해 보았다.

‘그 일이 나의 가족에게 발생했다’

불덩이가 ‘히로시마’를 파괴했을 당시 ‘쓰토무’는 열 한살이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그 도시에 있었으며,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았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쓰토무’는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러나 일본의 많은 청소년들은 이해할 만하게도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공포에 떨게 되었다. 정신병 학자 ‘리프톤’은 그 뒤 ‘히로시마’ 생존자들 가운데서 “나태한 자포 자기의 경향—다소 영구적인 형태의 정신적 마비 상태가 만연”한 것을 발견하였다. 미국 정신병 치료 협회의 1982년 보고는 “원자 폭탄의 표적이 되는 것은 파괴적이고 깊은, 평생 지속되는 정신적 충격을 준다”고 부언한다.

집에서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재난이 들이닥쳤으므로, ‘쓰토무’도 두려운 느낌에 굴복당하기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쓰토무’는, 부모의 도움으로, 마비된 자포 자기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는 발생한 일에 ‘깨어 있었다.’ 성장했을 때 그는, 부모처럼, ‘여호와의 증인’의 전 시간 전도인이 되었다.

‘쓰토무’는 1945년에 일어난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우리가 처음에는 ‘전기 폭탄’으로 알고 있던 이 폭탄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제1차 세계 대전과 더불어 시작된 위기의 시대를 더욱 악화시켰을 뿐입니다. 나는 진지한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허심 탄회한 정신을 유지하고서 믿을 만한 성서 예언을 조사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현재의 무서운 때로부터 하나님의 왕국이 참다운 영원한 평화를 이룩할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 무서운 무기들이 지구를 멸망시킬 것인가? ‘쓰토무’는 기쁘게 성서를 펴서, 전도서 1:4, 시편 46:8, 9, 다니엘 2:44과 같은 성귀들을 통하여, 현재의 위협이 실현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알려 준다.

‘쓰토무’는 자기 자신이 핵 폭탄 불기둥 속에서 죽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 일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다: “가장 좋은 생활 방식은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 다음 미래를 위하여 계획하고 진정한 목표를 세우십시오. 나는 성서의 부활 희망이 여러분에게 확신을—일찍 사망하는 일과 소위 자연사의 두려움에 대한 완전한 대답을—준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명백히, 핵 군비상의 사태 발전들은 우리에게 이기심이 아니라 경건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표징이다. ‘쓰토무’와 같이, 우리도 지식과 사랑으로 두려움을 상쇄할 수 있다. 오늘날 ‘자아 제일’주의적 태도가 나라들로 하여금 서로 뒤질세라 핵 무기 경쟁을 계속하게 하는 이 때에, 성서의 가치관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돋보인다.

[각주]

a 자세한 점을 알기 위해서는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155-165면 참조.

[23면 네모]

핵 전쟁의 위협

“핵 전쟁은 인간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위기이며 착실하고 진지하게 검토하기가 가장 어려운 위기이다. 그것을 심사 숙고하는 것은 우리 대부분이 피하고 싶어하는 방법으로 심신의 평온과 안정을 교란시킨다. ·⁠·⁠· 그것은 또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젊은이들이 핵 전멸의 위협을 자신들의 생활의 일부로 지각하는 일이 어느 정도로 증가하는가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의 장래가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아는 이들 청소년들이 어떻게 현실 속에 은닉해 버리는가에 대해 우리가 더욱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레스터 그린스푼’, 의학 박사, 1982년 10월호 「미국 정신 의학지」에서.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