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5 6/15 4-9면
  • 행복—그것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것들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행복—그것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것들
  • 깨어라!—1985
  • 비슷한 자료
  • 참다운 행복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 행복을 누리려면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10
  • 사랑은 세워 준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2001
  • 사랑, “온전하게 매는 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길
더 보기
깨어라!—1985
깨85 6/15 4-9면

행복—그것을 발견하는 데 필요한 것들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한다. 우리는 먹어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의 몸은 단지 살아 있기 위해 그런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보다 많은,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의복과 살 곳이 필요한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물론, 편리하게 해주는 몇 가지 간단한 시설 및 오락과 함께 다른 물질적 필수품들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말하지만, 괴로운 생활을 하는 부자들도 많이 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들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이러한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자동차를 사면, 자동차 제조업자는 자동차에 필요한 것들, 즉 ‘탱크’에 연료를 넣고, 냉각 장치에 물을 넣고,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크랭크’ 실에 기름을 치는 일 등을 알려 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면, ‘엔진’ 소리가 부드러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어떤 기계가 필요로 하는 것들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 인간의 정신은 물질적인 것들 이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 속에 있는 정신이 필요로 하는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만족도 행복도 느끼질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행복은 내적인 일인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몸과 정신의 필요가 모두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지적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 4:4.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것이든 소홀히 하면 부족을 느낀다. 두 가지 중에, 더 중요한 것이 곧잘 무시된다. 행복한 생활은 사치로 가득찬 생활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상업적으로 만들어낸 쾌락, 곧 ‘디스코데크’나 ‘나이트 클럽’에서 멋진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의 지혜에 청종한다.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마태 5:3, 신세)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을 영적인 것보다 우선하여, 내적인 평화와 만족이 없으면서도 그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이유, 즉 현 사물의 제도가 잘못되었음을 안 과학자들을 존경하였다.

‘르네 듀보’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 기술이 현재 현대 문명을 인도해 가고 있는 길에서 늦기 전에 되돌아 서지 않는다면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 [부유한 나라들은] 마치 그들의 온갖 일시적인 기분과 충동을 즉시 만족시키는 것이 유일한 행동 기준인 것처럼 행동한다. ·⁠·⁠· 그러므로, 자연이 훼파될 위기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장래 자체가 위태로운 것이다. ·⁠·⁠· 나는 인류가 최상의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도 우리의 불합리한 생활 방식을 얼마나 더 오래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 의심스럽다. 서구인은 새로운 사회나, 자신을 파멸시킬 새로운 사회 중에 어느 하나를 택하게 될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 말에 동의하지만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간은 이득, 힘 및 지능의 낡은 동기를 새로운 것들인 새로운 존재, 참여, 이해 등으로 대치할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로마 클럽’의 의뢰를 받은 보고서들에, 오직 경제적 및 기술적인 면에서 격변을 겪어야만 인류가 “대규모의 궁극적인 세계 대재난을 피”할 수 있다고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언급하였다. ‘프롬’은, 이러한 변화들은 먼저 “현대 인간의 성격 구조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야만 일어날 수 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의 신체적 생존이 인간의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알버어트 시바이쩌’는 문제들이 “결국 성격의 내적 변화에 의해서만 해결되게 되어 있다”는 데 동의하였다.

‘인간의 성격의 근본적인 변화와 마음의 변화’라고? 그렇다! 그리고 성서는 19세기 전에 그 점을 지적하였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성서는 말하였다. 또한 성서는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으라고 말하였다.—로마 12:2; 골로새 3:9, 10.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이라고? 그렇다!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 곧 그분을 본떠 인간은 창조된 것이다! (창세 1:27, 28) 그것이 인간이 나타내려고 노력해야 할 형상이다. 인간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바로 영적 필요를 결정짓는 요소이다. 그리고 그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이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는 목적을 가진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신다. 그분의 형상을 닮은 인간 역시 의미있는 목적이 있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다. 정신병 의사 ‘스밀리 브랜튼’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의 산업 환경 아래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 일반적으로 거리감있는 집단 관리 체제의 지시를 받는 거대한 기계에 달린 조그만 톱니바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은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일 고유의 중요성을 거의 지니지 않을 정도가 되었으며, 근로자 자신은 다른 어느 누구라도 디딜 수 있는 아무 특징없는 발판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한 체제 아래서 대부분의 일은 압박감을 가져오고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의미있는 생활에 대한 필요를 간절히 느끼고 있다. 정신병 의사 ‘빅토르 프랭클’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자신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동기를 유발시키는 힘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다. ·⁠·⁠· 심지어 최악의 상태에서도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생활에 의미가 있음을 아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은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생활이 의미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거대한 우주 가운데서, 우리의 지구는 작은 점에 불과하다. 우리 각자는 그 작은 점 위에 있는 40억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각자는 ‘아메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 성서에서도 인간은 시드는 풀같고, 지는 꽃같고, 지나가는 그림자같고,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한다. (시 103:15, 16; 144:4; 야고보 4:14) 만약에 ·⁠·⁠· 만약에 우리가 우주를 창조하신, 위대하시고도 강력하신 분과 연관지어질 수 없다면, 만약에 우리 역시 창조하신 강력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두고 계시지 않으시다면,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생명은 진정한 의미를 지니게 될 수 있으며, 풀, 꽃, 그림자 그리고 안개보다 더 오래 생명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사실이 그러하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 지구와 지구에 있는 동식물을 돌보는 일을 부여받았다. 매우 의미있는 일이었지만, 인류는 비참하게도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 일을 해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사실상 땅을 망하게 하고 있다. (창세 1:28; 2:15; 계시 11:18) 그런 일을 함으로써 인간은 생활에서 얻을 수 있었던, 유일하게 지속될 수 있는 의미를 내던져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즉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하도록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내적 충동이 있다. 사실 그분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않으시다’ (사도 17:27) 이 위대하신 창조주께서 어떤 분인지 우리 주위의 하늘과 땅에 나타나 있다.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능력, 지혜, 신성—을 그분이 만드신 것들에서 볼 수 있다. 변명의 여지없이 불합리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지구와 지구에 있는 생명이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 단순히 진화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인간에게 그토록 절실하게 필요한, 지침이 되는 원칙과 가치 기준을 부인한다. 그들은 무분별하게도 그들의 분별력없는 추종자들이 깊고도 만족스러운 행복을 찾을 유일한 기회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로마 1:20; 마태 15:14.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류, 심지어 교양있는 지식인들까지도 신(神)을 더듬어 찾으며, 종종 그들은 참되고 전능하신 분이 아닌 어떤 신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정신병 의사들은 인간이 더 큰 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숭배하려는 필요를 선천적으로 느낀다는 것을 인정한다. ‘롤로 메이’는, 하나님을 믿음으로써 “개개인은 우주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의 탁월함을 마주할 때 자신이 미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존재라는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 그는 자신의 작은 세계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세계에 펼쳐져 있는 목적들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는 자신을 그러한 목적들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C. G. 정’은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육체적 및 도덕적 유혹을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다. ·⁠·⁠· 종교는 ·⁠·⁠· 인간 특유의 본능적인 태도이며,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그런 태도를 나타내는 일이 있어 왔다. ·⁠·⁠· 전능한 신에 대한 개념은 어디에나 있으며,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그러므로 나는 의식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인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매우 부적절하고 어리석은 다른 어떤 것이 신이 된다.”

전 인류 역사는 추호의 의심의 여지없이 인간이 숭배하려는 충동을 타고났음을 증명한다. 가장 원시적인 부족들에서부터 가장 문화가 발달된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어리석게도 신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돌, 나무, 산, 동물들, 인간 지도자들, 돈, 그들의 배, 심지어 ‘사단’ 마귀(‘사단’은 예수께서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다.)가 그것이다. 비과학적인 진화 철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종교, 즉 오직 “행운의 신”에 기초한 종교가 되었다. 또한, 참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은 입술로만 숭배하고 “경건의 모양”만 취하고 있다. (이사야 65:11, 공동 번역; 디모데 후 3:5; 빌립보 3:19; 골로새 3:5; 마태 4:9; 7:21)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숭배함으로써 이러한 필요가 제대로 충족되고 기타 모든 필요가 충족될 때까지, 인간에게 깊은 만족이나 지속적인 행복은 결코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요소이다.

여호와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아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 사랑은 우리를 의로 훈련시키는 징계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완전히 연합하게 묶어 주는 띠이다. 사랑은 예수의 제자들의 신분 증명서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랑, 즉 이 호의적인 ‘아가페’ 사랑은 결코 약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요한 1서 4:8; 요한 15:13; 마태 22:36-40; 베드로 전 4:8; 히브리 12:6, 11; 골로새 3:14; 요한 13:35.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4-8에서 그러한 경건한 사랑을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이러한 경건한 사랑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영적 필요가 충족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양립할 수 없다”고 ‘프롬’은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랑은 인간의 존속 문제에 대한, ·⁠·⁠· 모든 인간의 궁극적이고 절실한 필요에 대한, 유일하게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해결책이다.” ‘스밀리 브랜튼’이 다음과 같이 말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살 의욕을 상실할 것이다. ·⁠·⁠· 어느 정도의 자애(自愛)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는 정상적인 특징이다. 자신에 대한 합당한 존경심을 갖는 것은 모든 일을 하고 성취하는 데 꼭 필요하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너무 가혹하고 비판적이면, 우리는 죄책감 때문에 살 의욕이 약해질 수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실제로 자멸해 버릴 수 있다.”

그보다 오래 전에, 예수께서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것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사랑은 근육과 같아서, 사용하면 강해진다. 한편, 믿음처럼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것이다. 사랑을 거두기 위해 사랑을 심어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라.]” 그러나, 사랑하고 주는 사람은 어떤 것을 되돌려 받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주는 일에는 그만한 보상이 따른다. 예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바와 같다. 주고 받지만, 받기 위해 주어서는 안 된다.—마태 22:39; 누가 6:38; 사도 20:35; 야고보 2:26.

주는 일과 유사한 것으로 함께 나누는 것이 있는데,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생각, 경험, 즐거움, 갈망, 마음 속의 깊은 감정, 심지어 슬픔까지도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한 정신병 의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인간이 가장 깊은 행복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당신은 혼자서 일몰의 장관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는가? 혹은 흥분할 만한 좋은 소식이 있었지만, 이야기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적이 있는가? 혹은 해변에 흩어져 있는 바위에 부딪쳐 공중으로 부서져 올라가는, 거센 파도가 치며 너울지는 바다를 경외감에 사로잡혀 바라보면서, 그 감동적인 장면을 함께 볼 친구들이 없어 마음이 아팠는가? 혹은 찢어질듯 아프게 가슴을 파고드는 슬픈 일을 당해도, 결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인가? 우리는 감정을 교환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로마 12:15

단순해 보이지만, 그것은 또한 사실이다. 정신병 의사 ‘제임스 피셔’는 이렇게 말하였다. “위대한 사상가들은 ·⁠·⁠· 이 세상의 보물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위험에 대해 경고하였으며, 단순한 생활을 진심으로 추천하였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단순한 일들과 웅장한 일들, 즉 칠흑 같이 어두운 하늘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따스한 햇살, 시원한 미풍, 꽃향기, 새 소리, 우아한 동물들, 굽이치는 언덕과 험준한 바위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거세게 흐르는 강과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무성한 풀밭과 울창한 숲,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눈, 후두두 소리를 내며 지붕에 떨어지는 비, 지하실에서 귀뚤귀뚤 우는 귀뚜라미, 연못에서 개골개골 우는 개구리 또 달빛 아래 동그란 잔물결을 일으키며 튀어오르는 물고기에서도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사귀기 쉬운 사람들에게서도 더 큰 즐거움을 발견한다. 인간은 소속감을 느낄 필요가 있는 사회적인 동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정많은 생각, 정이어린 접촉, 부드러운 몸짓, 따뜻한 미소, 애정어린 행동, 어린이가 놀며 웃는 소리, 요람에 누워 깔깔거리는 아기,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의 위엄과 지혜—그 모든 것들이 만족감을 준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사람됨이지, 외모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갖는 것이지, 사회적인 지위를 얻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이지,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지, 땅에 쌓아 놓은 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많은 것을 가지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부유한 청년 통치자는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경건해 보였지만, 그 부유한 청년 통치자는 행복하지 않았고 ‘바리새’인들은 경건하지 않았다. 우리를 지혜롭게 해주는 하나님의 생각을 갖는 일, 우리의 힘을 인도하기 위해 그러한 지혜를 사용하는 일, 공평을 보장하기 위해 그분의 원칙들을 따르는 일, 사랑을 나타내는 일에서 그분을 본받는 일—그분이 우리에게 넣어 주신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다.

[5면 삽입]

생존은 “인간의 마음의 근본적인 변화에 달려 있다”

[6면 삽입]

“자신의 생활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동기를 유발시키는 힘 가운데 으뜸가는 것이다”

[9면 삽입]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살 의욕을 상실할 것이다”

[9면 네모]

하나님의 지혜를 갖는 데서 오는 행복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 41:1

“공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06:3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시 144:15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3, 14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잠언 14:2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잠언 16:20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마태 5:3, 신세

행복은 애초에 우리 속에 그러한 필요를 넣어 주신 분인, 우리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5면 삽화]

인간은 하나님께 창조되었고, 지구와 지구에 있는 동식물을 돌볼 임무를 받았다

[8면 삽화]

진정한 즐거움은 단순한 것들 가운데서 발견된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