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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종교적 속임수에서 벗어났다
  • 깨어라!—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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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8
깨88 4/1 9-12면

나는 종교적 속임수에서 벗어났다

내가 난생 처음으로 보았던 “기적”이 생각난다. 여섯살 반 때의 일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어느 가정 집에서 열리는 오순절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다. 오순절 교인들이 노래를 부를 때 흔히 경험하는 것처럼, 전도자는 노래를 부르던 도중에 영을 받았다.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방 한가운데에는 커다랗고 둥근 난로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전도자가 난로 속으로 팔을 뻗은 다음,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약한 탄성을 지르면서, 뻘겋게 핀 커다란 숯 덩어리를 집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양손으로 숯 덩어리를 치켜 올리더니, 방을 빙빙 돌면서 승리의 탄성을 가볍게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는 동안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둘레에서 노래를 부르고, 탄성을 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집회가 끝난 후에, 모든 사람들은 혹시 불에 데지 않았나 살펴보기 위해서 그의 손을 계속 들여다보았다. 손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머니가 다니던 켄터키 주에 있는 오순절 교회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표적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교인들은 마가 복음 16장 17절부터 시작되는, 방언을 말하고, 병든 자를 치료하며, 뱀을 집고, 독을 마시리라는 내용을 믿었다. (이 귀절들은 날조된 것으로서, 가장 오래된 성서 사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순절 교회가 모두 그와 같은 일을 믿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보면, 그런 표적을 행하고도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는 교회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리라고 느끼게 된다.

그후 우리는 인디애나 주로 이사하였다. 나는 12세 때인 1953년에 세례를 받았다. 나는 기타 연주를 배웠으며, 집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집단을 따라다녔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오순절 교인은 그와 같은 노래를 부름으로써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영을 받고 방언을 말할 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직접 뱀을 다루어 본 적은 없었지만, 내가 다니던 켄터키 주의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인 어느 주말의 일이 생각난다. 교회를 방문한 전도자는 영을 받고서, 자기가 가지고 온 뱀 상자에서 커다란 방울뱀 한 마리를 꺼냈다. 전도자는 손으로 뱀을 만지작거리더니, 비명을 질렀다. 나는 연단 뒤에서 노래 부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 다음에는 다른 전도자가 영을 받았는데, 몇년 전에 숯불을 다루었던 그 전도자였다. 그는 연단에 올라가더니 비명을 지른 전도자의 손에 있는 뱀을 집어서 상자 속에 도로 넣었다. 뱀에게 물린 사람은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세명이 뱀에게 물려서 죽은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의 시아버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9세 되던 때에, 나는 구원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청년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은 열렬한 오순절 교인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한때 뱀을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그는 내가 받은 영과 상응하는 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오순절 교인으로 잘 생활하다가, 신앙 생활을 중단하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으며, 우리가 좋게 생각하지 않는 다른 일들을 행하였다. 하지만, 영의 문제는 나를 혼란시키는 한 가지 요소였다. 오순절 교인이 영을 받을 때, 그 영들은 언제나 동일한 영이 아니었다. 어떤 영은 더 강하였고, 어떤 영들은 서로 화합을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영은 다른 영과 충돌하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서로 다른 영들이 그처럼 많은지 궁금해 하였다. 내가 오순절 교인이었을 적에 언제나 기도하던 내용이 생각난다. “하나님, 이것은 제가 옳다고 알고 있는 유일한 종교입니다. 하나님, 그러나 제가 만약 당신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으로 섬기고 있지 않다면, 그 점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것이 올바른 종교가 아니라면, 저에게 올바른 종교를 보여주십시오.” 나는 여러 차례 그와 같이 기도하였다.

내가 「파수대」와 「깰 때이다」지를 본 것은 첫 번째 결혼 생활을 할 때였다. 우리는 1962년에 신시내티 주로 이사하였는데, 그때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 집을 찾아왔다. 남편은 여호와의 증인과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였지만, 나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여호와의 증인이 왔을 때, 나는 부엌에 있었다. 남편은 「파수대」와 「깰 때이다」지를 예약해 놓고, 전혀 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 잡지를 읽었다. 나는 잡지를 읽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읽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지만, 잡지를 읽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잡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기까지 했다가는 나중에 다시 꺼내다가 읽기도 하였다!

나는 「파수대」와 「깰 때이다」지로부터 땅이 의로운 사람들로 가득 찬 지상 낙원 상태로 영원히 존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들은 것 가운데 가장 엄청난 소식이었다. 그 소식은 내게 심히 충격을 주었는데, 우리 오순절 교인은 땅에 대한 희망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영원히 지속될 지상 낙원에 대해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는 ‘그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잡지 읽기를 좋아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점에 대해 기도하였다. 마침내, 나는 남편에게 잡지를 더 이상 받지 말라고 요구했으며, 남편은 그렇게 하였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가지게 되었고, 결혼 생활 7년 만에 우리는 이혼하였다. 나와 두 아들은 나의 아저씨와 결혼한, 오랜 벗인 올렌과 함께 살게 되었다. 올렌은 노래를 아주 잘했는데, 우리는 오순절 교회 집회에 함께 나갔지만, 서로 다른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올렌은 숯불을 다루던 전도자의 딸이기도 하였다.

나는 두번 “병 고침”을 받았다. 첫 번째는 내가 유산을 하고 하혈을 할 때였다. 그런 상태에서도, 나는 오순절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다. 너무나도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혹시 자식들을 남겨 놓고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때 나는 올렌과 그의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영을 받았다. 그들은 서로 어깨 동무를 하였다. 그들은 내게 다가와서 안수하였다. 그 순간 나는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기분이 한결 좋았다! 더 이상 하혈도 없었다!

두번째 경우는 잇몸 질환이 있었을 때였다. 나는 15세 때부터 의치를 사용해 왔었다. 이제, 여러 해가 지나자, 위쪽 의치 아래가 붓기 시작하였다. 약 세달 동안 치아를 사용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액체 식품만을 먹고 살았다. 나는 견디다 못해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내 입을 살펴보았다. “나는 도움이 되지 못하겠군요. 구강 외과 의사를 찾아가십시오.” 그는 병명이 유두종이라고 말하면서, 한 치과 의사를 추천해 주었다.

나는 치과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올렌과 나는 켄터키 주에 있는 교회를 찾아갔다. 나는 그날 밤에 노래를 부른 후에, 영에 매우 깊이 빠져들었다. 올렌은 나에게 안수를 하였고, 나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 의식을 회복한 후에, 나는 씹고 난 고깃덩이처럼 바짝 마른 조각을 뱉어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의치를 낄 수가 있었다. 그후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올렌은 성서를 많이 읽었다. 내가 올렌의 집으로 이사한 직후에, 그는 자기가 성서를 읽고 있던 방으로 나를 불렀다. 질문이 있었던 것이다. 올렌은 전도서 1:4을 읽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성구를 내게 설명해 주면 좋겠구나. 우리는 이런 말을 믿지 않지. 그러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나는 매우 당황하였다.

그는 이렇게 다그쳤다. “이 성구를 보고 네가 왜 그렇게 당황하는지 알고 싶구나. 이것은 성서에 나오는 말이니까, 우리는 그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구!” 그래서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 말을 「파수대」와 「깰 때이다」지에서 읽은 적이 있어. 내가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하는 잡지를 읽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거야.” 올렌은 곧바로 여호와의 증인을 찾으러 가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러 찾아나설 것까지는 없어. 우리가 여기에 오래 살다 보면, 여호와의 증인이 찾아올거야. 그들은 항상 관심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지.” 두 주일 후 내가 직장에서 돌아왔을 때, 올렌은 얼굴에 하나 가득 미소를 띠고 문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 집에 누가 왔었는지 알아 맞춰 보겠니?”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 노릇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이 왔었어! 우리 두 사람하고 성서 연구를 하기로 마련해 놓았어!”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호와의 증인과 연구를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이 두려웠다.

그렇지만 우리는 연구를 하였다. 여호와의 증인은 우리를 집회에 초대하였다. 올렌은 가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나는 참석하고 싶었다. 당시는 막내 아들이 세살 정도였는데, 나는 막내와 함께 왕국회관에 참석하였다. 가정 성서 연구에서 「진리」 책을 마쳤을 즈음에, 올렌과 나는 오순절 교회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렌은 연구를 중단하였으며, 따라서 나 역시 연구를 중단하였다.

그때는 1972년이었다. 1974년에 올렌으로부터—당시 우리는 함께 살지 않고 있었다—전화가 왔다. 올렌은 나에게 자기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는데, 올렌의 아버지는 내가 여섯살 반 때에 보았던, 숯불을 다루던 바로 그 남자였다. 첫 번째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이미 7년 전에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1975년 1월에 올렌의 아버지와 재혼하였다.

그는 켄터키 주, 내가 어렸을 적에 다니던 오순절 교회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재혼할 당시, 나는 오순절 교회에는 다시 나가지 않을 것이며, 만약에 종교를 다시 갖는다면, 여호와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는 내 말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몇달도 안 지나서, 그는 자기가 다니는 오순절 교회 집회에 함께 나가자고 요청하였다. 나는 한번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끝까지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악귀가 온통 분위기를 제압하였던 것이다!

나는 그때 이미 사단과 그의 악귀들 및 지상에 있는 사단의 종들이 표적과 이적을 행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전쟁은 그와 같이 하늘에 있는 악귀의 세력을 대적하는 것임을 배워 알고 있었다. (출애굽 7:11, 22; 8:7, 18, 19; 고린도 후 11:13-15; 에베소 6:11, 12)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에 주어진 기적의 선물은 유년기 교회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나중에 사도들이 사망하자, 그와 같은 선물도 지나갔다는 사실을 배워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방언을 말하는 선물에 대하여, 이와 같은 기록이 있다. “방언도 그치[리라.]” 이제 장성한 그리스도인 교회의 대들보를 이루는 것은 사랑, 믿음 및 희망이다.—고린도 전 13:8-13.

남편은 내가 다시 오순절 교회에 나가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연주하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왕국회관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였다. 남편은 주말에 여러 오순절 교회에서 설교하고 올 때면, 오순절 교회에서 자기를 위해 걷은 연보금에서 받은 돈으로 두둑이 채운 돈지갑을 자랑하곤 하였다. 남편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그처럼 많은 돈을 준다면서 웃어대곤 하였지만, 그 돈을 받을 만한 일이라고는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결국, 작은아들은 나와 함께 집회에 참석하였으며, 활동적인 증인이 되었다. 남편은 내가 집회에서 늦게 돌아오면, 몹시 화를 내곤 하였다. 어느 날 밤, 10시에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 아들과 나는 자동차 안에서 밤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은 여러 차례 일어났다. 남편은 자기 차에 총을 가지고 다니면서, 내가 무엇을 읽거나 연구하는 것을 보면, 총을 집어 들고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밑에다 네다섯 번씩 총을 쏘곤 하였다. 테라스에 청량 음료병을 가지고 나가면, 상자에 담긴 음료수 병에 총을 쏘아 깨뜨리곤 하였다. 남편은 나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화나게 만들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호와께 기도하여 평온을 유지하였으며, 그로 인해 화가 나는 쪽은 오히려 남편이었다.

어느 날 집회에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이렇게 질문하였다. “당신 정말로 여호와의 증인이 되려고 하는 거요? 정말로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려는 것이냔 말이오?” 나는 “그래요, 그렇게 할 거예요”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2주일의 여유를 줄테니 집에서 나가시오.” 그렇게 해서, 아들과 나는 집을 나왔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사람이 살지 않던 어느 작은 집으로 이사하였다. 수도도 없는 집이었고 가구도 거의 없었으며, 가진 돈도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며, 문이 잠겨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총질을 당할까 봐 걱정하지 않으며, 집집으로 전파하면서 여호와를 섬길 수 있게 된 것이 매우 좋았다. (사도 20:20) 호별 방문에서 오순절 교인을 만날 때, 종종 악귀가 곁에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여호와여, 저는 당신이 악귀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께서 저를 도와주실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며,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당신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언제나 도와주시곤 하였다.

나는 1976년 9월에 침례를 받았다. 아들은 1977년 7월에 침례를 받았다. 나의 친자매는 헌신한 여호와의 증인이다. 어머니는 연구를 하였고, 호별 방문 전파도 시작하였다. 이처럼 가족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으며,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으로부터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호와께서는 나에 대해서 참으로 많이 참아 오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회개케 하심으로 인도할’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여호와께서 오래 참으심을 나타내시기를 기원한다. (로마 2:4)—이레타 클레몬스의 체험담.

[11면 삽입]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세명이 뱀에게 물려서 죽었다

[12면 삽입]

나는 그때 이미 사단과 그의 악귀들 및 지상에 있는 사단의 종들이 표적과 이적을 행할 수 있음을 배워 알고 있었다

[10면 삽화]

현재는 증인인 이레타 클레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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