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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69 6/1 251-257면
  • 당신의 발을 위하여 계속 곧은 길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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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발을 위하여 계속 곧은 길을 만들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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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6/1 251-257면

당신의 발을 위하여 계속 곧은 길을 만들라

1. 1914년 이후의 시대를 무슨 시대라고 부릅니까?

인간 역사상 1914년은 가장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 해입니다. 성서 예언에 의하면, 이 해는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시작된 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서 예언을 떠나서 보더라도, 그 해에 시작된 시대는 전대미문의 시대입니다. 그 시대를 “폭력 시대”라고 부르는데 실로 적절한 명칭입니다.

2. 1914년 이후의 세계와 그 해 이전의 세계를 비교할 때, 어떠한 차이점을 볼 수 있읍니까?

2 고대에는 세대가 바뀐다 하더라도 관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으며, 수백년 아니 수천년 동안 아들 대는 아버지 대와 거의 흡사한 생활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소위 종교개혁 시대라고 불리우는 시대부터는 사정이 달라졌읍니다. 새로운 세대는 이전 세대가 구축한 이상으로 구축하려고 하였고, 그 결과 진정한 의미로의 진보가 그 시대로부터 1914년까지 이룩되었읍니다. 그러나 1914년부터는 만사가 역행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역행의 도가 너무나 심하였기 때문에 한 논설위원은 “역사상 온전한 ‘정상적’인 해의 마지막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해인 1913년”이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었읍니다. 그 이유는 과학기술면으로 커다란 업적을 이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개인간 및 국가간의 사회적 관계가 1914년에 유사 이래 최악의 전쟁으로 폭발하였고, 그 이래로 사태는 악화일로를 거듭하여 현금에는 무정부 상태에 가깝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3. (ㄱ) 현시대에 어떠한 상태가 만연할 것이라고 ‘바울’은 예언하였으며, 어떠한 훈계를 부언하였읍니까? (ㄴ) 현 상태에 대해 사람들은 각각 어떻게 반응합니까?

3 현 “폭력 시대” 및 도덕적 퇴폐상을 예언한 유명한 예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 가운데 들어있읍니다. “이것을 알아 두시오. 마지막 날에 어려운 때가 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과장하고 자만하고 하나님을 모독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이 없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원한을 풀지 않고 비방하고 절제가 없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교만하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 다음 ‘바울’은 “이런 사람을 멀리 하시오”하고 부언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3:1-5, 새번역) 현 폭력 시대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 그러한 사람들을 “멀리”하고자 하고, 안전과 평화를 실제 찾은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현대의 타락상을 잘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들은 별다른 교제가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한 식으로 생활한다고 생각하여 현상태를 ‘정상적’이며 적합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그 반면, 불안과 허무로 가득찬 현대 생활 방식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전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청소년 조직에 가담하거나 혹은 각종 마약과 환각제를 통해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합니다. 성인들도 “시민 불복종” 운동을 통해 현상태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표시합니다. 그러한 운동은 흔히 폭동, 약탈, 민간인 및 법시행관 저격 사건으로 번집니다.

그 근원을 인정함

4. (ㄱ) 이러한 상태는 왜 다루기가 어렵습니까? (ㄴ) 현대 ‘댄스’와 같은 관습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 수 있읍니까?

4 ‘바울’은 현시대를 “어려운 때”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마지막 날”에 살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이 현 상태를 문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급속도로 전개되어 온 이러한 상태가 외양으로 볼 때는 그 자체 하등의 중요성을 지니지 못하고,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난세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상태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는 것은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 교묘한 방법으로 이러한 상태들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방심한 사람들은 관습이 급진적으로 변화되고 도덕관이 저하되는 것을 보고도 별로 사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경계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트위스트’ 춤과 그 후에 생긴 각종 현대 ‘댄스’들을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춤이 처음으로 알려졌을 때, 청소년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였읍니다. 한편 부모들은 한 동안 눈쌀을 찌푸리거나 혹은 귀엽게 봐 주었읍니다. 그러자 얼마 후 그들도 열광적으로 이러한 춤을 추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목적은 그들도 젊다는 인상을 주기 위함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춤의 기원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춤은 원래 이교도들이 풍요(豐饒)를 비는 음탕한 제사에서 추던 춤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춤들은 광란적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성욕을 유발시키려는 목적으로 고안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이러한 춤들도 사람들의 도덕적 억제력을 크게 이완시켰읍니다. 결혼전 성교를 허용하는 현대 도덕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관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단순히 관습이라고 생각하여 그러한 춤을 추는 사람은 어떠합니까?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을 속여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종류의 자극은 필연적으로 음란한 생각을 가지게 만들며, 잘못된 욕망을 계속 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시대에 ‘바알브올’ 숭배에 부속된 이만 사천명과 같이 완전히 타락할 것입니다.—민수 25:1-9.

5. 일부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려고 하며,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왜 그리스도의 법을 조롱하는 것입니까? 어떠한 위험이 내재해 있읍니까?

5 새로운 표준, 즉 결혼전 성교를 허용하고 심지어 특정 환경하에서는 간통까지 허용하는 표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지는 경향이 있읍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서 원칙을 고수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도덕관념을 약화시키고 있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음행만 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러한 잘못된 논법을 가지고 극심한 애무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함과 깨끗함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법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고린도 후 7:1)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을 통해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한 잘못된 욕망을 품고 있는 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그러한 말씀과 일치하게 행동한다고 할 수 있겠읍니까? (마태 5:27, 28) 이러한 행동은 의로운 원칙을 범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범죄를 저지르게 만듭니다. 강한 욕망을 가지면 나쁜 짓을 하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기회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므로 타협적인 태도를 자주 혹은 오랫 동안 취하는 사람은 마침내 굴복하게 된다는 것은 입증된 사실입니다. 잠언은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는가 하고 말합니다.—잠언 6:27.

6. 현대 사회의 관습과 생활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다른 무엇에 오염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가 될 수 있읍니까? 그 이유는?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현대 사회의 관습과 행동을 면밀하게 검토 평가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그 기준은 사사로운 욕망이나 편애가 되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의 빛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디모데 후 3:12) 현대 사회의 관습과 행동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과 마찬가지로 “새 인간성”을 발전시키는 데 해가 되고 방해가 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큰 ‘바벨론’으로부터 나오라는 훈계를 받습니다. 우리는 이 대제국이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에 곧 멸망될 것이며, 거짓 숭배와 연관을 맺는 것은 그 동일한 범죄에 연루되는 것임을 분명히 압니다. (계시 18:4) 그러나 우리가 이 멸망받을 운명에 놓인 사물의 제도의 관습과 행동을 채택하고, 그 결과로 우리의 생각이 분산되고 마침내는 그러한 생활 방식에 몰두하게 된다면, 이 사물의 제도의 운명에 동참하는 결과에 이를 수도 있음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읍니다. 종교적 전통 및 ‘가이사’의 요구 사항은 여러 시대를 걸쳐 계속 내려온 것이지만, 그 생활방식, 그 의상, 그 의례는 그 시대에 속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것들이 대부분 민중의 종교 생활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현대세계가 급속도로 무신론적 문명으로 바뀌고 있기는 하나, 그러한 사고 방식은 아직도 그 관습과 생활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 제도의 사고방식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죄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적 선택과 분별성

7. (ㄱ) 의상 ‘스타일’을 결정하는 문제에 있어서 어떠한 자유가 있는 동시에 어떠한 제약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까? (ㄴ) 이러한 균형의 원칙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떠한 결과가 생길 수 있읍니까?

7 현대 사회에서 의상 ‘스타일’은 다분히 개인의 취미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며, 그 취미와 풍습도 나라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오로지 개인적 선택에만 사로잡혀 결정해서는 안됩니다. 그 결정이 전도 봉사에 줄 영향 및 회중 내외부의 사람들에게 줄 영향, 자신의 생각과 견해에 미칠 영향까지도 고려해 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스콧트란드’ 사람에게는 “미니스커트”가 하등의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현대 여성들이 이 옷을 입는 것이 유행이기 때문에 큰 걱정거리가 되고 있으며, 영국 젊은이들이 이 옷을 입기 시작하였을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새로운 유행이었읍니다. 중세 시대에는 미혼 남성, 심지어 기혼 남성까지도 머리카락이 어깨에까지도 내리울 정도로 길게 하였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러한 머리를 하고 공중 앞에 나타나는 청소년은 분명히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판별될 것입니다. 그러한 머리를 한 청년을 볼 때, 사람들은 단순히 그 사람 개인적 선택 문제라고만 넘겨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청년이 특정한 견해, 그것도 일반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이상한 견해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청년은 마치 젊은 그리스도인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이 긴 머리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전도 봉사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취미대로만 한다면 그들이 봉사의 특권을 상실할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한 회중은 부득불 어떤 젊은 전도인을 공개 강연 연사 명단에서 삭제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인근 회중에서 강연을 할 때마다, 그의 머리가 너무 길다는 불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중에서는 여러 차례 훈계하였지만 그 청년은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8. (ㄱ) 의상 문제에 대한 특정한 제약은 왜 개인의 자유를 부당히 침해하는 처사가 아닙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의상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8 일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그러한 제약이 그들의 자유를 부당히 침해하는 처사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심지어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8:13)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 생각하여 이러한 결론을 내렸읍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식물은 우리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약한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8-10절) 음식물의 경우가 그러한 바와 같이 의상 ‘스타일’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긴 머리를 하거나 짧은 머리를 하거나, 긴 치마를 입거나 짧은 치마를 입거나 그 자체는 구원 문제에 있어서 여호와 보시기에 중요치 않습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는 시대에 따라 각기 그 두 가지를 인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으로 넘어지게 하거나 생명의 길에서 떨어져나가게 하는 관습이나 행동은 여호와께서 중시하십니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였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1, 12절)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죄를 눈여겨 보지 않으시거나 벌주지 않고 넘겨버리실 것입니까?

9. (ㄱ) 왜 일부 사람들은 전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의상을 보고 넘어질 가능성이 있읍니까? (ㄴ) ‘스타일’과 ‘팻숀’을 결정할 때, 주위의 이목을 고려하여 그에 따르는 것이 좋을 때는 언제입니까?

9 그러면 의상 ‘스타일’이 남을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스타일’과 ‘팻숀’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까지 주위의 이목을 고려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에게 이 문제에 관한 구체적 법칙을 주셨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법칙들은 영적으로 식별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법칙들을 알아 내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닙니다. 다른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바울’의 훈계는 하나의 그리스도인 요구 조건입니다. 그리고 이 훈계는 비단 음식물을 먹는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 외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구속력을 가집니다. 왜냐 하면 ‘바울’은 이 훈계를 통해 하나의 원칙을 설명하였으며, 그가 이 원칙을 음식물 먹는데 적용시킨 것은 우리가 여하한 문제로든지 남을 넘어지게 하면 여호와께 책임을 지게 됨을 설명하기 위한 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원칙은 현대 의상의 일부 ‘스타일’과 ‘팻숀’에도 적용됩니다. 왜냐 하면 그 일부 의상을 입는 사람은 특정한 생활 방식을 가진 사람, 성서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견해를 가진 사람으로 판별되기 때문입니다. 현대 의상에 관한 책을 쓴 여성 작가는 ‘라디오’ 회견 석상에서 “옷은 사람의 생활방식의 거울”이라고 최근 말하였읍니다. 분명히 현대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라든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그리스도인 전도인이라고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상기 여성 작가는 “만약 그러한 옷을 입은 여자가 노상에서 희롱을 당하였다면, 그것은 당연히 당할 만한 일”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였읍니다.a “‘미니스커트’의 어머니”란 별명을 가진 ‘패숀’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뉴스위크」지(1967년 11월 13일호)에 인용 보도되었읍니다. 즉 “통상의 관념으로 보면, 법을 준수하는 여인은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혼 밖에서의 성교를 가지는데, “요즈음은 그 때까지 기다리기를 원치않는 여자들이 많이 있다. ‘미니’ 의상은 바로 그것의 상징”이라고 말하였읍니다.

10. (ㄱ) 올바르고 적합한 의상은 누가 결정해야 하며, 어디서 신뢰할 만한 표준을 발견할 수 있읍니까? (ㄴ) 왜 ‘팻숀 디자이너’들의 견해가 항상 안전한 지침이 되지 않습니까?

10 물론 한 사람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나 다른 사람은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경우가 있읍니다. ‘스타일’의 면에 있어서도 그러하며, 간혹 어느 것이 고상하고 나쁜 취미인가에 대해 의견들이 크게 상치되는 경우도 있읍니다. 그러나 항상 ‘센세이쇼날’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특히 현재와 같은 폭력의 시대에 그러한 사람들은 타락된 사고방식과 도덕 표준을 표시하는 유행을 잘 따릅니다. 그러면 무엇이 표준이 되어야 하겠읍니까? 누가 결정할 수 있읍니까?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이치적이고, 신세] 양순하”다고 말하였읍니다. (야고보 3:17)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올바른 표준을 설정해 놓으셨읍니다. 우리는 양순하게 그 표준을 따를 것입니까? 아무도 무엇이 올바르고 적절한 의상인가를 결정하는 규칙을 정할 수는 없읍니다. 단 예외는 미성년 자녀의 의상은 부모가 결정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심지어 어린이들이라도 온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뜻을 행할 수 있으며, 의심스러운 문제가 일어날 때는 무엇이 올바른가를 결정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읍니다. 문제가 있을 때, 이 제도에 의해 세워진 표준을 따를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헌신한 그리스도인 여인이라고 생각해 봅시다. 만약 당신의 전도 봉사의 표준으로 보아 적합한 옷과 최근 ‘팻숀’ 잡지가 가장 매력적인 여성복이라고 말한 옷들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이 죽어가는 사물의 제도의 생활방식에 따라 생각하고 무조건 그것에 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그것은 한 쪽으로 치우친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은 거짓 표준, 한 시대와 사람의 제품을 받아들이도록 유혹하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당신이 이 사물의 결말의 때에 출생한 이상, 세상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유일한 표준은 타락한 사람들의 표준임을 잊지 말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여호와의 생명의 책에 묘사되어 있는 발랄한 건강과 생명의 장면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미에 관해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생활의 한 가지 지침으로 삼으십시오.

외양에 관한 올바른 견해

11. ‘베드로’는 어떠한 그리스도인 여성상을 묘사하며, 이것은 어떻게 하나의 본이 될 수 있읍니까?

11 사도 ‘베드로’는 특히 그리스도인 여성, 믿지 않는 배우자를 가진 아내가 나타낼 미덕을 훌륭하게 묘사하였읍니다. 동시에 그는 그리스도인 여성을 다르게 만드는 미점, 즉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 제도의 여인들과 불필요하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말로 말미암지 않고” 남편으로 구원을 얻게끔 만드는 미점을 묘사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베드로 전 3:1-4) ‘베드로’가 이러한 말을 기록한 이래로 풍습이 많이 변하기는 하였지만, 그가 말한 원칙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적용됩니다. 당신이 어떤 형식의 의상을 입을 것인가를 망설일 경우는 그리스도인 여성에 관해 묘사한 ‘베드로’의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 머리를 꾸미는 ‘스타일’과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 둘 중에 어느 것이 ‘아마겟돈’을 생존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십시오.

12. ‘스타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무슨 동기들을 고려해 보아야 하며, 어떻게 할 때에 우리는 자신을 속이게 됩니까?

12 ‘베드로’의 말은 또한 개인의 외양에 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동기를 강조합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최신 유행 옷을 입기를 원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동기를 면밀히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은 외양만을 아름답게 꾸며서 다른 사람들 눈에 좋게 보이려고 합니까? 그들의 의상은 그들을 특정한 부류에 속하게 만듭니까? 그들은 바로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까? 우리를 관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입니까? 만약 우리의 의상과 외양이 우리 생활 방식의 거울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합니까? 우리는 우리가 주고자 하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줍니까? 어떤 대단히 진실한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읍니다. 이 처녀는 유행복을 입은 ‘모델’과 같이 차리는 것이 젊은 여인에게 이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전도인도 되고 싶어 하였읍니다. 그런데 어느 남자가 이 처녀에게 와서 춘화도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읍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그러나 만약 그 처녀가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이상적인 의상을 하였더라면, 그러한 일을 당하였겠읍니까? 그 처녀는 그러한 일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고방식과 견해를 뜯어 고치는데 대단히 힘이 들었으며 시일이 걸렸읍니다. 그러나 현재 이 처녀는 외국 임지에서 선교인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 값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을 배양하여 행복을 맛보고 있읍니다. 우리가 자신을 속일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우리를 관찰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외양과 우리의 행동 방식이 반영하는 바에 따라 우리를 판단할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린도 전 10:23, 24.

13. 새로 연합한 사람들은 의상 문제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져야 합니까?

13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견해만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가 주로 관심을 돌려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 및 그러한 사고방식을 촉진시키는 요인입니다. 아마 당신은 최근에 여호와의 증인들과 교제하게 된 사람인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당신은 최근 유행을 따라, 아마 초현대식 유행을 따른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하여 왕국회관에서 눈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읍니다. 하나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이라면 결코 버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의 지식과 그분의 목적에 관한 이해를 높임에 따라, 당신은 당신의 사고방식이 변화를 받고 있음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가 이 제도의 습관과 의례를 따르게 되면 어느 정도 그 제도의 일부가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14. 이 문제에 있어서 진실로 염려해야 할 것은 왜 개인의 견해입니까?

14 그 반면, 만약 당신이 여러 해 동안 연합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의 ‘이미지’에 강력한 매력을 느끼고 있다면, 그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심각히 고려해 보십시오. 당신이 이러한 ‘이미지’를 모방하려고 하는 동기는 무엇입니까? 왜 당신의 생각은 그 쪽으로 향하는 경향이 있읍니까? 당신은 당신이 그러한 사람들과 같이 보이고 옷입고 행동할 때, 이 제도의 혹은 당신이 모방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물들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온전히 깨닫고 계십니까? ‘야고보’의 충고를 기억하십시오. (야고보 1:14, 15) 잘못된 욕망을 계속 품는 것은 범죄하게 되는 가장 확실한 길의 한 가지입니다.

15. 개인적 옷차림에 관하여 어떠한 견해를 취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분별성있는 견해입니까?

15 우리가 자유 의사대로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고 하여, 심지어 신세계 사회의 형(型)과 다른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그러한 생각대로 해야 하겠읍니까? 우리가 특정 표준을 엄수하도록 요구받지 않았다고 하여 여호와의 봉사 면에서 장성한 사람들의 양심, 즉 성경적으로 단련받은 양심을 무시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겠읍니까? 만약 당신이 이 사물의 제도에 아직도 한 발을 깊숙이 들여 놓고 있기 때문에 절뚝 절뚝거리는 경향이 있다면,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는 ‘바울’의 훈계를 심중히 고려하도록 하십시오. (히브리 12:13) 이 사물의 제도의 관습과 유행은 그 끝이 오기 전까지 얼마 만큼 극단적으로 흐를런지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그리스도인의 예의범절과 고상한 취미를 타협함이 없이 우리는 어느 정도로 그러한 관습과 유행을 따를 수 있읍니까? 우리는 성경에 설정된 표준의 한계를 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사고형태를 올바로 만들어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마치 경매로 물건을 사는 사람과 같습니다. 만약 사는 사람이 자신이 부를 입찰가격에 최고 한계액을 정해 두지 않으면, 그 사람은 파산할 것입니다. 우리도 우선 이 사물의 제도의 관습과 행동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최고 한계선을 정해 두어야 합니다. 적절하게 경계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반드시 파산합니다. 만약 당신의 의상 ‘스타일’이 신세계 사회 내에서 장성된 사람들의 의상과 너무나 달라서 항상 논의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이 당신의 전도 봉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당신을 관찰하는 조직 외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려해 보십시오. 쓸데없이 자신을 남의 눈에 띄게 할 필요가 어디 있읍니까? 그렇게 하여 진실로 얻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16. 우리는 우리의 태도에 관해 왜 자만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특히 부모들은 왜 그들의 발을 위해서 단호하게 곧은 길을 만들어야 합니까?

16 이 세상의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절대 무사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러한 일은 너무나 여러번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예외입니다. 부모되신 분들은 자신을 살펴 보고 그리고, 자녀들을 살펴 보십시오. 당신은 의상과 행동 면에서 올바른 본을 세우고 있읍니까? 만약 그러하다면, 당신의 책임 하에 있는 자녀들도 그러한 본을 따르도록 계속 가르칩니까? 예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 밖으로 데려가 주십사고 여호와께 기도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부가 되지 않도록 해 주십사고 기도하였읍니다. 성서 원칙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그 원칙들을 적용하십시오. 자녀들에게 그러한 원칙들을 가르쳐 주십시오. 당신의 보호 하에 있는 자녀들이 그들의 발을 위해서 곧은 길을 만들도록 계속 가르쳐 주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에스겔’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올바른 본을 세워 주셨읍니다.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에스겔 18:30-32; 아모스 5:14.

[각주]

a ‘뉴욕’ 시 ‘라디오 스테이숀 WNEW’, 1967년 6월 8일, “‘짐 로우’의 ‘뉴욕’”.

[256면 삽화]

경매에서 자신의 입찰 가격에 최고 한계액을 정해 두지 않으면 파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세상의 행동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최고 한계선을 정해 두지 않으면 영적으로 파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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