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배움
1. 배움이 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리든지 나이 많든지 간에 배움은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으며, 또 즐거워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배움이 정신의 창문을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즉 배움은 단조로움과 무미건조함을 몰아냅니다. 배울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흥미있는 사람들, 흥미있는 장소들 그리고 다양한 동식물이 많이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은 그만 두고라도 이 땅은 지식의 보고(寶庫)입니다. 지상에는 생애를 천번이나 거듭하면서 공부해도 못다할 만큼 공부할 것들이 많이 있읍니다.—잠언 9:9.
2. 우리는 배움을 통하여 무슨 능력을 얻으려고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러나 우리는 일에 관하여 배우는 것 이상을 할 수 있읍니다. 배움을 통하여, 우리는 자신을 위해 또는 남을 위해 일을 행하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읍니다. 결국 인생이란 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도 인간이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할 만한 가치있는 것들이 거의 무한히 많습니다. 의심할 것 없어 배움은 우리를 대단히 풍요하게 만들어 주고 배움은 인생의 재미와 즐거움을 천배로 증가시켜 주기도 합니다.—전도 3:12.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찾아냄
3. 배우는 것은 얼마나 중요합니까?
3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은 배움이 생명과 사망의 차이를 낸다는 점입니다. 잠언 8:35, 36에서 영감받은 필자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대저 나[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당신은 생명을 얻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읍니다. 어떻게? 어디서 얻을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방법을 알려 주셨읍니다. “영원한 생명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것이옵니다.”—요한 17:3, 새번역.
4. (ㄱ) 모든 참 지식은 누구로부터 나오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골로새 2:3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4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배움의 참 근원이십니다. 그분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많이 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셨읍니다. (잠언 2:6) 그의 말씀인 성서 안에 현재와 미래의 우리 행복을 위하여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해 주셨읍니다. 그분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위대한 선생님으로 임명하셨읍니다. 골로새 2:3은 그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의미깊은 말을 하였읍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5, 6. (ㄱ) 예수의 지식은 얼마나 광범합니까? (ㄴ) 사도 ‘요한’의 기록 가운데 설명된 바와 같이 예수는 그 지식을 인류를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셨읍니까?
5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장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다른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많이 있지만,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았다’고 한 말은 이 아들에게만 적용됩니다. (골로새 1:15, 16) 이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주 역사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며, 그보다 더 잘 아는 분은 그의 아버지 뿐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뜻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분이 지상에 오신 목적 가운데 한 가지는 사람들이 전에 알던 것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 주기 위해서였읍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즉 예수 그리스도]이 나타나셨느니라.”—요한 1:14, 18.
6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머리를 열어 이전에 이해 못하였던 놀라운 진리들을 배우도록 해 주었읍니다. 그러한 가르침이 사실상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음을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느니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 8:38; 14:10)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이 위대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생애와 사업과 말씀을 기록시키신 점에 대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읍니다.
7. 현재 진행 중인 예수의 가르침과 ‘솔로몬’ 왕의 가르침을 비교하십시오.
7 예수의 가르치는 사업은 그가 인간으로 죽으실 때 끝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부활받아 하늘로 올라 가셔서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읍니다. 마태 12:42에 보면, 예수께서는 남방 여왕이 ‘솔로몬’ 왕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부터 온 것을 말씀하신 다음,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부언하셨읍니다. 충성스러웠을 때에 ‘솔로몬’ 왕은 지혜로운 잠언과 말과 재판으로 백성을 가르쳤읍니다. 더 큰 ‘솔로몬’인 그리스도 예수도, 믿음을 가지고 그에게 향하고 그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십니다.—요한 14:25, 26.
8. (ㄱ) 예수에 대하여,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것이 그의 아버지의 지위를 손상시키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8 그러면 이제 골로새 2:3에서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겠읍니까? 그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모든 목적을 계시하고 성취하는 중심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운 목적이 이 아들 예수를 통하여 강력하게 나타났으며, 그 안에 요약되었기 때문에, 예수는 참으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읍니다. (고린도 전 1:24, 30) 이것은 조금이라도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는 그의 아버지의 지위를 손상시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 그리고 위대하신 선생님으로 봉사할 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끊임없이 참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시키며, 그분의 이름에 영예를 돌립니다. 그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9. 잠언 8:35, 36을 읽고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하여 그 의미를 설명하십시오.
9 이제, 잠언 8장에서 지혜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는다고 말한 점을 기억하십시오. 지혜는 하나님의 아들 가운데 나타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이 비슷한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읍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14:6) 우리는 생명으로 인도해 주는 지혜를 얻기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명해 주신 위대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읍니다. 그분에게서 배우지 않는다면, 「잠언」에서 말한 대로 ‘우리 영혼을 해하는 것’과 같으며, ‘사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잠언 8:35, 36.
당신은 참으로 그의 제자인가?
10. 우리가 위대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들 가운데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그리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어떤 영향을 받았읍니까?
10 당신은 이 위대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읍니까? 우리 모두는 배울 기회가 있었읍니다. 그런 기회를 통하여 배운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길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표준이 무엇인지,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여 깨끗하고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지 등을 배웠읍니다. 그들은 예수에게서 배웠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분명한 희망, 의로운 새 질서에서 생명을 누릴 밝은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11. 예수께서는 이 희망을 누구에게 전해 주라고 가르치셨읍니까?
11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이 희망을 우리의 가족, 친구, 일반 사람 등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라고 가르치셨읍니다. 예수는 자기에게 신부와 같은 자기 회중을 주로 돌보신 것 외에도, 인간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교육 활동을 직접 지휘하시어 그의 왕국의 좋은 소식이 지상의 모든 거민에게 전파되도록 하시며, 이미 수백만명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 그 제자를 삼는 사업을 감독하고 계십니다.—사도 1:8; 마태 28:19, 20.
12. 예수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2 만일 우리가 이 위대하신 선생님에게서 배웠다면, 그 선생님은 우리에게 그의 참 제자임을 증명하도록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당신은 참 제자입니까? 당신이 그 참 제자임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읍니까? 그의 참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의 생활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것,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과 온전히 일치하는 생활,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나타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같은 사랑으로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그들로 생명을 얻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아직 우리의 형제가 되지 않은 인류의 세상에 속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자가 되고 기꺼이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로 제자를 삼는 일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올바른 방법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예수께서 위대하신 선생님으로 지상에 계시던 때에 친히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읍니다.—요한 15:8, 12.
독신 생활에 대한 교훈을 따름
13. (ㄱ) 예수께서는 무슨 목표로 독신 생활을 권고하셨읍니까? (ㄴ) ‘바울’도 독신 생활의 어떤 장점에 주의를 환기시켰읍니까?
13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자기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하라고 주신 일, 곧 하나님의 이름을 입증하고 인류를 위해 대속물을 마련하는 일에 온 마음을 바쳐 전념하셨읍니다. 그는 결혼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된 고자도 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또한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이러한 독신 생활을 격려하셨읍니다. (마태 19:10-12) 그의 사도인 ‘바울’도 마찬가지로 정신을 헷갈리지 않고 “주의 일”에 전념하도록 독신 생활을 권장하였읍니다. 독신 생활은 자유가 더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것이 결혼 생활보다도 잇점이 더 많다고 ‘바울’은 설명하였읍니다.—고린도 전 7:32-35.
14. (ㄱ)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 예수와 ‘바울’의 충고를 참으로 따르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어떠한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까? (ㄴ) 어떤 독신자들은 자기들의 독신 상태를 어떻게 가장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읍니까?
14 아마 당신은 독신자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당신이 바로 예수와 ‘바울’의 교훈을 따른다는 증거입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즉, 당신은 독신 상태에서 무엇을 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당신의 자유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 자유를 ‘바울’이 말한 대로, 주의 일을 염려하며 물질적인 것보다는 영적인 것들을 더 염려합니까? (고린도 전 7:35) 당신은 주의 깊이 성서를 공부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함으로써 영적 건강을 유지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영적 복지에 기여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맺도록 돕고, 또한 이 점에 있어서 자신이 본을 보이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회중을 위하여 무슨 봉사를 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회중 밖에 있는 사람들 곧 인류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 무슨 봉사를 하고 있읍니까? 현재 어떤 독신자들은 지방회중 내에서 훌륭한 봉사를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세계 각처 ‘왙취 타워 협회’의 ‘벧엘’에서 봉사하고 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이오니아’로서 전 시간 활동을 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먼 나라에 가서 선교인으로 봉사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에 전념함으로써,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독신 생활을 받을 만한 자’임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그들은 풍성한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조금도 후회할 것이 없읍니다.
결혼 생활과 부모 신분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
15. 결혼한 부부들은 어떻게 하여 자신이 위대하신 선생님의 충실한 제자들임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5 여호와의 증인들 가운데는 기혼자도 많이 있읍니다. 이들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위대하신 선생님의 참 제자가 되지 못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의 사도들 가운데도 결혼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9:5) 여기서도 문제는 그들이 결혼 상태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혼자들은, 지방 회중에서, ‘벧엘’에서, 훌륭한 봉사를 하고 있으며, 외국에서의 봉사를 포함한 복음 전파 활동에 훌륭한 봉사를 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대한 봉사의 생활로,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그리고 인류 세상에 사는 양같은 사람들에게 연민을 나타내어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는 일로 자신이 참 제자임을 나타냅니다.—빌립보 2:12-16.
16. 예수께서는 자녀를 가지는 것과 제자 신분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셨읍니까?
16 이들 기혼자들 간에는 자녀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없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자녀를 가지는 것은 독신자들이나 결혼했어도 자녀가 없는 사람들에 비해 위대하신 선생님의 참 제자가 되는 점에 뒤떨어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친히, 그리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독신 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유리하다고 설명하셨읍니다. 그러나 결혼한 사람들이 자녀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맞기셨고, 어느 한편으로 노력하라고 권고하지 않으셨읍니다.
17. (ㄱ) 그러면, 마태 24:19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ㄴ) 그러나 그러한 여자들은 무엇을 경계해야 합니까?
17 그러나, 예수께서 큰 환난에 관한 예언 가운데서, “그 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 24:19)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것은 그 예언이 1차적으로 적용될 때에, ‘예루살렘’ 도시와 ‘유대’ 지방이 환난을 당하게 되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다가오는 멸망을 피하려면 그 지방으로부터 외부에 있는 산악지방으로 도망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지체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고 위험하였읍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 여인이 출발을 늦추고 있다가 거기서 도망해 나갈 시간 여유가 거의 없게 되었는데 임신하였다든가 젖먹이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되었겠읍니까? 그런 사람들은 입장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적 성취에서는 실제 도시나 어느 지역에서 실제 산으로 실제 도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도망, 곧 실체적 ‘예루살렘’인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교국이 속해 있는 상징적 큰 ‘바벨론’으로부터 완전히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다가오는 환난에서 멸망당할 운명에 처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예언의 더 큰 성취에 있어서도 소식은 마찬가지입니다. 즉 실체적인 ‘예루살렘’ 곧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떠나는 일을 지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하는 데는 지리적인 의미로 실제로 이동할 필요는 없읍니다. 실제 여행을 할 필요는 없으므로, 이 점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교국과 기타 큰 ‘바벨론’으로부터 영적으로 떠날 때에 임신한 여자들이나 유아를 거느린 여자들이 특별히 더 불리할 것은 없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족적인 일에 몰두되어 여호와와의 선한 관계를 배양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면 그것은 별도의 문제입니다. 그러한 여자들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는 이것입니다. ‘위험 지구에서 영적으로 도망하는 일을 지체하지 말라. 만일 기다리다가는 장래에 예기치 못한 어떤 환경 때문에 도망하는 일이 훨씬 어렵게 될지도 모른다’ 하는 것입니다.
18. (ㄱ) 성경 전체를 통하여 부모라는 신분을 어떻게 보았읍니까? (ㄴ) 이것은 가족을 거느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수행하는 모든 형태의 봉사를 즐길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ㄷ) 환경 여하에 관계 없이, 우리는 모두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대한 봉사를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18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하였읍니다. (시 127:3-5) 이 말씀은 지금도 적용됩니다. 부모라는 신분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존귀한 것으로 설명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대하신 선생님께서도 그 존귀함을 손상시키는 말씀을 하신 일이 전혀 없읍니다. 그렇지만, 장거리 여행이나 장시간의 전도 활동 또는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장시간 가르치는 일 등이 포함된 사도 ‘바울’이 행한 바와 같은 특별한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면, 돌보아야 할 대가족을 거느린 사람으로서는 그러한 일을 감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그리스도인 당사자들이 입장을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봉사 중 어느 분야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인지, 또는 자기 환경으로 보아 어느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는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일을 원하든지, 현재 어떠한 환경이든지, 혹은 앞으로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위대하신 선생님의 참되고 충실한 제자가 될 것입니다.—누가 10:27.
당신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음
19. 부모라는 신분은 특권이지만 거기에는 무엇이 따르는지 설명하십시오.
19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권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무거운 책임이 수반되며, 그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아기가 출생함과 동시에, 어느 아버지가 말한 바와 같이 “20년 계획” 곧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기르는 일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용이한 과제가 아닙니다. 한 아이를 돌보고, 깨끗하게 유지시켜 주고, 의식주를 마련해 주고, 해를 받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아플 때 보살펴 주고, 학비를 조달해 주는 등의 일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과 노동력을 모두 계산하기는 정말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세계 상태—범죄의 증가, 청소년 범죄, 불안정한 경제 상태—를 생각하면, 결혼한 사람들이 자녀를 기르는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20. 아이를 신체적으로 양육하고 교육을 받도록 해 주는 것만으로 부모의 책임을 완수했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현 세상의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몸을 돌보아 주고, 교육을 통하여 정신능력을 발전시켜 주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은 그것으로 완전히 끝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위대하신 선생님의 제자들은, 아이의 정신이 부패하고, 마음이 참되거나 의롭지 않다면, 아이가 건강한 몸으로 자라는 것이나 지적으로 훌륭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자기의 자녀가 인생을 훌륭하게 출발하기를 성실하게 원하는 부모라면, 근시안적으로 이 점을 도외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21. (ㄱ) 자녀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그들의 부모가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합니까? (ㄴ) 세속 습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에 관하여 자녀들과 얼마나 자주 토론할 필요가 있읍니까?
21 부모 여러분, 여러분은 책임을 이행하고 있읍니까? 여러분은 자녀들로 제자를 삼고 있읍니까? 여러분은 그들을 위대하신 선생님에게로 인도하여 그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를 배우도록 하십니까? (누가 18:15, 16) 여러분 부모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저절로 제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그들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조만간 아이들은 가정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웃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아이들과 접촉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아이들에게서 위대하신 선생님에 대하여 배우겠읍니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읍니다. 그들은 누추한 말을 하는 사람들,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될 것이며, 행실이 나쁜 사람들, 하나님의 영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일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대비하여 자녀를 준비시켰으며, 아이들이 그러한 것에 물들지 않고 저항할 수 있도록 필요한 영적 힘을 갖추도록 도와 주었읍니까? ‘이러한 위험성에 대하여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해 주었읍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그렇게 하였읍니까? 한번? 두번? 혹은 서너번입니까? 그 자녀가 이러한 영향을 한번, 두번 혹은 서너번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거듭 거듭 당하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만일 그 아이가 이러한 매일의 압력을 이겨내고 거기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그 압력에 필적할 만한 영적 견해와 힘을 항상 새롭게 공급해 줄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한 도움을 베푸는 부모는 사랑이 있는 부모입니다.
22. 학교에서 당하는 시험을 대처하도록 아이들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읍니까?
22 아마 여러분의 자녀들은 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하여 듣게 될 것이며, 그들은 국가주의 정신을 나타내도록 압력을 받게 될 것이며, 그들은 거짓 종교의식이나 이교에서 유래한 기타 축제에 참여하도록 유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이러한 시험에 대처하고 위대하신 선생님과 그의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킬 준비가 되어 있읍니까? 여러분은 이 점을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켜 주었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학교에서 이러한 일을 당하였는데 그 일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당황하고 놀라거나 아마 자신도 그릇됨을 알고 있는 어떤 일을 범한 나머지 울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읍니까? 이러한 일이 어린 아이를 얼마나 당황케 하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에게 자비를 보이십시오. 여러분은 자녀들이 장차 어떤 문제를 틀림없이 당할 것인가를 알 수 있을만큼 인생에 경험을 쌓았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아이에 대하여 원하시는 바를 그가 이해하도록 자녀를 도와 주십시오. 다른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라는 것을 인식하고자 하는 열의를 그들 속에 길러 주십시오.—잠언 29:25; 시 119:11.
23. (ㄱ)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떠한 점에 있어서 세속적 지혜에만 의지하는 자들보다 유리합니까? (ㄴ) 인생을 성공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아이들에게는 무엇이 필요하며, 언제부터 그렇습니까?
23 위대하신 선생님의 제자들인 여러분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세속적 지혜에만 의지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유리한 입장에 있읍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주고 있는 지혜와 위안과 격려가 없읍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를 위한 공급자로서, 보호자로서, 교육자로서, 그리고 훈련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에 하나님의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의식주를 마련해 주고 학교에 보내 주는 것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대처하려면 도덕적 지침과 생활상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읍니다. 만일 그들이 필요한 지도와 보호를 받으려면 어렸을 때부터 배울 필요가 있읍니다.
24. 「잠언」에서는 적절한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어떻게 강조하고 있읍니까?
24 하나님에 말씀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줍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반면에, 그 말씀은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고 말해 줍니다. (잠언 29:15; 17:25) 미련은 지혜의 반대입니다. 부모들이 자녀를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를 가지고 계시는 위대하신 선생님께 인도하는 일에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서 아이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지각없고 어리석은 행로를 가게 된다면, 부모들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자녀가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 혹은 그가 어렸을 때 그러한 도움을 받지 못할 경우에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날 수 있으며, 또 일어나고 있읍니다.
[252면 삽화]
가끔 사람들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는 것이 독신 생활에 대한 예수의 충고를 따른다는 증거인가? 당신의 생활에서 참으로 더 큰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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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녀의 신체적 발달을 돌봐주고 학교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의 정신과 마음을 의로운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