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97 2/15 30-31면
  • 니네베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니네베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7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7
파97 2/15 30-31면

니네베

니네베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인 니므롯이 설립한 아시리아의 도시이다. 르호보딜, 갈라 및 레센과 함께 “큰 성”을 이루고 있었다. (창세 10:9, 11, 12; 미가 5:6) 이로부터 훨씬 후에, 이 도시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이 때 니네베는 “피 성”이었다. (나훔 3:1) 아시리아인들이 정복을 위해 많은 전쟁을 벌이면서, 포로로 잡은 적군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틀림없이 군사 원정으로 크게 부하였을 것이다. (나훔 2:9) 니네베 사람들이 섬긴 주된 신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였던 것 같다.

고고학적 조사. 이라크 북부에 있는 모술의 맞은편, 티그리스 동편 강둑에 있는 두 개의 둔덕 쿠윤지크와 네비유누스(“예언자 요나”)가 바로 옛날에 이 큰 성 니네베가 있던 곳이다. 네비유누스는 묘지와 이슬람 사원이 있는 한 현대 마을이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에사르하돈의 궁전을 뒤덮고 있는 이 언덕은 거의 조사를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쿠윤지크에서 행해진 발굴로 니네베의 과거의 영광을 증명해 주는 많은 사실이 밝혀졌다. 발견된 것들 가운데는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에서 나온 수천 개의 설형 문자판과 센나케리브(산헤립)의 궁전 유적과 아슈르바니팔의 궁전 유적이 있다. 이 궁전들은 인상적인 건축물이었다. 오스틴 레이어드 경은 자신이 발견한 것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아시리아 궁전의 실내 장식은 인상적인 것 못지 않게 웅장했음에 틀림없다. 나는 조교수를 데리고 그 유적을 돌아보았는데, 그는 옛날에 아시리아 왕의 거처에 처음으로 들어간 이방인이 그 궁전의 홀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을 것인지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하얀 설화 석고로 만든 거대한 사자나 황소가 지키고 있는 정문으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첫 번째 홀에 들어서자 그는 자신이 아시리아 제국의 조각된 기록에 둘러싸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전쟁, 포위 공격, 승리, 추격하여 세운 공, 종교 의식 등이 벽에 묘사되어 있는데, 설화 석고로 조각되어 화려한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조각된 각각의 그림 밑에는 그림이 나타내는 장면을 묘사하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글자 속에 번쩍이는 구리를 채워 넣었다. 조각된 그림 위에는 다른 사건이 그려져 있었는데, 예를 들면, 환관과 군사를 거느린 왕이 포로들을 맞이하는 장면, 다른 나라 왕들과 동맹을 맺는 장면, 모종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장면 등이다. 이러한 그림들에는 색깔 있는 테를 둘러 정교하고 우아한 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러한 장식 무늬 가운데서는 상징적으로 그린 나무, 날개 달린 황소, 괴물 같은 짐승이 특히 눈에 띄었다. 홀의 맨 위쪽에는 최고의 신 앞에서 숭배를 드리는, 혹은 환관에게서 신성한 잔을 받는 왕의 모습이 대단히 크게 그려져 있었다. 왕의 옆에서는 왕의 무기를 들고 있는 전사들과 제사장들 혹은 주재하는 신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왕과 그의 신하들의 옷에는 인물, 동물, 꽃들이 집단적으로 어우러져 무늬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화려한 색깔이 칠해져 있었다.

궁전에 들어온 그 이방인이 밟고 서 있는 설화 석고판에는 각각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위대한 왕의 칭호와 족보와 업적이 기록되어 있었다. 날개 달린 거대한 사자나 황소 모양, 또는 수호신상 모양으로 생긴 출입구가 여러 개 있는데 그리로 들어가면 다른 방이 나오고, 그 방을 통과하자 안쪽에 또 홀이 나타났다. 각 홀에는 새로운 것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일부 홀의 벽에는 대단히 크게 그려진 인물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왕의 뒤를 따르는 무장한 군사들과 환관들, 전리품을 잔뜩 걸머지고 포로들을 끌고 가거나 예물을 가져다가 신들에게 바치는 전사들 등이다. 다른 홀의 벽에는 날개 달린 제사장들이나 주재하는 신들이 신성한 나무 앞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 이방인의 머리 위 천장은 정사각형 칸으로 나뉘어, 꽃이나 동물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어떤 칸들에는 상아가 박혀 있었는데, 칸마다 우아한 테나 쇠시리를 둘렀다. 방들은 들보뿐 아니라 측면에도 금박을 입혔거나 혹은 심지어 금은으로 판금을 한 것 같으며, 목조 부분에는 매우 희귀한 나무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삼나무가 눈에 띄었다. 방들의 천장에 난 정사각형 구멍을 통해 낮의 햇빛이 들어왔다.”—「니네베와 그 유적」(Nineveh and Its Remains), 1856년판, 제2부, 207-209면.

요나 시대. 기원전 9세기에, 여호와의 예언자 요나는 니네베 주민들의 악함 때문에 그 도시에 멸망이 임박하였음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왕을 비롯하여 그 도시의 백성이 회개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 도시를 용서하셨다. (요나 1:1, 2; 3:2, 5-10) 그 당시 니네베는 “삼일길”이나 되는 큰 도시였다. (요나 3:3) 그 도시의 인구는 12만 명이 넘었다. (요나 4:11) 고고학적 증거도 성서의 이러한 묘사를 부정하지 못한다. 프랑스 국립 박물관장인 앙드레 파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옛날에 런던의 경계를 이루었던 부분과 오늘날 ‘그레이터런던’—런던 교외가 포함된 훨씬 더 큰 지역을 나타내는 용어—이라고 부르는 곳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아시리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살던 지역도 ‘니네베’란 말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그 곳은 ‘아시리아 삼각 지대’로 알려져 있는데 ·⁠·⁠·, 북쪽의 코르사바드에서 남쪽의 님루드까지 뻗어 있는, 길이가 약 42킬로미터나 되는 지역에 부락이 거의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

펠릭스 존스는 니네베의 인구가 약 17만 4000명이었을 것으로 추산하였으며, M. E. L. 맬로완은 아주 최근에 님루드를 발굴하면서 아슈르나시르팔의 석비를 발견하였는데, 그 석비에는 그가 연회에 6만 9574명이나 되는 엄청나게 많은 손님을 초대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맬로완은 외국에서 온 손님을 감안하더라도 칼라(님루드)의 인구가 6만 5000명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니네베의 면적은 님루드의 두 배나 되므로, 요나 4:11의 숫자가 틀리지 않았음이 간접적으로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니네베와 구약」(Nineveh and the Old Testament), 1955년판, 85, 86면.

예언을 성취시킨 니네베의 멸망.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가 전파한 소식을 듣고 회개하긴 하였지만(마태 12:41; 누가 11:30, 32),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 다시 악한 길에 빠졌다. 아시리아 왕 센나케리브가 니네베에 있는 자기 신 니스록의 집에서 살해당한(열왕 하 19:36, 37; 이사야 37:37, 38) 지 몇 년 후에 나훔(1:1; 2:8-3:19)과 스바냐(2:13-15)는 그 악한 도시가 멸망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바빌론 왕 나보폴라사르와 메디아의 키악사레스의 연합군이 니네베를 포위 공격하여 점령하였을 때 그들의 예언은 성취되었다. 그 도시는 불에 탄 것이 분명한데, 아시리아의 많은 부조(浮彫)가 불과 그에 따른 연기로 손상된 모습과 타거나 그슬린 흔적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바빌론 연대기에서는 니네베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렇게 보고한다. “그들은 그 도시와 신전에서 막대한 양의 전리품을 탈취해 갔고, 그 도시를 폐허더미로 [만들었다].” (「아시리아와 바빌론 연대기」[Assyrian and Babylonian Chronicles], A. 그레이슨 저, 1975년판, 94면) 오늘날까지 니네베는 황무지로 남아 있고, 봄이 되면 짐승 떼들이 쿠윤지크 언덕 위나 그 근처에서 풀을 뜯는다.

니네베가 멸망된 날짜. 니네베의 멸망에 대해 기술하는 현존하는 설형 문자판에서 그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지워 없어지긴 했지만, 문맥을 통해서 그 날짜 즉 나보폴라사르 통치 제14년을 알아낼 수 있다. 또한 성서 연대기의 흐름 속에서 니네베의 멸망을 알아낼 수도 있다. 한 바빌론 연대기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이 카르케미시(갈그미스)에서 패한 것은 나보폴라사르 통치 제21년이었다. 성서에서는 이 사건이 여호야김 통치 제4년 즉 기원전 625년에 발생하였다고 알려 준다. (예레미야 46:2) 그러므로 나보폴라사르 통치 제14년에 있었던(약 7년 전에 있었던) 니네베의 점령은 기원전 632년에 있었을 것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