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연구 노트—6장
주 안에서: 일부 사본에는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지만, 이 표현을 포함시키는 것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바울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을 인용한 것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존중하는 것이 모세 율법의 요구 조건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출 20:12; 신 5:16) 이것이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었던 이유는 그 계명을 따를 때 잘되고 오래 살 것이라는 구체적인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엡 6:3.
화나게 하지 말고: “화나게 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분노를 일으키다”로 직역할 수 있다. 이것은 부모가 불완전해서 자기도 모르게 자녀를 화나게 할 수 있는 사소한 경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여기서 화나게 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마음 내키는 대로 성급하고 거칠게 대함으로, ··· 자녀가 부모에게 반발하여 반항하고 반감을 품게 만드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골 3:21 비교.
여호와의 징계와 훈계: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음, 영혼, 힘을 다해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고 교훈하면서 그들이 자녀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신 6:5-8)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그분의 종들을 징계하시는 분으로 묘사한다.—신 11:2; 잠 3:11, 12; 히 12:6.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엡 6:4 참조.
징계: “징계”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이데이아는 “아이”를 의미하는 파이스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성경에 나오는 “징계”라는 말의 한 가지 부면은 자녀를 양육하는 데 필요한 것과 관련이 있다. 자녀에게는 교훈, 교육, 시정이 필요하며,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사랑에 찬 방식으로 벌을 주어야 한다.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책임감 있게 살아가도록 지도하는 것, 양육하는 것, 훈련하는 것, 가르침”으로 정의한다.
훈계: 또는 “교훈; 인도; 훈련”. 직역하면 “생각을 심어 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테시아는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기본적으로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가 결합된 것이다.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자녀가 사물에 대한 하느님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 아버지는 자녀에게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을 심어 주어야 한다.
주인: 직역하면 “육체인 주인”. 여기서 바울은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권고한다.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들의 주인들은 하늘에 더 높은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엡 6:9.
단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누가 보고 있을 때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직역하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인 종은 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그가 있을 때만 순종적으로 행동하거나 열심히 일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영혼을 다해” 일해야 했다.—엡 6:5-8; 골 3:22-25.
영혼을 다해: “영혼을 다해”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과 골 3:23에 두 번 나온다. 여기서 “영혼”은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을 포함한 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마음을 다해”로 번역한다. 따라서 영혼을 다해 섬긴다는 것은 신체적, 정신적 기능과 힘을 최대한 사용해,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쳐 또는 생명 전체를 사용하여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신 6:5; 마 22:37; 막 12:29, 30.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하듯이: 문맥을 보면 바울은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권하고 있다. (엡 6:5) 그들은 ‘영혼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주인을 섬겨야 한다. (엡 6:6) 바울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이 주인에게 순종하고 존중심을 보이면 “하느님의 이름”에 모독이 돌아가지 않게 될 것이었다. (딤전 6:1) 바울은 에베소서와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진 골로새서에서도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에게 비슷한 교훈을 한다.—골 3:22-24. “에베소서 소개” 참조.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엡 6:7 참조.
자유인: 용어 설명 “자유인; 자유를 얻은 사람” 참조.
여호와로부터 그대로 되돌려받으리라는: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그분의 충실한 종들이 선한 일을 하면 상을 주시는 분이라고 묘사한다. 그러한 예를 룻 2:12; 시 24:1-5; 렘 31:16에서 볼 수 있다. 예수께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그런 분으로 묘사하신다.—마 6:4; 눅 6:35.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엡 6:8 참조.
교활한 행위: 또는 “계략”. 여기서 “교활한 행위”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두 번밖에 나오지 않으며 모두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사탄 마귀가 여호와의 종들을 덫에 걸리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간교한 책략과 전략을 가리킨다. 엡 4:14에서는 “교활한 속임수”라는 표현 가운데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온전한 갑주: 이 표현은 그리스어 파노플리아를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보병이 전투에서 사용하는 방어용 장비와 공격용 장비를 모두 가리키는 말이다. 바울은 로마 군인의 모습을 보면서 갑주의 여러 부분을 자세히 묘사하는 이 비유를 생각해 낸 것 같다. (엡 6:13-17) 바울은 로마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그러한 갑주를 입고 있는 로마 군인을 보았을 수 있다. 특히 그가 로마에 도착해서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 근위대 병영에서 그러한 군인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행 27:1; 28:16)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갑주는 오직 하느님께서 주실 수 있는 영적인 갑주이다. 그리스도인은 육적인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엡 6:12. 용어 설명 “갑주” 및 미디어 갤러리 “로마 군인의 갑주” 참조.
싸우고: “싸우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원래 운동 경기 종목의 하나인 “씨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영들을 상대로 개별적으로 싸우고 있다는 사상을 전달하는 데 사용되었다. 문맥을 보면 그리스도인의 영적 싸움과 비유적인 갑주가 언급되고 있으므로,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두 가지 종류의 싸움, 즉 씨름과 군인의 전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엡 6:11-18) 그처럼 씨름과 전투를 연관 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대의 전투 중에는 적과 직접 맞붙어 싸우는 일이 있기도 했고, 뛰어난 군인들은 씨름을 잘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에서도 군인의 비유와 운동선수의 비유를 함께 언급했다.—딤후 2:3-5.
이 어둠의 세상 통치자들: 바울은 이 “세상 통치자들”을 악한 영의 세력들 즉 사탄과 그의 악귀들과 연관 짓는다. (요 12:31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의 목적은 인류가 여호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빛에서 멀어진 채 영적 어둠 속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세상 통치자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코스모크라토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서 헤르메스와 같은 신화 속의 신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하늘에 있는: 여기서 이 표현은 ‘공기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인 사탄이 인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영역을 가리킨다.—엡 2:2.
진리의 허리띠: 고대의 군인들은 전투에 나갈 준비를 할 때 허리띠를 둘렀다. (사 8:9, 각주) 따라서 “허리띠를 두르다” 또는 “허리를 동여매다”라는 표현은 “어떤 활동을 할 준비를 하다”를 의미하는 관용구로 쓰였다. (눅 12:35; 17:8 연구 노트 참조) 그러므로 바울이 갑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허리띠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로마 군인들은 가죽으로 된 넓은 허리띠를 둘렀다. 그 허리띠에는 띠를 장식하고 단단하게 해 주는 금속판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허리띠를 단단히 조이면 전투 중에 안정된 자세로 싸울 수 있었다. 허리띠에는 앞치마 모양으로 된 가죽끈들이 달려 있어서 군인의 몸의 중심부를 보호해 주었다. 허리띠가 군인의 몸을 지탱하고 보호해 주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밝혀 주시는 진리에 굳게 고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시련을 겪을 때 굳건히 서 있게 해 준다. 로마 군인들은 흔히 허리띠에 칼을 찼는데, 고리를 이용해 칼을 걸어 두었다. (엡 6:1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의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이 항상 영적인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진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 진리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면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엡 4:13, 14; 딤전 2:3-7.
의의 흉갑: 기원 1세기의 로마 군인들은 몸을 보호하는 여러 가지 장비를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한 흉갑의 한 가지 형태는 가로로 긴 철판들을 위아래가 조금씩 겹쳐지게 해서 가죽에 부착한 것이었다. 이 철판들은 고리와 끈과 고정 장치로 부착되어 있었다. 그러한 흉갑은 중요한 장기, 특히 심장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다.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 역사가 폴리비오스는 이 흉갑을 “심장 보호 장비”라고 불렀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유적인 심장인 마음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전 5:8 비교) 금속으로 된 흉갑이 화살이나 칼로부터 군인의 심장을 보호해 주었듯이, 하느님의 의로운 원칙과 표준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비유적인 심장 즉 마음을 보호해 준다. (시 119:97, 105; 잠 4:23) 불완전한 인간은 죄로 향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항상 그러한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다. (렘 17:9)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의를 갑옷처럼 입고 계시는 것으로 묘사한다.—사 59:15, 17.
준비의 신을 신고: “준비의 신을 신고”라는 표현은 “장비로 신을 신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군인은 전투에 나가기 전에 발을 보호해 주는 장비인 신을 신었다. 바울은 군인이 그처럼 신을 신고 있는 모습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이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항상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사 52:7; 롬 10:14, 15; 벧전 3:15) 1세기의 로마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발목이 높고 바닥이 세 겹의 가죽으로 되어 있는 샌들과 비슷한 신을 신었다. 바닥에는 금속으로 된 징이 박혀 있었다. 이 튼튼한 신발은 지형이 험한 곳을 걸을 때에도 발을 잘 지지해 주었다.
믿음의 큰 방패: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큰 방패”라는 그리스어는 “문”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사용하던 방패는 바깥쪽으로 볼록한 직사각형 형태였으며 어깨부터 무릎까지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컸다. 그러한 방패는 주로 합판의 한 종류에 가죽을 덮어 만들었다. 가장자리는 금속으로 둘렀으며 가운데에는 금속 장식을 달았다. 군인은 그러한 방패를 사용해서 적군의 다양한 무기나 화살로부터 몸을 보호할 수 있었다. 바울이 사용한 비유는 그리스도인이 강한 믿음, 즉 여호와와 그분의 약속에 대한 굳은 확신과 신뢰가 있으면 다양한 시련에 맞설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히 11:1.
불화살: “화살”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투척 병기; 표창”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고대 전쟁에서는 화살이나 투척 병기에 불을 붙여서 적을 향해 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하는 데는 나프타 연료가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 군인은 그러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사용했을 것이다. 바울의 비유를 볼 때 그리스도인에게 믿음이 있으면 악한 자 즉 사탄의 “불화살” 다시 말해 그의 영적 공격을 모두 물리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보았으며 사탄이 다양한 계략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후 2:11) 사탄의 비유적인 화살에는 부도덕이나 물질주의의 유혹 그리고 두려움이나 의심으로 인한 감정적 압박이 포함된다. (롬 8:15; 골 3:5, 6) 여호와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으면 어떤 공격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 다시 말해 어떤 불화살도 끌 수 있다.—벧전 5:8, 9.
구원의 투구: 로마 군인의 투구는 그의 머리와 얼굴과 목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바울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을 투구에 비한다. (살전 5:8) 투구가 머리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그의 정신 즉 사고력을 보호해 준다. 사탄은 이기심, 증오, 불충성스러운 태도와 같은 것들을 통해 교묘하게 정신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그리스도인은 비유적으로 말해서 희망을 투구처럼 씀으로, 즉 그리스도인 희망에 초점을 맞춤으로 자신의 생각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든 물리칠 수 있다. (막 7:20-22; 고후 4:4; 계 12:9) 또한 사탄은 그리스도인에게 직접적인 박해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원의 희망은 그리스도인이 매우 힘겨운 상황에서도 기쁨을 유지하게 해 준다. (사 12:2; 마 5:11, 12)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구원 즉 승리를 투구처럼 쓰고 계신 것으로 묘사한다. (사 59:17; 각주)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고 승리하겠다는 자신의 뜻을 결코 잊지 않으신다.—렘 29:11.
영의 칼: 칼은 로마 군인이 사용한 가장 중요한 무기 중 하나였다. 바울이 비유 가운데 언급한 공격용 무기는 칼뿐이다. (엡 6:14-17) 이 구절에서 “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적어도 한쪽에 날이 서 있는 짧은 칼을 가리킬 수 있다. 로마 군인들이 사용한 칼은 적과 맞붙어 싸우는 데 적합한 양날검이었다. 칼의 길이는 다양했지만 일반적으로 60센티미터가량 되었다. 대개 칼자루의 끝에는 칼이 손에서 쉽게 빠져나가지 않도록 돌출된 부분이 있었다. (미디어 갤러리 “로마 군인의 칼” 참조) 많은 군인들은 칼을 더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 매일 칼을 쓰는 훈련을 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러한 칼과 같다. 그 말씀은 그들이 영적 전쟁을 벌일 때 사용하는 주된 무기이다. (딤후 2:15)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다. (벧전 3:15 비교) 그들은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영적으로 속박하는 거짓 가르침을 폭로하기 위해 성경 진리를 능숙하게 사용한다. (요 8:32; 17:17; 고후 10:4, 5) 군인이 칼을 적의 공격을 막아 내는 방어용 무기로도 사용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거짓 선생들의 속임수와 잘못된 일을 하게 만드는 유혹으로부터 정신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사용한다.—마 4:1-11; 딤후 3:16.
모든 형태의 기도: 바울은 “온전한 갑주”에 대해 논의한 다음 꼭 필요한 요소 한 가지를 덧붙인다. (엡 6:11, 14-17) “기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하느님께 숭배의 일부로 말씀드리는 것은 무엇이든 가리킬 수 있는 폭넓은 단어이다. “모든 형태의”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을 볼 때 감사의 기도, 찬양의 기도, 회개의 기도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기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간구는 열렬한 마음으로 간절히 하느님께 청하는 것을 가리킨다. (행 4:31 연구 노트 참조) 상황이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기도와 간구를 드릴 수 있다.
모든 경우에: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식사 때와 같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경우도 있고 갑작스러운 필요에 의해 기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처럼 늘 기도하는 것은 여호와와의 관계를 강화해 준다.
나는 좋은 소식을 위해 쇠사슬에 매인 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를 쓸 당시 로마에 감금되어 있었다. (엡 3:1; 4:1) 그래서 그는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대사”라고 한 것이다. 성경에서 대사란 통치자에 의해 특별한 때에 특정한 목적을 위해 파견되는 공식 대표자를 가리킨다. 바울은 하느님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대사의 한 사람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화해하는 것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고후 5:20 연구 노트 참조.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또는 “말의 자유를 가지고 말할 수 있도록”. 로마에 감금되어 있던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말한다. (엡 6:19) 여기서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동사 파레시아조마이의 한 형태를 번역한 것이다. 사도행전에서는 바울이 감금되어 있는 동안에도 “방해받는 일 없이 아주 담대하게” 하느님의 왕국을 계속 전파했다고 알려 준다. (“담대하게”는 파레시아조마이와 어근이 같은 명사 파레시아의 한 형태를 번역한 것이다.) (행 28:30, 31) 그 점을 볼 때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위해 한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담대함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한 전파 활동의 특징이었다.—행 4:13, 29. 행 28:31 연구 노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