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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코홀’ 음료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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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코홀’ 음료는 어떠한가?
  • 깨어라!—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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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싼 대가
  • ‘알코홀’ 중독
  • 건강을 해친다.
  • 중독자가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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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1
깨71 9/22 7-11면

‘알코홀’ 음료는 어떠한가?

당신은 근년에 와서 ‘헤로인’과 같은 환각제의 사용에 관하여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당신은 그 문제가 증대되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많은 나라에서 ‘알코홀’ 음료의 과도한 사용이 마약 사용이 야기시키는 문제보다 약 10배의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을 알고 있는가? 세계적인 견지로 볼 때 ‘알코홀’ 중독은 마약의 남용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아마 당신은 과음하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당신의 남편이거나 아내 혹은 매우 가까운 친구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무도 당신에게 그것이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환각제 사용만큼 많은 신문의 표제가 되지는 않을지라도 분명히 ‘알코홀’ 문제는 감소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는 약 7백만명의 ‘알코홀’ 중독자가 있다. 이것은 단지 지난 몇년 동안에 수백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천 오백만명 이상이 어느 정도 ‘알콜홀’에 의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보건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알코홀’ 중독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된 중독이다.” 젊은이들에게 있어서도 과음은 마약 사용보다 훨씬 더 큰 문제이다.

‘프랑스’의 상태는 놀라운 정도이다. 「뉴스위크」지는 이렇게 논평하였다. “의사와 사회 사업가와 경찰에 의하면 ‘알코홀’ 중독은 ‘프랑스’의 가장 큰 국내 문제이다.” 평균 ‘프랑스’인들은 어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은 ‘알코홀’—성인이 일년에 마시는 포도주는 약 65‘갈론’—을 소비한다.

일반적으로 공산국가에서도 ‘알코홀’ 중독은 또한 가장 심각한 국내 문제이다.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가 없다. 「피지산 알코홀 뉴스레터」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바하마’에서 ··· ‘알코홀’ 중독자는 제일 첫째가는 보건상의 문제이다.”

비싼 대가

‘알코홀’ 중독의 대가는 매우 비싸다. 그리고 비단 술의 값만 비싼 것이 아니다.

매년 미국에서 50,000명 이상의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 중에 약 30,000명은 음주 후 운전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것은 월남 전쟁에서 어느 한해에 사망한 미국인 수의 여러 배에 해당한다.

‘프랑스’에서 공업적 사고의 60‘퍼센트’는 ‘알코홀’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에서 무단 결근과 근무 태만으로 인한 연간 40억불 이상의 결손을 입게 하고 있다. ‘알코홀’은 모든 다른 질병을 합한 것보다도 취업시간 상의 손실을 주는 더 큰 요인이다.

사고로 인한 사망과 부상 그리고 취업 시간 손실에 있어서의 비싼 대가에 대하여 과음이 초래하는 또 다른 비참한 대가가 있다. ‘알코홀’을 절제없이 취하는 남편이나 아내는 보통 가족의 다른 성원들에게 심한 고통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프랑스’의 한 판사는 이혼을 모색하는 아내들의 가장 보편적인 불평은 남편의 술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비극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알코홀’ 중독

과음이 초래하는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 ‘알코홀’이 단순한 음료가 아님은 명백하다.

‘알코홀’은 중추 신경 조직이 쇠약해지도록 작용함으로써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 소량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다량은 판단력과 이성에 (거의 언제나 나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친다. 계속적인 음주는 팔다리와 기타 신체 기관의 조절을 요구하는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과음은 호흡과 같은 자동적인 작용에까지 해를 미친다.

특별한 경우에 술을 마신 어떤 자는 방금 기술한 대부분 혹은 모든 반응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를 ‘알코홀’ 중독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중독자인가? 어떤 사람이 습관적으로 음주를 하며 그것을 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는 ‘알코홀’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그가 ‘알코홀’의 ‘필요성’을 느끼며 스스로 참을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는 ‘알코홀’ 중독자가 되고 있는 도중이거나 이미 중독된 사람이다.

첫째로 중독은 심리적일 수 있다. ‘알코홀’ 중독자는 생활을 대처해나가기 위하여 그리고 단순히 그 결과를 즐기기 위하여 마셔야만 한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랫 동안 마신 후에는 신체적으로 인이 박히게 된다. 신체 조직은 실제로 ‘알코홀’에 의존하게 되며 ‘알코홀’을 마시지 않을 경우에는 심한 신체적 위축 증세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알코홀’에 의지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끊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알코홀’ 중독자인 것이다. 아마 그는 조만간 매우 서서히 그의 전 생활이 음주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지경에까지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가족 관계와 생활비를 버는 능력 및 건강을 해치게 될 것이다.

건강을 해친다.

일부 권위자들은 과음으로 인한 신체적인 결과가 ‘헤로인’의 사용으로 인한 결과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 수명 연장 협회의 의학 이사인 ‘해리 존슨’ 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심한 ‘알코홀’ 중독과 만성 ‘알코홀’ 중독으로 인한 신체의 위축으로 말미암은 사망의 가능성이 ‘헤로인’의 정량초과와 ‘헤로인’의 중독으로 인한 신체의 위축으로 말미암은 사망의 가능성보다 훨씬 더 많다.”

신체적인 위축 증세에는 메스꺼움, 환각, 심한 흥분과 동요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죽음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증세는 “섬망증”이라고 부르는 것의 일종이며 이것은 20‘퍼센트’의 사망률을 가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오랫 동안 ‘알코홀’에 중독된 사람은 마실 때 떠드는 것이 보통이다. ‘알코홀’ 중독자는 취한 상태로 여러 날을 지나게 된다. 그는 심한 영양 실조에 걸리게 되며 종종 불결하게 되며 자신을 가눌 수 없게 된다. 그는 간장이나 뇌 혹은 기타 신체적인 상해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사고로 죽을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죽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그는 중독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몸에서 ‘알코홀’기가 제거되고 어느 정도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도록 충분히 오랫 동안 음주를 중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뇌와 간장이 상한 것과 같은 어떤 경우는 회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공식적인 숫자는 1969년 ‘프랑스’에서 간경변(肝硬變)으로 말미암아 22,130명이 사망하였음을 알리고 있다. 이 병은 간장이 수축되어 단단하게 되도록 하며 ‘알코홀’ 중독에 기인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현재 이 병은 미국의 중년들의 사망의 셋째 원인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3명의 환자 중 1명은 ‘알코홀’ 중독으로 고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알코홀’ 중독자들은 병에 걸릴 때까지나 사고로 몸이 완전히 부숴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살한다. 「애틀란타 저널」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조사는 ‘알코홀’ 중독자의 자살율이 일반적인 자살율보다 약 50배나 더 높음을 알려 준다.”

중독자가 되는 과정은 어떠한가?

때때로 ‘알코홀’ 중독은 사교적인 음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아마 어떤 사회의 관습이거나 그가 교제하는 사람들의 관습일 것이다. 그는 ‘다르게’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관습에 휩쓸릴 것이다. 조만간에 그것은 습관이 된다.

지배인들이 ‘알코홀’을 대단히 많이 마신다. 특히 판매 지배인들과 선전 지배인들에게 있어서 그러하다. 그리고 종종 고객을 잘 대접할 것이 요구되는 ‘압력’을 받는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에 그러하다. 조사 결과는 모든 지배인의 4분의 일 이상이 과음자들임을 밝혀 주었다. 그들은 주말을 포함하여 주중 매일 6온스 혹은 그 이상의 ‘위스키’를 마신다.

단 한 가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의 생활의 근심과 억압감을 벗어나야겠다는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아마 그들의 생활은 무의미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것을 ‘알코홀’로 충족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보스톤’ 시립 병원에서의 실험은 음주 후 두 세 시간 후면 근심과 억압감이 증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알코홀’ 중독자가 되기 전에 심각한 정신적인 문제 혹은 근심을 반드시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잘못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사람은 음주가 일시적인 안정감을 준다는 것을 단순히 깨달을지 모른다. 음주는 그에게 ‘기분을 좋게’ 해 줄 것이다. 그는 습관적이 될 때까지 계속 마실지 모른다. 그러므로 이성적인 사람도 자제를 나타내지 않으면 ‘알코홀’ 중독자가 될 수 있다.

때때로 어린 시절의 영향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알코홀’ 중독자의 대부분은 부모의 한쪽이나 양쪽에서 보통으로 음주를 한 가정 출신임이 알려졌다. 부모가 돌보지 아니한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도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배경 혹은 교양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단순히 ‘알코홀’에 약한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이 똑같은 양의 ‘알코홀’을 마실지 모른다. 한 사람은 중독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중독되지 않을 것이다. 유전적인 구조가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알코홀’ 중독자가 되게 하는 것은 유전적인 특성이 아니다. 그것은 ‘알코홀’이다.

어떤 사람이 폐암에 걸리기 쉬운 체질일 경우 그가 담배를 피운다면 폐암에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폐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특정한 음식에 대하여 ‘알레르기’성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음식을 피한다면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알코홀’ 음료를 취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병’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은 몸이 아니다. 아무도 몸에 어떠한 결함이 있어서 ‘알코홀’을 꼭 먹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과음함으로써 중독자가 되는 것이다. 몸이 ‘알코홀’을 잘 받을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단지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잘 받는 사람’도 과음하므로써 ‘알코홀’ 중독자가 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사람의 정신과 태도에 있다. ‘알코홀’이 ‘몸에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편리한 구실이 될 수 있다. ‘알코홀’을 받지 않는 체질인데 어찌하여 다른 사람이 받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어찌하여 담배를 끓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어찌하여 병을 초래하게 하는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는가? 동일한 이유로 ‘알코홀’ 중독자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즉 정신적인 힘을 가지므로써이다.

균형잡힌 견해

‘알코홀’ 음료가 야기시킬 수 있는 고통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경우의 음주를 ‘죄악’이라고 단정한다. 다른 사람들은 모든 강한 주류를 하나님께서 정죄하셨다고 말하거나 암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균형잡힌 견해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사실이 아닌 것은 하나님의 견해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최초의 기적에 관하여 읽은 것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요한 2:1-11) 예수께서 술을 만드신 후 사람들에게 마시지 말라고 하셨다면 그것이 어떻게 이치적일 수 있겠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든 음주를 인정하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라고 말씀하셨겠는가? (이사야 25:6) 그리고 또한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디모데 전 5:23.

그러므로 음주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많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은 선용되거나 악용될 수 있다. 예를 든다면 음식을 먹는 것이 나쁜가? 나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폭식가가 될 정도까지 습관적으로 과식한다면 당신은 음식을 나쁘게 만들 수 있다. 당신의 손이 나쁜가? 물론 그렇지 않다. 손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놀라운 도구이다. 그러나 당신이 손으로, 어떤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이는 것과 같이, 범죄를 하는데 사용한다면 손을 나쁘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에 의하여 ‘선’을 취할 수도 있고 ‘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알코홀’ 음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는 것은 ‘알코홀’ 음료를 마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의 말씀과 같이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이다.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는]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린도 전 6:9, 10.

그러나 성서의 이같은 장은 술취하는 자들을 포함한 그러한 자들이 변화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11절은 이렇게 부가하고 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씻음을 ··· 얻었느니라.” 그러므로 술취하는 자가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알코홀’ 중독이 고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중독이 오래된 사람일수록 변화하는 데 더 어려울 것이다.

가장 훌륭한 충고

어떤 사람이 그의 몸이 ‘알코홀’을 잘 받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경우 가장 훌륭한 충고는 술을 아주 끊는 것이다. 만일 그가 절제할 수 없음을 느낀다면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종종 한 잔이 많이 마시도록 인도한다.

하루에 여러 잔을 마시는 어떤 사람들은 취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정도는 절도있게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그들에게 이것이 ‘알코홀’ 중독의 시초가 된다거나 아니면 이에 가벼운 ‘알코홀’ 중독에 걸렸다고 암시할 경우 그들은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루에 몇잔 정도는 ‘알코홀’ 중독이 아니며 언제고 원하면 끊을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그가 가고 있는 방향을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간단한 시험이 있다. 그는 정신적 감정적 혼란을 느끼지 않고 오랜 기간 동안 즉 최소 한달 혹은 두달간 완전히 술을 끊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없다거나 혹은 그렇게 하더라도 술을 다시 마시게 될 날이 기다려짐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이미 ‘알코홀’ 습관의 함정에 걸려들었다는 확정적인 징후인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 동안 ‘알코홀’을 마시지 않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알코홀’ 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시험을 해 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종 이것은 아마 그들이 이미 어느 정도 완전히 ‘알코홀’에 중독되어버렸기 때문에 계속 마시기 위한 하나의 구실일 것이다.

한가지 사실은 명백하다. 즉 어떤 사람이 금주를 원하지 않거나 혹은 오랫 동안 금주를 할 수 없을 경우 그것은 그가 이미 ‘알코홀’로 고통당하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인 것이다. 그는 정직하게 상태를 대처해야 하며 자신을 속이는 일을 계속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그가 계속 자신을 속일 경우 그는 더욱 심한 ‘알코홀’ 중독으로 발전할 소지가 충분히 있으며 그리고 그의 전 생애가 파멸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고려함

당신은 음주 문제를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 줄 수 있는가? 당신이 고려할 수 있는 몇가지 일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모임을 마련하고 음식물을 제공할 경우 당신은 단지 ‘알코홀’ 음료만 내놓는가? ‘알코홀’ 성분이 없는 음료도 제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사교적인 압력으로 ‘알코홀’ 음료를 마시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음료를 더 좋아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고려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당신이 이미 ‘알코홀’로 인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면 그가 모임에 왔을 때 술을 조금이라도 대접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남편과 아내가 ‘알코홀’ 중독에 빠져들어가는 어떤 경우는 아마 결혼 관계에 불화와 다툼이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마 상대방이 원하거나 말하는 것에 대하여 고려와 친절을 더 많이 나타내고 더욱 유의하는 것은 그러한 경향에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역전시킬 수 있다. 이러한 일은 ‘칠레’의 세 자녀와 ‘알코홀’ 중독자 남편을 가진 한 주부의 경우에서와 같이 수차 일어났다. 그는 과음 때문에 좋은 직장을 상실하였다. 가족은 빈민촌으로 이사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가 ‘알코홀’에 지나치게 돈을 낭비하였기 때문에 자녀들은 배불리 먹지 못하였다. 아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아내는 또한 남편에게 기분 나쁘게 논쟁적으로 그리고 큰 소리로 응수하였다. 참으로 ‘알코홀’ 중독자에게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이 여인을 방문하였다. 그는 성서가 알리는 바와 같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배우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인 아내가 ‘알코홀’ 중독자 남편일지라도 남편에게 대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지식이 자라감에 따라 남편을 도울 수 있도록 더 나은 아내가 되게 하여 줄 것을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하였다.—베드로 전 3:1-4.

아내의 태도와 행동의 변화는 남편을 감동시켰다. 그는 술을 줄이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그는 완전히 끊고 ‘친구들’의 술 잔치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을 돌보고 돈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가족의 일치는 회복되었다. 그는 그에게 이성을 찾도록 해 준 것이 아내가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후 아내에게서 선을 위한 커다란 변화를 주목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아내가 그의 술주정에도 불구하고 더욱 친절과 고려로서 그를 대하였다고 말하였다. 결국 그는 또한 그러한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가족 생활에서 주목하게 된 훌륭한 개선이 계속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여기서 변화된 것은 전체적인 생활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은 ‘알코홀’에 관한 한 최대의 도움임이 밝혀졌다. ‘뉴욕’의 ‘벤자민 키신’ 박사가 이렇게 말한 바와 같다. “우리는 생활의 틀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의 노력은 또한 가장 좋은 방법임이 증명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성서가 가능하다고 말한 것이며 성서는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옛 사람과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로새 3:9, 10.

올바른 동기를 가진 사람은 ‘알코홀’ 중독을 극복할 수 있는 결단력을 참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서만이 큰 동기가 되는 힘을 발견할 수 있으며 성서는 이렇게 알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니라].” (히브리 4:12) 성서는 ‘알코홀’ 중독의 올가미를 끊게 하는 최선의 동기를 공급해 준다.

그러므로 ‘알코홀’ 음료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당신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적당하게 사용할 경우는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자제가 행사되지 않는 경우 그것은 인간 가족을 괴롭히며 가장 해독을 끼치는 것 중의 한 가지가 될 수 있다.

[9면 네모]

‘알코홀’에 의한 희생

취업 시간의 상실 미국에서 ‘알코홀’의 남용으로 기인되는 것이 모든 다른 질병을 합한 것보다 더 큰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30,000명의 생명의 상실 미국에서 1970년 음주한 운전자들 때문에 30,000명의 생명이 상실되었다. 이것은 1970년에 월남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의 수의 7배이다.

[8면 삽화]

7백만명의 ‘알코홀’ 중독자들

미국의 ‘알코홀’ 중독자의 수는 미국의 열개 도시의 인구를 합한 정도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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