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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틴 루터’를 회고해 봄
  • 깨어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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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2
깨72 9/8 8-11면

‘마르틴 루터’를 회고해 봄

지난 5여년간 ‘루터’교 신학자들과 ‘가톨릭’교 신학자들 간에 회의가 진행되어 왔다. 궁극적인 목표는 분명히 ‘루터’교를 ‘가톨릭’ 교회로 복귀시키려는 데 있다. 일부 ‘루터’교인들은 이러한 생각을 좋아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루터’ 자신도 교황에 대하여 항쟁하긴 했지만 현재의 운동을 아마 찬성할 것이다. 그는 헌신적인 수도사였으며 ‘가톨릭’ 교회와 관계를 끊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도리어 그는 그가 비그리스도인 행위라고 성실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시정하여 개혁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시카고’ ‘루터’ 신학교의 ‘칼 브라튼’ 박사는 ‘가톨릭’ 교회와의 재결합 운동은 ‘루터’의 희망과 일치한다고 말하였다. “종교 개혁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운동으로 인도되었다.”고 그는 말하였다.

창립자

‘마르틴 루터’가 ‘가톨릭’ 교회의 일부 습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을 때 그에게는 ‘루터’ 교회를 창립할 의도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로마’ 교회와의 단절된 관계를 해소할 수 없게 되고 교황과 황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에서 가능한 곳이면 어디에서나 교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을 때 자연히 ‘루터’ 교회가 발전된 것이다.

‘루터란’이라는 이름은 ‘루터’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그의 추종자들을 가리켜 부르던 이름이다. 그것은 경멸적인 말이었지만 그들은 그 이름을 채택하였다.

‘루터’가 ‘가톨릭’ 교회와 단절하게 된 원인은 면죄부(免罪符) 판매 행위 때문이었다. 교황이 발행한 면죄부가 자신이나 친척이 연옥에 머무는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주장이었다. 그러한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이 ‘루터’ 시대의 교회가 돈을 거두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의 하나였다.

교황 ‘레오’ 10세가 ‘로마’에 성 ‘베드로’ 회당을 준공하는 데 필요한 자금이 딸리게 되자 독일 ‘브란덴부르크’의 ‘알베르트’ 대주교와 그 공사를 도울 협약을 맺었다. 그는 ‘알베르트’로부터 일만 ‘두캇’의 돈을 받고 그 대신 그에게 ‘마인즈’의 대주교직을 수여하였다. ‘알베르트’가 돈을 빌린 ‘푸거’가(家)에 그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교황은 그에게 8년간 그의 관구에서 면죄부를 분배할 특권을 부여하였다. 수금한 돈의 반은 교황에게 보내고 나머지 반은 대부금에 대한 상환으로 ‘푸거’가에 줄 수 있었다.

‘도미니카’ 수도사 ‘테첼’에게 이 면죄부 판매가 위탁되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터무니 없는 선전을 하며 면죄부를 판매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돈궤 속에서 돈이 쩔렁 울리자마자 연옥에 있던 영혼이 나온다”고 말하였다.

‘루터’는 그러한 선전에 격분하였다. 회개도 않았는데 면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교 교리에 어긋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그는 “면죄부는 자기 만족을 초래하고 따라서 구원받기 어렵게 하기 때문에 극히 사악하다”고 역설하였다. 1516년에 그가 행한 설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교황이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주장은 뻔뻔스런 거짓말이다. 만일 교황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그는 연옥의 영혼 모두를 구출하지 않는 잔인한 사람이다.”

1517년 10월 31일에 ‘루터’는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문에 면죄부에 대한 95개 항목의 논제를 게시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토론을 하자고 도전하는 방법이었다. 아무도 그의 도전에 응하지 않았고 교회의 간부들과 그 문제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지 않았다.

논제 5번은 이러하였다. “교황은 그의 권능에 의하여 혹은 교회 법규의 권능에 의하여 그가 부과한 형벌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형벌도 면제할 수 있는 의도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논제 21번은 이러하였다. “따라서 교황의 면죄부에 의하여 사람이 모든 형벌로부터 풀려 나오고 구원된다고 말하는 면죄 설교자들은 그릇되다.”

이처럼 ‘루터’는 교회의 면죄부 판매 행위를 비난함으로써 원 의도와 달리 ‘가톨릭’ 교회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길을 걷게 되었으며 종교 개혁의 도화선에 불을 질렀다. ‘루터’가 제시한 논제들을 읽은 사람들 중 얼마가 그의 논제들을 ‘라틴’어로부터 독일어로 번역하고 인쇄하였다. 이것이 독일 전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성경에 대한 강조

‘루터’가 성경을 주의깊이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성경에서 ‘가톨릭’ 교회와 반대되는 것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인간은 믿음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혹은 의화된다는 성경의 진술이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로마 3:28) 그는 그것을, 사람이 어떤 성골(聖骨)을 숭배해야 종교적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교회의 가르침과 조화시킬 수가 없었다.

‘가톨릭’ 신학자 ‘요한 에크’와의 유명한 토론에서 ‘루터’는 성경을 지침이 되는 권위로서 존중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성경으로 무장한 평신도는 성경이 없는 교황이나 성경이 없는 공의회보다 우월하다고 믿어 마땅하다.”

그는 성경에 연옥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교리를 버렸다. 그러나 그는 불멸의 영혼이 영원히 고초를 당한다는 비성서적 지옥의 교리는 계속 믿었다. 성서에서는 인간 영혼이 불멸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영혼이 죽는다고 분명히 가르치며(에스겔 18:4), 죄의 삯은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초라고 하지 않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가르친다.—로마 6:23.

일부 성서 번역판에 지옥(Hell)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와 희랍어 단어인 ‘스올’과 ‘하데스’는 인류의 일반 무덤을 의미한다. 일례로 충성스러운 ‘욥’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는 나를 음부(지옥, ‘두에이’역)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 하옵소서.” (욥 14:13) 분명히 ‘욥’은 고초의 장소에서가 아니라 부활 때까지 무덤에서 숨김을 받는데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 귀절에서 “지옥” 대신에 “무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성서 번역판이 몇 가지 있다. 이러한 성경적 진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루터’교인들은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초를 받는다는 ‘가톨릭’의 교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

‘루터’가 독일 황제 ‘찰스’ 5세와 ‘보름스’ 의회—군주들과 자유시의 대표자들로 이루어진—에 출두하였을 때 그의 견해가 비성경적임을 증명하는 어떠한 반론도 제시되지 않았다. 실제로 아무런 토론이 없었고 다만 그의 주장을 취소하라는 요구만 있었을 뿐이다. 그는 답변에서 다시 성경을 최고의 전거로 호소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폐하와 각하들께서 간단한 답변을 요구하시므로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겠읍니다. 성경과 명백한 논리에 의하여 확증되지 않는 한—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상호 모순되기 때문입니다.—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되어 있읍니다. 나는 아무 것도 취소할 수 없읍니다. 나의 양심과 반대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올바르지도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파문

1520년 6월 16일에 교황 ‘레오’ 10세는 ‘루터’를 유죄 선고하는 교서를 발부하였다. 그 교서에는 거짓되고 위험하고 이단적이라고 선언된 ‘루터’의 기록으로부터 마흔 한 가지 진술이 열거되었다. 그가 취소하지 않는다면 세속 관헌들이 그를 체포하여 교황에게 넘기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산 채로 화형을 당한 ‘보헤미아’의 ‘존 후스’처럼 될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루터’가 있는 곳의 관헌들은 그에게 동조하고 그를 체포하기를 거부하였다. ‘루터’에게 심문도 하지 않고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주지 않고 유죄 선고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정의감이 충격을 받은 것이다. 그 교서로 말미암아 교황의 독단적인 처사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타오르게 되었다.

‘로마’와 기타 지역에서 ‘루터’의 서적은 공개적으로 불태워졌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비텐베르크’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비텐베르크’ 시의 ‘엘스터’ 문 밖에 모여 교황의 법령과 교회법과 신학자들의 저작들을 소각하였다. ‘루터’는 교황의 파문 교서도 소각하였다.

침례

‘루터’는 물에 잠기는 침례를 좋아하였다. 왜냐 하면 침례에 대한 희랍어 단어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 단어의 의미와 신비스러운 의미에 따라 침례받는 사람은 완전히 물에 잠기기를 바란다.”

그러나 ‘루터’는 침례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생각은 ‘가톨릭’의 물을 뿌리는 의식에 영향을 받았다. 분명히 이 때문에 오늘날 ‘루터’ 교회에서는 물을 뿌리는 세례를 베풀고 있다.

물을 뿌리는 것이 아니라 물에 잠기는 침례가 성경적인 방법이다. 사도 시대에 침례받은 사람 가운데 물을 뿌리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 있다는 성경의 증거는 없다. 반대로 성경은 그들이 물에 잠겼다고 알려 준다.—마태 3:13-16; 사도 8:36, 38.

과히 다르지 않음

‘가톨릭’ 교회와 단절하게 만든 ‘루터’의 견해 몇 가지는 성경에 좀더 일치되는 길로 가도록 그를 도와 주었지만 그는 전혀 새로운 길로 간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지지하지 않은 많은 교회 의식과 신앙이 ‘루터’ 교회에 넘어 왔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는 아직도 ‘루터’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성경의 증거와 정면으로 반대되며 성경을 곡해하기 전에는 존재할 수 없다. 다같이 동등하고 다같이 영원한 세 위로 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는 가르침은 성서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와 동등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가 더 크시며 그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예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다. (요한 14:28; 마태 27:46; 요한 20:17) 성서에서는 그가 하늘로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에게 순종하며 그의 아버지가 그의 머리가 되신다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 전 11:3; 15:28) 성경은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삼위일체 교리에서 거짓되게 주장하는 대로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한다.

삼위일체 교리 외에도 ‘가톨릭’ 교회에서 ‘루터’ 교회로 넘어간 교리는 많다. ‘루터란’ 교직자들은 지금까지도 고대 ‘미사’의 제복을 입으며 의식에 치중하는 낡은 숭배 방식을 이어받고 있다. 촛불을 밝히고 십자가 상이 있는 제단이 아직도 존속되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성경에서 지지하지 않는데도 그러하다. 숭배에서 촛불과 십자가를 사용하는 것은 이교에서 기원한 것이다. ‘뉴맨’ 추기경도 이 사실을 그의 저서(Essay on the Development of Christian Doctrine)에서 인정하였다.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정사에 중립을 지켜야 하며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15:19) 그분은 또한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칼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마태 26:52) 더욱이 고린도 후서 10:4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싸우는 데 쓰는 무기는 육적인 무기가 아[닙니다].” (새번역)

이 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이 외에도 많고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군사적인 전쟁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역사의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칼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그는 군복무를 하지 않는 사람은 사형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였다. 농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때 그는 세속 관헌들에게 그들을 “찌르고, 죽이고, 교살하라”고 촉구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렇게 하셨겠는가?

‘루터’와 그의 추종자들은 ‘가톨릭’ 교회와 다름없이 아량이 없고 폭력적인 정신을 나타내면서, 그들과 다른 종교적 견해를 가졌다 해서 평화를 사랑하는 재침례교도들을 죽이기 위하여 칼을 휘두르는 것을 승인하였다. ‘루터’의 절친한 동지 ‘멜란크톤’은 정부와 맹세, 사유 재산, 믿음 밖에서의 결혼을 반대하는 재침례교도들의 수동적인 행위도 선동적이며 따라서 사형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확실히 그리스도인 성서 필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한 가지 조항을 배척한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죽여야 한다고 변론하지 않았다.

‘루터’ 시대 이래 ‘루터’ 교회는 세상의 정치적 정부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어왔다. 이러한 정부들이 전쟁에 휩쓸려 들어 갈 때 ‘루터’교인들은 서슴치 않고 칼을 들고 이러한 나라들에 의하여 정치적 원수들로 분류되는 자들을 죽였으며, 심지어 동료 ‘루터’교인들을 죽이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였다. 특히 독일의 ‘루터’교인들이 ‘나찌’ 당원들을 지지하고 다른 나라의 ‘루터’교인들과 싸운 제 2차 세계 대전시에 분명히 그렇게 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참 그리스도교 및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과 얼마나 상반되는가! (요한 13:35) 제 1세기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칼을 휘두른 것이 아니라 평화를 추구하였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명백한 사실이다.—베드로 전 3:11.

‘루터’가 ‘가톨릭’ 교회를 맹렬히 흔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루터’ 교회는 ‘가톨릭’ 교회의 한 분파에 불과하며 여러 면으로 비슷하다. 이러한 분파가 ‘가톨릭’의 가르침을 몇가지 개혁한 것은 사실이나, 사도들의 사후에 일어난 큰 배교 이전에 존재하였던 그리스도교 조직을 회복시키지는 못하였다. (사도 20:29, 30) 따라서 ‘루터’ 교회와 ‘가톨릭’ 교회가 재결합을 운운한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두 교회 사이에는 원래부터 연관이 있으며 심지어 ‘루터’도 두 교회의 통합을 찬성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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