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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5/22 11-13면

동‘베르린’과 고대의 근동

서독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동‘베르린’하면 당신은 무엇을 연상하게 되는가? 아마 무신론 사상이 지배하는 공산 치하의 현대적인 ‘유럽’ 국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베르린’에는 고대 근동(近東)에 관한 풍부한 자료가 있고 그 중 어떤 것은 성서의 내용을 확증해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러한 자료들은 유명한 ‘버가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그 박물관은 고대 근동에서 수집된 자료에 있어 대영 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제 삼위를 차지하고 있다.

당신은 이 박물관의 보물고에 관하여 알아보고 싶은가? ‘버가모’ 자체의 자료로부터 살펴 보자.

고대 ‘버가모’의 발견물

이 박물관에는 “버가모 제단”이라고 하는 ‘제우스’ 제단을 재건해 놓은 것이 있다. 번제단 자체는 “제단 건물”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제단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보좌가 있는 방으로 올라 가는 것과 같이 폭이 20‘미터’나 되는 24계단을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계단 양쪽에는 신화적인 존재들이 새겨져 있는 돌로 된 부조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러나 고대 이교 숭배의 그러한 유물이 오늘날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제단의 재건을 감독한 ‘엘리자베드 로드’ 박사는 Pergamon, Burgberg und Altar(「버가모, 성루 및 제단」)이란 책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 제단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상의 증거는 복음서 필자 ‘요한’의 말에서 찾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저자가 생각한 사도 ‘요한’의 “말”은 어떤 것이었는가?

분명히 그 저자는 성서 계시록 2:12, 13에 나오는 말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내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성서에서 “‘사단’의 위”가 ‘버가모’에 있다고 말한 것은 ‘제우스’에게 바쳐진 ‘버가모’ 제단 때문이었는가? ‘로드’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이 신들에게 바쳐진 전통에 뿌리 박혀 있는 그 오래 된 제단을 ‘사단의 위’로 생각하였는지 아니면 그러한 표현이 ‘버가모’에 소재하였고 그곳에서 ‘가이사’에게 희생을 바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강요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싫어하였던 영화로운 ‘아우구스도’의 제단과 관련되어 사용된 것인지는 유감스럽지만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버가모’ “성루”는 흥미를 끄는 또 하나의 자료이다. 이곳에 재건해 놓은 것을 살펴 보면 국가 숭배가 그 고대 도시의 두드러진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데나’의 국립 성역에는 ‘버가모’의 왕 ‘아탈루스’ 1세의 조상이 있다. 비문을 보면 그 성역에도 역시 제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 황제 ‘트라얀’이 그 건축을 시작하였고 그의 계승자인 ‘하드리안’에 의해 완성된 성전 역시 그 성루를 특징 짓고 있다. 두 사람 다 그곳에서 숭배되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연극을 할 수 있는 단을 갖춘 ‘이오니아’식의 다른 사원도 있는데 그것은 가이사 ‘카라칼라’(‘마아커스 오렐리우스 안토니우스’)에게 바쳐진 것이다.

고대 ‘버가모’에 이교의 영향력이 강력하였다는 점은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는 방에서 더 분명히 알게 된다. 의술의 신인 ‘에스큘레이피어스’의 상이 있는데 그는 성전에 있는 뱀을 통해 숭배되었다. 다른 조각은 거북 위에 앉아 있는 미와 관능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그리고 있다. 위대한 “어머니 여신”인 ‘메테르’, ‘애굽’의 ‘이시스’ 그리고 소‘아시아’와 ‘그리이스’, ‘로마’의 많은 신들도 있다. 참으로 ‘버가모’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도록 압력을 받았다.

‘바벨론’을 살펴봄

‘버가모’ 박물관의 또 다른 특징으로서 ‘바벨론’의 “행진로”를 재건해 놓은 것을 들 수 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 2세’가 ‘말둑’ 신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그 거리에서 취한 조약돌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의 아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다. 나는 위대한 주 ‘말둑’의 행진을 위하여 사두-조약돌로 ‘바벨’ 거리의 길을 닦노라.”

그 길을 따라 당신이 ‘이쉬타르’ 문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양편에는 성벽이 우뚝 솟아 있다. 적군이 그 길을 통해 ‘바벨론’을 침공해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인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바벨론’의 발굴을 지휘한 바 있는 ‘알. 콜데베이’ 교수는 Das wieder Erstehende Babylon(「‘바벨론’의 재건」)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방어자들이 성벽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 어떠한 침공자라도 그 거리에서는 독안에 든 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한 벽이 침입자에게 미치는 그리고 평화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처음 오는 자들에게 주는 그런 강력한 두려움과 충격을 느끼게 되었는데 낯선 사람을 향해 늠름한 자세를 취하고 쭈욱 늘어서 있는 인상적인 사자들의 모습으로 그 두려움과 충격이 더해지게 되었다. 그것들은 벽돌 담에다 조각해 놓은 것에 색을 칠하고 광택제를 발라놓은 것이다.”

행진로 끝 부분에는 실물 크기의 ‘이쉬타르’ 문을 재건해 놓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또한 고대 ‘바벨론’을 인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 벽돌 건물의 높이는 15‘미터’이고 입구는 ‘아아치’형인데 그 입구에는 두개의 거대한 탑이 양쪽에 서 있다. ‘아아치’형 길의 옆면과 탑은 흥미있는 무늬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 무늬는 줄 지어선 황소와 “뱀용”이 교대로 늘어서 있다. 후자는 뱀의 머리와 사자의 몸과 독수리의 뒷발을 갖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문이 이름을 지니고 있는 ‘이쉬타르’는 성과 다산의 여신이었으며 ‘우룩’에서는 어머니 여신과 하늘 황후로서 숭배되었다.

‘바벨론’의 행진로에서 진행되었던 행렬에 관하여 고고학자 ‘콜데베이’는 흥미롭게도 다음과 같이 비교하고 있다. ‘나는 ‘시라쿠스’(‘시실리’ 도에 있는 도시) 대성당의 입구에서 실물 보다 좀더 큰 ‘마리아’의 은신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신상에는 바쳐진 선물과 반지와 보석과 금은 등이 가득하였고 그 상은 들것에 실려 40명의 남자들에 의해 수많은 군중들의 머리 위 높이로 운반되고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열심히 기도하는 청중들이 어울린 축제 행렬이 진행되면서 그것은 ‘라토미엔’ 정원으로 운반되었다. 나는 ‘바벨론’의 행진로에서 승리의 행진이 진행되면서 ‘말둑’ 신의 이동 장면이 그와 비슷하였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성서 기록을 확증함

그러한 귀중한 것들의 재건을 위한 활동에서 고대 ‘이스라엘’의 한 왕인 ‘여호야긴’에 대한 다음의 성서 기록이 확증되었음은 상당히 흥미있다.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사로 잡아 가고 ···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지 삼십 칠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한 원년 ··· 에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고 저의 쓸 것은 날마다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열왕 하 24:15; 25:27-30.

고대 근동의 유물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재건하려고 노력하던 중 약 300개의 설형문자 토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느부갓네살’의 궁전 옆에 있는 건물에서 발견되었다.

그 대부분은 단지 식품의 공급 혹은 배급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러한 토판들 중 어떤 것에는 ‘여호야긴’이란 이름이 들어 있었다. 그 발견의 가치에 대해서 ‘한스 바르트게’는 Bibel, Spaten Und Geschichte(「성서와 삽과 역사」)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토판들이 아주 중요한 것들은 아니며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주로 ‘여호야긴’이 실제로 ‘바벨’에 있었고 왕궁에서 살면서 자기 몫의 식품을 공급 받았다는 점을 확증해 주고 있다. ··· 그러한 토판들은 성서 기록의 정확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성서 기록을 더욱 신뢰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면이 제약되어 있어 ‘버가모’ 박물관의 소장품들에 대해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다. 그러나 최근 여러 해 동안 정부들간의 협약으로 인하여 서구 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동‘베르린’을 방문하기가 훨씬 더 용이해 졌다. 그리하여 동‘베르린’의 그 박물관을 방문하여 고대 근동의 보물들을 자세히 살펴 보는 것이 가치 있음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12면 삽화]

동‘베르린’ ‘버가모’ 박물관에 있는 ‘제우스’를 위한 제단을 포함한 재건된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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