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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라는 이름이 “쓴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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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라는 이름이 “쓴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가?
  • 깨어라!—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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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6
깨76 7/22 8-10면

예수라는 이름이 “쓴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가?

‘나사렛’의 예수에 관하여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를 가리켜 지상에 생존하였던 가장 위대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수억에 달한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전혀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바벨론 탈무드’a라고 하는 ‘유대’인의 종교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유월절의 저녁에 예수는 매어달렸다. 그 형집행이 있기전 40일간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하는 외침이 있었다. ‘그는 요술을 행하고 ‘이스라엘’로 배도하도록 꾀었기 때문에 돌로 쳐죽임을 당할 것이다. 누구든 그를 위해 유리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와서 그를 위해 탄원하라.’ 그러나 그에게 유리한 것이 전혀 제시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는 유월절 저녁에 매어달리우게 되었다.”—「산헤드린」 논문, 이절판 43a면.

‘야코브 요크즈’는 그의 저서 「유대 민족과 예수 그리스도」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예수의 이름과 그의 수난의 상징물은 ‘유대’인들의 정신 속에 쓴 기억을 불러 일으킨다.” 때때로 이러한 쓴 감정은 극단에 까지 흐르곤 하였다. 진실한 ‘유대’인들 중에는 예수에 대한 기억을 일깨워 주면 “그의 이름과 그에 대한 기억은 살아질지어다”라고 소리치는 자들도 있었다.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에 대하여 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심지어는 현 20세기에도 그러한 감정은 살아지지 않았다. 이제 그 몇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자.

쓴 감정을 갖는 이유들

● 여러 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하수인들에 의하여 혹심한 박해를 받아왔다는 점. 가장 가슴을 에이는 역사 기록들 가운데에는 유혈 낭자한 십자군 전쟁, 무시무시한 “종교 재판”, 공공연한 천대, 강요된 세례 및 단지 ‘유대’인이라는 죄로 수백만의 사람들에 대한 조직적인 멸절의 장이 포함되어 있다.

● 수억의 그리스도교국의 교인들은 예수를 신비적인 “삼위일체”의 제 2위, 즉 전능하신 하나님과 온전히 동등된 자로서 숭배한다는 점. 그러나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 (신명 6:4)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하나”이자 동시에 “셋”이라는 그리스도교국의 신학자들의 주장이 모순됨을 알고 있다.

●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교회들은 예수의 형상을 가지고 있으며 숭배자들은 그 앞에서 경건하게 숭배 행위를 한다는 점. 이것은 십계명의 둘째 계명에 이렇게 명시되어 있는 바에 따라 자기들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불쾌한 일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애굽 20:4, 5.

● ‘나사렛’의 예수가 오랫 동안 약속되어온 ‘메시야’라고 주장했다는 점. ‘랍비’ ‘에이취. 지. 에넬로우’에 따르면, “‘메시야’와 관련하여 ‘유대’인들의 정신 속에 자리잡고 있던 생각들은 예수에 의하여 성취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성취되지 못한 채 있다.”

위의 견해로 보건대,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업을 시작하신 후 7년 동안 그의 수천명에 달하는 추종자들 모두가 선천적인 ‘유대’인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게 생각해 본 일이 없는가?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이유는 무엇인가?

“지각있는 ‘유대’인은 아무도 ··· 무관심할 수는 없다”

‘나사렛’의 예수와 ‘유대’인에 관한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는 죽은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랍비’ ‘에엘로우’는 이렇게 한가지 중요한 점을 못박았다. “지각있는 ‘유대’인은 아무도 한 ‘유대인’(여기서는 예수를 가리킨다)이 인류의 종교 교육과 계도에 있어서 그러한 굉장한 일을 수행하였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는 없다.” 또 다른 한 ‘유대’ 학자, ‘이. 알. 트래트너’는 「한 ‘유대’인이 본 예수」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그(예수)에 관하여 기록된 책이 6만권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800여 가지의 언어와 방언으로 그에 관한 이야기가 서술되고 있다. 내게 있어서는—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그와 같은 일이 그렇게 대규모로 행하여진 일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두개의 상이한 주제”

여기서 몇가지 오해를 풀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요크스’ 박사는 이렇게 지적하였다.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그 위대한 ‘나사렛’ 사람과는 공통 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관한 토론과 ‘나사렛’의 예수에 관한 토론은 두개의 상이한 주제이다.” 어떻게 그러한가?

‘유대’인 필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에 의한 복음서들을 살펴 보면 놀라운 점이 나타난다. 당신은 어느 곳에서도 예수께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숭배받기를 요구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주장하시기는 커녕, 예수는 “내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요한 8:28) 예수께서는 또한 “아버지[하나님]는 나보다 크심이니라”라고 선언하셨다. (요한 14:28) 그리고 시험을 받으실 때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 22:42.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과는 달리, 예수나 “신약”의 필자들 중 누구도 숭배에 있어서 우상의 사용을 격려하지 않았다. 그와는 정 반대로 당신은 이러한 말씀을 읽게 될 것이다.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고린도 전 10:14; 요한 1서 5:21) 그리고 동료 인간들을 학대하도록 촉구한 것과는 달리 예수는 산상 수훈에서 이렇게 가르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태 5:44, 45.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에 대하여 「유대인 백과사전」은 이렇게 논평한다. “여러가지 면으로 심지어는 일반적으로 ‘유대’적 편협성의 상징으로 고려되는 방향으로도, 그의 태도는 독특하게 ‘유대’인 적이었다. 예수는 회당에서 정기적으로 전파하는 것 같은데, 만일 그의 교리가 당시에 풍미하던 ‘바리새’인의 신조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인식되었었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나사렛’의 예수에 대하여 쓴 감정을 갖게 만든 장애물들 중에 많은 것들은 기원 1세기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사실상,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기꺼이 그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였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각주]

a ‘탈무드’에는 ‘팔레스타인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 두 가지가 있다. 이것들은 둘다 ‘유대’인의 전통적 법령집인 ‘이쉬나’를 풀어서 설명해 주는 자료들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 중에 어떤 것은 통용 기원 전으로 소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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