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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78 3/22 21-23면
  • 하나님께서는 장사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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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께서는 장사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것인가?
  • 깨어라!—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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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3/22 21-23면

성서의 견해

하나님께서는 장사된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슬픈 경험을 통해서 아는 일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한다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격에 이어 결정할 문제나 질문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시체를 장의사를 통해 방부 처리할 것인가? 화장할 것인가? 혹은 매장해야 할 것인가? 매장한다면 보통 관을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시체를 오래 보존하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것을 사용할 것인가?

그러한 문제를 직면했건 그렇지 않았건간에 우리 모두에게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문제인데 우리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한 가지 공통적인 관심사가 여기 있다.

그 점은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 죽은 자의 부활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들은 돈이 더 들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시체를 어떠한 특별한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 이유

당신이 믿는 종교는 심판 날에 창조주께서 모든 죽은 자의 육체를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가르치는가?

당신이 ‘가톨릭’교인이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도신경의 “몸이 다시 사는 것 ··· 을 믿사옵나이다”라는 부분을 암송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 말에 대하여 한 ‘가톨릭’ 교리서는 “세상 끝에는 모든 사람의 육체가 땅에서 부활되어 그들의 영혼과 다시 결합될 것이다”고 선언하고 있다. 당신이 ‘프로테스탄트’ 교인일지라도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 왔을 것이다. 많은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도 그와 동일한 견해를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유대 백과사전」(1971년판)은 “결국 죽은 자들이 그들의 육체로 부활될 것이라는 신앙”이 ‘유대’ 교의 “주요 가르침”이라고 지적하였다. ‘유대’ 율법주의에 관한 출판물은 “몸이 어떻게 ‘이스라엘’ 땅으로 옮겨지게 될 것인가 ··· [와] 몸에 옷이 입혀져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등의 문제를 논하였다. 그 「백과사전」은 이렇게 부언하였다. “그러한 점을 아주 진지하게 그리고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그들이 매장될 때 입을 옷, 모든 신체 기관을 완전히 매장하는 것, ‘이스라엘’에 매장되는 것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에 가지고 있던 동일한 육체로 부활될 것을 믿고 있다. 그리고 그 점이 장례식이나 매장하는 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성서는 그 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알아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

성서를 자세히 읽어 보면 많은 증거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죽을 때에 가지고 있던 동일한 몸으로 그를 부활시키실 수 있음을 알리고 있다.

어떤 사람이 죽었을 때 여호와께서 자기 종을 통해 그 죽은 몸을 살리신 예는 상당히 많다. ‘사르밧’의 한 소년, ‘수넴’에 사는 한 아이, ‘야이로’의 딸, ‘나인’의 한 젊은이, ‘욥바’의 ‘도르가’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 (열왕 상 17:21-23; 열왕 하 4:8, 32-37; 마가 5:22-24, 35-42; 누가 7:11-15; 사도 9:36-42) 그러한 경우에 그 사람들은 죽은 바로 그 날 다시 살아났음이 분명하며 시체도 그대로 있어서 썩지 않았다.

‘나사로’의 부활은 좀 다르다. 그는 죽은지 나흘이 되었고 그의 시체가 썩어 냄새가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흙의 원소로 ‘아담’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몸을 ‘나사로’에게 마련해 주실 수 있었다. 실제로 그분은 그렇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에게 기도하시고 나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나사로’가 인간 몸을 온전히 갖추고 살아서 나왔다.—요한 11:39-4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사람들을 근육, 피, 뼈, 머리털이나 인간 생명을 유지시키는 다른 물질로 이루어진 육체로 부활시키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어느 정도 온전한 시체가 필요함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보존하려고 노력해야 함을 암시하는가?

예수의 경우

예수에게 있었던 일을 고려해 보면 그 문제에 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갖는 데 도움이 된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지구로 오시기 전에 하늘에서 영으로 자기 아버지와 천사들과 함께 지내셨음을 기억할 것이다. (요한 1:1, 14) 예수께서는 죽으신 후에 하늘로 가셔야 하였으며 그분은 ‘창세 전에 그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 아버지와 함께 영화롭게’ 해 달라고 요청하신 바 있다.—요한 17:5.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근육이나 뼈나 피로된 예수의 인간 몸을 부활시키실 필요가 있었는가? 그렇지 않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가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예수께서 ‘육체로 죽으시고 영으로 살리’셨다고 말한 점은 이해할 만하다.—베드로 전 3:18.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점을 궁금하게 여길지 모른다. 예수께서 천사들과 같이 영으로 부활되셨다면 부활 후에 그분이 어떻게 육체로 나타나실 수 있었는가? 성서로부터 답을 얻기 위해서 천사들이 ‘아브라함’, ‘롯’, ‘기드온’, ‘삼손’의 부모와 같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창세 18:1, 2; 19:1; 사사 6:11, 12; 13:13-21) 하늘에서는 그러한 천사들이 영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보일 수 있도록 그들은 인간 몸으로 물질화하였던 것이다.

부활되신 예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 그분은 더이상 ‘아담’과 같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이제 “생명을 주는 영”이시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 15:45,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시체를 숭배에 사용되지 않도록 처치하셨음이 분명하다. (신명 34:6; 유다 9 비교) 예수에게는 그러한 몸이 필요치 않았다. 영인 그분은 자기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 인간 몸으로 물질화하여 나타나셨다. 어떤 때는 물질화된 몸을 보면서도 그분의 추종자들은 그분인 줄 알지 못하였다. (요한 20:14-16; 21:4-7) 그러나 한번은 “의심하는” ‘도마’를 확신시키기 위해서 예수께서는 자기가 죽을 때 그리스도의 몸에 있었던 그런 상처를 가진 육체로 물질화하셨다. 그런데 그 기록을 자세히 읽어 보면 영이 육체로 물질화한 경우임을 잘 알 수 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문이 닫혀 있었는데도 ‘도마’에게 나타나셨으며 사도들 가운데서 기적으로 물질화하셨던 것이다.—요한 20:24-29.

그것은 하나의 본이었는가?

예수에게 있었던 일이 흥미는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경우에는 육체를 부활시키실 것인가?’ 하는 점이 궁금할 것이다.

성서는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의 일부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후사가 되도록 불리움을 받았다고 명백히 알려 주고 있다. (로마 8:16, 17; 디모데 후 4:18) 예수께서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기 때문에 천적 생명을 받도록 선택된 그분의 추종자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합한 영체를 가진 영으로 부활되는 것이 이치적이 아니겠는가? (베드로 전 3:18)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의 육체는 부활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사도 ‘바울’은 부활을 논하면서 바로 그 점을 설명하였는데 그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고 있었다. (고린도 전 15:35) 육체 그대로 부활될 것이라면 분명히 그러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다. ‘바울’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였는가? ‘바울’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몸을 주신다’고 설명하였다. 그러한 원칙이 죽은 자의 부활에 적용되는가? 그렇다. 사람이 “육의 몸”으로 살다가 죽지만 부활되는 것은 “영의 몸”이다. 그러므로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는 사람들은 생명을 주는 영으로 부활되신 예수의 육체가 부활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의 육체가 부활되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그들은 “하늘에 속한 그분의 형상”을 입은 영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고린도 전 15:36-49, 새번역.

‘바울’은 뒤이어 다음과 같은 말로 요점을 강조하고 있다. “살과 피로된 존재로서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으며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이어받지 못합니다.” (고린도 전 15:50, 새번역) 교직자 ‘J. A. T. 로빈슨’은 그 명백한 진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시인하였다. “그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나 다른 신약 필자들은 ‘몸의 부활’을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증거를 통해 볼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 자기들의 몸을 보존하는 데 달려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부활이 몸의 보존에 달려 있다고 잘못 믿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반대자들이었다. 고대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제 2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을 처형하였던 그리스도교의 반대자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 사람들은 결국 순교자들의 시체를 ··· 불살라 재로 만들어서 ‘로네’[강]에 던져 버렸다. ···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압도하고 그들의 부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적들은 “이래도 그들이 부활될 수 있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그들의 형제들이 단정하게 매장되는 것을 원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없다 할지라도 부활에는 영향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상에서의 생명으로

예수와 그분의 공동 후사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고려할 때 여호와께서 어떤 사람을 부활시키는 것은 인간 몸의 보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미래에 새 질서에서 있을 지적 부활과 관련하여 ‘그 뜻대로 각자에게 몸을 가지게 하실 수’ 있을 것이다.—고린도 전 15:38, 새번역.

따라서 ‘다윗’의 충실한 벗 ‘요나단’의 경우에는 그의 시체가 불살라져서 뼈만 묻히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활시키실 수 있을 것이다. (사무엘 상 31:2, 12, 13) 무덤에 매장되어 몸이 흙으로 돌아간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에게는 ‘요나단’을 부활시키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계시 20:12, 13.

여호와께서 ‘요나단’이 죽을 때에 그의 몸속에 들어 있던 동일한 원자를 사용하실 필요는 없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지금 우리 각자의 몸 속에 들어있는 원자들은 십년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원자들과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동일한 인물이다. 원소를 사용하여 ‘아담’에게 완전한 몸을 만들어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지상의 생명으로 부활되는 각자에게 온전한 인간 몸을 마련해 주실 수 있다. (사도 24:15) 아마 부활된 사람의 몸은 대체적으로 그가 죽기 전에 지니고 있었던 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활된 사람에게 그가 죽기 전까지 발전시킨 특성, 개성 그리고 기억을 회복시키실 것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나사로’를 부활시키고 그의 몸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을 때 ‘나사로’가 동일 인물이었던 것처럼 부활된 사람들도 동일 인물이 될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몸을 보존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드릴 필요는 없다. 빠르게든지 느리게든지 어떤 방법으로 몸이 흙으로 돌아가든지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한 자신의 마련이 적용되는 모든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실 것이다.—요한 5:28, 29; 11:2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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