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들이 해결되고 있는가?
오늘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모든 문제들이 전연 없는 생활이라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세상을 살펴보면 문제들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아주 심각한 경제 문제에 봉착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빚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가장들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주부들은 물가고로 인하여 생계를 꾸려 나아가는 데 좌절감을 느낀다. 소위 풍요한 나라라고 일컫는 많은 나라의 노인들도 그 반수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식량 걱정이 많아지고 문맹자가 늘고 있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현명하다고 하는 경제학자들마저도 모든 인류에게 항구적인 풍요를 약속해 주는 경제 제도를 구상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비틀거리는 제도에 임시적인 비봉책을 써 보지만 그것도 곧 실패하게 된다.
가정 생활의 붕괴
가정 생활 역시 이 세상 어디서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붕괴되고 있다.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이혼하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보편화되어 있는 가정 상태에 관하여 한 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매우 불행합니다. 남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냅니다. 우리에게는 결혼한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는 가끔 한번씩 찾아올 뿐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읍니다. 우리에게는 친구도 별로 없읍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읍니다. 나는 매우 외롭습니다. 인생을 가치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부모들에게는 오늘날 또 다른 걱정이 있다. 오늘날의 자녀들은 이전 세대의 청소년들이 겪지 못한 문제들을 당하고 있다. 이들 청소년들은 세상이 ‘무법 지대’가 되어감을 보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은 그것을 매우 싫어하며 또한 두려워한다. 한 졸업생 대표가 졸업식의 답사 가운데서 “오늘 학교를 떠나는 우리는 좌절감과 절망감에 휩싸여 있읍니다”라고 말한 바와 같다.
부모들은 어디서 믿음직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사설을 읽어보자. “일세기 이상에 걸쳐 부모들은 가정 생활에 관한 조언을 많이 들어왔다. 의사들, 간호원들, 교사들, 신학자들로부터 조언을 들어왔다. 최근 수십년 동안에는 심리학자들과 정신 분석학자들이 그에 합세하였다. 그러한 모든 선한 충고들을 수집해서 조사해 보면 어떤 사실을 알게 되는가? 상호 모순되는 지껄임이 잡다하게 얽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의 처지만 딱할 뿐이다. 부모는 더욱 진심으로 조언을 구할수록 더욱 혼란을 느끼게 된다.”
과학이 가져온 문제점
한 때는 과학이 더 나은 세상을 가져다 주고 인류를 괴롭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는 과학자들 자신도 과학이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이상으로 많은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음을 시인한다.
1899년 7월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지를 읽어 보면 과학이 실망을 가져다 준 한 가지 예를 볼 수 있다. 그 당시 이 과학 잡지는 자동차가 ‘도시 생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잡지는, ‘고무 ‘타이어’를 낀 경쾌한 차량들이 먼지나 냄새없는 깨끗한 거리를 소리없이 신속하게 달릴 때, 현대 도시 생활에서 오는 신경의 혼란과 긴장을 상당히 해소시켜 줄 것이다’고 말하였다.
실제 경험에 의하면, 그 예언은 오늘날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바로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매년 자동차로 말미암아 수만명이 생명을 잃고 수백만명이 부상을 입는다.
심지어 기계의 발명가들도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이 깨어져 버려 실망하고 있다. 형인 ‘윌버’와 함께 비행기를 발명한 ‘오빌 라이트’는 제2차 세계 대전중인 1942년에 자동차 다량 생산 체제를 발전시킨 ‘헨리 포오드’ 1세에게 보내는 편지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윌버’와 나는 비행기가 세계 평화를 촉진시킬 것으로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의 결과가 온 것 같습니다. 귀하가 역사상 위대한 발명의 하나인 다량 생산 체제를 발전시킬 때에 그것이 세계 파괴에 쓰일 ‘탱크’를 만드는 데 사용되리라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 줄로 압니다. 유익한 것을 발명해 놓으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을 악용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의학계도 그와 같은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현대 의학이 질병을 정복하고 더 나은 세계를 가져 오리라는 희망이 부풀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질병은 정복되지 않았다. 사실상 암과 심장병같은 무서운 질병들은 증가 일로에 있다. 어떤 치료 방법은 역효과를 내고 있다. 미국에서만도 1년에 약 30,000명은 의사들이 처방한 약의 직접적인 결과로 인해 사망한다고 하며, 그 수의 십배는 부작용으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평화가 없음
자물쇠나 감옥, 경찰, 군대 혹은 파괴적인 무기가 없는 완전히 평화스러운 세계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세계는 이전 어느 때 보다도 그런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범죄는 천정부지로 솟아 오르고 있고 이제 나라들은 군비에 매년 3,000억 ‘달러’나 소비하고 있으며, 여기 저기서 전쟁은 그칠 줄 모른다. 분명히 인간 지도자들은 항구적인 세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평화와 번영의 웅대한 신기원을 예언하였다. 한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14년 전에는 신학자들도 교양과 학식이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세계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하여 전진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전 세대의 지성인들에게 1914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주었다.” 1914년에 세계는 모든 낙관적인 예언과는 반대로 유례가 없는 가장 무서운 전쟁에 휩쓸려 들어갔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은 더욱 심하여 5,5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특히 근년에 와서 정치나 사업계의 많은 부정을 목격하였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그 결과로 인간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로 떨어졌다.
이러한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좌절감을 느낀다. 이로 인하여 감정적 불안이 증가한다. 미국에서만도 작년에 진정제 한 가지만을 처방해 준 사례가 약 5,700만건이나 된다. 수십억정의 진정제가 사용된 것이다.
이 모든 사실로 볼 때 한 가지 점이 분명하다. 즉 인간의 힘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생활, 우리가 처음에 묘사한 바와 같은 그러한 삶을 결코 가져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서 시편 146편 3절에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은 지당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