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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11월호 5-7면

그것을 발견한 사람

「깨어라!」 ‘버어마’ 통신원 취재

나는 아주 독실한 ‘로마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사실상 나의 삼촌 두 사람은 ‘로마 가톨릭’ 교습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었다. 나는 태어난지 3주일만에 영세를 받았다. ‘로마 가톨릭’교인들은 어린 아이가 영세 받지 않고 죽으면 천국도 지옥도 아닌 “림보”로 가게 된다고 믿는다.

내가 ‘버어마’ ‘랑구운’에서 ‘세인트 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을 때 ‘로마 가톨릭’ 수도사들로부터 ‘가톨릭’ 신앙에 관해 자주 들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톨릭’교 만이 참 종교라고 가르쳤다. 감수성이 강한 청소년으로서 나는 ‘가톨릭’교인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반면에 나는 ‘가톨릭’교인이 될 행운을 갖지 못한 급우들에 대해서는 상당히 불쌍하게 생각하였다. 유일한 참 종교와 연합한다는 것은 영광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교회에서 진행되는 종교 의식과 화려함은 매우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내가 20대 중반에 들어섰을 때 나는 점차 ‘로마 가톨릭’ 숭배 방식에 매력을 잃게 되었다. 결국 한 때는 그렇게도 깊은 인상을 주던 미사가 공허한 의식과 매우 의미없는 것이 되었다. 일요일이면 사제는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지 않고 동일한 의식만을 행하였다. 나의 생활에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교회 나가는 것을 중단하였다.

20대 중에는 ‘나갔다 안나갔다’ 하는 ‘가톨릭’교인이 되었다. 30세가 되자 나는 장래 아내가 될 사람을 만났다. 4년 후 풍금 소리와 성가대의 음악을 곁들인 참으로 아름다운 혼인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 우리는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나의 아내는 불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우리가 결혼하기 일주일 전에 ‘가톨릭’교로 개종하였다. 이 때문에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 상당한 기간 종교 교훈을 받기 위하여 매 주말에 교구 사제를 방문해야 하였다. 아내는 도시에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여행을 해야 하였다.

결혼 후에 나는 종교 활동을 인도하는 것이 좋은 일로 생각되었다. 나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였으며, 교회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교회 원로가 되었고, 그 때까지는 영어로 인도되던 일요일 미사에서 공개적으로 사도 서한을 낭독하기도 하였다. 점차 이러한 용솟음치던 종교적 열의는 식어지고 다시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깨우침

1976년에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나는 하나님에게 여호와라는 고유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톨릭’교인으로서 나는 하나님에게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 부부가 우리와 함께 성서 연구를 사회할 때 나의 아내와 내가 얻게 된 훌륭한 교육의 시작이었다. 그들이 어려운 환경하에서 우리의 집으로 1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의 이 말을 이해하려면 ‘랑구운’ 시내 버스를 한번 타 보아야 할 것이다. 40명 정원인 ‘버스’에 100명 이상의 승객이 타서 콩나물 시루가 된다. 나는 사제가 어떤 사람에게 ‘가톨릭’교를 가르치기 위하여 그와 같이 하리라고 상상할 수 없다.

내가 성서 지식을 취하며 발전해 나아가는 동안 나의 여러 가지 ‘가톨릭’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분명히 나의 종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 하나 설명해 보기로 하자.

종교 그림과 형상

‘가톨릭’ 교회 내부를 들여다 보면 당신은 존중되고 영예가 주어지는 종교적 그림과 형상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또한 ‘가톨릭’교인의 가정에서 동일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림, 형상, ‘메달’ 그리고 “성인들”의 “유물”은 ‘가톨릭’교인들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서 연구를 통해 우리는 형상 숭배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성경은 이사야 42:8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그 귀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두번째 계명에서 형상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니라]”. (출애굽 20:4, 5) 그러나 ‘가톨릭’교에서는 촛불이 형상 앞에 켜지고, 꽃과 돈이 그것에 제공되며 숭배자들이 그 앞에서 기도하면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

‘가톨릭’교인들은 형상 숭배를 통해 “성인들”이 하나님과 숭배자들 사이의 중보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임을 성서의 이러한 기록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 전 2:5) 예수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위하여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아무도 중보가 될 수 없다. (요한 14:6; 사도 4:12 비교) 우리가 창조주보다 창조된 사람과 물건에 더 많은 영예를 돌려 왔다는 것을 알고 우리는 놀랐다.—로마 1:25.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기도하는 예는 미사중에 사용하는 고백의 기도이다. 그것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전능하신 하느님, 평생 동정녀인 복되신 ‘마리아’, 복되신 천사장 ‘미가엘’, 복되신 성세자 ‘요한’, 거룩한 사도 ‘베드로’와 ‘바울’ 그리고 모든 성인들에게 내가 생각, 말 그리고 행동으로 엄청난 많은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나이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하나님 한분 뿐이시다. (시 65:2) 예수께서는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드려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마태 6:9.

이러한 사실은 특정한 기도 특히 “천사 축도”라고 불리우는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하는 것 등 묵주와 관련된 의문을 가지게 하였다. 성서에서 배운 것에 비추어 볼 때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더우기 예수 자신은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반복적인 기도를 좋아하시지 않음을 알려 주셨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마태 6:7)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지 않는다면 묵주는 무엇과 관련되는가? ‘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라고 부르는 것과 관련하여 당신은 ‘마리아’가 예수 다음에 몇명의 자녀들을 낳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마태 13:55, 56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우리에게 이것은 상당히 뜻밖의 사실이었다.

영혼불멸

‘가톨릭’교인으로서 나는 영혼이 불멸이고, 내가 죽을 때 나의 몸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나의 영혼은 몸을 떠난다고 배웠다. 교회의 가르침은 지상에 살아 있는 동안 내가 행하는 행실에 따라 영혼이 하늘로 가든지 불타는 지옥이나 연옥이라고 불리우는 고초받는 일시적인 처벌 장소로 가게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서 연구를 통해서 나는 인간 영혼이 전체 인간이며 사람의 보이지 않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한 일부 성서적인 증거를 고려해 보자.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명[두 영혼, 신세]이니[라].” (창세 46:27) “누구든지[어떤 영혼이, 신세]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 (레위 2:1) “누구든지[한 영혼이, 신세]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 (레위 4:2) “너희 중에 아무도[아무 영혼도, 신세] 피를 먹지 말[라].” (레위 17:12) “사람[영혼, 신세]마다 두려워[한다].” (사도 2:43) “배에 있는 우리[영혼인 우리, 신세]의 수는 전부 이백 칠십 륙인이러라.”—사도 27:37.

물론 영혼이 사람 자신이라면 사람이 죽을 때 그 영혼도 죽는다. 그러기 때문에 성서는 여러 번 영혼이 죽거나 멸망당한다고 언급한다. 예를 들어 성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영혼, 신세]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라].” (레위 23:30)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셨다. “안식일에 ··· 생명[영혼, 신세]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누가 6:9)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느니라].”—전도 9:5.

일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나는 46년간 ‘가톨릭’교인으로서 지낼 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배운 것은 진정으로 “좋은 소식”이었다. 성서 연구는 나로 하여금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인식하게 하였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2) 나의 아내와 나의 큰 아들 그리고 나는 1977년 ‘여호와의 증인’의 “즐거운 봉사자” 지역 대회 중에 물침례로써 하나님께 헌신을 상징하였다. 결국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하는 숭배 방식을 발견하게 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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