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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78
깨78 12월호 20-23면

해저 전화선

「깨어라!」 하와이 통신원 기

1세기 이상 전에 ‘프랑스’ 근해에서 저인망(底引網) 어업을 하던 한 어부가 신종 해초로 보이는 것을 끌어 올렸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철심이었다. 그는 자기의 친구들에게 보이려고 한 조각을 자름으로써 무심코 10개년 사업을 망쳐 놓았다. 많은 자본가들과 영국 및 ‘프랑스’ 정부는 영국 해협 횡단 해저 전선에 백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였다. 1850년 9월 1일에 그것은 최종 가설되었다. 바로 이 전선이 그 이튿날 끊긴 ‘신종 해초’였다!

바다를 횡단하는 전보망

1850년까지는 6년 역사를 지닌 전보가 북‘아메리카’로, 영국으로, 그리고 ‘유럽’의 많은 지역으로 산불과 같이 퍼졌다. 육지에서의 커다란 성공에도 불구하고, 공중선은 언제나 바닷가에서 끝났다. 명석하고 창의력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몰두하게 되었다.

‘도버’ 해협의 전선은 충분히 피복되지 않았다. 단지 해안의 끝 부분만 납으로 만든 ‘튜우브’로 입혀졌다. 어부가 그것을 끊기까지 약간의 기능을 발휘했지만, 해협을 사이에 둔 양쪽의 신호는 뒤섞였다. 적절히 절연이 되어도 잠수할 때 전선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 인식되지 않았다. 신호 방해의 이 문제는 한동안 많은 전선 기사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1851년에, 앞서의 것보다 훨씬 개량된 영국 해협 횡단 피복 전선이 가설되었다. 조금 후, 해저 전신망이 ‘유럽’과 ‘아프리카’ 및 중간의 섬들과 연결하는 지중해 해저에 퍼졌다. 그러한 성과가 있게 되자 곧 광대한 대서양의 해저를 횡단하는 데 관심이 기울여졌다.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선

영국이 해저 전선 공학 기술을 개척하기는 했지만, 미국인 실업가 ‘사이러스 W. 피일드’는 노력을 계속하였으며, 그 결과 대서양 횡단 해저 전선이 성공적으로 가설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그것은 영국과 미국 정부의 공동 사업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본가들, 해양학자들, 전신 기사들 및 과학자들 일부가 이 대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한 사람들의 재능은 대서양 한 가운데 있는 깊은 해구(海溝) 때문에 절대 필요하였다. 여기에는 지상 최대의 산맥이 길이 1,600‘킬로미터’, 폭 800‘킬로미터’로 완전히 잠겨 있다.

‘피일드’와 그의 동료들이 여러 해에 걸친 재정적인 문제와 전선 가설과 관련된 재난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들은 일찌감치 포기하였을지 모른다. 전선 파괴, 불순한 일기, 배의 전선 푸는 기어에 전선이 엉키는 등 계속 방해가 있었다. 때때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수백 ‘마일’의 파손된 전선이 해저에 버려졌다.

신호 방해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였다. 어떤 사람은 신호가 전선의 끝까지 이르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고 신호가 전달될 때까지 전선을 채울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계산하였다. 이것은 송수관에 비교되었다. 약간의 물이 맨 끝에 보이려면 송수관으로 얼만큼의 물이 흘러야 한다. 해저 전선을 충전하는 데는 공중선보다 20배나 되는 전기가 필요할 것이다.

‘윌리엄 톰슨’ 경(‘켈빈’ 경으로 더 잘 알려진)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자기의 조사 결과로 그 유명한 “정방형의 법칙”을 썼다. 간단히 말하여, 그의 법칙은 잠수된 전선의 길이를 10배로 길게 하면 신호 전달 속도가 100배 감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도선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발견이 무시되었기 때문에,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선의 불량한 설계로 인해 그 후 고장이 많았다.

그러나, 마침내, 1858년 8월 5일 최초의 대서양 횡단 해저 전선이 ‘아일랜드’와 ‘뉴우펀들랜드’ 간의 대륙을 연결하였다. 11일 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부캐넌’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99단어의 인삿말이 이 전선을 통해 시작되었다. 그것은 16 1/2시간 후에 끝났다. 유감스럽게도, 한달 못되어 그 전선은 불탔다. 오늘날의 비용으로, 근 2백만 ‘달러’의 사재(私財)가 대서양에 수장된 것이다! “금세기 최대의 업적”이라고 불리운 것이 무너진 것이다. 8년 후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은 다시 해저 전선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영국의 두개의 전선 생산업체가 합병되어 이전에 있었던 전선 제조 문제 중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새롭고 피복이 더 잘된 전선이 고안되었다. 그것은 두배 더 무거웠고(7,000‘톤’[6,350‘미터톤’]) 도선은 이전 것보다 세배 컸다. 그것은 물속에 수직으로 16‘킬로미터’ 늘어뜨려야 끊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재차 시도할 때에는 하나의 배가 그러한 엄청난 무게를 지탱할 수 있었다. (이전에는 두척의 배가 필요했었다.) 이 배 ‘그레이트 이이스턴’호에는 18‘미터’짜리 기선 외륜 둘, 돛대 여섯개, 그리고 7‘미터’ 추진기를 지닌 이중 추진 장치가 있다. 이 때문에 그 배는 조선 사상 가장 훌륭하게 조종이 되는 원양 여객선이 되었다. 이 배는 바퀴 하나를 ‘리버어스’에 넣음으로써 선체를 축으로 완전히 회전할 수 있었다.

두번 더 실패한 후 1866년 7월 27일 참으로 성공적인 전선이 완전 가설되었다. 그것은 ‘아일랜드’와 ‘뉴우펀들랜드’를 연결시켰다. 그러나 그 새로운 전선에서 1,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분실된 갈고랑쇠에 얽힌 전선—전년 여름에 버려진 전선—이 있었다. 30차례에 걸친 시도 후에 그것은 끌어 올려져 ‘테스트’를 거친 후 새로운 전선과 맞추어 이어졌다. 이렇게 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는 전선이 완성되었다. 두 전선의 ‘뉴우펀들랜드’에 이른 끝이 연결되어 6,400‘킬로미터’ 이상의 잠수 회로가 존재하게 되었다. 이 먼 거리로 또렷한 신호가 보내졌다. 산(酸) 몇 방울을 함유하고 있는 여인의 은 골무로 만든 간단한 전지가 그 전선을 충전하는 데 필요한 전부였다! 그 때 이후로 쌍방 통신은 양대륙간에 한번에 두 세시간 이상 끊어진 적이 없었다.

1866년 이후로, 전선이 세계의 여러 해양을 신속히 횡단하였다. 19세기 말까지 대서양을 횡단하는 15개의 전선이 가설되었다. 이러한 최초의 전선의 일부는 1세기 이상 사용된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전시의 목표

인도양의 ‘코코스’, 남대서양의 ‘아센션’ 및 태평양의 ‘구암’과 ‘미드웨이’와 같은 많은 외딴 섬들은 이들 해저 전선 때문에 세계 통신의 전략적 교차로가 되었다. 그 결과 이들 섬들은 전시에 중요한 군사적 목표였다. 해저 전신국과 전선 자체가 주요 목표가 되었다. 1939년 독일이 소유한 두개뿐인 전선이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지 24시간 이내에 끊어졌다. 1945년 영국의 2인승 잠수함이 ‘사이공’과 ‘싱가포르’ 그리고 ‘사이공’과 ‘홍콩’을 잇는 전선을 끊었다. 해저에서의 이러한 싸움은 전쟁 중에 계속되었다.

전선의 적들

전선을 발명한 인간은 또한 전시에 뿐만 아니라, 더 흔하게는, 저인망을 당기고 배의 닻을 사용함으로써 전선의 가장 보편적인 적이 되었다. 또한, 부패, 이가 날카로운 고기, 나무 좀 및 자연 현상도 적에 포함된다.

해저 지진이 1888년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생하면서 동시에 그 대륙에 이르는 세개의 전선이 끊겼다. 지진으로 발생하는 해저 사태(沙汰)는 처음에 시속 약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려 쉽게 전선을 끊는다. 1929년에 사태로 인해 ‘유럽’과 미국을 잇는 전선 거의 모두가 끊겼다. 사태로 인해 전선이 연속적으로 끊겼다. 피해 복구에는 6개월이 걸렸으며, 전선 회사들은 15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

여러 나라가 전선과 해저 전선 가설선을 소유, 유지하고 있다. 가설선은 세계의 모든 해양을 왕래하며 전선의 적들을 제거한다. 이제 전선 피해 복구는 과거처럼 어렵지 않다. 현재는 전기 측량으로 끊긴 곳을 찾아내고 수리선이 그 지점으로 달려가 부표를 내리고 해저 수색이 시작된다.

해저 전화의 가설

1875년에 전화가 출현한 후 이 새로운 도구로 전신을 대신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거의 즉시 해저 전신에 큰 타격을 준 문제가 전화 가설 기사들에게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훨씬 심각한 형태로 등장하였다. 이번에도, 가장 큰 문제는 이전과 같이 신호 방해와 음의 변조였다. 사람의 말이 대단히 복잡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양질의 통화가 해저 전선을 통해 이루어지기까지는 여러 해에 걸친 집중적인 연구와 복잡한 공학 기술이 요구되었다.

한편, 1896년에, 무선 전신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로 그 뒤에 단파 무선 전신이 등장하였다. 장거리 통화의 이 전혀 새롭고 예상 못한 방법으로 인해 해저 전선은 이른바 “최대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최초의 성공적인 대서양 횡단 전선이 가설되기 전 40년간 단파 무선 전신에 의해 인간의 음성은 대서양을 건너 다녔다. 1927년부터 1956년까지, 인간의 말을 대양 건너 저편으로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 성공은 한정되어 있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좋은 날씨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소식을 전하기까지 여러 날 걸렸다. 그러나 무선 통신면에서 장족의 발전이 있었고, 결국 이 지식은 해저 전화선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다.

대서양 횡단 전화선

최초의 대서양 횡단 전화선은 ‘뉴우펀들랜드’와 영국을 ‘스코틀랜드’를 경유하여 연결시켰다. 이것은 3단계로 가설되었다. 접합 부분마다 ‘엑스레이’ 검사로 미소한 흠이라도 있는가 확인하였다. 어떤 문제는 주로 태풍 ‘아이온’호 때문에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신속히 극복되었다. 복선 방식의 전선은 1956년에 완성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다. 거의 6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51개의 자동 중계 장치가 사람의 음성 전류를 확대하여 동쪽으로 가게 한다.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다른 전선이 가설되어 있으며, 같은 수의 자동 중계 장치가 음성 전류를 서쪽으로 보낸다. 이러한 전선의 출현으로 바다를 횡단하는 전선 가설 활동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후에, 시간 할당 통화 삽입 장치라는 매우 독창적인 전기 발명품과 반도체 증폭 장치 때문에, 전선 ‘채널’ 수를 두배로 늘리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속히 작용하는 장치는 일반 대화에서 멈추는 시간을 이용하여 다른 대화를 연결한다. 1956년 전선에는 36개 회로가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간의 4,000개 ‘채널’을 지닌 전선이 1976년에 완성되었는데, 이와 같은 전선의 잠재력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시간 할당 통화 삽입 장치로 ‘채널’ 수가 두배가 될 수 있다!

태평양의 전화선

일찌기 1903년에 미국과 ‘하와이’ 간에 전선이 가설되었다. 그 끝은 소형 보조 ‘엔진’을 사용하여 ‘와이키키’ 해변으로 당겨졌다. ‘하와이’ 최초의 전화 회사는 전화가 발명된지 불과 7년 후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1931년에 와서야 ‘하와이’는 단파 무선 전신을 통해 장거리 전화로 연결되었다. 1957년에 ‘캘리포오니아’에서 ‘하와이’에 이르는 3,800‘킬로미터’ 전선이 완공되면서 태평양 전화선으로 알려진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 36,000,000‘달러’ 계획은 그 당시 존재하던 14개의 무선 전화 회로를 보강하였다. ‘하와이’, ‘알래스카’ 및 ‘런던’ 간의 삼중 전화를 거는 데 불과 8초 걸렸으며, 음성은 아주 명료하였다. 그 전선 역시 36회로를 지니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그 때에 한 관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본토에 전화를 걸기를 원하는 예는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일부 회로는 언제나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은 참으로 빗나갔다!

7년 후, 가설비 80,000,000‘달러’가 든 동양에 이르는 8,500‘킬로미터’ 전화선이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미국은 ‘하와이’를 거쳐 동양과 직접 연결되었다. 이제 양쪽으로 말을 전달할 수 있는 단일 전선이 이용될 수 있었다. 그것은 128개 회로를 지녔으며 시간 할당 통화 삽입 장치로 동시에 256개의 대화를 전달하도록 증가될 수 있었다. 이 믿기 어려운 계획은 물리학, 공학, 화학, 해양학, 어업, ‘스킨 다이빙’, 및 화산학 전문가들의 노력에 힘입었다. 그렇다. 태평양에는 대서양에 없었던 위협 즉 화산, 산호초, 해일,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구 등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함정으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는 ‘구암’과 ‘미드웨이’ 사이로 11‘킬로미터’ 이상 빠지며 전선을 가설할 때 피할 수가 없었다. 전선은 ‘캘리포오니아’ 주 ‘샌루이스 오비스포’에서 시작하여 ‘하와이’, ‘미드웨이’, ‘웨이크’ 및 ‘구암’을 거쳐 일본과 연결되었다. 현재는 ‘호놀룰루’에서 미국 본토 대부분의 도시와 많은 ‘유럽’ 국가들에게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14자리 수를 사용함으로써 ‘뉴우요오크’에서 일본의 어느 가정으로라도 전화를 걸어 즉각적으로 또렷또렷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현대화와 실용성

과학적 발명이 거듭되면서 전선 가설 방법이 혁신되었다. 이 목적으로 특별 선박이 건조되었다. 전선에서 뿐만 아니라 송신 및 수신 장치에 있어서도 진보가 있었다. 자동 중계 장치가 간소화되었다. 3극 진공관 대신에 증폭 장치가 사용되었다. 이제 단일 전선이 이전에 필요한 두개의 전선을 대신하게 되었다. 오늘날 전화, 전보, ‘텔레비젼’ 화면 및 막대한 양의 전자 자료가 또한 해저 전선으로 송신될 수 있다.

예상과 달리, 통신 위성은 해저 전선을 몰락시킨 것이 아니라 해저 전선에 자극제가 되었다. 전선의 증가와 효율 때문에 사실상 통신 폭발이 있었다.

비용이 격감하였다. 1957년에 ‘하와이’에서 ‘캘리포오니아’로의 가장 저렴한 야간 전화도 3분에 5.25‘달러’이었다. 현재는 80‘센트’로 낮아졌다. 소식이 전달되는 데 16 1/2시간이 걸리던 것이 이제는 같은 거리에 걸리는 시간이 10분의 1초 미만이다. 그러므로 만일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이 1초 이내의 거리에 있다면 해저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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