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이 이혼법을 승인하다
「깨어라!」 ‘브라질’ 통신원 기
1977년 12월 26일, ‘브라질’은 법률 제 6515호로 어떠한 근거로도 이혼이 허용되지 않는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서 제외되게 되었다. 상원은 이미 헌법 수정안을 승인하였었다. 이혼 지지자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이혼 반대자들은 패배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이혼을 반대하는가? 이혼 문제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어떠한가? 다음 내용을 고려해 보자.
이혼 반대
「브라질 헤럴드」지는 이혼 반대 지도자들을 지적하면서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국가”라고 공헌한 다음, “교회의 반대가 고조되어 왔다. ‘브라질 주교 연합회’ 회장인 ‘돔 이보 로르스체이테르’는 ··· 교회는 이혼을 계속 반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보도하였다.
1977년 ‘코르푸스 크리스티’ 행렬 기도가 이혼법안 반대 시위로 바뀐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벨로 호리존테’에서는 약 100,000명이 대규모 축구장에 모였다. ‘쿠리티바’에서는 15,000명이, ‘리오데자네이로’에는 10,000명이 모였다. 그러나 이 도시들은 수백만명의 명목상의 ‘가톨릭’교인들이 들끓는 곳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모임의 규모는 하나의 실패의 조짐이었다. 한 대중 잡지는 그 운동을 요약하여 “교회는 위신을 걸고 전력을 다하여 이혼법을 반대했지만, ··· 실패하였다”고 말하였다.
또 보도 기관들은 이혼 반대 주장에서의 몇 가지 잘못된 점들을 지적하였다. 「오 에스타도 데 S. 파울루」지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는 가족 제도의 붕괴를 진실로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브라질’과 같은 영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를 다스리는 세속 국가는 모든 국민들, 심지어 비‘가톨릭’교인들, 불가지론자들, 무신론자들, ‘프로테스탄트’교인들 및 ‘가톨릭’ 냉담자들에게 오직 한 종교의 결혼법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적 이혼을 소개하기에 앞서 그 상태를 언급하여, 이 신문은 “우리 가운데서의 복잡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이혼 방식은 사회 혼란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이전에는 기혼 부부가 종종 법적 별거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헤어져서는 다른 짝을 만나 함께 계속 살기 때문에 사실상 법적 승인 없이 두 가정을 형성하는 일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반대는 어떠한가?
‘브라질 주교 전국 협의회’는 “누구든 이혼을 옹호하거나 실행하는 자는 자신을 하나님의 법에 반대하는 입장에 두는 것이며, [‘가톨릭’] 교회와의 연결을 끊는 것이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참조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마태 19:6) 따라서 교회 지도자들은 결혼의 띠가 풀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반대하면서 내연 관계와 부도덕이 널리 퍼지는 일에 대하여는 그들의 눈을 감고 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모든 이혼이 부당하다고 말씀하셨는가?
성서, 결혼 및 이혼
우선 성서는 아무 이혼 근거나 다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아무런 이혼의 마련없이 서로 무한정 배필로서 즐거운 생활을 하게 하셨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창세 2:24) 죄를 지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 그는 자기 자신의 규례와 전통을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모세’의 율법은 족장 사회의 결혼 관습들을 인정하였으며, 결혼과 이혼을 규정하였다. 그러나 예언자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이혼을 ··· 미워”하심을 지적하였다. (말라기 2:16)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초의 결혼 마련의 타당성을 강조하였으며, 역사가 ‘마태’는 그 점을 마태복음 19:3-9에 기록해 놓았다.
「신 미어 성서」(기타 ‘가톨릭’역들도 비슷하다)의 마태복음 19:9은 다음과 같다: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음탕한 행위는 별도의 경우임)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는 자이며,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도 간음하는 것입니다.” 난외주에서는 괄호 안에 있는 말을 “문자 그대로 ‘‘포르네이아’는 제외’ 즉 부도덕, 음행 및 근친상간 등은 제외”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신학자이자 사제인 ‘알시데스 핀토다 실바’는 보편적인 ‘로마 가톨릭’의 해석을 다음과 같이 되풀이하였다. “만일 어떤 처녀가, 약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살기 전에 다른 사람과 부정한 관계를 가질 경우, 간통은 아니더라도 내쫓김을 당할 수 있다.”
물론 예수께서는 그러한 경우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말씀하시지 않았고 문맥으로 보더라도 그러한 뜻으로만 이해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이혼을 승인하였으며, 아무 이혼 근거로나 배우자를 내보내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지 ‘‘포르네이아’의 연고로’ 이혼할 때만 결혼의 창시자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포르네이아’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모든 형태의 부도덕한 성관계, 성도착 및 음탕한 행동을 가리킨다. ‘포르네우오’라는 동사는 “불법적인 성관계에 자신을 내맡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음행 및 기타 어떠한 다른 형태의 부정한 관계도 반대하셨다. (마태 5:27-32; 15:19, 20) 만일 배우자 한쪽이 다른 쪽에게 심각한 성적 죄를 범하였을 경우, ‘한 몸’의 결합을 불순하게 만드는 것이므로, 그 결혼의 띠는 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의 불충실함은 결혼 서약, 연합 및 약혼을 파기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무죄한 배우자와 죄를 지은 배우자는 이혼을 하고 다시 결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게 된다. 물론 남편 또는 아내 쪽에서 잘못을 범한 배우자를 용서하고 결혼의 띠가 계속 유지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 남편 또는 아내의 특권이다.
이혼에 대한 ‘브라질’의 새로운 법
그러나, 이러한 성경적인 내용 때문에 ‘브라질’의 입법자들이 이혼에 대한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킨 것은 아니다. 사실, 1889년 ‘브라질’ 공화국이 설립된 이후, ‘브라질’은 민사 결혼만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 해 동안, ‘가톨릭’ 교회의 강력한 영향력이 이혼법의 제정을 방해하였다. 이혼 옹호 지도자이며 상원의원인 ‘넬슨 카르네이로’와 같은 자유주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이 새로운 법률을 위하여 20년 이상 투쟁해 왔다. 그러면 이 법의 내용은 어떠한가?
상호 합의를 통해서든지 또는 이혼 소송을 통해서든지 간에, 이혼이 승인되기 전에 법적인 별거가 요구된다. 이혼 청구서는 법적인 별거 승인을 받은지 3년 후에 제출할 수 있다. 이의가 없다면 그 이혼은 10일 이내에 승인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법이 처음 시행될 당시, 미해결인 채로 남아있던 사건들의 경우, 만일 그 부부가 최소한 5년 이상 사실상 별거해 왔음을 입증할 수 있다면 이혼 승인을 받을 수 있다. 반면에, 법적 별거는 2년 이상 결혼 생활을 해 온 사람들에게만 승인될 것이다. 또한 이혼은 일생 동안 한번만 허락된다. 이 후자의 경우를 다루는 조항은 모호하며, 일부 사람들은 위헌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스도인 입장
의심할 바 없이 ‘브라질’의 이 새로운 이혼법은 성서에 설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표준에 따라 생활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법은 그들이 하나님과 “가이사” 즉 정부 당국 앞에서 그들의 결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마태 22:21) 그 법에 따라서, 자기의 배우자가 불충실하게 된 사람들도, 이혼을 할 수 있고 원한다면 다시 존귀한 결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결혼 생활에서의 불충실성이 이혼을 위한 유일한 성서적 근거이다.—마태 5:32; 19:9.
그러나 성서는 이혼 및 가정과 가족의 분열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극단적인 상태를 피하는 방법을 철저히 알려 주는 지상에서 유일한 책이다. 성서는 결혼 생활로 들어가서 그 결혼을 존귀하게 유지하고 성공적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서 건전하고 명백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에베소 5:21-33) 그러므로 성서는 참다운 결혼의 조화와 행복한 가정 생활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지침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