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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업적 걸인이 즐겁게 주는 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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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0
깨80 09월호 25-28면

직업적 걸인이 즐겁게 주는 자가 되다

어렵게 걸으면서, 내가 이웃을 방문하러 가고 있을 때, 누더기 옷을 걸친 한 걸인이 이렇게 소리쳤다. “‘조오지’, 이젠 구걸 안하나? 부자가 됐어?”

그렇다. 내가 ‘조오지’이다. 나는 15년간 직업적 걸인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구걸하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난 이제 제당 공장 주인보다 더 부자야.” ‘브라질’의 동북부에서는, 제당 공장의 소유주는 가장 부유한 사람들 축에 끼인다.

그는 놀란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침묵을 이용하여, 나는 이렇게 덧붙였다. “여기 봐! 이게 그 이유야.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잠언 10:22) 나는 여전히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진 것이 거의 없긴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왜냐고요? 나는 참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나의 생애에서 그분의 축복을 느꼈으며, 진실된 친구를 갖게 되었고 그리고 직업과 먹을 것을 충분히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의 내 걸인 친구는 소스라쳐 놀랐다. “어떻게 구걸을 그만 둘 수 있었지?”하고 물었다. 그러나 당신은 내가 처음에 왜 걸인이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다. 여기에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

비극적인 어린 시절

1930년, 나는 양쪽 다리가 불구인채 태어났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브라질’의 ‘파라이바’ 주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는 농장 일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계를 이었다. 우리의 부모를 돕기 위해, 나는 11명의 나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농장에서 일을 해야 했다. 땅 위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내 몸을 지탱하고서, 될 수 있는 한 열심히 일을 하였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아버지에게는 일요일도, 공휴일도 없었다. 추수가 끝나 소작료를 지불하고 나면, 남는 것이라고는 옷이나 약을 사기에도 충분치 못하였다.

좀더 밝은 면을 보자면, 나는 나의 할아버지로부터 음악에 대한 사랑을 물려 받았다. 나는 ‘바이올린’과 ‘아코디언’ 연주법을 배웠고 여러 해 동안 생기있는 토속제에서 연주하였다. 그러나 내가 14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병석에 눕게 되었다. 치료를 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모든 소유물을 팔아야 했다. 내 ‘바이올린’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 갔을 때 나는 얼마나 울었던가! ‘바이올린’은 나에게 정말 크나큰 행복을 안겨다 주었었다. 정말 슬프게도, 아버지는 그후 곧 돌아갔으며, 닷새도 안되어 어머니도 그 뒤를 따랐다. 12명의 고아가 된 우리는 가난하고 배고프며 또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했다.

성서를 정말 알지 못하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운명을 받아 들여라. 그건 하나님의 뜻이야.” 이처럼 희망이 산산 조각이 난채 우리는 흩어져 제 각기 자신의 길을 갔다.

내가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산타 리타’로 갔으며 토속제에서 다시 음악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악기를 세내어야 했으며, 내가 사는 오두막집의 세도 내지 못할 정도가 되는 때가 여러 차례였고, 몸도 불편하였고 희망도 없었다.

어느날 나는 민속제에서 연주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나는 신체적인 외관이 어느 정도 비평을 받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에, 나의 비참한 형편을 설명하였다. 한사람 한사람 나에게 동정을 나타내고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집에 오너라. 내가 도와 주지.”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였다. 나는 선물을 받기 시작했고 걸인의 인생이 결국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머지않아 나는 정기적인 “통로”를 갖게 되었다. 그후 나는 합의상의 짝을 만나게 되었다. 나의 “통로”에서 내가 받은 옷, 신발, 음식과 그 외의 것들은 우리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였다.

나의 신체적인 불구는 사실이었으며, 다른 많은 걸인들 역시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곧 알게된 바로는, 그러한 행세를 하는 걸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튼튼하고 건강하였다.

속임수를 쓰다

어떤 걸인들은 동정을 애원하면서, 슬픔과 진실됨을 가장하는 기술을 ‘마스터’하였다. 한 예를 들자면, 나의 이전 “동료” 중 한 사람은 자기의 대가족을 전적으로 동냥해서 얻은 것으로 부양하려고 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수입이 더 좋은 곳에서 “구걸”하기 위해, 거의 3,000‘킬로미터’ 되는 거리에 있는, ‘리오데자네이로’로 여행하였다. 한때 그는 자기 자녀 하나에게 인도되어, 맹인으로 가장하여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구걸하면서 걸어 다녔다. 내가 어쩌다 그와 마주치게 되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조오지’, 나한테 아무 일 없어, 괜찮아, 정말 괜찮아.”

나와 가까이에 살고 있는 한 여자는 항상 검은 옷을 걸치고 다니면서, 과부인체 하였다. 실제로 그 여자는 남편과 두 자녀가 있었고 집 한채를 갖고 있었다. 돈과 음식을 받는 이외에, 새로운 옷감도 받았는데, 즉시 그것을 팔곤 하였다. 그 여자가 “일하는” 동안에, 그의 가족은 집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또 다른 걸인은 이와는 다른 책략을 썼다. 그 여자는 이웃 집에서 더럽고 우는 아이 하나를 데려와, 거리로 데리고 다니면서, 이렇게 호소하였다. “제발 동정해 주십시요. 이 어린이에게 우유를 사줄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물론 우는 어린이는 동정심을 불러 일으켰고, 많은 행인들은 그에게 얼마의 돈을 잽싸게 건네 주었다. 그런 다음 그 여자는 집으로 돌아와 그 애를 진짜 부모에게 넘겨 주고, 그들에게 “빌린” 삯을 조금 지불하였다.

어떤 걸인들은 이렇게 쓰인 ‘카아드’를 이용한다. “이러 저러해서, 이러 저러한 거리(실제로는 없는)에 사는데 앞을 못보며 자녀를 돌보기 위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걸인은 ‘버스’에 올라 타고, ‘카아드’를 승객들에게 건네 주고서, 다시 돌아가, 주었던 ‘카아드’와 기증물을 거두어 간다. 다른 이들은 상처와 타박상 부위를 보여 주면서 수술할 수 있도록 돈을 달라고 구걸한다. 그들은 매년 항상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 하지만 결코 수술하는 법이 없다.

또한, 걸인의 사생활은 일반적으로 매우 난잡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한 상대에게 싫증이 나거나 그 여자가 나를 괴롭히면, 나는 곧 그를 짐 싸 보내고 다른 상대를 구하였다.

그러한 방탕한 생활이 참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틀림없이 나에겐 그렇지 못하였다.

나는 빠져 나갈 길을 열망하였다

나는 내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울음을 터뜨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나는 내 자신에게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언젠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러한 걸인 생활을 집어 치울 때가 올거야.”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어떤 사건들이 나로 하여금 심각하게 생각하도록 하였다. ‘캠피나 그란데’에서, 내 걸인 친구는 어떤 술집에서 술에 취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일하러 가, 이 게으름장이야, 넌 나태하고 술취한 건달이야.” 나는 구걸 행세가 나와 같은 신체적 불구자에게 생계를 이어 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이 말은 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우울해 질 때면, 나를 정기적으로 도와 주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당신은 우리에게 걸인이 아니요. ‘조오지’, 우리는 당신을 돕고 싶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대한 대접은 가끔 그 정반대였다. 어떤 남자는 나에게 “지옥으로 가서 동냥해”하고 소리쳤다. 이건 나를 슬프게 하였다. 내가 평생을 이처럼 살아가야 하겠는가?

어느날 수도에서 구걸 원정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내 옆에 앉아 있는 한 젊은 사람이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성경을 꺼내어 모든 질병, 허약함, 굶주림, 그리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없애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이사야 33:24; 35:6; 시 72:16; 이사야 25:8) 나는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에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전 지구를 낙원으로 변화시키는 거예요”라고 그는 말하였다. 낙원이라고? 이 말은 나의 주의를 끌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제 동냥하러 구걸하는 이 비참한 인생을 버릴 때가 왔군.” 우리는 그가 나를 방문하도록 마련하였다. 바로 약속된 시간에 그 젊은이는 대화를 계속하기 위해 초라한 내 집으로 찾아 왔다.

그가 떠날 때 우리는 다른 날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 나는 약속한 그 시간에 내가 자주 다녔던 ‘부우두우’교 ‘센터’에서 열리는 한 회기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였다. 일주일 내내 나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어떻게 해야 되나—성서를 공부할까 아니면 ‘부우두우’교 회기에 참석할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 결정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다. 사실상, 공부를 한지 몇주 후 창조주께서는 모든 형태의 강신술을 정죄하신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신명 18:9-13; 계시 21:8)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나는 ‘부우두우’교와의 관계를 곧 끊었으며 이 젊은이가 참석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과 연합하기 시작했다.

걸인 생활을 청산한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걸인 생활을 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성서의 표준은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이기 때문이다. (데살로니가 후 3:10) 그러나 내가 어떻게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 지방에서는 신체가 건전하다 해도 일자리를 찾기란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은 얼마나 더 힘들겠는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친절하게도, 증인 중 한 사람이 ‘코코넛’ 과자의 제조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판 것으로는 살아가기에 충분치 못하였다. 그래서 나는 구걸을 계속하였다. 나는 낙담하였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것인가?

어느날 나는 시편 37:25에서 성서가 말하고 있는 내용을 읽게 되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이것은 인상적이었다. 시편 필자의 말이 옳았는가? 나는 내 자신이 그것을 증명해야 했다. 나는 자기 연민을 보여 주는 내 외관부터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짝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부터 나는 더 이상 구걸하러 다니지 않을거야.” 그 여자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살아가죠? 우리는 굶어 죽을거예요!”

“여호와께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필수품을 제공해 주실 것으로 확신해.”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께 간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지.” 나는 마태 복음 6:31-34을 생각하였으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첫째로 구한다면 물질적 필요를 얻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때 이후로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셨다. 결코 다시는, 내가 걸식하러 손을 내밀지 않았다. 나는 일을 하여 우리의 필수품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시편 필자의 말이 옳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방 회중의 증인들은 나에게 조언을 더 해 주었고 과자 제조에 필요한 원자료를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나는 제조하여 계속 팔았다. 이와 더불어, 일주일에 몇차례 도시에 있는 헌종이를 모아다가 팔곤 하였다. 조금 후, 증인들은 내가 병약자에게 매달 지급되는 소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정말로,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도움을 통하여 사랑에 넘친 공급자이심이 증명되었다.

때가 되어 나는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표준을 배우게 되었고 내가 여러 해 동안 같이 살아 왔던 짝과의 결합을 합법화하였다. 그리하여, 1975년 4월 13일,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다. 나는 더욱 회중의 활동에 몰두하게 되었고, 심지어 매주 회중의 성서 연구 중 하나를 사회하기까지 되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이처럼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사도 20:35.

처음에, 아내는 이러한 모든 활동에 우려를 얼마쯤 나타내었다. 그러나 정말 기쁘게도, 아내도 곧 성서 연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우리가 배우는 좋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데 나와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10살된 양녀도 우리와 같이 참여하고 있다.

때때로 나는 이전의 걸인 친구들을 만난다. 그들이 나에게 왜 내가 구걸하는 일을 포기했는지 물을 때면, 나는 그들에게 말해 주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우기, 내가 궁핍해 있을 때 나를 도와 주었던 모든 친절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쓸모없는 걸인의 생활로부터 나를 자유케 했는지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구걸하는 자로부터 주는 자로 변화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이 “값없이 생명수를 받”도록 격려하고 있다—계시 22:17.

실제로 슬픈 상태에 처해 있는 걸인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현 사물의 제도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가까운 장래에 마련해 놓으신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노력하고 있다. 더러는 주의깊이 듣고 더러는 비웃는다. 그러나 나는 성서의 약속이 믿음직하다고 확신한다.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에서 건강한 신체를 갖게 된다는 감격적인 가능성은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준다. 그러한 신체를 갖는다면 나는 구걸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인의 인생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출발점이 되었던 그 희망을 실현하는 데 나의 손과 발을 사용할 것이다. 즉, 지구가 모두에게 “화곡이 풍성”한 낙원이 되도록 일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 72:16) 그때가 되면 어느 누구도 구걸하러 다녀야 할 이유가 없게 될 것이다.

[25면 삽입]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난하고 배고프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12명의 고아가 남게 되었다.

[26면 삽입]

‘어떻게 해야 하나—성서를 공부할까 아니면 ‘부우두우’교 회기에 참석할까? 나는 결정하였다.’

[27면 삽입]

“나는 내가 그리스도인이면서 동시에 걸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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