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은 묻는다 ···
나는 어른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낯선 사람이 주는 사탕을 받아먹지 말아라. 모르는 사람과 함께 절대로 차를 타지 말아라.” 어머니의 이러한 귀익은 경고는 어른들의 세계는 모두 좋지 않다는 인상을 주었다.
“30이 넘은 사람은 아무도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은 몇년 전에 반전 항의자들의 구호가 되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경고를 이렇게 확대하였다. “만일 그들의 사탕을 받아먹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면, 그들의 충고를 받아들일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그들은 추리하였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것은 너무 지나친 생각인가, 아니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생각인가?
그럴 듯한 것에 속지 말라
어른들의 세계가 제공하는 것을 평가하는 데 있어 조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기회주의자들은 합법적으로 혹은 비합법적으로 청소년을 그들의 목표로 삼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돈을 조심하라. “21세 미만의 집단 가운데는 구두쇠가 거의 없으며, 회사들은 수지맞는 시장을 얻어내기 위해 다투고 있다”고 「유우 에스 뉴우스 앤드 워얼드 리포오트」지는 1981년에 논평하였다. 청소년들이 많은 용돈을 쓰지 못하는 나라들에서도, 불법적인 미성년 노동이 상업주의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5세부터, 광산과 농장에서, 혹사시키는 공장과 도시의 거리에서 ··· 착취당하는 어린이의 수가 수백만에 이르며, 그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착취당하는 세계의 어린이들: 슬프게도 늘어나고 있다」, 1980년, 미 노동성.
그러나, “나는 합당한 위치에 있는 나이든 사람들을 신뢰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지 모른다. 신뢰받는 친구들은 서로의 교제를 즐기며, 상호간에 영향을 준다. 대개 그들의 개성이 뚜렷할수록, 더욱 흥미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연령에 관계없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배”우기 때문이다.—잠언 27:17, 오늘날의 영어 역본.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어른들과 화목하게 지냅니다. 그러나 나는 어른들과 정말로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라고 한 15세 소녀는 시인하였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어른들을 어른들로 즉 조심해야 할 어떤 대상으로 생각하지요.” 동일하게 불안해 하는 많은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있는 곳에서는 말을 조심한다.
이것은 일부 청소년들이 어른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가지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나는 어른들과 마음을 툭 터놓고 지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항상 겉도는 관계였지요”라고 십대 시절에 절대로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뉴우요오크’에 사는 한 젊은 여자인 ‘데레스’는 시인하였다. “나의 좌우명은 ‘어른들에게 너무 많이 알려 주지 말라—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이다’였어요.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듣기 원하는 것만 말하였고 내가 즐겨하는 일은 비밀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착취당하거나 상처를 입을 것에 대한 두려움은 이러한 불신에 대한 한 가지 이유에 불과하다. 많은 청소년들의 경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씁쓸한 경험에서 유래한다.
어른들의 위선
“나는 일부 그러한 사람들을 만났지요”라고 한 보험 회사 주주는 어떤 회사 간부들이 약 500,000,000‘달러’를 횡령한 후에 말하였다. “그들은 훌륭해 보였읍니다”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깨끗이 면도를 하고, 깨끗한 ‘셔어츠’에 멋지게 차려입었읍니다. 그들은 분명히 사기꾼 같아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기꾼들이었다. 겉모습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어른들은 엄청난 부패를 외관상의 존경할 만한 사회적 신분으로 덮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만일 어른들이 우리에게 정직하지 않다면, 그들에게 진실을 털어놓을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할지 모른다. 그렇다, “만일 그들이 하는 말이 보이기 위한 것이고 그렇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누가 그들의 충고를 필요로 하겠는가?”
그러나 기억하라—위선은 오늘날의 어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당시의 일부 사람들을 가리켜 “위선자들” 및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가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의 모든 충고를 무시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한다고 말씀하셨다. 분명히 그들의 충고의 일부는 누구에게나 유익을 줄 건전한 원칙에 근거한 것이었다.—마태 23:3, 25-28, 신세 참조.
당신은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는 일부 어른들을 본 적이 있는가? 이로 인해 실망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충고—특히 성경의 충고—에 역행하는 이유가 고작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기 때문인가? 그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실패로 끝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당신은 위선이 청소년들 가운데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나이든 사람들의 위선을 가장 잘 극복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친구들이나 나와 같은 진지한 ‘히피’들이 더 훌륭하고 ‘선택된 자들’이라고 생각하였지요”라고 ‘톰’은 설명한다. “우리는 세상이 그 자체의 부패로 무너질 때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썩은 제도를 속이는 일’을 승인하였어요. 나하고 가장 친한 친구는 원예업을 시작하였지요. 그가 정직하지 않은 것이 나를 격분하게 하였읍니다. 나는 그가 우리의 견해를 부정직하기 위한 구실로 이용하는 것을 보았지요. 우리 청소년들은 우리가 항의하던 바로 그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분명히 더 나은 길이 있다.
선택적이 되라
‘데레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고등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어른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지만, 18세가 되었을 때 무언가가 생각을 바꾸어 놓았읍니다. 나는 신뢰할 만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알아보는 법을 배운거죠. 나는 정직하고 자상하며 아주 솔직하게 나를 대해 줄 수 있다고 확신시켜 주는 어떤 어른들을 만났어요.” 그는 선택적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데레스’는, 위선적인 어른들의 세계에 대해 동일하게 혐오감을 가졌던 이전의 ‘히피’들인 ‘자네트’와 ‘댄’을 만났다. 그들은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공동 생활을 하였었다. 거기에서 이 부부는 평화와 사랑이 장려되기는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네트’와 ‘댄’은 그 이래 ‘여호와의 증인’들이 되었다. 그들은 ‘데레스’에게 솔직하고 정직하게 현재 그들의 생활이 더 나아진 이유를 설명하였다.
“나는 그들과 함께 왕국회관에 갔으며 나이든 ‘증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읍니다”라고 ‘데레스’는 말한다. “그들은 나를 그들 수준으로 대하였으며 어리다는 이유로 나를 말로 압도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나에게 관심을 나타내면서, 나의 생활에 관해 묻고 그들 자신의 과거에 관한 것, 즉 그들이 어떤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그들이 현재의 생활 방식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를 기꺼이 자진해서 알려 주었읍니다. 그들이 아주 솔직하고 정직하여 아무에게도 인상적이 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이끌렸읍니다.” ‘데레스’는 그들이 생활의 지침으로 삼는 원칙들에 감탄하였다. 그는 위선을 전혀 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신뢰할 수 있는 나이든 사람들을 선택하는 방법이 되었다. 당신도 동일한 분별력을 나타낼 수 있다.a
신뢰하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유익
‘데레스’는 이렇게 지적한다. “어른들을 신뢰하기 시작하자, 나는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지요. 어떤 사람이 30세이든 50세이든 80세이든지 간에 그는 내가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을 알고 있었읍니다. 나는 어떤 나이든 사람이 한 말을 아주 쉽게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을 버렸읍니다.”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경험이 많은 사람들—부모, 선생님, 관청의 감독관 및 장(長)들—에게는, 친밀한 관계를 수립하기만 한다면 함께 나눌 가치있는 자원이 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우물 속의 물과 같지만, 통찰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이끌어 낼 수 있다.”—잠언 20:5, 오늘날의 영어 역본.
“그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 특히 처음에 솔선할 수 있다. “나는 처음에는 나이든 분들과 억지로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안 되었어요”라고 ‘존’은 고백하였다. 그는 현재 24세에 가치있는 결과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의 청소년 동배들과만 교제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미쉬간’ 주 ‘디트로이트’에 사는 이 청년은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항상 알고 있지는 않았지만, 악수를 하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곤 하였읍니다. 놀랍게도, 나이든 분들은 대개 나의 관심사에 호의를 나타내며 대화를 이끌었어요. 나는 그것이 생각한 만큼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존’은 그러한 상호 신뢰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었는가? “어른들과의 이야기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과는 여자 아이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어른들에게는 우리를 폭넓게 해주고 풍요롭게 할 경험이 있지요.”
그러므로 솔선하여 어른들을 신뢰하도록 하라. 우리 모두는 신뢰받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면 그는 거의 틀림없이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신뢰한 누군가가 당신을 실망시킨다면, 그 경험으로부터 배우라. 씁쓸해 하며 돌아서지 말라. (잠언 25:19) 어른들 세계의 위선으로 인해 의욕을 잃을 필요는 없다. 조심스럽고 선택적이라면 당신은 나이든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관계가 더욱 발전할 것이다.
[각주]
[21면 삽화]
어른들과의 따뜻한 대화는 인생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