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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성적을 염려하는가?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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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4 7/1 21-23면

청소년들은 묻는다 ·⁠·⁠·

왜 성적을 염려하는가?

“성적을 매기는 것은 도의상 잘못이며 실제적으로 효과가 없다. 그것은 배움의 주요한 방해물이다.” 교사 ‘제임스 벨란카’는 성적이 자기 자녀들에게 준 “부정적인 영향”을 관찰한 뒤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본 잡지의 전 호에서는 바로 그런 문제들 중 얼마를 다루었다. 그러면 성적이란 하찮은 것으로서 없애버려야만 할 성질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극복해야 할 얼마의 어려운 일들이 있다.

“짐작하는 것이 최선책”

17세된 한 소년은 어느 선생이 출제한 시험 문제를 가리켜 “사고(思考)는 조금도 요하지 않는 단지 순전한 암기” ‘테스트’라고 묘사한다. 숙제에 관하여도 자주 유사한 불평을 듣게 된다. “선생님들은 때때로 그림을 그려 오게 하는 것과 같은 정말 무의미한 숙제를 낸답니다” 하고 14세된 ‘레스’는 말한다. “우리 학교에서는 미술을 잘못하면 곤경에 처합니다” 하고 17세된 ‘히터’는 부언한다. 이 점에 대해서 ‘윌리엄 글래서’ 박사 같은 저명한 교육자들까지도 종종 학교가 청소년들에게 사고하고 분석하고 추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에서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솔직히, 학생들의 기억력을 평가하는 것이 그들의 추리력을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한 소년은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 선생님의] 시험 문제는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것이어서 공부를 한 사람이나 하지 않은 사람 모두가 다 똑같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읍니다. 짐작하는 것이 최선책이었읍니다.”

짐작하거나 마지막 순간에 외우는 것이 시험 점수를 따게 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나 많은 것이 머리에 남겠는가? 만일 수학과 같은 과목에 숙달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회계 장부를 결산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수학 실력이 필요할 때 좋은 성적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으로, 만일 ‘커닝’에 의존한다면—한 연구 조사는 조사에 응한 청소년들 중 무려 55‘퍼센트’가 ‘커닝’을 고백한다고 한다—성적표에 나오는 최고 점수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사고력”의 배양

물론, 많은 교사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잘 알고 있으며, 도전이 되면서도 자극을 주는 시험 문제와 숙제를 낸다. 그러나 만일 짐작하거나 외우는 것이 성공하는 길처럼 보이는 즉 배우는 것이 성적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나는 학급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가? 단순히 좋은 성적을 얻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이 “사고력”이라고 부른 것을 배양할 목표를 세워야 한다. (잠언 1:4, 신세) 이것은 지식 그 자체를 취한 다음 그것으로부터 건전하고 실용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는 숙련된 기술을 말한다.

사고력은 어떻게 개발되는가? ‘솔로몬’은 “지혜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말한다. (잠언 1:5) 그러므로 선생님이 감동적으로 강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의를 잘 들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실 앞자리에 앉을 것이다. 질문을 하라. 주제에 깊이 파고 들므로, 특히 주제가 지루해 보일 때 그렇게 함으로, “학식이 더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방법은 배우고 있는 것에 관한 실용적 가치를 찾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청소년들이 갖는 참 이익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서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잠언 1:7) 예를 들어, 과학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물리 법칙을 배우는 것은 매우 고된 일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청소년은 창조주에 관하여 가능한 대로 많이 배우기를 원한다. 그는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이] ·⁠·⁠· 분명히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안다. (로마 1:20, 새번역) 그리하여 과학 시간은 여호와의 창조의 지혜에 관해 더 많은 지식을 얻는 기회가 된다.

역사에 관하여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은, 역사가 여호와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과 매우 자주 관련되기 때문에 이에 관심을 갖는다. (현재의 영-미 연합 세력을 포함하여) 일곱 주요 세계 강국들이 바로 성서에서 거론되고 있다! (계시 17:10; 다니엘 7장) 이 예언들이 어떻게 정확히 성취되는지를 보는 것은 믿음을 세워준다.

만일 우리가 학교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우리의 “사고력”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

낙제

낙제하는 것, 특히 진급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서 그렇게 되는 것은 청소년의 자존심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서두에 언급된 ‘벨란카’ 씨와 같이, 어떤이들은 성적을 폐지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하지만 교육자 ‘맥스 래퍼티’는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무엇을 알고 있는가, 얼마나 좋은 결과를 얻는가에 대해 성적이 매겨진다. ·⁠·⁠· 아이들에게 삶이란 모두가 ‘로마’의 꽃불이 되는 것이란 생각을 하도록 속이는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꿈을 만드는 공장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폴 코퍼만’은 그의 저서 「교육의 기만」(The Literacy Hoax)에서 이렇게 고발한다: “아이들의 자부심에는 관심이 없이 표준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현대 교육자들이 아이들에게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자기 구실을 할 준비를 충분히 시키지 않은 채 세상에 내보낼 때 그것은 그들이 아이들에게 훨씬 더 심각하게 해를 입히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위태로운 나라”라는 제목이 붙은, 미국의 교육에 관한 최근의 한 보고서는 단지 미국에만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준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는지 설명한다. “일상적으로 읽고 쓰고 이해하는 것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시험해 본 결과 약 2천 3백만명의 미국 성인들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고 이 보고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시험을 못치거나 집에 나쁜 성적표를 가져오는 일 때문에 가끔 수치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삶을 위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학교를 나올 때의 고통이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시험을 못쳤을 때 섭섭히 느끼는 대신,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부터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여 틀린 답을 시정해 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압박감’

학령기의 한 청소년 집단은 시험이 압박감을 주는가 하는 질문을 받고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 시험을 잘보느냐 못보느냐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관심한 척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결과 즉 나쁜 성적표를 집에 가져올 때는 어떤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어떤 청소년들은 “그것은 확실히 압박감을 주지요!” 하고 말했다.

참으로, 실망하는 부모를 대하기가 두려워서 때때로 교묘한 술책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나는 보통 성적표를 부엌 식탁 위에 놔두고 방으로 올라가 다음 날이 될 때까지 잠을 청하곤 했읍니다” 하고 한 소년은 회상한다. 또 한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렇게 합니다. 즉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어머니에게 그것을 보이는 겁니다. 아침에 막 일터로 나가려 할 때 보여드리면서 ‘여기에 서명해 주셔야 하는데요’ 하고 말하지요. 나를 대하실 시간이 없는 거지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러하다.

“나는 간단하게 성적표의 점수를 고치곤 합니다” 하고 성적표를 위조하기까지 한 또 다른 한 소녀는 말했다. 이 여학생은 이렇게 자백한다. “그런데 탄로가 났읍니다.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제가 다음 학기에는 좀더 잘 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지요. 어머니는 ‘하지만 그 애는 85점을 받았는데요!’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제가 6자를 8자로 고쳤다는 것을 아시게 된 겁니다.”

성적이 분명히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전쟁과 평화의 차이를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위조나 술책은 평화를 유지하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부모가 여러분이 학교에서 발전하는 데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분들은 여러분에게 가장 유익한 것을 바라시며 학교에서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어떤 부모들이 좀 지나친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할 경우, 고등 학교 교사인 ‘바바라 메이어’는 “만일 부모가 정직하게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의사 소통을 하고자 약간만 시도해 보아도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부모가 참으로 여러분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안다면, 그분들은 자신이 취한 입장을 재고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부모는 단지 성적이 능력을 반영하기를 바란다. 따라서 성적이 평균을 밑돌 경우, 아마 어느 정도의 격려나 훈계가 필요할지 모른다. ‘솔로몬’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고 말했다. (잠언 1:8) 물론, 나쁜 성적에 대한 정당한 이유(아마도 건강이나 감정적 흥분과 같은 것)가 있다면 부모에게 알릴 것이다. 분명 그분들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적은 얼마나 중요한가? 결점이 있고 때때로 그리 정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더라도, 성적은 유용한 도구이다. 그 모든 흠과 문제점들이 있다 해도, 성적은 여러분이, 교사들이 그리고 부모들이 학교에서 여러분이 발전하는 것에 관해 주의를 기울이는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성적을 적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극복해야 할 도전이자 장애물로 간주할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곳에서의 배움의 기회들을 모두 이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삶에서의 참 교육은 성적표가 아니라 머리 속에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22면 삽화]

잘 듣고, 질문을 하라—학급 토론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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