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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4 9/1 4-8면

과학계의 사기: 그 이면을 살펴봄

현미경을 들여다보던 과학자는 그가 본 것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알았다!” 하고 외쳤다. 그리하여 또 하나의 과학적 대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과학의 승리에 관해 믿도록 가르침받은 것이다. 잠시 국민 학교의 과학 수업을 회상해 보라. 과학의 영예의 전당에 있는 위인들을 기억하는가? ‘갈릴레오’, ‘뉴우튼’, ‘다아윈’ 및 ‘아인시타인’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과학상의 업적뿐 아니라 그들의 덕 곧 객관성, 헌신, 정직성, 겸손 등으로도 칭찬을 받는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의 뛰어난 지성과 이성의 순수한 힘으로, 자연의 신비들이 그대로 정체를 드러내고 진리가 그들 앞에 그저 불쑥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경우에, 과학자들은 여러 달 혹은 여러 해를 바쳐 실험실에서 진통을 겪으며, 종종 혼란을 일으키고 당황하게 하며 심지어 모순되는 결과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상적으로, 사람들은 헌신적인 과학자는 진리가 발견될 때까지 용감하게 밀고 나갈 것이라고 기대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일반적으로 우리는 굳게 닫힌 실험실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과학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편견, 경쟁심, 야망 및 탐욕과 같은 인간의 보다 천한 특성들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가?

“진리를 획득하는 일에 관심이 있는 과학자는 개인의 기호와 인간적인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교훈을 받게 된다”고 ‘미가엘 마호니’는 「오늘의 심리학」(Psychology Today)에 기술하였다. “그러나, 초기와 현대 과학의 역사는 모두 이러한 묘사가 틀린 것임을 시사한다.”

그와 비슷한 취지에서, 기고가인 ‘알랜 라이트맨’은 「사이언스 83」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과학의 역사는 개인의 편견, 현혹시키는 철학적인 주제, 배역이 잘못된 배우들로 가득 차 있다. ·⁠·⁠· 나는 과학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연구에서 때때로 편견을 나타낸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명이 당신을 놀라게 하는가? 동요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설명들이 적어도 당신이 과학과 과학자들에 관해 가졌던 ‘이미지’를 흐려 놓았는가? 그 제목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과거의 이름있는 과학자들까지도 그들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을 진척시키기 위해 비윤리적인 방법의 사용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아이삭 뉴우튼’은 흔히 우주 중력 이론에 관한 그의 개척자적인 연구로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의 유명한 논문 「물리학의 수학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가 발표되었을 때, 그 생각은 독일의 수학자 ‘고트프리이드 라이프니쯔’를 포함한 당대의 일부 과학자들의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 장기간에 걸친 불화를 가져 왔으며, 그러한 불화는 그들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사이언스」에 기고하면서, ‘리차아드 S. 웨스트폴’은 ‘뉴우튼’이 자기 입장을 강화시키기 위해 「원리」에 나오는 그의 계산과 측정이 그의 이론을 더욱 밀접히 뒷받침하여 그 이론이 더욱 설득력있는 것이 되도록 몇 가지 “손질”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 한 예로, 3,000 대 1의 정확성을 주장하였고 또 다른 계산에서 그는 그 시대에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소수 일곱째 자리까지의 계산을 늘어 놓았다. “만일 「원리」가 현대 과학의 계량 방식을 확립한 것이라면, 그것은 덜 숭고한 진리임을 암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수학의 대가 자신만큼 효과적으로 조작 요소를 그럴듯 하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웨스트폴’은 기술하였다.

‘뉴우튼’은 결국 자신을 속인 또 다른 논쟁에 끌려들어 가게 하였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뉴우튼’은 ‘라이프니쯔’보다 미적분학을 먼저 발명하였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존경받는 왕립 학회 회장으로서 “그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편견 없는’ 위원회[대부분 그의 지지자들로 구성되었음]를 임명하여, 그 학회가 공식 발행한 보고서를 비밀리에 썼고, 「철학 회보」(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익명으로 그에 대한 평을 하”였으며, 그리하여 자신에게 영예를 돌렸다.

‘뉴우튼’과 같은 고매한 사람이 그런 책략을 썼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다. 과학자든 누구든 다른 일에는 양심적이고 존경할 만한 사람일지라도, 자신의 명성이나 이익이 걸려 있을 때는 아주 독단적이고 이성을 잃고, 심지어 무모해지거나 지름길을 택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증명된다.

“과학자들도 인간이며,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약점에 굴복하기 쉽고, 과장하고, 소심하고, 정직하면서 교활하고, 거의 동일한 정도로 어리석으면서 분별력이 있고, 몇 가지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은 진부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치적인 생각으로 보인다”고 상담가 ‘로이 허버어트’는 「뉴우 사이언티스트」에 기술한다. 이러한 견해가 과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주장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러한 견해를 받아들이기가 전혀 어렵지 않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나, 과학의 빈틈없고 자가 시정하는 자가 단속 체제라 주장되는 체제 곧 재검토와 심판 판정 및 실험의 반복 과정은 어떠한가?

일류 연구소에서의 널리 알려지게 된 최근의 일련의 사기 행위로 인해, 미 의과 대학 협회는 연구의 사기 행위를 처리하는 방법에 관한 지침을 상세히 설명하는 보고서를 발행하였다. 근본적으로, 그 보고서는 “사기성이 있는 자료는 내놓자마자 발각될 압도적인 가능성”이 비윤리적인 행위를 못하게 하는 보호책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과학계 안팎의 다른 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일치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사설은 그 보고서를 “과학 사기 행위의 피상적인 진단”이라고 부르면서, “원래 과학자들이 서로의 연구를 검토해 보는 표준 장치를 통해 폭로된 사기 행위는 이제까지 없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실, 그 보고서 위원회의 한 위원이며 또한 「뉴우 잉글랜드 의학지」의 편집인인 ‘아놀드 S. 렐만’ 박사도 마찬가지로 그 보고서의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동류의 재검토가 사기 행위에 대한 무슨 보호책이 되겠는가?”라고 그는 질문하였다. “거의 혹은 전혀 안 된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렐만’은 계속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기성이 있는 연구 논문이 매우 엄격한 표준을 가진 일부 잡지를 포함한 동배 과학자의 재검토를 받는 잡지들에 발표되었다. 우리가 발표한 두편의 논문의 경우에, 부정직하다는 어떤 암시도 어떤 심판이나 편집자들에 의해 제기되지 않았다.”

사기 행위를 발견하는 일에서의 실험의 반복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는, 이론과 실제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오늘날의 고도로 경쟁적인 과학 연구 분야에서, 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이 끝마친 일을 반복하는 일보다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 어떤 과학자의 연구가 다른 과학자가 한 실험에 기초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는 실험은 거의 없다.

실험의 반복 문제는 때때로 ‘살라미’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에 의해 더욱 혼란이 초래된다. 일부 연구가들은 발표할 수 있는 연구 논문의 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그들이 실험을 통해 발견한 사실들을 작은 덩어리로 ‘나눈다.’ 이것은 “그런 보고서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확인될 가능성이 더 적기 때문에” “부정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아버드’ 위원회는 말한다. 연구가들은 그다지 중요한 실험이 아니면, 누군가가 그 실험을 반복하려고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발표된 모든 논문의 반이나 되는 수가 “검토되지도, 실험이 반복되지도 않으며, 아마 심지어 읽혀지지도 않”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도로서의 과학이 실패하고 있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와는 정 반대로, 많은 중요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으며, 많은 유용한 발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자주 관리 제도인 과학, 곧 과학의 진보가 상호 신뢰와 과학계 내의 지식의 교환에 기초한 것이라는 이념에 영예가 된다.

연구에서의 최근의 사기 사건들이 증명해 주는 단순한 사실은 이러한 이념에 한계가 있으며 과학 사회의 성원 모두가 똑같이 그것을 준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들은 자가 단속하고 자가 시정하는 과학의 장치 내에 그 체제를 속이려 마음먹은, 그 계통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상당한 헛점들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른 모든 일에서처럼, 경제가 과학계에서 큰 역할을 한다. 자활하는 창의력이 풍부한 재간꾼들의 시대는 분명히 지났다. 오늘날의 과학 연구는 많은 돈이 들며, 그 중 상당액을 정부, 산업체나 기타 재단 및 공공 기관이 부담한다. 그러나 경제 파탄과 예산 삭감이 보조금을 점점 더 얻기 어렵게 만든다. 해마다 약 40억 ‘달러’의 예산으로 미국 내에서 수행되는 모든 생의학 연구의 약 40‘퍼센트’의 기금을 대는 미 국립 보건 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에 따르면, NIH 보조금 신청자들의 약 30‘퍼센트’만이 보조금을 받으며, 반면에 1950년대에는 그 수치가 약 70‘퍼센트’였다고 한다.

이것은 연구가들이 이제는 질이 아니라 양에 중점을 두게 되어 ‘알려지느냐 망하느냐’ 하는 심리를 갖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심지어 인정받는 과학자들까지도 종종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일보다도 많은 비용이 드는 실험실을 유지하기 위해 기금을 모으는 일에 더 몰두하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50만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고 있던 한 의사가 망한 원인이 되었다.

이 의사는 검토할 한 논문을 제공받았는데, 그것은 발표되기에 앞서 재조사를 받기 위해 그의 바쁜 감독관에게 보내어진 것이다. 그 논문은 우연히 그도 연구하고 있는 제목을 다룬 것이었다. 그 논문을 정직하게 평가함으로 자기가 우선권과 아마 그에 따른 보조금을 상실할 위험성을 무릅쓴 것이 아니라, 그 의사는 부리나케 자기 실험을 마무리짓고, 다른 논문에서 일부 내용을 표절하여, 발표하도록 자신의 연구 논문을 제출한 것이다.

사실상 대망을 품는 과학자들, 특히 의학분야의 과학자들은 인생에서 일찌기 성공해야 된다는 압력을 느낀다. “의학부 예과 학생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시험에서의 부정 행위 이야기는 흔한 일이며, 본과로의 입학을 보장받기 위해 고학년에 오르려는 경쟁이 윤리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행실을 고무하는 것이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아버드’ 의과 대학의 전 학장 ‘로버트 에버트’는 말하였다.

이처럼 초기에 틀잡힌 경향은 압력이 훨씬 더 강한 전문 직업으로 쉽게 이전된다. “성공이 윤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필수품이 되도록 용납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천사들이라도 타락할 수 있다”고 ‘에버트’는 한탄하였다.

현재의 상황은 ‘시카고’ 대학교 ‘스데펜 투울민’의 다음과 같은 말로 잘 요약된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다 초기인 ‘아마튜어’ 단계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일을 할 기회들을 만들지 않고는 어떤 일을 고액의 보수를 받고, 고도로 경쟁적이며 고도의 체제를 갖춘 일로 바꾸어 놓을 수 없다.”

과학 연구 세계를 간단히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과학자의 연구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그들이 받은 훈련에도 불구하고 장점들에 물들은 만큼이나 인간적인 약점들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험실의 겉을 희게 칠하는 것이 실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사실, 오늘날의 과학계 내에서의 압력과 경쟁 때문에 수상쩍은 지름길을 찾게 하려는 유혹은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

과학계의 사기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과학에도 남의 이목을 꺼리는 부끄러운 일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그러한 일들이 보통 잘 감추어지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런 일들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일들이 이따금 폭로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과학과 과학자들이 종종 각별한 존경을 받기는 하지만 그러한 그들의 위치가 주의깊이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6면 삽입]

“과학자들은 누구나 그들의 연구에서 때때로 편견을 나타낸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6면 삽입]

“동류의 재검토가 사기 행위에 대한 무슨 보호책이 되겠는가?”

[7면 삽입]

과학에도 남의 이목을 꺼리는 부끄러운 일이 있다

[7면 네모]

과학의 사기 기술

1830년에 영국의 수학자 ‘차알스 바비지’는 그가 관찰한 그 당시의 과학계의 상황을 요약하는 「영국에서의 과학 쇠퇴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Decline of Science in England)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그 책 속에, ‘바비지’는 일부 과학자들이 그들이 기대했던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행하거나 행하도록 유혹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들을 열거하였다.

“손질”, 자료가 아주 빈틈없이 정확하고 정밀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불규칙한 점들을 다듬는 경우.

“요리”, 자기 이론에 가장 적합한 결과들 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경우.

“위조”, 최악의 경우로, 행해졌거나 행해지지 않았을 지 모르는 실험에서, 자료의 일부 혹은 전부를 날조한 경우.

[5면 삽화]

‘아이삭 뉴우튼’까지도 자기 이론을 뒷받침하도록 자료를 손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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