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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도와 유익도를 고려할 우리의 권리
  • 깨어라!—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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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84 10/15 14-17면

위험도와 유익도를 고려할 우리의 권리

자신의 몸은 자기 것이다. 자신의 생명은 자기 것이다. 이 말들은 단순 명료해 보일지 모르지만, 치료법에 관련된 우리의 기본적 권리를 지적해 준다. 자신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다. 많은 사람들은 제 2의 의견을 들어 보고 나서 결정을 함으로써 이 권리를 행사한다. 또 특정한 치료법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1983년에 ‘로렌 H. 로드’ 박사가 실시한 한 연구에서 밝혀준 바에 의하면 ‘병원 환자의 20‘퍼센트’가 치료를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가 병들거나 부상을 입었다면, 어떻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의사도 아니면서 어떻게 최상의 요법을 알 수 있는가? 대개 우리는 전문가들, 즉 전문 교육을 받고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을 도와줄 책임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에게 의뢰한다. 의사와 환자는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것은 무엇인가?

가령 독자의 무릎에 통증이 있다고 하자. 의사는 수술을 하라고 추천한다. 그러나 마취하고 수술하는 데에는 어떠한 위험, 즉 수술 후 다리 기능에 어떠한 위험이 따를 것인가? 반면에, 어떠한 유익점들이 잠재해 있으며 자신의 경우에 그러한 유익을 얻을 가능성은 어떠한가? 일단 위험도와 유익도 양상이 설명되었다면, 치료법을 지식에 기초하여 승낙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결정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위험도와 유익도를 고려해 봄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을 실제 상황, 즉 앞서 언급한 ‘주셉페 오네다’와 ‘콘실랴 오네다’의 경우로 고려해 보자.

그들의 딸 ‘이사벨라’는 중병을 앓고 있었으며, 의사들은 그 아이에게 주기적인 수혈을 해야 한다고 추천(요구하기까지)하였다. 그 인자한 부모가 그것을 반대한 첫째 이유는 성서의 법에 대한 그들의 지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이 사태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자에게 피를 주사하는 것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요법인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7세기에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있어서, 흔히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방혈(放血)이 통상적인 의료 행위였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 자녀가 방혈을 당하는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났었겠는가?

방혈은 과거지사다. 현재 의료인들은 수혈을 옹호하고 있다. 근년에 들어 의사들이 많은 것을 성취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은 수혈이 위험하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죠셉 보브’ 박사(미국 혈액 은행 협회 산하 수혈 감염 질병에 관한 위원회 위원장)가 최근에 말한 바에 의하면, 혈액에 의해 수축성 간염이 최초로 발생한 때는 1943년이라고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약 40년 후인 현재, 수혈에 따르는 위험으로 인정되는 한 가지 위험은 혈액에 들어 있는 적어도 네 가지의 ‘바이러스’가 간염을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외에도 혈액과 혈액 산물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열거되는 감염 인자는 수없이 많다.”—「뉴우 잉글랜드 의학지」(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84년 1월 12일자.

독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 및 생명과 관련된 일들을 신중하게 고려해 보는 경우라면, 그 병들의 위험도는 얼마나 되는가? 심지어 의사들도 단언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병들로 인한 죽음은 수혈받은 지 오랜 후에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염의 한 가지 형태(B형)를 예로 들어 보자. 그 병을 선별하는 일의 성공률은 부분적인 것에 불과하다. 한 신문 보도(1984년 1월 10일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애틀랜타’에 있는 미국 전염병 예방 본부에 의하면, 1982년에 B형 간염에 걸린 미국인은 200,000명이나 된다. 급성 간염으로 인하여 병원에 입원한 사람은 15,000명이었으며 112명이 죽었다. 또 다른 4,000명이 그 병으로 인한 만성 합병증으로 죽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독일, 일본 및 기타 지방에서 수혈로 인한 간염으로 얼마나 죽었는가? 그렇다. 수혈로 말미암은 사망은 신중하게 고려해 보아야 할 심각한 위험이다.

또한, 수혈의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에서 위험도가 높아지고 있다. 1982년 5월에 (‘밀라노’의) ‘죠르죠 베네로니’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우리는 동종 혈액 수혈과 관련하여 점점 더 많은 위험들을 발견하고 있다.” 의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 가지 발견은 치사율이 극히 높은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다. ‘조셉 보브’ 박사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다.

“수혈받는 사람을 위해 의사들은 수혈의 위험도와 예상되는 유익도를 신중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개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욱 절실한 것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염려하는 환자에게 그가 수혈로 말미암아 AIDS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 사람이 더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1978년에 의사들은 ‘오네다’ 부부와 그 위험성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그 병이 밟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그 병을 알고 있다. 그처럼 수혈의 위험도가 더 높아졌음을 알게 되었으므로, ‘오네다’ 부부의 결정은 비난받을 일이 못 된다는 것이 더욱 명백하지 않은가?

부모가 위험도와 유익도를 고려해야 한다

성인은 수혈이나 여하한 요법이 수반하는 위험도와 유익도를 저울질해 볼 권리를 가지고 있다. “법적 성인은 누구나 자신의 몸의 주인으로 간주된다. 그는 자신의 몸을 현명하게도, 혹은 어리석게도 다룰 수 있다. 그는 심지어 생명을 구하는 치료법도 거부할 수 있다. 그것은 아무도 상관할 일이 아니다. 물론 국가가 상관할 일도 아니다.” (‘해스팅스 센터’ 회장 의학 박사 ‘윌러드 게일린’) 그러나 자녀를 위해서는 누가 위험도와 유익도를 저울질할 것인가?

일반적인 경험에 의하면 인자한 부모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 대답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자녀에게 편도선 문제가 있는데 수술을 제안받았다고 하자. 편도선 절제술의 이점과 위험에 대해 알고자 하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 그것과 항생제 요법의 위험도와 유익도 자료를 비교해 볼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부모들처럼 당신도 지식에 기초한 결론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이다.

보다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보자. 당신의 귀여운 자녀가 사실상 불치병인 일종의 암에 걸렸다는 슬픈 소식을 의사가 전해 준다고 하자. 의사들은 화학 요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화학 물질들은 자녀를 매우, 매우 병약하게 만들게 될 것이며 이 단계에서 그 병을 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거라고 말한다. 최종 결정을 내릴 권리는 당신에게 있지 않겠는가?

‘테렌스 F. 액커맨’ 박사가 쓴 기사를 보면 그렇다는 대답을 얻게 될 것이다.a 그는 국가가 미성년자들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법원 명령들이 많이 획득되었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저명한 의학 박사 ‘앤더슨’의 병원 및 종양 연구소에서는 수많은 경우에 ‘법원 명령에 의한 수혈을 추진하지 않는 정책’을 따라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어린이들 각자는 잠재적으로 치사적인 병을 앓고 있는 것이며, 성공적인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사벨라’의 경우도 그러하지 않은가?

‘액커맨’은 “부모가 합당하다고 여기는 방법으로 자기 자녀들을 양육할 부모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였다. 그는 이렇게 추리하였다. “소아과 의술에서 의사에게 부모와 가족을 지원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은 자명하다. 자녀에게 잠재적으로 치사적인 병이 있다는 진단은 부모에게 엄청난 압박감을 가한다. 게다가 하나님의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믿는 것과 부모가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부모 기능을 발휘할 능력은 더욱 해를 입게 될 것이다. 더우기, 가족의 복지는 병든 자녀의 복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대용 방법들

수혈의 여러 가지 위험들을 피하기 위하여 연구가들은 혈액의 필요성을 제한시키는 수술상의 기술들을 개발해 왔다. 사실상, 피에 대한 ‘증인’들의 입장이 이 연구를 촉진시켜 왔다. 1983년 말에 미국의 신문들은 미국 심장 협회의 한 대회에 상정된 보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삼 개월 내지 여덟 살된 48명의 아이들에게 심장 수술을 하면서 혈액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환자의 체온을 낮추고 혈액을 무기질과 영양분이 든 물로 희석하였다. 그러나 혈액은 주입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기술이 ‘여호와의 증인’의 자녀들에게만 사용되었다. 재래식 방법이 사용된 경우의 아이들보다 ‘증인’ 자녀들이 이 수술을 더 잘 견뎌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의사들은 이 기술을 그들의 환자 모두에게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해할 만하게도, 의사들이 수혈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1) 많은 의사들까지도 수혈이 참으로 긴요하다고 자기들이 확신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인정한다. (2) 불필요하게 혈액을 투여하는 오래된 해로운 습관이 있다. (3) 수혈의 위험도는 심각하기 때문에, 수혈의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에 대해 독단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부 병원들의 보고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에게 수혈을 하지 말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장래의 희망

다행히도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에 점점 더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같이 계몽된 나라들에서는 지식에 기초한 의료상의 결정들을 내릴 자유를 포함하여, 가능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의학 협회에서 출판한 한 소책자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의사가 추천하는 치료법이나 수술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하지 않음으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쓸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환자가 최종 결정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법이 인정하는 개인의 천부적인 권리이다.”

이 점은 또한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부모라면, 자기 자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의료상의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미국에 있는 판사들의 한 심의회는 “자녀에게 영향을 주는 의료상의 명령을 내리는 일에 관한, 판사들을 위한 지침”에서 이렇게 기술하였다.

“처치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라면,—예를 들어 의사는 성공 가능성이 80‘퍼센트’인 처치 방법을 추천하지만, 부모는 그것을 찬성하지 않고 성공 가능성이 40‘퍼센트’에 불과한 처치 방법에는 이의가 없을 경우—의사는 의학적으로는 보다 위험하지만 부모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행로를 따라야 한다.”

우리가 정확한 의료상의 지식을 얻을 권리—의무이기도 하다—를 인식한다면 그러한 조언은 매우 뜻깊은 것이 될 수 있다. 흔히 제 2의 견해를 알아보는 것이 현명하다. 의료적인 문제들을 다룰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과 각 요법의 잠재적 위험 및 유익점들에 관해 문의해 볼 것이다. 그러면, 이제 위험도와 유익도 비율을 아는 우리는 지식에 기초한 의료상의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법은 우리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음을 확증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양심은 우리에게 그러한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각주]

a “유익도의 한계: ‘여호와의 증인’들과 어린 시절의 암”, ‘헤스팅스 센터’ 보고서, 1980년 8월자.

[15면 네모]

두려워하는 한 소아과 의사

‘제임스 올레스크’ 교수는 최근에 다음과 같이 시인하였다:

“소아과 의사이자 면역학자인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 우리가 AIDS에 관해 알기 이전에 미숙아들에게 수많은 수혈을 행한 불안스러운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만일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에 공급된 혈액이 실재로 AIDS 인자로 오염되어 있었다면, 당시의 수많은 미숙아들이 그 인자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 문제는 AIDS를 확인하는 간단한 선별 검사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진단적 검사 외에는, 보균자이면서도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헌혈하는 사람을 구별해낼 수 있는 방법이 사실 전혀 없는 것이다.”—「다타 센트럼」, 1984년 1월호.

[16면 네모]

피—생명의 선물?

“‘샘 쿠쉬니크’가 지난 해 10월에 사망하였을 때, 그의 가족은 그에게 ‘유대’교 기도 복장을 입히고 그가 좋아하던 신을 신겨서 매장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장의사들은 그의 몸에 손을 대지 않으려고 하였다. 사망 진단서에 의하면, 그는 AIDS—후천성 면역 결핍증으로 죽은 것이다.

“‘쿠쉬니크’의 경우에 있어서 특이한 것은 AIDS 희생자가 죽어서 부랑아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샘’은 세 살에 불과하였고 우선적으로 그 병에 걸릴 위험성이 있는 집단, 즉 난잡한 동성애자들, ‘아이티’ 사람들 및 마약 중독자들에 속한 아이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에 산 그 어린 소년은 수혈을 받은 후에 그 병에 감염된, 적지만 점증하는 수의 AIDS 희생자들 중 한명이다.” (「월 스트리이트 저어널」 1984년 3월 12일자 1면) ‘샘’은 미숙아였다. 병원의 의사들은 그 아이의 피를 추출하여 검사를 하고 나서 그 피를 헌혈된 피와 함께 다시 수혈하였다. 그 아이가 두살 때 AIDS에 걸리자, 헌혈자들을 추적해 보았다. 그 중 한 사람은 어린 ‘샘’을 죽인 그 병의 증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한 동성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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