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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5 12/1 13-16면
  • 실명했지만 풍요한 삶을 영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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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명했지만 풍요한 삶을 영위하다
  • 깨어라!—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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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5
깨85 12/1 13-16면

실명했지만 풍요한 삶을 영위하다

그 일은 내가 10세의 소년으로 에쿠아도르에서 자라고 있을 때 일어났다. 폭발 사고로, 나는 오른 손과 오른쪽 눈을 잃었다. 왼쪽 눈도 다쳤지만 수술을 하여 시력의 약 50퍼센트는 건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괜찮은 눈의 시력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검사를 받았을 때, 나는 몇달 안 있어 완전히 실명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실로 끔찍했다. 그때 내가 느꼈던 침울함을 이루 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두 아들—나보다 두살 위인 형 에디와 나—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사랑많은 어머니와 이해심깊은 형 에디 덕분에 나는 한동안 잘 대처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죽으면 자살하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23세에서 30세 사이가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나는 매일같이 일자리를 생각하며 찾아 다녔다. 그러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즉 일을 하려면 누구나 손과 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만이 위로가 된다”고 누누이 말하곤 하였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내 손과 내 눈도 잃지 않았을 겁니다! 열살의 나이에 무슨 죄를 졌다고 하나님은 내가 불구가 되도록 벌을 내리셨단 말입니까?”라고 나는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곤 했다. 그러한 대화를 하고 나면 어머니는 항시 우셨고, 그 때문에 나는 더욱 침울해졌다.

나는 내 처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내가 믿음을 갖게 된다면 생활이 덜 서글플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종교 교단에 가보기로 했다. 그들은 몇권의 책을 내게 주었고, 형 에디는 나를 위해 그것을 읽어 주었다. 그 책들은 내게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들에게 성서를 요청했고 그들은 한권을 빌려 주었다. 에디가 읽어 주는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비록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지만 내심 커다란 위안을 느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성서를 되돌려 주어야 했다.

처음으로 빛을 보다

그 일은 내가 한 친구를 방문한 직후에 있었는데, 그 친구는 프로테스탄트 교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성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베아트리스라는 그 부인은 매우 우정적이었고 나를 그 토론에 포함시키려고 했지만, 나는 적의를 품고 있었다. 나는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제국주의 자본가들의 앞잡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시 나는 에쿠아도르의 공산당원이었다.

베아트리스는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나의 태도에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친절하게 나와 이야기를 하였다. 사실, 그는 내게 자신의 주소를 알려 주면서 어떤 질문이 있다면 찾아오라고 하였다. 오래지 않아 나는 얼마의 질문을 갖고 그를 찾아갔다.

그때 베아트리스는 집에 없었고 그의 이모 카스토리나가 있었는데, 그 역시 여호와의 증인이었고 나를 친절히 맞이해 주었다. 그가 내게 하나님을 언급하였을 때, 나는 이렇게 응수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하나님, 동정녀, 성도들, 그 어느 것도 믿지 않습니다. 나를 믿게 하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겁니다!” 나는 그의 답변에 놀라움과 겸손해 짐을 느끼면서,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다시 방문할 것을 약속하고 그 집을 나왔다.

1965년 1월에 나는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라는 책으로 성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나는 “내게 묻는 질문들은 모두 어디서 얻게 된 겁니까?”라고 질문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자 베아트리스와 그의 이모는 맨 아래에 인쇄된 질문들이 있으며 그 질문들은 그 항의 주요점들을 이끌어내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점은 내게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어떻게 연구를 사전에 준비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나는 열심히 배울 것을 결심했다. 그래서 또 다시 형 에디에게 큰 소리로 읽어 줄 것을 부탁했다.

20년만에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되었는데, 눈이 아닌 귀로 보게 되었다. 나의 혼란된 정신도 차츰 평화로 가라앉기 시작하였다.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내가 배운 새로운 점들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책 연구를 마쳤을 때, 나는 하나님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한 가지 점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일, 즉 밖으로 나가 다른 사람에게 성서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일을 시작하였다! 호별 방문을 하던 어느날, 한 부인은 “의사에게 말씀해 보시지요” 하고 대답했다. 나는 병원 의사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우리는, 바쁘니까 밤에 다시 와달라고 부탁하는 가톨릭 사제를 만났다!

그 날 저녁 사제는 우리를 친절히 맞아 주었다. 대화를 시작하면서, 나는 “성서를 사용해도 괜찮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는 물론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옥불 교리에 관해 이야기 했다. 토론이 시작될 때부터, 그는 지옥이 불과 고초의 장소임을 성서로부터 증명할 수 있다고 확신있게 주장했다. 그 토론은 2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그는 자신의 논점을 성서로부터 증명할 수 없었다. 그 후 3주일 동안, 우리는 그 점을 계속 토론했다.

하루는 방문 중에 그가 “이제 나는 댁에게, 성서 가운데서 불에 의한 영원한 고초가 있음을 보여 줄 수 있읍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마태 복음 25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염소들에게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악귀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지요.”

나는 “하지만 그 불이 마귀와 그의 악귀들을 위해 예비된 것이라면, 왜 불쌍한 동물들까지 그들과 함께 불에 던져져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 여기에 있는 염소는 문자적인 짐승이 아니지요. 그들은 나쁜 사람들을 상징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불도 상징적이어야 할 겁니다”라고 나는 응답했다.

마침내 그는 “아마 우리가 성서로부터 지옥이 고초의 장소임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철학적으론 확증할 수 있지요”라고 시인했다. 바로 그 점이었다! 그가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명백해진 것이다.

그후 프로테스탄트 선교인과 토론할 때도 그와 흡사한 일이 일어났다. 그 사람과는 삼위일체 교리에 관해 토론하였다. 장시간 토론한 후 그는 이렇게 시인하였다. “성서에서는 분명히 아버지가 아들보다 크다고 말합니다만,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믿기를 더 좋아합니다.” 나는 성서를 믿기를 더 좋아했다! 나는 이제 내가 진리를 발견했음을 알았다. 1965년 9월 25일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침례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즐거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는 일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발견하였고, 그 일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치기 시작하였다. 물론, 나에게는 함께 다니면서 성서 귀절들을 읽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항시, 나의 다정한 형 에디는 내가 사전에 준비할 수 있도록 출판물을 큰 소리로 읽어 주었다.

1966년 4월에 나는 정규 파이오니아 (전 시간 전파자)가 되었다. 나의 인생을 그처럼 가치있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무척이나 행복스러웠다! 4개월 뒤 형은 결혼을 했고, 그 직후 나는 특별 파이오니아로 초대되어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매달 150시간을 바치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가? 어떻게 나 혼자 성서 연구를 사회할 수 있었는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 책이 1968년에 발행되었을 때, 나는 그 책 22개 장에 나오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암기하였다. 이렇게 하여 나는 그 책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워치 타워 협회’가 발행한 여러 가지 다른 성서 연구 보조 서적들에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답도 암기하였다. 풍부한 삽화가 담긴 「나의 성서 이야기 책」이 1978년에 발표되었을 때, 나는 즉시 그 삽화들이 나오는 면수를 암기하였다.

그후, 삽화들이 들어 있는 「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란 새로운 연구용 서적이 1982년에 발표되었을 때도, 나는 비슷한 방법으로 가르치는 일을 발전시켰다. 나는 그림을 결코 보지 못했지만, 그림 모두를 외어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설명해 줄 수 있다. 그 책을 사용할 때, 나는 특정한 삽화가 있는 면 수까지 센 다음 그것을 설명해 준다. 이러한 방법은 그 출판물을 사용하여 성서 연구하는 일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해 준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특별 파이오니아 봉사를 시작한 후에 나는 형 에디가 나와의 정기적인 성서 연구를 해보게 하였다. 형은 그다지 열의는 없었지만 동의하였다. 나는 형이 그때까지 언제나 참을성있게 나에게 읽어 주었던 내용을 그 자신은 사실상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다. “형, 형은 나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읽어 주었던 성서를 어쩌면 그렇게 모를 수가 있지?” 하고 하루는 형에게 물었다. 형의 대답은 그저 나에게 좋은 형 노릇을 해주려는 것뿐이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형도 귀중한 성서 진리를 인식하게 되었고 영적으로 꾸준히 발전하였다.

위험과 난관

짐작할 수 있듯이, 앞을 못보는 데는 문제가 따른다. 그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를테면, 어느날 밤 집으로 걸어가다 나는 한 남자와 부딪쳤다. 그는 화를 내며 길을 가로 막았다. 갑자기 묵직한 것이 어깨 위에 닿았다. 날씨가 추워 옷깃을 올리고 있던 터라 그것이 무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앞을 못보기 때문에 이렇게 됐노라고 사과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술을 마신 터였고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내 어깨에서 그 무엇인가를 떼면서 “이걸 어떻게 하지?” 하고 위협하는 어조로 소리쳤다. 나는 머리를 들고 “어떻게 하다니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실제로 맹인이란 걸 분명히 알고는 목소리의 어조가 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내가 처했던 위험을 알게 되었다. 그가 내 어깨 위에 놓았던 그 묵직한 물건은 커다란 칼이었다. 그는 내 목을 자르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단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전혀 두려움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 남자는 자기 길로 갔고,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 외에도 다른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일들은 오로지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음을 내게 보여줄 뿐이었다. 현재 우리 가족은, 어머니, 형 에디, 형수 및 세명의 조카 그리고 나까지 모두 일곱 식구이다. 일 자리가 귀하여 에디는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구해야 했고 우리 모두도 함께 따라갔다. 그러나 구직난은 더욱 심해졌다. 에디는 실직을 했고 거의 일년 동안 일이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계속 특별 파이오니아를 할 수 있었다. 음식과 의복이 부족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나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을 깊이 인식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33.

결실이 풍부한 봉사

해를 거듭하면서,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봉사를 축복하신다는 다른 증거들을 보아왔다. 하루는 한 프로테스탄트교 가정을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 지옥불 교리에 관해 토론이 즉시 벌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은 근처에 살고 있는 교역자를 불러 왔다. 그 교역자는 이 가르침이 옳다고 주장했고 토론은 이처럼 진행됐다.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옛날에 잉카 제국의 통치자로서 아타왈파라는 사람이 있었읍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였고 일부다처주의자였으며 친 형제를 죽였읍니다. 그러면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지옥불 속에 있을 거요”라고 그 교역자는 대답했다.

“그러나 그 통치자는 참 하나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랐읍니다. 그는 결코 성서를 읽어 보거나 그것에 관해 알지 못했읍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천당에 있을거요”라고 그 교역자는 응답했다.

“하지만 고린도 전서 6:9에서는 우상 숭배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침묵이 흘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그 교역자와 함께 왔던 고등학교 교사가 말문을 열었다. “교역자가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니 당신이 우리에게 말해 주시겠읍니까? 아타왈파의 영혼은 어디에 있읍니까?”

그때 나는 성서를 사용하여 죽은 자는 무덤 속에서 무의식 상태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앞으로 부활과 심판의 시기를 마련해 놓으셨음을 보여 주었다. (전도 9:5, 10; 요한 5:28, 29; 사도 17:31) 그 설명은 그 교사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그는 후에 자진하여 ‘여호와의 증인’을 조사해 보았다. 그는 현재 이곳 에쿠아도르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한 회중에서 봉사의 종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여호와의 증인’이 된 지금 나의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형과 형수 그리고, 수녀가 되려고 준비하고 있던 형수의 동생이 1969년에 침례를 받았다. 어머니는 다음 해인 1970년에 침례를 받았다. 나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 준 우리 가족들과 다른 증인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눈을 뜨게 해주시고 (물론, 영적으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분의 도움으로, 나는 실명에도 불구하고 풍요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로드리고 바카의 체험담.

[15면 삽화]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는 일에서 커다란 즐거움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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