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7 11/15 4-6면
  • 해방 신학—가난한 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해방 신학—가난한 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 깨어라!—1987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빈곤과 억압
  • 제삼 세계 투쟁
  • 해방 신학자들과 성서
  • “우대 선택”?
  • 해방 신학—제삼 세계를 위한 해결책인가?
    깨어라!—1987
  • 제삼 세계 가톨릭교—안정성이 있는가?
    깨어라!—1987
  • 해방 신학이 해결책이 아닌 이유
    깨어라!—1988
  •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가?
    깨어라!—1989
더 보기
깨어라!—1987
깨87 11/15 4-6면

해방 신학—가난한 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수많은 사람이 ‘더럽기 그지없는 다닥다닥 붙은 집에서 살면서 단지 생필품을 구하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힘들게 일한다. 그들은 물을 길어다 먹고, 걷거나 말을 타거나 소달구지를 타고 여행을 한다. 그들은 쌀, 콩, 바나나를 먹는다. 그들은 주위에 있는 땅이 비옥하기는 하지만 자기들이 항상 가난한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러하기에 빈곤, 투쟁, 극도의 억압으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고대 교회”가 출생하고 있는 것이다.’—「크리스천 센추리」.

“교회의 미래는 가난한 자의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다”고 「뉴스위크」지는 보도한다. 해방을 위해 힘쓰는 이 “새로운 교회”가 가난한 자를 위한 그리고 그들 국가에 평화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유일한 최상의 희망”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그러한가?

우선 해방 신학 지지자의 관점에서 해방 신학을 검토해 보자. 가난한 자를 해방시키는 데 때때로 무력 투쟁이 필수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떠한 상황들이 해방 신학을 정당화하는가?

빈곤과 억압

세계 인구의 3분의 2—대다수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있음—는 형편없는 빈곤 속에 살며, 이들 대륙에서는 정치 폭력에 대한 보도가 다반사이다. “이 짓밟힌 사람들”에게는 빈곤, 고통, 감금이 언제나 하나의 생활 방식이었다. 몇가지 보고를 살펴보자.

◻ 브라질의 해방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브라질에서 “22시간마다 한명의 농부가 살해된다”고 말한다.

◻ “니카라과는 수세대 동안 억눌려온 사람들—국민의 80퍼센트—의 이익을 도모하는 국가를 조직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니카라과 경제 수입의 40퍼센트 이상이 국방비로 사용된다고 한다.

◻ 멕시코시티 일간지 「엘 유니베르살」에 따르면, 4천만명이 “사회 불공평” 때문에 빈곤하게 산다고 한다. 멕시코 인구의 40퍼센트가 가까스로 “최저 생활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단지 18퍼센트만이 “균형잡힌 식사”를 한다고 한다.

◻ 과테말라에서는 단지 인구의 2퍼센트가 경작지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 보고는 알려 준다. 5세 미만의 어린이의 81퍼센트가 영양 실조로 시달린다. 과거 30년간 100,000건의 정치 폭력 행위가 있었고 38,000건의 유괴 사건이 있었다.

◻ 필리핀에서는 인구의 2퍼센트가 부의 75퍼센트를 소유하고 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필리핀의 수녀 마리 후안 마낭찬은 말한다.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당국, 비공인 군대, 자경단에 대한 끊임없는 두려움 속에 산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인접국으로 피신하였다.

이렇기 때문에 일부 가톨릭 고위 성직자들은 “가난한 자의 편을 들”고 있다. 보프는, “우리는 고해자, 동정녀, 예언자에 관하여는 많이 들어 왔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농부와 근로자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하고 질문한다. 그렇지만 해방 신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의 구제 방안이 무엇이라고 처방하는가? ‘가난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삼 세계 투쟁

“빈곤은 불공평한 일이다”라고 해방 신학자들은 주장한다. 따라서 “가난한 자 우대 선택”은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이 의당 누려야 할 권리인 고귀한 삶을 모색하도록 돕는” 것이다. 해방 신학의 아버지로 간주되는 페루의 구스타보 구티에레스는 그의 저서 「역사 속의 가난한 자의 세력」(The Power of the Poor in History)에서 말하기를 “오늘날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저항하고 싸우며 믿고 바라는 사람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의 심층 깊은 구조 변화를 통해 사회 정의가 실현”되어야만 가능하다고 해방 신학자들은 말한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 이 일이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가?

◻ 아이티에서, 가톨릭 교회는 뒤발리에 “폭정”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다고 한다.

◻ 마닐라의 추기경 하이메 신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독재 정권을 쓰러뜨리는 데 있어서 필리핀 내의 그 누구보다도 역할이 컸다”고 보도된 바 있다.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봉간잘로 고바는 이렇게 설명한다. ‘경험으로 보건대, 사람들이 한 손에는 성서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와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신다면 하느님을 위해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빈곤은 문제의 일면일 뿐이다. 문맹, 실직, 굶주림, 질병 역시 많은 나라에서 빈약한 사회 경제 체제의 산물이다. 그러하기에 가난한 자와 억업받는 자는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티에레스나 보프와 같은 해방 신학자들은 성서를 사용하여 그 문제를 어떻게 추리하는가?

해방 신학자들과 성서

“해방은 성서의 필수적인 부분이다”라고 한국의 가톨릭 사제 함 세웅은 설명한다. 그러나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구티에레스는, “역사는 ·⁠·⁠· 가난한 자의 편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해방 신학자들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같은 성서의 특정한 기록들이 사실은 정치 행동이라고 주장한다. “하느님께서는 ·⁠·⁠· ‘가난한 자’와 ‘비천한 자를’ ·⁠·⁠·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 교회가 ·⁠·⁠· 하느님께 충실하고자 한다면 ·⁠·⁠·, 교회는 밑바닥에서부터,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 속에서부터 자신을 깨달아야 한다”고 구티에레스는 말한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정치적으로 표현하실 수 있다”고 그들은 추리한다.

해방 신학자들은 성서와 정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레오나르도 보프는 「깰 때이다」에 이렇게 설명하였다. “정치 방법과 정치 대안책에 관한 영감서가 되는 것이 성서의 기능은 아니며, 그와는 달리 성서는 보다 더 의로운 인간 관계를 모색하는 데 있어서의 영감의 근원인 것이다.” 그러면 교직자들이 사회 개혁에 참여한 결과는 무엇인가?

흔히 폭력은 사망을 초래한다.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여러 세기에 걸쳐 교직자들이 세계 정치에 자유 재량권을 행사해 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가난한 백성들을 압제하는 이 땅의 왕들과 독재자들 또는 유력한 지배 계급과 제휴하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우대 선택”?

현대의 “해방 운동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운동들로 인해 역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가 이처럼 시인한 바와 같다. “오늘날 굶주림과 착취, 유형과 투옥, ·⁠·⁠· 고문과 사망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은 ·⁠·⁠·, 세속적 억압에 대항하는 일 때문에 치르는 대가이다.”

따라서, 인간 신학은 참으로 인류가 겪고 있는 고통을 없앨 수 없다. 탐욕과 증오가 존재하는 한, 더 나은 것에 대한 욕구는 항상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위한 더 좋은 선택 방안이 있는가?

[6면 삽화]

“저항하고 싸우며 믿고 바라는 사람 편이 되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구스타보 구티에레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