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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89 7/15 17-19면
  • 남의 소문 이야기—해로운 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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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의 소문 이야기—해로운 점은 무엇인가?
  • 깨어라!—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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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89
깨89 7/15 17-19면

청소년은 묻는다 ·⁠·⁠·

남의 소문 이야기—해로운 점은 무엇인가?

“그들[사춘기 청소년들]은 ·⁠·⁠·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서로 남의 소문을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소크라테스, 기원전 400년경.

‘최근 얘기를 들었니?’ ‘알아맞혀봐?’ ‘이 말 좀 들어 보라니까!’ ‘비밀을 지킬 수 있겠어?’ 이 말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 대한 사적이고도 솔깃한 혹은 흥분을 자아내기까지 하는 이야기를 옮기는 일—보통 남의 소문 이야기로 알려진 버릇—이 막 시작되려는 일반적인 전조다.

소크라테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청소년들은 특히 그 버릇을 즐기고 있으며, 조사원들은 남의 소문 이야기를 인종과 나이 및 문화를 초월한 보편적 현상이라고 부른다. 뿐만 아니라, 「의사 소통지」(Journal of Communication)에 의하면, 심지어 어린 자녀들까지도 “실제로 말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알아볼 수 있게 될 때부터” 남의 소문을 이야기한다고 한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순전히 여자들의 버릇이라는 말은 옳은 말인가? 아니다! 조사원인 레빈과 알룩은 일단의 남녀 대학생들의 대화를 분석하였다.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남자들도 여자들과 똑같이 남의 소문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남의 소문 이야기가 왜 그렇게도 인기가 있는가? 그것을 경계해야 할 건전한 이유가 있는가?

남의 소문 이야기—좋은 것, 나쁜 것, 흉한 것

남의 소문 이야기는 잡담이다. 하지만, 언제나 남의 소문 이야기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약점, 실패, 성공 및 불행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한 이야기가 반드시 해롭거나 악의가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찌 되었건,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성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개인적 관심만이 아니라 남의 일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도 눈을 두’라고 권고하기까지 한다.—빌립보 2:4, 신세.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억제될 경우, 남의 소문 이야기는 단순히 유용한 정보의 교환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김씨 부인이 아파서 장보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나, 친구 철수가 방과 후의 일자리를 잃고 낙담해 있다는 사실 혹은 이웃집 영희네가 이사를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는가? 어떤 공식 발표를 통해서인가? 그렇지 않고, 대개 그런 사실들은 원한다면 허물없는 잡담—남의 소문 이야기—을 통해서 알게 된다.

성서에 사용된, “망령된 폄론을 하며”라는 단어의 희랍어 원어는 “말이 넘쳐 흐르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디모데 전 5:13; 리델과 스코트 공편 희영 사전) 우리는 잠언 10:19에 있는 이러한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대화에 있어서의 황금률은 말하기 전에 생각하라는 것이다!

무해한 남의 소문 이야기는 유해한 이야기로 쉽게 선을 넘어갈 수가 있다. ‘철수는 더 이상 그 쇼핑 센터에서 일하지 않는다’라고 알리는 말은, ‘철수는 그 일자리에 도저히 붙어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야’라는 말이 덧붙여짐으로써 간단히 비약이 되어 중상이 섞인 농락의 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에 대해 좋은 점을 이야기하려고 한 말도 빗나가는 일이 흔하다. ‘경혜는 반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이다’라고 한 말에, ‘하지만 그 애가 옷을 어떤 식으로 입는지 봤니?’라는 말이 쉽게 잇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도 자주, 남의 소문 이야기는 아주 흉한 말로 전락하여 누군가에 대한 중상에 해당하는 거짓말과 소문을 옮기는 수단이 되어 버릴 수 있다.

건전치 못한 남의 소문 이야기—발생하는 이유

그렇다면, 남의 소문 이야기는 왜 그렇게도 자주 건전치 못한 방향으로 기우는 것일까? 한 가지는, ‘마음이 부패’하여 특정한 이기적인 감정적 필요를 건전치 못한 말들이 흔히 충족시켜 준다는 점이다.—예레미야 17:9.

“다른 사람이 모르는 어떤 사실을 안다는 데서 우쭐한 기분을 느껴요”라고 어린 카니는 시인한다. 그런데 그 “어떤 사실”이, 다른 누군가에 관해 전혀 칭찬이 되지 않는 점인 경우가 다반사다. 다른 사람의 결점과 실수를 두드러지게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단점이 가리워진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남의 소문 이야기를 자신의 인기를 높이는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말해 줄 수 있도록 소식에 밝은 사람이 되려고 애쓴다. 각광을 받는 이 짧은 순간을 즐기기 위해, 그들은 가장 가까운 친구의 신임도 저버릴 것이다. 당신에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보통 다른 사람에게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남의 소문 이야기는 분노, 상심 및 질투의 편리한 배출구로 이용될 수 있다. 일부 사람은 자신이 악의를 품고 있는 상대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꾸며내기까지 할 것이다. (비교 잠언 26:28.) 이를테면, 한 소녀는 한 급우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는데, 분명히 그것은 그 급우가 그 소녀 역시 좋아하고 있던 소년과 데이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흔히, 건전치 못한 남의 소문 이야기는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생각 부족으로 인해 생긴다. 한 십대 소녀는 이렇게 시인하였다. “때때로 내가 말하려는 내용이 100퍼센트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점을 깨닫지만, 거의 중독 상태 같아요. 나 자신을 미처 제지할 새도 없이 말을 해버려요—그리고는 나중에 그 모든 점들이 생각나는 때가 많지요.”

건전치 못한 남의 소문 이야기—양날 선 칼

동기가 어떠하든지 간에, 건전치 못한 남의 소문 이야기는 양날 선 칼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이름과 명예에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을 줄 수 있다. 「십대」(’Teen)지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 바와 같다. “다른 사람에 관한 소문을 이야기하며, 비난하거나 비밀을 누설하거나 과장하거나 심지어 완전히 거짓말을 한다면, 필시 인간 관계를 위태롭게 하거나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그리고 아마도 새로운 우정이 맺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서에서 이렇게 표현하는 바와 같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언 17:9; 비교 잠언 16:28.

또 한편으로, 남의 소문 이야기는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불리한 결과가 돌아오게 하며 손상을 줄 수 있다.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을 얻기는커녕, 남의 소문 이야기는 불신을 일으킬 수 있다. “소문 내는 사람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다”라고 잠언 11:13(오늘날의 영어 역본)에서는 알려 준다. 그리고 만약 자신의 비밀이 폭로되거나 약점이 널리 퍼진 것을 알게 될 때에는 당사자가 기분이 나쁠 것이 분명하다. “북풍이 비를 일으킴같이 참소하는[소문 내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라고 잠언 25:23(오늘날의 영어 역본 참조)에서는 알려 준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손상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종종, 무절제하게 이야기하다 보면 중상으로 발전한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그 혀로 참소치[중상하지, 신세]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는 사람만을 받아들이신다. (시 15:1, 3) 하지만, 우리가 근거없는 소문을 퍼뜨릴 경우에는, 실제로 거짓말—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잠언 6:16, 17.

남의 소문 이야기의 함정을 피하는 일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한다는 것은—적어도 전혀 안 하기는—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다음의 황금률을 적용한다면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 7:12.

이것은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에 귀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라고 성서는 충고한다. (잠언 20:19) 만일 악의가 있거나 훼손시키는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 말에 동조하는 것이다. 로절린이라는 소녀가 ‘남의 소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바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격려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그 밖에도, ‘감칠맛 나는 소문거리’에 마음이 끌린 나머지 혼자만 알고 있을 수가 없어서 자신도 자칫 중상의 해로운 연쇄 과정에 말려들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므로 건전치 못한 이야기는 차단시키려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해로운 남의 소문 이야기의 폐해에 관해 설교를 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가거나 논란의 대상이 된 사람에 관해 칭찬이 되는 어떤 말을 함으로써,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해 볼 수 있다. 만일 험담이 계속된다면, 그것을 당신이 그 대화에서 빠져 나와야 할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어떤 이야기는—흥미롭고도 자극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정말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참으로 그 말을 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중상, 모욕 혹은 무안을 주는 말인가? 당사자의 면전에서라면 당신은 그 말을 하겠는가?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 관해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느끼겠는가? 잠언 15:2에서는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고 알려 준다.

그러므로 입술을 제어해야 한다. 도량이 넓은 사람은 사상에 관해 이야기하고, 보통 사람은 사물에 관해 이야기하고, 생각이 옹졸한 사람은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한다! 대화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다. 무의미하고 유해한 남의 소문 이야기보다 훨씬 더 나은 대화를 꽃피울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영적 문제를 포함하여—얼마든지 있다.a

[각주]

a 앞으로 나올 기사에서는 남의 소문 이야기의 피해자의 입장을 논의할 것이다.

[18면 삽화]

남의 소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흔히 관심의 중심 인물이 되는 것을 즐긴다

[19면 삽화]

악의가 있거나 훼손시키는 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그 말에 동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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