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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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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세 시간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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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0
깨90 8/1 19-23면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세 시간

크리스마스 선물로 공기총을 받았을 때 나는 열 살이었다. 병과 깡통을 쏘았으나 신속히 더 재미 있는 사냥감 즉 새, 뱀 그리고 무엇이든 움직이는 것으로 옮겨갔다. 새를 죽일 때마다 총 개머리판에 눈금을 새겼다. 곧, 자랑스러운 18개의 눈금이 사냥꾼으로서의 나의 뛰어난 솜씨를 나타내 주었다.

그러던 중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일이 일어났다. 하루는 뒤뜰로 나가 새를 사냥하였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앉아 있는 참새 한 마리를 보고는 신중히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명중이었다! 19번째로!

새가 땅에 떨어졌다. 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내려다보니 깃털에 피가 묻어 있었다. 새는 꿈틀거리면서 마치 ‘누가 당신에게 내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주었소?’하고 말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새는 죽어가면서 머리를 서서히 땅에 떨구었다. 나는 마음이 찔렸다.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에게로 달려가서는 일어난 일과 죽어가는 새가 내게 말한 것으로 확신하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나는 두 번 다시 또 다른 새를 쏘지 않았으며, 총에 눈금을 더 새기지도 않았다. 오늘날까지 깃털이 피투성이가 된 그 작은 새를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이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충격으로 인해 참새의 생명이든 사람의 생명이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외의 다른 가치관 곧 정직성, 어른에 대한 존경심, 도덕감, 진리에 대한 정성 등이 인생 초기에 내 속에 심어졌다. 나는 테네시 주(미국) 멤피스에서 태어났으나 일리노이 주 시카고 근교, 로빈스에서 자랐다. 성장하면서 교회에 다녔으나, 교회에 다니는 소년으로서 내게 심어진 가치관은 해가 지나면서 퇴색해 갔다. 이러한 가치관이 신자들이나 집사들 혹은 교직자들 사이에서 반영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위선을 보았다. 또한, 일반 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가치관을 비실용적인 것으로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무시하였다. 그러나 작은 참새의 죽음을 통해 배운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교훈은 결코 퇴색되지 않았다.

고등 학교에 갈 때쯤에는, 부모에게 무척 근심이 되게도, 교회에 나가는 것을 중단하였다. 양심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누구나 하듯 불경스러운 언사를 사용했을 때 양심에 가책을 받은 것이 분명히 생각난다. 교제가 더 나빠짐에 따라, 어느 틈엔가 마약과 부도덕한 행위에 빠져들었다. 성서는 그러한 경우에 대해 말했으며, 나는 성서의 이러한 예견을 실현시켰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느니라.]”—고린도 전 15:33.

그렇기는 하나,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감각이 다소 억제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고등 학교 3학년 때 함께 어울리고, 함께 농구부에서 연습하고, 함께 모든 것을 한 두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밤 젊은 여자를 우연히 만날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지내는 사이였다. 두 친구는 그 여자를 강간하기로 작정했다. 그 여자는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음에도 그들이 계속하자 광적인 상태가 되면서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명을 질렀다.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여자를 강간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나도 그 여자의 몸을 범하는 그러한 난폭한 행위에 가담하기를 원했다. 메스껍도록 혐오감이 일어나서, 그 여자에 대한 그들의 비열한 폭행에 참여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내게 무척 화를 내더니 결국 욕을 해댔다. 우리의 우정은 그날 밤 끝났다.

여러 해 후에, 내가 경험한 그 일은 성서가 일어나리라고 말한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실례임을 깨달았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리라.]”—베드로 전 4:4.

고등 학교 졸업반이던 1965년에 베트남 전쟁이 점차 확대되었기에,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곤경에 직면하게 되었다. 징집되어서 어쩔 수 없이 살상을 하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여전히 생명을 빼앗는 것에 대해, 그것이 참새의 것이든 사람의 것이든,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손쉬운 해결책 즉 대학교에서 농구를 하는 체육 장학생이 되는 길이 있었다.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밀림에서 싸우고 죽일 필요가 없는 군대의 한 갈래인 공군에 입대했다.

군 복무 4년 동안 항공기 기술자로서 MAC(군 공수 사령부) 부대에 배속되었다. 기본 훈련을 받은 후에, 대만의 CCK 공군 기지에 파견되었다. 그때는 1968년 1월이었다. 비행 중대의 동료 대부분은 베트남, 타이, 일본 및 필리핀으로 가도록 배정되었다. 그들은 헤로인과 코카인 등 중독성이 강한 마약을 포함하여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 학교 재학중에 마약을 사용하기 시작한 데다 이제는 마약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8개월 후에 우리 비행 중대 전원은 당시 미국 통치하에 있던 일본, 오키나와로 재임명되었다. 우리의 마약 사업은 번창했다.

비행 중대장은 내게 직접 베트남에 가보자고 개인적으로 권유했다. 돈과 흥미 때문에, 기꺼이 그 기회에 응했다. 베트남은 푸르게 우거진 초목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나라였다. 베트남 사람들은 매우 순수하게 친절을 나타내고 후대하는 사람들이었다. 문을 두드리면 으레 안으로 맞아들여 대접하였다. 나는 종종 ‘이 전쟁은 무엇 때문에 있는가? 왜 이 사람들은 짐승같이 살육되는가?’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사이공에서 하고많은 범죄, 하고많은 비열한 활동, 하고많은 부패와 어처구니없는 폭력을 보았다! 생명은 매우 값싼 것이었다. 인류에게 과연 평화롭고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는 능력과 자진성이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1970년 7월말에 공군에서 명예 제대를 한 후, 일리노이 주 로빈스로 귀향했다. 일자리를 얻고 나서 정착하려고 했지만,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았다. 사람들과 장소들이 변해 있었다. 더군다나 나 역시 변해 있었다. 고향이 더 이상 고향이 아니었다. 나의 생각은 극동으로 집중되었고, 정신에 새겨진 추억에서 떠나지 못했다. 동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 압도되었다. 제대한 지 8개월 후에, 일본 오키나와로 돌아가는 편도 비행기 표를 샀다.

돌아온 첫날 밤에, 단골 오락장 중 하나인 티나의 바와 라운지라는 활기찬 클럽에 갔다. 몹시 놀랍게도, 이전의 마약 사업 동료 하나가 바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만나서 기뻤으며, 즉시 타이에서 마약을 밀수입할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가짜 신분 증명서, 휴가증, 군복 등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타이에 가기 위해 군인으로 가장했다. 그렇게 하여 공항에서 방콕까지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미리 대기한 안내인과 만났고, 그는 통나무 배로 밀림의 어두운 수로와 늪 지대를 통과하여 외떨어진 섬으로 우리를 인도했다. 우리는 타이 마약 거래의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의 환영을 받았다. 그는 매우 정중하고 후대를 베푸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추호도 그가 우리의 활동을 당국에 밀고하리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밀고했다. 그것은 당국이 그의 일부 불법 활동을 눈감아주는 조건으로 한 거래였다.

당국자들이 방콕의 버스 정류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나는 29킬로그램의 마약이 든 손가방을 들고 있었다! 버스 정류장의 대합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목덜미에서 섬뜩한 금속 냉기를 느꼈다. 타이 경찰의 한 고위 경찰관이 38구경 권총을 내 머리에 겨누고는 매우 침착하게 “반항하지 마시오”하고 말했다. 우리는 체포되어 경찰 본부로 연행되었다.

우리는 오키나와에서 공범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고, 그는 헤로인이 든 구두 상자 셋을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공급품을 한데 모음으로써 오키나와에서 마약 거래를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공범이 헤로인을 가지고 그곳에 도착하여 그 상자들이 수하물 벨트에 나타났을 때, 경찰은 냄새로 헤로인을 찾아내는 경찰견을 데리고 거기에 있었다. 그는 헤로인을 빼앗겼고, 나는 마리화나와 각성제가 가득 든 손가방을 빼앗겨서 우리의 사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문을 닫았다. 결국 우리는 클롱프렘 교도소에 있게 되었다. 내부 상태는 원시적이었다. 음식은 부족하였다. 일상 음식은 하루에 두 차례 소량의 절인 생선과 밥이었다. 교도소에 두 달 있는 동안, 45킬로그램이 빠졌다.

교도소에 있을 때, 키가 크고 기품 있어 보이는 한 신사가 우리를 방문하러 와서는 자신이 미국 영사관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돕고 싶지만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를 믿지 않았다. 잠시 왔다갔다 한 후에, 그는 마침내 자신은 동남 아시아 전 지역의 마약 수석 조사관으로서 우리가 이 나라에서 마약을 밀반출하던 중임을 증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 다음날, 그는 은밀히 나와 대화하기 위해 다시 왔다.

그 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털어놓으시오. 만일 털어놓지 않으면, 필경 이 교도소에서 썩게 될거요.” 그래서 나는 털어놓았다.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위해 특수 요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떻겠소?”하고 물었다. 나는 완전히 허를 찔리고 말았지만, 결국 그와 함께 이 함정 수사를 하기로 동의했다.

마침내,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오키나와로 돌아와 특수 마약 수사 요원으로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나의 임무는 마약 거래에 관련된 공급자들을 체포할 목적으로 마약 거래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약 1년 반 동안 그런 일을 한 다음 그만두었다.

얼마 후, 짝과 나는 파파조스라는 선술집을 경영하였다. 접대부로서 우리를 위해 일해 줄 여급들을 두었는데, 그들의 일은 미군들로 하여금 가급적 많은 술을 사마시게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밤, 바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지미샌이죠?”

“예, 그런데요.”

“이곳에선 그런대로 잘 돼갑니까?”

“물론입니다. 왜 그렇게 묻는 겁니까?”

“당신에게 충고하겠는데, 거리로 다시 나오지 마시오. 다시 나오면, 당신을 붙잡아서 집어넣겠소.”

나는 그때 그가 마약 수사 요원이며 내가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내게 거리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무렵 마약을 팔러 거리에 나간 적이 결코 없었다. 나는 살아왔던 타락시키는 생활 방식을 이미 청산했다.

또한, 당시에는 동양 종교들을 조사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내 동양 종교들이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 가르침과 똑같이 신비에 쌓여 있고 혼란시키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러한 종교들 역시 이치적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혼자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연로한 한 일본 부인이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내 주의를 온통 끈 것은 그의 눈이었다. 그 눈은 빛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눈을 보고, 그가 정직하고 순수하며 결코 나를 기만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느낌을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또한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우리가 식탁에 앉은 후에야 비로소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교회에 자주 나갔지만, 바로 이런 식으로 성서를 통해 들은 것은 전혀 없었다. 그는 악이 그토록 많은 이유와 사단이 이 세상 신이며 이 모든 것은 마지막 날의 표징이라는 것, 하나님께서 곧 일어나시어 모든 악을 끝내시고 깨끗하고 의로운 신세계를 도래하게 하실 것임을 보여 주었다. 나는 종종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인생에는 의미가 있는지, 이 아름다운 지구에는 목적이 있는지 궁금해 했었다. 그 대답이 성서에 있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시 92:7; 전도 1:4; 이사야 45:18; 다니엘 2:44; 고린도 후 4:4; 디모데 후 3:1-5, 13; 베드로 후 3:13.

부인이 이야기함에 따라, 조각 그림의 부분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해 동안 잠을 자듯 그대로 있다가 수분이 공급되자 싹이 나는 씨처럼, 내 정신 속에서 잠자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도 성서에서 진리의 물이 흘러들어옴에 따라 돌연히 활기를 찾았다.—에베소 5:26; 계시 7:17.

저 멀리 하늘 어딘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곳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사는 것. 온 땅이 에덴 동산같이 되는 것. 셀 수 없이 많은 죽은 자들이 에덴 같은 이곳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 기회를 갖도록 부활이 있는 것. 고통도, 눈물도, 괴로움도, 범죄도, 질병도, 사망도 없는 것—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왕국 아래 오게 될 이러한 축복들을 알려 주는 많은 성구는 내 정신에, 순종하는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것에 대한 선명한 영상을 그려 주었다.—시 37:10, 11, 29; 잠언 2:21, 22; 요한 5:28, 29; 17:3; 계시 21:1, 4, 5.

사실이기에는 너무나 좋지 않은가? 그렇지만, 부인은 자신이 한 모든 말을 성서로 증명했다. 그가 이야기함에 따라, 처음으로 성서가 내게 수정같이 맑고, 이치적이고, 살아 있는 것이 되었다. 나는 두 가지 점을 깨달았다. 첫째로, 이것은 그리스도교국 종교들의 거짓 신조와 교리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한 진리라는 것, 그리고 둘째로, 하나님의 법과 표준에 순응하기 위하여 생활을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시 119:105; 로마 12:1, 2; 고린도 전 6:9-11; 골로새 3:9, 10.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이야기했는데, 그것은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세 시간이었다. 이세가와 하루코—그 부인의 이름—는 떠나기 전에,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곳을 말해 주었다. 그는 또한 나와 성서를 연구하기 위해 매주 오기 시작했다. 그 다음 주에,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배운 것이 내 생각과 행실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신속한 변화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졌다. 많은 옛 벗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너무 많은, 너무 급작스런 것이어서 교제가 중단되게 되었다. 얼마의 옛 벗들을 잃었지만, 예수께서 약속하신 바와 같이 훨씬 더 많은 새로운 벗을 얻었다. (마태 19:29) 이세가와 자매가 처음 방문한 지 10개월 후인, 1974년 8월 30일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침례를 받았다.

다음 달, 미국으로 돌아가서 고향 읍의 로빈스 회중과 연합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하나님의 집”이란 뜻인 벧엘로 일컬어지는, 뉴욕 브루클린의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를 방문했다. 현재는 3천 명의 자진 봉사자가 그곳에 있으며, 또 다른 1천 명은 뉴욕 주 북부에 있는 워치타워 농장에서 일하는데, 이들은 지상 전역에 배부되는 성서 서적을 인쇄한다. 그 방문을 통해 그곳에서 일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렬해졌으며, 여호와께서는 1979년 9월에 그 훌륭한 특권을 내게 주셨다.

도착한 지 몇 달 후에, 또 한 형제가 내가 일하는 부서로 임명되었다.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더욱 친숙해진 후에야, 우리는 둘 다 같은 시기에 오키나와에 있었고, 같은 주택 단지에 살았으며, 그리고 둘 다 마약 밀매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기쁘게 재회한 것이다. 그와 그의 아내는 현재 미크로네시아 제도에서 여호와의 증인의 특별 전 시간 봉사자로서 봉사하고 있다.

1981년에 여호와께서는 내게 사랑스러운 아내, 보니를 주셨고, 우리는 이곳 벧엘에서 함께 봉사하는 동안 많은 풍성한 축복을 누려왔다. 나는 시편 23편 6절에서 친히 이렇게 표현한 시편 필자 다윗 왕처럼 느낀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어느 날 나는 마태 복음 10:29, 31을 읽었다. 그것은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다 주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는 내가 죽인 참새에 대해 아셨을까? 나는 계속 읽어감에 따라 안심이 되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제임스 다이슨의 체험담.

[19면 삽입]

‘왜 이 사람들은 짐승같이 살육되는가?’

[20면 삽입]

목덜미에서 섬뜩한 금속 냉기를 느꼈다

[21면 삽입]

경찰은 냄새로 헤로인을 찾아내는 경찰견을 데리고 거기에 있었다

[22면 삽입]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23면 삽화]

아내 보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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