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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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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4
깨94 4/15 18-19면

성서의 견해

분노하는 것은 언제나 잘못인가?

“분노란 일시적 광기다.”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가장 격한 감정에 속하는 분노에 대해 널리 알려진 견해를 그와 같이 표현했다. 분노가 일시적인 광기의 한 형태라는 견해에 누구나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은 분노를 본질적으로 나쁜 것으로 본다. 일찍이 기원 6세기에, 가톨릭 수사들은 “칠죄종”(七罪宗)이라는 유명한 목록을 만들었다. 그 목록 가운데 분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느낀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성서는 실제로 이렇게 말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시 37:8)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 회중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에베소 4:31.

그러나 이와 같은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분노에 관한 성서의 견해는 그것뿐인가? 바울은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날”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가 될 것임을 예언하지 않았는가?’ (디모데 후 3:1-5, 「신세」)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이 ‘사납고, 선을 사랑하지 않고, 본연의 애정이 없’는 이 시기에 살면서도 결코 조금도 분노하지 않기를 기대하시는가?

균형 잡힌 견해

이러한 문제에 대한 성서의 대답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에베소서 4:26에 기록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는 바울의 말에 유의해 보자. 분노가 무조건 영원한 형벌을 수반하는 “죄종”이라면 이 구절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시편 4:4의 이러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바인의 성서 단어 해설 사전」(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Biblical Words)에 따르면, 여기서 “떨며”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라가즈는 “격한 감정으로 떠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어떤 격한 감정을 말하는 것인가? 분노인가? 「칠십인역」(Septuagint)은 시편 4:4의 라가즈를 ‘격분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로 번역하였으며, 분명히 바울의 의도도 그러하였다.

성서가 분노를 어느 정도 허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분노가 다 나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성서 주석가는 “인간의 분노는 본질상 공정하거나 용납할 만한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러한 견해는 성경적이 아니다. 성서 학자 R. C. H. 렌스키는 에베소서 4:26에 대해 정확하게도 이렇게 설명하였다. “모든 분노를 금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동요되지 않는 침착함을 요구하는 윤리는 스토아 철학이지 그리스도교의 윤리가 아니다.” 윌리엄 바클리 교수도 그와 비슷하게 이렇게 지적하였다. “그리스도인 생활에 분노가 있어야 하지만, 그것은 의로운 분노여야 한다.” 그러면 “의로운 분노”란 무엇인가?

의분

분노가 여호와의 주된 특성에 속하지는 않지만, 성경은 그분이 분노를 느끼시고 표현하시는 분임을 반복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여호와의 분노는 항상 의롭다. 첫째, 그분은 합당한 근거가 없이는 결코 분노하시지 않는다. 둘째, 그분은 공정하고 의로운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시며, 결코 자제를 잃지 않으신다.—출애굽 34:6; 시 85:3.

여호와께서는 고의적인 불의에 대해 격노하신다. 예를 들어, 그분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힘 없는 여자나 어린이에게 피해를 준다면,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나의 노가 맹렬하[리라]”고 경고하셨다. (출애굽 22:22-24; 비교 잠언 21:13) 예수께서도 자기 아버지처럼 어린이에 대해 부드러운 마음을 갖고 계셨다. 한번은 어린이들이 예수께 가까이 오는 것을 예수의 추종자들이 좋은 의도로 막으려 하자,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기시며 어린이를 자신의 팔로 안으셨다. (마가 10:14-16) 주목할 만하게도, “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원래 “육체적 고통이나 자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참으로 격한 감정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한 상인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자기 아버지의 숭배의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드는 것을 보시고 마음에 의분을 느끼셨다. 그분은 그들의 상을 엎으시고 그들을 거기서 쫓아내셨다! (마태 21:12, 13; 요한 2:15)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병든 사람에게보다 사소한 안식일 규칙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내자, 예수께서는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시고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 보”셨다.—마가 3:5.

그와 비슷하게, 고대의 충실한 모세는 불충성스러운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의분으로 가득 차 모세 율법이 새겨진 돌판들을 내던졌다. (출애굽 32:19) 또한 의로운 서기관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이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였을 때 분노한 나머지 자기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에스라 9:3.

“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악을 미워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아모스 5:15) 그러므로 잔인함, 위선, 부정직, 불충성, 불공정을 고의적으로 나타내며 회개하지 않는 행위를 보게 될 때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도 마음에 의분이 솟구치는 것을 느낄 것이다.

분노를 합당하게 다스림

성서에서 분노를 종종 불에 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불과 같이 분노도 적절할 경우가 있다. 그러나 끔찍하게 파괴적일 수도 있다. 여호와와 예수와는 달리, 인간은 합당한 근거 없이 분노를 느끼거나 불의한 방법으로 분노를 표현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참조 창세 4:4-8; 49:5-7; 요나 4:1, 4, 9.

반면에, 단지 분노를 억누르면서 분노를 품고 있지 않는 체하는 것 역시 의롭지 않을 수 있다. 바울이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교훈했음을 기억하라. (에베소 4:26) 분노를 표현하는 성경적인 방법이 있다. 이를테면 “심중에 말하”거나, 장성한 벗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거나, 심지어는 잘못한 사람과 조용히 대면할 수도 있다.—시 4:4; 잠언 15:22; 마태 5:23, 24; 야고보 5:14.

그러므로 분노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여호와와 예수께서는 모두 분노하신 적이 있으며—또다시 분노하실 것이다! (계시 19:15) 그분들을 본받는 사람이라면,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잘못인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성서의 교훈을 따라 반드시 자신의 감정에 대한 정당한 근거를 갖고 그리스도인답게 의로운 방법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18면 삽화]

가인과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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