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95 3/1 12-14면
  • 동성애—정말 그렇게 나쁜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동성애—정말 그렇게 나쁜가?
  • 깨어라!—1995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하느님의 말씀이 알려 주는 것
  • 병적인 것인가, 아니면 건전한 것인가?
  • 결과
  • 동성애는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가?
    깨어라!—2012
  • 현대 동성애자들의 “해방”
    깨어라!—1980
  • 동성애자의 생활 방식—과연 어느 정도나 명랑한 것인가?
    깨어라!—1986
  • 동성애 유행병
    깨어라!—1984
더 보기
깨어라!—1995
깨95 3/1 12-14면

청소년은 묻는다 ·⁠·⁠·

동성애—정말 그렇게 나쁜가?

“어릴 적부터 저에게는 늘 동성애를 하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런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한 친구와 아주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되었지요. 심한 죄책감이 들었고, 여호와께서 결코 저를 용서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TV가 아이들에게 동성애를 권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러 신문에 기고하는 한 신문 칼럼니스트가 쓴 기사의 제목이다. 그 기고가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동성애 생활 방식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프로그램을 과도하게 시청하게 된다.” 하지만 TV는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서 동성애를 촉진하는 데 사용되는 많은 수단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교사들과 동배들, 영화, 책, 잡지 역시 동성애를 선전하는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다.

의료계도 이러한 풍조에 편승하였다. 전통적으로 의사들은 동성애를 일종의 병으로 보았다. 그러나 1973년에 미국 정신 의학 협회는 동성애를 더 이상 정신 질환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 이후로 의료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은 동성애 생활 방식을 거의 전적으로 수용할 만한 것으로 간주해 왔다. 예를 들어, 정신 요법사인 앨버트 엘리스는 동성애에 대해 이렇게 단언하였다. 그것은 “조금도 변태적인 것이 아니며, 건강한 사람의 성행위의 일부이다. ·⁠·⁠· 동성애를 택한다면 그것을 즐기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선전에 넘어가 동성애가 ‘나쁘다’거나 ‘정신 질환’이라고 생각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견해가 매우 널리 퍼져 있으므로, 「뉴스위크」는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대중 매체가 조성한 이미지와 관용하려는 새로운 경향의 부추김을 받아, 십대들은 더 대담하게 동성애와 양성애를 실험하고 있다.” 과거에는 십대들이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는데 반하여, 지금은 증가하는 수의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유행”으로 간주한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동성애를 하지 않는 청소년들조차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관용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친구가 저에게 자기가 동성애자라고 말하더라도, 저는 여전히 그를 친구로 여길 겁니다.” 대런이라는 소년의 말이다. 심지어 한 남자 대학생은 자기가 “오직 여자들만 좋아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였다!

따라서 오늘날의 방임적인 풍조는 그리스도인 청소년들—특히 어떤 이유로인가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에게 혼란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a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동성애가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진정으로 동성애를 피하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때때로 감정을 제어하는 싸움에 지친 나머지, 성서의 견해가 공정하고 합리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할 수 있다. ‘동성애가 정말 그렇게 나쁜가?’ 하고 의아스럽게 여길지 모른다.

하느님의 말씀이 알려 주는 것

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사도 바울이 고린도 첫째 6:9, 10에서 말한 것을 직접 읽어 보기 바란다. “아니, 여러분은 불의한 자들이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릇 인도되지 마십시오.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부자연스런 목적을 위하여 있는 남자들[“남창들”, 「신 국제역」; “여자처럼 행동하는 남자”, 「제임스 왕역」]이나 남자와 동침하는 남자들[“동성애자들”, 「예루살렘 성서」; “동성애 도착자들”, 「오늘날의 영어 역본」]이나 도둑들이나 탐욕스러운 자들이나 술취하는 자들이나 욕하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바울이 이러한 부도덕한 성관계에서 수동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좀더 적극적인 “남자” 역할을 맡는 사람들을 명확하게 언급하였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바울은 하느님께서 모든 동성애 행위를 승인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이 점은 로마 1:18-27에 나오는 바울의 말에도 분명히 나타나 있다. “하느님의 진노는 불의한 방법으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그 마음의 욕망대로 더러움에 내주시어 그들의 몸이 스스로 모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치욕스러운 성욕에 내주셨습니다. 그 여자들도 자기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자연에 반대되는 것으로 바꾸었으며,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떠나 서로에 대하여 정욕이 격렬하게 타올랐습니다. 그리하여 남자가 남자와 음탕한 일을 행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남성 동성애와 여성 동성애를 모두 명확하게 정죄하였다. 그는 동성애 행위를 부자연스럽고 “음탕한” 것으로 정죄하였다.

병적인 것인가, 아니면 건전한 것인가?

아마 많은 사람은 바울의 말에 대한 반응으로 성서의 견해가 너무 낡았으며 구식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 생각에는, 누가 우리의 창조주보다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인 구조를 더 잘 알겠는가?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으며,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도록 그들 속에 강한 매력을 넣어 주셨다. (창세 1:27, 28) 하느님께서는 동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끼도록 사람들을 만드시지 않았다. 더 나아가 하느님께서는 결혼 마련 안에서만 남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셨다.—히브리 13:4.

이러한 규정은 우리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사야 48:17에서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자기가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가르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이롭고 무엇이 해로운지 알고 계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서의 가르침이 따르기 어려워 보일지 모르지만, 그 가르침은 언제나 “건전한 가르침”, 다시 말해서 정신과 몸에 유익한 가르침이다. (디도 2:1) 반면에 동성애는 신체적, 감정적, 영적인 복지에 해를 줄 뿐이다.

에이즈 위기는 동성애 생활 방식이 얼마나 불건전한 것인지를 보여 주는 예이다. 북아메리카에서 남성 동성애자들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이 병에 감염될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에이즈는 흔히 동성애자들을 괴롭히는 많은 질환들—간염, 간 질환, 임질, 매독 및 위장 기생충 질환—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이 이러한 질병의 확산을 부추겼는가? 조지프 니콜로시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저술가들이 동성애 생활 방식의 일부인 강박성, 중독성 요소들에 대해 증거하였다.” 한 광범위한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밝혀졌다. “남성 동성애자 가운데 28퍼센트는 1000명 이상의 사람들과 성관계를 가졌다. ·⁠·⁠· 백인 남성 동성애자 가운데 거의 절반은 ·⁠·⁠· 최소한 다른 500명의 사람들과 성관계를 가졌다고 말하였다.”

「동성애 행위」(Homosexual Behavior)라는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많은 동성애자들에게는 “상대방에게 전념하게 되거나 상대방과 친밀해지거나 혹은 상대방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 성에 대한 비인간적인 갈망에는 몹시 강박적인 성질이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단 하루 동안이나 하루 저녁에 열 번 이상의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그처럼 무절제한 행위가 건전한 것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병적이고 타락한 행위가 아닌가? 그처럼 극도로 난잡한 행위에 빠진 사람들은 분명히 “부패의 종”이다.—베드로 둘째 2:19.

더욱이 많은 경우에 동성애는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분명히 변태적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기도 수치스러운 것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에베소 5:12) 그처럼 난폭한 행위는, 겉으로 보기에 “즐거운” 것처럼 생각되는 생활 방식의 내면에 분노와 고통이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 준다. 일부 동성애자들이 자기들은 난잡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 사람과만 관계를 갖는” 동성애자는 소수이며, 더구나 그들의 관계는 대개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동성간의 결합이 지속된다 해도, 그것이 성서에서 묘사하는 사랑의 결실일 수는 없다. 성서에서 말하는 사랑은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고린도 첫째 13:4, 5.

결과

바울은 로마 1:27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남자와 이러한 부끄럽고 혐오스러운 일을 행하여, 당연하게도 그들 자신의 인간성 속에 성도착의 결과를 받았습니다.” (「현대 영어 신약」, J. B. 필립스 저) 어떻게 그러한가? 한 가지 결과에 대해, 「동성애 행위」 책은 이렇게 알려 준다. “여성 동성애자들은 여성 이성애자들보다 과도한 알코올의 사용이나 남용으로 더 심한 고통을 겪는다.” 또한 일부 연구가들은 젊은 남성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해는 자기 자신의 영성에 미치는 결과이다. 동성애자들은 자기가 “정신적으로 어둠 속에 있으며, 하느님께 속한 생명에서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베소 4:18) 그러나 성서 원칙을 알고 있는데도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청소년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들에게는 분명히 맞서야 할 싸움이 있다. 물론, 동성애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를 아는 것은 그러한 청소년들이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로마 12:9) 또한 그러한 청소년들이 나쁜 욕망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실용적인 조처들이 많이 있다. 그 점이 앞으로 나올 기사의 주제가 될 것이다.

[각주]

a 지난 호의 “청소년은 묻는다 ·⁠·⁠·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일까?” 기사 참조.

[13면 삽화]

동성애 생활 방식의 특징은 난잡한 행위와 감정적인 고통과 질병이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