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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통찰, 제2권
통-2 “폰투스”

폰투스

(Pontus) [바다]

흑해 연안에 있던 소아시아 북부의 한 지역. 폰투스라는 이름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 폰투스 육시누스(흑해를 가리키는 데 이따금 사용된 이름)와 접한 그 소아시아 북부 지역에 붙여진 것 같다. 폰투스는 (비티니아 근처인) 서쪽의 할리스 강 하류 지역에서부터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흑해의 남동쪽 방향으로 펼쳐져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비옥한 지역의 기후는 여름철에는 따뜻하고 겨울철에는 온화하였다. 내륙 지역은 중앙 고원의 북동쪽 모퉁이 지역—강이 지나가는 골짜기들에 의해 나누어진 지역—이었는데, 이 지역에서는 곡물이 재배되었다. 산비탈에는 숲이 우거져 있어서 선박 건조용 목재가 생산되었다. 해안 지역에서는 그리스 식민 도시들의 영향이 느껴졌지만, 내륙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동쪽의 아르메니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이곳은 한동안 페르시아 사람들의 영향을 받다가 기원전 4세기에 이르러 독립된 폰투스 왕국이 세워졌다. 미트라다테스라고 하는 왕들이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로마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러나 미트라다테스 6세 에우파토르는 로마의 세력에 도전하면서 자신의 왕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여러 차례의 전쟁을 벌인 끝에 폼페이우스 휘하의 로마군은 기원전 66년경에 그를 무찔렀다. 그 후 폰투스의 많은 지역은 서쪽의 비티니아와 합병되어 비티니아 폰투스라는 통합 속주가 되었다. 하지만 동쪽 지역은 갈라디아 속주(갈라디아폰투스)에 병합되었다. 나중에 이 동쪽 지역의 일부는 폴레몬에게 주어져(기원전 36년경) 폴레몬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2권, 71면 지도) 따라서 기원 1세기에 “폰투스”라는 말은 지리적인 면에서 그 해안 지역 전체, 또는 비티니아 폰투스 통합 속주의 폰투스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며, 심지어 갈라디아와 폴레몬 왕국의 일부가 된 동쪽 지역을 가리키는 때도 있었다.

1세기의 유대인 저술가인 필론은 유대인이 폰투스 전역에 퍼져 있다고 말하였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는 폰투스에서 온 유대인들도 있었다. (행 2:9) 폰투스에서 온 그 유대인 중에는 베드로의 연설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약 30년 후에 베드로는 “폰투스[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임시 거주자들”에게 정경의 일부인 자신의 첫 번째 편지를 (기원 62년-64경에) 보냈다. (베첫 1:1) 양 떼를 쳐야 하는 “연로자들”을 그가 언급한 점으로 보아, 아마도 폰투스에도 그리스도인 회중이 존재하였던 것 같다. (베첫 5:1, 2) 폰투스 태생의 아굴라라는 유대인은 로마로 갔다가 나중에 고린도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다.—행 18: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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