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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정인가 혹은 개인적 선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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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정인가 혹은 개인적 선택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3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하나의 반렬로서 예정됨
  • 생명록에 기록된 이름들
  • 구속함을받아 의롭다함을 얻어 거룩하게되어 택함을 받은자들도 떠러질수 있다.
  • 각 개인은 그들자신의 운명을 택함
  • “진리는 너희를 놓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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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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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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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라!—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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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3
파53 8/1 3-32면

“예정인가 혹은 개인적 선택인가”

“하나님은 편벽되지 않으시며 각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사도 10:34, 35, 신세.

1.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어떻게 함께나타나며 어떻게나타나지 않는가?

여호와는 공의의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성품을 나타내실때 결코공의를 잊지않으신다. 이들은 항상 완전한 균형으로서 같이 활동되며 다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죽는 일이 없다. 아담으로부터의 유전죄로 말미암아 모든사람이 죽게되였고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서 모든사람에게 생명을 얻을 기회가 제공되었다. “죄의값은사망이오 하나님의은사는 우리주 그리스도 예수로말미암는 영생이니라.” (로마 6:23, 신세) 대부분의 인간이 조금도 용납없는 이 정죄에 빠지게 강요하는 한편 소수인만이 생명 의사를 보도록 제한되어 있지않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행동 즉 그의사랑을 나타내느냐 않느냐를보시되, 얼마를 생명으로 선택하거나 혹은 다만 그의 공의를 높이기위하여 기타 많은사람을 강제적으로 정죄시키지않는다. 그렇게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편벽됨을 나타내게된다. 여호와는 “사람을외모로 보지않으시며” “편벽됨도 없으시다.” (신명기 10:17; 역대하 19:7) 그의 사랑과 공의를 현명하게 나타내시며 “위로부터 난 지혜는 편벽됨이없다.” “하나님께서는 편벽됨이 없나니라.”—야고보 3:17; 로마 2:11, 신세.

2. 어떻게 점성술은 예정설에 비슷한가?

2 그러나 많은 종교가들이 예정설을 말할때에 그들은 하나님이 편벽되다고 하지않을수 없게된다. 그들은 말하기를 각개인의 운명은 나기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결정하였다고한다. 그교리는 성경에 기초된것이아니라 이교도에서 갖어온것인데 자라서 전통이되였다. 신명기 4:19에는 예정설을 얼마 설명한것이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언약된 백성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또 두렵건데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들어 일월성신 하날의군중을 ···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여 섬길가하노라.” 고대 이교도의 종교에서 천체의신들을 만들어 그것을 섬기며 모든사람들의 운명이 이러한신들이나 천체들로 말미암아 결정된다고 믿는일이 보통이였다. 여호와께서는 별을 살펴보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다음과같이 선언하였다. “네가 많은모략을 인하여 피곤케 되였도다. 하늘을살펴 지도를그리는자와 별을보는자와 월삭에 네게 임할 운명을 예고하는 자들이 너를구원케 하여보라.” (이사야 47:13, 미현대역) 그들은 하늘을 열둘로나누어 지도를그려 그하나를한달로 만들었으며 사람이 난때에 그달이나 혹은 그별의 위치에따라 그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며 그별 신들로 말미암아 그들의인생이 결정된다고믿는다. 히랍이나 로마의 이교도들은 모다 천체의신을 만들었으며 오늘날 별들의 이름은 로마의 신화로부터 온것이 많다.

3. 바리새인들은 무엇을 믿었으며 그것은 그들을 어떠한 두통거리에 빠트렸는가?

3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기전에 그들은 가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였든것이다. (열왕기 하 17:16; 예레미야 44:17; 에스겔 8:16)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온후 눈에 보일만한 우상숭배는 하지않었으나 그대신 더 교묘한 올무에 걸리게되였든 것이다. 그들은 그들중에 발생된 많은 전통과 종교직교파를 세우기 시작하였든것이다. 그중에하나는 바리새인들이다. 그들은 예정을 하늘의 별의신들로 말미암아 믿지않았으나 여호와 께서 인간생명을 그렇게 예정한것으로 믿었다. 이교도의 교리를 여호와께 적용시켜 전통으로만들어 “시기와 우연이 이모든자에게 임하리라” 하신 하나님의말씀은 폐하고 만사를 예정에부치고있다. (전도 9:11) 유명한 유대력사가 요셉피스는 다음과 같이말하고있다. “바리새인들은 모든것을 운명과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그러나 운명이 협력할지라도 사람이 옳고 그른행실을 하는것은 오로지 인간능력에 있다.” “그들의 모든일이 숙명적으로 행하여진다고 말할때 사람이 옳다고 생각하는데로 행할수있는 자유를 부인할수없다. 그럼으로 그들의 생각은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어떠한 성격을 만드는것을 기뻐하시며 그 만들어진 성격에따라 인간이 선과 악을 행할수 있게된다는것이다.” (유대인의 투쟁2권8장, 유대인의 고대풍습18권 1장 인용) 예정설을 믿는동시에 인간이 도덕률에따라 행할자유를 갖이고있다고 믿는것은 과거나 현재를 통하여 그 신봉자들에게 큰 두통거리있다. 이 두가지가 결코 논리적으로 조화되지않는다. 어떠한 의지할만한 근거가 없음으로 오날날 많은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가상적 결론을 흔이 채택하고있다. 인간이 자유의사를 갖이고있으며 그 자유의사는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그길대로 움직이게 만들어 졌다는 말은 어떠한 기계가 자유의사를 갖이고있어 그 만든대로 움직인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4. 예정설에 관하여 천주교는 어떻게 발전되였는가?

4 이 바리새인들의 뒤를따른 로마 카돌릭의 특별한성인 오가스틴은 말하되 “그은혜는 구원을 주기로 결정한자 속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내적 역사며 선한일을 행할 생각뿐만 아니라 그능력까지 주었다고하며 어떤자는 구원받고 어떤자는 받지못하는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한다. 그럼으로 그의교리는 무조건 예정설이며 특수한 구원이며 또한 특별하고 저항할수없는 은혜인것이다. 그가 인증한 “버림”은 범죄할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에 근거되어 있다. 그가 이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것이 확실하며 이 같은 원리를 최후의 구원에 적용시키지 않었다. 529년에 오가스틴의 학설이 아라우시오 종교회의로 말미암아 채택하였다. 그러나 그교리가 논리적일지라도 부도적이라하여 항상 반대가 계속되었다. “사백년 이상이 경과 된후 한사람이 나타나 오가스틴의 학설을 완전히 만들어말하되 하나님께서는 군주로서 확고부동하게 자기가 기뻐하는자를 그의 장차의 믿음이나 순종을보지도 않고 생명으로 택하며 또한 스스로 기뻐하는대로 그들의 장차의 불충성이나 범죄를 생각지도 않고 영원한 형벌을받게 결정적으로 예정할자유를 갖이고있다고 말하였다. 칼빈의 선구자인 이사람은 꼿트쌀크라는 삭쓴의 중이였다. 그의생각은 종교상 비난을 받았을뿐아니라 박해까지받었다.” 848년과 849년 종교회의에서 그를 비난한 나머지 그를 매를치어 투옥시켜 그가 죽을때까지 20년동안 수도원에 갇혀 있었다. 스트롱씨 백과사전 8권499페-지.

5. 그 교리는 어데서 그 지지를 받고저하는가? 점성술은 그교리와 어떻게 연결되여 있는가?

5 이와 시대를 같이하여 다른종교가 생겨 숙명론과 예정론을 가르쳐 그들의 경전으로 설명하고저 하였다. “누구나 생명의 기한을정한 책에 따라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죽을수없다.” “그들중 얼마는 하나님이 인도하나 기타는 죄에 빠지게 마련하였다. 하나님은 그가 타락으로 이끌고저 하는자들을 인도하지않는다.” “불행이라는 것이 땅에나 너희들 인간에게 우연히 오는 일이 없다. “우리가” 그들을 창조하기전에 책에있었으며 하나님에게는 이런 일이 쉽기때문이다.” “이것은 참다운 경고니라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주의길을 취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임대로 될수없나니 하나님은 현명하사 자기 자비속으로 인도하고저 원하는자를 들어오게한다.” (수라 3:139; 16:38, 39; 57:22, 76; 76:29-31, 로드웰)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있는말이 아니라 마호맬교도의 경전이 고란에 있는말이다. 맥클린톡과 스트롱씨의 백과사전 1권 499면에는 예정론과 점성술을연결시켜 마호맬교리에 적용시켜 다음과 같이말한다. “그후자(점성술)로서 인간의뜻에 따라 발생되는 특별한 활동 평화 전쟁등의 사건을 예언할수 있는것같이 말하였다. 점성술은 마호맬교도의 예정설과 일치하여 아랍사람들로 말미암아 7세기부터 13세기에 걸쳐 맹렬이 발전되였다. 초기 크리스찬 신부들의 얼마는 점성술의 교리에 반대하였으나 그것을 변형하여 받아드린자들도 있었다. 공적자격으로 로마 카톨릭은 여러번 그러한 학설을 반대하였으나 열심있는 교회인들은 그것을 배양하였다. 불란서 박사들의 독수리 라고한 추기관 드 아이리(1420년사망) 씨는 점성술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계산하였고 홍수를 미리 예언할수 있었다고 말하여지고있다.

6. 칼빈의 영향은 어느정도였으며 그교리는 어떻게 퍼졌는가?

6종교 개혁운동이 한창 성했을때에 예정론은 다시 머리를 들게 되였다. 1530년대로 부터 20년간 쫀 칼빈은 무조건 예정론을들고 일어나 구원을 받을자 뿐만아니라 멸망될자도 예정되었는것을 주장하였다. 로마 카돌릭교회는 7세기전에 삭쓴의중 꼿트쌀크를 비난한것과 같이 이 논설에대하여 비난 하였다. 그러나 1세기후 웨스트민스타 종교회의에서 칼빈의 신앙고백을 지지하는편이 유력하게되어 1646년에 영국 국회로 말미암아 채택되어 영국 국교의 신조가되어 오늘날 모든 장로교회의 신조가될 원인이 되였든 것이다. 청교도로 말미암아 신 영국영토에 퍼졌고 개혁된 오란다 교도로서 미국의 중부와 서부에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이교리를 믿는 자들의 대부분은 장로교며 현대교회는 그교리에 가미하여 거친교리를 수정한것이다.

7. 예정설에대한 천주교의 견해가 어떻게 폭로되었는가?

7 이상의것으로 그교리가 어느정도로 퍼져 믿게되였는가를 짐작 할것이다. 그 예정론은 아직까지 고대 점성술의 영향을 받아 이교도와 바리새인 마호맷교 장로교 로오마 카돌릭등이 조곰식 수정하여 아직 믿고있다. 그중에 얼마는 이 교리에 깜짝 놀래며 부인하는자도 있을것이다. 그럼으로 1951년6월에 분도회신부리카르드로 말미암아 발간된 “왜”라는 소책자 이것은 위스칸신 베네트에있는 베네딕트신부들로 인정된 서적이다. “하나님은 어떤 자의 영혼을 천당에 예정하였다. 그러나지옥으로는 예정하지 않는다. 트렌트 종교회의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옥으로 예정하였다는 이단 칼빈의 절대적 신조를 비난하였다. 천당으로 택정하였다는 예정은 확실히 하나님의 역사나 악한자의 버림은 예정한것이 아니다.” 이말은 어떤자는 구함을 받는다는 오가스틴의 교리를 재확인하는 것이며 구원을 받지못하는 자는 특히 정죄 받게 예정되였든 아니든 자율적으로 희망없는 자가되고 말것이다. 최근 현 주교의 예정설은 또 싹이 트기시작 하였으며 특히 불가운데서 타서 죽은 소녀의 장의식의 식사의말을 보아 현저하다. 그날 부륵크린에있는 천주교회의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은 또하나의 천사가 필요하여 모로듸를 데려갔다. 그는 지금까지 부모와같이 있게하였다가 이번 크리쓰마스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데려갔다”고말하였다.—뉴욕매일신보 1952년 12월 19일

하나의 반렬로서 예정됨

8. 장로교의 예정론은 무엇인가?

8 그러나 장로교회에서 가장 이 예정설을 지지하고 있음으로 우리주의를 거기 집중하여보자. 그들의 말에 의하면 “생명을 얻게 예정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원하며 변함없는 목적과 감추인 섭리와 기뻐하시는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 세우기전부터 택정하였으며 장차의 믿음 선행 인내와 그타 어떠한 인간적 조건과 관계없이 다만 그의 자비와 사랑의 자유중에서 그들을 영원한 영광에 이르게하며 그들로 하여금 모다 그걸로 움직이게하여 영광스러운 찬양을 그에게 드리게 만든다. 그타 남어지 인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대로 더 줄수도 있고 보류할수도있는 측량할수 없는 섭리와 인생에대한 군주적 지배권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에게 불명예와 정죄를 정하며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를 나타낸다”라고 그들은 말하고 있다.

9.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서 예정설을 발견할수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노력 하는가?

9 장로교는 바울의 말에서 이것을 볼수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바리새인으로서의 바울에 가르침에서는 발견할수 있을것이나 사도 바울로서의 가르침에서는 발견할수없다. 다소의 사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심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였다. 바울은 아마 그때에는 예정설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교리를 일단 버리자 그 유전적 교리를 살리고저 원하지 않었다. 예수는 그러한 종교가들에게 다음과 같이말하였다. “너희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피하는도다.” (마태 15:6) 바울은 각개인에게 한 바리새인의 예정론으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더럽히지 않었다. 그러나 오늘날 장로교는 로마 8:29, 30에 바울이 쓴말을 인용하여 바울이 예정론을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로 또한 그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위하여 미리 예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 또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하시고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나니라.”

10. 로마8:29, 30은 왜 각개인을 예정한것이 아니라 하나의 반렬을 예정한 것이 되는가?

10 이성경 구결로서 어떻한 사람들이 택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입어 령적 피조물로 영화롭게되어 그리스도와함께 천년동안 통치 하게 예정되었다고 확실히 말할수 있는가? 이구절을 잘 생각하여 보라. 만일 불리움을받아 의롭다함을 얻은자들이 미리 예정되있다면 그 예정은 결코 실패할수 없으며 한번 불리움을 받아 의롭다함을 얻은 각사람은 그리스도와 더부러 영화롭게 될자격을 결코 상실하지 못할것이다. 만일 이구절이 각개인에게 적용된다면 그렇게 볼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후에도 성경구절에서 보게되는바와같이 한번 불리움을 받아 의롭다함을 얻은자가 떠러지 멸망될수있다는것을 다른 성경구절에서 명시하고 있다. 그럼으로 로마 8:29, 30의 실패없는 예정은 아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반렬을 예정하여 그들이 행할표준과 지상에서의 임무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봉사할것과 그 영광스러운 자리와 또한 그수호를 예정하신것이다.—묵시 14:1-4

11. 이구절의 인칭대명사는 반렬대신에 각개인을 말한것인가?

11 어떤사람은 말하기를 만일 이것이 한 반렬에 적용된다면 인칭대명사 “그들을” 대신에 “그것을” 써야할것이라고한다. 그렇게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가끔 인칭대명사를 한 단체를 이루는 각개인에게 사용하기보다 한 단체나 반렬에 사용한다. 예를들면 학교가 운동경기를 하였는데 그경기에 이긴 학교의 한 여학생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들을 이겼다고” 한다. 그때 “우리”라는말은 그 학교를 전체적으로 말하는것이며 결코 학생개개인을 말하는 것이아니다. 왜냐하면 그 학생각자가 다이긴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여학생도 하지않았을것이다. 다만 그팀에 참가한 사람들만이 이겼을것이다. 또한 “그들”이라는말은 경기에진 학교학생들 개개인을 말하는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모다 경기에 참례하여 지지않었기때문이다. “그들”이라는 말은 경기에진 학교를 한 단체로서 말하는것이다. 그와같이 로마 8:30도 개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반렬을 말하는것이다. 이렇게보아야만 이구절은 다른구절과 조화가 된다.

12. 마태 22:14은 예정설을 어떻게 물리치는가?

12 만일 여호와께서 미리 각개인을 구원에 이르게 예정하였다면 그러한 예정에 들어있지 않는자들을 부를것인가? 그러한 부름은 극단으로 위선적이며 실패 되겠끔 예정된자들에대한 무자비한 조롱이며 잔인한 마도일것이며 그것은 약한자들이 전능한 창조주의 손에서 당하는 참혹한 형벌일것이다. 그러한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속성을 부인하는것이된다. 여호와께서는 결코 그러한 사랑이없고 불의하고 위선적인 악을 행치않으신다. 다만 그의 거룩한 령 혹은 활동력을 하늘 반렬에 초대된 수효에 부어주었을 따름이나 그들이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에 관하여서는 예정하지 않았다. 초대를 받은자들중에도 충성이 없으면 제거된다. 그자리를 충당하기 위하여 더 초대된다. 많은자가 불리움을 받은후에 떠러저 나갈지라도 충분한 초대로서 그 예정된수효는 반드시 도달하게된다. 그런고로 예수께서도 “청함을 받은자는 많으되 택함을 입은자는 적으니라” 하였다. 만약 예정이 진실하다면 불리움을 받은자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택함을 입어야 할것이다.—마태 22:14.

13. 에베소 1:4, 5로 말미암어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장로 교인들은 어떻게 대답하며 그대답은 어떻게 혼돈되는가?

13 이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또한 에베소 1:4, 5을 인용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 사용된 “우리를” 또는 “우리로”는 먼저 지적한바와같이 하나의 반렬을 말하되 각개인을 말하는것이 아니다. 이구절에는 이 반렬이 “창세 전에” 예정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여호와께서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기 전에 그들이 죄에 떠러저 불완전한 자손을 출생시키게 됨으로 그 타락된 인간을 다시 완전하게 인도하기 위하여 대속자인 그리스도와 그와같이 통치할왕국의 반렬을 그때에 벌서 예정하였다는 말일것인가? 장로교인들은 그렇다고하며 다음과 같이말한다. “그의 전능하심과 측량할수없는 지혜와 무한히 선하심으로 오래전부터 그 섭리가 나타나사 아담과 해와가 실패할것을 아셨고 그타 모든 천사와 인간들이 범죄할것을 아셨고 그들이 그렇게 할것을 다만 허락하셨을뿐만아니라 모든것을 가장현명하고 강력히 제제하며 그들을 조종하며 지배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의 거룩한 목적을 달성코저하신다.” 또한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영원부터 그의 가장 현명하고 거룩한생각과 그의 뜻대로 자유로히 또한 확고부동하게 장차될일을 모다 예정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이 확고부동하게 모든것을 예정하고 장차될일을 모다 통솔지배하나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유의사를 갖이고있으며 하나님이 모든 예정에 대하여 책임질수 없다는 교리에 그들은 만족하고 있다. 매우 혼돈되지 않는가?

14. 에베소 1:4, 5에있는 “세상”을 성경적으로 어떻게 볼수있는가?

14 여호와께서 아담과 해와가 떠러질것을 미리 예정하였다는 증거는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실패한후 순종하는 인간을 세우기 위하여 왕국반열을 “창세전(세상 토대를 세우기전)”에 미리 예정하였는가? 왜냐하면 아담과 해와가 창조되기전의 세상은 이 반열의 토대가 예정된후의 세상과 다르기때문이다. 베드로는 세가지 세상을 말하였다. “그전 세상”이라 하여 아담이 범죄한후로부터 노아홍수때까지의 세상과 노아홍수부터 시작하여 아마게돈으로 멸망될때까지의 현세상과 의가 거하는 약속의 신세계 세가지를 말하였다. 그 신세계의 토대는 예수께서 죽을때에 세워진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함을 얻어 얼마는 새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되고 그타 순종하는자들이 새땅에서 영원히 행복스럽게 살게된 것은 예수의 희생적 죽엄으로 말미암아 그기초가 세워졌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창세로부터 죽임을당한 어린양”이라 하였다.—히브리 9:25, 26; 베드로 후 3:5-7, 13; 묵시 13:8, 신세.

15. 그 반렬을 세상토대를 세우기 전에 예정하였다는 말이 왜 하나님께서 아담의 실패를 미리알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 가?

15 예수께서 나무에 달린것이 아담의 창조전이 었든가? 결코 그렇지않다. 그보다도 4천년후인 주후 33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엄과 부활과 승천으로 그 피의 대가를 여호와께 바침 으로서 의로운 신세계의 토대가 세워지기전에 그리스도와 왕국의 반렬은 예정되었다. 그러나 이 예정은 아담과 해와가 범죄한 이후의일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갖어오며 충성된 인간들과 함께 신세계의 새하늘에서 통치할 후예로서 약속된것은 아담과 해와가 실패한 이후의 일이었다. (창세기 3:15; 22:17, 18; 이사야 65:17; 갈라디아 3:16, 29) 아담의 범죄와 그의 후손들이 사망에 이르게 예정하였다는 논설에 대하여 신세계의 기초가 서기전(주후 33년)에 왕국반렬이 예정되었다고 할때 그것이 이해된다. 만일 여호와께서 아담의 범죄를 예정하였다면 순종을 보기위한 에덴동산의 시험은 진실한것이 아니었고 허위며 사기며 한낱연극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영생을 불공평한 저울에 걸어 그러한 대실패의 연극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레위기 19:36; 신명기 25:13-16; 잠언 20:10.

생명록에 기록된 이름들

16. 예정론신봉자들은 생명책에관하여 어떻게주장하며 이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역효과를 갖어오는가?

16 예정론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또 하나의 논제가 있다. 성경에는 생명책을 말하였으며 이 생명책에 각개인의 이름이 창세전부터 기록되어있어 이것으로 구원받을 자가 예정된것이 판명된다고 한다. 먼저 말한거와같이 그들은 묵시 13:8이나 17:8을 올바루 적용하지 못한다. 그들의 주장은 아담창조와 더부러 처음 세상이 시작하기전에 어떤자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있고 어떤자는 빼놓았다고 한다. 또한 누가 10:20과 빌립보 4:3, 묵시 21: 27에서도 그문제를 교묘하게 왜곡하지 않고는 각 개인의 출생전에 이름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할수 없다. 사실 예정론 지지자들이 생명책을 논제에 내논다는것은 역효과를 갖어오는것이다. 왜그런가하면 만일 생명책에 구원에 이르도록 미리 예정한 그예정이 실패되면 예정론의 기초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충성을 입증한자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한바 “이기는 자는 내가 그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없새지 아니하겠다” 하셨다. (묵시 3:5, 신세) 이말은 그이름을 없새버릴수 있다는 것을 표시하며 만일 없새버리는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수의 약속은 무의미 한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것을 시편69:28 에도 명시하였다.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이스라엘이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섬겼을 때와같이 불충실한자들을 없새버리는 것이 여호와의 목적인것이다. 이스라엘을 용서할것을 간구한후 모세는 “주의 거룩하신책에서 내이름을 도말하소서” 하였을때 여호와께서는 “누구던지 내게 범죄하면 그만 내가 내책에서 도말하리라” 하였다.—출애굽기 32:32, 33, 미현대역.

17. 여기 이름을 어떻게 보는것이 타당한가?

17 이 이름들이 각개인이 출생하기전에 고대로 기록되어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 어린아해들의 이름을 모다 지으셨다는 결론이된다. 어떤이름은 잡신들의 이름을 따라 지은것도 있다. 여호와께서 예정된 자기 종들에게 그러한이름을 주었을 것인가? 우리는 좁은 견해를 버리고 각개인의 이름자체보다도 더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것을 알아야한다. 성경에는 그이름의뜻이 여러가지로 나타나 있으며 각개인의환경 활동 성품등을말하였고 일생중에도 환경이 바뀜에따라 그뜻도변한다. 이름은 이러한 광범위뜻으로 성품 본질 행동을 표시하며 그러한것을 근거로서 그이름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두려워하며 존경한다든가 유명하다든가 유명하지못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는가 기록되지 않었는가는 그들 일생의행동이 결정하는 것이되 출생시주어진 이름이 결정하는것은 아니다.

18. 생명책에는 어떠한 이름이 기록되는가?

18 생명책에 기록된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 요구조건에 일치된다는 것이다. 거기 일치되는 조건은 온유함과 겸손 공의 정직 사랑 자비 열심 충성 꾸준한봉사등이다. 우리가 만일 우리자신을 도덕적인 성품과 충성과 열성있는전도와 이웃을 사랑하는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될것이다. 우리가 이름이 생명책가운데 들고저원하면 그속에 기록되기에 합당하도록 우리가 살아야 한다. 우리가 행한행동이 여호와께서 처음부터 정하신 요구조건에 일치되어 무든 기록이 합당할때 우리의 이름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들게되는 것이다. 우리의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이 요구하는바에 합당할때 우리이름은 그속에 기록된다. 생명책은 사람이 쓰는 것과 같은 책이아니다. 그러므로 그속에기록되는것도 모든사람이 출생할 때 받은 그이름이아닌것은 물론이다. 생명책은 여호와의 의로운 요구조건이며 인간은 마땅히 그와 합당하게살아야하며 그속에 기록 된자들의 이름은 그요구조건에 일치되게 산 사람들의 이름인 것이다.

19. 우리는 어떠게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시킬수 있으며 또한 도말될수 있는가?

19 우리는 그책속에 우리의 이름을 넣을수도있고 없샐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다 진노의 자식임으로 책에 들어있지않다. (요한복음 3:36 ) 우리가 그리한 죄가운데서 얼마를 살다가 우리의 태도를 고쳐 생명책에 기록되기에 합당한일을 행하여 그러한일에 연결을 갖임으로서 우리는 생명책에 들어갈수있다. 그속에 드느냐 안느냐는 우리 행동여하에 달린것이다. 처음부터 거기 세워놓은 모든 요구조건에 우리가 일치되지못하면 우리이름이 거기 기록되기에당치않다. 그러나 우리가 행동을 바꾸어 선한일을 행하여 우리의 이름을 아름답게 만들때 우리는 그 생명책 범위내에 들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후 불충실하게되어 그이름에 합당하게 살지못하여 그좋은이름을 상실하고 나쁜이름을얻어 부도덕함과 나태 떠벌이 불평 뒷공론을 잘하는 사람이나 거만한자가 된다면 어떠게 되겠는가? 우리가 생명책에서 찾아볼수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름은 그책에 기록되지않으며 그 요구조건에 합당하지못함으로 우리의행실은 그책에 기록될 자격을 상실한다. 우리가 한때 좋은 이름을 갖어올지라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나쁜이름을 갖게된다면 그이름은 생명책에서 도말된다. 그러한 악한이름은 하나님의 기억에서 없어지며 따라서 부활이나 구원이 없으며 악한이름으로 바뀌어졌을때 먼저 의로운 이름은 잊어버리게된다.—잠언 10:7; 에스겔 33:12-16.

20. 사람의이름이라는 가운데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으며 우리는 그 이름에 어떻게 합당하게 살아야하는가?

20 예수의 이름을 사람앞에 나타낸다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바와같이 그이름만을 반복하는것을 말하지않었다. (마태 7:21) 그이름을 올바로 부르며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그이름이 표시하는 뜻과 그중요성과 그명성과 그것이 표시하는 것을 입증하여 그것을 우리의 본으로서 사는 것이다. (마태 10:32; 마가 8: 38; 누가 12:8) 그와같이 그리스도께서 그추종자들의 이름을 하날에 계신 하나님께 인증을 받겠다는것은 다만 그들의 이름만을 말하는것이아니라 그들의 충성된 봉사로말미암아 이루어진 충성의이 름을 입증하는것이다. (묵시 3:5; 14:13) 여호와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출생시 우리의 이름을 주는것이아니라 어떠한 충성스러운 종의반렬에 행할 이름들을 지정하는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야한다. (이사야 43:10-12; 62:2-4; 묵시 2:17; 3:12) 그러므로 이름만을 하늘에있는 정말책에 기록하는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요구조건에 맞도록 사는 것이다. 우리의열매로서 우리자신을 입증한다. (마태 7:20) 만일 우리의 열매가 생명책에있는 것과 같은것을 입증하면 생명책도 우리를 입증하며 승인하며 우리를 받어드린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생명책에 기록된것과 일치되는 행동으로서 생명책속에 우리이름이 들도록하자.

21. 예수라는 이름이 히브리어성경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의 이름이 히브리어성경에 있다고 할 수 있는가?

21 이것은 생명책에 기록될이름들에 대한 독단적견해가아니라 그와같은 예를성경에서 볼수있다. 히브리어성경은 메시아를 표시하였는가? 물론이다. 그러나 개인적 이름으로 표시하였는가? 아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메시야에 관련되어 있지않다. 그러나 개인적이름이 히브리어성경에 없다하여 예수를 메시야가 아니라고 할수없다. 많은 묘사적이름이 메시야에게 주어졌다. 즉 그성품 행동 봉사 지위등에관한 묘사적이름인것이다. 그의이름은 임마누엘이라하였고 또 그이름대로 살았다. (이사야 7:14; 마태 1:22, 23) 그는 또한 기묘자라 모사라 대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생의 아버지라 평강의왕이라 하였고 또그에 합당하였다. (이사야 9:6) 메시아는 그외에도 여인의후예 아브라함의 후예등 여러가지 예수께서 성취시킨 이름들이많다. (창세기 3:15; 22:17, 18; 갈라디아 3:16; 히브리 2:14) 이방의종 또는 빛이라하였다. (이사야 42:1, 6; 마태 12:18; 누가 2:32; 사도 26:23) 선생 또는 증인 (이사야 55:4; 마태 23:10; 묵시 3:14) 구속자 (이사야 59:20; 로마 11:26) 시험한돌 모통이돌 건고한기초라하였다. (시편 118:22; 이사야 28:16; 마태 21:42; 에베소 2:20; 베드로전 2:4, 6-8) 그타 히브리어성경에는 메시아에 관하여 수백개나되는 묘사적 기록이 예수에게 이루어진바 그가 메시아인것이 더욱 밝혀 드러나게되었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그와같이 말씀하셨다. (누가 24:27, 44, 45) 예수께서는 히브리어성경에 메시아에게 준 모든 이름에 일치하였다. 이모든 묘사적이름이 예수에게 모다 적용되었을때 히브리어성경에 메시아에 관련하여 예수의 이름이 없다하여 예수의이름이 히브리여성경에 없다고 하겠는가? 그럴수없다.

22. 그와 흡사하게 충성한자들은 어떻게 생명책에 기록되는가?

22 그러므로 생명책도 그와같은 관계에있다. 성경에 상징적으로 되어었는 이름들은 열성 충성 순결 정직등이다. 우리가 그러한 묘사적이름에 합당하면 우리는 생명책에있게된다. 마치 예수께서 히브리어성경에 개인적이름이 적혀있지 않을지라도 메시아로 입증되었든것과같이 우리의 개인적이름이 하늘에있는책에 그대로 기록 되어있지않어도 우리는 생명책에 기록된것과같은 자격을 받게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히브리어성경에 묘사적으로 기록된 메시아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지못하였다면 메시아의 자격을 상실하였을 것과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조건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좋은 이름을 상실하여 생명책에서 도말될것이다.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묘사적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그묘사적 이름에 합당하게 살아 그것을 우리이름으로 만드므로서만 구원된 자로서 그속에 녹명되는것이다.

구속함을받아 의롭다함을 얻어 거룩하게되어 택함을 받은자들도 떠러질수 있다.

23. 장로교인들은 마태 22:14의 입증을 피하고저하여 어떠한말을 부가하는가? 또한 그들은 구속함을 받은자들에 관하여 무어라고 말하는가?

23 예정론 신복자들은 또하나의 의론을 만들어 한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한번 구속함을 얻은자는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다함으로 우리는 이에 대하여 모순을 지적하고저한다. 한번 불리움을 받은자도 실패할수있다는것이 먼저인용된 마태 22:14에있는 예수의말에서 명시된바와같이 그목적으로 많은사람이 불리움을 받으나 결국 마지막 구원을 받을자는 적다. 이구절은 그들의 교리에 치명적 타격을준다. 그들은 그것을 회피하고저 말하되 불리움을 받은자가 떠러지는것은 그가 실질적으로 불리움을 받은자가 아니라한다. 성경에는 이러한말을 인증할만한 어떠한 구절도없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를 살리기 위하여서는 이것을 주장하지 않을수 없다. 그들은 여기서 “실제적으로”라는 말에 무거운짐을 지우고저하며 이말을 사용하여 실패의 가능성을 제거하고저한다. 그들은 이말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자들과 연결시켜 말하되 “그리스도는 그가 대속하여 사신 모든자들에게 실제적으로 교통하여 그들에게 전달시키며 계시하며 그의 말씀으로서 구원의 비밀을알리며 또한 실제적으로 믿을것과 순종할것을 성령으로 이해시키며 그의 말씀과 령으로서 그들의 마음을 조종하며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로서 모든 적들을 굴복시킨다. 이러한 방법은 가장 놀랍고 측량할수없는 그의 섭리인것이다.”

24. 베드로후 2:1-3은 예정론자들에게 어떠한 타격이 되는가?

24 이상의 말로서 그들의 교리는 대속함을입은 사람들은 결코 떠러질수 없으며 그대속은 실제로 그들에게 적용되어 그들은 확신을 갖게되며 그의 모든적들을 이길수 있다는 것으로 판명된다. 무엇으로서 그들은 구속함을 얻었는가? 베드로는 이에 대답한바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조상의 유전한 망녕된 행실에서 구속된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것으로 한것이아니오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것이니라” 하였다. (베드로전 1:18, 19; 에베소 1:7; 골로새 1:14; 히브리 9:12; 묵시 5:9) 그리스도는 자기피로서 그들을 샀으며 그들은 그의것이 되었다. 그들에대하여 다음과같이 기록되었다. “너희는 값으로 산것이되었으니 너희의것이 아니니라.” (고린도전 6:19, 20; 7:23, 신세) 예정론자들의 교리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구속하였고 그들을사서 그들의 상전이 되었은즉 그들은 결코 떠러질수 없을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떠러질수 있다고하였고 또 얼마는 떠러진다고 하였다. “저희는 멸망케할 이단을 가만이 끌어드려 자기를사신 상전을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다.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것을 좇으리니 저희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멸망은 자지 아니하나니라.”—베드로후 2:1-3.

25. 한번 대속을 입은자가 떠러질수 있다는 것을 무엇이 더욱 증명하는가?

25 사도 베드로는 이에대한 말을 계속하여 대속함을 입은자들도 후에 그들의 상전이 그리스도 예수를 부인할수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저희가 우리주되신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알므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후에 다시 그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바리는것보다 알지못하는것이 도로히 저희게 나으니라.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구토하였든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었다 하는 말이 저희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 2:20-22) 한번 진리의 물과 예수의피로서 정결케된후 그 들은 다시 그 죄와 더러운것에 돌아간다. 그러나 그들의멸망은 잠자지 않고 하나님의 정한때에 입한다.

26. 바울은 대속을 입은 자들이 타락할수 있다는것을 어떻게 명시 하였으며 무엇이 그들을 회개할수없게 만드는가?

26 사도 바울도 이와같은 것을 기록하였다. “한번 비을 얻고 하날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례한바되고 하나님의 선한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수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나무에달아 공중에게 부끄럽게 보임이라.” (히브리 6:4-6) 여기 말한사람들은 속죄의 은혜를 곧 예수의 피로산자들이 타락할때 회개의길이 없는것을 말하였다. 만일 그들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그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렀을것이다. 하여간 그들은 희생의 은혜를 입은 후에 타락된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를 부인하여 현저히 그를 나무에 달아 그의 희생의 가치를 무효케하여 한낱 죄인으로서 죽게 만든다. 그리스도는 그들을위하여 한번 죽었다. 그들을 위하여 다시죽으러 세상에 오지않는다.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것의 피로써 성소에 드러가는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랴고 아니하실지니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드려 죄를 없게하시려고 세상끝에 나타나셨나니라.”—히브리 7:27; 9:25,26.

27. 장로교인들은 의롭다함을 얻은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을 말하며 성경은 어떻게 말하는가?

27 장로교인들은 한번 의롭다함을 입은 사람들은 “그 의의 상태로부터 결코 타락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무엇으로서 의롭다함을얻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구속으로 부터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은자되었고” 혹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로마 3:24; 5:9) 그러나 먼저 성경구절은 한번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함을 얻은후에도 타락할수 있다는 것과 또한 그러한 사람들은 다시 회개할 길이 없다는것을 알리고있다. 의롭다함을 갖어오는것은 대속임으로 대속이 있을때에는 의롭다함도 있다. 장로교인들은 의롭다함을 얻은사람들도 죄를 범하며 하나님께 불만을 갖어올수 있다는것을 인증하나 다만 겸손하게 고백하여 용서를 간청함으로서 “그들을 회개케하여 믿음을 새롭게 할수있다”고 부가한다. 그러나 먼저구절은 그러한자들중 “타락한자들은 다시 새롭게하여 회개케 할수없나니라” 하였다.—히브리 6:4-6.

28. 거룩하게 된자들에게 관하여 장로교인들과 성경은 어떻게 충돌하는가?

28 장로교인들은 정결케된자들은 안전하다하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그들을 그의 사랑하는자 안에 기뻐 받으사 그의 령으로 말미암아 실제로 불리움을 받아 거룩하게 되었음으로 그들은 완전히 그의 은혜로부터 떠러질수 없으며 끝까지 견디게 되어 결국은영원히 구원에 이를수있다”고한다. 히브리 6:4-6과 베드로후 2:20-22에 논의된 같은 반렬이 히브리 10:26-29에 또 설명하였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지식을 받은후 고의로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것과 대적하는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법을 페한자도 두세증인을인하여 불상히 여김을 받지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한 언약의피를 부정한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하는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나냐 너희는 생각하라 그들은 그들이 은혜속에 들어오게된 예수의 새언약의 피를 욕되게한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세의언약밑에 사망의고통을 받은자들보다도 더 심한 욕과 멸시를 받아 영원한 멸망으로 불사루어질것이다. 그러나 여기 요점은 이 대항자들이 한때는 거룩하게 되었었으나 결국 타락 되었다는 것이다.

29. 예정론과반대로 택한자들이 떠러질수 있다는것을 무엇이 증명하는가?

29 그리스도와함께 통치할자들을 흠정역에는 “택한자”라하였고 현대역에는 “뽑힌자들”이라하였다. 예정론을 믿는자들은 그러한 사람들이 결코 떠러질수없다고 주장한다. 마가 13:22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이러나서 이적과 기사를행하여 가령 할수만있다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하려하리라.” 가령이라는말은 히랍어 원본에 들어있지않다. 현대역은 더 정확하여 “될수있으면 뽑히운 자들도 타락시키기위하여” (신세) “될수있으면 하나님의 선민들을 그릇인도하기 위하여” (미현대역)라하였다. 그들의 얼마는 떠러지고 얼마는 떠러지지 않는다. 바울도 택한자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위하여 어떠한것을 참았든것이다. (디모데후 2:10) 만일 택한자들이 떠러질수없다면 이러한 것은 필요하지 않았을것이다. 만일 하나님의예정이 확고하다면 뽑힌자들에게 그렇게 할것을 훈계할 필요가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실을 굳게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결코 실족하지 않으라” 하였다. (베드로후1:10) 여기 확실히 베드로는 그들이 택하신것을 그들자신의 노력으로 굳게만들지않으면 그들이 떠러진다는것을 말하였다. 만일 그들이 실족할수 없다면 그들을위하여 환난의 날을 감하였을것인가?—마태24:22.

30. 예정된 반렬의 충성된자들도 실족할수 있다는것을 무엇이 또한 증명하는가?

30 예정론 교리는 한번 대속함을입어 의롭다함을 얻어 거룩하게 되어 택함을 받은 자들은 결코 떠러지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은 그와 반대되는것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한번 구원된자들은 항상 구원되어 있는것이아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이긴자들은 다만 불리움을받고 택함을받았을뿐만 아니라 “불리움을 받고 택함을받고 충성”되어야한다. 갖이고 있을뿐만 아니라 꼭잡아야 한다. “네가 갖인것을 굳게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았지 못하게하라.”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할 기름부음을 받은자들은 뜨뜨미지근하게 될수없다. 그처럼 식어진자들에 그리스도께서 말하신바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였다. (묵시 2:10; 3:11, 16; 17:14)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날에 왕국에 참례할자들은 끝까지 참아야한다. “우리가 처음 확신한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례한자가 되리라.” (히브리 3:14, 신세) 이기기위하여 끝까지 경주하여야하며 끝까지 싸워야한다. (마태 10:22; 24:13; 디모데후 4:7, 8) 확실히 사도바울은 예정된 반렬이었으며 택하고 불리움을 받고 대속함과 의롭다함과 거룩함을 얻은자 였으나 그가 처음으로령감을 받은 편지를 고린도인에게 보낼때에 역시 그가 버림을 받을수 있다는것을 말하였다. “내가 내몸을쳐 종과같이 만듬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가두려워 함이로라.” (고린도전 9:27, 신세) 그는 각개인이 예정되어 실족할수없다는것을 확실히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면류관에 대하여 확신을 갖었든것은 다만 그의 죽엄이 가까워 선한 싸움이 끝났을때었다.—디모데후 4:6-8.

각 개인은 그들자신의 운명을 택함

31. 어느성경구절이 예정론을 부인하며 개인적 선택을 명시하는가?

31 예정론자들의 입장은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운명을 탄생전에 예정하여 그들이 장차 행할 행동도 고려하지 않고 어떤자는 구원에 어떤자는 멸망으로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8항참조) 만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운명을 나기전에 모다 택정하 여 어떤자들에게는 사망만을 택하게 만들었다면 모세는 령감을 받아 이스라엘에게 다음과같이 말하지 않았을것이다. “내가 오늘 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자손이 살기위하여 생명을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것이 네게 생명이 되리라.” (신명기 30:19, 20, 미현대역) 또한 여호수아도 이와같이말하지 않었을것이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것이 너희게 좋지않게 보이거든 너희 렬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던지 혹 너희의 거하는땅 아모리사람의 신이던지 너희 섬길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5) 또한 “누구던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요엘 2:32; 로마 10:13) 예정으로 제한된것이 아니라 누구던지 원하는자는 생명을 얻을수 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자도 올것이오 목마른자도 올것이오 또 원하는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하시도다.” (이사야 55:1; 묵시 22:17, 신세) 또한 여호와께서 갈아사대 “내가 그들에게 경고하노라 들을자는 들을것이오 원하는자는 귀를 기우릴것이오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것을 조곰인들 기뻐하랴 그가 도리켜 그길에서 떠나서 사는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나냐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저 하나냐 죽는자의 죽는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도리키고 살지니라.”—에스겔 3:27; 18:23, 31, 32; 33:7, 11-15.

32. 무엇이 예정론의 어리석은것을 폭로시키는가?

32 만일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는 자들이 택할 힘이 없다면 먼저말은 얼마나 위선적 호소일것인가? 여호와께서 어떤자들은 사망으로 예정해놓고 그러한 하나님의 예정으로부터 돌아서 살것을 기뻐하신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만일 예루살렘의 자녀들이 버림을받게 예정되있다면 그들을 모을것을 간절히 원하였다는 말을 예수께서 하였을것인가? 물론 그렇지않다. 성경기록은 그들이 예수께서 원한바와 반대의 길을 원하였다는것을 알리고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자들을 돌로 치는자여 암닭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한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집이 황폐하여 버린바되리라.”—마태 23:37, 38.

33. 누가 구원을 얻을수 있으며 또한 어떻게?

33 영생은 통설력이 없는 인간의 예정으로서 오는것이아니다. 여호와와 그리스도를 알며 인정받은 일꾼으로서 진리를 옳게 분별하며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두려움과 떠는 마음으로 행하며 우리자신과 다른사람들의 구원을위하여 전도에 열심하며 다만 듣는자만 되지말고 행하는 자가되며 입설로만하는 봉사가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서 얻는것이다. (마태 7:21; 요한복음 17:3; 빌립보 2:12; 디모데전 4:16; 디모데후 2:15; 야고보 1:22) 예수께서는 제한된 소수의 예정된자들의 구원만을 위하여 대속하시지않고 “순종하는 모든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었다. (히브리 5:9)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이를 섬기기위하여 택할 자유를 갖이고 있으며 또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할수있다. 그들의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운명이 생명 혹은 사망으로 결정되는것이다.—로마 6:16.

34. 예정과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은 어떠한 면에서 모순되며 무엇을 근거로 사람은 거두게되는가?

34 만일 예정론이 옳다면 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그의 율법을 주었으며 또한 왕국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게하였으며 심판 때를 정하여 모든사람의 운명을 정하되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각사람에게 그 행위로 보응하시고” “각사람이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하였는가? (에스겔 7:27; 로마 2:6; 묵시 20:13) 그렇다면 왜 천국복음과 그리스도의 소자들에 대한 반응에 따라 모든 백성을 양과 염소로 갈라내며 (마태 25:40, 45) 사람들이 나기전부터 결정되였다면 이러한일을 할 필요가 어디있는가? 인간의 운명에대한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자신에게 있는것이다. 하나님이 예정한것이 아니라 사람이 심은대로 거두는것이다. 생명을 거두고저 하는자는 심는것을 게을리 할수없다. “각각 자기의짐을 질것임이니라 스스로 속이지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역임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으던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으는자는 육체로부러 썩어진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받으리라 우리가 옳은것을 행하되 낙심하지말지니 기르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메 거두리라.” (갈라디아 6:5, 7-9, 신세) 하나님은 어떤자에게 생명으로 예정하고 어떤자를 사망과 고초로 예정하여 공의롭지 못한 대우를 주시는 편벽된분이 아니다. 모든증거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하나님은 사람을 편벽되게 보시지 아니하고 각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다.”—사도 10:34, 35.

35. 그러나 우리는 행함에 관하여 무엇을 명심하여야 하는가?

35 먼저 논의 된것으로서 누구나 우리자신의 행위로서 구원에 이를수있다고 결론지어서는 않된다. 만일 그렇게 할수있다면 우리의 권리로서 우리가 구원을 얻을수 있을것이나 우리는 그렇게 할수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과만한 은혜로서 오는것이다. (로마 11:6; 에베소 2:8, 9; 디모데후 1:9) 그러나 배움으로서 믿음을 얻으며 우리의 지식과 일치조화된 일을 행함으로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입증한다. (로마 10:14, 17; 야고보 2:18-26) 우리는 이러한일을 행함으로서 순종을 나타내야 한다. 왜냐하면 순종한 자들에게 속죄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함이 없이는 구원에 이를수 없다.

36. 장로교인들은 이러한 곤난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려고 하였으며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는가?

36 또한 우리가 알것은 1902-1903년에 결처 미국에있는 장로교회는 성명서와 함께 신앙의 고백에다 2장을 더 부가하였다. 이 부가는 확실히 거칠은 예정론을 부드럽게 만들어 성경과 일치시켜 개인적 선택과 선한 행위의 필요성을 도입시키고저 하였든것이다. 이러한 의도하에 부가된 내용은 먼저내용과 모순되게되었다. 그들이 이러한내용을 부가한다면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먼저내용은 삭제하여야 되었을것이다. 그러나 필요한대로 삭제를한다면 예정론 전체를 삭제해버려야 할것이다. 그들은 궁지에 빠진나머지 그들을 모순된채 꼭쥐고 성경과도 모순시키고있다. 그들은 그들이 만든 올무에 걸려 진퇴양난에 빠지고있다. 새로운 내용은 성경과 더불어 예정론에 조화되지 못하고있다. 다만 성경과만 짝을 마칠려다 예정론과 모순되게 만들고말었다. 그것은 그 교리를 완전히 씻어버리도록 물을 퍼부었든것이다. 더욱이나 그들은 사망과 타협한다. 예컨대 10장3절 45면에는 “어려서 죽으므로 택함을받은 어린이들은 다시 낳게되어 령을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된다.” 그러나 성명서 125면에 말하기를 이것은 “어려서 죽는아이는 누구나 상실된다는 교의로 볼수없다. 우리는 어려서 죽는 모든 아이들이 택정함에 포함된것을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지지하지 않는다.—에스겔 9:6.

37. 어떠한 질문이 더남아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기다릴것인가?

37 이 문제는 여기서 끝마칠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중대한 질문이 많이 남아있기때문이다. 예정론을 믿는자들은 그들의 교리를 인간의 자유의사와 조화시키려 하고있지않는가? 그러면 에서와 야곱 바로 삼손 예레미야 유다나 또한 예수에관하여서는 어떠한가? 성경은 그들과 다른자들의 예정되있다는 것을 알리고있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이 속출하나 지면이 제한되어 더 여기서 논의할수 없어 다음호로 그대답을 밀어둔다.

“진리는 너희를 놓아 주리라”

38._

38 서부 아프리카에있는 니제리아에는 여러가지 다른풍속과 언어를 갖이고있는 여러민족이 살고있다. 그 면적은 한국의 2배반이나되는데 인구가 3천만이며 그중에 절반은 마호멧도교도들이다. 또한 대체로 남부에는 1만3천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곳에는 기독교의 여러교파도 많으나 원시적 미신도 적지 않다. 그리스도교의 여러가지 교파가 그곳에서 여러해동안 노력하였으나 토인들의 미신에 조고마한 충동도 주지못하였다. 또한 기독교로 돌아섰다는자들의 대부분도 아침에는 교회에 참석하나 저녁에는 숲속에가서 그들의 미신적행사에 참례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이 진리의빛을 그들에게 전하자 마귀숭배행사는 완전히 없어져버리고 보는자들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하였다. 한예를 들것 같으면 한마을에 광풍이불어 그들이 숭배하고있든 큰나무가지를 꺾어버렸다. 그나무에는 여러 잡신들이 살고있다고 믿었든것이다. 길은 두절되고 그 나무가지를 감히 만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속에있는 잡신에잡혀 죽을가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어떠한일을 하였는가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을 보내 그혼란된 상태를 진정시키고저 하였다. 그들은 쥬쥬신(잡

(2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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