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라
『만민이 각각 자기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미가 4:5
1. 말일은 무엇을 결정할 시기로 예언되어 있는가?
이 낡은 세상의 마지막날 혹은 말일은 가장 중대한 결정적 시기라는 것이 예언되어 있다. 이 결정이야 말로 각자의 영원한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다. 즉 의로운 신세계에서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가 못한가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의 결정이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것은 숭배할 의로우신 하나님을 택함으로서 틀림없이 알수있다. 그러므로 의로운 하나님을 택하는 이것이 가장 중대한 결정인 것이다. 즉 전쟁이 없는 신세계를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능히 성취시킬수 있는 하나님을 택할 때 우리는 그의 결정이 옳다고 볼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때 많은 신들 가운데서 택하게 되는바 그중에서 얼마는 영원한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주시는 참 하나님을 택할 것이다. 성령의 감동밑에 기록된 예언은 그것에 대하여 이렇게 지시하였다.
2. 미가 4장 1-5절에는 사람들이 의로운 하나님을 선택할 것을 어떻게 말하였는가?
2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서며 적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부터 나올것이오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중 심판하시며 먼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나라와 저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미가 4:1-5.
3. 오늘날 어느 백성들이 여호와를 저희들의 하나님으로 택하여 그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며 무엇이 이것을 입증하는가?
3 1914년 이래 하늘과 인간 사회는 오늘날이 이 낡은 세상의 말일 혹은 끝날이라는 것을 알리고있다. (마태 24:3-39) 그러므로 미가의 예언을 읽은 사람들은 그 예언을 살펴 오늘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자문(自問)하여 보라. 그것은 최근에 건설된 이스라엘 공화국일 것인가? 혹은 우리에게 성경을 전해준 충성된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 전체를 말한 것인가? 그대답은 아니다 라고 할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 19세기 동안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의 이름이 육적 유대인을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었다. 미국 고등법원의 법정을 비롯하여 각나라 법정의 믿을만한 기록이나 신문 잡지 공보(公報)나 서책등의 보도(報導)로서나 혹은 세속적으로나 혹은 종교적으로나—호의(好意)를 갖었든 적의(敵意)를 갖었든—이러한 기록들을 통하여볼때 누가 가장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고 있으며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택하고 있는 백성들이 누구일까? 가장 정직하고 공평된 대답은 여호와의 증인들이라고 아니할수 없을것이다. 이 백성들이 말일에 배부한 수많은 책자와 수십만번이나 되는 봉사적 공개강연은 그것을 입증하고도 남으며 심지어 원수들 까지도 오늘날 미가예언의 성취를 볼수있는것은 다만 여호와의 증인들 밖에 없다는 것을 인증하게 되었다.
4. 그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그리스도인의 증인들의 모든 근거를 없애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이 있었는가?
4 이러한 이유로서 최근 10년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이 큰 논의(論議)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이름이 과거 수백년간이나 성경 번역에 나타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주장하기를 여호와의 증인들이 정확한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그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그리스도인의 증인들의 모든 근거를 없애려고 하는 노력이 보이고 있다. 어떠한 방법으로? 즉 성경 번역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빼어 버림으로서 그런일을 할려고한다. 그 하나의 예로서 1952년에 발행된 미국 표준역 개정판 (Revised Standard Version)이 있으며 그들은 그것을 발간함에 있어 상업적 목적으로 『341년 간에 가장 큰 성경 소식』 이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하였든 것이다.
5. 미국 표준역 개역판 번역가들은 우선 어떠한 중대한 결정을 하여야 되었으며 특히 먼저 기록한 어떠한 성명서에 의하면 그러한가?
5 성경원문은 히브리말과 아람말과 고대 헬라말로 기록되어있다. 히브리어 성경(구약)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네개의 히브리어 자음(子音)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글자는 나전어 제이, 에이치, 브이, 에이치(JHVH)와 영어 와이, 에이치, 다블류, 에이치(YHWH)에 해당된다. 수세기 동안 그의 이름은 『제호와』 (Jehovah)라고 불리워 왔는데 20세기에 이르러 성경학자들은 『야-웨-』(Yahweh)라고 발음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하여 그이름을 택하고있다. 금번 미국 표준역 개정판을 번역한 사람들은 1901년에 미국 표준역(영문)을 번역한 위원들이며 그들은 그때에 그들의 번역에 대하여 가장 중대한 결정을 하였는데 그 결정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미국 표준역 서론 제8항에서 볼수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같다.
「영문 개역판」의 부록에 먼저 발표한 바와 같이 대문자로 『주(LORD)』혹은 『하나님(GOD)』이라고 사용하든 말 대신에 『여호와(Jehovah)』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주 혹은 하나님이라는 말은 너무 흔하고 공손치 않은 말이므로 많은 사람이 환영하지 않을것으로 생각하여 여호와라는 말로 바꾸게 된것이다. 그러나 미국 번역자들은 심중한 고려후에 이와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거룩하여 부를수 없다는 유대인들의 미신적 생각을 오늘날 영문 번역까지 침투시킬수 없으며 또한 현대 선교사들로 말미암아 번역된 여러나라의 번역판도 다행이 그러한 제한을 받고있지 않다. 이 기념할만한 이름은 출애굽기 3:14, 15에 설명되었으며 구약 원본을 통하여 거듭 강조하여 한 인격의 신, 언약의신, 계시(啓示)의신, 구원의신으로 나타나 있으며 많은 불란서말 번역에서 보는 바와같이 다만 추상적으로 『영원한자』라고 하기보다 항상 살아계시며 곤궁에 빠진자들을 구원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다. 이 특유한 이름은 그 풍부한 성스러운 행적과 함께 거룩한 기록에 다시금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주장이다.
6.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에 대하여 미국 표준역 개역자들은 어떠한 행동을 취하였으며 그들이 말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6 1952년9월30일 미국 표준역 개역판의 공개(公開)를 세상에 널리 보도하여 축하할때 번역위원은 그들의 결정을 세상에 알린바 그들이 전에 말한 『의심할 여지없는 주장』을 부인하고 성경으로부터 그 이름을 완전히 제거(除去)해 버렸다. 그 위원들은 1952년 개정판 서론 17항에 이결정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그 설명은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미국 표준역 위원들의 견해를 완전히 조롱한 것이 되고 말았다. 17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미국 표준역의 특이한 점은 하나님의 이름을 그대로 번역하여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이다. 흠정역은 네곳에 이말이 사용되었으며 기타 세군데를 제외하고는 그 이름 대신에 주(LORD) 또는 하나님(GOD) 이라는 문들을 사용하였다. 금번 이 개정판은 흠정역의 예들 준하게 된바 이것은 이보다. 앞선 고대 헬라어 번역자들과 나전어 번역자들을 따르는 것이며 또한 회당에서 오랫동안 그러한 방법으로 히브리어 성경을 읽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또한편 그 이름이 원래 『야-웨』라고 불리웠다는것도 확실치 않으며 히브리어 성경 자음에다 모음(母音)표를 붙인 마소렛트 교본에도 이것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 ··· 다음 두가지 이유로서 위원들은 더 익숙한 흠정역의 예를 회복시키게 되었다. (1) 여호와라는 이름이 히브리인들이 사용하든 것과 꼭 같지 않은것과 (2) 유대인들이 여러신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유일신의 이름을 사용하여 오든 관습도 벌써 초대 그리스도인들 시대 전에 유대교 신봉자들은 중지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전세계적 신앙에 있어 그 이름은 전혀 적합하지 않다.
7. 연사(演士)는 대회에 뫃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하였는가?
7 지금 여기 양키 스타디엄에 뫃인 수천 수만의 대중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고저 침례를 받았은즉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있다. 그러면 미국 표준역 개역의 서론은 여러분께 대하여 말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 신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유일신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교회의 전세계적 신앙에 있어 그 이름이 전혀 적합 하지 않다』는 말에 찬성하게 되는가?
8. 바울은 이에대하여 어떠한 적절한 말을 하였으며 그는 먼저 성명서에 대하여 어떠한 대답을 하였을것인가?
8 사도 바울은 이 성명서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할것인가?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자가 있어 많은 신들과 많은 주들이 있으나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낳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게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나니라.』 (고린도 전 8:5, 6, 미표개역) 사도 바울은 여기서 말하기를 하늘이나 땅에 『신들』 혹은 『주들』이라고 불리우는 피조물이 많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모다 자기네 신들을 주장하는 가운데서 바울은 자기 하나님이 뛰어난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그의 이름을 부를 필요가 있지 않었는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다만 하나님 한분이 계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간에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실재(實在)가 논의(論議)되고 있으며 또한 부인되고 있는 현상이다. 실로 오늘날 15억이라는 대중이 무수한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으며 그들은 이 신들을 그리스도인들이 믿고있는 참다운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과 똑 같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믿고있는 하나님을 이름으로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일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다운 주는 단 한분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는 많은 주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주를 구별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것도 또한 타당한 일이다.
비판할 큰 대상
9. 미국 표준역 개역판은 교직자들 간에서 어떠한 비평을 받고 있으며 또 하나님의 이름을 취급한데 대하여서는 어떠한 비판을 받고 있는가?
9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 대한 많은 논평(論評)이 있다. 어떤 교직자는 그것을 『현대주의자의 성경』 혹은 『현대주의의 이 새로운 성경』 이라고 말하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가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생각한 사람이 얼마나 되며 그 거룩한 이름을 빼놓아 독자들이 모르게 한데 대하여 비판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는 적어도 그러한 비평가를 한 사람 가지고 있다. 그는 유대인 편집가로서 1952년 10월 28일부 뉴욕 신문 데일리 콤패스에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 대하여 논평 하였는데 그 일부는 이러하다. 『32명의 신교도 학자들은 성경을 「가장 명확하고 정확한 현대 영어」 로 번역할려고 노력하였을 것이나 그렇게 하다가 그들은 본뜻을 희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또한 어떤 히브리 이름들 즉 『여호와』같은 말을 영어로 번역 하였는데 그 영어는 히브리어 본뜻을 결코 나타낼수 없다. 「여호와」라는 말은 과거 현재 미래의 뜻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으며 (전에도 있었고 이제도 있고 장차도 있을자) 라는 뜻이 있다. 그 번역자들은 크게 잘못하여 통탄(痛嘆)할 죄를 지었다. 「여호와」 대신에 「주」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더욱더 혼란만 이르키게 되었다. 즉 독자들이 읽을때 그 「주」라는 말이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여호와께 적용되었는지 혹은 그의 아들 그리스도에게 적용되었는지 분간 못하게 될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주라고 사용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주」라는 말은 그 외에도 여러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0. 가톨릭 단체에서 발행한 성경 첫책 번역은 그 이름을 어떻게 취급하였으며 그 이름에 대하여 어떠한 해설이 있었는가?
10 그 미국 표준역 개정판이 나오기 이틀전에 미국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교리 로마 가톨릭 단체에서는 창세기로 부터 룻기에 이르는 8권을 포함한 성경 첫 책을 공개하였다. 그러나 이 성경은 듀웨이 역(영문)을 본 받았는데 듀웨이 역에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본문에 한번도 사용하지 않었다. 그러므로 이에 관련하여 말할수 없으나 다만 출애굽기 3:14에 있는 각주(脚註)를 인용할수 밖에 없다. 그 각주는 히브리 원문에 네 글자 (테트라 그라마톤) 로 표시된 하나님의 이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이 이름이 너무 거룩하여 후에는 아도나이(Adonai) 즉「나의 주」라는 말을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현대역 「주」(LORD)라는 말은 이 전통적인 관습을 따른 것이다. 「여호와」라는 말은 현재 유행되고 있는 히브리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은 이름을 잘못 읽으므로서 생기게된 말이다.』
11.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 대하여 여호와의 증인들로부터 논평이 있을 것을 기대하였는가? 또한 그것은 어떠한 기대였는가?
11 그러나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 대하여 여호와의 증인들로 부터 어떠한 논평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 개역판에서 거룩한 이름을 놓은 사람들은 증인들이 무어라고 말할가 하여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에 대하여 격분할줄로 생각하였다. 우리는 지금부터 4년전인 1950년 6월 28일에 발행된 그리스도인의 세기(영문)라는 종교잡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잡지는 그때 막 나오게 되었든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신앙을 열렬하게 지키는 버릇이 있다. 만일 새로운 번역판에 구약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와 다른말로 나타날 때에 그 번역가들은 그 초판의 인쇄가 끝나는 날 부터 큰 공격 밑에 있을것을 짐작할 것이다』 그 개역판이 공개된지 5일후에 시카고에 있는 일요일 강대상이라는 잡지 1952년 10월5일호에는 어떤 종교 교직자 하나가 『더 읽기 쉬운 성경 개역판』이라는 제목밑에 그 7항에 이렇게 말하였다. 『그 개역판 서론에는 17세기와 그 뜻이 전혀 다른 말이 300개 이상이나 된다고 지적하였다. 주 혹은 하나님 대신에 사용한 여호와라는 이름은 흠정역에 몇번 나왔는데 그것은 순전히 만들어낸 말이며 이 개역판에는 사용되지 않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이름이 없어지므로 크게 당황할 것이다.)』
12. 그 이름이 제거된데 대하여 우리가 당황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한 우리가 당당히 비판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12 지금 여기 91개 나라의 대표를 가지고 양키 스타디움에 뫃인 여호와의 증인들의 국제적 대회 석상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하여 말하는것이 좋을 듯하여 몇가지 발표하기로 한다. 우리가 만일 29개의 종교파의 하나로서 미국에 있는 기독교 국제 평의회의 일원이 되어 그 개역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판권(版權)을 소유하였더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빼어 놓은데 대하여 크게 당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이도 그 국제 평의회의 일원이 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그평의회에서 새로운 현대판으로 만들어 낸데 대하여 평하지 않는다. 그것은 칭찬할만한 일이며 우리는 때로 왈취타워 출판물에도 그책으로부터 인용하여 개역판을 필요있게 사용할것이다. 우리가 정정 당당히 비판할 필요를 느끼는 것은 번역위원들이 이 우주에서 가장 가치있는 이름을 그렇게 번역하므로서 가져온 큰 모독과 또한 그들이 그렇게 하게된 동기에 대한것이다.
13. 우리는 왜 『여호와』라는 말을 계속하여 사용하며 신교도 번역자들에게 수치를 갖어오는 개역판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무엇인가?
13 만일 미국 표준역 개역판에다. 『여호와』 대신에 『야-웨』를 사용하였다면 그들을 비판할 여지가 없을것이다. 우리도 『야-웨』라는 말이 그 원 발음에 가까운 줄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잘못된 숭배로서 거룩한 이름을 부르지 않은탓으로 오늘날 정확한 발음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현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여호와』 라는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장차 그 이름의 소유자이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활시켜 그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알려 주실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직접 그 이름을 알려 주셨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역판에 대하여 평하는 것은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었다는것 보다 히브리어 성경을 통하여 6,823회나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빼놓고 혼돈되고 분명치 않은 말 즉 『주』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그리스도인 인체 하는 어떠한 번역자에게도 면목을 잃게 하는 것이며 더욱 최근에 로마 가톨릭 번역자들이 영어 또는 기타 나라말로 『여호와』 혹은 『야-웨』(Yahvé, Yahweh, Iahvē, Yahveh, Yavē, Javé)라는 말을 사용하여 번역하였으며 또한 번역하고 있는 이때에 신교도라고 주장하는 개역판 번역 위원들의 수치는 더욱 큰 것이다. 그러한 고유명사를 사용한 번역들은 로마 가톨릭 불란서어 번역이 다섯개 스페인어가 두개 영국판이 두개나 된다.
14. 그 집행 위원의 한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빼놓은데 대한 변명으로 어떠한 말을 하였는가?
14 그 이름을 없샌데 대한 변명으로 그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교회의 국제 평의회의 집행위원의 한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토의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주』라고 말할때는 저절로 하나님을 의미하게 된다. 그것은 당신의 강조 여하에 따라 정하여 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다. 그는 이름을 불러달라고 나에게 요청하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매우 가까운 것을 느끼며 나는 그를 나의 아버지라고 한다. 나는 지상에 있는 내 아버지도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다만 우리 아버지를 나만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아버지와 구별해야 될때만 이름을 부를 필요가 있다.—그러나 하나님은 다만 한 분이시다』라고 하였다.—1952년 10월 8일.
15.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 또는 『주』라고 말하는 것이 충분하였다면 우리는 예수의 기도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할것인가?
15 우리는 이에 대하여 이와같이 답변한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 집행위원의 한사람 보다 더 하나님께 가까웠었다. 그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하여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나 그의 추종자들에게 충분하였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그의 산상수훈에서 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는가? 예수께서는 그의 천적 아버지를 또한 『주』라고 말하여 『천지의 주 되시는 아버지 당신에게 ··· 감사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마태 6:9; 11:25 미표개역 영문) 만일 그것이 충분하였다면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계시든 마지막날 저녁에 왜 이처럼 기도하였을것인가? 즉 세상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그 보다. 몇일전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요한복음 17:6, 11, 12, 26; 12:28 미표개역) 왜 그처럼 기도를 하셨는가?
16. 예수께서는 왜 그렇게 기도하셨으며 천적 아버지의 이름을 부름으로서 무엇을 나타내게 되는가?
16 그 이유는 즉 예수께서는 그의 아버지께서 명백한 이름을 가지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세보다 더 큰 선지자로서 그는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오지 않고 자기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고 말하였으며 그는 그의 추종자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알것을 원했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는 그의 참되고 충성된 추종자들을 상징하여 『그들의 이마에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라고 말하였다. (요한 5:43; 계시 14:1) 하나님이 홀로 한분이라 하여 이름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수 없으며 또한 지상에 있는 그의 아들들이 그의 본 이름을 부를 것을 금하지도 않으신다. 왜냐하면 그 이름을 부른다 하여 공손치 않거나 예의를 벗어 나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아이들 처럼 『우리 아비』라고 하는것 보다 더 큰 존경과 위엄과 숭배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경 번역
17. 자기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자녀들의 입장은 어떠하며, 야곱은 하나님께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회중으로 불러 드리기 시작할 때 어떠한 말을 하였는가?
17 먼저 말한 국제 평의회의 집행위원의 한 사람은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 하는것 같다. 만일 그가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왜 다른 사람이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것을 좋아 하지 않는가? 그 이름을 아는것은 매우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이방신을 믿는 사람이 그 집행위원의 아버지에 대하여 말하고저 할때 그는 티-씨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고 직접 그 이름을 부를 것이다. 참다운 아들 같으면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참 아들이 아닌 사람들과 같이 그 이름을 더럽히며 남용하며 잘못전하며 혹은 망녕되게하여 다른 사람들 앞에 그 이름을 감추려 하지 않고 그 이름을 잘 옹호하며 영화롭게 할것을 기뼈한다. 그들은 자기들 아버지의 이명을 말할수 있으므로 사생아(私生兒)가 아닌것을 증명한다. 참된회중 혹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는 그의 령적 아들들이다. 하나님께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중으로 부터 믿는자들을 취하여 그리스도인의 회중의 일부로 만들기 시작하였을 때 사도 야곱은 아모스 9장 11, 12절이 성취된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사도들과 기타 오래된 제자들과 에루살렘에서 열린 특별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베드로)이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바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이르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여 함이라」 하였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사도 15:13-18 미표개역에서 인용함.
18, 19. (ㄱ) 어떠한 경우에 그의 예언이 무의미 하게 될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 예언이 성취되는 증거를 어떻게 준비하셨는가? (ㄴ)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이름에 대한 근거를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독립 시키셨는가?
18 만일 하나님의 이름이 없으면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그의 이름으로 불러내며 만방으로 부터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여 낸다고 예언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 예언은 결코 실패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만방으로 부터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 겠다고 하셨으며 좋아하든 싫어하든 기독교국의 내외에서 뫃으실것을 약속하셨다. 그는 틀림없이 오늘날 하나의 이름을 가진 백성을 가지고 게신다.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다! 그들이 지키고 또한 증거하고 있는 그 이름을 결코 없애지 못하며 현대 번역성경에서 그 이름을 빼어도 거룩한 이름은 없앨수 없다. 만일 영어를 말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 이름을 취할 성경적 근거로서 1953년판 영문 번역만 의지하였더면 그들은 크게 당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애매하게 만드는 모든 번역가들로 부터 자기 백성들을 독립 시키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올바로 기입한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성경을 준비하셨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이름을 그대로 나타낸 히브리어 성경도 준비해 주셨다.
19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서 오늘 91개국 대표자들 앞에서 오크타룩크 신세계역을 공개하게 된것을 충심으로 기뻐함을 말지 않는다. 이 성경은 원 히브리말 성경을 직접 번역하였으며 창세기로 부터 룻기 까지 이르는 8권을 번역하였다. 히브리-아람말 성경의 삼분의일 가령되는 것을 현대 영어로 번역하였으며 금번 신세계 성경번역 위원을 통하여 현대 영어로 이 만치 그의 말씀을 번역하게 하신 여호와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감사를 드려 말지 않는다. 남어지도 후에 번역되어 나올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신세계역의 특징
20, 21. (ㄱ) 하나님의 이름이 불리우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오늘날 그와같이 불리우게 됨을 증거하는 예를 들라 (ㄴ)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에 대한 태도는 어떠하시며 따라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게 되는가?
20 이 히브리어성경 신세계역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셔서 그를 알게하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이름에 합당한 존귀와 영광을 드린다. 그의 이름을 부르게 한 것은 사람이 지은 이름이 아니라 선지자 모세가 애굽에 사로 잡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냄을 받았을때 누구로 부터 보냄을 받았는가 고할것을 하나님께 물었을때 하나님 자신이 부르신 이름이다. (출애굽 3:13-16) 우주적 대 전쟁인 아마겟돈을 앞에둔 이 『끝날』에 있어 사도들 당시에 하나님께서 행하신바와 같이 오늘날 하나의 이름을 가진 백성을 이르키심으로 옛날에 자기 자신이 부르신 이름을 입증하여 주신다.
21 이 끝날을 위하여 선언된 그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 백성들을 회복시켰다. 『그런고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내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열심을 내어 야곱의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하며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긍휼을 베풀지라 ··· 그러므로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줄 알리라.』 (에스겔 39:25-28) 영원히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에 대하여 큰 질투를 가지고 게시며 출애굽기 34:14 (펜돈역 영문) 에는 이것을 더욱 강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는 다른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질투하시는 질투의 하나님이 시니라.』 혹은 신세계역을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에 심히 질투 하시는 이시며 마음에 두신것을 반드시 행하시는 하나님이 니라』 하였다. 그는 자기 이름때문에 질투하시며 심히 관심을 두시는 분이 심으로 그의 백성들 중에 다른신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경쟁이있다면 참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거짓 신들의 이름이나 유명한 남녀의 이름을 높이는 동시에 그 이름에 대하여 질투하시며 극도로 관심을 두시는 참 하나님의 이름을 비웃는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 것은 확실하다.
22. 신세계역은 마소렛드 교본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번역하였으며 또한 고대 성경을 베껴쓴 사람들이 변경한 것들을 어떻게 취급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22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신세계역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할 것이다. 질투하시며 마음을 두신것을 반드시 행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한 존경을 드려 신세계역은 그 8권 가운데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다 영어에 합당한 말로 『제호와(Jehovah)』 라고 번역 하였다. 이러한 방법은 제일 좋은 마소렛드 히브리어 성경 원본에 6823회나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적절히 번역하게 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신세계역은 옛날 히브리어 성경을 베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 네 글자 즉 여호와를 『아도나이(주)』라고 변경한곳과 어떤때는 『엘로힘(하나님)』이라고 변경한 곳을 알게 되었다. 히브리어 성경 8권에는 이러한 곳이 17개 있으며 이러한 곳을 모다 여호와로 하여 원상대로 회복시켰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신세계역 히브리어 성경 세 책이 완성 될때 그 성경에는 현재 히브리어 마소렛드 교본 보다 『여호와』 란 말이 더 많이 나오게 될것이다—신세계역 창세기 18:3의 각주(脚註)를 보라.
23. 우리는 누구의 본을 받은 신세계역을 갖게되어 행복한가? 또한 우리는 그의 거룩한 이름에 대하여 어떻게 존경을 나타내는가?
23 그처럼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바와같이 『흠정역의 예를 따라 그 보다 앞선 고대 헬라어 번역자들과 나전어 번역자들을 따르며 또한 회당에서 오랫동안 그러한 방법으로 성경을 읽어내려온』 본을 따르지 않은 번역판을 갖게된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다. 더욱 하나님께 감사드릴 것은 우리가 그들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사도들을 물리치고 오랫동안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행해 내려온 본을 따르지 않고 신세계 번역 위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으뜸가는 증인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할 번역판을 내게 된것이다. 그처럼 우리가 그 거룩한 이름에 존경을 표시하는 것은 그 발음하는 것을 두려워 약하고 애매한 대용어를 사용하는 미신적 행위로서가 아니며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 남에게 알릴때는 언제나 그것을 헛되히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나타난 기묘하고도 영광스러운 일과 그의 이름으로서 말씀하시고 기록되고 행하신 일들과 또한 바로 우리 세대와 축복된 장래에 이루어질 가장 귀한 약속들을 나타냄으로서 그의 이름을 높이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존경하게하며 그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있다.
24. 신명기 10:17은 어떻게 여호와를 구별하여 번역하였으며 신세계역은 하나님을 어떻게 적절한 방법으로 번역하였는가?
24 우리 신세계역 신명기 10:17에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신들의 신 (the God) 이시며 주들의 주이시며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고 번역하였다. 그처럼 여호와에는 특별한 구별을 두어야하며 신세계역은 여러 곳에 특별한 번역으로서 구별을 세웠다. 신세계역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God)이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니라』하고 그 밑에 각주(脚註)에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히브리어로 하느님 God 을 엘로힘 (El.o.him’) 이라고 하며 그것은 하(ha)라는 관사(冠詞)즉 영어의 (the)가 없다. 그러나 성경 여러곳에 엘로힘 이라는 단어 앞에 하 라는 관사가 앞에 붙어 있는 곳이 많다. 그리하여 신세계역은 여러곳에 하나님이라는 말 앞에 더(the)라는 관사를 붙여 적절한 뜻을 나타나게 하였다.
25. 성경에 하-엘로힘이 처음으로 두개 나온데 대하여 신세계역은 어떠한 각주를 달았는가? 또 왜 그 보다 더 강하게 번역할수 있었으며 또한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에 적절한 것으로 강조해 주는것은 무엇인가?
25 그 처음 예는 충성된 예언자 에녹에 관하여 기록된 창세기 5:22-24에 있다. 『므두셀라를 낳은후 삼백년을 하나님 (the God) 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오세를 향수 하더라 에녹이 하나님 (the God) 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취하심으로 그는 더 있지 않더라.』 그 하나님 (the God)을 설명한 각주는 이러하다. 『히브리어 엘로힘 (하나님)이란 말 앞에 하(ha)라는 관사가 붙은곳이 여기 처음으로 두개 나온다. 여기 정관사(定冠詞)를 붙인것은 조곰 먼저 창세기 4:26에 지적한 거짓 숭배와 분별하기 위하여 가장 적절하며 심중히 고려(考慮)한 것이다. 그리하여 에녹이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강조와 구별을 위하여 정관사를 붙이는 것이 타당함을 느낀다』 신세계역은 직역하여 그 하나님(the God)이라는 의미 보다 더 강하게 번역할수 있었다. 왜냐하면 유명한 히브리어 문법학자 윌헬름 제쎄니우쓰는 하-엘로힘 (ha-El.o.him’)이란 말을 『유일하신 참 하나님』 이라고 번역하였기 때문이다. 신명기 4:35 신세계역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 (the God)이시오 그 외에는 다른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 하나님 (the God) 이라는 말은 여호와를 다른 신들과 구별하여 말한 것이며 따라서 이 것은 그 이름에 가장 적절한 번역을 한것이다.
26, 27. 삼위일체 지지자들은 엘로힘이 『하나님들』이라고 번역함으로 어떠한 역효과를 거두게 되는가? 또한 창세기 1:1과 사사기 16:23, 24의 각주는 어떻게 그들을 납작하게 만드는가?
26 그러나 이교도의 교리 삼위일체를 믿는 종교적 교직자들이 신세계역을 좋아하지 않을것은 확실하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교직자들은 엘로힘이란 말이 창조주를 가리킨 말이되 복수며 직역(直譯)하면 『하나님들』 이라고 지적하며 이것이 히브리어 성경중에서 삼위일체 교리의 증거가된다고 하며 한 하나님 속에 『삼위(三位)』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더욱 역효과를 낼뿐이다. 왜냐하면 그들 자신이 말하기를 엘로힘 이란 말은 『하나님들』이라고 하였지 『삼위』 라고 하지 않었다. 그러고 보면 그들 자신의 주장에 의하여 한 하나님 가운데 『삼위』 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가운데 두개 이상의 하나님이 있다는 셈이 된다. 그리하여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위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홀로 한분 뿐이며 세분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과도 다르게 많은 하나님을 만드는 가증한 일을 하게되었다. 바로 신세계역 첫머리인 창세기 1:1의 각주에 삼위일체 지지자들의 뒤를 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엘로힘』 이란 말은 복수(複數)다. 그러나 그 복수는 탁월(卓越)함과 위엄(威嚴)을 나타내는 것이되 많은 위(位)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헬나어 70인역은 엘로힘을 호데오스 즉 단 하나인 하나역은 님이라고 번역 하였다. 사사기 16:23, 24의 각주와 비교해 보라.
27 사사기 16:23, 24에 있는 각주를 보면 그것이 하나님의 복수가 아니라 단수(單數)라는 것을 알수있다. 왜냐하면 거기 기록된 엘로힘은 거짓신 다곤에게 적용되었으며 많은 신을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거짓신임으로 엘로-힘은 복수로서 탁월함과 위엄을 나타낸것이 분명하다. 또한 엘로-힘 다음에 오는 동사는 단수의 동사며 그 앞에 있는 신이 하나라는 것을 더욱 증명하고 있다. 미가 4:5에는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단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라 하였는데 여기 신이라고 번역된 엘로-힘은 역시 복수로서 탁월함과 위엄을 나타내고 있는 좋은 예다.
28. 신세계역은 『믿음』에 관하여 어떻게 주목할만 한가?
28 또하나 신세계역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히브리 11장에 충성된 여호와의 증인들을 희생자 아벨로 부터 각각 그들의 믿음에 따라 기록하였다. 그러나 흠정적(영문)에는 『구약』 전체를 통하여 『믿음』이라는 말이 (신명기 32:20; 하박국 2:4에) 두번 밖에 나오지 않으며 미국 표준역에도 (이사야 26:2; 하박국 2:4에) 두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신세계역 8권중에는 믿음이란 말을 적절한 곳에 일곱번이나 넣어 독자들 앞에 믿음을 뚜렸이 나타나게 하였다. 예를 들면 바울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 아브라함이 기록된 창세기 15:6의 신세계역은 이러하다.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믿음을 두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스라엘 족속이 마른 홍해 바닥을 마른땅같이 건너갈때의 기사가 있는 출애굽기 14:31의 신세계역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기 시작하며 여호와와 그종 모세에게 믿음을 두더라』 신세계역 8권에 7회 나오는 『믿음』을 보아 기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올 나머지 번역도 적절한 자리에 나오게 될것을 기대할수 있다.
29, 30. 히브리어 올람이란 말이 어떻게 정확히 번역 되었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제도에 비추어 이것이 어떻게 적절한 번역으로 나타났는가?
29 또하나의 정확한 번역은 히브리말 올람(‘olam’)이란 말이다. 흠정역은 그것을 『영원』 『영구』 『영속』 『끊임없이』 『늘』 『항상』 『계속적인』 『옛날 부터』 등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그 말의 본 뜻은 『감추어 있는 기간』 이란 말이며 따라서 과거나 미래에 있어 제한된 기간이나 감추어져 확정되지 않은 기간에 적용되는 것이다. 물론 그말은 영원이라고 사용할 때도 있다. 그리하여 가끔 『확정되지 않은 기간』 이라고 번역한 것은 매우 흥미있는 일이다. 특히 일시적인 이스라엘의 고대 제도에 한(限)하여 말하였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30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그러한 것들은 장차올 아름다운 것들의 그림자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것은 임시적이며 영원 또는 영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때가 끝나고 실체(實體)가 나타날 때가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그것은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일이었다. (히브리 10:1; 골로새 2:17)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주일 마다 보는 안식은 주후 33년 오순절에 성령이 내리는 그날에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과 맺은 율법의 언약이 만기되어 없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더 큰 안식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면 신세계역은 출애굽기 31:16, 17을 얼마나 잘 번역하였는가? 『이 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세대동안 안식을 수행하도록 안식을 지킬지니 그것은 확정되지 않은 기간에 이르는 언약이니라 그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확정되지 않은 기간의 표징이며 이는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하늘들과 땅을 창조하시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또한 아론의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끝마치고 그리스도로 바뀌어질 것을 말한 출애굽기 40:15은 얼마나 적절히 번역되었는가? 『그들로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그들의 세대동안 확정되지 않는 기간 제사장이 되리라.』
31. 신세계역은 히브리어 스올을 어떻게 취급하였는가?
31 신세계역은 인간 사후에 영원한 고초를 가르치는 선생들을 큰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히브리어 스올(음부)이란 말이 성경 처음 8권중에 7회 나오는데 가톨릭 듀웨이역은 주로 『지옥』 이라고 번역하였고 흠정역은 『무덤』 『구덩이』 『지옥』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신세계역은 히브리말을 영어로 일정하게 『스올(She’ol)』 이라고 번역하였다. 그말이 제일 처음 나오는곳 즉 야곱이 자기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고 슬퍼하는 말이 기록된 창세기 37:35의 신세계역은 이러하다. 『내가 슬퍼하며 스올에 내려 내 아들에게로 가리라』 그 부록에는 히브리어 스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가치있는 설명이 있다. 『그것은 땅에 있으며 언제나 죽은자와 관련되어 있으며 알기쉽게 말한다면 인간의 보통 무덤 혹은 묘지 혹은 죽은자가 있는땅 (바다가 아님)을 말하였다. 그와 상반하여 퀘벨 (qeber’) 은 개별적 무덤 혹은 매장터를 말하였다. (창세기 23:4, 6, 9, 20)』 이러한 설명과 번역은 지금까지 사후에 인간 영혼이 지옥불 가운데서 영원히 고초받는다는 잔인한 교리를 배워온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교리는 사랑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모욕을 갖어오는 것이다.—요한 1서 4:8, 16; 요한복음 3:16.
32. 현대 번역자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영혼의 참 뜻을 모르게 하였는가? 창세기 2:7을 예로 하여 설명하라.
32 우리는 또한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성경으로 부터 성경이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를 잘 알게 되었다. 성경에 의하면 사후 인간 영혼의 영원한 고초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한 하나님의 이름에 모욕을 갖어오는 일이다. 만일 인간 영혼이 불멸이 아니고 죽게되며 멸망된다면 인간 영혼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원히 고초를 당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현대 번역자들은 흔히 독자들을 혼란케하며 영혼이 무엇인가를 그들이 모르게하며 영혼에 관한 이교도의 교리와 강신술(降神術)의 위험에 빠지게 한다. 영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페쉬(Neph’esh)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네페쉬 곧 하나의 영혼이며 몸과 별개로 몸에 영혼을 불어 넣었다고 가르치고 있지 않다. 그러나 1952년 가톨릭 단체에서 발행한 성경(창세기 부터 룻기 까지 8권)을 보고 독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분간 할수 있을 것인가? 그 번역은 이러하다. 『주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산 존재(Being)가 된지라』 1952년도 표준역 개역판도 『사람이 산 존재가 된지라』 하였다. 여기 『존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페쉬다. 령감받은 사도 바울은 창세기 2:7을 인용하여 『첫사람 아담은 산 령혼이 된지라』고 하였다.—고린도 전 15:45 (가톨릭 단체역).
33. 현대 번역자들은 낮은 동물이 영혼이며 인간 영혼이 죽는다는 것을 어떻게 감추고 있는가?
33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 보다 낮은 동물들도 영혼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표준역 개역판과 같이 창세기 1:20, 21, 24를 번역하면 성경 독자들이 어떻게 이해 할수있는가? 그 번역은 이러하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로 번성케 하라 …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과 ··· 또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여기 『생물』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네페쉬며 처음 사람 아담에게 적용된 말과 같다. 하나의 낮은 동물이 죽으면 하나의 영혼 혹은 생물이 죽는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 죽으면 하나의 영혼이 죽어 없어진다. 그러나 선지자 발람이 민수기 23:10에 말한것을 표준역 개역에 의하여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수 있겠는가? 그 번역은 이러하다. 『나를 의인의 죽음같이 죽게 하옵시오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또 삼손이 사사기 16:30에 『나를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게 하옵소서 하였다. 여기 대명사 『나를』 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프쉬(Naph.she’)며 직역하면 『내 영혼』 이란 뜻이다.
34. 우리는 영혼에 관하여 하나님 자신이 그의 말씀을 통하여 말하도록 해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34 그리하여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미 인간 영혼에 관한 이교도의 교리가 머리에 꽉 차 있다면 현대적 성경 번역을 읽어서는 도저히 옳은 시정을 받지 못하며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하여 올바른 인식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영혼에 관한 거짓 교리가 고대로 유지되게 하며 이교도의 거짓 교리에 대하여 반박할만한 적절한 길을 그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인간 영혼의 창조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비다고라스나 소크리라데스나 플라톤이나 聖 오-가스틴이나 종교적 교직자나 술객들 보다도 인간 영혼에 관하여 더 잘 아신다. 그러므로 영혼에 관하여 참된 것을 배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령감 밑에 기록된 그의 말씀으로 해결하도록 하여야한다. 그러한 방법으로 성경 번역자는 소위 『오묘』 라고 하여 영혼에 관한 완전하고도 만족할만한 해결을 감추지 못하게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가장 과학적인 가르침을 파악할수 있게 되며 그로 말미암아 성경의 교리 즉 불멸성, 죄에대한 형벌, 인간의 운명, 대속의 희생, 부활, 사탄 악마의 운명등을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
35. 신세계역 번역 위원들은 네페쉬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번역 하였으며 그것이 불미한 원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는가?
35 신세계역 히브리어 성경의 특징이 있는 곳은 여기다. 성경 처음부터 8권이 번역된 책속에 231회나 나오는 네페쉬 라는 말을 번역 위원들은 전부 『영혼』 으로 번역하였다. 그렇게 번역된 영문은 오늘날 20세기에 있어서도 훌륭한 영어로서 완전한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번역된 영혼이란 말은 의미를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는 원시적인 말이 아니며 후에 헬나의 철학가들이 히브리인들과 접촉하여 발전 시킨것도 아니다. 보다도 그것은 근본적이며 확고하고 변할수 없이 정확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예수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성경을 기록한 그의 제자들의 가르침과도 잘 조화된다. 이 문제에 관하여서는 이 히브리어 신세계역의 부록과 1950년도 여호와의 증인의 국제 총회때 같은 이 양키 스타디엄에서 공개한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신세계역의 영혼에 관한 부록을 대조 하므로서 더욱 밝혀질 것이다.
36. 신세계역의 부록은 영혼에 관하여 어떠한 사실을 밝혀 주는가?
36 성경 처음 8권의 부록만 하여도 14회나 낮은 동물이 영혼이라 하엿고, 57회나 살아있는 사람 자체가 각각 영혼이라 하였고, 플라톤이 말하는 바와 같은 영혼이 따로 내재(內在)하여 있지 않다고 명시하였으며, 49회나 피조물인 영혼이 죽게 되며 멸한다고 하였고, 12회나 죽은 시체를 『죽은 영혼』 이라고 하였으며, 지혜를 가진 인간 혹은 동물의 생명을 영혼이라 한 곳이 50회나 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혈관을 흐르고 있는 혈액에 의존(依存)하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 자신에 대하여 영혼이라고 한곳이 48회라는 것을 성경에 의하여 확인할수 있다. 그외에 8권 속에는 하나님 자신이 영혼이 있는것 같이 말한 곳이 3회나 있다.
37. 히브리어 네페쉬에 대한 모순 없는 번역은 어떻게 가치있는 도움을 주는가?
37 이처럼 시종일관하여 모순없이 번역한 히브리어 네페쉬는 옛날 말로서 쾨쾨 낡아 그 뜻이 분명치 않다고 할수없다. 오히려 영혼에 관한 성경의 올바른 뜻을 회복시키므로서 우리는 진리의 단서를 찾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되며 영혼에 관한 인간적 견해나 마귀의 령을 받은 철학적 견해를 물리치게 된다. 이러한 근거로서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은 그러한 이교도의 교리로부터 이탈하여 성경으로 돌아올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리하여 심리학자나 정신 분석가나 정신병 학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영혼에 관하여 충분히 근거있는 원리를 배우게 됨으로 『영혼』에 대하여 더 적절한 대책을 세울수 있게 될것이다.
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될것이 알려지다.
38. 우리는 성경의 번역판에 대한 올바른 인정을 어데서 구하고저 하며 또한 그 이유는?
38 히브리어 신세계역의 특징에 관하여서는 아직도 말할 것이 많으나 지금 말한 것으로서 다른 번역들이 부족하며 생명을 주는 성경진리를 찾는데 신세계역이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이해할줄로 생각한다. 기독교국의 종교적 교직자들과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이 번역판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에게 이 번역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성경 번역에 대하여 참다운 인정을 할 이는 누구인가? 종교적 교파나 종교적 두목이나 세력있는자들은 그들의 교회나 회당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그들의 성경번역을 인정하며 신세계역 보는것을 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종교가들로 말미암아 인정받은 성경을 구하고도 있지 않다. 보다도 우리는 성경의 창작자 여호와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받을 것을 원한다. 그는 과거에 그의 증인들로 하여금 성경을 기록하게 하였으며 오늘날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만방으로 부터 나온 그의 증인들로 하여금 그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는 번역을 내게 하셨다. (사도 15:14) 그는 그의 이름을 위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이며 「이 왕국 복음을 모든 족속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온땅에 전파하라」는 계명도 그의 이름을 짊어진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어떠한 종교파나 세력잡은 승려정체(僧侶政體)가 줄수 있는 것 보다도 더 높고 건전한 인정을 이 새로운 현대어 번역판에 대하여 제공하게 된다.
39. 주후 일세기와 관련하여 신세계역은 어떠한 언어로 번역 되었는가? 또한 아마겟돈과 관련하여 성경에 대한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
39 여호와의 신세계 사회는 이 신세계역을 기뻐 사용할 것이며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며 누구나 그것을 읽은 후에는 남에게 권고하지 않을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히랍어 성경이 령감받은 제자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사도들 당시에는 주후 일세기의 국제적 언어인 고이네 혹은 일반적 헬나어로 기록되었으나 오늘날 처음 발행된 신세계역은 20세기의 국제적 언어인 영어로 번역되었다. 우리는 이 성경 번역이 영어로 번역된 다른 좋은 성경 번역들과 함께 장차 올 아마겟돈을 통과하리라고 믿는다. 이 외에도 다른 나라말로 번역된 성경들도 신세계 사회에서 사용된다. 왜냐하면 아마겟돈을 통과할 여러 족속이 적어도 당분간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40. 하나님의 왕국 밑에서 성경번역에 관하여 이치적으로 고대할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 이유는?
40 그러나 하나님의 왕국 밑에서 성경 전체의 일정한 번역이 가장 권위있는 사본에 의하여 단일한 언어로 나올것을 기다리는 것이 이치적이며 그 단일한 언어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창작된 하나의 세계어로 모든 인간에게 가르쳐 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입증하기 위하여 만드신 그의 기적적인 책의 뜻을 고대로 전하는 단일한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갖게 할 것이며 또한 그 성경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다 완전한 성경을 갖어 그 책의 모든 말을 다 알게될 때가 올것을 원할것은 확실하다. 그뿐만 아니라 기억의 무덤으로 부터 부활될 자들도 성경을 거이다 혹은 전부 모를 것이며 그들도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한 것과 또한 얼마나 정확히 말씀하였는 가를 배우고저 원할 것이다. 성경은 어떠한 장래에 『소용없는 책』 이 되고 말지 않을 것이며 성경은 하나님께 대한 찬미와 그의 기억에 대한 영원한 증거가 될 것이며 의로운 신세계에서 영생을 얻을 모든 인간들의 영원한 문서가 될 것이다.
41. 신명기 28:9, 10에 여호와께서는 그의 언약한 백성들에 대하여 무엇을 말씀하셨으며 오늘날 실제적으로 해당되는 백성은 누구인가?
41 수십세기 전에 여호와의 이름을 가진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 밑에 언약중에 있었으나 그들은 모형적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오늘날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 으로서 하나님께서 뫃으시고 계시는 령적 이스라일의 전영(前影)이었다. 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술을 의탁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켜 그길로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리니 너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세계 만민이 보고 너를 두려워 하리라.』 (신명기 28:9, 10, 신세계역 영문) 이것은 중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언약을 맺은 령적 이스라엘이 오늘날 실제적으로 있게된 사실을 예표(豫表)한 것이었다. 육적 이스라엘은 19세기 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버렸으므로 오늘날 령적 이스라엘이 그 이름의 백성이 된 것이다.
42. 만백성이 오늘날 어떠한 길을 걸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남은자에 관하여 어떠한 예언을 하셨는가?
42 우리는 지금 이세상의 결정적인 『끝날』에 살고 있다. 만백성의 심판 때는 이르렀다. 그러므로 모든 백성들은 어느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걸으며 그들의 일생을 바칠 것을 결정함으로서 그들의 운명을 결정해야 할 때다. 그리하여 만민이 자기네가 택한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걸으며 자기들의 신을 전할 것이나 참된 하나님이 누구인지 시험되는 무서운 날에 그들이 택한 거짓신들은 그들을 돕지 못하게 되며 모다 멸망되고 말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의 예언적 말씀으로 끝날에 그의 백성의 남은 자들을 긍휼이 역여 그들을 회복시킬 것을 말씀하여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하였다—스가랴 10:12.
43. 남은자는 어떠한 결정을 하였으며 땅에 있는 모든 족속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또한 그 이유는 무엇인가?
43 그 말씀 고대로 오늘날 그의 이름을 가진 백성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길을 택하여 미가 4:5에 기록된바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라』 한 길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길을 걸으며 신세계의 왕국을 전파하므로서 그들 자신이 참으로 그의 백성됨을 입증하고저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족속들과 심지어 적들 까지도 와서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는 것을 보고저 하며 또한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이 두려워함은 이 백성의 수효가 많아 힘이 강대한 까닭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효는 심히 적다. 또한 그들이 정치적으로 인기(人氣)가 있거나 상업적으로 부(富)하며 피흘리는 육적 무기를 가진 군사력이 강하여 두려워 하는 것도 아니다. 보다도 그 원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서 증거하는 복음에 저항할수 없기 때문이며 전능하신 힘이 그들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44. 현명한 두려움을 택하고저 하는 자들은 어떠한 일을 할 것이며 또한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항상 걷는 자들은 어떻게 될것인가?
44 현명한 두려움의 길을 택하고저 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그의 백성들이 여호와라고 부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의 증인들과 연합하여 오늘날 형성되고 있는 신세계 사회의 일부가 되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걸을 것을 결정할 것이다. 참으로 그 이름으로 그들은 영원히 걷게 될 것인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을 그의 손으로 덮어 끝없는 신세계에 넘겨 줄 것이다. 지금부터 항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걸으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