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은 나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브리 10:9.
1. 헌신이란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살 사람들로서는 넘겨보거나 피할수 없는 거룩한 요구 조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약진하는 신세계 사회와 사귀고 있는 사람들중에 금일까지 헌신하지 않은 이들이 수천이나 된다. 파수대 애독자(愛讀者)중에도 이 중요한 계단을 아직 밟지 않은 사람들이 몇백만이 있다. 당신은 이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여 본 일이 있는가? 헌신의 계단을 아직 밟지 않은 사람은 대개 다음의 세가지 분류중 하나에 속한다.
2. 어떤이들이 아직도 헌신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며 그들은 그점에 대하여 무엇을 할것인가?
2 첫째는 진리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어 연약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심각한 단계를 밟을만한 지식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다. 이런 이는 열심히 연구하여 이 점에 관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배우도록 할 것이다.
3. 어떤 이들을 헌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에 또 무엇이 있는가?
3 둘째는 헌신이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인줄도 알고 자신도 이 계단을 밟고저 원하나 비교적 진리에 들어온지 오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부정(不淨)한 관습(慣習)을 벗어 버리지 못하였거나 또는 복잡한 그들의 결혼생활을 시정치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지체없이 속히 잘못된 것을 고치고 여호와의 깨끗한 요구조건에 일치하여 여호와께 헌신하는 데에서만 오는 축복의 특권을 즐기도록 할 것이다.
4. 헌신하지 않은 세번째 종류의 위험한 입장을 설명하라.
4 헌신하지 않은 사람들중 세번째 종류는 지식도 충분히 소유하고 헌신이 수반하는 의무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으면서 한 두가지 이유로서 자기의 헌신을 옆으로 밀처 피하거나 연기 하고저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이들도 진리를 좋아하기는 한다. 신세계에 관한 소식과 약속된 축복을 즐기기도 한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들을 좋와하며 우리의 집회에 까지도 참석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헌신할 호기(好機)가 올때를 기다린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의무에 불충실하는 자에게 임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헌신하지 않는것이 더 안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사업상이나 친구들로 인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대한 낡은 세상의 낙인을 피하고저 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는 낡은 세상의 향락과 안일한 길을 좋와하는 자들이 있다. 심지어는 너무 자존심이 강하여 호별방문 하여 전도 하는것을 싫어하며 헌신하지 않는 것으로 이 의무를 피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아마겟돈』의 홍수(洪水)가 닥처오기전에 방주(方舟)에 들어가 보호를 받을 길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이런 핑계는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위험하고도 거짓된 이론방식이다! 착오가 없도록 하라. 여호와께 대한 헌신에 관하여 각자가 취하는 입장(立場)은 아무도 밀쳐 놓거나 피하거나 한없이 연기 할수 없는 것이며 당장 생사(生死)를 의미하는 결정적인 것이다! 여호와는 『승리적 천국』의 하나님이시다. 또 헌신의 언약을 충실히 지킨다는 것은 헌신 한다는 사실과 동일하게 중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헌신한 사람이나 헌신하지 않은 사람이나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을 하여보라.—헌신은 나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5. 성경은 여호와께서 우리들 전부에게 무엇을 요구하신다고 하였는가?
5 여호와께서는 전적 헌신(獻身)을 요구하실뿐 아니라 강요(强要)하신다. 하나님 자신의 손가락으로 기록한 제일 처음 문장(文章)은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다 … 너는 나외에는 다른신들을 (또는 내게 도전하는 신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삭인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전적 헌신을 강요하는 하나님임이니라.』 (출애굽기 20:2-5, 신세주석란; 신명기 9:10) 이 유일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 말씀하셨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자기 이름에게 전적으로 몸을 바친 하나님이시며 전적 헌신을 강요하는 하나님이시라.』 (출애굽기 34:14, 신세; 에프 펜튼) 한때 「이스라엘」 나라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적을 허락지 않은』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여호와께 대하여 민속한 행동을 취하지 않었드라면 여호와께서 『전적 헌신을 강요하시는』일로 인하여 전멸한번 한 일이 있었다. (민수기 25:11, 신세) 따라서 당신이 여호와께서 『진노 하심으로』 『지면에서 멸하여』 버리지 않기를 원한다면 신명기 6장 14절 15절에 있는 바와같이 행하라. (신세)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말라. (너희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전적 헌신을 강요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6. 낡은 세상 제도의 사람들은 무엇에 몰두 하고있으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6 우리 주위(周圍)에 있는 낡은 세상 사람들이 섬기고 있는 신(神)들을 좀 도라보라. 어떤 자들은 자기 자신을 우상화 한다. 개인적 명예와 체면을 무엇보다도 중요시(重要視)한다. 또 어떤이들은 자기 배를 신으로 삼으며 자기만을 생각하고 언제나 육신의 쾌락과 탐욕을 구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의 열심(熱心)과 찬양을 다른 창조물이나 인간에게 돌린다. 금전(金錢)과 권세와 지위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만능지물(萬能之物)이 되었으며 그들은 이런 목표를 획득하기 위하여 커다란 희생까지 아끼지 않는다. 오늘날의 낡은 세상은 따라서 이러하다.—사람들은 자기들 개인적 일이나 사업 기술면 또는 학벌등에 몰두하고 헌신하고 있는고로 또 그들의 오락이나 가축 혹은 노리개에 치중하여 있으며 『여호와라 이름 하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순결한 경배와 봉사에 착념(着念)할 시간이 없는것이다.—시편 83:18.
7. 요한 1서 2:15-17은 어떤 충고를 하는가?
7 이 낡은 제도를 버리고 나온 사람은 그 세상의 허다한 거짓 신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중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여호와께서 이런 사람에게 전적인 헌신을 강요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당한 일이다. 사도 「요한」도 이러한 거룩한 요구의 정당성(正當性)을 인식하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던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오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자신의 뜻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그렇게 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을 결심한다. 헌신이 수반(隨伴)하는 것은 그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서 2:15-17.
많은 사람이 헌신하기를 거절하는 이유
8. 여호와께 대한 헌신에 관하여 타협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왜 그렇게도 위험한 일인가?
8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하는 천국 소식을 듣는 어떠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풍성한 상에서 나오는 영적 양식의 견본으로 매우 즐거워한다. 그것은 맛이 좋은 고로 더 얻기 위하여 그들은 집회에 까지 참석한다. 그러나 여호와의 상에서만 먹지 않고 그들은 귀신의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한다. 그들은 자신을 사라계시는 하나님께 완전히 또 전적으로 헌신하기를 거절함으로써 타협(妥協)의 길을 걷고저 한다. 여호와의 훌륭한 상에서 조금씩 찝쩝거리다가는 돌아서서 그들의 힘과 시간을 이 낡은 세상의 일과 쾌락에 소비하는 것이다. 이 모든것은 거룩한 성경과 어긋나는 짓이다. 하여간 우리는 낡은 세상과 벗하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벗할수 있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전적 헌신을 강요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신명기 4:24, 신세) 예수께서는 다음과같이 강조하여 선언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여기며 저를 경히 역임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 6:24) 전능하신 분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시었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대적을 허락지 않는 하나님』이라. (신명기 5:9, 신세주) 이러한 하나님의 계명은 헌신한 자로 하여금 타협할 것을 절대로 허락지 않고 있는것이다.
9. 헌신하지 않으리 만큼 물질적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예수는 어떠한 충고를 주셨는가?
9 또한 속히 지나가며 경쟁심에 가득찬 이 세상 그리고 전쟁의 공포에 찬 세상이 근심 걱정에 자신을 억눌리게 방치(放置)함으로 여호와께 전적 헌신을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에수께서는 어떤 이들이 진리의 말씀을 마치 흙이 씨뿌리는 자의 씨를 받듯이 받어드리고 뿌리와 움이 돋기는 하나 동시에 가라지의 씨도 자라게 두어 마침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가 된다는 비유로 예언하였던 것이다. (마태 13:22, 신세) 이처럼 무거운 멍에를 진 자들이 예수의 충고를 듣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네 영혼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天父)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게 있어야 할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것을 너희게 더하시리라.』 천국에 대한 관심을 둘째나 셋째로 밀칠것이 아니라 우리생활의 다른 염려중 무엇보다도 첫째로 삼는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온전한 전적 헌신을 의미하는 것이다.—마태 6:25, 31-33, 신세.
10. 우리는 어느 정도로 여호와를 사랑하며 섬길것인가?
10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 즉 그에게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은 자진적인 종이 주인 섬기듯이 하나님을 섬길것을 의미한다. 섬긴다는것은 순종을 말하며 여호와께 순종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한다. (요한 14:23, 24) 사실 사랑이란 그리스도 예수께서 입증하신 바와같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 전부를 합하여 요약한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뜻을다하고 힘(생력)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마가 12:30; 신명기 6:5, 신세) 참으로 그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 정도로 여호와를 사랑하며 섬긴다는 것은 그에게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이하의 것을 의미할 수는 없는것이다.
11. 헌신에 대하여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본을 보였는가?
11 그리스도 교의 창설자(創設者)는 하나님의 율법에서 이 기본적인 계명을 지적하여 가르침으로 남들로 하여금 그길을 좇게 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생명을 여호와의 뜻을 행하는데 전적으로 아낌없이 헌신하는 것으로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에 내(예수)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어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기록 되어있다. (히브리 10:7, 신세; 시편 40:7, 8) 30세에 이 헌신의 길에 뜻과 마음을 한번둔 이상 예수는 요동하거나 변하는 일이 없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과 바꾸고져 한 일도없었다. 『내가 아무것도 나 자신의 뜻대로 할수 없노라』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아니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실상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이 살기 위하여 음식을 먹는것 만치 중요하였던 것이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한 것은 예수 자신의 말씀이다.—요한 4:34; 5:30; 6:38, 신세.
12. 그러면 참된 그리스도인들 전부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12 자기 목수 일이 너무 바쁜 고로 여호와의 전도인으로서의 헌신의 책임을 감당할수 없다고 그리스도께서 핑계하는 일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또는 예수께서 호별방문 하는 것을 위신이 깎이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너무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하였겠는가? 그와 반대로 예수에 관하여 기록된 예언은 다음과 같다. 『나의 하나님이어 내가 주의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내가 큰 회중에서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하였나이다.』 (시편 40:8, 9) 진실로 그리스도인 되기를 원하는 당신은 남에게서 이교도(異敎徒) 또는 경건치 않은 이방인이라는 불리움 받기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그리스도 예수의 발 자취를 좇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참된 본이 되여 우리가 따를 본을 남겨 주셨으며 아버지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는 첫거름에 있어서도 이렇게 행하셨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중요한 첫거름까지도 우리는 모방하여야 하는 것이다. (베드로 전 2:21) 「바울」이나 「베드로」가 핑계하고 예수의 헌신의 행적 따르기를 연기하거나 회피하는 일을 상상할수 있는가? 결코 그럴수 없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를 모방한 것처럼 우리도 그를 모방하라고 권면까지 하였던 것이다.—고린도 전 11:1; 빌립보 3:17; 데살로니가 후 3:7, 9, 신세.
최대의 본을 따름
13.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3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 들이 같은 방법으로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자신을 헌신하여야 된다는 것을 예수는 이렇게 언급(言及)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 (누가 9:32, 신세) 자기를 부인하는 이는 자기 개인의 소유나 기호(嗜好) 또는 생애의 경력을 부인하고 대신 그의 장래에 관한 여호와의 뜻과 목적을 배우고저 하며 그 다음에는 그것에 따라 행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뜻대로 행하기를 그치고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개인적 행위나 생활로선(生活路線)을 부인하는 것으로 인하여 비난과 욕과 또 여러 방식의 곤란과 핍박을 초래하는 수가 있다. 심지어는 전체주의 노동수용소에 감금되거나 참혹한 고문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그것만이 각자가 여호와께 드릴 합리적인 봉사인 것이다. 또 그것이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전부인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편지 하기를 『그런고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께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합리적 봉사니라』고 하였다.—로마 12:1, 2, 신세.
14. 어떤 이가 헌신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다 하여 헌신하기를 주저할 것인가?
14 헌신이 우리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그 짐을 충실히 부담한다는것은 명령적인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떠한 독자들은 아직도 위대하신 여호와께 헌신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한걸음 더 나가 인간에게가 아니라 여호와에게 「이사야」와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이사야 6:8) 요구 조건을 수행치 못할까 두려워서 그러한가? 헌신하고 그 약속을 수행치 못한 사람을 당신은 알거나 또는 그에 대하여 들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들은 위선자이며 당신은 그처럼 위선자 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위선적 행동을 미워 한다고 하면서 (마땅히 미워하여야 한다) 당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며 살아계신 하나님 여호와의 종 또는 노예로서 자진하여 헌신하기를 거절함으로써 스스로 위선자 노릇을 하려는가? 그리스도는 그의 참된 추종자 각인을 위하여 본을 보이지 않으셨는가? 혹은 오로지 당신 자신의 헌신을 연기하는 일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실패한 약자(弱者)들의 본을 구실로 삼는가? 그렇다면 시험에 떨어진 불충실한 자 하나의 예로써 「가롯」 「유다」를 지적할수 있다. 또 악마 사단에 관하여 심각히 생각할 것도 잊지말라. 그는 자기의 직분을 버리고 여호와께 드리는 헌신에서 돌아선 자이다. 사단과 「유다」를 비롯한 기타의 불충실한 자들은 참으로 배척하고 피하지 않으면 안될 경계의 본이다. 이는 모방하거나 따를것이 되지 못한다.
15. 우리 생활로부터 왜 비겁한 정신을 쫓아내야 하는가?
15 당신도 본래 약함으로 언제나 실패할까 겁내는 일이 있을 것이다. 본질상 당신은 겁쟁이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원한 신세계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이러한 공포와 비겁한 성품을 벗어 버려야 한다. 이것에 대하여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여호와 자신이 그의 참된 길을 밝히셨으며 「요한」은 이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그러나 겁내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례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 계시록 21:1, 7, 8, 신세) 만일 당신이 믿음을 가지고 여호와께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다면 그는 성령의 힘을 당신에게 주실것이다. 「바울」은 자신있게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겁내는 마음이 아니오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라 또는 주를 위하여 가친자 된 나를 붓그러워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디모데 후 1:7, 8, 신세) 그런고로 겁쟁이나 비겁한 자들이 남긴 나쁜본을 바라보는 대신 우리앞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성경이 내세운 많은 충성스런 승리자들을 유의 하는것이 옳지않는가? 옳을뿐 아니라 훨씬 나은 것이다.
16. 고금(古今)을 통하여 여호와께 헌신한 용감한 종들의 어떠한 뚜렸한 실례가 있는가?
16 그리스도 예수는 승리자(勝利者)였지 비겁한 자는 아니었다. 지상에서 보낸 기간 처음부터 끝까지 그는 굳세게 서서 사자와 같이 악마와 귀신들을 대적하여 투쟁하였던 것이다. 사실 『「유다」 족속의 사자』와 같이 싸웠다. 예수의 충실한 사도들을 포함한 초기 그리스도인 들도 동일하게 절대로 겁쟁이가 아니었다. 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다윗」과 같은 남자들 「사라」 「라합」 「드보라」와 「야일」과 같은 여자들 기타 「아벨」에 소급(遡及)하는 용감하고 충성된 여호와의 증인들의 대열(隊列)에 속하는 많은 사람들은 전부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였었으며 적수(敵手)에 죽음을 직면하는 한이 있어도 자기의 입장을 고수(固守)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생명의 배가 파선(破船)하였는가? 천만에 그들은 죽은자를 부활까지 시킬수 있는 여호와의 탁월하신 능력에 튼튼한 소망의 닻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60만에 달하는 헌신한 충성된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님의 능녁과 사랑의 영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굉장한 알력에도 대적하여 진리와 정의(正義)를 위해서 겁내지 않고 용감하며 열심있는 동시에 대담한 투사가 되게 하는 것이다.—히브리 11:4-39; 12:1, 2.
개인적 선택
17. 생명은 어떤 원칙에서 나오는가? 또 누구에게 제공되고 있는가? 또 어떻게 획득할수 있는가?
17 우리들 모두를 포함한 전 인류는 죄인으로써 탄생하였으며 난 때부터 생명권을 갖지 못하고 사망의 저주아래 놓여왔다.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까닭이다. 그러므로 영생(永生)이란 생명의 수여자(授與者) 여호와께서 베프시는 분에 넘치는 선물인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선물을 원하는 인간은 누구에게나 주도록 하셨으나 오로지 그리스도 예수만을 통하여 가능케 하셨다. (사도 3:23; 4:12; 로마 5:19; 6:23; 고린도 전 15:22) 따라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유일(唯一)한 길은 하나님이 베프신 조건하에 그것을 받아 드리는 것이다. 즉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의 수여자 여호와께 나아와 그에게 현재로부터 영원까지 봉사하기 위하여 자진 헌신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이 헌신은 기쁘게 또 자진적으로 하여야한다. 이것은 개인적 선택이며 아무도 타인을 위하여 선택할수없다. 또한 강제적인 요구로 말미암아 선택할 일도 아니다. 가족내에 평화를 유지하고저 한다든가 또는 강요적 분위기로 인하여 이런 헌신을 채택하여서도 안된다. 누구를 막론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의 길을 택하도록 강요되지 않는다. 선택은 각인이 할 책임이다. 「모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축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그러면 지금 어떻게 생명을 택하는가? 다음 구절이 설명하고 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라.』 환언(換言)하면 당신이 하나님 여호와께 전적으로 헌신하여 영원히 그에게 순종함으로써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다.—신명기 30:19, 20, 신세.
18. 소식을 들은 사람들 각자는 무슨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
18 여호와께 드리는 헌신적 봉사가 각자의 개인적 선택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여호수아」도 역시 강조하였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든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 24:15) 그럼으로 아직 헌신하지 않은 여러분 각자도 오늘날 같은 선택의 자유 즉 생명이든지 사망이든지 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날인 오늘날 여호와께 당신이 헌신하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한다면 「아마겟돈」 이전이 아니면 「아마겟돈」에서 저주 받은 죄인으로 생명의 종말을 마칠것이다. 그 종말은 부활의 소망도 없는 주검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자진적으로 또 크나큰 기쁨으로 마음과 뜻과 힘과 물질 전부를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승리적 천국에 전적으로 바칠 것이다.
19. 여호와께 대한 헌신은 그것에 대한 희생과 같이 가치(價値)있는 것인가?
19 그렇다. 먼저 타산(打算)하여 보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세상의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다시 공부하여 보라. (누가 14:26-33) 그러나 희생할 것과 여호와께서 약속하여 주신 것을 비교하여 계산할 것이다. 첫째로 소유하는 것중에 여호와로부터 받지 않은것이 있는가? 헌신과 찬양과 자진적 봉사의 힘을 제외하고는 전부 여호와가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것 전부를 하나님께 기쁘게 바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는것 즉 이미 소유하고 있는것을 하나님께서 헌신한 종들에게 계속하여 베프시고 계신 표현할수 없는 특권과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성령과 힘을 부어주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울 것을 허락하시며 그의 증인들로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할 것을 허락하신다. 저주 받아 죽어가는 이 낡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헌신한 종들이야 말로 산자중에 가장 행복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이름이 밝혀지는 「아마겟돈」을 살아 통과하고져 하는 그들의 소망은 닦쳐오고 있는 폭풍에 대한 공포를 제거한다. 그들은 새 하늘들과 완전히 낙원화 된 지구로 이루어진 신세계에서 영원히 살 것을 _____________다. 지금 헌신을 한다는 것에는 많은 일이 달려있다. 모든것은 그 헌신을 충실히 지키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다.—누가 9:59-62.
20. 선의자들이 여호와께 지금 헌신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가?
20 지난 수년간에 매년 5만여명에 달하는 큰 무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여호와께 나아와 자신을 헌신하였다. 『헌신은 나 자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자문(自問)하여 보라. 「아마겟돈」이 점점 임박하여 오는 이때야 말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호기(好機)인 것이다. 후의 일이라고 기다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찾을수 있을때 찾아 살기를 원하는 자를 위하여 참고 계신다. 안전을 위하여 신권적 산으로 도피할 때는 후일(後日)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은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할 것을 연기할 때가 아니다. 헌신의 뜻을 인식하며 그에 따르는 축복을 아는 사람들은 현재에 할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만일 당신이 참된 믿음과 소망을 소유하고 하나님께 향한 선의를 가졌으며 헌신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이해와 인식이 있다면 또 도덕적으로나 성경적으로 깨끗하다면 오늘날로 비밀한 곳에서 드리는 기도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엄숙한 서약을 할 것이다. 즉 당신이 앞으로 영원히 여호와 만을 경배 봉사할 것과 그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표현된 하나님의 뜻을 무엇이든지 행하겠다는 것을 서약하여야 한다.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그 후에 침례를 받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면 여호와는 당신을 풍성하게 축복하여 주실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