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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된 일과 보람있는 일에 대한 모으는 자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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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헛된 일과 보람있는 일에 대한 모으는 자의 가르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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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8
파58 12/1 225-232면

헛된 일과 보람있는 일에 대한 모으는 자의 가르침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1.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어떠한 두가지의 모이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가? 그리고 이 두가지의 모이는 일은 각각 누구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는가?

1918년에 제일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열국의 군대와 정치적 지도자들은 「히브리」음으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한데 모여들고 있다. (계시록 16:14, 16; 에스겔 38:7, 13) 또 한편으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 남녀들이 전세계를 통하여 참으로 안전한 곳으로 모여드는 일이 계속되어 왔다. 이미 이들은 회중을 만들어 전세계에 퍼져 있으며 아직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나날이 이들에게로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제일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된 거치른 환란기에 살면서 오늘날 이 세상 조직제도는 장래 희망이 없으며 「아마겟돈」 때에 우주적 충돌로써 종말에 이르리라는 수많은 증거들을 보아 왔다. 또한 그들은 이 낡은 세상을 지지하는 인간의 모든 일이 얼마나 헛되며 보람 없는가를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보람없는 일들을 좇는데 그들의 인생을 이 이상 더 허비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기쁨과 만족을 갖다 주며 「아마겟돈」 때에도 씻겨 없어지지 않고 빛나는 신세계에까지 지속될 수 있는 선을 이룩하는 보람 있는 일들을 하는데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고자 한다. 보람있는 사업을 하는 일군들은 모두 이 세상에 작용하고 있는 힘과는 다른 위대한 힘에 의하여 모여들고 있다. 한편 이 세상 지도자들과 군대들은 악마 「사단」이 조종하는 악귀들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아마겟돈」으로 모여들고 있다. 의롭고 평화로운 신세계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을 하고 있는 남녀들은 보람있는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그들을 지시하고 인도하는 지혜롭고도 경건한 모으는 자에 의하여 한 곳으로 모이고 있다.

2. 모으는 자는 자기자신을 어떻게 표시하였으며 그가 자기자신에 관하여 여성으로 된 칭호를 사용한데 대하여 어째서 의의가 없는가?

2 그러면 이 모으는 자는 누구인가? 그가 누누인가를 아는 것은 가능하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40년간이나 통치하였던 지혜로운 통치자인 고대의 「솔로몬」 왕에 의하여 전영되었다. 서력 기원 일천년 전에 「솔로몬」 왕은 보통 『전도서』라고 불리우는 인간의 지혜를 능가하는 한 책을 썼으며 이 책의 서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므로써 자기자신을 모으는 자라고 불렀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모으는 자의 말씀이라 모으는 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나 모으는 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 』 (전도서 1:1, 2, 12, 신세) 사실상 「솔로몬」이 이러한 말을 쓴 이 책을 「히브리」어로는 「코헬레스」라고 부르며 모으는 자(집합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코헬레스」라는 말이 여성(女性)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히브리」어로 「지혜」라는 말도 여성이며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졌기 때문에 마치 지혜의 화신(化身)인 양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솔로몬」 왕이 지혜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던 그 시대에 그가 전영한 자는 분명히 천적 지혜의 화신인 것이다.—잠언 8:12, 22-31.

3. 「솔로몬」 왕은 어떻게 모으는 자가 될 수 있었는가? 그는 어디로 사람들을 모았는가?

3 그러나 「솔로몬」 왕은 어떻게 모으는 자가 될 수 있었으며 그는 어디로 사람들을 모았는가? 그는 그 당시 자기의 백성과 신하들 그리고 또 다른 우의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모으는 자』였었다. 그는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화평과 행복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숭배하는 길로 모았다. 7년 반 동안이나 「솔로몬」은 「예루살렘」에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화려하고 굉장한 성전을 짓는 사업에 종사하였으며 그는 통치를 시작한지 11년째 되는 해에 그것을 완성하였다. 이 숭배를 드리는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기 위하여 그는 특별한 흥미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불러서 한 곳에 모았다. 여기에 대한 역사는 다음과 같다.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두목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메어 들였나니 곧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아래라.』 (열왕기 상 8:1, 6; 역대 하 5:2, 7)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그의 신하들을 새로 완성된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음으로써 여호와께서 그의 이름을 두신 이 성전에서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시작하였다.

4. 그 책을 쓰는데 있어서 그는 왜 자신을 「코헤레스」라고 불렀는가? 그리고 그 책을 공부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는 어떤한 도움을 받고 있는가?

4 자기 백성을 모으는 자로서 「솔로몬」은 그들의 최대의 복리를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그들이 사랑하고 숭배하며 섬기겠다는 국가적인 언약 또는 「솔로몬」의 언약을 맺은 하나님을 숭배하는 길로 그들을 인도하였다. 후일에 그가 전도서를 쓸 때에 그는 자기자신을 「코헬레스」 또는 모으는 자라고 불렀다. 여기서 그가 자기자신을 이렇게 부른 것은 단순히 그가 일찌기 새로운 성전을 봉헌하는데 있어서 그의 백성들과 선의를 가진 그들의 친지들을 성전으로 모았다는 이유에서만이 아니며 그가 그 당시 새로 쓴 책을 사용하므로써 그의 백성들을 이 세상의 헛되고 가치 없는 일로부터 떠나게 하여 그들이 한 국민으로써 헌신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가치있는 사업으로 모으기를 힘썼기 때문이다. 「코헬레스」라고 하는 그 책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의 물질적 추구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며 또한 그들이 물질적인 추구에 빠졌을 때에는 그들을 다시 건져서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책의 마지막 장에 잘 나타나 있다. 즉 그는 말하기를 『모으는 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모으는 자가 지혜로우므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묵상하고 궁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모으는 자가 힘써 아름다운 말을 구하였나니 기록한 것은 정직하여 진리의 말씀이니라.』 (전도서 12:8-10, 신세) 「코헬레스」라는 책과 그 안에 있는 정선된 단어와 진리의 정확한 표현으로 쓰여진 잠언들을 공부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가 그가 하시는 보배로운 사업을 좀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는다.

5. 「코헤레스」라는 책을 가지고 있는 이외에 오늘날 우리들은 무슨 중요한 것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귀담아 듣는 것은 왜 중요한가?

5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은 희랍어 번역자들이 잘못하여 전도서라고 부른 「코헬레스」의 책을 가지고 있을 뿐만아니라 「솔로몬」 왕보다 더 큰 모으는 자를 가지고 있다. 그는 「솔로몬」 왕에 의하여 전영된 주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사람들이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심판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마태 12:42) 더욱이 오늘날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하시는 이 때에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것은 더욱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이 낡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인간 세대(世代)이다. 우리들은 1914년 이후 그가 통치를 시작하셨다는 눈에 보이는 나날이 증가되는 증거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며 성도들로 구성된 회중이 내리는 심판기에 살고 있을 뿐만아니라 「아마겟돈」이라는 싸움터로 모여 들고 있는 이 세상 열국의 심판 때에 살고 있다.

6 만일 오늘날 우리가 하늘에 계신 더 큰 「솔로몬」을 깨닫고 그의 지혜와 경건한 사업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하여 그에게로 나가지 않는다면 남방으로부터 온 「스바」의 여왕의 성실한 모범이 우리들을 비난할 것이다. 이 여왕은 유대인은 아니었으나 「솔로몬」을 인식하고 있었으므로 예수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보다 더 나았었다. 그러면 그는 오늘날의 우리들보다 더 나을 것인가? 만일 우리들이 오늘날 「솔로몬」 왕 보다 훨씬 더 크며 이미 와 계신 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는 우리들보다 더 나을 것이다. 오늘날 모으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스바」의 여왕에 의하여 예표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큰 무리를 모으고 계시며 이는 그가 이러한 『다른 양들』의 왕이신 목자가 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스스로 천적 머리되시는 144,000명의 양으로 된 회중 즉 『적은 무리』 중 지상의 남은자들을 모으신 후부터 이런 일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모든 양과 같은 그의 추종자들을 하나님의 왕국과 하나님께 숭배를 드리는 영적 성전으로 모으셨다.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 있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 』—요한 11:52; 계시록 7:1-17; 요한 10:16.

『모든 것이 헛되도다』

7.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외치는 말에 「솔로몬」 왕은 무엇은 포함시켰으며 무엇은 포함시키지 않았는가?

7 사도 「바울」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밑에 있는 회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 전 15:58) 그러나 전도서의 바로 서두에서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이 외쳤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전도서 1:2) 그런데 만일 「솔로몬」 왕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적인 모형이라면 어째서 그는 이렇게 외쳤을가? 「솔로몬」 왕은 이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섬기는 일에 관하여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이러한 일을 『모든 것』이라는 포괄적인 표현속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이란 그가 관찰하였던 모든 것 즉 그가 그의 책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예를 들어 직접으로 지적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들은 이 세상과 관계가 있는 일이며 하나님의 의로운 신세계에서 영원히 다스릴 하늘의 왕국 즉 하나님의 왕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당시 『여호와의 보좌』 위에 앉아서 여호와의 백성들을 판단할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특별히 청하였던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솔로몬」은 인간의 태도와 행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나아가 그들을 스스로 시험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지위에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8. 그는 일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그 결론은 무엇인가?

8 『나 모으는 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분복이로다. 그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을 본즉 참 하나님 (여호와) [시리아 사본, 탈검] 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먹고 즐거워하는 일에 누가 나보다 승하랴.』—전도서 1:12-14; 2:10, 11, 24, 25.

9. 「솔로몬」이 그렇게 말할 때 왜 그는 신전이나 충심에서 울어나온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는가?

9 자기가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의 사물들을 살펴본 결과 『모든 것이 헛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할 때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있는 「모리아」 산 위에 그가 여호와의 성전을 짓는 일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한 일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었다. 그는 그가 종사하였던 더 광범위한 일들 즉 그가 건축한 가옥들 그가 심은 포도원 그가 만든 정원과 공원들 수리사업을 목적으로 그가 만든 저수지들 그가 얻은 무수히 많은 남종과 여종들에 관하여 말할 때 성전은 말하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모든 이러한 것들은 그가 말한 것처럼 『자기자신』을 위한 일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숭배를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었으며 즐기려고 애쓰는 것을 「솔로몬」 왕이 본 일들이다. 그러나 그 당시 「솔로몬」 왕 이외에 다른 어떤 사람도 「솔로몬」 왕이 한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전을 지은 자는 없었다. 그는 이 성전을 지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었던 일들을 모방하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건축사업인 이 일은 『헛되고 헛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솔로몬」에 의한 성전의 건축은 하나님에 의하여 예언되었으며 하나님의 도움과 인도로써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 물질적 성전을 더 큰 영적 성전의 모형으로 사용하는 기간중 이 성전은 여호와의 목적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사무엘 하 7:12, 13; 열왕기 상 8:15-21) 그러므로 모든 것이 헛되며 바람을 좇는 것과 같다고 말할 때 「솔로몬」은 성전이나 진심에서 울어나오는 하나님의 숭배를 마음 속에 두지않았으며 또한 오늘날 우리들도 그래서는 안 될 것이다.

10. 전도서에 「솔로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10 창조주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행복되며 지상에서 즐거웁게 생활할 것을 원하신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그것을 받아드리면 그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이다. 어떻게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선물에 대해서 주의를 환기시켰는지 보라!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부요와 재물을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니라.』 또 『이에 내가 희락을 칭찬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해아래서 나은 것이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해아래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중에 이것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니라.』—전도서 3:12, 13; 5:18-20; 8:15.

11.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이 선물』을 즐길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괴로운 것』을 인간에게 준 사실과 모순되는가?

11 이제 우리들은 통치하고 계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즉 모으는 자의 충실하고도 순종하는 신하로서 그가 겸손하고 온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천적지혜를 따라 행동함으로써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을 즐길 수 있다. 그러면 왜 「솔로몬」은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에 관하여 궁구하며 지혜를 쓴다고 말하는가? 여기에는 모순이 있지 않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괴로운 것』을 주셨는가? 또 누구에게?

12. 「솔로몬」은 『괴로운 일』에 대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말하였는가?

12 「솔로몬」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그것을 설명하고 있다.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전도서 7:29) 약 6,000년 전에 「에덴」 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 「아담」을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완전하고도 정직하게 지으셨다. 그는 또한 「아담」에게 한 아내를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최초의 배암인 악마 「사단」의 유혹을 받아서 그들이 죽지 않고 『하나님 같이 현명하게』 되기 위하여 다른 꾀를 내었던 것이다. 「노아」의 시대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홍수로써 낡은 세상을 멸망시키실 때에도 그는 인간이 올바르고 경건한 상태에서 새 출발을 갖게 하기 위하여 하나의 정직한 가족을 살리셔서 보존하셨는데 「노아」와 그의 아내 그의 결혼한 세아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서 인간은 또 다시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반대되는 많은 꾀를 생각하여 내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많은 방황하는 인간에게 다만 그의 심판을 집행하심으로써 인간의 이기적인 생활에 재난을 가져다 주셨다. 그는 「아담」에게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라고 통고하셨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사형선고는 아직 낳지 않은 그의 후손들에게도 내려졌던 것이다. (창세기 2:16, 17; 로마서 5:12) 그들은 짐승들과 꼭같이 죽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13. 이 점에 관하여 사람이 짐승과 같다는 것을 「솔로몬」은 어떻게 나타내었는가?

13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인생에게 임하는 일이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이 둘에게 임하는 일이 일반이라 다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이의 죽음같이 저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곳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도서 3:18-21.

재난

14. 왜 인간들은 개인적 일에서 오는 이익을 계속해서 즐길 수 없었는가? 우리들이 죽는다 할지라도 왜 우리는 그 이익을 받을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도록 노력해야 하는가?

14 죽음은 일종의 재난이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명령을 지킴으로써 자기자신과 그의 후손인 우리들을 죽음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었다. (고린도 전 15:26) 또한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사랑에 찬 복종을 나타내어 하나님의 벗이 됨으로써 우리들을 죽음의 손아귀에서 건져낼 수 있었다. 죽음이 있는 까닭에 어떠한 인간 남녀들도 이때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끊임없이 계속하여 자기의 개인적 사업이나 노동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모으는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죽음이라는 형벌을 해제시키며 기억의 무덤속에 죽어있는 자들을 모두 부활시키는 방법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마련하시지 않으셨다면 모든 인간은 짐승과 꼭 마찬가지로 영원히 죽어갈 것이다. (고린도 전 15:17-24) 죄를 사랑하여 고의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들은 이성없는 난폭한 짐승처럼 영원히 멸망될 것이다. 그들은 짐승처럼 철저한 물질주의에 입각하여 하나님을 생각하거나 그에게 경의를 표시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동물적 욕망을 좇아 먹고 마시며 살기를 원한다. 만일 그들이 짐승처럼 살기를 좋아하며 짐승처럼 하나님의 목적조차 행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짐승처럼 멸망되도록 내버려둘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짐승같이 되어 동물처럼 이기적으로 살다가 그들과 함게 죽어 없어질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죽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신세계에서 생명의 부활을 받아 우리들 자신이 단순한 짐승보다 더 좋은 지위에 오를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어째서 노력하지 않을 것인가? 노력하여야 한다.

15. 아들을 위한 유산에 관하여 어떠한 재난이 일어날 수 있는가? 유산을 남기는데 있어서 어떻게 행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길인가?

15 말할 필요조차 없이 죽음이 인류가운데 침범한 결과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또한 알려고 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많은 비참하고도 헛된 일로 그들을 이끌었다. 물질에 마음이 사로잡힌 어떤 아버지는 자기 아들을 위하여 은행에 예금할 돈이나 또는 어떤 종류의 재산과 같은 유산을 축적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할른지 모른다. 그런데 은행이 망하거나 또는 어떤 다른 재난이 닥쳐와 이 아버지는 모든 것을 상실하고 자기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세상적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것을 일종의 재난으로 보지 않을 것인가? 「솔로몬」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해아래서 큰 폐단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다 그 재물이 재난을 인하여 폐하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전도서 5:13, 14) 세상적 부(富)는 얼마나 허무하며 불확실한 것인가? 또 그것은 얼마나 순식간에 없어져버리며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나 그러한 부를 물려받을 자식에게 얼마나 영적으로 해로운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영원히 계속될 영적인 부를 전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며 현명한 일이다. 즉 부모로서 경건하고 충성스러운 모범이라든지 자녀들을 잘 훈련시켜 성인 남녀로 기르는 일이라든지 하나님의 진리에 입각한 가정교육이라든지 그 진리를 어떻게 하나님의 전도인으로서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지를 신권적으로 훈련시키는 일 등이다. 물질적인 재난은 우리들에게서 이러한 영적 재산을 빼앗아갈 수 없다.

16. 물질적인 부가 다른 재앙에 빠진다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기술해 놓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그 물질적인 부의 종이 되어서는 안된가?

16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들은 분명히 그들에게 임할 또 다른 재난을 기억하여야 될 것이다. 「솔로몬」은 그 재난을 이런 말로 묘사하였다.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폐단(재난)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일평생을 어두운데서 먹으며 번뇌와 병과 분노가 저에게 있느니라.』 (전도서 5:15-17)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번뇌와 절망과 모든 유혹과 이것 때문에 생기는 찌르는듯한 모든 고통을 당해가며 이기적인 부나 돈의 노예가 될 필요가 어디 있는가?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동시에 부나 돈의 노예가 될 수 없다. (마태 6:24) 가령 어떤 사람이 이기적으로 대단히 부자가 되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하자. 그가 죽을 때 그의 무덤속에 여러가지 종류의 집안에 있는 가구들과 값비싼 보석들을 그리고 의복과 천선(天船) (사후 하늘에 타고 가는 배, 일종의 신화에서 나옴)을 심지어는 주인과 함께 묻기 위하여 죽인 노예의 시체를 그는 그중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으며 즐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왔으며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사나운 짐승같이 죽었으며 장차 올 신세계에 있어서의 참된 생명과 자유를 위하여 아무런 기초도 세우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하여 종이 되지 못한 사실은 얼마나 큰 재난인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예수의 말씀은 이 질문 자체에 대하여 대답해 준다.—마태 16:26.

17. 자기 만족에 관하여 어떠한 재앙을 「솔로몬」은 기록했는가? 「느부갓네살」의 경우에 있어서 이 사실이 어떻게 예시되어 있는가?

17 「솔로몬」은 계속하여 또 다른 종류의 재난들을 열거한다. 『내가 해아래서 한가지 폐단 (재난)있는 것을 보았나니 이는 사람에게 중한 것이라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니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전도서 6:1, 2) 어떤 것을 소유하고 있으나 그것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에겐 대단히 가슴아픈 일이다. 맛 있는 음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위나 장의 병때문에 그것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마치 조롱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느부갓네살」이 「바벨론」에서 세계적 통치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가 뽑내고 자만하며 자기자신을 높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굴욕을 주었을 때 그는 미쳐서 자기가 짐승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였다. 그때에 그의 왕궁의 모든 기름진 음식과 마실 것들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는 소와 같이 풀을 먹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이것은 「느부갓네살」에게 7년간에 걸쳐 얼마나 큰 재난이었으며 악한 고질이었던가!—다니엘 4:28-37.

18. 「솔로몬」은 낙태된 아이가 무엇보다 더 평안하다고 하였는가? 이러한 것은 모두 무엇이 원인인가?

18 아무런 낙도 없이 오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며 비록 그 생명이 장구하다 한들 그러한 생명을 원할 사람도 없을 것이며 그처럼 만족도 없고 허무하고 소망도 없는 삶이라면 오히려 무덤을 택할 것이다. 『사람이 비록 일백 자녀를 낳고 또 장수하여 사는 날이 많을지라도 그 심령에 낙이 족하지 못하고 또 그 몸이 매장되지 못하면 나는 이르기를 낙태된 자가 저보다 낫다 하노니 낙태된 자는 헛되어 왔다가 어두운 중에 가매 그 이름이 어두움에 덮이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나 이가 저의 오랜 생명보다 평안함이라 저가 비록 천년의 갑절을 산다 할지라도 낙을 누리지 못하면 마침내 다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 아니냐?』 (전도서 6:3-6) 우리의 바라는 것이 이생 뿐이라면 나서 아무 낙이 없고 고통과 고생뿐인 이 물질적 세상에서 낙태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이러한 것은 모두 이 세상의 물질적 이익과 이 세상의 사욕 밖에 모르고 의에서 오는 기쁨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19. 정부에 관한 어떠한 재난을 「솔로몬」은 말하였는가? 또 그것을 지지한 사람들도 왜 「아마겟돈」 때에 멸망될 것인가?

19 「솔로몬」은 비참한 것 또 하나를 말하였는데 그것은 인간이나 어떠한 정부가 나라를 주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떨어지게 하며 그들을 잘못 인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다도 그러한 거짓 지도자들에게 복종하여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 정부가 행하는 악한 일과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우는 정부의 불의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게 된다. 그 위정자들과 함께 그 정부의 악행에 대하여 공동책임을 진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매자가 크게 높은 지위를 얻고 부자가 낮은 지위에 앉는도다 또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방백들은 종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전도서 10:5-7) 이 『말세』에 있어서 세상 나라들은 건설된 하나님의 왕국 앞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그의 증인들을 통하여 정치적 지도자들이나 재판장이 현명하게 행동할 것을 경고하고 있으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그의 아들을 영접할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백성의 위정자들과 지도자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계속 악행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아마겟돈」 때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의 정부를 없애 버릴 것이다. 그들이 멸망되는 날에는 정부나 위정자들만이 재앙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왕국에 대항하는 정부나 위정자를 지지한 사람들까지도 멸망될 것이다.—시편 2:1-12.

20. 사망은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종말을 가져오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위로받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여 있는가?

20 사람이 죽으면 부활에 대한 소망이 없고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사람이 종말되기 때문에 그들은 해 아래서 또 하나의 재앙을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일반인 그것은 해 아래서 모든 일중에 악한 것이니 곧 인생의 마음에 악이 가득하여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다가 후에는 죽은 자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전도서 9:3) 서양에 있는 민주주의 정부들은 1956년 이래로 「항가리」에서 어떻게 무서운 일이 발생되었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지구상 다른 쪽에서도 그러한 억압이 계속되고 있다. 가엾은 사람들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왕국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어떠한 도움의 길이 있겠는가? 옛날 모으는 자는 이러한 재앙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자보다 죽은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전도서 4:1-3.

21. 「솔로몬」은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정부에 관하여 왜 여지없이 평할 수 있었는가?

21 「솔로몬」 왕이 여기 기록한 것은 자기 나라에서 행하여진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신권적 정부를 지상에 가지고 있었다. 그가 현명한 왕으로 통치하고 있는 한 거기에는 정부로부터의 억압이 없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였으며』 또 그들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열왕기 상 4:20-25) 옛날 모으는 자의 나라는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억압적인 정부와 뚜렷이 구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그들이 받은 재난을 여지없이 평할 수가 있었다.

22. 억압적인 정부밑에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무엇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불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들은 불상한 자들에게 어떻게 동정을 베풀고 있는가?

22 그러나 오늘날 경건치 못하고 물욕적인 사람들로 구성된 억압적인 정부 밑에서 살지라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불상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위로해 주는 이가 있다. 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항상 도와주고 있다. 그들은 여호와께 대한 충성을 잘 알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의 증인인 그들은 그러한 억압받는 상태 밑에서 시험을 받고 있다. 그들은 옛날 전도자가 말한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너희는 어느 도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공의를 박멸하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보다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그들 보다 더 늪은 자들이 있음이니라.』 (전도서 5:8) 우리는 하늘에 최고 재판정이 있는 것을 안다. 땅에 아무리 높은 재판관이 있다 하여도 하늘에 있는 것과 비할 수 없다.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우편에서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높은 재판관을 땅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그들은 최고의 재판장들이다. 철의 장막도 죽의 장막도 그들의 감찰을 피할 수 없으며 모든 억압자들은 「아마겟돈」 때에 사형될 것이다. 우주의 최고 법정에서 행할 심판장들의 집행을 고대하여 오늘날 억압을 받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있다. 그들의 가슴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그러한 재난 가운데서 아무런 소망없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표시하고 있으며 듣는 귀를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 인간의 유일한 소망으로서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생에 대한 증오

23. 「솔로몬」 왕은 어떠한 미래사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재앙 많은 생을 증오하는 말을 하였는가?

23 하나님의 왕국 밖에서 발생되는 모든 재앙을 기억하고 당시 땅에서 가장 현명하였던 「솔로몬」 왕은 어떠한 자가 자기 뒤를 이을지 알지 못하므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한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임이로다 내가 해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그 사람이 지혜자일지 우매자일지 누가 알랴마는 내가 해 아래서 지혜를 나타내어 수고한 모든 결과를 저가 다 관리하리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러므로 내가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수고에 대하여 도리어 마음으로 실망케 하였도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전도서 2:17-21.

24. 「힌두」 교도는 생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만일 「솔로몬」이 말한 것처럼 인생에게 재난만 거듭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만한가?

24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생을 미워한다. 그들은 물질적 세상에 있는 생명은 언제나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종교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생명이 도말되어 영원한 무 즉 「너-바나」(涅槃)에 합쳐질 것을 구하고 있다. 그 때 그들은 최선의 상태에 있으며 가장 큰 상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일 이 세상 생명이 「솔로몬」이 말한 바와 같이 고생뿐이고 낙이 없다면 물질적인 세상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히 있으며 살 목적도 의욕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고 보면 사람이 살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재난에 재난을 거듭하다가 나중에 큰 재난을 받아 그 사람은 무덤 속에 들어 감으로써 그의 재난에 종말을 가져온다. 그리고 누구나 다 짐승과 같이 죽어서 무덤에 가는 것은 상식화되어 있다. 그러면 죽은 자가 가는 무덤 혹은 「스올」은 과연 어떠한 곳인가? 다음 말을 들으라.

25. 「솔로몬」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차이를 어떻게 말하였는가? 그리고 죽은 자는 무덤(스올)에서 어떠한 상태에 놓여 있는가?

25 『모든 산 자 중에 참여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곳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음부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도서 9:4-6, 10.

6. 「스바」의 여왕이 오늘날 우리들보다 더 나은지 아닌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스바」의 여왕은 특별히 누구를 예표하였는가?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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