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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61 11/1 406-410면
  • 앞에 놓여져 있는 일에 대한 올바른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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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에 놓여져 있는 일에 대한 올바른 견해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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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1
파61 11/1 406-410면

앞에 놓여져 있는 일에 대한 올바른 견해

“내가 계속하여 기도하는 것은 이것이다. . . . 너희로 더욱 중요한 것을 알아.” —빌립보 1:9, 10, 신세.

1. (ㄱ) 세계적 지도자들은 장래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읍니까? (ㄴ) 미래에 관하여 여호와의 백성들은 어떠한 확고한 기대를 가지고 있읍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우리 인류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읍니까? 평화를 바라고 있는 세계적 지도자들은 평화 대신에 세계적인 전쟁이 오게 되지나 않을가 혹은 핵무기 생산 경쟁으로 나라들이 파산을 당하게 되지나 않을가 하여 두려워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장차 이 땅에 임할 것들을 생각하고 기절할 상태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토대로한 소망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대할 수 있읍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예적부터 보이』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6:10)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 분만 아십니다. 벌써 그는 새로운 천적 정부 즉 천국을 세우셨으며 여호와의 증인의 신 세계 사회 내에다 새땅의 토대를 마련하셨읍니다. (이사야 51:16; 65:17) 종말에 이르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시겠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 때에는 악인이 더는 흥왕하지 못할 것입니다.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있으리라. 』(예레미야 25:31; 잠언 2:21) 이처럼 땅에 남게 되는 정직한 자들인 인류의 충성스러운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업을 즐길 것입니다. 그러나 수년이나 수천년 동안도 아니라 영원히 즐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 1서 2:17) 이 땅에 있는 어떠한 정치적 나라들도 협상이나 군사력으로도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으며, 이 땅을 천국 통치 밑에서 낙원으로 만드실려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변경시킬수도 없읍니다.

참으로 중요한 일

2. 낡은 세상 앞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읍니까?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할 일을 선택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지식을 마련해 주심으로써 우리가 행해야 할 활동을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는 우리의 노력을 허비함으로 오게 되는 재난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가 사람의 눈에 보기에는 좋은 것이지만 「아마겟돈」의 우주 전쟁에서 멸망되게 될 일을 추구하는 것에서 오는 재난으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여 주십니다. (잠언 14:12) 분명히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할 때 이 낡은 세상을 유지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바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만일 우리가 이 낡은 세상의 일부분이라면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하나님의 신 세계의 이익을 위하여 섬긴다고 할 수 없읍니다. (요한 15:19; 17:16) 만일 「사단」이 보이지 않는 신이 되어 있는 이 세상의 벗이라면 우주의 최고 주권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원수들 대열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 4:4; 고린도 후 4:4; 요한 1서 5:19) 우리가 만일 하나님과 화평을 구하고 그의 신 세계의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현명한 사람들이겠읍니까!

3. (ㄱ)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는 주요 목적은 무엇입니까? (ㄴ) 그것은 실용적입니까?

3 우리가 노력을 바칠 일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이 노력하고 있는 주요 목적은 경제적 안전을 얻는데 있읍니다. 그러나 일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흔히 성공하였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을 의미하고 있으나 미래에 대한 올바른 전망을 물질적 치부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예를 들어서 이점을 강조하셨읍니다. 그의 비유는 이러합니다. 한 농부가 있었는데 치부하여 장래를 위하여 창고에 많은 것을 쌓아 두게 되었읍니다. 그는 지금 여러 햇동안 먹을 것이 있기 때문에 편히 쉴려고 하였읍니다. 그는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라고 하였읍니다. 그처럼 물질적 소유를 목표로 둔 생애는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때에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겠다고 하였읍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누가 12:16-21)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어리석게 내어버리는 일이 없읍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속한 자들을 부양할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이 그러한 책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실용적인 지혜를 사용할 것을 격려받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천국을 첫째로 구하므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유하게 되면 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첫째로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6:25-34.

4.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떠한 칭찬 할만한 일에 몸을 바칩니까?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더욱 중요한 일을 분별하지 못합니까?

4 또 어떤 사람들은 소위 『인도주의』 사업이라고 하는 것에 자기 자신을 바치는 일이 있읍니다. 즉 동료 인간들이 물질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제하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로써 육체적으로 크게 곤궁에 빠져있는 사람을 도와주라는 것을 권하셨읍니다. (누가 10:30-37) 사도 「바울」과 항상 함께 여행을 한 「누가」는 의사로서 육신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치료하여 주었읍니다. (골로새 4:14) 그러나 만일 동료 인간을 구제하는데만 일생을 바치고 그 보다 더 앞선 일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빼놓는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중대한 일에 몸을 바치지 못한 셈이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기도하는 것은 이것이다. 즉 너희의 사랑이 정확한 지식과 온전한 분별력과 더불어 더욱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더욱 중요한 것을 알아 그리스도의 날까지 흠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리는 일이 없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는 의로운 열매로 가득 차게 하시기를 원하는 것이다. 』—빌립보 1:9-11, 신세.

5. 우리가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5 우리가 행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임에 틀림 없읍니다. 그 일을 행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는 목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이사야 43:10) 그 일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목적에 관하여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누가 참된 하나님이며 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며 하나님의 천국이 지금 통치 되고 있으며 그 천국으로 말미암아 순종하는 인간이 영원한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그들로 듣게 합니다. 그 복음이 잘 받아들이게 되든 안되든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의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입니다. 그리하여 이 일에 참여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기쁜 특권입니다.(로마 9:17)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기 때문에 믿음 가운데서 전도에 기뻐 응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사도 2:21.

6. 사도「바울」은 그의 앞에 놓여져 있는 기회를 대하는 일에 있어서 어떻게 분별력을 사용하였읍니까?

6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기회를 선택하는 일에 있어서 현명한 분별력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그는 자기가 먼저 가지고 있던 사회적 지위나 직업적 기회나 종교적 지위들을 생각하여 괴로움을 느끼는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그가 세상적 입장에서 얻은 것을 해로 여김은 주께서 그에게 맡긴 전도의 일을 위하여 자기 일생을 바치기 위함이었읍니다. 그의 마음은 전도에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말하였읍니다.—빌립보 3:7, 8; 디모데 전 1:12.

일을 철저히 수행함

7, 8. (ㄱ) 「바울」은 전도의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ㄴ) 그는 「에베소」에서 행한 전도에서 이것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7 「바울」은 놀라운 방법으로 그의 전도를 수행함으로써 전적 헌신을 나타냈읍니다. 그가 먼저 지나간 일이 있는 길을 다시 밟아 「에베소」 회중의 감독자들을 만났을 때 자기가 당한 반대를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일로써 그 일을 중지하지 않았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온전히 그의 전도의 일을 수행하였읍니다.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은 자기가 그들 중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복음을 듣고자 원하였더라면 자기에게 들으러 왔을 터이지 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직접 자기가 집집을 방문하여 그들과 접촉하였읍니다. 그들이 복음을 믿던 안믿던 복음을 들은 것만은 사실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또 그 복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알았으리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내가 전도에 참여하였는가 라고 묻지 않고 내가 온전히 전도를 행하였는가를 물어 보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읍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 20:18-24.

8 「바울」이 「에베소」에서 그가 임명받은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그는 처음에 회당에서 연속적으로 성경 공개 집회를 가졌는데 이런 일을 약 삼개월 계속하였읍니다. 그는 알아듣기 쉬운 말을 사용하였으며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읍니다. 동시에 청중을 잘 고려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잘 이해할 수 있었읍니다. (고린도 전 9:20-23) 「바울」 이 가르친 것은 귀를 즐겁게 하는 「에베소」의 교직자들이 가르치는 교리와 같이 잘못이 없었읍니다. 그리하여 얼마 안있어 마음이 완고한 사람들과 배우고자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생기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바울」은 배우고자 하는 제자들을 다른 장소로 데리고 갔읍니다. 즉 「두란도」학교 강당에서 매일 집회를 가졌으며 이 일을 이년간 계속하였읍니다. (사도 19:8-10) 동시에 그는 호별방문 전도에 참여 하였고 그들을 훈련시켰읍니다. 그들에게 사랑을 가졌기 때문에 그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자기의 노력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바쳤던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그의 전도를 온전히 수행하였읍니다.

9. (ㄱ) 「바울」은 전도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라고 「디모데」에게 권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우리에게 듣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읍니까?

9 「바울」은 우리가 전도를 온전히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정하여 동역자인 「디모데」와 또 「디모데」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동역자들에게 이와 같이 권고하였읍니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디모데 후 4:5)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만 전도에 참여하며 매달 복음을 전한 것을 통치체에 보고하라고만 하지 않았읍니다. 그의 충고는 그보다 더 강하였으며 『전도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 하라』고 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 문제가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벌써 「바울」이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하는 편지를 썼기 때문입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디모데 전 4:16) 「바울」의 관심은 자기 자신의 구원만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전도에만 참여하면 구원을 얻겠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았읍니다. 부지런함과 온전한 전도로써 복음을 듣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대하여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복음을 받아서 감사하며 그대로 행하도록 도움을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10. 지금부터「아마겟돈」까지 사이에 어떠한 일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읍니까?

10 「디모데」에게 준 이 교훈은 오늘날 우리에게 얼마나 적절합니까! 이 충고는 지금부터 「아마겟돈」까지 사이에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사업의 올바른 촛점을 지적해 줍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달마다 야외 봉사 보고만을 내면 『우리의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구원만을 생각하고 다만 전도에 시간만 내고 정규적 전도기록을 갖기 위하여 보고만 내고 만다면 그는 하나님의 넘치는 자비의 목적을 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는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구원 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도 생각하여야 합니다. (고린도 후 6:1; 베드로 후 3:15) 「아마겟돈」전쟁에서 끝날 이 『큰 환난』의 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구원이 있다고 외치는 수 많은 큰 무리를 불러내시기 위하여 마련하신 때 입니다.—계시 7:9, 14.

11.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 봉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합니까?

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잘 관찰하여 우리의 관심을 거기다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가지고 디른 사람을 올바른 숭배로 인도할 생각이 간절하다면 우리는 열성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기 위하여 야외 봉사에서 호별 방문을 하다가 반대를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곧 동요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을 거절한다 하여도 우리는 낙심하거나 주저앉지 않습니다. 보다도 우리의 봉사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헌신으로 말미암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거절을 당할 때마다 마귀와 경건치 않은 세상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하나님의 이름을 생각하고 분개함으로 더욱 자극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참을 것이며 또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는 사람들을 계속 찾아낼 것입니다. 우리는 건성으로만 행함으로써 만족하지 않고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모든 기회를 항상 찾아서 이러한 봉사의 특권을 온전히 이용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12. (ㄱ) 우리 각자가 호별방문 전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살펴보아야 합니까? (ㄴ) 우리는 진리를 반가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어떻게 온유한 마음으로 가르칠 수 있읍니까? 그리고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읍니까?

12 「바울」은 자기가 맡은 전도 구역에 대하여 「나는 복음에 관하여 온전히 증거를 하였노라」고 말하였읍니다. 당신도 자기가 맡은 전도 구역에 대하여 「바울」과 같이 말할 수 있읍니까? 당신은 기록을 잘 하여서 모든 집에서 집주인을 만날수 있게 하였읍니까? 당신은 얼마동안 그 집을 자주 방문하여 그 집에서 사는 여러 식구를 만날 수 있었읍니까? 무엇 보다도 그들 가족에게 하나님의 천국에 관하여 낱낱이 증거 하였읍니까? 어떤 때는 꾸준한 인내와 여러번 방문으로 그 집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당신의 말을 듣게 하는 수가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 빈틈없는 준비와 요령있게 함으로써 방문할 때마다 당신이 준비한 연설에서 간단하고도 명백한 말로써 그에게 한가지씩 만이라도 제공할수 있읍니다. 상대방이 상태가 긴급한 것을 알던 모르던 당신은 전도인으로서 할바를 다하십시요.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가르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디모데 후 2:25) 이렇게 해서 심은 진리의 씨는 여러 달이나 혹은 몇해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자라는 수가 있읍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 사람 개인에 있어서 혹은 이웃이나 그 교회에서 어떠한 가증한 일이 발생하는 것올 보고 그는 「탄식하며 울기」시작할 것입니다. (에스겔 9:4)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그는 천국 소식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되고 귀를 솔깃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웃에 있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가르친다면 그 사람이 어떠한 충격으로 말미암아 태도를 바꾸어 우리가 그를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만듭니다. 그처럼 우리가 기회를 찾아서 그를 가르친다면 마침내 그는 성경 진리에 더욱 더 큰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전도를 받는 사람에 대한 관심

13. 그의 전도를 받는 사람에게 어떠한 관심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13 전도를 받는 사람에게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도인은 그 전도를 형식적으로만 행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전도를 나가서 두 세 시간만 보내고 서적을 전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선의를 가진 사람들을 찾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집 주인에게 성의가 보이면 마귀가 무서운 장해물을 펼지라도 그들은 성령의 검을 잘 사용하여 장해물을 베어 제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합니다. (이사야 61:1) 그들은 경건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과 토론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찬동하지 않는다고 하여 반대자로 속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 예수께서 가르치신 본을 받아 나쁜 환경에서도 요령과 자제(自制)로써 처음에 호의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에게도 온유하게 가르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갖게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들이 정신을 차려서 진리를 찾게 되는 수가 있읍니다.—요한 1:46-49; 사도 9:1-22.

14. 예수와 「바울」은 전도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태도를 나타냈읍니까?

14 전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운 관심을 나타낸 대표적인 사람은 예수였읍니다. 그는 아이들이 복음을 듣기에 너무 어리다고 하여 밀어버리지 않으셨으며 또 부자가 너무 교만하다고 하여 거절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가난한 자나 소경이나 불구자에게도 다 같이 전도하셨읍니다. 그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있었읍니다. 그는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태 9:36) 그가 피곤하고 좀 휴식이 필요할 때에도 자기를 구하는 자로부터 돌아서지 않으셨읍니다. 「바울」도 자기가 전도를 행한 사람들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하였읍니다. (데살로니가 전 2:8) 우리도 그와 같은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15. 전도에 대하여 장성된 그리스도인이 가진 견해에 대하여 좋은 예로서 어떠한 것이 있읍니까?

15 이러한 느낌은 한 파이오니아 자매에 의하여 잘 나타났읍니다. 그 파이오니아 자매는 다른 회중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야외 봉사에 참여하였읍니다. 아침 전도에서 그 자매는 한 젊은 여자를 만났는데 그는 큰 흥미를 나타내고 제공한 성경 서적을 받았읍니다. 그 파이오니아는 거기 임시로 갔었기 때문에 재방문 할 기회가 없었 읍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항상 선의자에게 있었읍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는 선의자가 연구를 계속하도록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읍니다. 편지로써 성경연구를 시작하였읍니다. 그 선의자의 흥미가 급속도로 발전되어 그 젊은 여자를 만나러 여행을 떠났으며 그 곳 회중과 접촉하도록 마련 하였읍니다. 그 선의자는 지금 자신이 봉사에 참여하고 있읍니다. 그 파이오니아 자매는 전도 시간을 보고하기 위하여 봉사에 나가지 않은 것이 확실합니다. 그 파이오니아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양과 같은 태도를 표시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양육함으로써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읍니다. 장성된 전도인이 봉사에 대하여 가지는 견해가 바로 그래야 합니다.

헌신에 대한 올바른견해

16. 우리가 만일 정규적인 야외 봉사자라 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또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그 이유는?

16 우리가 한번 양과 같은 사람들을 찾아서 왕국 복음을 전하는 전도인이 되도록 도와주었다 하여 우리의 일이 끝난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신 세계 사회와 접촉하는 그 자체로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없읍니다. 하나님의 천국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아마겟돈」을 통과시키는 요구조건 전부라고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천만에요! 누구든지 「내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기뻐하며 나의 생명은 어떠한 일이 생길지라도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바쳤다」고 말할 수 있기 전에는 마음을 다하여 그를 섬긴다고 할 수 없읍니다. 아마 그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에 따르는 책임을 질 것을 원치 않을지 모릅니다. 만일 그가 그것을 피하고자 한다면 그는 더 좋은 자리에 서게 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물의 침례로 상징한 헌신을 수행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는 아직 생명에 이르는 좁은 길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기독교국의 종교적 조직의 성원들의 성격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읍니다. 기독교국의 종교적 조직에 있는 성원들도 그들의 생애의 인도자로서 어떠한 성경 원리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확실한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장들처럼 앉아서 그들이 받아들이고자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택하여 결정을 지을 때 그들 자신의 의견에 따라 결정을 짓습니다. 만일 여호와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알고 그것을 그대로 다 행하리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을 내린다면 그 사람은 여호와를 참으로 자기 하나님으로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신 세계에서 보장하여 주시리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을 행치 않는 사람에 관하여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는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읍니다. (야고보 4:17)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옳게 인식하기 위하여 장성된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그의 요구하는 바를 행하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17. (ㄱ) 헌신과 침례만으로서 신 세계에서의 생명이 확보됩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섬기는 자들의 무엇을 살펴보십니까?

17 물론 헌신과 침례만으로 신세계서의 생명을 확보할 수 없읍니다. 헌신한 사람은 하나님과 언약한 대로 그의 일생을 보내야 합니다. 누구나 소위 말하자면 『간신히』 신세계에 들어가리라고 기대할 수 없읍니다. 될 수 있는대로 적게 봉사하겠다는 사람은 벌써 매우 큰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읍니다. (누가 10:25-27) 우리의 재판장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보는 것보다 더 잘 감찰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 (역대 상 28:9) 그는 우리가 행하는 것을 아실 뿐더러 동기까지 아십니다. 우리가 진실로 온 마음을 다하여 봉사하고 있는지 우리가 이웃에 대하여 참으로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남을 구원에 이르도록 원하는 마음은 자기 자신이 구원에 이르도록 원하는 마음과 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기 전인 지금이야 말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볼 때며 우리의 전도를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중대한 일을 올바로 행하고 있는가를 잘 살펴볼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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