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자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계속 시험하라. 너희 자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라.』—고린도 후 13:5, 신세.
1, 2. (ㄱ) 우리가 우리의 참다운 인품을 반영할 때에, 어떠한 생각과 의문이 마음을 지나갑니까? (ㄴ) 우리의 참다운 인품이 어떠한가를 아는 것은 왜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합니까?
최근에 당신이 자신을 자세히 살펴본 것은 언제입니까? 당신이 본 것으로 당신은 만족하였읍니까? 당신의 인품은 당신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합니까? 당신은 너무나도 많은 다른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어서 인품이 참으로 어떠한지 말하기가 힘드는 사람입니까? 하루는 한 충성스러운 「아브라함」이며 다음날은 의심하는 한 「도마」입니까? 월요일에는 순종적인 한 「사라」가 되며 화요일에는 지배적인 한 「이세벨」이 됩니까? 혹은 수요일에는 정력적인 한 「바울」이 되며 목요일에는 세상을 사랑하는 한 「데마스」가 됩니까? 당신은 참으로 어떠합니까?
2 다른 사람에 관한 한 당신의 인품은 마치 당신의 얼굴과 같아서 항상 표시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고 있는 바가 참다운 당신입니까? 혹은 당신이 위선자 역을 연출하여, 당신이 어떤 사람들이 보기를 원하는 것 만을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그들이 보는바나 혹은 당신의 참다운 상태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이 됩니까?
3.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은 왜 중요하며, 그것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외모나 혹은 인품 때문에 다른 사람이 화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잘 벗하는 기쁨을 즐기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의 교제를 즐기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친구들이나 우리의 가장 밀접한 친구인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염려는 올바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2:37-39.
4. 성경에서 『하여 보라』, 『시험하라』, 『살피라』, 『증명하라』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를 인용하십시오. 그리고 성경 필자들로 말미암아 그러한 표현이 사용된 이유를 말하십시오.
4 성경이 『하여 보라』, 『시험하라』, 『살피라』 그리고 『증명하라』와 같은 단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 가를 알 때 놀랍습니다. 성경 색인으로부터 그러한 단어의 사용법을 찾아보는 것은 가치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단어들이 사용된 회수 뿐만 아니라 사용된 장소와 사람과 이유를 알 때에 당신은 놀랄 것입니다. 예컨대, 여기에 「바울」의 여섯개의 상이한 서한으로부터 뽑은 인용절이 있읍니다. 『너희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으라. 그렇게 함으로 너희가 자신에게 하나님의 선하고 받을만하고 완전한 뜻을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로마 12:2, 신세)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고린도 전 11:28)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계속 시험하라. 너희 자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라.』 (고린도 후 13:5, 신세) 『만일 누가 아무것도 아닐 때에 얼마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일이 어떠한가를 그로 증명하게 하라.』 (갈라디아 6:3, 4, 신세) 『주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가를 계속 확인하라.』 (에베소 5:10, 신세) 『모든 일을 확인하라. 훌륭한 바를 굳게 잡으라.』 (데살노니가 전 5:21, 신세) 그렇게 호소함으로써 사도는 우리 자신을 끊임 없이 살필 것을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판명되기 위하여서 입니다.—빌립보 2:14-16.
5. 어떻게 우리 자신을 알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바울」이 훈계하는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을 살피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과 갈이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나 주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7; 잠언 21:2) 그는 우리의 숨은 동기와 욕망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확실히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숨겨진 동기와 욕망을 조사하여야 하며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품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유와 무슨 변화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동기와, 우리 주위의 세계와, 하나님의 불과오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요구합니다.
당신이 어떠한가를 왜 계속 증명하여야 하는가?
6, 7. 우리 자신을 계속 시험하는 것은 왜 필요합니까?
6 우리가 어떠한가를 계속 증명하여야 할 이유는 많이 있읍니다.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죄악 중에서 형성되어 죄 중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입니다. (시 51:5) 우리 마음의 자연적 경향은 타락으로 향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타락된 성품의 타고난 부분인 죄의 그르치는 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을 계속 증명하여야 합니다.
7 우리 자신을 증명하여야 할 다른 이유는, 「사단」 마귀가 온 인류를 멸망의 소용돌이로 그와 함께 휩쓸어 들이기 위하여, 그가 마음대로 쓸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마귀적 유혹을 채용하고 있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명성과 돈과 소유물과 능력과 향락의 신들을 만들었읍니다. 그리고 「휘튼」 대학원의 「딘 머릴 씨 · 텐네이」에 의하면 이러한 것들은 20세기의 우상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줄 수 없는 이들 우상을 숭배함으로 속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을 계속 시험하여야 합니다.
8, 9. (ㄱ) 우리가 우리의 도덕적 경향을 시험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가 경계하여야 할 어떠한 다른 나쁜 교제가 있읍니까?
8 우리 자신을 시험하여야 할 또 다른 이유는, 이 세상에서 도덕적 방벽은 떨어졌고 부도덕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위험은 어느 때보다 더 존재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의 교제를 검사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5:33) 그들은 우리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나, 술취하는 것이나, 음행이나 혹은 방탕한 생활의 낡은 세상행로로 미끄러지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9 우리들이 경계하여야 할 것은 단지 사람들과 악한 교제만은 아닙니다. 심령도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외부의 표현이나 인상에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쁜 독서와 나쁜 것을 보는것 그리고 나쁜 사고의 부도덕적 영향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합니다. 성적 영화라든가 기분 나쁜 만화책이라든가 믿음 없는 고등 비평가들의 기록들은 우리의 믿음을 세우거나 혜택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벗을 택하는데 선택적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우리가 좋은 책을 읽으며 건전한 오락을 택하지 않는다면, 의심할 여지 없이 낡은 세상으로 떠내려 가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와 더불어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것이 극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어떠한지 계속 증명하는 것은 현명한 것입니다.—히브리 2:1; 요한 1서 2:15-17.
10, 11. (ㄱ) 우리가 과신에 대하여 경계하여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무관심이나 게으름과 같은 태도에는 배후에 어떠한 위험이 놓여 있읍니까?
10 우리는 우리의 숭배의 방법을 위태롭게 하며 파괴하는 태도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가를 증명하여야 할 다른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말로서 과신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가 조심하라.』 (고린도 전 10:12) 과신은 우리를 자신의 힘이나 혹은 병기의 힘에 의뢰하는 어리석은 짓으로 인도할 수 있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에 신뢰하는 대신에 우리 자신의 이해나 다른 사람들의 이해에 의지하도록 만들 수 있읍니다.—잠언 3:5-7.
11 또한 무관심과 게으름에 주의하십시오. 어느 것이나 치명적임을 증명할 수 있읍니다. 무관심은 우리의 시기의 긴급성에 관하여 우리를 달래어 잠들게 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게으름은 우리로 여호와의 상을 비웃도록 만들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귀의 교활한 올무에 희생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어떠한가를 우리 자신에게 계속 증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고린도 전 16:13; 데살로니가 전 5:1-11; 베드로 전 5:8; 말라기 1:7.
경고의 본
12. 「가인」의 본은 우리에게 어떠한 경고가 되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에 따르는 어떠한 충고를 주었읍니까?
12 염려하는데는 이유가 있읍니다. 성경은 그들이 주로 어떠한 사람인가를 자신들에게 증명하는 것을 중지하였기 때문에 「사단」의 흉계에 희생된 상당한 수의 사람들의 본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가인」은 분명히 악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그의 노를 다스리도록 경고하셨읍니다만 「가인」은 듣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의 다스리지 않는 노는 그로 살인케하였으며 추방을 당하게 하였으며, 하나님의 은총 밖에서 죽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노와 화냄과 입에 담지 못할 말이라든가 흑은 불결한 말을 멀리할 것을 지혜롭게 충고합니다.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승인의 혜택을 받고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이러한 습관들은 벗겨버려야 한다는 것을 그는 말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 자신이 어떠한가를 증명함으로 우리의 성질을 살피며 필요한 변화를 받을 때입니다.—창세 4:6-16; 골로새 3:8, 9.
13. 어찌하여 「에서」는 좋은 경고의 본이 되며, 그의 본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어떠한 교훈이 있읍니까?
13 「에서」는 그의 상속권을 멸시하였읍니다. 그는 거룩한 것에 대한 인식이 결핍되어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그는 한 그릇의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 권리를 다시 얻고자 구하였을 때 그는 할 수 없었으며 비록 그가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눈물로 구하였으나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져서 「에서」와 같이 한끼의 식사의 대가로나 혹은 한번의 부정직의 대가로나 혹은 죄스러운 행동이나 혹은 회개함이 없이 그대로 계속 하는 대가로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것 즉 영원한 생명을 팔지 않기 위하여, 거룩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조사할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당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십시오.—히브리 12:16, 17; 3:12-19.
14. 「사울」 왕과 「솔로몬」 왕 그리고 「가룟 유다」는 오늘날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면에서 경고의 본이 됩니까?
14 「사울」왕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는 것 믿기를 거절하였읍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특성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조건의 순종을 배우지 않았읍니다. 일시적 마음에 의한 불순종의 행동을 통하여 그는 자신과 가족을 위한 왕권을 상실하였던 것입니다. 육적 「이스라엘」의 모든 왕을 능가하는 영광을 가졌던 왕 「솔로몬」은 나쁜 교제의 제물이 되어버렸읍니다. 이방 여인들은 그를 여호와께로부터 돌이켜 악귀들의 숭배자가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사도였던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자 즉 물질주의자가 되어버렸읍니다. 그의 탐욕은 그를 불신으로, 죄로 그리고 자살로 떠내려가게 하였읍니다. 이들 모두는 한때 충성스러운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어떠한가 증명하기를 중지하였을 때 그들은 그들의 충성으로부터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들 자신이 어떠한가를 계속 증명하도록 경고의 본들로서 이바지 합니다. 이것은 실제로 우리가 충성에 실패하지 않으며 생명의 길로부터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서 입니다.—사무엘 상 15:22, 23; 열왕 상 11:1-10; 마태 27:3-6.
모범을 삼아야 할 본들
15. 어찌하여 「노아」와 「모세」와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모범을 삼아야 할 좋은 본들입니까?
15 성경은 또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본이 되는 사람들 즉 그들 자신이 어떠한가를 계속 증명한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통찰력이 있는 사람 「노아」가 있었읍니다. 그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브리 11:7) 「이스라엘」의 인도자인 「모세」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민수 12:3) 사도 「바울」이 있었읍니다. 그는 현저한 그리스도인 전도인이었으며 열열하고 믿음 있는 그리고 훌륭한 사업을 한 사람이었읍니다. (고린도 후 11:23-27; 빌립보 4:12, 13) 그리고 물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에 있어서 우리는 완전한 본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 온 생활형태로, 즉 하나님께 대한 성실과 전적 헌신의 생활형태로 그들이 어떠하였는가를 자신들에게와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충성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는 그들에 관하여 영광스럽게 말하였으며 그의 의의 신 세계에 자리를 얻었읍니다.—히브리 2:17, 18; 4:15, 16; 7:26.
당신이 어떠한가를 증명하는 방법
16.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자신들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16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어떠한가를 증명하고자 어떻게 진력합니까?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마련을 주셨읍니까? 첫째가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호와께서는 거룩한 말씀인 성경을 주셨읍니다. 이것은 생명에 관한 그의 명령과 원칙들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성령 즉 활동력을 그의 백성 위에 부어주셨읍니다. 그 활동력은 성경을 명백하게 합니다. 이에 부가하여, 하나님께서는 한 조직으로 축복하셨읍니다. 그 조직은 그들에게 성경 보조를 공급하며 사람들이 그것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회중 집회와 대회를 마련합니다. 이러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모든 면과 각도로 자신을 볼 수 있는 거울로서 역할 합니다.
17. (ㄱ) 성경에 부가하여, 그 말씀이 우리 길의 등불이 될 수 있기 전에 무엇이 또한 필요합니까? (ㄴ) 빛은 누구로부터 나오며 예언자 「이사야」는 어떻게 그것이 공급될 것이라고 표시합니까?
17 예로서 성경을 들어봅시다. 그것을 배우지 않고서는 성경이 하나의 힘이 되지 않습니다. 수억이라는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하등 발전을 하지 않았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떠한 거울이라도 구실을 하려면 먼저 빛이 있어야 합니다. 전연 캄캄한데서 거울은 아무런 형상도 비출 수 없읍니다. 성경도 매일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영적인 자신을 보기 위하여 우리는 그 말씀의 저자이신 즉 여호와께로부터의 빛을 가져야 합니다. 그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의 빛을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그는 선언하십니다.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는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이사야 60:2, 3; 야고보 1:17.
18. (ㄱ)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오시기 위하여 어떠한 통로가 사용되었으며, 빛을 어떻게 넘겨 주었읍니까? (ㄴ) 이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한 예를 드십시오.
18 여호와의 빛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 중에 주로 비추었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사도 「요한」은 예수를 우리에게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으로서 소개합니다. (요한 8:12; 1:1-11) 예수께서는 이 빛을 그의 추종자들에게 넘겨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 . 너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라. (마태 5:14-16) 영적 일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추종자들과의 밀접한 연합 중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그가 생명의 빛을 소유하시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흑암 중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인 「빌립」이, 빛을 비취일 때까지 성서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에디오피아」 내시의 본 중에서 우리에게 잘 예시되었읍니다. 그 때 「에디오피아」 내시는 그의 캄캄한 과거로부터 걸어 나왔으며 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사도 8:26-38.
19. (ㄱ)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어떠한 계단을 밟아야 합니까? (ㄴ) 제자 「야고보」는 지식을 적용시킬 필요성을 어떻게 표시합니까?
19 오늘날, 만일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를 증명하고자 한다면 절차는 매우 비슷합니다. 첫째, 우리는 여호와의 백성들 즉 그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는 여호와의 말씀의 힘이 우리의 뜻과, 욕망, 관심, 성질, 심적 면모와 정신 상태를 변화시킬 점까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올바른 길을 계속 걷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의 선한 것들로 계속 채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몸을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4:8, 9) 그것이 효과적으로 되기 위하여 우리는 배운바를 적용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제자 「야고보」가 명백하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행복은 계속 발전하는데서 오며 우리 자신 중에 이러한 발전을 계속 보는데서 오는 것이지, 단순히 변화를 받아야 할 지식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닙니다.—야고보 1:23-25.
20. (ㄱ) 그들의 인품과 생애에 있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변화를 할 수 있었으며, 어떻게 할 수 있었읍니까? (ㄴ)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떠한 변화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20 성경 원칙을 일상 적용시키는 것은 처음에 보이듯이 힘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이들 원칙에 주의하기 위하여 각별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상당한 정도까지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 당시에 놀라운 변화는 수행되었읍니다.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 전 6:9-11에서 표시한 바와 같습니다. 많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음행이라든가 우상숭배, 도둑질, 탐욕, 술취함, 욕하는 것과 토색으로부터 정결하게 되었읍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참다운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과 그의 조직의 도움으로 바로 이와 동일한 변화를 받고 있읍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 1,000명이나 혹은 800,000명이 그들의 옛 인품을 벗어 버릴 수 있었고 참다운 의로움과 충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새로운 인품으로 옷입을 수 있었다면, 만일 그들이 성실하게 노력만 할진데 확실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세상적이며 의에 대한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면 해 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경이 이러한 세대를 위하여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구실로 물러나는 것을 더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적용시키는 정도는 우리가 어떠한가를 증명하는 정도가 됩니다.
우리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다른 보조들
21, 22. (ㄱ) 우리 자신을 증명하는데 있어서 「왙취 타워」 협회의 성경 연구 보조는 어떠한 도움이 됩니까? 예를 드십시오. (ㄴ) 「파수대」 잡지는 우리를 어떻게 도와 왔읍니까?
21 성경에 부가하여 우리가 어떠한가를 우리 자신에게 증명하는 데 우리를 돕는 다른 보조들이 있읍니다. 예를 들면, 「왙취 타워」협회의 성경 보조들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들을 마련합니다. 마치 강력한 확대경과도 같이 그들은 교정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잘못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협회의 「연감」을 생각해 봅시다. 매일 그 안의 성귀와 설명은 우리로 우리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볼 수 있게 합니다. 하루는 우리가 『전도인의 일을 하며』라는 말을 듣습니다. 다음 달에는 『동료감을 표시하며 형제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교훈을 받으며, 제 삼일에는 『구원을 위하여는 . . . 공개적으로 선포』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그 해의 날마다 생각할 만한 좋은 사상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는 전도를 수행하고 있는가? 우리가 형제의 사랑을 표시하고 있는가?와 이와 비슷한 것들을 우리 자신에게 묻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스며드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증명할 수 있읍니다.—디모데 후 4:5; 베드로 전 3:8; 로마 10:10.
22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라든가 「당신의 뜻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이다」와 같은 상당한 수의 성경 연구 보조들도 있읍니다. 이러한 출판물이 당신의 지식의 깊이를 시험하지 않습니까? 당신의 장성이 그 살점으로 가득찬 지면으로써 축정되지 않습니까? 또한 「파수대」 잡지는 최근 수년간에 걸쳐서 시기에 적절한 도덕과 피의 신성함의 진리에 우리의 주의를 돌리게 함으로써 큰 도움이 되어 왔읍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참으로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를 우리 자신에게 증명하도록 우리를 모아왔읍니다.
23, 24. (ㄱ) 회중은 각 전도인들이 자기 자신을 개인적으로 시험하는 수단은 어떻게 마련하였읍니까? (ㄴ) 회중 자체로서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무슨 마련이 있읍니까? (ㄷ) 대회는 어떠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을 살피도록 마련하며 결과는 어떠합니까?
23 각 그리스도인 회중은 우리가 개인적으로나 혹은 집단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필 수 있다는 다른 하나의 거울입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열심히 강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발표함으로써, 격려와 위안과 소망을 줌으로써 우리가 어떠한가틀 증명할 수 있읍니다. 회중과 함께 한 전도인의 활동을 기록한 전도인의 기록 「카드」는 개인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우리의 활동의 기록은 진리를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영적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야외 봉사의 『거울』을 자주 조사 하였다면 잘 한 것입니다.—마태 6:21.
24 집단적으로, 회중 자체와, 그의 발전과 그의 강약점을 회중의 매월 활동을 붙인 회중 도표에 반영시켜 봄으로써 조사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더 광대한 규모로 그리스도인 대회는 많은 회중들이 그들 자신들을 하나의 분회로서 볼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합니다. 이러한 대회들도, 그들이 민족적이며 국가적 편견으로 더럽혀져 있는지 혹은 평화스럽고 일치한 가운데서 같이 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참으로 한 백성으로서 서로 사랑하는지를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는데 있어서 거울을 닮았읍니다. 「뉴욕」시에서 개최된 1958년의 여호와의 증인의 뛰어난 대회에 관하여 「뉴욕」주 「빙함톤」시의 「태양」지는 말하였읍니다. 『거대한 군중의 질서와 실제로 모든 국적을 가진 사람들 즉 흑인들과 「아시아」인들이 백인들과 동등한 교제를 하며 섞이며 명백한 행복을 가졌다는 사실은 다른 하나의 이상하고 현저한 특징이었다.』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이 살수 있다는 것과 그들 자신이 어떠한가를 증거하고 있음을 결론적으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3:5을 더 자세히 살펴봄
25. (ㄱ) 「바울」은 어찌하여 「고린도」인들에게 자신들을 시험하며 증명하라고 말하였으며,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배울 수 있읍니까? (ㄴ) 어떠한 시험이 항상 위협하며, 이러한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읍니까?
25 고린도 후 13:5의 「바울」의 말을 다시 한번 유의해 봅시다.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계속 시험하라, 너희자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라.』 (신세) 「고린도」인들은 「바울」의 잘못을 찾았읍니다. 그들은 그의 동기를 의심하였으며 그의 업적을 경시하였읍니다. 「바울」은 그들이 그들 자신을 살피며 시험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하나님 앞에 있는 지위를 위태롭게 하였읍니다. 아마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교훈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과오나 악행을 찾으며 의심하는데 두루 다니지 맙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태 7:3-5) 적용되지 않는 표준을 잡고 있다는 것은 무용합니다. 다른 곳을 보기 전에 첫째로 그리스도인 원칙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하에 자신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에 따라 생활하는 대신에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만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쉽습니다. 예수께서는 경고 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누가 6:46) 그리스도인이 자기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하여 자기 반성을 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할지도 모릅니다만 그가 어떠한가를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한다면 자기 잘못을 자기 자신이 알지 못하고 그 잘못으로부터 옳은 것으로 발을 옮겨 디디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헛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자진적이며 우리의 가장 깊숙히 있는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일상 행동을 생명을 위한 여호와의 원칙으로 세밀히 검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을 알 수 있으며 우리가 어떠한가를 증명할 수 있읍니다. 만일 우리가 자기 승인의 뒤에 숨거나 성실과 진리가 가져오는 자기 피판을 도피하기 위하여 자기 장점 뒤에 숨는다면, 우리가 진리의 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고립시킨다면, 만일 우리가 무엇을 믿고 있는 가를 그리고 우리가 지금 어떠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자문하기를 거절한다면 공상적인 세상으로 끌려 들어가 방황하게 될 경향이 있읍니다. 단지 진리의 빛에 들어 내 놓음으로써만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환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며 치료와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 수 있게 될 것입니다.—요한 1서 1:5-7; 2:9-11.
26. 자기 반성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하여야 하며, 자기 반성은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26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으로 그리고 집단적으로 우리 자신을 살피는 것은 중대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괘념만 하지 않고 도리어 우리의 집(우리 생활)을 질서있게 정돈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요령있는 질문들을 우리 자신에게 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가? 나는 그의 말씀에 의존하는가? 문제들이 일어났을 때 그의 생각이 나의 마음 가운데 떠오르는가? 다른 사람은 영원히 판단해 버리면서 나 자신은 결코 판단하지 않고 있지나 않는가? 나는 참으로 겸손한가? 복종적인가? 용서하는가? 사랑하는가? 나는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는가? 나는 기도하고 싶어하는가? 숭배하고 싶어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하는가? 우리의 의식적 필요성의 질에 따라 우리의 발전은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더 많이 가지면 가질 수록 그가 계실 것을 바라며 그와 친하게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당신의 질과 하나님께 대한 봉사의 질을 살피십시오. 자문하여 보십시오. 나는 영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는 나의 연설을 잘 준비하며 관심을 표시한 사람들을 재방문하며 그들과 가정 성경 연구를 사회하는가? 다른 사람에게는 성경을 연구하라고 말하며 나 자신은 연구하지 않고 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은 가르치며 자신을 가르치지 않고 있지 않은가? 당신 자신을 살피십시오.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으로써, 우리의 말과 우리의 기도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떠한가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베드로 전 3:1-4; 요한 15:8-10; 갈라디아 5:22-25; 로마 2장; 갈라디아 6:7.
27. (ㄱ) 당신이 자신을 살필 때 무엇을 알게 될 것이며, 당신 자신에 시정할 필요성을 발견하게 될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ㄴ) 일정하고 성실한 자기 반성과 여호와께서 묘사하신 방법에 일치하여 시정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27 다음에 당신이 거울을 들여다 볼 때에 자문하여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의뢰하는가? 그런 후에 그의 거울들 즉 그의 말씀인 성경, 그의 조직을 통하여 마련된 성경 보조들, 회중 모임들과 대회에 가십시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의 도움으로 당신 자신을 살피십시오. 그리고 대답을 배우십시오. 그러면 당신 안에 거하는 선이 하나님의 분에 넘치는 친절 때문이며, 당신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당신은 많은 자비를 필요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표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 자신을 살핌으로써 당신이 참으로 믿고있는 바가 무엇이며, 생명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있어서 그러한 믿음을 당신이 표현하는가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주위에 있는 어떠한 것들은 시정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그러한 것을 알게 될 때에 자신에 즉시 적용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잘못을 바로잡는데 당신을 돕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영과 그의 조직을 사용하십시오. 당신이 병적으로가 아니고 기쁨으로 당신 자신을 검사함으로써, 필요한 시정을 함으로써, 당신은 그리스도의 인품과 같은 아름다운 것을 당신 자신 가운데 발전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재의 당신의 행복과 하나님의 신 세계의 영생의 축복을 보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이 어떠한가 계속 증명하라.』—고린도 후 13:5, 신세; 갈라디아 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