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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하는 분에 관하여 예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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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하는 분에 관하여 예언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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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2
파62 9/15 348-360면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하는 분에 관하여 예언함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말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창세 49:1, 신세.

1. 우리는 어떠한 기간에 살고 있으며, 고대의 어떠한 예언이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읍니까?

믿든지 안믿든지 간에 우리는 『말일』에 살고 있읍니다. 지금 세계 조직인 국제연합까지도 유의 하여온 고대 예언이 성취 되어가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읍니다. 「뉴욕」주의 「이스트」강변에 서 있는 국제연합 본부를 찾아드는 여행자들은 한 대리석 벽에 새겨논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읽어 볼 수 있읍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이 인용문은 참조한 근원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성경 「이사야」의 예언으로부터 인용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여행자는 거의 없읍니다. 그러나 유의하여야 할 주요점은 이 예언이 한 기간의 마지막에 일어날 것으로 말하였다는 점입니다.

2, 3. (ㄱ) 「이사야」의 예언은 언제 성취된다고 말합니까? (ㄴ) 오늘날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다면, 우리는 어디에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까?

2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여기에 그 예언 전체를 실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를 표시하겠읍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2-4.

3 현재 만일 여러 국적을 가진 백성들이 더 이상 서로 싸우지 아 니하며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으며 전쟁을 계획하지 않음으로써 이 예언이 오늘날 성취되고 있다면, 우리는 『말일』 즉 이 전쟁 재난을 만난 세상의 말일에 살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널리 볼 수 있는 한 백성 중에서 예시된 바와 같은 전쟁없는 세상은 임박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4. 그리하여 오늘날 어떠한 백성들을 널리 볼 수 있으며, 그들은 「이사야」의 어떠한 예언적 명령을 순종합니까?

4 어떤 백성이 그렇습니까?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그들은 이 예언 중에서 세번 말한 이름을 가지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백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름이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그 백성은 여호와의 증인들임에 틀림이 없읍니다. 그들은 참으로 여호와의 숭배를 『모든 산 꼭대기』 위로 높혔으며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게 합니다. 땅의 사방으로부터 그리고 『만방』으로부터 그리고 『많은 백성』으로부터 온 많은 무리가 유일하신 살아계시고 참된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에 있어서 연합하고 있으며, 그의 증인들이 되어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사야 43:12에 기록된 그의 예언적인 명령에 순종합니다.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이 백성의 1962년도 「연감」은 여호와의 숭배로 백성을 초청하는데 있어서 그들이 지난 봉사년도에 수행한 것을 어떻게 표시합니까?

5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1962년도 연감」을 들추어 그들이 증거하고 있으며 회중을 조직하고 있는 나라들의 색인을 조사해 보도록 합시다. 거기에서 우리는 「아덴」으로부터 「잔지바르」까지 188나라들을 헤아릴 수 있읍니다. 이들 각 나라에서의 조직적 면들과 활동을 세밀하게 표시한 34-41면에 걸쳐 있는 도표를 조사하여 봄으로써, 우리는 지난 봉사년도를 통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이 매달 평균 884,587명의 일군들을 야외에 내놓았으며, 족속, 피부색, 민족, 종교나 사회적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백성들의 집을 찾아갔으며, 취임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여호와의 천국에 관하여 그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명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 봉사년도 중 그들은 132,695,540시간을 사용하여 150개 이상의 언어로 하나님의 천국을 전파하였읍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숭배로 백성들을 초대하기 위하여 사용된 참으로 많은 시간입니다.

6. 1958-1959년에 수천만의 백성들은 어떠한 결의문을 읽었으며, 그 중에는 어떠한 현저한 결의가 포함되어 있읍니까?

6 1958년 12월로부터 1959년에 걸치어, 온 지상의 수천만명의 사람들은 이들 증인들이 53개국어로 배부하고 있는 72,348,403부의 4면으로 된 「팜플레트」을 읽었읍니다. 그것은 「뉴욕」시 「양키 스타디움」과 「폴로 그라운드」에서 개최된 그들의 국제 대회에서 채택한 결의에 관하여 말한 것이었읍니다. 1958년 8월 1일 금요일에 이 결의문은 123개 나라에서 온 194,418명의 청중들에게 제출되었읍니다. 그들은 음성으로서 찬성을 표시하고 큰 박수로서 채택하였읍니다. 결의한 많은 것 중에서도 현저한 것은, 계속하여 이사야 2:4의 예언에 의하여, 살아나가겠다는 결의였읍니다. 그들은 그 성귀가 그들 중에서 성취고 있음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7. 그들은 오늘날까지 어떻게 이 예언에 일치하게 살아왔으며, 어떠한 사실이 한 증거가 됩니까?

7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민족들의 정치와 종교적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쟁 준비에 참예하지도 않았으며, 다른 나라에 있는 그들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 대항하여 검을 집어 들지도 않았읍니다. 그들은 더 이상 전쟁을 배우지 않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세계적 조직이 해마다 수 만명씩 더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말일』에 살고 있다는 웅변적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8. 이것을 더 확실하게 증거하기 위하여, 이사야 2:3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떠한 예언자에게 주의를 돌리며, 그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8 이 사실을 더 확실히 증거하기 위하여, 『말일』에 관하여 주어진 다른 예언을 살펴봅시다. 그 예언은 「이사야」의 예언 중에서 이름한 한 예언자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이름을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왜냐 하면 이사야 2:3은 오늘날 참된 하나님을 숭배하고자 하는 백성들이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이 「야곱」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그는 『말일』에 관하여 무엇을 예언하였읍니까?

9. 이 예언자는 자기 생애를 어디에서 보냈읍니까?

9 「야곱」은 오늘날 중동으로 알려진 서남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온 사람입니다. 그는 20년 동안을 「시리아」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그는 열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관한 이 예언을 하였을 때 그는 오늘날의 통일 「아랍」공화국인 「애굽」에 살고 있었읍니다.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손자였읍니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오늘날 「요르단」과 「이스라엘」 나라들로 말미암아 장악되고 있는 지역에서 자기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읍니다. 그의 생애의 마지막 16년 간을 「애굽」에 내려 갔으며 나그네 거주자로서 자기의 모든 가족들과 같이 보냈읍니다.

10, 11. (ㄱ) 지상의 모든 가족들은 왜 이 「야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까? (ㄴ) 어떠한 예언자의 한 집단과 「야곱」은 연합되었습니까?

10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 「야곱」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놀라운 환상 중에서 말씀하신 것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 「이삭」을 바로 「브엘세바」 남쪽에 남겨 두고 결혼하기 위하여 「시리아」로 가고 있었읍니다. 북으로 가는 중에 그는 「벧엘」 (현재 「요르단」의 「비튼」) 근처의 들에서 잤읍니다. 그날 밤에 「야곱」은 꿈의 환상 중에서 사다리가 땅으로부터 하늘에 단 것을 봤으며 그 사다리 꼭대기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던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 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확실히 자기 자신들을 축복하게 될 것이다.]』—창세 28:13, 14, 신세.

11 이 거룩한 약속 때문에 지상에서 자신을 축복하고자 원하는 모든 사람은 그가 어떠한 가족에 속하여 있든지 간에 이 「야곱」의 『씨』 즉 후손을 통하여 그렇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치셨으며, 그리하여 성경에서 그가 한번은 「야곱」으로 다음은 「이스라엘」이라는 두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이 「야곱」은 여호와의 한 예언자가 되었읍니다. 시편 105:14, 15에서는 「야곱」을 명백하게 한 예언자로 부릅니다. 그것은 약속된 땅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방랑에 관하여 말한 다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보호하셨는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12. 어디에서 「야곱」은 가장 뚜렷하게 예언자로 나타났읍니까?

12 물론 「야곱」이 「벧엘」에서 그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그의 가족 사회에 말할 때마다 그는 예언자로 행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 있어서도 그의 예언자의 직책이 아들들과 손자들에게 고별사를 하였을 때 보다 더 뚜렷이 들어난 때는 없읍니다. 이제 주전 1712년 죽음의 침상에서 마지막 말을 하기 위하여 그는 자기 열두 아들들을 병실로 불러 모았읍니다. 그때 그는 두 다리를 아래로하여 침대에 걸터 앉아 있었읍니다. 이것은 그가 「야곱」의 열한째 아들인 「요셉」의 아들들 즉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고 난 직후였읍니다. 「요셉」은 그 때에 「애굽」의 국무총리 즉 「애굽」의 왕 「바로」의 재상으로 섬기고 있었읍니다.—창세 48:1-22.

13. 자기 임종의 예언을 하는데 있어서 「야곱」은 어떠한 형태의 표현 방법을 사용하였읍니까?

13 「야곱」이 그의 마지막 소식을 자기 12 아들들에게 전하였을 때, 그는 「히브리」 예언자의 시의 형태를 사용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마치 「아브라함」과 「이삭」과도 같이 「야곱」은 「히브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시는 행의 말단이나 절이, 운이나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님을 표시합니다. 음율적인 행으로 존재하는 이 시는 평행적인 사상이나 생각을 줍니다. 예컨대, 한 절에서는 「야곱」으로서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하고 다음 절에서는 「이스라엘」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즉 두가지 이름이 다 동일한 인물에 언급한 것입니다. 이 예언의 시는 행의 끝이 같은 소리를 내지 않으며 운이 같지 않은 시인 무운시라고 불리우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히브리」시는 각 행이 동일한 방향으로 나가며, 표현하며, 비슷한 생각을 표시하지만 사고와 생각과 주제를 참으로 확대합니다. 우리가 임종의 「야곱」의 시적 예언을 살펴감에 따라 이 점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임종의 예언

14. 「야곱」은 그때 무슨 힘을 받아 말하였으며, 창세기 49:1, 2는 이점을 암시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4 주전 1712년 「애굽」에 있는 「야곱」의 집에 있었던 임종의 광경은 창세기 49장에 묘사되어 있읍니다. 이 때 하나님의 영감의 영은 「야곱」 위에 임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의 예언적인 증인으로서 말하였읍니다. 이점을 암시하여 창세기 49:1, 2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찌어다.』

15. 우리는 「야곱」의 말머리에서 「히브리」시의 어떠한 특징에 유의하게 됩니까?

15 (1) 『너희는 모이라』는 표현이 『너희는 모여』라는 표현과 시적으로 어떻게 평행하며, (2) 『들으 라』는 표현이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는 표현과 어떻게 평행하며, (3) 『들을찌어다』라는 표현과 『들으라』라는 표현, 그리고 (4) 『너희 아비 「이스라엘」』이라는 표현이 『「야곱」의 아들들아』라는 표현과 어떻게 평행하는 가에 유의하십시오. 「야곱」의 모든 예언을 통하여 우리는 이 예언적인 사상의 평행 즉 관련된 표현의 평행에 유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더욱 상상을 연장하는데 이바지하며 의미를 확대할 뿐아니라 사상이 의미하는 것을 더 확실하게 하는데 이바지 합니다.

16. 「야곱」은 그때 예언적으로 어느 때까지 보고 있었읍니까?

16 죽어가는 족장 「야곱」은 열두 아들들이 열심히 그에게 듣고 있었던 때보다 훨씬 먼 앞날을 봤읍니다. 그는 자기 열두 아들들의 가족이 열두 지파를 형성하고 이것이 다 모여 하나의 통일된 나라로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있게 되고, 국가가 아버지의 이름 「야곱」 혹은 「이스라엘」로서 불리워질 때 보다도 훨씬 더 먼 앞날을 봤읍니다. 「야곱」은 새로운 국민이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으로 된 영적국민, 영적 「야곱」 혹은 「이스라엘」의 때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17, 18. (ㄱ) 「이스라엘」의 전 국민은 어떠한 기초 위에 놓였읍니까? (ㄴ) 이것이 영적 「이스라엘」과 일치한다는 것이 어떻게 사실입니까?

17 「야곱」은 보통 아버지와 같이 육적 「이스라엘」 즉 육적인 면으로 「이스라엘」의 전 국민을 위하여 넓은 기초로서 이바지하였읍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은 「야곱」에 다음가는 제2의 기초 즉 열두 기둥으로 이바지 하였읍니다. 이 열두개의 지주 즉 기둥 위에 전 「이스라엘」 국민은 한 형제로서 놓였읍니다.

18 그러한 것은 영적 「이스라엘」 즉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있어서 참됩니다. 이것은 마치 영감받은 한 성원이 후일에 그렇게 불렀던 것과 동일합니다. (갈라디아 6:16) 고대 「이스라엘」 국민이 바로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를 위한 하나의 큰 회중 혹은 교회였던 것과 같이 영적 「이스라엘」은 이 같은 하나님의 숭배를 위한 하나의 큰 회중 혹은 교회입니다. 족장 「야곱」에 해당하는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 하면 그는 이 영적 「이스라엘」 회중 혹은 교회의 기초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자기 열두 사도 중의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을 때, 그는 이것을 표시하신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돌)라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태 16:18) 자기 위에 이 교회 즉 회중을 세우시는데 있어서 예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에게 해당하는 열두 사도들을 이용하십니다. 성경의 마지막 권에서 이들은 『어린 양의 십 이 사도』라고 불리웁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들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도들의 열두 이름을 지니고 있읍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열두문에는 『「이스라엘」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 새겨졌읍니다.—계시 21:12-14.

19. 천적 통치 반열은 누구로서 이루어지며, 계시록 7:4-8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19 천적인 통치 반열은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으로 표상되었읍니다. 그것은 시험된 144,000 즉 충성스러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서 나오는 성령으로 인침을 받으며, 지적 시험의 끝까지 이 인침을 유지합니다. 계시 7:4-8은 그들을 영적 「이스라엘」로서 언급하고 열두 지파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 지파들의 이름은 족장 「야곱」의 아들들과 손자들의 이름으로부터 취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어떠한 순서로 나열됩니다.

내(사도 「요한」)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유다」 지파 [1]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2]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3]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4]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5]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6]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7]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8]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9]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10]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11]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12]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20. (ㄱ) 지파의 이름들의 순서에 관하여 무엇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며, 그들 중에는 어떠한 수자가 간직되었읍니까?

20 이상은 족장 「야곱」 즉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탄생된 순서가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야곱」의 다섯째 아들 「단」의 이름은 빠졌으며 「야곱」의 손자 「므낫세」의 이름이 「단」의 자리를 취하였읍니다. 「단」 지파의 역사 때문에 「단」 대신에 「므낫세」를 사용하여야 할 것인가를 좌우할 여부는 후에 토론하기로 하겠읍니다. 어쨌든지 계시록 7:4-8은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수와도 같이 십이라는 수를 간직합니다. 또한 모든 이름은 「야곱」의 열한 아들들의 이름이요 하나는 「요셉」이 나은 「야곱」의 손자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또한 각 지파가 동일한 성원 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도 유의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지파도 다른 지파보다 수적으로 더 크지 않읍니다.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의 전 조직은 완전한 균형 잡힌 것으로 묘사됩니다. 각 지파는 그 자체에 있어서 재차 십이라는 수자를 강조합니다.

21. 예언하였을 때 「야곱」은 자기 아들들의 탄생의 순서에 따랐읍니까? 무엇으로서 그들 모두에게 말할 수 있었읍니까?

21 그러나 족장 「야곱」이 임종에 재하여 예언하였을 때 그는 네명의 어머니들이 낳은 순서 대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즉 「야곱」의 첫째 아내는 「레아」와 여종 즉 여자 노예 「실바」와 「야곱」의 둘째 아내 「라헬」과 여종 「빌하」였읍니다. 그들의 공통적인 아버지로서 「야곱」은 그들 모두에게 『「야곱」의 아들들』 즉『너희 아비 「이스라엘」』로서 말할 수 있었읍니다.

22. 사실상 과거에 「야곱」은 누구의 유익을 위하여 예언하였으며, 오늘날 또한 누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까?

22 「야곱」은 자기 열두 아들들을 모아 놓고 그들 즉 『말일』에 그들이 예표하였던 실체들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하였읍니다. 그것은 우리의 시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144,000의 성원의 적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할(천적 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땅에 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말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3,600여년 전에 「야곱」이 자기 열두 아들들에게 말한 것은 사실상 인류 역사상 매우 훌륭한 기간에 지금 땅에 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적은 남은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땅의 온 백성들과 가족들이 그들로 인하여 앞으로 자신을 영원히 축복하게 될 영적 『「아브라함」의 씨』의 성원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들을 축복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가족들과 백성들은 이제 우리와 함께 「야곱」의 임종시의 말을 살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르우벤」

23. 「야곱」의 장자는 자기의 이름을 어떻게 우연히 갖게 되었으며, 장자로서의 그의 지위에 관하여 이제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23 시적 편행으로 말하였을 때 「야곱」은 「르우벤」에 관하여 예언하였읍니다. 그는 「시리아」 여인이며 첫 아내였으나 덜 사랑한 「레아」가 낳은 장자였읍니다. 그래서 그가 탄생되었을 때 「레아」는 『보라 아들이라』고 말하였으며, 이 외침은 「르우벤」이라는 그의 이름이 되었읍니다. 「야곱」의 장자로서 「르우벤」은 자연적으로 가족의 장자로서의 권리를 가졌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 아버지 「야곱」이 남기고 간 재산에서 두 몫을 가질 권리를 받았던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르우벤」이 이러한 장자의 권리를 가지게 되었읍니까? 라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의 머리로서 족장 「야곱」은 전 가족을 위하여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행하였으며 가족 제단에 제물을 바쳤고 기도를 드렸으며 종교적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그는 또한 전 가족과 모든 종들과 생축과 재산을 다스리는 자로 행하였었읍니다. 그러한 특권들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24. 「야곱」의 사망 후 열두 가족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이었으며, 「르우벤」에 관한 어떠한 질문이 이제 해결 되어야 합니까?

24 그들의 공통적인 아버지의 사망과 더불어 열두 아들들은 자기의 길을 제각기 가는 열두 가족으로 나뉘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한 백성, 한 국민으로 같이 고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 백성 즉 회중을 위하여 이제 제사장으로 행동할 것이었읍니까? 누가 다스리는 지위에서 행동할 것이었읍니까? 보통은 장자에게 속하는 그러한 특권이 하나님의 성령의 영감으로 말미암아 「르우벤」에게 임명되었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야곱」의 아들들이 되었을 때와 같은 관심을 가지고 「야곱」의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입니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과 같이 무책임 하였]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창세 49:3, 4, 신세.

25, 26. (ㄱ) 어떠한 표현으로써 「야곱」은 「르우벤」이 그의 장자라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그는 무엇에 대하여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였어야 할 것입니까? (ㄴ) 『위광이 초등하고』라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권능이 탁월하다』는 표현은?

25 「야곱」은 자기의 첫 아내인 「레아」와 결혼 초야를 치루기 전에 성적 관계를 갖지 않았읍니다. 비록 그는 그 때(1774년 주전) 나이 84세였으나 그의 자녀를 산출하는 능력은 그 때까지 약화되지는 않았었읍니다. 그의 마지막 아이이며 아들은 13년 이상이나 지난 후까지 탄생되지 않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장자인 「르우벤」에게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르우벤」은 가족 중 제일 좋은 아들이어야 하였을 것이며, 자기 동생들보다 두배의 유업을 받을 만한 아들이어야 하였을 것입니다. (신명 21:17) 그는 모든 면에서 자기 동생들보다 우월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26 「르우벤」은 당연하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위광이 초등하고』라는 표현으로써 나라의 제사장 직분을 의미하여야 한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제사장 직분은 「르우벤」지파의 남자 성원으로부터 공급 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권능이 탁월하다』는 표현으로써 언제나 이 백성이 한 나라가 될 때는 아마 통치권 혹은 왕권을 의미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제사장 직분의 위엄은 「르우벤」에게 임하였어야 할 것이며, 통치권의 힘 혹은 왕국의 힘은 그의 어깨 위에 놓였어야 할 것입니다. 「야곱」이 이에 관하여 무엇을 예언하였읍니까? 「야곱」이 예언한 것이 이루어졌읍니까?

27. 「야곱」은 「르우벤」에 관하여 어떠한 무자격을 되생각 하였읍니까?

27 「야곱」은 세가지의 모든 특권 즉 장자의 특권, 제사 직분의 특권과 통치권의 특권에 대하여 「르우벤」에게 영향을 끼친 무자격을 되생각 하였읍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여종인 첩 「빌하」와 근친 상간의 부도덕을 범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라헬」의 죽은 직후 즉 「베냐민」을 낳은 후였던 것입니다. 장자 「르우벤」이 여종 「빌하」가 「라헬」의 자리를 취하여 「야곱」의 애정을 찾이하는 것을 막고, 「르우벤」의 어머니인 「레아」보다도 더 「야곱」의 애정을 찾이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빌하」를 범하였는지, 혹은 「르우벤」이 전연 「빌하」에 대한 음욕으로 행한 것인지 성경 기록은 설명하지 않읍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그 땅에 유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의 아비의 첩인] 「빌하」와 통간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그리고 희랍어 성서 70인역은 부가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보기에 악하였더라.』—창세 35:22, 신세, 70인역(돔손).

28. (ㄱ) 「르우벤」의 죄는 언제 그를 뒤미쳤으며, 어떠한 결말에 이르렀읍니까? (ㄴ) 「르우벤」은 어떻게 행하였으며, 어떻게 행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까?

28 그의 아버지 「야곱」과 그의 이복 형제인 「단」과 「납달리」에 대한 이 심각한 모욕을 주었을 때 장자「르우벤」은 의를 끊기웠으며 쫓겨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마침내 약 50년이 지난 후에 「르우벤」의 죄는 그를 찾아내어 그를 뒤따랐던 것입니다. (민수 32:6, 23) 거룩한 영감을 받은 그의 죽어가는 아버지는 그의 악덕한 행동에 관한 결과를 그에게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라고 말합니다. 그리하여 「르우벤」은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한 것을 박탈당하며 또한 그의 아버지의 유업 중 두 몫을 차지하는 장자의 권리를 박탈당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그는 『물과 같이 무책임』하게 행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안정한 무책임함을 증명하였을 뿐아니라 막아논 물에 횡포하게 까꾸로 떨어져서 거칠게 하는 물과 같다는 것을 증명하였으며 급한 계곡을 맹렬히 내려가는 물과도 같다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대하여 주의하지 않는 무책임함은 탁월함과 일치하지 않읍니다. 「르우벤」은 자제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아버지의 위엄과 자기 아버지의 첩 「빌하」의 두아들의 명예에 대하여 아들의 존경을 표시하였어야 할 것이었읍니다.

29, 30. (ㄱ) 후에 희랍의 「고린도」 회중의 어떠한 경우가 「르우벤」의 경우와 같읍니까? (ㄴ) 「르우벤」의 부도덕 때문에 누가 고통을 받았으며 어떻게 받았읍니까?

29 「르우벤」은 친 아버지의 결혼의 침상을 더럽혔읍니다. 이것은 마치 훨씬 후에 희랍의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경우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여 성적 관계를 한 소위 그리스도인을 제명처분 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5:1-13) 이 부끄러움도 모르는 행실에 관하여 직접 「르우벤」에게 더 말하기 조차 싫었던 「야곱」은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고 말함으로써 장차 「르우벤」에 관한 예언적인 심판을 끝맺습니다. 「르우벤」의 부 도덕 때문에 그의 아들들 그렇습니다. 그의 전 지파가 고통을 받았읍니다. 그 고통이 어떠하였는 가에 관하여 역대상 5:1, 2에는 이렇게 진술되어 있읍니다.

30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준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찌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

31, 32. (ㄱ) 「르우벤」의 후손은 「이스라엘」 중에서 어떻게 탁월 즉 뛰어나지 못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사사 「바락」시대에 무엇을 보였으며, 「앗수르」가 북방「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무엇을 보였읍니까?

31 「이스라엘」 백성 내에서 「르우벤」의 감독자의 특권은 그가 장자로서의 당연한 지위를 더럽혔기 때문에 몰수 되었읍니다. 「르우벤」의 후손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사사나 예언자나 인도자가 되지 못하였읍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주전 12세기에 약속의 땅에 자리를 잡았을 때, 사해와 「요단」강의 동부 구역의 배당을 받았읍니다. 후일, 「가나안」의 억압자, 왕 「야빈」과 그의 군대 장관 「시스라」의 땅을 해방하기 위하여 『「므깃도」물 가』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르우벤」 사람들은 사사 「바락」과 여 예언자 「드보라」를 지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승리의 노래 중에서 「바락」과 「드보라」는 「르우벤」 사람들의 지지하지 않은 것을 기록하여 노래하였읍니다.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르우벤」의 연하여 있는]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사사 5: 15, 17.

32 여러 세기가 지난 후 「이스라엘」의 북방 왕국이 「앗수르」로 포로가 되어 잡혀갔을 때에, 「르우벤」 사람들은 첫째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있었읍니다. (역대 상 5:26) 참으로 「르우벤」 지파는 「이스라엘」의 동료 지파들보다 탁월하지 못하였읍니다.

33. 하나님의 왕국 하에 있을 토지 분배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르우벤」 지파에게는 어떠한 자리가 주어졌읍니까?

33 하나님의 신 세계의 왕국 하에 토지 분배를 묘사하는 토지 분할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 「르우벤」은 여호와의 성전, 여호와 「삼마」 성읍과 우두머리의 지역이 있는 『거룩히 구별할』 땅 바로 다음 자리를 받지 못합니다. 「유다」는 거룩히 구별할땅 바로 북쪽에 놓입니다. 그리고 「르우벤」은 북쪽으로 「유다」의 다음에 있읍니다.—에스겔 48:6-22.

34. 그렇다면 144,000의 인맞는 환상에 관하여, 무엇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으며, 이 성원들은 이것으로부터 무엇에 관하여 되생각하게 됩니까?

34 그렇다면 사도 「요한」의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의 인맞는 환상 중에서 「르우벤」 지파가 처음에 언급되지 않고 둘째로 이름 하였다는 것 즉 「유다」지파 다음에 하였다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읍니다. (계시 7:5; 351면 참조) 그리하여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의 성원들은 「르우벤」이 여호와 하나님의 선민 중에서 충성스러운 감독자로서의 올바른 본을 세우지 아니하므로 귀중한 특권을 어떻게 상실 하였는가에 관하여 되생각 하게 됩니다.

35. 「르우벤」의 경우와 같은 무책임한 영적 「이스라엘」에게는 어떠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며, 이것은 부도덕적인 「고린도」인의 경우에 어떻게 예시 되었읍니까?

35 무책임하며 불안정을 표시하며 간통이나 간음에 까꾸로 박히듯이 뛰어드는 영적 「이스라엘」은 어떤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그것을 상실하고야 맙니다. 그들의 부도덕에 대하여 성실한 회개를 표시할지도 모르나 그들은 자기 기록에 지울수 없는 험을 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무리를 위하여 빈약한 본을 세웠읍니다. 자기 아버지의 결혼 침상을 더럽힌 「고린도」회중의 사람처럼 그들은 제명처분을 당할 수도 있으며 후에 회개로 인도하는 경건한 방법으로 그들의 슬픔을 표시할 때 복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이 제명처분을 당한 후에는 그 「고린도」인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본이 되어야 할 감독자의 지위에 대한 자격을 가질 수 없었음을 표시합니다. (고린도 후 7:9, 10; 2:6-11) 그는 감독자가 그래야 하듯이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양무리에 대한 건전한 본이 아니었읍니다. (디모데 전 3:1-4; 디도 1:5-9) 「르우벤」지파와 같이 그는 영적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기에 합당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6. (ㄱ) 모든 144,000은 어떠한 등급의 회중에 있읍니까? (ㄴ) 영적 「이스라엘」에 「르우벤」지파가 있기는 하지만, 144,000은 무엇을 예상하여서는 안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6 그러므로 「르우벤」의 죽어가는 아버지가 그에 관하여 언명한 굴욕적인 빛 가운데서 그의 경우는, 아직도 땅 위에 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144,000의 적은 남은 자를 위한 엄숙한 교훈을 가지고 있읍니다. 모든 144,000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회중]』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합당하게 행동하여야 합니다. (히브리 12:23, 신세) 그러나 마치 「르우벤」이 하듯이 결과를 생각하지 않으며 개의치 않고 행동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 곳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취소할 수 없는 특별한 특권을 상실하는 고통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단지 하나님의 자비로 인하여 그리고 영적 치료에 순응함으로써 그들은 영원히 의를 끊기지 않고 영적 「이스라엘」로부터 쫓껴 나는 것을 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애 때문에 영적 「이스라엘」에 「르우벤」 지파가 있읍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를 예상하고 위험을 저지르지 말도록 합시다. 「르우벤」은 결과를 괴로워 하였읍니다. 우리도 그러할 것입니다!

「시므온」과 「레위」

37, 38. (ㄱ) 어느 정도까지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였으며, 그들의 이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ㄴ) 「야곱」의 마지막 말에 의하면 그들은 어떠한 일에 형제적 협동을 하였읍니까?

37 족장 「야곱」은 자기 장자를 지나 둘째 아들인 「시므온」과 셋째 아들인 「레위」에 주의를 돌렸읍니다. 이들은 둘다 그의 첫째 아내 「레아」의 소생이었읍니다. 죽어가는 「야곱」은 「히브리」어 시의 형태로 예언하여 말하였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찌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예하지 말찌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중에서 [한 몫을 주며] 「이스라엘」중에서 흩으리로다.』—창세 49:5-7, 신세.

38 이 두 형제는 온전히 협동하였읍니다만, 그들은 나쁜 일에 협동한 것이었읍니다. 그 이름 「시므온」이 뜻하는바는 『들으심』 즉 받아들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 「레위」는 『연합함, 고착』을 의미합니다.

39, 40. (ㄱ)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잔해하는 기계로 사용하였을 때는 어떠한 특별한 경우였읍니까? (ㄴ) 그때 그들은 이 문제에 관하여 아버지에게 어떻게 대답하였읍니까?

39 그들의 칼이 잔해하는 기계였던 특별한 경우는 그들이 친 누이동생인 「디나」의 명예를 복수하기 위하여 함부로 그것을 잡았을 때였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장형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하기 전이었읍니다. 족장 「야곱」의 약속의 땅 「세겜」 성읍 근처에 야영하고 있었을 때, 「디나」의 처녀성은 침범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도시의 「히위」 추장의 아들이 저질렀던 짓입니다. 「디나」의 형제들은 복수할 계교를 베풀었읍니다. 범한자가 「디나」와 결혼하기 전에 「이스라엘」인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 그들은 「세겜」의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게 하였읍니다. 그들이 할례를 받은 지 삼일째에 할례를 받은 남자들이 너무 아파서 거의 움직이지도 못하였을 때, 「시므온」과 「레위」는 행동하였읍니다.

40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 오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의 손으로 성읍은 약탈되고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을 사로잡아 갔읍니다.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 「야곱」이 행하여진 일들을 동정하지 아니하고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하였을 때, 그들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하고 대답하였읍니다.—창세 33:18–34:31.

41. 「요셉」이 17세 되었을 때 그에 대한 형제들의 의도는 어떠하였으며, 언제 그들의 아버지는 그 일에 관하여 알게 되었읍니까?

41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들의 이복 형제인 「요셉」이 그들의 아버지의 가장 총애를 받는 아들이 되었기 때문에 17세가 되었을 때 부러워한 남어지 「시므온」과 「레위」는 그를 죽이고 싶어야 하였읍니다. 그들의 맏형인 「르우벤」은 「요셉」을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으며, 「시므온」과 「레위」의 다음 형인 「유다」도 죽이고 싶어하지 않았읍니다. 그리고 「야곱」의 두 첩의 소생인 아직도 나이 어린 네 아들들은 「요셉」과 친한 사이였거나 혹은 그를 관용하였읍니다. 그리고 더 나이어린 「잇사갈」과 「스불론」은 그 문제를 지배할 만한 말을 하지 않았읍니다. 그리하여 「요셉」이 「도단」성읍 근처로 시찰차 그들을 방문하였을 때 『죽이기를 꾀』한 자들은 틀림 없이 바로 「시므온」과 「레위」였읍니다. 「유다」의 제안으로 그들이 그를 죽이지 못하게 하였고 「르우벤」은 그들 중에 너무 늦게 돌아왔기 때문에 그들이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가도록 노예로 파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읍니다. (창세 37:2-36) 때가 지나 「애굽」에서 「요셉」이 살아 국무총리가 된 것을 발견하고 「야곱」은 어떻게 자기 아들이 갑자기 사라졌는 가를 알게 되었읍니다.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의 『잔해하는 기계』에 관하여 말하였을 때 아마 이것을 또한 마음에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42. 만일 잔해하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시므온」 혹은 그 뒤의 「레위」가 어떠한 지위를 찾이 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까?

42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장자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시므온」과 「레위」가 탄생된지 여러 해 지나 「야곱」의 열한째 아들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아버지의 동의 없이 행한 「세겜」 주민들에 대한 보복적인 폭행을 하지 않았다면, 지도권의 지위를 상실한 「르우벤」에 뒤이어 그들이 그것을 찾이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시므온」이 첫째 기회요 「레위」가 그 다음으로 기회를 가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임종시의 그들에 대한 심판의 말은 그들이 둘다 그 기회를 상실하였다는 것을 명백하게 표시합니다.

43. 「야곱」은 자기 생애의 마지막 날에 그들의 죄에 대한 공동책임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으며 그것을 원하지 않는 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43 그리하여 생애의 마지막 날에 「야곱」은 「세겜」 성읍에 대하여 범한 폭행에 관련하여 모든 것을 깨끗이 하였읍니다. 그의 딸 「디나」를 범한 것이 그것을 정당화하지는 않았읍니다. 「애굽」에서 막 죽어가는 「야곱」의 영혼은 그러한 범죄에 있어서 「시므온」과 「레위」와 함께 친밀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야곱」의 성질 자체는 그와 같은 극도의 폭행적인 사람들의 회중과 연합하는데 반대하였읍니다. 자기의 생애를 끝마치기 전에 그는 그러한 피흘린데 대한 공동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선언 하였읍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노를 이기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아버지에게 먼저 의론 하지 않고 그러한 보복적인 행동을 임의로 행하였읍니다. 그들은 모든 「가나안」인들에게 그를 나쁜 냄새가 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44. 무엇에 대하여 「야곱」은 저주를 선언하였으며, 「시므온」과 「레위」의 장차 있을지도 모를 가능성에 관하여 「야곱」은 어떤 일 행할 것을 결심하였읍니까?

44 그러나 약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야곱」은 죽어가는 숨으로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들의 화를 저주하였읍니다.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그는 그들의 분기를 저주하였읍니다.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비록 자기의 아들들이요 비록 자기 자신의 땅을 위하여 쏟은 분이지만 그는 승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용서하여 주었읍니다만 그들에게 대한 결과를 변경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들 중의 아무도 인도하는 지위 혹은 통치권에 임명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그들이나 그들의 지파를 「이스라엘」로부터 추방하지는 않았읍니다마는 혹독한 분노와 맹렬한 분기로 일하며 연합하며 협동하는 것을 파괴할 것이었읍니다. 예언적인 영감아래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자기 후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 있는 한 장소를 그들에게 임명하였읍니다. 239년 후에 그들은 그곳에 들어왔으나 「야곱」은 그들이 그 땅에서 이웃이 되지 못할 것을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45. 「야곱」의 결정과 일치하여 「시므온」과 「레위」지파에게는 「이스라엘」 중에서 어떠한 몫이 주어졌읍니까?

45 예언적으로 그리고 약속된 땅의 상속자로서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야곱」 중에서 [한 몫]』을 주었읍니다마는 둘 다 견고한 몫은 아니었으며 파괴되지 않는 몫이 아니었읍니다. 「야곱」은 그 땅에서 두 형제를 나누어 몫을 주었읍니다. 그리하여 「시므온」과 「레위」는 그 땅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각자는 자체 내에서 나뉘어 있었읍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예언자 「모세」가 「이스라엘」 지파들을 축복하였을 때 그는 심지어 「시므온」의 이름을 말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명 33:16-23) 「시므온」 지파는 「유다」지파에 할당된 큰 구역 전역에 걸치어 여기 저기 산재한 작은 구역에 위치하였읍니다. 「유다」의 구역으로 둘러 쌓인 이들 고립 영토는 어떠한 것도 국가의 수도가 된 「예루살렘」 성읍에 연하여 있지 않았었읍니다. 부지중 살인자들이 피하는 도피성읍으로 이바지 하도록 「레위」 제사장들에게 여러 지파들이 그들의 구역 내에서 성읍을 바치었을 때 「시므온」 지파로부터는 한 성읍도 바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사장을 포함하는 모 든 「레위」인들에게 48개 성읍이 임명되었을 때 이들 중 단지 13개 성읍만이 「유다」와 「시므온」과 「베냐민」 지파로 말미암아 바쳐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시므온」 지파의 몇개 성읍에서 거주하였을 것임에 틀림이 없읍니다.—여호수아 20:7-9; 19:1-9; 21:3, 4.

46. 「모세」에게 대한 하나님의 교훈으로 말미암아 「레위」인들은 어떠한 특권으로써 존경을 받았으며,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사업을 위하여 어떻게 또다시 모두가 모일 수 있도록 하였읍니까?

46 「야곱」의 예언으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후일 여호와께서 「레위」인 예언자 「모세」에게 주신 교훈으로 말미암아 「레위」 지파는 여호와의 성전 숭배에 있어서 제사장과 봉사의 특권을 가지고 존경을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은 약속된 땅에서 유업을 받지 못하였으며,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으로 그들의 유업이셨기 때문이었읍니다. 약속된 땅에서 그들의 구역으로 주어질 수도 있었던 것은 「요셉」의 아들들 중의 한 지파에 주어졌읍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그래도 열두 지파의 구역을 가졌던 것이었읍니다. 이들 열두 지파는 모두 여호와의 성전에서 섬기지 않을 때 「레위」인들이 살도록 하기 위하여 총 48개 성읍을 바쳤읍니다. 그리하여 「레위」 지파의 성원들은 「시므온」보다도 더 심하게 흩어졌던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졌던 것입니다. 단지 여호와의 성전에서만 「레위」인들은 모두 다시 모였읍니다. 그것은 그의 정규 임명 제일과 속죄일에 여호와의 봉사의 선한 사업을 하기 위함이었읍니다. 「시므온」과 「레위」에 대한 「야곱」의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라고 한 말의 진실성은 얼마나 신기하게 확립되었읍니까!

47, 48. (ㄱ) 이것은 토지분배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에서도 「시므온」과 「레위」에 관하여 어떻게 사실입니까? (ㄴ) 두 형제의 그러한 계속적인 분리는 무엇을 강조합니까?

47 이것은 하나님의 임하는 왕국 하에 있을 「에스겔」의 토지 분할에 관한 예언적인 환상 중에서도 사실입니다. 「레위」지파의 성원들은 여호와의 성소 주위의 『거룩히 구별할 땅』에 위치하였읍니다. 「시므온」 지파는 거룩히 구별할 땅의 남쪽으로 분리되었으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접경인 「베냐민」 지파의 바로 다음 밑으로 있읍니다. (에스겔 48:8-14, 22, 24) 그래서 「시므온」은 그 땅의 정부와 직접 접촉하지 않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에스겔」의 정부 중심지에 환상 즉 여호와 「삼마」(『여호와 자신 그 곳에 계시다』라는 의미)라고 하는 성읍의 환상에 있어서 「시므온」과 「레위」의 문들은 서로 한면에 연하여 있지 않으며, 「시므온」의 문은 일곱째며 서쪽이지만, 「레위」의 문은 북쪽으로 세째입니다.—에스겔 48:31, 33; 353면 참조.

48 이러한 계속적인 「시므온」과 「레위」의 분리는 분기에 넘치어 혹독하고 맹렬한 일에 같이 행동하는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승인치 아니하시는 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49. 제사장 「비느하스」는 그가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 하였으며, 그는 무엇을 맡을 가치가 있음을 표시하였읍니까?

49 「레위」지파의 제사장 「비느하스」는 약속된 땅에서 바로 「요단」강을 건너 「모압」평지에서 그가 행한 행동으로써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표시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압」의 땅들과 부도덕적이며 우상 숭배적인 관계를 갖기 시작하였을 때, 「시므온」지파의 족장 「시므리」가 뻔뻔스럽게도 우상 숭배하는 이방 여자 「미디안」 족장 「고스비」의 공주를 데리고 「이스라엘」 진중을 통과하여 성적 쾌락을 갖고자 자기 천막으로 들어갔읍니다. 이렇게 행한 것이 「시므온」 사람이라고 「레위」인 「비느하스」가 이것을 승인하였읍니까? 「레위」가 저주받은 행위를 「시므온」과 협동하여 행하였듯이 그가 「시므리」와 협동하였읍니까? 아닙니다! 그보다도 「비느하스」는 「시므온」인의 천막에 창을 가지고 쫓아 들어가 「시므리」와 그의 이방 여자 친구를 둘다 죽였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숭배를 위한 이 질투 때문에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는 「레위」인으로서 그가 제사직분을 맡을 가치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였읍니다.—민수 25:1-15.

50, 51. (ㄱ) 영적 「이스라엘」에 「레위」지파가 있는 것은 그 지파의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시므온」과 「레위」에 관한 「야곱」의 예언은 우리로 무엇이 생각나게 하며, 이면에 있어서 영적 「이스라엘」의 성원들은 어떻게 죄를 범하였읍니까?

50 영적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를 나란히 하는데 있어서, 「시므온」은 일곱째이며 「레위」는 여덟째 입니다. (351면 참조) 「레위」라는 한 지파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이 지파의 12,000명이 온 영적 「이스라엘」의 제사직분을 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그런것이 아니고 144,000 전원이 제사장들입니다. 144,000 전원이 제사장이라는데 관하여 기록된 것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계시 20:6) 그러므로 이름 「레위」는 제사직분과 다른 그 무엇을 생각나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시므온」도 동일합니다.

51 「야곱」의 임종 예언이 「시므온」 및 「레위」와 관려하여 생각나게 하는 것은 혹독한 노염과 맹렬한 분기에 토로구를 주어 칼을 잔해하는 기계로 사용하는데에 저주가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영적 「시므온」과 「레위」지파를 형성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전쟁이나 혹은 심지어는 개인적으로 복수하거나 혹은 가족의 이름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러한 무기를 분노하여 맹렬하게 사용하며, 그들의 동료 인간들을 살해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의 성원이 되었고 그러한 저주받은 습관은 잊어버렸읍니다.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은 『육체의 일』이라는 것을 알며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갈라디아 5:19-22.

52, 53. (ㄱ) 아직 땅 위에 있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잔해하는 기계에 대하여 어떠한 행동을 취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어떤 지파의 사람들이 안전하게 협동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2 19세기 전, 새 「예루살렘」의 열두 사도적 기초들이 아직 땅 위에 있었을 때, 오늘날 국제 연합이 악용 하여온 이사야 2:4의 예언적인 말씀을 그리스도인 자신들에게 적용시켰다는 증거를 우리는 가지고 있읍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시므온」과 「레위」지파에 속할지도 모르는 땅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영적 「이스라엘」의 전 십이지파 중 땅에 남은 적은 남은자이며(잔해하는 기계와 살인하는 무기의 사용을 포기하고) 이사야 2:4에 의하여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 성귀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영적 「시므온」과 「레위」지파는 개성을 변화시켰읍니다. 비록 영적 「이스라엘」이 서로 연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현재 로마서 12:17-19(신세)을 순종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협동하며 일하는데 신뢰할 수 있읍니다.

53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 . .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유다」

54. 「유다」는 왜 「야곱」으로부터 책망을 기대하였을 지도 모르며, 그러나 그의 사건은 어찌하여 「유다」에게 비난을 가져오지 않게 되었읍니까?

54 다음으로 「야곱」의 첫째 아내 「레아」의 소생인 그의 네째 아들로서 죽어가는 아버지의 주의를 당연히 받게 되는 사람은 「유다」였읍니다. 그도 자기의 전 며누리 「다말」과의 부지중에 저지른 사건 때문에 책망을 기대하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창부나 혹은 신전 창녀와 음행하는 대신에, 그가 게을리한 것을 수행하도록 교묘한 꾀에 걸렸읍니다. 그것은 즉 과부인 「다말」에 대한 「레위」인 결혼a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 있어서 「유다」는 자기 아들 「셀라」와 「다말」의 죽은 남편 「엘」을 대신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말」이 낳은 「유다」의 쌍둥이 아들들은 음행의 아이들이 아니며 성서도 그들을 불명예스럽게 말하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그 중의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한 조상인 「보아스」가 「룻」을 자기 아내로 취하였을 때 백성들은 「보아스」에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룻)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룻 4:12; 창세 38:6-30.

55. 의심할 여지 없이 「야곱」은 「유다」에 관하여 무엇을 기억하였으며, 「유다」에 관한 어떠한 말로써 「이스라엘」에 관한 무슨 문제를 결정하였읍니까?

55 그러므로 죽어가는 「야곱」은 「유다」를 반대할 것으로, 이 사건을 들출 이유가 없었읍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야곱」은 「유다」가 「요셉」 죽이는 것을 어떻게 반대하며 또한 「요셉」의 형제인 「베냐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존하고 어떻게 훌륭히 노력한 것과 심지어 「베냐민」을 대신하여 「애굽」에 노예로 있겠다고 어떻게 자신을 제공한 것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창세 37:26; 43:8-10; 44:18-34) 그러므로 「히브리」 예언의 시적 형태로 「야곱」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장래 통치권 문제를 말하였으며 마침내 결정하였읍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웅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할 것이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창세 49:8-12, 신세.

56.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야곱」은 그 뜻을 「유다」에게 어떻게 적용시켰으며, 동시에 그의 형제들과 원수들 사이의 대조를 어떻게 표시하였읍니까?

56 「레아」가 그의 이 네째 아들의 탄생에 관하여 여호와를 찬미 즉 찬송하였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유다」라고 불렀읍니다. 그것은 『찬송함 찬송[의 대상]』을 의미합니다. (창세 29:35) 「야곱」은 그 이름을 뛰어나게 하였으며, 임종에 재하여 이름을 지닌 「유다」에게 그것을 적용하였읍니다. 그의 열한 아들들은 그의 성품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그가 바칠 봉사에 관하여 그를 찬송할 것입니다. 물론 그의 대적들은 그를 찬송하지 않을 것입니다마는, 적어도 스스로는 아니지만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의 손이 원수의 목을 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그는 승리를 걷울 것이며 그의 원수들이 도망하게 만들거나 굴복하게 만들 것입니다.

57, 58. (ㄱ) 「유다」의 형제들은 어떠한 면에 있어서 그에게 절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까지도 지휘권이 「유다」지파를 위하여 보전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합니까?

57 그의 형제들이 그를 어떻게 찬송 할 것인가에 관하여 말한다면, 이것은 비단 입의 말로서만이 아니라, 그에게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으로써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열 한 형제들은 모두 자기 아버지의 아들들이지만, 자기는 제외하고 단지 다섯명만이 자기 어머니 「레아」의 아들들이었읍니다. 그의 형제들은 장자인 「르우벤」에게가 아니고 「유다」에게 절하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그의 형제들이 그를 상급자와 통치자로 인정하게 될 것을 의미하였던 것이다. 특별한 때에 그와 그의 형제들은 「애굽」을 다스리는 「바로」의 국무총리인 「요셉」에게 엎드려 절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살았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내무에 관한 한, 「요셉」을 포함한 형제들은 「유다」에게 절하도록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유다」지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었으며, 백성들이 절하게 될 통치자가 「유다」지파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었읍니다.

58 후일에 역대 상 5:2은 이 문제를 잘 말하였읍니다. 『왜냐하면 「유다」 자신이 자기 형제들 중에서 더 뛰어났음을 증명하였기 때문에 인도할 자가 그에게서 나왔다. 그러나 장자의 권리는 「요셉」의 것이었다.』(신세) 이것과 일치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요셉」의 사망 후 노예가 되었던 「애굽」으로부터 그들을 구출하셨을 때, 광야를 통하여 약속된 「가나안」복지로 행진을 인도한 것은 바로 「유다」지파였읍니다. (민수 2:3; 10:12-14) 열두 명의 정탐이 약속의 땅으로 먼저 가서 살피고 보고하게 되었을 때, 약속의 땅으로 재차 살아 들어갈 수 있었던 충성스러운 두명의 정탐 중의 한 사람인 「갈렙」을 낳은 것은 바로 「유다」지파였던 것입니다. 이 「갈렙」은 「유다」지파에 배당된 땅의 부분을 정복하는데 활동적으로 일하였읍니다. (민수 13:6, 30; 14:6-10, 38; 여호수아 15:13-20; 14:6-14) 정복한 땅의 할당을 위하여 제비를 뽑았을 때 「유다」에게는 첫 배당이 주어졌읍니다. (여호수아 15:1) 땅을 찾이하기 위하여 정복할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가 지휘하도록 임명하셨읍니다. (사사 1:1-8) 그 때 「유다」지파의 족장은 「살마」였으며 그는 「다윗」의 증조부가 되었읍니다. (역대 상 2:10, 11; 룻 4:20-22; 마태 1:5, 6) 약속의 땅에서 「유다」 구역은 사해의 서쪽의 전체 해변과 서쪽으로 지중해까지 널려있었읍니다.

59. 「유다」지파는 사자새끼와 같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였읍니까?

59 그러므로 「유다」지파는 삼림의 짐승 중의 한 마리의 사자와 같았읍니다. (미가 5:8) 족장 「야곱」은 모두가 적합하다는 것을 알고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다」지파는 「이스라엘」 나라의 영원한 왕조 즉 왕가를 마련하였읍니다. 「다윗」은 이 왕조의 머리가 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가족 중에 영원한 왕권을 주시겠다고 그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유다」지파는 사자 새끼와 같았을찌 모릅니다. 그때에 「베냐민」지파의 「사울」왕은 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으며, 거인을 죽인 「다윗」은 「사울」왕의 군대의 한 장교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고의적 불순종 때문에 「사울」의 가족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왕권이 계속하지 못하도록 결정하셨읍니다. 그리하여 주전 1070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후에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유다」지파의 「다윗」을 그들의 왕으로 삼았읍니다.

60, 61. (ㄱ) 「다윗」은 어떻게 자기 지파의 이름에 합당하게 살았으며, 그는 예수 그리스도와 어떠한 관계를 가졌읍니까? (ㄴ) 우리 독자들은 「야곱」의 예언을 더 살펴보기 위하여 무엇을 기다려야 합니까?

60 그리하여 「야곱」의 예언은 대규모적으로 성취되었읍니다. 그 예언은 「유다」의 형제들이 그를 찬송하며 그에게 절한다는 것이었읍니다. (사무엘 하 4:5–5:5) 국가적 인도자로 마련된 「유다」지파의 「다윗」은 대체적으로 말하여 찬송을 받을만큼 행동하였읍니다. 그는 「야곱」이 예언한 것과 같이 모든 백성들의 연합된 순종이 속하는 임하시는 왕의 예언적 모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상, 「다윗」은 예언된 분 예수 그리스도의 현저한 조상이 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통치할 통치권을 상속하셨던 것입니다.—누가 1:26-33.

61 그러나 모든 백성의 순종이 속하는 이분께 관한 「야곱」의 예언을 더 살펴보기 위하여 우리는 『「유다」자파의 사자」와 함께한 동료 통치자들』이라는 기사의 출판물을 기다려야 합니다.

(1962년 10월 1일의 「파수대」기사를 보십시오.)

[각주]

a 죽은 자의 형제가 과부된 형수에게 장가들어 형의 가문을 위하여 자손을 남기게 하는 결혼.

[351면의 도표]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야곱’의 열두 아들의 도표

첫 아내 레아 야곱 첩 실바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디나) 갓 아셀

(1) (2) (3) (4) (9) (10) (딸) (7) (8)

둘째 아내 라헬 야곱 첩 빌하

요셉 베냐민 단 납달리

(11) (12) (5) (6)

(므낫세) (에브라임)

[353면의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에스겔’의 환상의 거룩히 구별할 땅과 십이 지파—(에스겔 48:1-28)

단 (1)

아셀 (2)

답달리 (3)

므낫세 (4)

에브라임 (5)

르우벤 (6)

유다 (7)

우두머리

거룩히 구별할 땅

우두머리

베냐민 (8)

시므온 (9)

잇사갈 (10)

스블론 (11)

갓 (12)

지중해

요단강

사해

애굽강

북

동

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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