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요한 1:1, 2로 돌아가서
58.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의 마지막에서 「요한」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떠한 이해를 갖도록 하여줍니까?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의 마지막에서도, 사도 요한은 우리가 똑 같은 이해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께로서 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한 미국인 번역」은 요한의 편지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아무도 죄를 짓지 아니하며, 하나님께로서 나은 자가 그를 보호하며, 악한 자가 그를 건드리지 못한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한편 온 세상은 악한 자의 권세 안에 있는 줄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오셨으며 참되신 그를 인식하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셨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 . . 참되신 그와 연합하여 있다.』 어떻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 . . 그는 참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다. 친애하는 자녀들아, 우상에서 떠나 있으라.』—요한 1서 5:18-21, 한 미국인 번역, 개역 표준역 영문참조.
59. 요한 1:1의 여러 가지 번역들은 어떻게 되어 있읍니까? 그러나 이제 우리는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읍니까?
59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되시는 그분께서는 참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로서 나은 자이시며 하나님의 다른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자이시니, 번역을 달리하는 요한 1:1, 2를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겠습니까? 여러가지 번역들을 읽어보면 이러합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다른 번역들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말씀(the Logos)은 신성이셨다.』 어떤 번역들은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god)이셨다.』고 번역하였습니다. 다른 번역들은 『그리고 말씀은 한 하나님이셨다.』고 하였읍니다.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에 관한 「요한」의 기록을 여러 가지로 살퍼보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러한 여러 번역 중 어느 것이 정확한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읍니다.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60. 따라서 일반적으로 번역한 요한 1:1, 2에 관하여 「카운트 레오 톨스토이」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60 먼저 널리 보급되어 있는 「흠정역」이나 「듀웨이」역을 살펴 봅시다.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같은 이분이 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여기에 「카운트 네오 톨스토이」에 의한 「일치하게 번역된 사복음서」로부터 인용할 가치있는 몇줄의 글이 있읍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읍니다.
만일 시초에 이해 즉 말씀이 계셨다면 그 말씀이 하나님께 대하여 혹은 하나님과 함께 혹은 하나님을 위하여 계셨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셨다고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그분이 하나님이었다면 하나님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 입장에 설수는 없을 것이다.a
진실로 사도 「요한」은 어떤 분(『말씀』)이 다른 어떤 개인(『하나님』) 과 함께 계셨으며 동시에 다른 개인(『하나님』)이셨다고 말하는 정도로 비이치적인 분은 아니었읍니다.
61. (ㄱ)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명한 이상, 말씀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올바로 말할 수 있읍니까? (ㄴ) 계시록 19:13을 보건데, 요한 1:1은, 최상으로 해서, 말씀에 관하여 무엇을 의미하여야 합니까?
61 「요한」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일일 것입니다. 말씀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하나님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도 「요한」의 기록의 다른 부분에 의하여 증명한 것과 반대 될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 즉 계시록 19:13에서 「요한」은 그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고 말하였읍니다. 그의 이름을 『말씀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점에 유의하십시오. 따라서 요한 1:1은, 최상으로 해서, 말씀이 하나님의 것이었음을 의미하여야 합니다.
62. 『교부복음』이라는 책은 요한 1:1을 아마 사실은 어떨 것이라고 말합니까?
62 우리는 여기에 「로슬린 디온스톤」에 의한『교부(敎父)복음—제 이세기에 존재하였던 성 복음의 영어 번역』이라는 서적을 손 가까이 가지고 있읍니다. 표제면은 이 사본이 어떻게 함께 편집되었는가를 알려줍니다. 이 번역은 요한 1:1을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God)이었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난외주에 『여기의 참된 기록은 아마, 하나님의(of God)로 되어 있을 것이다. 비판 주석을 보라.』—118 면.
63. 번역자들은 말씀이 누구인간에 관하여 희랍어 사본 요한 1:1의 날말들을 왜 일치하게 번역하지 못합니까?
63 자 그러면 번역자들은 말씀이 무엇이었는가에 관하여 왜 『하나님(God)』 혹은 『하나님(god)』 혹은 『한 하나님(a god)』이라는 불일치를 보이고 있읍니까? 그것은 『하나님(God)』이란 희랍어 낱말이 술어(述語)에 속하여 있는데도, 그 말의 처음에 나와 있을 뿐 아니라, 그 앞에 정관사 더(the)를 가지고 있지 않는 까닭입니다. 다음에 이것을 실증하기 위하여 우리는 첫줄에 제 사세기의 「안샬」자체로 된 사본에 의한 희랍어 성귀의 처음 몇줄을 싣고, 다음으로 둘째 줄에는 오늘날의 영어로 어떻게 철자되어 있는가를 싣고, 세째 줄에는 낱말 하나에 대한 영어 번역을 싣겠읍니다. 『하나님』이란 희랍어 『약자』에 유의하십시오.
ΕΝ ΑΡΧΗ ΗΝ Ο ΛΟΓΟΣ ΚΑΙ Ο ΛΟΓΟΣ
EN ARKHEI ĒN HO LOGOS, KAI HO LOGOS
IN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ΗΝ ΠΡΟΣ ΤΟΝ ΘΝ ΚΑΙ ΘΣ ΗΝ Ο ΛΟΓΟΣ
ĒN PROS TON THN, KAI THS ĒN HO LOGOS.
WAS WITH THE GOD, AND GOD WAS THE WORD.
ΟΥΤΟΣ ΗΝ ΕΝ ΑΡΧΗ ΠΡΟΣ ΤΟΝ ΘΝ
HOUTOS ĒN EN ARKHEI PROS TON THN.
THIS WAS IN BEGINNING WITH THE GOD.
64. 「믈」교수가 인용하였듯이 「웨스트코트」주교는 앞에 정관사 더(the)가 없는 하나님이란 단어가 무엇을 표시한다고 말하였읍니까?
64 두번째 『하나님(GOD)』 앞에 정관사 더(THE)가 생략되어 있는데 유의하십시오. 이 생략에 관하여 「믈」교수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데오스 엔 호 로고스」(theós ēn ho lógos)에서 정관사를 생략하는 것은 단지 관용어적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나서 다음 항에서와 같이 「믈」교수는 말을 이었읍니다.
그 반면에 네번째 복음 전도자 [요한]가 이 단어 순서를 택할 필요가 없었으며 그가 그것을 택한 것은 어떤 애매한 점을 자아내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자체에 그 뜻이 표시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교] 「웨스트코트」의 주석은 관용어에 대한 다른 부가적인 참조가 요구되고 있지만, 그러나 아마 필자의 신학적 의사를 표시할 것이라고 하였다. 「즉 「데오스」는 말씀의 성격을 묘사하며 그의 위(Person)를 묘사하지 않으므로 정관사 없어 (「호 데오스」가 아니라 「데오스」라고)야 할 것이다. 『말씀은 「호 데오스」였다』고 말하는 것은 순수한 「사벨리안」주의일 것이다. 이 표현이 성격의 열등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말씀의 참된 신격을 확실케 해준다.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에 대한 회화적 진술 5-27과 비교하라.(hóti huiòs anthrópou estín . . . )」
65. 「웨스트코트」주교가 말한 것을 보고 어떤 번역자들은 요한 1:1을 이떻게 번역하였으며, 이것은 말씀을 누구로 묘사합니까?
65 유명한 그리스도인 성서의 「웨스트코트」와 「호트」 희랍어 교본의 공동 저자인 고인 「웨스트코트」주교는 『그리스도의 참 인간성』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이 아니라 결합체로서 소위 신성 인간(God-Man)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주교가 희랍어 낱말 「데오스」 앞에 정관사 더(the)의 생략된 「데오스」란 단어는 그의 위를 나타내는 것보다도 『말씀의 성격을 묘사』하는 형용사 같은 역할올 한다고 말하는 것에 유의하십시오. 이 사실은 어떤 번역자들이 이것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말씀은 신성이었다.』 이것은 말씀이 하나님이었다는 것과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었다고 하는 것과는 같지 않읍니다. 한 문법가는 말씀이 『하나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견해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고 말씀은 신격(deity)이었다』라는 글귀로 번역하였읍니다. 삼위일체 신봉자들에 의하면 말씀은 단지 하나님의 삼분의 일에 지나지 않으며 셋으로 된 하나의 하나님에 있어서의 동등한 제이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기록한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그러한 가르침이 얼마나 거짓된 가르침 즉 삼위일체 신봉자들 자신들도 이해할 수 없으며 설명할 수 없는 가르침인가를 증명해줍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두번째 위가 아닙니다.
66, 67. (ㄱ) 「토레이」의 번역은 요한 1:1을 어떻게 인쇄하였읍니까? (ㄴ) 「엠파틱 다이아글롯」은 어떻게 인쇄하였읍니까?
66 「씨 · 씨 · 토레이」의 사복음은 「호」(정관사)가 있는 「데오스」(하나님)과 「호」가 없는 「데오스」 사이의 차이를 표시하여 그의 번역을 다음과 같이 인쇄하였읍니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God)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god)이었다.』 (1947년 재판)
67 1764년의 「벤쟈민 월슨 의 「엠파틱 다이아글롯」은 다음과 같이 그의 번역을 인쇄함으로써 차이를 표시하였읍니다. 『그리고 「로고스」(Logos)는 하나님(GOD)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로고스」는 하나님(God)이었다.』
68. (ㄱ) 삼위일체 신봉자들은 말씀에 관하여 무엇을 표시하는 방법으로 인쇄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이제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68 그러한 방법으로 인쇄된 번역들까지도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신 인간 이전의 존재의 말씀이 신성을 가지고 계셨었지만, 하나님 자신이거나 하나님의 일부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서도 최초로 신성을 가지신 그러한 하나님의 아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에게 시편 82:1-6의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인간 재판장 혹은 『하나님들』(신들)이라고 불리웠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요한 10:34-36.
『하나님의 아들들』
69. 「제세니우스」의 「히브리」어 문법은 「히브리」어 성서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69 「히브리」어 성서는 창세기 6:2, 4; 욥기 1:6; 2:1 그리고 38:7에서 『하나님의 아들들』 (「베네이 하-엘로힘—beneí ha Elohím」)을 말합니다. 「제세니우스」의 「히브리」어 문법 418면, 2항을 보면 그러한 성경 귀절을 해설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단체 혹은 사회 [혹은 족속 혹은 어느 일정한 계급의]의 성원을 명시하기 위한 「벤」 「ben—『의 아들』] 혹은 「베네이」 [beneí-『의 아들들』]의 다른 사용법이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6:2, 4; 욥기 1:6; 2:1; 38:7의「베네이 엘로힘」 [beneí Elohím—『하나님의 아들들』—son of God]이나 「베네이 하-엘로힘」[beneí ha Elohím]—『하나님[son of God]의 아들들』은 (또한 시편 29:1; 89:7과 「베네이 엘림」 [beneí Elím]과도 비교하라.) 아마 하나님(들)(gods)의 아들들을 의미하지 않고 「엘로힘」 혹은 「엘림」의 반열의 존재를 의미할 것이다. . . .
그리고 이어서 이 문법은 열왕기 상 20:35의 『선지자들의 아들들』에 대한 「히브리」어 표현을『선지자들의 집단에 속하여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설명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3:8의 『향품 장사의 아들』을 『향품 장사의 집단의 하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말하고 있읍니다.—아모스 7:14도 참조.
70. 「코헬러」와 「바움 카트너」에 의한 구약 성경 사전은 「제세니우스」의 「히브리」 문법과 어떻게 일치함을 표시합니까?
70 「코헬라」와 「바움 가트너」에 의한 구약 성경 사전은 「제세니우스」의 「히브리」어 문법과 일치하고 있읍니다. 이 사전 1951년 판 134면, 1단, 12와 13행에는 먼저 「히브리」어 표현이 있고 다음에 독일어와 영어로 그 뜻이 인쇄되어 있읍니다. 거기에는 『베네이 엘로힘—BENEI ELOHIM) (개체) 신성의 존재(divine beings), 하나님들(gods)』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그 다음에 51면, 1단, 2와 3행에, 『베네이 하-엘로힘(단수) 하나님들(BENEI HA-ELOHIM the [single] gods) 창세기6:2; 욥기 1:6; 2:11; 38:7』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71. 시편 8편에서 「다윗」은 하늘의 천사들을 무엇이라고 불렀으며, 그래서 여러가지 번역들은 시편 8:5을 어떻게 번역하였읍니까?
71 시편 8:4, 5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육신이 될것인가를 예언적으로 말하였으며 천사들을 하나님의 「엘로힘」 즉 『하나님들』 (신들)이라고 부릅니다. 82:1, 6에 나오는 동일한 말을 사용합니다. 「흠정역」 즉 「제임스 왕역」을 읽어보면 다음과 같읍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히브리서 2:6-9 은 이 말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하여 어떻게 그가 「천사보다 못하게」되시어 육신이 되셨는가를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한 미국인 역」은 시편8:5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읍니다. 그것을 읽어보면 이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를 하나님(God)보다 조금 낮게 만드셨읍니다.』 「에스 · 티 · 바잉그톤」의 「시편 책」은 『그리고 당신이 그를 하나님(God)보다 조금 부족하게 만드셨읍니다.』라고 번역하였읍니다. 「모」역을 읽어보면 이러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를 신성(divine)보다 조금 못하게 만드셨읍니다.』
72. 「신 세계역」은 시편 8:5을 어떻게 번역하였으며, 그 번역은 왜 다신교를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까?
72 「신 세계역」은 이러합니다. 『당신께서 또한 그를 하나님 같은 자들보다 조금 못하게 만들기 시작하셨읍니다.』 이 마지막 번역은 다신교나 많은 하나님들을 숭배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왜 그렇지 않읍니까? 왜냐하면 「히브리」어 성서가 실제 이러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엘로힘」 즉 『하나님들』(신들)이라는 칭호를 남자들에게나 천사들에게 적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히브리」어 성귀는 「유대」인들에게 다신교를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73, 74. (ㄱ)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은 한때 무엇이었으며, 그들은 이 세상과 나라들에 대하여 무엇이 되었읍니까? (ㄴ) 「바울」이 고린도 전 8:5, 6에서 가르친 것이 왜 다신교가 아닙니까?
73 성경은 마귀 「사단」으로 자신을 변화시킨 영적 피조물이 원래 이 『하나님의 아들들』 즉 『하나님 같은 자들』 곧 「엘로힘」 중의 하나였었다고 가르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또한 「사단」 밑의 악귀들이 된 영들도 한때 이 『하나님 같은 자들』 중에 헤아림을 받았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사단」을 『이 세상의 신 (하나님-the god)』이라고 불렀으며 이방인의 나라들이 영적 악귀들을 그들의 하나님들(신들)을 삼아 그들에게 희생을 바쳤다고 말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고린도 후 4:4; 고린도 전 10:20, 21,흠정 참조.
74 「바울」이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하나님들-gods)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라고 말하였으나 그렇게 말함으로써 다신교를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부가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8:5, 6)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숭배하신 같은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즉 『한 하나님 곧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에게 이 숭배를 바칩니다.
75. 「신 세계역」은 요한 1:1-3을 어떻게 번역하였으며, 그것은 무엇을 배경으로 그렇게 하였읍니까?
75 사도 「요한」이 가르친 모든 것과 성경의 모든 귀절을 배경으로 하여 성서의 「신 세계역」은 요한 1:1-3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God)과 함께 계셨다. 그리고 말씀은 한 하나님(a god)이었다.이분이 시초에 하나님(God)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들은 그를 통하여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를 떠나서는 한가지도 존재하게 되지 않았다.』
76. (ㄱ) 다른 모든 창조물들을 존재하게 하시는데 사용되셨기 때문에 말씀 즉 「로고스」께서는 하늘에서 어떤 분이셨음에 틀림이 없읍니까? (ㄴ) 연사가 한 말과도 같이 말씀은 무엇이며, 그는 어떠한 등급을 가지고 계십니까?
76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을 존재하게 하는데 사용하신 말씀 즉 「로고스」는 「히브리」어 성서가 「엘로힘」 즉 『하나님들』(신들)이라고 부르는 다른 모든 천사들 가운데서 우두머리이시며 첫태생이셨읍니다. 아무런 다른 대행자나 협조를 빌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몸소 직접 창조하신 단 한분이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불리웠읍니다. (요한 3:16, 흠정, 미표, 「듀웨이」 참조) 만일 말씀 즉 「로고스」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살아있는 첫 피조물이 아니라면, 누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아들이며, 어떻게 이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의 가족 중에서 첫 피조물로서 영광을 받으셨고 사용되셨읍니까? 우리는 말씀 즉 「로고스」이신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연사가 하는 말과 같이 말씀 즉 「로고스」는 하나님의 창조물이시며 하나님의 첫 창조물이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에 거슬리게 행한 땅의 공평치 못한 재판관들이 성서적으로 『신들』(하나님들-gods-elohim)이라고 불리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공정한 재판장으로 임명하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베풀어진 말씀 즉 「로고스」께서는 성서적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간 재판장들보다 더 능하십니다.
『말씀』
77. 그의 『말씀』이라는 칭호는 그가 무엇임을 표시하며, 그것은 「이디오피아」의 어떤 관리를 연상하게 합니까?
77 『말씀』이란 그 칭호 자체가 하나님의 아들들 가운데 그가 우두머리 되신다는 것을 명시합니다. 우리는 여기 1768, 1769, 1770, 1771, 1772, 그리고 1773년의 「「나일」강의 근원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가운데서 「제임스 부누스」가 묘사한 「이디오피아」사람 「칼 핫제」를 연상합니다.
「칼 핫제」라고 이름하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항상 격자(格子) 창문간에 있는 계단에 앉아있었다. 거기에는 안이 초록색 호박단의 휘장으로 덮여진 조그만 구멍이 있었다. 이 휘장 뒤에 왕이 앉는다. 그는 이 구멍을 통하여 그가 의회에 말해야 할 일을 알린다. 그리고 그는 일어서서 정보대(情報合) 「하이데르트」에서 소식을 받는다 . . . 낯설은 사람이 방에 있을 때 그는 왕의 목소리 혹은 말씀인 「칼 핫제」라고 불리우는 관리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였다 . . . 왕이 하는 공개적인 이러한 전시는 어느 때에도 백성들의 연상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 것 같다. 간혹 그의 발을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아무도 그의 얼굴이나 심지어 그의 일부분마저 볼 수 없다. 그는 「발코니」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며 그곳은 격자 창문과 휘장으로 둘려있다. 청중에게나 공개적인 기회에 있어서 까지도 그의 얼굴을 가리우며 재판할 때에도 그러하다. 반역죄의 재판에서 그는 「발코니」에 앉아 그 안에서 구멍을 통하여 말한다. 그때 『왕의 소리 즉 말씀』이라는 「칼 핫제」라는 관리에게 말을 한다. 그를 통하여 그는 질문이나 혹은 발생되는 여러가지 일들에 관한 것을 제판장들에게 전달한다. 재판장들은 회의 석에 앉아있다.
78. 한 공화국의 대통령을 백성의 혀라고 부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78 이것은 1961년 9월 12일 자의 「뉴욕 타임스」지에 게재된 『「인도네시아」 백성들의 우상—『「스카르노」』라는 제목의 기사를 연상시킵니다. 그의 사진 밑에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혀』라는 전설이 있읍니다. 그리고 기사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 . 거의 틀림없이 연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첨부할 것이다. 『만일 내가 죽으면 그 때 내 무덤에 금문자로 「「인도네시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며 의사이자 기술자 「스카르노」각하께서 여기 누워 있다」라고 쓰지말고, 단지 「「인도네시아」 백성들의 혀」 「카르노 붕」(형제)가 여기 누워 있다』고 기록하라
그를 『혀』라고 부른 것은 그가 온 백성을 대신하여 말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79. (ㄱ) 출애굽 4:16은 비슷한 상징적인 말을 「아론」에게 어떻게 사용하였읍니까? (ㄴ) 「유대」인들에게 하신 어떠한 말씀으로써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표시하셨읍니까?
79 성경 출애굽 4:16은 상징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모세」에게 그의 형제「아론」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는 백성들에게 대하여 너의 대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너에게 입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그에게 대하여 하나님을 대신케 될 것이다.』 (흠정) 하나님 같은 「모세」를 대신하는 대변자인 「아론」은 그를 위한 입으로서의 구실을 하였읍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말씀 즉 「로고스」도 그러하셨읍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예수께서 대변자이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말씀하신다는 것을 설명하여, 예수께서는 또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고 말씀하셨읍니다.—요한 7:16, 17; 12:50.
80.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주의를 돌려본 바와 같이 요한 1:1, 18; 20:28에 관하여 이제 무엇을 인식할 수 있읍니까?
80 하나님의 다른 어떠한 피조물도 점유하지 못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입장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요한 1:1에 『그리고 말씀은 한 하나님(a god)이었다.』고 기록한 이유를 인식할 수 있읍니다. 또한 요한 1:18의 「요한」의 기록도 인식할 수 있니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희랍어 사본 가운데 기록된 것과 같읍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an Only Begotten God)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는 천적 아버지를 우리에게 해설해 주신 홀로 하나의 『독생 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도마」가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말의 올바른 의미를 인식할 수 있읍니다.—요한 20:28.
81.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땅 위에 혈육이 되신 으뜸가는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81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 하나님의 우주적 대변자이시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매우 적절하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우두머리 증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말씀 즉 「로고스」가 혈육을 가진 피조물인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을 때, 증거하는 일은 그의 으뜸가는 목적이었읍니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 앞에 서서 생명의 재판을 받게 되셨을 때 육신이 되신 말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한 18:37.
82. 그러므로 계시록 3:14; 1:5의 말씀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었읍니까?
82 하나님의 우두머리 중인으로 땅에 계셨을 때의 기록을 보건데, 하늘의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께서는 계시록 3:14에서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시초 이신 이가 이런 일들을 말씀하셨다.』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읍니다. (흠정) 그 때문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계시 1:4, 5)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우두머리가 되십니다.
83. (ㄱ)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을 행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요한」과 같이 행함으로, 우리는 무엇이 될 것입니까?
8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하늘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광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가 말씀하시는 것을 잘 듣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실 때 그것은 마치 여호와 하나님께서 몸소 말씀하신 것과 진배없기 때문입니다. (계시 19:13) 영광스럽게 되셨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의 목소리에 청종함으로써, 우리가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 그의 목소리를 알고 들으며 그의 목소리에 응함으로써, 우리가 그의 『양』임을 증명하게 됩니다. (요한 10:3, 4, 16, 27) 우리가 그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우리의 거하는 곳에 그를 받아들인다면, 그는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영적 식사를 같이 하실 것입니다. (계시 3:20) 영감받은 어떤 그리스도인 성경 필자보다도 사도 「요한」은 증인들과 증거하는 일에 관하여 더 많이 기록하였읍니다. 만일 우리가 「요한」처럼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의 음성을 청종한다면, 우리 역시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되어, 사람들을 자유케 하며 하나님의 의로운 신 세계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케 하는 진리를 증거할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말씀이 누구신가를 우리에게 알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각주]
a 「조화되었고 번역된 사복음」의 30면 2항으로 인용함. 「레오 원어」교수로 말미암아 원래의 「러시아」어로부터 번역된 것임. 「뉴욕」주 「뉴욕시」 「월리」서적회사가 1904년에 저작권을 소유하여 발행함. 저자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종교철학자인 유명한 「카운트 레오 톨스토이」임. 주후 1910년에 사망.
[연구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