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 창조물”에 복종함
1. 오늘날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그 자유를 잃을 수 있읍니까?
자유민들은 그들의 자유를 남용하거나 이기적이며 불법적인 행동을 위한 구실로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오늘날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자 여호와 하나님의 원수의 두목인 『이 세상의 통치자』 마귀 「사단」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들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들입니 다. (요한 12:31, 고린도 후 4:4, 신세) 이 사람들은 비진리와 무식과 미신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고 그는 이렇게 부언하셨읍니다. 『죄를 범하 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한 8:31, 32, 34-36) 그러한 제자들은 인간의 거짓 전통과 인간을 노예화 하고 그들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꼭 매어놓은 이 세상 철학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읍니다. 그들은 올바른 일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죄의 종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방종해지므로 자유를 남용하고 그들의 이기적인 불법을 은폐하기 위하여 자유를 사용한다면, 자유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죄의 종이 되고 악의 종이 될 것입니다.
2. 자유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참다운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인체 하는 자들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2 그리스도인인체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를 남용합니다.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들은 그들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인도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현명합니다. 자유를 남용하는 것은 현존하는 인간의 제도와 어려운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언제 그리고 누구에게 「베드로」는 그의 첫째 편지를 보냈으며, 그들의 주소를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읍니까?
3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그의첫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표시된 바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릅니다. 주후 62-64년 즉 사도 「바울」이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 거의 같은 시기에 「베드로」는 소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써 보냈읍니다. 그곳은 지금 「터어키」에 속하여 있지만 그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일부분이었읍니다. 「베드로」는 그 당시 그곳에 살고 있는 그리 스도인들을 영구적 거주자라거나 그 지방의 동네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라고 하지 않고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에게라고 하였읍니다.―베드로 전 1:1.
4, 5. (ㄱ) 그들이 단순히 나그네라는 것은 더욱더 그리스도인들로 무엇을 남용하지 못하게 하였읍니까? (ㄴ) 그들이 외국인이며 나그네인 까닭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편지하였읍니까?
4 그들은 단순히 『나그네』였으므로 더욱 그들의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남용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들이 사실상 속하지 않은 지방에서 올바로 이해되거나 올바른 대우를 받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 17:14-16) 오늘날의 참다운 그리스도인들 즉 헌신하고 침례를 받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은 사람들은 「터어키」와 이 세상 기타 여러 곳에서 나그네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새로운 질서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 3:13) 그들은 「베드로」가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들의 자유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라고 편지한 말에 잘 유의하고 있읍니다. 그 편지는 이러합니다.
5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모든 인간 창조물]을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 이다.]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베드로 전 2:11-17,신세.
6. 왜 『위에 있는 왕』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할 참다운 이유가 없읍니까?
6 여기에 왕이란 누구입니까? 여기에 이 왕이 보낸 방백이란 누구입니까? 「베드로」가 그의 편지를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하였으니, 『위에 있는 왕』이라는 「베드로」의 표현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머리이 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것입니까? 그렇게 생각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베드로」는 그의 첫째 편지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일이 한번도 없었읍니다. 「베드로」의 가장 가까운 암시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된 그리스도인들이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나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즉 그들이 왕—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전 1:2, 2:9)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왕이라고 말하지 않았읍니다. 「베드로」는 그를 항상 주라고 말하였읍니다. 이것은 베드로 후 1:11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귀절은 이러합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a
7. 「베드로」는 『왕』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안 혹은 밖 어느 왕에게 적용하는 여부를 어떻게 암시합니까?
7 그렇다면 베드로 전서 2:13, 17에 언급되어 있는 『왕』이란 누구입니까?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도 아니시요 『영원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과 왕을 대조하여 말하였읍니다. 이 왕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하였을때,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어느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냈읍니까 그리스도인 회중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였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로마」 황제와 그에게 예속된 왕들과 총독들이 있는 바깥 세상 사람들에게 였읍니까?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것이 회중 안에서의 그들의 행위에 관한 것이었읍니까? 혹은 회중 밖인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의 그들의 행위에 관한 것이었읍니까? 「베드로」는 그의 편지 첫귀절에서 그들을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서가 아니라 소 「아시아」의 「로마」 여러 도시에 있는 『나그네』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베드로」는 위에 있는 왕과 방백들에 관하여 이야기 하기 바로 전에 외국인과 나그네로서의 그들의 신분을 상기케 하고,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행악자들이라는 거짓 비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 9. 그 때 「베드로」는 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가 이 편지를 쓴 것은 왜 특히 시기에 적절하였읍니까?
8 그것은 그리스도인 회중밖이었읍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그의 편지를 보내고자 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속하여 있지 않으나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 세상의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제도와 밀접하게 접촉하는데 있어서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말하여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편지에서 그가 말한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제국 전역을 통하여 이교인들에게서나 혹은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서 박해를 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그의 편지를 쓴 것이 주후 62-64년경이었다면 그 때는 「예루살렘」에서 「로마」 제국을 대항하는 「유대」인들의 폭동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 됩니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66년이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유대」인들을 통하여 얻게 되었으며, 그당시 그리스도인들의 본부는 「예루살렘」에 있었읍 니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들을 잘 구별하지 못하였읍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권세들에게 대하여 좋지 않은 행동을 한다면 이교인들은 그들과 폭력적인 「유대」인들을 더욱 혼돈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9 더나가서 주후 64년은 「로마」시가 그 무서운 대화재의 재난을 막 당하게 되었을 때였고 「네로」 황제는 일반적으로 호평을 받지 못하고 오해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비난함으로써 이 무서운 우연 발생의 화재 책임을 자신으로부터 회피하고자 할 때였읍니다. 「로마」 제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부당한 행위를 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로마」시에 불을 지른 방화자라는 의심을 받게 할 이유가 있었겠읍니까?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바로 적절한 때에 영감받은「베드로」는 선견지명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적 정부 아래 있는 「로마」 제국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10, 11. (ㄱ) 그리스도인들이 순복해야 할 『인간 창조물』은 어디 있읍니까? (ㄴ) 어떻게 그리고 누구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 창조물』이 존재하게 됩니까?
10 따라서, 베드로 전 2:13-17은 우리의 주의를 사도들과 감독자들과 봉사의 보조자들이 있는 회중 안이 아니라 회중 밖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돌리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우리에게 『〔모든 인간 창조물〕에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2:13, 신세) 여기에서 「베드로」는 모든 영적 혹은 거룩한 창조물이라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랬다면, 그것은 고린도 후 5:17, 갈라디아 6:15, 에베소 2:10, 4:24 그리고 골로새 3:10에서 영적 피조물이라고 말한 바와 같은 하나님의 조직 안에 있는 창조물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인간 창조물』이란 인간 개인이나 혹은 한 집단에 의하여 혹은 그들을 위하여 세워졌거나 마련되었거나 산출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야심적인 인간이라든가 상원이나 민의원과 같은 입법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인간 왕은 「바벨」 즉 「바벨론」 성읍의 건설자였읍니다. 그는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인 「니므롯」이었읍니다. (창세 10:8-10) 물론 「니므롯」은 자신을 인간피조물로 창조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왕의 직무를 창조 혹은 기초 놓았읍니다.
11 입법부인 민의원이나 정부의 국무 위원이 정부의 어떠한 지위를 맡을 사람을 만들지는 않읍니다. 그러한 민의원이나 위원이 만드는 것은 단순히 사람이 차지하게 될 직무 혹은 관직인 것입니다. 그것은 직무 혹은 관직을 나중에 차지하게 될 사람을 만들지는 않읍니다. 한 사람이 그러한 직무 혹은 관직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 지위에 속하여 있는 명칭을 받게 되면 그는 인간의 민의원이나 위원이 만든 창조물이 됩니다. 그는 『인간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니므롯」은 그의 추종자들의 도움을 받은 자신의 행동으로 이 땅에서 처음 왕인 한 『인간 창조물』이 되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다른 나라들에 있는 왕들도 그들의 직무 혹은 임명이 인간에 의하여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인간 창조물들입니다. 그러한 왕들에 의하여 임명되는 총독들도 역시 인간 창조물입니다.
왕에게나 총독에게
12. 그들은 누구 때문에 복종하며, 그를 위하여 어떻게 복종합니까?
12 「베드로」는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 . . 그의 보낸 방백』이라고 열기하므로 『모든 인간 창조물』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합니다. 그러한 왕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바로 그를 가리켜서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무엇인가를 직접 행하지 않고 그를 위하여 『모든 인간 창조물』에 복종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그를 위하는 것이 됩니까? 왜냐 하면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어떠한 모독이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라든가 세상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 되기를 원치 않읍니다. 그들은 법을 잘 지키는 주민이 됨 으로써, 그리고 「가이사」에게 속한 것을 「가이사」에게 바침으로써 그들의주께 명예를 돌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누가 20: 25.
13, 14. (ㄱ) 어떤 사람들은 「왕」이란 표현을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ㄴ) 「왕」으로서의 그러한 『인간 창조물」이 『위에 있는』 곳은 어디며 누구에게 대하여 그러합니까?
13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베드로」가 말한 「로마」제국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한 왕이란 그 당시의 「로마」황제인 「네로」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모」역이나 미국역과 같은 현대 성경 번역은 『최고로서의 황제』라고 하였고 「신 영어 성경」 (신약)은 『최고로서의 주권자』라고 번역하였읍니다.
14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헤롯 아그립바」 1세나 그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2세 그리고 「나바태」의 「아레다」는 왕이라고 불리웁니다. (사도 12:1, 25:13, 24; 26:1, 2; 고린도 후 11:32) 왕 혹은 황제와 같은 그러한 『인간 창조물』이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 서는 위에 있는 자라거나 최고자가 되지 못합니다. 거기에서는 그가 최고 지상자이신 여호와 하나님보다 위일 수 없으며, 주이시자 회중의 머리가 되시고 회중이 그의 몸인 예수 그리스도보다 위일 수 없읍니다. 그러나 바깥 마귀의 조직에 있어서 왕은 그 지방의 최고자이며, 황제는 제국의 최고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단」 마귀가 통치자이자 신으로서 이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이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여야 합니다. 왕 혹은 황제는 그가 보낸 방백들보다 위에 있읍니다. (요한 13:16) 그러나 특히 그에게 복종하는 백성들보다는 더욱 위입니다. 그러므로 그 왕 혹은 황제에게 바치는 존경은 방백들에게 바치는 것보다도 더 높읍니다.
15. 왕을 존경할 때 우리는 또한 누구를 존경하여야 하며, 「베드로」의 말을 빌린다면, 왕이 그들을 보내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15 물론 우리가 왕이나 황제를 존경한다면 또한 그의 대표자 즉 『그의 보낸 방백』을 존경함으로써 그것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제 왕이 이들 인간 창조물 즉 이 방백들을 보낼 때 악을 촉진케 하고 무질서와 혼란과 도덕의 부패와 사업의 파멸과 침체를 가지기 위한 것입니까? 왕이 방백들을 보내는 것은 해롭고 악의 적인 목적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라!고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그는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그들 자신의 나라의 법률 혹은 임명된 직책에 따라 「본 도」와 「압바도기아」와 「갈라디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 그리고 기타 지방으로 방백들을 보내서 두게한 목적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16. 그리스도인들과 관련하여 「로마」 제국의 방백들의 사명 혹은 기능은 무엇이었읍니까?
16 이러한 방백의 사명은 특히 「로마」 제국의 멀리 떨어져 있는 식민지와 관련하여 그러하였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러한 방백들은 식민지에서 다만 폭동만을 유발케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법률과 질서를 유지하도록 보냄을 받았읍니다. 그들이 보냄을 받은 것은 특별히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거나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맺지 않고 『육체의 일』을 돌이켜 행하며 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바와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방백들은 물론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을 징벌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행악자가 되었으며 기독교의 불충실한 본을 보였기 때문인 것입니다. 방백들은 단순히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그들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교훈에 불순종하고 행악자가 된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일반적으로 행악하는 자들을 징벌하였읍니다. 방백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이 적들에 의하여 거짓 고발을 당하였을 때에는 재판의 혜택을 갖도록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방백들을 보내서 일하게 한 특별하고도 전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부당한 형벌을 주기 위한 것이아니었읍니다. 방백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까지 할 수 있었읍니다.
17. (ㄱ) 방백들의 사명은 기독교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었읍니까? (ㄴ)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종교에 좋은 칭찬을 얻고자 구하는 것은 무슨 생각에서 입니까?
17 왕이나 「로마」 황제가 방백들을 보낸 것은 기독교를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신들을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 여부를 막론하고 어떠한 사람은 그 지방에서 질서있고 법을 잘 지키는 주민이며 유익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방백으로부터 찬양을 받거나 인정을 받을 수도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인의 좋은 행실은 그가 실천하고 있는 종교 즉 기독교에 좋은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백이 법을 잘 준수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어떠한 칭찬을 한다는 것은 「로마」에 살고 있는 이들 『나그네와 행인』의 종교인 기독교에 대하여 간접적으로 상을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악행으로 인하여 그들 위에 임하는 형벌로 고통을 받는 것보다 그들의 종교 때문에 칭찬을 얻고자 한다면, 그들은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바는 무식하게 그들을 비난하는 자들로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 리게 하려』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2:12)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오해 때문에 그들이 『선한 일』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악을 행하는 자로 잘못 비방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들의 그러한 나쁜 말 때문에 왕의 방백들이 반드시 혹은 절대로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에게 형벌을 가할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읍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18. 「베드로」가 문제를 다룬 방법에 의하면,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복종한다는 것은 왜 위험한 것이 될 수 없읍니까?
18 만일 「베드로」의 말이 이 낡은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위험한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사도가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할 수 있었겠읍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 믿음과 실천에 대하여 위험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도 왕과 그의 방백들에게 순종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베드로」는 그와 같이 복종하는 것이 왕들과 방백의 세상에서 영적으로 『나그네와 행인』들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복종은 목적이 있읍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 2: 15)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보다도 왕들과 방백들을 더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데까지 왕과 그의 방백들에게 순종하면서 동시에 『선행』을 할 수는 없읍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인들은 왕들과 방백들에게 복종하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계명을 어기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기독교를 알고자하지 않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지는 못합니다.
19. (ㄱ) 그리스도인들이 행하여 칭찬을받게 되는 『선』이란 무엇입니까? (ㄴ) 무엇을 위하여 그들은 그렇게 행하며, 그들의 복종은 강제적인 복종입니까?
19 그러므로 선을 행한 사람이 방백으로부터 『선』에 대한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방백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바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며 그리스도인의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직접적으로 지적되었다거나 명시되어 있지않았다 하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종류의 선을 안전하게 행할 수 있읍니다. 영적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유민입니다. 그들은 『주를 위하여』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위하여 사도 「바울」이 한 바와 같이 행하여야 합니다. 즉 이방인이나 「유대」인을 하나님 나라편으로 얻기 위하여 이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나 창조물에 대한 종이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9:19-23)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 백성들의 인정하고 순종하는 인간 창조물에 순종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베드로」가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하라.』고 말한 바와 같이 행하는 것이 됩니다. (베드로 전 2:16) 그리스도인들은 자유롭게 자진적으로 복종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해치지 않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고난을 당하지 않도록 돕습니다.
자유와 존경
20.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무엇을 행할 자격을 부여하지 않으며, 만일 우리가 그렇게 행한다면 방백들은 어떻게 행하지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까?
20 「베드로」의 생각은 우리에게 명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우리로 하여금 정치적 정부를 무시하게 하거나 그들이 마치 안중에 없는 것 같이 생활하게 하므로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반대되지 않는 것들까지도 거절하게 하지 않읍니다. 그와 같은 불손한 행동은 다만 우리로 고통을 당하게 할 뿐입니다. 왜냐 하면 우리는 아직도 이 낡은 세상에 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의로운 신 세계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권리는 도덕적인 악을 피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치적 방백들까지도 우리가 도덕적인 악을 행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우리를 행악자로서 정당하게 처벌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남용하여서는 안됩니다.
21.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인간 창조물에 순종하라는 것은 단 한가지 무엇을 의미할 수 밖에 없읍니까?
21 우리가 스스로 복종하는 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요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땅하다고 「베드로」가 말한 것으로 보아, 그가 의미하는 것은 다만 한가지 뿐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과 같은 인간 창조물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절대적이거나 무제한 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상대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그들의 비열한 종들이 되게 하지는 않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로 머물러 있으며 하나님을 우리의 한 주인으로 순종하며 그리하여 다른 주인들로부터는 자유함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복종하지만 결코 정치적 왕이나 황제나 방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며 종노릇 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읍니다.
22. 우리가 인간 창조물에 대하여 복종하는데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서는 안될 것입니까?
22 그리하여, 우리가 자진적으로 지혜롭게 복종한다면, 그들이 다만 인간이며 정죄된 이 세상에 속하여 있다하여 멸시하는 마음으로 그 창조물들에 복종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올바로 취하여야 할 태도를 이렇게 알려줍니다. 『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공경하라.』—베드로 전 2:17.
23, 24. (ㄱ) 그리스도인들이 회중의 성원들에게 바치는 존경과 밖의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존경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읍니까? (ㄴ) 왜 우리는 외부의 『모는 사람들』을 존경하여야 하며 어느 정도로 할 것입니까?
23 그리스도인들이 회중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존경은 물론 회중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회중 밖에 있는 책임있는 정치적 지위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그와 같이 존경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공적인 존경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에 대하여 다만 공적인 존경 이상의 것을 바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은 사랑 즉 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형제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 13:34, 35) 존경하는 문제에 관하여 로마 12:10은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회중에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들로부터 먼저 존경을 구하지 않읍니다.
24 그러나 우리는 회중 밖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 세상 사람을 무시할 수 없읍니다. 우리는 그들이 백성의 대표자로서 가지고 있는 지위에 따라 그들에게 마땅히 존경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물론 그들의 『만세』를 부른다거나 그들을 우상화하여 신으로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바치는 존경은 다만 상대적이요 동시에 「베드로」가 말한 대로 『하나님』 즉 참다운 하나님 여호와를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다음에 오는 것이 우리의 현재의 의무인 『왕을 공경하라』는 것이며, 따라서 그가 보낸 방백들을 존경하는 것입니다.
종들과 아내들
25, 26. (ㄱ) 「베드로」가 인간 창조물에 대한 상대적 복종을 의미하였다는 것은 어떻게 더 명백하게 됩니까? (ㄴ) 사환에 관하여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5 우리가 「베드로」의 첫째 편지를 읽어보면 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인간 창조물』에 복종하는 것은 다만 상대적이요 일정한 범위에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더욱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읍니까? 왜냐 하면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또 복종해야 할 다른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경우들입니까? 그것은 종들과 아내들의 경우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여러 가지 정치적 정부의 형태 아래 탄생된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종이 된다든가 아내가 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에 크게 달려 있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26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누구에게?)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베드로 전 2:18-20.
27. (ㄱ) 이것은 종들의 순종이 단지 상대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시합니까? (ㄴ) 종들에게 임하는 고통은 단지 무엇 때문에만 임하여야 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27 사환 즉 종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양심에 의하여 계속 인도되기 때문에 그들의 주인에 대한 복종은 상대적인 복종 이상의 것이 될 수 없읍니다. 이것은 특히 선하거나 이치적이 아니고 까다로운 비그리스도인 주인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 사환 즉 종이 양심적으로 다하는 대도 불구하고 그러한 주인들은 학대를 할지 모릅니다. 또는 그들의 그리스도인 양심 때문에 그러한 주인이하라고 명령하는 도덕적으로 나쁜 일이든지 불경건한 짓을 하지않으므로 사환 즉 종들이 부당한 형벌을 받지 않으면 안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오는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이 부당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 사환 즉 종은 그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는 도망을 한다든지 말대꾸를 하고 싸워서는 안됩니다. 그는 주인에게 올바로 복종함으로써 그것을 견디어야 합니다. 그가 그렇게 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이 되는 법입니다. 그것은 그 종이 고착하고 있는 기독교에 어떠한 나쁜 영향도 가져오지 않읍니다.
28, 29. (ㄱ) 그리스도인 종은 그러한 고통 중에 어떠한 위안과 인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베드로」는 이 본이 되는 행동을 어떻게 묘사하였읍니까?
28 까다로운 주인의 손아래 지나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가운데서 그리스도인 사환 즉 종이 따라야 할 본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 본으로부터 그는 크나큰 위안을 얻을 수 있읍니다. 이 본은 그보다 더 크신 분 즉 그 자신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제공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완전한 본을 말함으로써 고통을 받는 그리스도인 종들을 어떻게 위로하였는가에 주의 하십시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9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울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 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베드로 전 2:21-25.
30. 이 본에 관하여, 유의하여야 할 주요점은 무엇이며, 이점은 왜 중요합니까?
30 그리하여 기독교의 지도자에서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신 이상 그의 제자들이 그와 비슷한 고통을 부당하게 받는 것으로부터 피할 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주의하여야 할 중요한 점은 지도자께서는 그 것을 아무런 불평없이 견디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우리도 그의 본을 따르기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서와 같이 아무런 불평이나 위협이나 비난도 없이 그러한 부당한 고통을 받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서 까지도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불의와 부당한 고통을 견디는것 만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31, 32. (ㄱ) 그때 「베드로」는 누구에게 교훈을 돌렸으며 왜 돌렸읍니까? (ㄴ) 이들이 무엇을 하라고 「베드로」는 교훈합니까?
31 「베드로」는 『하나님을 생각하므로』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리스도인 종들을 격려하고 위로한 후에 부당한 학대보다도 더 나쁜 경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복종해야 한다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비그리스도인 남편과 결혼한 그리스도인 아내들입니다. 어떤 면으로 종들처럼 아내들은 남편을 발림(baalim) 즉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호세아 2:16; 출애굽 21:22; 신명 22:24; 잠언 31:11, 23, 28)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믿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 남편으로부터 별거를 하든가 이혼을 하라고 충고하기는 커녕 종의 경우와 같음을 다시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32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더욱 문자 그대로 두려움(Phobos)을 가지고〕 정절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 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베드로 전 3:1-6.
33, 34. (ㄱ) 이 아내의 순종은 어떠한 것이며, 그로부터 어떠한 좋은 결과를 거두어들일 가능성이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아내들에게 「베드로」는 누구를 본으로서 지적하며, 특히 그들은 누구처럼 단정할 것입니까?
33 그리스도인의 종의 경우와 똑같이 그리스도인 아내들도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고려함이 없이 그들의 주인에게 절대 복종을 할 수 없읍니다. 아내의 복종도 단순히 상대적인 것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양심적 고려가 균형 잡히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일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을 떠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대로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아내가 입의 말로서가 아니라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의 행실로써 자기 남편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있겠읍니까?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베드로」는 아내의 복종의 본으로서 이혼한 여자나 『여자의 권리』와 남자와의 동등권을 주장하는 이 세상 여자들을 들지 않고 옛날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을 지적하였읍니다.
34 「베드로」는 아내들에게 아내로서 행동하는 방법에 관하여 「사라」로부터 교훈을 받은 「사라」의 딸들처럼 행하라고 교훈하였읍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을 자기의 남편인 주로서 인정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자유와 안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생명을 보호할 것을 요구하였을 때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였읍니다. (창세 12:11-20; 20:1-14) 「사라」는 이와 같이 그의 남편에 복종함으로써 자신과 남어지 모든 인간 가족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는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이삭」의 가 되었으며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의 할머니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아내도 역시 그의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으며 남편에 대하여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한 것을 보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가지고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다만 그 자신의 구원 뿐만 아니라 자기 남편과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게 할 수 있읍니다.
35, 36. (ㄱ)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모두 무엇에 복종할 의무가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할 것입니까? (ㄴ) 이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보호책이 되며 유익이 됩니까?
35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인 우리 모두가 다 인간 종이나 아내들이 아니므로 모두 그러한 범위에 복종하여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으로 이 낡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정치적 정부 아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정부들이 계속 존재하게 하시는 한 우리는 『주를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인간창조물』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베드로」나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세상적 정치 기관에 복종하는 것이 다만 상대적인 것이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교훈된 그리스도인 양심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점 을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게 하였읍니다. 그러한 상대적 복종을 할 때, 우리가 이 세상 통치자들에게 마땅한 존경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들과 황제들과 방백들에게 복종하는 사람들의 노함을 피하게 됩니다.
36 우리의 상대적 복종은 다만 그러한 사람들을 기쁘게 할 뿐 아니라 특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로 정치적 음모에 가담하게 하는 일 이라든가 이미 권세 잡은 자들에 대한 반란에 가담하는 일을 피하도록 보호해 주는 것이 될 것이며 심지어 우리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할 때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전 파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적들은 무기를 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것 외에는 아무결함도 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없으며 우리에 대하여 증거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7. 우리 모두는 지금 도처에서 무엇을 행할 것이며, 어디에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복종은 절대적 인 것이 될 것입니까?
37 우리가 어떠한 인간 아래 어디에서 살고 있든지 간에 우리는 항상 선을 행할 것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입 니다. 하나님의 큰 날의 우주 대전 후에 올 그의 의로운신 신세계에서 우리는 우리의 주이시자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통치되는 하나님의 나라 즉 이 땅을 완전히 지배하게 될 유일한 정부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복종할 명예와 즐거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사도 2:14, 34, 36; 10:34, 36; 11:2, 16, 17; 15:7, 11; 베드로 전 1:3; 3:13, 3:15; 베드로 후 1:1, 2, 8, 14, 16; 2:20; 3: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