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63 2/15 63-72면
  •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롯」과 「소돔」과 「고모라」
  • 우리를 위한 하나의 실례
  • 기독교국에 신앙없음
  •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세운다
  •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 현대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
  • 우리의 믿음을 분석함
  • 각자는 믿음을 실천하여야 한다
  •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 구출받아 신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 당신의 종교적 습관은 무엇인가?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6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믿음이 요구된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3
파63 2/15 63-72면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너희가 . . .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극장 안에서와 같이] 구경거리가 되고.”—히브리 10:32, 33, 신세.

1.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는 왜 견고한 믿음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누가 본이 되시는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믿고 전도하는 것 때문에 욕을 먹으며 고문을 받으며 공중의 구경거리가 되는 고통을 견디기에는 정말 믿음이 요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그들의 성실을 깨뜨리지 않기 때문에 받는 대우를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충성스럽게 옆에서 수수방관 하기에는 정말 꿋꿋함을 요한다. 그들의 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견디셨다. 그는 말씀하셨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마태 24:13) 예수께서는 친히 대속으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되시기 전에 그러한 장엄한 믿음을 전시한 사람들을 알고 계셨다. 그들의 믿음에 관한 기록은 히브리서 제 십일장에 오늘날까지 하나의 증거로서 서 있다. 믿음은 그리스도인 이전의 사람들이 표시한 과거지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표시하여야 할 일이다. 오늘날 가르치고 있는 모든 현대적 견해와 과학적 지식 그리고 학설을 직면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2. 기독교국의 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진퇴 양난에 직면하는가?

2 서방 세계 즉 기독교국에서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아주 쉽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를 믿는가?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그에게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이 멸망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기 위함이다.]』 (요한 3:16, 신세) 하나님께 대한 대부분의 『신자』들은 그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은 할 것이나, 동시에 인간의 진화론에 대한 믿음도 표현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진화를 믿는다면,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인간 창조와 인간 죄로의 타락과 죽음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창조의 성경 기록을 믿지 않는다면, 도대체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을 실천할 이유는 무엇인가?

3, 4. (ㄱ) 어떤 교직자들은 성경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는가? (ㄴ) 「해석자의 성경」 해설은 성경에 대한 믿음을 격려하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3 목사들이 성경의 창조 기록은 신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게 그리 드문일은 아니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그 가르침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인간 창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1961년 8월호 「레드부크」(Redbook)지는 『우리의 장래 목사들의 놀라운 믿음』이라는 제목 하에 이렇게 말하였다. 『「캘리포오니아」의 감독교회 주교 「제임스 에이 · 파이크」 성직자가 최근에 그리스도 처녀 탄생의 성경 기록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였을 때 미국의 많은 교회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원시적 종교신화라는 것이다. . . . 종교적인 다른 신화들을 이름하라고 부탁을 받자 「파이크」감독은 「아담」과 「하와」와 「에덴」동산을 말하였다.』 이 교직자가 「아담」과 「하와」의 기록을 배척한다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세상의 죄를 제거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의 희생이 필요없을 것이다. 「파이크」씨는 자기가 성경 기록에 영감을 주신 분보다도 더 큰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를 믿는가 하나님인가 혹은 단순한 인간인가?

4 「오스트레일리아」의 신문 「픽스」지는 1950년 10월 21일호에서 영국 「버밍함」의 「반스」주교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보도하였다. 『구약은 「민속과 결함있는 역사이며, 반 야만적 도덕」으로 가득차 있다.』 교직자가 성경을 배척한다는 것을 표시하는 다른 진술은 『처음에』라는 쪽지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이러하다. 『족장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수백년 동안 입으로부터 입으로 전하여진 다음에 기록되었다. 그것들이 때때로 모순된 것을 발견하고 놀랄 필요는 없다. 창세기에서 말한 것과 같이, 모든 것을 믿어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께서 친히 「소돔」과 「롯」의 도망한데 관한 성경 창세기 기록을 언급하셨드라도 기독교국의 많은 목사들이 하나의 『신화』로 말한다고 놀랄것은 없다. 「해석자의 성경」 제 626면 창세기 제 십구장 밑의 해설은 이러하다. 『이 이야기는—아마 신화적인 배경을 가진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이야기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 (「스키너」 창세기 311-12면 참조)—「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곳에 정착했을 때 추측컨데 「헤브론」으로 흘렀을 사해 근처 아마 서단에 한때 서 있었던 한 도시의 멸망에 관한 것일게다.』 성경 비평가들은, 그렇다, 오늘날의 많은 교직자들은 「롯」에 관한 성경 이야기는 신화적인 배경을 가진 것이라고 말하지만, 예수께서 이 성경 이야기가 신화라고 믿으셨는가? 천만에! 그는 자기 사도들에게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17:32) 당신은 예수와 고등 비평가들 중 누구를 믿겠는가? 우리로 말한다면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분은 『전에 기록한』 것을 믿으셨다.

5. 거룩한 기록들에 관한 사도 「바울」의 견해는 어떠하였는가?

5 「바울」이 이렇게 기록한 것은 (주후) 56년 경이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로마 15:4) 오늘날 「소돔」과 「고모라」의 성경 기록은 우리에게 어떠한 소망을 주고 있는가?

「롯」과 「소돔」과 「고모라」

6, 7. (ㄱ) 「롯」이 살았던 「소돔」에 존재한 상태를 묘사하라. (ㄴ) 그 천사들은 그 성읍의 장래와 「롯」의 장래에 관한 어떠한 교훈을 주었는가?

6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였으며 「소돔」 성읍에 거주하였었다. 주전 약 1919년 어느날 저녁 사해 서쪽 「헤브론」 근처 「마므레」의 「아브라함」을 이미 방문한 두 천사가 『「싯딤」골짜기 곧 지금 염해』에 위치한 「소돔」시에 왔다. (창세 14:3) 아마 그것은 지금 염해의 동남 구석일 것이다. 「롯」은 「소돔」의 성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천사 방문객을 자기집으로 초청하였으며 그들을 강권하여 하루밤 머무르게 하였다.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창세 19:4-7) 이 「소돔」 사람들은 두 남성 방문객을 그들의 성적 쾌락에 사용하고 싶어하였다. 「롯」은 거절하였다. 그래서 폭도들은 노하였다. 만일 천사들이 「롯」을 집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지 않았다면, 「롯」은 파멸을 당하였을 것이다.

7 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에게 아침 일찍 그 악한 성읍을 떠나라고 강요하였다. 그 천사들은 「롯」에게 말하였다.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그러므로 「롯」은 떠날 차비를 하였다.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그리고 나서 「롯」과 그의 가족은 이러한 말을 들었다. 『도망하여 [영혼]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세 19:13-17, 신세.

8, 9. 「소돔」의 종말에 관한 예언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가?

8 「롯」은 죽고싶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산 영혼을 보존하시도록 하나님께 청하였다. 그러나 지시된 바와 같이 산으로 올라갈 수는 없었다. 그가 말하였둣이 근처의 한 성읍으로 도망하여 그 곳에서 『내 [영혼]이 보존되리이다.』 하고 허락을 간청하였다. 그들은 「소알」 성읍으로 급행하였으며,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세 19:18-26.

9 그러나 「롯」의 아저씨는 어떠한가?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창세 19:27, 28.

10. 「아브라함」은 「소돔」의 멸망을 염려하였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10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을 때 「아브라함」은 「롯」의 안전을 염려하였을 것임에 틀림 없다. 전날에 「아브라함」은 만일 열 사람이 좋은 일을 행한다면 그 성읍을 구하여 주시도록 여호와께 간청하였다. 그러나 「소돔」에는 심지어 열명의 의로운 사람도 없었음에 틀림 없다. 그래서 멸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세 19:29.

11.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의 기록을 왜 믿어야 하며 믿음을 가져야 하는가?

11 당신의 성경 창세기 십팔장과 십구장에 이에 관한 모든 기록을 읽어보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매우 견고하여서 「소돔」이 하나님의 지시로 멸망되었고 「롯」과 그의 두 딸들은 「소알」에 안전히 도달하였다는 것을 믿는가? 예수께서는 믿으셨다. 왜냐 하면 그는 이것을 일어난 일로 언급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누가 17:28-30.

우리를 위한 하나의 실례

12. 예수께서는 「소돔」과 「노아」의 날의 성경 이야기를 어떻게 사용하셨는가?

12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전체 이 악한 세상 사물의 제도인 현재의「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될 때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고대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예수께서 자기의 충성스러운 추종자들이 그의 재림하고 계시는 동안에 일어날 일들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도우시며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신 역사적 실례 중의 하나다. (누가 17: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세우시기 위하여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부가적인 참다운 역사를 주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누가 17:26) 예수께서는 이러한 실례로써 그들과 우리의 마음에 무엇을 인상깊게 하려 하시는 것일까? 구출이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 위하여는 그들이 이 낡은 세상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부분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 시대에 「롯」과 그의 두 딸들로 전영된 백성들의 한 반열인 큰 무리가 존재한다. 우리는 갑자기 멸망에 처할 운명을 가진 이 낡은 세상으로부터 그들이 도피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들은 「롯」이 『내 생명을 구원』하여 주시도록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인애를 인식한다. (창세 19:19) 이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마련에 따라 안전을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현 「소돔」에서 도망하는 것을 의미한다. 정하여진 종말에 처한 이 낡은 세상으로부터 시급히 도망하라.

13, 14. 우리는 누구처럼 되기를 원치 않으며, 따라서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13 「롯」의 아내와 같이 되지 말라. 그 여자는 서서 돌아다 보았으며 소금으로 씌워져서 소금 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그 여자는 「소알」에 결코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롯」과 그의 두 딸들은 갔다. 그곳은 그들의 안전 지대였다. 「롯」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때문에 그는 견디어냈다. 오늘날 선의의 백성들은 이 환란의 때와 「아마겟돈」 전쟁을 통과하며 의로운 하나님의 신 세계로 들어가기 위하여 동일한 견고한 믿음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들은 계속 주의 기도로 기도하여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또한 땅 위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그 기도는 응답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 하에 완전한 안전과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마태 6:9, 10, 신세.

14 오늘날 이 왕국을 정말 구하고 있는 선의의 백성들은 그들의 영혼을 가지고 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스바냐 2:3) 그들은 감히 뒤를 돌아다 보지 않는다. 그렇지 않을진데, 그들도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일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15. 「베드로」는 「롯」과 「소돔」에 관한 성경 기록을 어떻게 보았는가?

15 마치 예수께서 「롯」에 관한 역사를 믿으셨던 것처럼, 「베드로」도 그 이야기를 믿었다. 그러니 현대 종교인들이 믿지 않으면 어떠한가? 행악자들에 관한 「베드로」의 경고와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 위에 임할 여호와의 심판에 대한 그의 확신에 귀를 기울이라. 「베드로」는 말하였다. 『하나님이 (「노아」의 날에)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 . . (그들을) 심판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히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식구를 보존하시고 . . .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여호와]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베드로 후 2:4-9, 신세) 「베드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행하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믿었다. 그가 이것을 믿은 때는 이것을 기록한 주후 약 64년 경이었고 「소돔」의 멸망이 있은지 1,98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기독교국에 신앙없음

16, 17. 기독교국에 어떻게 믿음이 없는가를 표시하라.

16 예수께서 언급마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많은 현대적 목사들은 「롯」에 관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그들이 예수를 어느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종교인들은 「베드로」도 대수롭게 생각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도 이 세상 종말에 존재하게 될 상태를 묘사할 때 「소돔」에 대해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어 성서를 공부하며 연구하는 정직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에 포함되어 있는 진리를 분별하게 될 것이머 그들의 믿음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왜냐 하면 『산 영혼을 보존함에 이르』기 위하여는 『믿음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히브리 10:39, 신세.

17 그리스도 예수께 관한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견고한가? 당신의 믿음에 의한다면, 그는 존재하셨는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셨는가? 당신은 그가 인류로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가? 당신은 그가 대속의 희생을 준비하셨으며 그가 없이는 어떠한 인간 피조물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믿는가? 당신은 디모데 전 2:5, 6에서 이렇게 말한 것 즉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라고 한 것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믿을지도 모르나 이 진리에 믿음을 가지고 있지않는 상당한 수의 유명한 목사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가? 예컨데, 영국의 감리교 의회 의장 「라일웨더헤드」 박사는 『나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믿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추종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지 죽임을 당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은 아니다.』고 말하였다. (「깨어라!」 영문 1958년 4월 22일호 27면) 우리가 「해리 에머슨 포스딕」과 같은 종교 지도자의 말을 들어도 전연 놀라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물론 나는 처녀 탄생이라든가 혹은 쾨쾨낡은 속죄에 관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교리를 믿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믿는 이지적인 그리스도인 목사를 한 사람도 모른다. 이들 정통파 신자들의 문제거리는 한 사람이 그들의 세워논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한 심원하고 본질적이며 영속적인 그리스도인 복음의 진리를 믿지 못하며,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 그리스도의 구주되심에 있다고 상상하는데 있는 것이다.』—「그리스도인 봉화」, 1946년 5월 9일, 11권 13호.

어떤 목사가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탄생과 속죄의 희생으로서의 그의 죽음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하여 그들은 회중 앞에 서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주장은 하는가? 그들 자신이 전연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데 다른 사람의 믿음을 어찌 세울 수 있겠는가? 연합 교회의 목사인 「디 · 알 · 키팅」과 같은 『신학박사』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다.

『나는 교회의 현재 상태에서 한 사람 특히 한 남자가 왜 교회의 성원이 되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그는 종교를 그의 생활에 있어서의 없이도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거나 사회적으로 유익하며 개인적으로 해가 없는 것으로 떨어뜨렸거나, 혹은 그가 막 들어가고자 하는 일에 관하여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아마 그가 신약을 읽고 교회에서 그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한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만일 한 평신도라면, 행길을 건너갈 수고까지 할만한 것으로 교회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위니펙」, 「캐나다」. 1961년 3월 4일부 「트리뷴」지.

목사들이 회중 앞에 서서, 그들의 설교를 듣기 위하여 왔다는 것은 소용없는 노릇이라고 말할 때 누가 차마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께 믿음 갖을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목사들은 구원의 길인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르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18. 「루터」파 주교 한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18 1960년, 3월 11일부 「뉴욕 타임스」지는 독일의 「하노베르」의 「루터」교회 주교 『올바른 성직자』 「한스 릴제」의 설교로부터 다음과 같이 전기하였다. 『기독교의 풍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시대에 와서 더 깊이 그리고 더 기본적으로 변화되었다. 우리는 비그리스도인 세계에서 모든 실용적인 목적들을 위하여 산다. 용어는 간결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반 그리스도인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비 그리스도인 시기에 있다.』 그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그는 「루터」 종교인의 한 지도자로서, 사실상 기독교국 내의 사람들은 비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교회』와 파는 기독교국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릴제」씨는 『우리는 비 그리스도인 기간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19. (ㄱ) 기독교국의 실패를 보고,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ㄴ) 믿음은 어떻게 얻는가?

19 만일 오늘날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야 말로 기독교국의 거짓된 종교로부터 나와 도피하라고 크게 외칠 때이다. 예수께서는 비록 「유대」인의 종교라는 종교 제도 하에서 탄생되셨으나, 이 종교는 물론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그 종교의 지도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비난하셨다. 몇백만이라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종교 제도 안에서 탄생된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여야 하며 기독교국으로부터 도피하여 참신이신 여호와를 섬겨야 한다. 많은 종교 교직자들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믿지 않으며 어떤 교직자들은 심지어 그리스도까지 배척한다. 그러나 「바울」은 말하였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 전 15:22) 그러므로 「바울」은 양쪽을 다 믿었다. 그러나 이 삶을 얻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나 강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가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은 사물의 보증된 기대이며 비록 보이지는 않으나 본체의 명백한 증거이다.』 (히브리 11:1, 신세) 「바울」은 이렇게 논한다. 누가 결코 그분에게 믿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구원받기 위하여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만일 누가 참다운 하나님께 관하여 들어 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는가? 그러한 믿음을 얻기 위하여는 기쁜 소식의 전도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도자가 보냄을 받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도자가 있을 수 있겠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결론을 맺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 10:13-17.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세운다

20.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잘 알고 있으며 믿음으로 받아들인 몇가지의 사실들을 이름하라.

20 바로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보았고 그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믿음을 가졌었다. 그들은 소망한 사물의 보증된 기대를 가졌었다. 그들은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셨으며, 소경의 눈을 여셨으며, 죽은 자를 일으키셨다는 것과 그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죽은자로부터 일으킴을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이 소망에 대한 어떠한 더 많은 보증을 필요로 하였는가? 그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들 위에 기초한 믿음을 가졌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지상 생애 중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안다. 우리도 사도들이 가졌었던 하나의 확실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보였으며 들렸으며 일어났던 실제적 일들의 진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바울」이 설명하듯이 우리는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죽도록 정죄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알았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 5:12)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왜 죽는가를 알며, 생명이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것을 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 6:23) 「바울」은 이것을 알았으며 그는 이것을 믿었던 것이다! 오늘날 당신은 믿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있다.

21. (ㄱ) 누가 이러한 사실들을 또한 믿어야 할 것인가? (ㄴ) 그러면 믿지 못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21 오늘날 기독교국을 대표하는 세상의 모든 교직자들도 그 믿음을 가져야 하나, 그러한 믿음을 세울 수 있는 능력은 사라졌다. 그들은 인간의 학설인 진화론과 우주 시대의 교육으로 돌이켰다. 그들에게 성경은 뒤떨어진 한 권의 책에 불과하나,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던 예수와 사도들에게 듣는 것이 휠씬 낫다. 이것은 우리의 믿음을 세워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실족케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자에게는 화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 (누가 17:1, 2) 약간의 믿음을 가졌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없는 목사들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돌이키게 되었는가! 그들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 대답하여야 한다.

22. 믿음을 버리는 자들의 운명은 무엇인가?

22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믿음을 버리는 모든 자들에게 경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 10:26, 27) 일단 지식을 가졌었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졌었으며 그를 그들의 속죄자로 받아들였던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돌아가시지는 않으신다. 만일 그들이 믿음을 바람에 날려보내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그의 아들을 배척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속죄할 마련을 하시지 않을 것이다. 남은 죄를 위하여는 더 이상 어떤 희생도 없게 된다! 여기에는 다가오는 심판, 가공할 심판이 있을 뿐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라. 믿음 없는 자는 「롯」과 그의 두 딸처럼은 도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맹렬한 멸망에 잡힐 것이다. 어떤 자들은 도망치고자 할 것이나 「소돔」의 상징적 실체 주변에서 헤맬 것이다. 그것은 마치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된것과 같다. 그리고 「아마겟돈」의 전쟁에서 다른 자들은 도망치고자 기도하다가 죽게 될 것이다.—창세 19:26; 베드로 후 3:10-13.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믿음

23, 24. 「에이취 · 지 · 웰스」씨는 초기 기독교와 주후 325년 이후의 종교와의 차이를 어떻게 표시하는가?

23 오늘의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은 책임을 져야한다. 왜냐 하면 주후 325년 이래로 조직된 종교들을 통하여 기독교국은 참다운 기독교와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찌기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에이취 · 지 · 웰스」저 「역사 대관」(The Outline of History)에는 다음과 같이 진술되었다. 『주후 325년이라는 이 일자는 우리 역사상 매우 편리한 일자이다. 그것은 전체 그리스도인 세계의 최초의 완전한 총회(œcumenical) . . . 그것은 오늘날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 교회와 기독교의 인간 사의 무대로의 확정적인 등장을 표식한다. 그것은 「니게아」 신조로 인한 그리스도인 가르침의 정확한 정의를 표식한다.

24 『우리가 독자의 주의를 이 온전히 발전된 「니게아」의 기독교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의 심원한 차이에 돌리는 것은 필요하겠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전자에 후자가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영역 외의 질문이다. 명명백백한 것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이 「히브리」 예언자들로부터 시작한 새로운 형태의 예언적 가르침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중티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성별된 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제단이 없었다. 그것은 예식이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제물은 「상심하고 죄를 뉘우치는 것」이었다. 그의 유일한 조직은 전도인들의 조직이었으며, 그의 주요 기능은 설교였다. 예수의 복음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보존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 사세기의 깃털이 다 자란 기독교는 수천년간 이미 세상에 알려진 형태인 주로 제사 종교였다. 그의 정성 들인 의식의 중심은 제단이며 숭배의 요소적인 행동은 제물이었다. 그것은 성별된 중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제사(미사)의 희생인 것이다. 보제와 사제며 주교의 급전적으로 발전하는 조직을 가졌던 것이다.』—제 삼판 522, 523면.

25. 오늘날 「니게아」의 기독교와 예수의 가르침의 차를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25 이것은 1920년의 한 역사가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는 『온전히 발전된 「니게아」의 기독교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의 심원한 차이』를 보았다. 오늘날 성경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잘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예수와 초기 사도들이 행한 바와 오늘날의 교직자들이 행하고 있는 바와의 심원한 차이를 명백히 볼 수 있다. 천구백년 이전의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이 견고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믿음이 기독교국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책인 성경은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생각되고 있으나 십계명은 단지 읽기나 할 것이지 그에 따라 살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26. (ㄱ)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결과가 임하였다고 「바울」은 말하였는가? (ㄴ) 「모세」가 여호와의 인도하에 기록한 것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26 그러나 「바울」이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귀를 기울이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히브리 10:28, 29) 당신은 「모세」의 법을 무시한 자 위에 임한 것이 『너무 심』하다고 말하는가? 당신은 「모세」가 기록한 즉 「아담」, 「롯」, 「소돔」이며 「메시야」(그리스도)가 한낱 신화에 불과하다는 자들의 말에 동의하는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찌니라 도적질 하지 말찌니라 . . . 네 이웃의 집 . . . 아내 . . . 종 . . .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고 「모세」가 기록하였을 때 그가 잘못하였다고 생각하는가? 「모세」야 말로 바로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 분이다. 그는 또한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새긴 형상을 . . . 만들어서는 안된다 . . .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이다.』(신세)라고 명령하였다. 「모세」는 이것을 돌판에다 기록한 것이 아니라 출애굽 20:1-17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를 인도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록하게 하셨던 것이다.

27. 젊은 사람 「디모데」에게 성서에 관하여 말하게 되었을 때 「바울」은 어떻게 격려하였는가?

27 「바울」은 성서 기록 배후에 여호와께서 계신다고 확신하였다. 그는 믿음에 가득차서 젊은 그리스도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바울」은 성경을 믿었다. 그는 그 가르침을 믿었던 것이다.

28. 「바울」은 믿음을 계속 지킬 필요가 있는 자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는가?

28 이 마지막 날에 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성경에 기록된 바를 믿기 위하여는 강한 믿음을 요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으며 교직자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왕국의 소식을 선포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날에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를 통하여 정부들과 믿음없는 종교 지도자들 때문에 계속 전도하는데 여간 고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훈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었다. 『전 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극장 안에서와 같이]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줄 앎이라.』—히브리 10:32-34, 신세.

현대의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

29, 30. 「베일리」 박사의 발표문과 세계 제 이차 대전 동안과 그 이후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험을 대조하라.

29 사도들 당시에 여러 천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로 빛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갔으며 「바울」이 묘사한 바를 경험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생활 방법을 배웠으며 이것은 그들에게 참다운 만족을 가져왔다. 그러나 얼마간의 반대가 이를 따랐다. 이것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하여야 할 바다. 마치 이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받고 고통 하에 큰 싸움을 견딘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오늘날 그와 같이 행하여야 한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는 쉬운 길이 없다. 연합신학교 「베일리」 박사는 기독교의 현재 상태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보도되었다. 『이 모든 세월 동안 시험받아온 것은 전연 기독교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방법으로 생활하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으며 아직까지 이에 관하여는 전연 알지 못한다 . . . 더 이상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아마 박해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더는 어떤 그리스도인들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30 우리는, 「베일리」박사가 과거 사십오년 간의 여호와의 증인들의 활동을 관찰하였는가? 하고 질문한다. 사실이다. 만일 그가 단지 신교와 「가톨릭」 종교 제도만을 봐 왔다면, 그들에게는 핍박이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힛틀러」 시대와 「폴랜드」,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하는 전 세계에서 세계 제 이차 대전 중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작은 집단은 어떠하였는가? 그리고 오늘날은 어떠한가? 동부 독일, 「폴랜드」며 「러시아」와 기독교국인 「가톨릭 스페인」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러한 곳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고난에 큰 싸움』을 견디고 있으며, 세상의 다른 부분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형무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동정』을 표현한다.

31. 여호와의 증인들은 왜 전 세계에서 고통을 견디는가?

31 예수께서는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말씀하셨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 24:13)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고통을 견디게 될 것이며, 예수께서 살아나가신 원칙을 위하여 굳게 서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비난과 환난』의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집단 수용소, 「가스」실, 굶주림과 대부분의 기독교국 내에서 투옥의 경험을 해 왔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왕국의 전도 사업은 많은 기독교국 내에서 여러해 동안 금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원하였으며 꼭 그렇게만 살아나가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살아나가기 위하여 고난의 큰 싸움을 스스로 견디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하나 같이 집단 수용소에 수용된 것은 아니며, 형무소 안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동정을 표현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에게 따르는 것 즉 박해를 기쁘게 받았다. 「거룩한 목적 아래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 여호와의 증인들의 역사에 관하여 읽어 보라. 그런다면, 당신은 독일, 희랍, 「폴랜드」, 「러시아」, 「도미니카」 공화국, 「퀴벡」, 그렇다, 세상 모든 부분에서 교직자들과 정치적 통치자들의 손으로 말미암은 박해를 그들이 견디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이러한 모든 나라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고 있다.

32.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언론의 자유를 실천하는데 있어서 기독교의 종교와 어떻게 다른가?

32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견고하여야 하며 비록 박해가 더 심하여진다 하드라도 하나님께서「바울」에게 영감을 주시여 기록하게 하신바에 귀를 기울이며 행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 [언론의 자유]를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히브리 10:35, 36) 여호와의 증인들은 박해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날의 정치적 권력이라 든가 종교적 군중 때문에 그의 입을 다물지 않으셨다. 종교가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말씀하시는 그의 자유를 빼앗기 위하여 그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이라고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오늘날의 기독교국 종교 조직은 정치적 통치자들의 시키는데로 한다. 많은 곳에서 설교자는 정부 통치자의 대변인이 된다. 교직자들은 세상 정치 통치자들에게 호감이 가는 역할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전도하는 말의 자유를 내동뎅이 처버렸다. 그리스도인은 타협할 수 없다. 왜냐 하면 「언론의 자유는 그에게 지불할 큰 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3.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국의 종교로부터 떨어져나가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렇게 하므로 그들은 누구의 본을 따르고 있는 것인가?

33 무수한 사람들이 기독교국의 거짓 종교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있다. 왜냐 하면 이들 기관은 약속을 제시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무엇을 약속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성경을 배척한다. 그들은 『바라는 사물의 보증된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진리를 구하는 자들에 관하여 말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지식과 이해를 가져왔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임박하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비록 천구백년 전에 기록되었지만 「바울」이 한 말을 믿는다.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히브리 10:37) 그리스도 예수의 도착에는 연착이 없었다. 그의 재림은 1914년a 이래로 표현되어왔다. 종말의 때는 가까왔다! 지금이야 말로 이 현대 「소돔」으로부터 나올 때이다. 마치 「롯」과 그의 두 딸들이 여러 세기 전에 악한 성을 도망해 나온 것과 같다. 하나님의 신 세계에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악마의 조직으로부터 도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며 여호와의 조직 안에서 안전을 발견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마겟돈」 전쟁 동안 모두를 위하여 안전한 곳을 마련하실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이렇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롯」과 그의 두 딸들은 믿음을 가졌었으며 「소알」에 도착하여 계속 살았던 것이다.

34.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는가?

34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참된가! (히브리 10:38)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들은 믿음에 의하여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것은 장래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가진 보증된 기대이다. 왜냐 하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장래를 말하여 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사물들이 일어나 왔으며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이 뒷걸음질치며 낡은 세상의 악한 조직으로 되 돌아갈 때가 아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를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결심굳은 사람이었으며, 마음이 굳고 위대한 믿음을 가졌었으며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힘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멸망으로 뒷걸음질치는 자들이 아니라, 산 영혼을 보존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히브리 10:39, 신세.

우리의 믿음을 분석함

35. 우리의 믿음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어떠한 질문에 대답하여야 하는가?

35 당신은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시험 혹은 난관이 일어날 때마다 뒷걸음질치는 종류인가 혹은 하나님의 말씀의 굳은 기초 위에 세워진 견고한 믿음인가? 당신의 믿음은 매우 견고하여 「너의 산 영혼을 보존」하기에 이르도록 계속하게 하는가?

36. 빌립보 4:9은 우리가 견고한 믿음을 세우도록 어떻게 돕는가?

36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편지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 4:9)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바울」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그들은 무엇을 들었는가? 그들은 무엇을 보았는가? 그들은 무엇을 받았는가? 두말할것없이 그들은 「바울」이 믿을만한 그리스도인이며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였으며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걷고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온갖 고통과 박해와 시험을 기뻐 겪으며 심지어 뒷걸음질치지 않고 죽음마저 직면하는 한 남자를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때문에 그가 겪은 경험을 포함하는 그의 편지를 읽었다. 그들은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생명을 내놓으셨다고 믿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왕이신 하나님의 왕국을 전도함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표시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로부터 배운것 중 몇가지에 불과하다. 「바울」은 많은 편지와 개인적 교제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믿음을 세워주었다. 여호와의 초기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바울」이 전도하였으며 지킨 일들을 배우고 듣고 보았으며 받아들였다. 현재는 어떠한가? 당신은 오늘낱 그리스도 예수의 충실한 추종자들로서 이러한 일들을 실천하겠는가? 만일 그렇게 행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올 것인가?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37. 오늘날 하나님의 평강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며, 적절한 사랑을 실천하는 데 첫째가는 본으로 이바지하는 분은 누구인가?

37 사람이 오늘날 하나님의 평화를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첫째로, 이 악한 사물의 제도로부터 퇴각함으로써이다. 다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온전히 당신 자신을 헌신하라. 「모세」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전적 헌신을 요구하는 하나님』이라고 기록하였다. (출애굽 20:5, 신세) 그러므로 당신은 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하여, 당신의 온 이성을 다하여, 당신의 온 영혼을 다하여, 당신의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대한 당신의 참다운 사랑을 증명할 것이다. 이에 부가하여 당신은 둘째 계명을 좇아야 한다. 즉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듯이 당신의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사랑의 가장 좋은 본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면, 가능한 한 그와 같이 되어야 한다. 당신은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를 본받고 싶어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당신은 그에 관하여 읽어야 하며 그의 생활이며 그의 사업에 관하여 될 수 있는 한 온갖 것을 발견 해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서 발견된다.

38. 사람으로 여호와의 참다운 봉사자가 되도록 자격을 주는 것이 신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는가?

38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좇기 위하여 신학교나 혹은 종교 대학의 훈련을 필요로 하지않는다. 만일 그러한 고등 교육이 필요하였다면, 「베드로」와 「요한」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두분은 건전한 이성을 가진 보통 남자였다. 그들은 진리를 인식하였고 사랑하였다. 그들은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부활되신 스승께서 왜 형주에 돌아가셨었는가를 설명하셨을 때, 그들은 뒷걸음질치는 그러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전진하여 나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오순절에 그들은 듣고 믿은 일들을 전도하였다. 그래서 성경 기록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에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말하여 준다. (사도 4:13) 사람의 정신과 열심과 헌신과 지식이 중요한 것이지 그의 학위나 벽에 걸려있는 졸업장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와 함께 있어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참다운 지식을 얻었다. 그들은 그 진리를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로 하나님의 봉사자로 자격을 구비하게 한 것은 그 당시의 대학 교육이나 「랍비」학교가 아니었다. 그들은 등록한 적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임명되었다.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이 『법의』를 입는 것은 주후 325년의 「니게아」 신조에까지 소급할는지는 모르나 그리스도 예수께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지는 못한다.

39. (ㄱ) 모든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되어야 하며, 「에이취 · 지 · 웰스」씨는 초기 기독교가 그랬다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는가? (ㄴ) 「바울」의 본은 초기 교회가 전도하는 조직이었다는 것을 표시하는가? 어떻게?

39 이 지식은 전 세계에서 성경을 사랑하는 각자에게 참다운 격려가 될 것이며 그들이 봉사를 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다. 만일 고기잡이인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될 수 있었고 자격을 구비하여 지상에서 하나님의 임명받은 봉사자로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었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사랑하며 하나님께 헌신하고 하나님의 봉사에 자기의 생명을 바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왜 똑같이 할 수 없겠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봉사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연구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각 사람은 또한 기쁜 소식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게 된다. 오늘날 기독교국의 난점은 교직자들만이 봉사자들로서 인정되고 있으며 그들 회중은 전도하는 양 무리가 아니라 듣는 양 무리가 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기독교국에서는 교직자 급과 평신도 급이 발전되어왔다. 그리고 이것은 「에이취 · 지 · 웰스」의 「역사 대관」에서 『온전히 발전된 「니게아」의 기독교와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과의 심원한 차이』를 보았다고 지적되었다. 초기 기독교에 관하여 그는 말하였다. 『그의 유일한 조직은 전도인들의 조직이었으며, 그의 중요 기능은 설교였다.』 이것이야 말로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그런 조직이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인식하는 바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조직 전체는 임명된 봉사자들로 구성되며 그들의 주요 기능과 훈련은 설교의 사용이다. 그들은 성경 설교를 집집에서와 가정 성경 연구 사업에서 사용한다. 현재 그리스도인들은 사도들 당시의 여호와의 증인들과 꼭 같아야 한다. 그들은 집집으로 방문하였으며 방문한 집 사람들이라면 어떤 가족에게나 설교하였고, 그들과 성경을 연구하였다. 「바울」은 말하였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사도 20:20) 「에이취 · 지 · 웰스」씨는 주후 325년 이래로 기독교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제단을 중심으로 기묘한 의식을 설립하였으며, 부사제며 주교와 사제들을 성별하였고, 제사를 건립하고, 전의 건축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한 방법과 그 얼마나 판이한가!

각자는 믿음을 실천하여야 한다

40. (ㄱ) 기독교국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행해 왔는가? (ㄴ) 한 종교 지도자는 현재 종교조직들의 부족한 점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40 기독교국의 지도자들은 오늘날의 그들의 위치로 자신을 이끌어왔다. 그들은 기독교를 전도하는데 관한 한, 무수한 교회 참석자들과 평신도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왔다. 교직자들은 그들로 매주 그들의 전에서 들으며 제정된 형식들을 행하도록 가르쳐왔다. 그들은 양무리에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전도하며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책임을 지워주지 않았다. 오늘날 어떤 교직자들은 그들의 실패를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성직자』 「뉴욕」시 삼위일체 교구 이사인 「죤 휘스」씨는 『교회는 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라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일 교구가 지도 생활의 바로 중심에 있어 조용한 중에 열정적이며 변화 받으며 참으로 개종된 그리스도인들의 작은 동네가 되지 않는한, 어떤 교구도 그의 정말 기능을 성취할 수 없다. 대부분의 교구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목사들을 포함하여 참으로 크게 변화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제의 중심지에 헌신한 자기 희생적인 사제가 있는 곳이 있다 하드라도, 변화받은 남녀의 동네가 없는한 별로 신통한 일이 없을 것이다.』—「리더스 다이제스트」, 1962년 6월호.

41. (ㄱ) 교구민들이 약한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인가? (ㄴ) 기독교의 어떠한 기초적 성품이 없는가?

41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탓할 것은 교직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교구민들로 『고난의 큰 싸움에 참』는 그리스도인으로 돌이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교구민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비방과 환난으로써 [극장 안에서와 같이] 구경거리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되기를 거절한다. 그들은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것 때문에 기뻐 옥에 갔다. 기독교국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백성은『산 영혼을 보존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사업이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며 배워본 적도 없다. 기독교국의 백성들은 올바른 일을 위하여 일어 설 수 있도록 훈련을 받지 못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겠는가?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 (마태 15:14) 그들의 양 무리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를 배워본 적이 없다. 그들 자신의 교직자 중의 하나가 『한 사람으로서 나는 내가 만일 한 평신도라면, 행길을 건너갈 수고까지 할 만한 것으로 교회를 생각할수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고 말할 때 누가 그들에게 기대나마 할 수 있겠는가? (66면 참조) 그리고 많은 선남 선녀들은 그들의 교회에 가지도 않는다. 이들 교회 불참석자들이 이 교직자보다도 먼저 매우 쉽사리 교회의 참다운 상태를 알았을 것이다.

42. 통합 총회가 여러 가지 종파들을 통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42 세상의 다른 모든 종파의 수뇌들로 법황 23세와 함께 모여 다른 통합 총회를 열게 하라. 그들로 신교와 「가톨릭」 양편을 굳건한 조직으로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하라. 그래도 그들은 성원들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통합 이상을 요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그의 영과 그의 말씀과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각자의 믿음을 요한다. 기독교국은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부터 길을 잃고 너무 멀리까지 헤메고 있기 때문에 되돌아올 수가 없다. 너무나 많은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이 성경의 약간만을 골라 믿어왔으며 남어지는 신화로서 폐기하였다. 대신에 그들은 양 무리에게 그들 자신의 견해를 주었다. 그것은 마치 「바울」이 말한 바와도 같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디모데 전 1:4.

43. 참다운 그리스도인에게 성경은 무엇인가?

43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성경 연구를 통하여 성경 전체가 활동의 책이며, 봉사의 책이며, 믿음의 책이며, 진리의 책이며 참으로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불과 천구백년 전에 「히브리」 성서에 기록된 참다운 이야기들을 믿으셨으며 그것들을 성경으로부터 인용하셨다. 그러면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때에 예수께서 가르치시던 같은 일들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가지라. 연구하라! 그리스도인이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말씀을 전파하라』 그리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 후 4:2.

44, 45. 견고한 믿음은 어떻게 표시되는가?

44 당신은 『사람이 의를 위하여는 마음으로부터 믿음을 실천하여야 하고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하여야』 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로마 10:9, 10, 신세) 이제 그렇다면, 당신의 믿음이 매우 견고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외칠 수 있으며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그의 약속의 진리를 말할 수 있는가? 혹은, 「야곱」이 다음과 같이 묘사한 그리스도의 소위 추종자들의 어떤 집단과 같이 되고자 하는가?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야고보 1:22-24.

45 「야고보」의 논의는 결론적이다. 그는 말한다. 『[호흡]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 2:26, 신세) 믿음은 스스로 표현한다. 그것은 선포한다.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하러 간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로 그가 무엇을 믿는가를 알게 한다. 그것은 집집으로 가며 말한다.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봉사자는 활동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은 그것을 전도한다. 믿음은 중거를 하는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방어]를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깊은 존경]으로 [하라].』 (베드로 전 3:15, 신세) 하나님과 성경에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모든 사람 앞에서 방어한다.

46. 예수께서는 자기의 빛을 지고 나갈 자로서 누구를 뽑으셨으며, 어떠한 본을 그들에게 남겨 놓셨는가?

46 「메시야」를 찾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 중의 하나를 골라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거저 보통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을 택하셨다. 당신은 그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 5:14-16) 그의 산상 수훈의 이 교훈은 남녀에게 똑같이 주신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좋은 봉사 설교인가! 예수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든 백성들이 봉사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대표하며 그것을 위하여 일하도록 격려하셨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태 6:33) 그는 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그는 아버지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며 그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할 필요성을 표시하셨다. (마태 6:9-15) 이 봉사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는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참다운 믿음을 요한다.

47. 산 영혼을 보존함에 이르기 위하여 각자는 지금 무엇을 하여야 할 것인가?

47 만일 당신이 그러한 믿음을 가지셨다면 그것은 『산 영혼을 보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돔」과 같이 멸망으로 향하고 있는 낡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라. 그리고 「롯」과 그의 두 딸들과 같이 되라. 일어나서 가라. 기쁜 소식의 전파자가 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극장 안에서와 같이] 구경거리가』 되드라도 『고난의 큰 싸움에 참』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 (히브리 10:32, 33, 신세)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당신의 믿음에 견고하라. 그의 말씀을 믿고 의로운 신 세계의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각주]

a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지식을 더 얻기 위하여는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제 21장 241면을 참조할 것.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