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섬기는 데 생명을 사용함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라기 3:17, 18.
1. 어떻게 여호와를 섬겨야 하며 그리고 그 이유는?
여호와를 섬기는데 우리의 생명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읍니까? 시편필자가 느낀 바가 바로 그와 같았읍니다. 그는 말하였읍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 찌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느님이신 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시편 필자는 우리를 초대합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 찌어다.』 왜 여호와를 섬기려는 이러한 의욕을 가져야 합니까?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함이 대대에 미치리로다.』—시 100:2-5.
2. 하나님의 봉사에 관하여 더러는 어떻게 느낍니까? 현명한 길은 무엇입니까?
2 성실한 숭배자라면, 아무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전 오세기에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비난을 받는데 이르고자 원하지 않읍니다. 그 백성은 국가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였으나,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말라기 3:14)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대신에, 그들은 그것이 무익한 것처럼 기회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러나 생명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가 인도하시는 대로 생명을 사용하는 사람은 현명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사랑스런 친절과 충실함 때문에 그를 섬기는 떳떳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는 위대하신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초에 「아담」에게 생명의 숨을 주시고 봉사의 특권을 주심으로써 인류의 생명을 가능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믿음의 사람들이 현재 그를 섬길 수 있고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얻도록 하는 마련을 하셨읍니다. 확실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천직이 인간이 즐길 수 있는 가능한 최고의 성취입니다.
3, 4. 봉사에 이르는데 무슨 단계가 있읍니까? 누가복음 17:12-19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3 여호와의 말씀에 관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생명의 마련을 받아들여서, 그의 생명을 여호와의 봉사에 바친다면, 그때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깨끗한 입장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에 의하여 저주받은 열명의 문둥병자에 의하여 잘 묘사 되었읍니다. 누가 복음 17:12-19의 기록에 의하면 이러합니다. 『그 중의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4 마치 몸서리나는 병으로부터 깨끗케 된 그 문둥병자들 같이, 오늘날 여호와로부터 생명을 위한 마련을 받아들임으로써, 유전받은 죄의 결과로부터 깨끗케 된 입장에 이른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더러는 문둥병으로부터 깨끗케 된 아홉 사람과 같이,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바치지 않았읍니다. 다른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바르고 선한 생활을 하려는 데 만족하고, 그들의 활동의 과정이 그들의 믿음을 묵묵히 증거케 할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정한 감사를 나타내는 것 즉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좋읍니까? 확실히 죽은 자는 여호와를 찬양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그 기회를 감사하는 사람들이 창조주께 대한 의무를 수행하기에 그들의 생명력이 쇠약해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도리어 여호와를 섬기는 데 그들의 힘과 정력을 사용할 때입니다.—시 115:17, 18.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기대하셨습니까?
5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전부가 사람들이 올바르고, 정직하고, 도덕적이고, 곧은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것이 즉 단순히 악을 멀리하는 것이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전부입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갖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곧은 일을 합니다. 미가 6:8의 기록에 의하여 이것이 여호와께서 요구하시는 전부인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즉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에는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또한 한 지파 즉 「레위」 지파가 특별한 봉사를 위하여 구별되어 있었지만, 이와 같은 교훈이 「이스라엘」 나라에게 주어졌고, 나라 전체가 하나님의 종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명령과 일치하여 생활해 나가는 것 외에,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셨읍니다. 거기에는 국가적인 종교적 잔치를 매년 갖기 위하여 세번의 여행을 했어야 하였으며, 그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정한 때에 희생을 바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또한 아버지는 각각 하나님의 율법 아래 아침에, 정오에 그리고 밤에 자녀들에게 개인적인 종교적 교훈을 줄 의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6.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교직자 계급에만 봉사를 제한하였읍니까?
6 1882년 판 「맥클린톡과 스트롱 저 백과 사전」 제 2권 386면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가 특별한 제사직 봉사를 위하여 따로 세워진 마련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활동적으로 봉사에 참여한 습관과를 대조했읍니다.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다. 『사도 교회에서는 특권과 성결에 있어서 교직자와 평신도의 추상적 구별이 있지 않았다.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언하는 직분과 제사직과 왕직에 불리웠다. (베드로 전 5:3) 교직자와 평신도에 관한 「유대」인 대조는 처음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았다. 모든 신자들이 일반 그리스도인 제사직을 가졌다는 생각이 다소간 특별 제사직 혹은 교직자의 생각으로 바뀌어진 것은, 「단지 복음주의로부터 「유대」인 관점으로 뒤떨어진 사람들」에게 있었다. . . . 「로마」 승려 정치가 발전됨에 따라서 교직자가 단순히 구별된 계급이 되었을 뿐 아니라 . . . 또한 유일의 제사직으로서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필수적인 수단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7.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관하여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7 「이스라엘」에 있어서, 한 가족이 제사직으로 임명되었지만, 온 국가가 하나님에 의하여 봉사의 특권을 가진 거룩한 나라로 간주되었읍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생활의 근본 목적으로부터 아무도 제외되지 않는다는 이 관점을 받아들였읍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 제사직 나라의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로 이것이 여호와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원하셨던 봉사였읍니다.—베드로 전 2:9, 10.
선한 생활로 충분한가?
8, 9.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충분합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읍니까?
8 성경은 명백히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단순한 선한 생활을 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젊은 통치자와의 회견에서, 전생애를 통하여 단순히 수동적으로 선한 생활을 하는 중요성과 그리스도인들이 활동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중요성을 대조하셨읍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을 받고, 예수께서는 이 젊은 「유대」인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충고하셨읍니다. 즉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 증거 등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읍니다. 이 젊은이가 이 모든 일을 다 지켰다는 것을 확증했을 때 즉 선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그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 . .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9 이 부요한 젊은 통치자는 명백히 계명에 따라서 살아 온 곧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나 그 자신의 관심사보다 하나님을 활동적으로 섬기고, 그리스도인 봉사를 증진시키는 데 그의 생명을 사용하는 마당에 이르렀을 때, 그는 거절하였읍니다. 그의 말은 결과적으로 그의 물질적 소유를 더 중요하게 여긴 나머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냈읍니다. (마태 19:16-22) 하지만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읍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추종자가 되라는 초대를 받아들이고, 활동적인 봉사에 참여했읍니다. 그들은 이것이 단지 예수와 사도들에게만 허용된 특권으로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아주 철저한 방법으로 그들의 창조주를 섬기는 큰 영예를 가졌다는 것을 인정하였읍니다.
10. 「바울」의 편지는 어떻게 초기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봉사에 참여한 것을 알려 줍니까?
10 이에 관련하여, 단지 회중의 봉사자 즉 감독자들에게만 아니라 『「데살로니가」인의 (회중)에』라고,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그의 첫째 편지를 보낸 것에 유의하십시오. 「바울」은 회중의 봉사로 인하여 그 회중을 칭찬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그렇습니다, 믿음을 널리 퍼지게 한 것은 회중 사람들이었읍니다. 같은 방법으로, 「빌립보」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빌립보」의 헌신한 그리스도인 전체 집단에게 『「빌립보」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과 또한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에게』라고 편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라고 격려한 것은 전체 희중에게였읍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나누어 줌으로써 이렇게 할 수 있었읍니다. 「바울」은 이것을 『믿음이 너희를 인도해 온 공중적 봉사』라고 묘사했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이 그의 서한을 『「골로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과 충실한 형제들에게』 편지한 것을 관찰하여 봅시다. 이 『충실한 형제들』은 어떤 수도승 계급이 아니었읍니다. 「바울」은 그 초기 회중의 모든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라고 편지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고 전파하는 사람들이었읍니다.—데살로니가 전 1:1, 8; 빌립보 1:1; 2:15, 17; 골로새 1:2; 3:16, 신세.
전도의 중요성
11. 예수께서는 천직으로서 무엇을 권하셨읍니까?
11 하나님을 섬기고자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그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에 관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를 모릅니다. 그들은 신학 교육을 위한 학문적 요구나 요구된 자금이 그들의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혹은 병원 사업, 가르치는 일, 의술이나 사회학과 같은 봉사에 그들의 정력을 바치는 것을 더 좋아할지 모릅니다. 이러한 노력이 매우 칭찬받을 만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합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 그의 생명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에게 권하신 것인가? 그것이 그가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인가? 사도들이 병자들을 고치는 권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의 선물은 왕국 대사이며 진리의 선포자이신 그들의 봉사에 있어서 제 이차적인 것이었읍니다. 명백히 이 영의 특별한 산물은 기독교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세우기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었읍니다.—마태 10:7, 8.
12. 성경은 어떻게 전도를 강조하며 그리고 그 이유는?
12 예수께서는 전파하도록 조직하시고 제자들을 내보내셨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이 이 활동을 솔선 인도하셨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임명된 이 사업이 예수의 시대 이후로 변경되지 않았읍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하신 그의 마지막 교훈이 우리 시대까지 계속 적용되고 있읍니다. 그 교훈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께서 전도를 특별히 강조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육체적 치료는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한 치료는 병자가 오년이나 십년 더 살도록 할지는 모르지만, 진리가 줄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전망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확실히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가 앞섭니다. 사람이 여호와를 섬기는 데 그의 생명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전망입니다. 이 섬기는 초대는 연령이나 민족이나 성별이나 교육으로 제한되어 있지 않읍니다. 『듣는 자도 오라!』고 초대합니다.—마태 28:19, 20; 계시 22:17; 요한 17:3.
13.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수행할 수 있읍니까?
13 예수께서는 그러한 봉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두 자녀를 가진 사람의 예를 말씀하셨읍니다.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예수께서는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라고 물으셨읍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고 있는 세력있는 으뜸 제사장들과 더 오래된 사람들에게 뚜렷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리라.』고 하셨읍니다. 이들은 기꺼이 그들의 생활을 변경하여 예수께서 주시는 봉사의 특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읍니다.—마태 21:28-31.
14. 무슨 봉사를 의하여 일군들이 필요합니까?
14 사람이 어떤 형태의 종교적 봉사에 종사하고 있다 하여, 그 생활 과정시 반드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께서는 명확하게 보여 주셨읍니다. 예를 들어, 사도 「요한」은 진리 가운데의 동료 일군』임을 말하였읍니다. (요한 3서 7, 8) 그러나 그것은 합동 여행이나 교회 친목회나 「빙고」 경기나 심지어 복지 사업으로 행하여지는 것입니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해 봄으로써 대답을 찾을 수 있읍니다. 그것이 예수 자신께서 전념하신 일이었는가? 거듭 예수께서는 그 이상으로 전도에 그들의 생명을 사용할 필요를 강조하셨읍니다.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라고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밭이 세상이고, 추수 사업을 끝내기 위하여는 많은 일군들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하라.』 그러나 추수 사업에 있어서 더 도움을 청해놓고, 우리 자신은 가지 않을 것입니까?—마태 20:1; 9:37, 38.
구원을 위한 공개적 선포
15. 믿음의 실천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5 오늘날 추수 사업이 194개국에서 1,040,836명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수행되고 있읍니다. 그들은 「바울」이 「에베소」 회중의 성원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라고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본을 따름으로써,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배운 것을 공개적으로 그리고 집집으로 전하는 데 참여합니다. 여호와께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은 당신이 이렇게 할 만큼 충분히 강합니까? 「바울」이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의에 이르기를 바란다면 믿음을 실천하여야 합니다. 단순히 진리를 안다거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인을 얻기 위하여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는 것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왜냐 하면 사람이 의를 위하여는 마음으로부터 믿음을 실천하여야 하고 구원을 위하여는 입으로 공개적 선포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사도 20:20; 로마 10:4, 8-10, 신세.
16. 왜 그리스도인들이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읍니까?
16 많은 사람들은 성실하게 진리를 알고자 하며, 그들에게 전달될 때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또한 더 많은 일군들의 필요성을 강조했읍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일로서 전파하는 책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읍니다. 사실상,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할 만큼 이에 관하여 강하게 느꼈읍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여호와의 목적에 관한 지식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바울」은 이것이 그에게 위탁된 의무이고 직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로마 10:13, 14; 고린도 전 9:16.
봉사를 위하여 훈련받음
17. 전도에 대하여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반대를 주장합니까? 이 주장이 정당한 것입니까?
17 아마 당신은 『그런데 예수와 사도들의 경우는 좋지만, 나는 전도할 훈련도 받지 않았고 자격도 없읍니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이에 관련하여,「브리타니카 백과 사전」 1907년 판은 『기독교의 부패』 아래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들 대신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흔히 생각하고, 종교 비밀을 제사장들은 이해 하나 평신도들은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으며 알려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나 종교 문제에 있어서 맹목적으로 제사장들의 인도를 따랐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그의 법적 문제를 변호사에 의뢰하는 것과 같이 그가 지시하는 대로 하고, 그 자신이 법률을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런 생각이 오늘날 유행되고 있지만 이것이 기독교의 부패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8. 여호와의 백성은 어떻게 가르침을 받고 훈련됩니까?
18 하나님께서는 그의 목적이나 그의 진리를 성실하게 그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으로부터 숨기시지 않읍니다. 한편 그는 그것을 전파함으로써 유익을 가져 올 수 있는 어떤 선출된 집단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사실상, 예수께서는 마태 복음 11:25에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고 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린이들도 가족 연구와 회중 연구에 의하여, 하나님의 영의 도움으로써, 성경 진리의 정확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고자 원하는 사람의 다음 단계는 이 지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훈련시키고 격려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교훈을 주신 다음에 둘씩 내보내신 것과 같이, 오늘날의 여호와의 중인들도 사도의 본에 기초하여 훈련의 같은 본을 따르고 있읍니다. 에베소서 4:12에 「바울」은 자격을 갖춘 남자로 『성도들을 훈련』 (신세) 시킨 것을 말하고 있읍니다. 이 훈련은 아직도 오늘날 계속되고 있읍니다.
19. 어떻게 전도할 수 있도록 자격을 구비하게 됩니까?
19 나아가서, 이 봉사의 자격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니라 오히려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말씀을 통하여 오게 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고린도 후 3:5, 6) 당신 역시 그러한 봉사를 위하여 훈련을 받을 수 있으며, 여호와를 섬기는 데 당신의 생명을 사용할 수 있읍니다. 전세계를 통한 여호와의 증인의 정규적 모임은, 창조주를 섬기고자 하며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는 예수의 교훈을 실천하는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남녀를 훈련시키는 목적을 위하여 마련된 것입니다. 누구나가 다 할 일이 있읍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가르치는 이 활동이 주야로 전세계에서 행하여지고 있읍니다.—계시 7:15.
20, 21.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기까지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은 긴급한 때입니까?
20 생활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데서 오게 됩니다. 성경에 진술된 대로 여호와의 목적에 관한 진리를 배운 다음에는, 우리가 남에게 가르쳐야 할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로마 2:21) 우물 곁에서 예수의 말을 들은 「사마리아」 여자는 그가 모든 것을 알게 되기까지 주저하지 않고 빨리 달려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읍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그 여자는 그 소식의 근원으로 사람들을 인도할 만큼 충분히 알고 있었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와서 예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 그들은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요한 4:29, 42.
21 그러므로 기다릴 필요가 없읍니다. 예수 시대에 어부였던 제자들은 기다리지 않고 전도하는 그를 따랐읍니다. 「바울」은 그가 전도에 초대받고 「아나니아」로부터 교훈을 받았을 때, 기다리지 않았읍니다. 성경은 그가 「다메섹」에서 제자들과 수일 동안 있은 다음에 『즉시로 각회당에서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사도 9:19, 20) 지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 더 긴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겨야 할 더 강한 이유가 있읍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므로 지금이야말로 여호와를 섬기는 데 생명을 사용해야 할 때입니다.—요한 1서 2:17.
22. 여호와를 섬기는 데 우리의 생명을 사용하는 것이 왜 지혜롭습니까?
22 「이스라엘」 백성이 절고 병든 희생을 바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라고 한 것처럼 말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하는 태도를 취하였읍니다. 그 반대로 지금이야말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게 하여야 할 때입니다. 여호와를 섬기는데 우리의 생명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실것을 확증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일 여호와께서, 그의 의로운 사물의 새 제도에서 생명을 기억하시는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금 여호와의 설립된 왕국의 기쁜 소식을 선포함으로써 그를 섬기는데 당신의 생명을 사용하십시오.—말라기 3:15, 16.
[330면의 삽화]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자가 없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