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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자를 내어 주는 사망과 ‘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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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 자를 내어 주는 사망과 ‘하데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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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데스」
  • 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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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5
파65 5/1 163-168면

죽은 자를 내어 주는 사망과 ‘하데스’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찐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를] . . .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마태 22:31, 32.

1. 어느 고대 종교 서적만이 부활을 가르치고 있읍니까?

하나님의 왕국 통치 기간 중에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고대 종교 서적이란 성서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읍니다. 성서는 그 첫째 부분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고, 둘째 부분이 천 구백년 전의 보통 「희랍」어로 기록된 거룩한 책입니다. 하지만 그 첫째 부분은 성서의 둘째 부분이 보통 「희랍」어로 기록되기 전에 「히브리」어로부터 「희랍」어로 번역되었읍니다. 이 「히브리」어 성경의 「희랍」어 번역이 「희랍어 칠십인역」 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며, 『칠십』을 의미하는 LXX로 표시되고 있읍니다. 십 구세기 전에 「희랍」어는 국제 언어였읍니다. 그러므로 「희랍」어를 아는 사람들은 성서 전체를 읽을 수 있었읍니다. 우리 시대에, 성서는 전역 혹은 부분역으로서 1,202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읍니다. 아마 여러분의 지방 언어로도 번역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거룩한 책은 많은 서적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가장 많은 나라 말로 읽혀지고 있읍니다. 성서만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왕국 통치 기간 중의 의로운 사물의 질서에서 죽은 사람이 생명으로 일으킴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읍니다.

2. 왜 어떤 사람들이 부활의 관념을 비웃을지도 모릅니까?

2 독자인 당신이 당신의 종교에서 『영혼 불멸』을 가르침받아 왔다면 아마 죽은 자가 부활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죽은 자는 단지 인간 육체에 관해서만 죽고, 영혼은 보이지 않은 어떤 영역에 존재했다가 다른 육체로 윤회 전생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활이 필요없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은 건전한 데 기초를 두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비웃는 것보다는 오히려 정직하게 살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셨다는 것을 전파했을 때, 영혼 불멸을 믿었던 「희랍」 철학가들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읍니다.—사도 2:31, 32; 마태 26:38; 이사야 53:12; 에스겔 18:4, 20.

3. 왜 우리는 그 「희랍」 철학가들과 같이 되기를 원치 않읍니까?

3 그 「희랍」 사람들에 대하여 역사적 기록은 말합니다.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사도 「바울」이 「희랍 · 아덴」의 최고 법정 재판관들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땅의 모든 거민들의 심판관으로 삼기 위하여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다는 것을 말했을 때,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였다는 것을 기록은 알려 줍니다. (사도 17:18, 31, 32) 그 「희랍」 사람들은 인간 영혼 불멸을 믿었읍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없다고 그들은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인간 영혼이 죽는다는 가르침과 다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부활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읍니다.

4. 죽은 자에 관한 신앙에 있어서 고대 「희랍」 사람들은 어떻게 「바벨론」 사람과 같았읍니까?

4 고대 「희랍」인들은 죽은 사람이 땅 속, 보이지 않는 곳 즉 「하데스」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고 있는 곳에서 망령(亡靈)으로서 살고 있다고 믿었읍니다. 후일에 「하데스」가 지배하고 있는 육체를 떠난 영혼들이 살고 있는 땅 속의 장소를 「하데스」란 이름으로 불르게 되었읍니다. 그 이름은 또한 무덤에 적용하게 되었읍니다.a 그 고대 「희랍」 사람들은 「아시아」의 「바벨론」 사람들과 같았읍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육체를 떠난 영혼이 살고 있는 지하 영역의 하나님을 「네르갈」이라고 불렀고, 죽은 자들의 이 보이지 않은 영역을 『불귀의 땅』이라고 불렀읍니다. 그러므로 고대 「바벨론」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지 않았읍니다.b

5. 「유대」 개혁자들이 취한 행동이 어떻게 인간 영혼 불멸에 대한 신앙과 부활에 대한 가르침이 서로 반대된다는 것을 지적해 줍니까?

5 인간 영혼 불멸의 이 「바벨론」 신앙은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과 정반대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이십 세기의 「유대」 개혁자들이 취한 행동에서 찾아 볼 수 있읍니다. 이에 관하여, 「유대 백과사전」은 『부활』이란 제목 아래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현대에 있어서 부활에 대한 신앙은 자연 철학에 의하여 크게 흔들려 왔다. 그리고 개혁자 「랍비」들에 의하여 그들의 회의에서 . . . 부활에 대한 신앙을 표시하는 옛 예배 형식 대신에, 영혼 불멸에 대한 소망을 명확하게 표시하는 형식으로 변경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질문이 행해져 왔다. 미국의 모든 개혁자들의 기도서에 이렇게 되어 있다.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랍비」 회의에서 육체의 부활에 대한 신앙이 「유대」교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영혼 불멸에 대한 신앙이 [공중 숭배를 위한 집합 형식의] 예배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1905년판) 10권 385면 2항.

6. 어떠한 명백한 진술을 그 「유대」 개혁자들은 믿지 않읍니까?

6 이처럼 「유대」 개혁자들은 성서의 명백한 진술을 믿지 않읍니다. 에스겔 18:4, 20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말합니다.

7. 한때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이 부활에 관하여 「벨릭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7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계셨을 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다음에 기적적으로 그를 보았읍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출생하였읍니다. 그는 「유대」 「바리새」인 중의 하나였으며,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읍니다. 아마 하계의 죽은 영혼들의 「로마」 하나님 「플루토」를 믿었으리라고 생각되는 「로마」인 재판관 「벨릭스」 앞에 「바울」이 섰을 때, 그는 「유대」 「바리새」인들에 관련시켜 말하였읍니다. 나는 『[「모세」의]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 . .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사도 24:14-21, 신세.

8. (ㄱ)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ㄴ) 그의 부활은 죽은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8 사도 「바울」은 부활에 관하여 기록하면서, 그 자신을 포함하여 오백명 이상의 목격 증인들이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을 말하였읍니다. 그가 형주에서 공중 앞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완봉한 무덤에 장사되시고, 그 안의 죽은 몸을 도둑질하지 못하도록 군병들을 시켜서 경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활되셨읍니다. (고린도 전 15:3-9; 마태 27:57–28:4) 그 사실을 증명함에 있어서 그와 그의 동료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거짓 증인들이 아니었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어 있는 인류를 위한 것임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고린도 전 15:20, 2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른 사람들 즉 죽은 인류가 부활되는 길을 열어 놓았읍니다.

9, 10. (ㄱ) 예수께서 순교자의 죽음을 담대하게 직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예수의 말씀이 어떻게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 줍니까?

9 서력 기원 33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순교자의 죽음을 담대하게 직면하셨읍니다. 그것은 그가 그의 천적 아버지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삼일만에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늘로 돌아와서 그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바칠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에 계셨을 때 많은 이야기를 하셨읍니다. 한때 그가 죽은 인류를 부활을 통하여 마지막 심판으로 일으키는데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이렇게 진술하셨읍니다. 『아버지께서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같이 그는 그의 아들도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가질 수 있게 하셨다. 그리고 그가 인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 이 일에 놀라지 말라. 기억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시간이 오고 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나 스스로 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들은 대로 나는 심판한다. 그리고 내가 행한 심판은 의롭다. 왜냐 하면 나는 나의 뜻을 좇지 않고 나를 보내신 그 분의 뜻을 좇기 때문이다.』—요한 5:26-30, 신세.c

10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개인적 질문

11. 그러므로 어떠한 개인적 질문을 해 볼 것입니까?

11 그러므로 우리가 해 볼 개인적 질문은 이러합니다. 장래의 어느 때인가 당신과 내가 죽게 되어 무덤 혹은 묘에 묻혔을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잠자고 있는 죽은 자로부터 생명으로 돌아오는 부활이 우리에게 베풀어질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누가 우리와 함께 부활될 것인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지 않을 자들도 있을 것인가? 「유대」인들이 성서의 첫째 부분인 「히브리」어 성경만을 받아들이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져 왔읍니다.

12. 성서는 어떠한 부활의 광경을 알려 줍니까?

12 기독교국의 어떤 종교적 교직자들은 그 때에 아직도 땅에 살아 있는 사람에게 부활의 날이 무엇과 같을 것인가를 묘사하려고 시도해 왔읍니다. 그들은 상상 하기를, 인간 시체의 부분이 널리 늘어져 있는데 그것들이 죽었을 때 속했던 몸의 다른 지체들과 결합하기 위하여 윙윙 소리내며 날르고 있는 것과 같은 야생적이고 아주 몸서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성서는 부활의 때가 그러한 무서운 상태라는 것을 제시하지 않읍니다. 심지어 예언자 「에스겔」의 환상,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힘으로 그들을 모아서 다시 생기있는 살로 입히는 마른 뼈의 골짜기의 환상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읍니다. (에스겔 37:1-10) 그것과는 판이하게도, 성서의 마지막 권은 적절한 상징을 사용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악한 세력들이 없어진 후에 땅에 있을 부활의 광경을 알려 줍니다. 이 소망을 자극하는 환상은 우리가 지적 부활에 누가 참여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줍니다.

13. 계시록 20:11-15에서, 「요한」은 무슨 환상을 받았읍니까?

13 그리스도인 사도 「요한」이 본 그 환상이 계시록 20:11-15에 묘사되어 있읍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의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또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하데스)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신세, 또한 계시록 21:8을 참조하십시오.

14. 부활에 관한 계시록 20:13이 왜 요한 복음 5:28, 29의 예수의 말씀보다 더 함축성이 있읍니까?

14 죽은 모든 사람들이 마른 땅에서 죽어, 땅속 무덤에 묻힌 것은 아닙니다. (창세 1:9, 10) 수많은 사람들이 파선, 폭풍, 전쟁으로 인하여 바다에서 죽었으며, 바다에 묻혔읍니다. 그들의 시체는 결코 발견되지 않았으며, 마른 땅에 묻힐 수도 없었읍니다. (열왕 상 22:48, 49; 역대 하 20:36, 37; 시 48:7; 다니엘 11:40) 그러므로 인류의 부활의 날을 묘사하면서, 계시록 20:13은 단지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줄 뿐아니라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말했읍니다. 우리는 이 귀절 계시록20:13이 예수께서 『기억 무덤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부활로] 나올 시간이 오고 있다.』고 하신 말씀보다도 부활에 대한 더 함축성있는 진술임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요한 5:28, 29, 신세.

15. 또한 왜 『바다』가 『불못』에 던지우지 않읍니까?

15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또 한가지 점은 「하데스」가 무엇으로 이해되든지 간에, 죽어서 「하데스」 가운데 있는 자들은 바다에 있는 자들과 다르다는 점입니다. 왜냐 하면 죽어서 바다에 있는 자들은 물 있는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문자적 의미에서, 바다는 결코 없어지지 않고 지구에 항상 존재합니다. 계시록 20:14이 『사망과 (하데스)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말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만일 실제적 바다를 『불못』에 던진다면 바다가 없어지게 되기는 커녕 오히려 불못이 꺼지게 될 것이고, 불못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서는 『불못』으로 상징된 『둘째 사망』이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을 확실히 말하고 있읍니다. 상징적으로 『불못』은 영원히 탈 것입니다.

16. 성서의 「하데스」가 「희랍」 사람들이 상상한 것과 같읍니까? 그 이유는?

16 그렇다면, 상징적 『불못』에 던지우는 「하데스」는 무엇입니까? 그러한 「하데스」에 있는 자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성서에 묘사된 「하데스」가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고대 「희랍」 사람들이 상상한 「하데스」나 혹은 그들의 신화에 묘사된 「하데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교 「희랍」사람들의 신화적 「하데스」로부터는 일반적 부활이 없었읍니다.

17. 고대 「희랍」 사람들은 어떠한 두가지 뜻에서 부활을 말하였읍니까?

17 「신약의 신학 사전」 1권 369면, 『나. 「희랍」 세계의 부활』 이란 소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읍니다. 『영혼의 윤회 전생을 떠나서 . . . 「희랍」 사람들은 두가지 뜻에서 부활을 말한다. ㄱ. 부활이란 불가능하다. . . . ㄴ. 부활이 격리된 기적으로서 발생할지도 모른다. . . . 「로마」에서 분명히 죽은 소녀를 「티아노」의 「아폴로니우스」가 일으킨 것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 . . 150,000「데나리」의 돈이 예외의 기부금으로서 기증되었다. . . . 시대의 끝에 일반 부활이 있다는 사상은 「희랍」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이것은 실로 「피리기아」 비문 [비참한 모든 사람이 실로 부활을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공격이다. 사도 행전 17:18의 「아나스타시스」[부활]을 듣는 사람들이 그 낱말을 고유 명사로 오해한 것같다. (17:31 및 그 이하와 비교하십시오.)』d 물론 「아폴로니우스」가 일으킨 『분명히 죽는 소녀』는 다시 죽었읍니다.

18. 이교도와는 달리, 하나님의 백성은 무슨 소망을 가졌읍니까?

18 「맥클린톡 및 스트롱의 백과 사전」 1891년판 4권 『하데스』에 관한 기사에서,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 책 9면 마지막 항을 살펴보면 이러합니다. 『「스올」의 체류는 단지 믿는 「히브리」 사람에게만 일시적이고 중간 존재인 것같이 보인다. 이교도는 그 그늘진 영역 이상의 전망을 갖지 않았다. 그들을 위한 빗장은 영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부활의 사상은 그들의 종교와 철학에게 마찬가기로 전혀 이상한 것이었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의 전망은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가슴에 형성된 온 소망과 관련되어 있다. 이 경우 신이 죄로 말미암아 오게 된 악을 전환시키고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으며, 실제로 파괴자를 파괴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혹자를 파쇄하는 확증을 주는 최초의 약속에서 선포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창세기 3:15과 로마서 16:20을 참조하십시오.

19. 그러므로 성서의 「하데스」와 「희랍」 사람들의 것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19 이처럼 성서의 「하데스」는 이교 「희랍」 사람들의 것과는 다릅니다. 성서는 「하데스」에 있는 자들이 그것으로부터 부활될 것이라는 것을 거듭 진술하고 있읍니다. 그 곳은 고대 「바벨론」 사람들이 말한 곳 즉 『불귀의 땅』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하데스」는 어디에 있으며, 그 곳에 있는 자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그곳은 죽은 자의 『중간 존재』의 장소입니까? 우리가 성서의 대답을 얻을 때만,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지 않게 둘 수 있는 정확한 대답, 참된 대답을 얻는 것입니다. 과연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데스」

20. 「하데스」에 있는 자들의 상태는 어떠함에 틀림없읍니까?

20 손으로 쓴 것으로서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 「하데스」란 말이 열번 나옵니다.e 성서의 「하데스」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 있읍니까? 정직한 성서의 독자들은 생기없는 존재라고 말할 것입니다. 계시록 20:13에서도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준다고 말합니다. 확실히 사망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은 살아 있지 않읍니다. 마찬가지로 「하데스」에 있는 자들도 살아 있을 수가 없읍니다. 하지만, 기독교국의 종교가들은 이교 「희랍」 신화에 감염되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읍니다. 죽어서 「하데스」에 있는 자들은 실제로 죽지 않았읍니다. 죽은 것은 단지 그들의 몸뿐이고, 그들의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살아 있읍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단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기타의 점에 있어서는, 「하데스」에 있는 그들 불멸의 영혼들은 실제로 살아 있읍니다.』 그러나 기독교국의 종교가들의 이런 주장은 정당합니까? 이 주장이 「하데스」에 죽어 있는 자들의 상태에 관하여 그리고 누가 「하데스」로부터 부활될 것인가에 관하여 성서가 가르치고 있는 바와 같읍니까? 성서를 연구해 보십시오.

21. (ㄱ) 「하데스」가 하늘에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데스」로 갑니까?

21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서 처음으로 「하데스」란 말이 사용된 곳은 마태 복음 11:23입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하데스)에까지 낮아지리라.』 (신세, 또한 누가 복음 10:15에서도) 이런 이유로 「하데스」는 하늘에 있을 수가 없읍니다. 「하데스」란 말이 사용된 다음 곳은 마태 복음 16:18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사도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또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회중을) 세우리니 (「하데스」의 문들이) 이기지 못하리라.』 (신세) 예수께서 여기에서 하신 말씀은 그의 추종자들의 회중이 죽어서 「하데스」의 문들을 통해서 그리로 돌아 간다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어서 「하데스」에 있는 자들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22. 왜 「하데스」의 문들이 예수의 회중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까?

22 하지만, 왜 『「하데스」의 문들』이 예수의 회중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까? 왜 『문들』이 영원히 예수의 추종자들 위에 닫혀져서 「하데스」가 『불귀의 땅』이 되지 않게 할 것입니까? 그것은 그후 예수께서 나이 많은 사도 「요한」에게 성서의 마지막 권인 계시록 1:17, 18에서 말씀하신 사실 때문입니다. 이 귀절에서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두려워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하데스)의 열쇠를 가졌노니.』 (신세) 그가 사망과 「하데스」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에, 하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데스」의 문들』을 여실 수 있으며, 그의 회중의 죽은 자들을 내놓으실 수 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시 생명으로 회복됩니다.

23. 언제 「하데스」를 이길 것이라고 예수께서 약속하셨읍니까?

23 이 사실을 명심하고 계신 까닭에, 예수께서는 「하데스」의 문들이 그의 회중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셨읍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하데스」를 이기시고, 그의 회중을 「하데스」로부터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요한 복음 6:39, 40에서 직접 약속하셨읍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24. (ㄱ) 성서에서 무슨 말이 「하데스」와 관련되어 있읍니까? (ㄴ) 시편 16:10, 11에 의하면, 예수께서 돌아가셨을 때 어디로 가셨읍니까?

24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 「하데스」가 나올 때마다 열번 다 『사망』이란 말이 함께 나오고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계시 1:18; 6:8; 20:13, 14) 그러므로 「하데스」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과 관련된 질문을 하고 싶읍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죽어서 그의 벗 「아리마대」의 「요셉」의 기억 무덤에 같은 그날 묻히셨을 때, 예수 자신은 어디에 가신 것입니까? (마태 27:57-61) 이에 관한 진리를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다고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 자신의 가까운 사도 「시몬 베드로」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인데, 예수께서 돌아가셔서 묻히신지 오십 일일 후의 오순절에 하나님의 성령이 「베드로」와 예수의 다른 제자들에게 임하였읍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하나님의 영감 아래 말하였으며, 시편 16:10, 11을 인용하여, 『이는 내 영혼을 (하데스)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신세)라고 하였읍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이 말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예언자 「다윗」 왕이 기록한 것이었읍니다.

25, 26. 오순절에 「베드로」가 「다윗」과 예수께 관하여 무슨 말을 하였읍니까?

25 하나님의 영에 충만된 사도 「베드로」는 계속하여 오순절을 지키는 수천의 「유대」인들에게 말하였읍니다.

26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하데스)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의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형주)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사도 2:27-36, 신세.

27.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그의 회중을 「하데스」로부터 부활시키실 수 있게 되었읍니까?

27 이 연설에서 영감받은 「베드로」는 명백히 말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데스)에 버림이 되지 않』는다는 시편 16:10(신세)의 성취를 보아 그의 영혼이 「하데스」에 버림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였읍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돌아가셔서 기억 무덤에 묻히셨을 때, 그의 영혼은 「하데스」로 간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삼일만에 그를 「하데스」로부터 부활시키셨으며, 그 때 하나님께서는 부활되신 예수께 『사망과 (하데스)의 열쇠』를 주셨읍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께서는 계시록 1:18에서와 같이 말할 수 있으셨읍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하데스)의 열쇠를 가졌노니.』(신세) 그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에, 그는 그 자신의 회중까지를 포함하여 「하데스」에 있는 모든 죽은 자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읍니다.f

28. (ㄱ) 「베드로」가 오순절에 시편 16:10을 인용했을 때, 무슨 말을 사용했읍니까? (ㄴ)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성서의 「하데스」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가를 알게 됩니까?

28 사도 「베드로」는 「히브리」인 즉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오순절 날의 그의 연설을 「히브리」어로 했읍니다. 그러므로 그가 시편 16편에서 인용했을 때, 그는 「히브리」어 성귀의 「희랍」어 번역판으로부터가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에서 직접 인용했읍니다. 그런 까닭에, 「베드로」는 「희랍」어 「하데스」가 아니라 「히브리」어 성귀의 원어 즉 「스올」을 사용했읍니다. 문제의 초점이 되는 「희랍」어 「하데스」란 말이 「히브리」어 「스올」을 번역할 때 「70인역」에 사용되었읍니다.g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스올」이란 말이 예순 세 귀절에서 예순 다섯번 나옵니다. 「베드로」가 인용한 시편 16:10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의 이 귀절을 읽어 보면 이러합니다. 『이는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h 그러므로 우리가 「스올」이 무엇이고, 어디에 존재하고, 「스올」에 있는 자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안다면, 동시에 성서의 「하데스」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고, 「하데스」에 있는 자의 상태가 어떠한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하데스」는 「로마」 사람들이 「플루토」라고 부르는 하계의 하나님과 일치된다. 「하데스」란 이름이 죽은 자의 이 하나님에게 적용되어 사람들이 죽은 후에 그들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그의 권능으로 보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신성』을 의미한다.—「맥클린톡 및 스트롱의 백과사전」 4권 9면, 『하데스』, 또한 「리델 및 스코트 저서 희랍-영어 사전」 1948년 재인쇄판, 1권 12면 2단 Ἅιδης 혹은 ᾅδης을 참조하라.

b 「『큰 바벨론은 무너졌다!』 하나님의 왕국은 통치한다!」 43면, 2, 3항을 참조하라.

c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위하여, 1965년 4월 1일호 「파수대」 『무덤으로부터 「생명의 부활」로』와 『무덤으로부터 「심판의 부활」로』라는 제목을 참조하라.

d 「게르하르트 키텔」에 의하여 독일어로 편집되고, 「지오프리 더불류 · 브로믈리」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되었다. 그것은 1964년 판이다. 「네델란드」에서 인쇄되었다.

e 대부분의 고대 「희랍」어 사본에는 고린도 전서 15:55에 「하데스」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에, 거기에 『사망』을 의미하는 「다나토스」(thánatos)란 단어가 나온다.

f 누가 복음 16:23의 「하데스」에 관한 설명이 1965년 5월 15일호 「파수대」 첫째 기사 11항에 있으니 참조하라.

g 「희랍」어 「70인역」에는 「하데스」란 말이 73회 나온다.

h 「신세계역」, 「미국 표준역」, 「영역」, 「개역 표준역」, 「미국역」에는 그렇게 되어 있으나, 「로더함 역」에는 『스올』 대신에 『하데스』로 되어 있다.

[165면 삽화]

부활되신 예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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