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1. 욥기 17:13-16은 「스올」이 낮은 곳이고 무덤이라는 것을 어떻게 표시하고 있읍니까?
이미 우리는 「하데스」 즉 「스올」이 하늘에 있지 않고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살펴 보았읍니다. (마태 11:23; 누가 10:15) 인내 깊은 사람, 고대의 「욥」도 그것이 낮은 곳에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심한 질병으로 인하여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욥」은 말하였읍니다. 『내 소망이 (「스올」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구덩이)더러 너는 내 아비라,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찐대 나의 소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 흙 속에서 쉴 때에는 소망이 (스올)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욥 17:13-16, 신세) 자, 여기에서 「욥」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정직한 독자라면 누구나 『무덤』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땅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어두운 곳이고 침상에서와 같이 누어 있게 됩니다. 그곳은 구덩이이고, 구더기가 썩어가는 시체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는 문 빗장이 있읍니다. 그것은 그 곳에 묻힌 자들이 스스로 자유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상 영국의 「제임스」왕의 「흠정역」 성서는 여기의 이 말을 「스올」이란 말 대신에 『무덤』 『구덩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읍니다.
2. 시편 141:7에서 무엇이 「스올」과 연결되어 있읍니까?
2 나무 패는 사람이 나무 조각이나 가지를 주변에 흩으는 것을 생각하면서, 시편 필자 「다윗」은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문에 흩어졌도다.』 (시 141:7, 신세) 영어 「흠정역」은 여기에서 「스올」 대신에 『무덤』이란 말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뼈들이 무덤의 입에서 그것이 묻히기 전에 흩어지기 때문에 아주 적절한 말입니다.
3. 이사야 28:15-18에서 「스올」이 무덤임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3 하나님의 원수들에 관하여 말할 때, 예언자 「이사야」는 (생명이 아니라) 사망과 「스올」을 함께 연결시켜 말하였읍니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찌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 . .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 . 너희의 사망으로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로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이사야 28:15-18, 신세) 바로 이 말 자체가 「스올」이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임을 알려 줍니다. 왜냐 하면 무덤이란 사망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4. 「스올」이 낮은 곳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사야 57:9에도 표시되어 있읍니까?
4 이사야 57:9 역시 「스올」이 낮은 곳이고, 무덤처럼 낮다고 알려줍니다. 「유대」인들의 나라 「유다」 왕국이 어떻게 다른 나라들 즉 이방 국가들을 꾀어 그와 정치적 동맹 맺고자 했는가를 말한 다음에 이 예언은 계속합니다.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 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스올)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불충실한 「유다」 왕국은 이방 국가들과의 정치적 관계에 있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몹시 낮춤으로써 그 자체를 사망의 선고를 초래하고 무덤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을 가진 독립적 국가로서의 존재가 끊어지게 되었읍니다.
5. (ㄱ) 시편 86:12, 13에서 낮은 상태가 어떻게 「스올」과 연결되어 있읍니까? (ㄴ) 시편 88:2-6이 어떻게 묘지와 구덩이와 무력한 상태를 「스올」과 연결시킵니까?
5 「스올」의 사망과 낮은 위치를 연결시켜 시편 86:12, 13은 말합니다.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영토록 주의 이름에 영화를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가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신세) 묘지와 구덩이와 그 무력한 상태를 「스올」과 연결시켜, 시편 88:2-6은 말합니다. 『나의 기도로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며 주의 귀를 나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소서 대저 나의 영혼에 곤난이 가득하며 나의 생명은 (스올)에 가까왔사오니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함께 인정되고 힘이 없는 사람과 같으며 사망자 중에 던지운바 되었으며 살륙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저희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시니 저희는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주께서 나를 깊은 웅덩이 어두운 곳 음침한 데 두셨사오며.』—신세.
6. 시편 116:3, 7-10은 어떻게 「스올」이 무덤이라는 증거를 더 줍니까?
6 성서는 그 곳에서 부활될 수 있는 「스올」 즉 「하데스」가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이라는 증거를 더 많이 제공합니다. 시편 116:3, 7-10은 말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찌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생존 세계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내가 믿는 고로 말하리라 내가 큰 곤난을 당하였도다.』 (신세) 이 말 가운데, 계속하여 「스올」을 불멸의 생명이 아니라 사망과 연결시키고 있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한 때 곤란을 당하고 있었을 때, 사도 「바울」은 시편 116:10의 말을 인용하여 고린도 후서 4:13, 14에서 예수의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에 연결시켰읍니다.
7. 사무엘 하 22:6과 시편 18:4, 5은 어떻게 「다윗」이 무덤으로 이끌려 가고 있었음을 암시합니까?
7 위와 비슷한 말을 사용하여 시편 필자 「다윗」은 그가 사망의 무덤으로 이끌려 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는 것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사무엘 하 22:6, 신세) 같은 경험을 언급하면서 시편 필자 「다윗」은 시편 18:4, 5에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스올)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신세)라고 말하였읍니다. 강포한 사망이 「다윗」 면전에서 바라보고 있었으며,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이 그에게 확실한 것같이 보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었으며, 그의 생명은 사망으로부터 그리고 「스올」 즉 「하데스」로부터 보존되었읍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의하여 사망으로부터 부활된 것과 같았읍니다.—시 18:8-19.
8. 예언자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었을 때의 그의 경험을 무엇에 비교하였읍니까?
8 예언자 「요나」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거대한 물고기에게 삼켜져서 삼일까지 육지에 토해지지 않았을 때, 이 바다의 거물의 배 속은 그에게 마치 그의 무덤과 같았읍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자는 그의 경험을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무덤의 빗장처럼]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요나 2:1, 2, 6) 삼일 동안 「요나」는 마치 무덤, 「스올」 즉 「하데스」에 죽어 있는 것과 같았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가 그 자신의 사망과 묻힘에 관하여 말씀하셨을 때, 그 사실을 보여 주셨읍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 12:40.
9. 물고기 뱃속으로부터 「요나」가 구출된 것은 무엇의 예언된 그림이었으며, 누구를 통하여 「스올」로부터 피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9 예언자 「요나」를 삼일만에 거대한 물고기 뱃속에서 기적적으로 이끌어 내신 분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같은 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충실한 예언자 예수 그리스도를 삼일만에 『땅 속에서』 이끌어 내셨읍니다. 그러므로 「요나」의 구출은 하나님의 아들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는 예언적 그림에 지나지 않읍니다. 부활되신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과 (하데스)의 열쇠』를 받았읍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데스」 즉 「스올」에 있는, 죽은 상태에 있는 모든 다른 자들을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일으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도 자신의 수단이나 마련을 통하여 사망과 「스올」 즉 「하데스」를 피할 수 없읍니다. 즉 땅속의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을 피할 수가 없읍니다.
10. (ㄱ) 시편 89:47, 48과 욥기 7:8, 9은 어떻게 「스올」에 있는 사람이 무력함을 표시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아마겟돈」 생존자들이 어떻게 「스올」로 가는 것을 피할 것입니까?
10 시편 필자 「에스라」 사람 「에단」도 명백히 이 사실을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의 때가 얼마나 단촉한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인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누가 살아서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그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지리이까?』 (시 89:47, 48, 신세) 그런 까닭에, 오늘날 헌신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다가오는 「아마겟돈」 전쟁을 살아 남아 땅의 의로운 새 질서에 들어가는 자들은 결코 죽지 않을 기회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하나님의 보존의 기적적 권능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죽어서 「스올」 즉 「하데스」에 묻혀 있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썩어 있는 사망의 장소에서 나올 수 없읍니다. 치명적인 병에 걸린 예언자 「욥」은 사람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음을 슬픔 가운데서 말하였읍니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찌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 구름이 사라져 없어짐같이 (스올)로 내려가는 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할 것이오니.』—욥 7:8, 9 신세.
11. (ㄱ) 시편 49:7-10은 부자가 무슨 능력이 없음을 알려 줍니까? (ㄴ) 15절은 무슨 기적 때문에 하나님께 신뢰를 두었음을 알려 줍니까?
11 오늘날 지상의 으뜸가는 사람의 모든 부로도 그 자신이 사망과 무덤에 가는 것을 면제받을 수 없으며, 그 자신을 위해서나 가장 가까운 친척을 위해서나 「스올」 즉 「하데스」로부터의 부활을 위하여 값을 지불할 수 없읍니다. 시편 49:7-10은 이 사실을 말하였읍니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 저가 보리로다 지혜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의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물질주의적 부자와는 달리,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신뢰를 두었으며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구속하시리로다.』—시 49:15, 신세.
12. (ㄱ) 시편 30:2, 3에서 「다윗」은 무엇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읍니까? (ㄴ) 「한나」는 사무엘 상 2:6에서 여호와의 무슨 능력을 언급하였읍니까?
12 시편 필자 「다윗」이 죽어서 묻힐 것이 확실하게 보였던 병으로부터 회복되었을 때, 그는 감사함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찬양하였읍니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 내어 나를 살리사 무덤으로 내려가지 않게 하셨나이다.』 (시 30:2, 3, 신세) 「다윗」의 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일찍 사망과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 하신 것과 꼭 같이 부활을 통하여 「스올」 즉 「하데스」로부터 죽은 자를 또한 일으키실 수 있읍니다. 예언자 「사무엘」의 어머니 역시 같은 사실을 지지하여,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2:6, 신세)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같은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여호와를 찬양하였읍니다.—누가 1:46-55.
죽었는가, 의식을 가지고 살았는가?—어느 쪽인가?
13. 참된 의미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 많은 성서 번역가들이 「스올」과 「하데스」를 영어로 번역합니까?
13 이처럼 성서의 증거는 그에 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매우 풍부하고, 명백하고 그리고 단순합니다. 성서의 「스올」 즉 「하데스」는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입니다. 그런 까닭에, 많은 성서 번역자들이 이 두 낱말을 영어로 『무덤』(a grave 가 아니라 the grave)이라고 번역하였읍니다. 「흠정역」 즉 「제임스 왕 역」은 「히브리」어 「스올」을 31회를 『무덤』(the grave), 3회를 『구덩이』(the pit)로 그리고 한번 (고린도 전서 15:55의) 「희랍」어 「하데스」를 『무덤』(grave)으로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나 세기를 통하여 기독교국의 종교적 교직자들은 「하데스」가 불의 고통받는 장소라고 가르쳐 왔읍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질문은 이러합니다. 「스올」 즉 「하데스」에 죽어 있는 사람의 상태는 어떠한가? 그들이 불멸자로서 의식을 가지고 살아 있는가? 혹은 실제로 죽어 있고 아무런 존재도 없는가? 기독교국의 교직자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말씀인 성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해 줍니까?
14, 15. 전도서 9:4-6, 10에 의하면, 「스올」에 있는 자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읍니까?
14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히 지혜를 받은 「솔로몬」 왕의 말 전도서 9:4-6, 10에서 그 대답을 찾아 볼 수 있읍니다.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무릇 산 자는 [개같을지라도]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심지어 사자같을지라도] 아무 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신세.
15 이 말에 의하면, 「스올」에 죽어 있는 사람은 실제로 죽어 있어야 하며, 심지어 『중간 존재』도 있을 수 없읍니다. 확실히 그들은 죽어 있어야 하며, 존재할 수 없읍니다. 그들이 『아무 것도 모』른다면, 강한 감정인 사랑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졌다면, 그리고 그들이 지혜도 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고 또한 일도 계획도 그들에게 없다면, 죽어 있음이 분명합니다. 「스올」에 있는 자들을 『죽은』 자라고 말하고, 항상 「스올」과 생명을 관련시키지 않고 사망을 관련시키고 있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16. (ㄱ) 시편 6:4, 5에 의하면, 「스올」에서는 누구에 관하여 말하거나 생각할 수 없읍니까? (ㄴ) 이사야 38:17-19에 의하면, 「히스기야」 왕이 왜 서른 아홉살 때 죽기를 원치 않았읍니까?
16 「스올」에 있는 죽은 자들은 심지어 하나님을 생각할 수도 없으며 그에 관하여 말할 수도 없읍니다. 하나님을 경외한 시편 필자 「다윗」이 기도한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스올)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시 6:4, 5, 신세) 서른 아홉살 때 죽음으로부터 보호되었을 때, 「히스기야」왕은 이와 같은 생각을 표현하였읍니다. 『주께서 나의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나의 모든 죄는 주의 등뒤에 던지셨나이다 (「스올」이)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이사야 38:17-19) 십 오년 후에 「히스기야」 왕은 죽어서 「스올」에 갔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여호와를 찬양할 수 없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그의 하나님께 바랄 수 있는 의식도 잃게 되었읍니다. 하지만 그는 「스올」에서 부활될 소망을 가지고 죽었읍니다.
17. 시편 139:7, 8과 잠언 15:11은 어떻게 죽은 자가 아직도 살아있고,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의미에서 죽어 있다고 하는 교직자들의 가르침이 정확하지 않음을 증명합니까?
17 이렇게 되면,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이 그래도 「스올」 즉 「하데스」에 있는 자들이 불멸자로서 살아 있고,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만 죽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시편 필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께 말한 것으로 보아 그가 기독교국의 교직자들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 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7, 8, 신세) 그 사실을 확증하여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은 잠언 15:11에서, 『(「스올」과) 유명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인생의 마음이리요?』 (신세)라고 말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것과 꼭같이, 「스올」에 있는 자들도 아십니다.
18. 하나님의 영이 이를 수 있음에 관하여 아모스 9:1, 2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8 여호와 하나님의 영 즉 활동력이 모든 곳 심지어 「스올」에도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아모스 9:1, 2의 예언은 말합니다. 『그 중에서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며 그 중에서 하나도 피하지 못하리라 저희가 파고 (스올)로 들어 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서 취하여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취하여 내리울 것이며.』 (신세) 여기에서 하늘은 높고 「스올」은 깊기 때문에, 하늘을 「스올」과 대조하였읍니다. 사람이 어떻게 「스올」을 파들어 갈 수 있었읍니까? 「스올」이 단지 사람이 살아있고, 무덤을 팔 수 있는 땅에 있기 때문입니다.
19. 「스올」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에 관하여 욥기 26:5-7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9 「스올」 즉 「하데스」에 있는 자들이 여호와의 지식이나 권능이 미치지 못한 곳에 있지 않읍니다. 이 사실을 치명적으로 병든 「욥」이 강조하여, 땅의 창조주를 말할 때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읍니다. 『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하나님 앞에는 (스올)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그로부터] 가리움이 없음이니라 그는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며.』 (욥 26:5-7, 신세) 그러므로 「스올」은 하나님의 눈으로부터 죽은 자를 덮어 감출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앞에 드러나 있으므로 그가 누구인가를 아십니다.
20, 21. 「스올」에 있는 자들에 관한 무슨 사실 때문에, 「욥」은 하나님께서 그를 거기에 숨겨 주도록 욥기 14:12-15에서 기도하였읍니까?
20 서력 기원 전 십 육 세기로 소급하여, 인내 깊은 「욥」은 「스올」에 죽어 있는 자들이 실제로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스올」에 있는 자들은 고통도 모르며, 심지어 쾌락도 느끼지 못하며, 전혀 의식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욥」은 이치적으로 그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질병이 곧 죽음으로 끝나고, 「스올」에 눕게 되어, 응시하는 사람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였읍니다.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읍니다.
21 『사람이 누우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이 없어지기까지 눈을 뜨지 못하며 잠을 깨지 못하느니라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가 쉴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기한을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나는 나의 싸우는 모든 날 동안을 참고 놓이기를 기다렸겠나이다 주께서는 나를 부르셨겠고 나는 대답하였겠나이다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셨겠나이다.』—욥 14:12-15, 신세.
22. 욥기 14:12-15의 말로 미루어 볼 때 「욥」이 「스올」이 『불귀의 땅』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22 이 말로 판단할 때, 「스올」(「70인역」에는 「하데스」)이 「욥」에게 『불귀의 땅』은 아니었읍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에 의하여 잊어 버린 바 되고 버림받은 곳이 아니었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욥」의 하나님께서는 「스올」에 있는 자들을 기억하셨읍니다. 그리하여 그의 정하신 때에, 인류의 보통 무덤에 있는 자들을 불러 일으키시고, 마치 사람이 보통 잠에서 깨듯이 그들을 죽은 상태로부터 깨어 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인내깊은 병자 「욥」은 그 때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취하시어 육체적으로 심한 그의 고통을 그치게 하시고, 그를 「스올」의 죽음 가운데 두시기를 기뻐했었읍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노하셨다고 생각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스올」에 묻어 숨기시고, 하나님의 진노가 지나갈 때까지 비밀리에 보존하셨다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스올」에 있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은혜로운 상태 아래 그를 사망에서 생망으로 부활시켜 주실 것을 원했읍니다.
23. 부활의 때에 「욥」은 누구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까? 「에스겔」과 「야고보」가 「욥」에 관하여 어떠한 은혜로운 말을 하였읍니까?
23 요한복음 5:28, 29의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죽은 「욥」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 그 부름에 응할 것이며, 기억 무덤으로부터 부활을 통하여 나올 것입니다. 「욥」이 「스올」에 간지 약 구백년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예언 14:14, 20에서 은혜롭게 그에 관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리스도인 제자 「야고보」 역시 「욥」을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인내의 본으로서 말하였읍니다.—야고보 5:11.
24. 지금까지 우리가 「스올」 즉 「하데스」에 관하여 살펴 온 바는 그 가운데 있는 자들의 상태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까?
24 지금까지 「파수대」 독자인 우리들은 「스올」 즉 「하데스」에 관한 문제의 단지 그 일부분만을 살펴 보았읍니다. 그러나 성서가 「스올」에 있는 자들에 관한 격려적인 소망을 주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죽은 모든 사람들은 실제로 죽었으며, 의식이 있거나 반 의식(半意識)을 가지고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 존재하지 않읍니다. 성서적으로 「스올」 즉 「하데스」는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무덤 즉 하나의 기억 무덤이 아니라, 땅 속에 누어 있는 셀 수 없이 무수한 인류의 보통 무덤입니다. 인류가 계속 죽어 가서 묻힘에 따라서 그것은 계속하여 확대되어 가고 있읍니다. 그것은 셀 수 없이 많은 수이지만, 결코 만족하지 않은것같읍니다.
단 하나의 「스올」 즉 「하데스」
25. 잠언 30:15, 16과 아가 8:6은 「스올」 즉 「하데스」의 불만족에 관하여 어떻게 해설합니까?
25 옛날의 현명한 왕은 이 사실을 관찰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세넷이 있나니 곧 (스올)과 아이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이니라.』 (잠언 30:15, 16, 신세) 「스올」이 유죄선고 받고 죽어 가는 인류에게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강한가에 관하여, 현명한 이 사람은 전적 헌신에 고착하는 사랑과 그것을 비교하였읍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스올)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아가 8:6, 신세) 사망은 유죄 선고받은 인류의 생명을 요구하고, 「스올」은 그들의 몸을 요구합니다.
26. (ㄱ) 고대 「바벨론」왕의 영혼에 가득찬 욕망을 하박국 2:5은 무엇과 비교하였읍니까? (ㄴ) 이사야 5:14, 15이 「스올」을 어떻게 묘사했으며, 그 이유는?
26 더 많은 나라들과 백성들을 정복하려는 고대 「바벨론」왕의 영혼에 가득찬 욕망을 더 많은 죽은 희생물을 원하는 「스올」의 욕망과 비교하였읍니다. 「바벨론」이 지배적 세계 강국이 되어 가는 도상에서 「예루살렘」을 위협했을 때, 여호와의 예언자 「하박국」은 통치하는 「바벨론」 왕조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그는 술을 즐기며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스올)처럼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나니.』 (하박국 2:5, 신세) 상징적으로 말하여, 「스올」은 큰 입을 가지고 있으며, 한꺼번에 많은 것을 취해 들입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관한 지식의 부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기 때문에,] (「스올」이) 그 욕망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예루살렘」의]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연락하는 자가 거기 [「스올」에] 빠질 것이라.』—이사야 5:14, 15 신세.
27. (ㄱ) 「하데스」와 개개인의 매장지를, 수에 있어서,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읍니까? (ㄴ) 그러한 많은 무덤이 없어졌지만, 「스올」은 어떠합니까?
27 「스올」 즉 「하데스」가 땅 속의 죽은 사람의 보통 무덤이기 때문에, 많은 무덤이 있는 데 비하여, 단 하나의 「스올」 즉 「하데스」를 성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아주 적절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자 「모세」에 대하여 불평하였을 때, 그들은 많은 무덤에 유의하였읍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출애굽 14:11) 약 구세기 후에, 예언자 「에스겔」은 「바벨론」으로 추방되어 그들의 소망이 죽은 것같이 보인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에스겔 37:12, 13) 그렇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매장지 즉 무덤을 파 왔읍니다. 그 중 많은 무덤의 흔적이 없어졌읍니다. 그러나 하나의 「스올」 즉 「하데스」는 남아 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계속하여 죽어가는 인류 때문에 더 커져 가고 있읍니다.
28. 「스올」 즉 「하데스」의 존재에 관하여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서 신뢰할 만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읍니까?
28 하지만, 탐욕적인 「스올」 즉 「하데스」가 계속해서 사람의 육체를 영원히 삼킬 것입니까? 인간 희생물을 항상 붙잡고 있을 것입니까? 「아담」의 후손을 영원히 이길 것입니까? 인류가 우리의 처음 아버지인 죄많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아 온 사망에 대하여 영원히 증거할 것입니까? 이 질문들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유일의 대답들을 우리는 인류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읍니다. 그는 호세아 13:14의 예언 가운데 그 대답을 해주십니다. 『내가 저희를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네 목전에 숨으리라.』—신세.
29. (ㄱ) 「미국역」과 같은 어떤 성서 번역가들은 호세아 13:14을 어떤 형식으로 번역하였읍니까? (ㄴ) 하지만 그러한 성서 번역들이 대답하지 않고 남겨 놓은 어떠한 질문이 있읍니까?
29 어떤 성서 번역가들은 호세아 13:14을 네가지 질문 형식으로 번역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미국역」을 봅시다.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구출해야 할 것인가? 내가 그들을 사망에서 구속해야 할 것인가?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무엇이냐?』 이 귀절을 읽은 다음의 이치적 대답은 처음 두 질문에 대하여는 「아니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을 「스올」의 손 즉 권세에서 구출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사망으로부터 회복시키시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는 동정심이나 뉘우침을 나타내시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불순종한 자들이 죽어서 「스올」의 탐욕적인 손에 붙잡혀 가도록 버려두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재앙이 어디 있으며, 「스올」의 멸망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스올」과 사망이 와서 재앙을 내리고 불순종한 자들을 멸망시키도록 버려 두십시오. 하지만, 이 「미국역」 호세아 13:14은 아직도 의문을 남겨 놓읍니다. 사망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스올」이 그들을 멸망시킨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관하여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망과 「스올」의 권세에 영원히 버려두실 것입니까? 혹은 하나님께서 그의 정하신 때에 그들을 부활시키실 것입니까?
30, 31. (ㄱ)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5:54-57에서 누구에게 유리하게 대답합니까? (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승리가 올 것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다음 연구를 기대할 것입니까?
30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유리하게 대답해 줍니다. 부활에 관한 그의 놀라운 장의 절정에서, 「바울」은 대답합니다.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이사야 25:8에]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죄요 죄의 권능은 [「모세」를 통하여 주시고, 모든 인류를 범죄자로서 비난하는]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 전 15:54-57)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망을 삼키실 수 있으며, 영원히 그 승리를 무효케 하실 수 있읍니다. 그는 십 구세기 전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과 「스올」로부터 일으키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보여 주셨읍니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의 약속의 왕국에서 통치하는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반 인류를 부활시키실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이 됩니다.
31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가는 소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우리의 토론의 다음 제목을 기대할 것입니다. 그 제목은 「누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될 것인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