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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화 재료로 좋은 기초 위에 세운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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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화 재료로 좋은 기초 위에 세운 건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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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7
파67 3/1 99-105면

방화 재료로 좋은 기초 위에 세운 건물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린도 전 3:13.

1. 부가적인 비용을 들여서 건물에 사용한 방화 재료는 어떻게 그 가치를 발휘합니까?

값진 건물은 방화공사(防火工事)를 하기 때문에 매우 안전하고 불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물들은 대부분 방화재료(防火材料)를 사용해서 건축합니다. 만일 방화공사를 한 건물 내에서는 불이 난다 하더라도 그 불은 건물 전체에 퍼져 전체 건물을 불태워서 재로 만들어 버리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큰 불이 이웃집에서 난다면 약간 외부가 그슬고 불에 탄 냄새가 나겠지만, 방화 공사를 해 둔 건물은 건물 구조 그 자체로서는 전과 같이 서 있을 것입니다. 건물에 사용된 방화 재료는 이리하여 그 가치를 발휘하며, 부가적으로 들인 노동력과 돈은 제 구실을 다하게 됩니다.

2. 「전국 건축 규정령」(미국)에 의한 방화 건물의 분류는 건축 재료의 중요한 역할을 어떻게 강조합니까?

2 그러므로 「전국 건축 규정령」(미국)에 일치하게 집을 지은 사람은 그만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그 규정령의 분류에 의하면 방화 건물이란 다음과 같읍니다. 『건물이 방화구조(防火構造)로 된 것으로서 외부 벽과 기둥, 벽을 버티는 「거더」와 「트러스」는 4시간의 내화력 (耐火方), 마루와 벽은 3시간의 내화력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무게를 버티는 모든 외부와 내부 벽들은 석조(石造)와 철근 「콘크리트」로 되어 있다.』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 1956년판 2권 246면, 제목 『방화』) 어떠한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라 할지라도 건축 재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3, 4. 어떠한 요소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의 전을 멸망시켰으며 어떻게 그 일이 일어났읍니까?

3 인간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값비싼 건물의 하나가 불에 타 버렸읍니다. 그 건물은 「헤롯」 대왕이 과거 「예루살렘」의 「솔로몬」왕이 그의 웅대한 성전을 지었던 동일한 지대에 세운 전이었읍니다. 「솔로몬」의 성전 역시 불에 타 버렸읍니다. 천 구백년 전 「헤롯」왕이 세운 전의 멸망에 관해서 한 「백과사전」a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4 『기원 70년 「유대」인이 「로마」에 최후 항거를 하는 동안 성전은 결전(決戰)의 최후 장소였다. 「로마」 군대는 「안토니아」 탑에 서 성역(聖域)으로 돌진하였다. 성역 내의 회관들은 이미 「유대」인들에 의해 불타고 있었다. 한 「로마」군인이 성전의 북부 부속 건물에 햇불을 던진 것은 [「로마」장군] 「티투스」의 뜻이 아니었다. 「티투스」 장군은 그 불을 끄려고 하였으나, 전체 건물이 타 버렸다. . . . [「유대」인 역사가 「플레비우스」] 「요세퍼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것에 관련된 이 기간의 정확성을 알 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동일한 달 동일한 날 [「아브」라고 불리우는 다섯째 달 10일]에 성전은 그 전에 「바빌로니아」 인들에 의해 불타 버렸기 때문이다. 「솔로몬」왕이 그 기초를 처음 놓은 때부터 「베스파시안」 [황제]통치 제2년인 지금 일어난 그 멸망까지를 햇수로 따지면 천 백 삼십년 하고 일곱달 15일이 된다. [「바사」]왕 「고레스」 제2년에 「학개」에 의한 재건으로부터 「베스파시안」황제 때의 멸망까지는 육백 삼십구년 사십오일이 된다.」』

5. 「솔로몬」왕의 성전은 어떻게 멸망되었으며, 누구에 의해서 멸망되었읍니까?

5 정복자 「바벨론」 왕에 의하여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에 있는 「솔로몬」의 성전이 멸망된 것에 관하여 성서의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니라.』—역대 하 36:19; 예레미야 52:12-14.

6. (ㄱ)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들이 멸망될때 왜 여호와의 어떠한 형상도 타지 않았읍니까? (ㄴ) 여호와의 숭배를 위하여, 현재 무엇이 건축 중이며, 어떠한 건축 규정령에 따라 지어지고 있읍니까?

6 「예루살렘」 성전에서 숭배받으시던 하나님의 어떠한 조상(彫像)이나 형상(形像)도 불에 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숭배받으시던 하나님께서는 숭배자들이 어떠한 우상도 만든는 것을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20:1-6) 더 나아가서 그 성전에서 숭배받으신 하나님께 대한 숭배는 그러한 물질적 성전이 멸망한 후에도 생존하였고,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실제에 있어서 번창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이곳 땅위에서 숭배받으시기 위한 어떠한 물질적 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숭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역사상 가장 웅장한 전을 건축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66:1; 열왕 상 8:27-30; 사도 17:24-28) 이 전은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전은 방화 재료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전은 세상에 임박한 고난의 때의 불 가운데서도 그슬리지 않을 것이며, 이 전은 그것을 겪음으로 더욱 영광과 미가 커질 것입니다. 이전의 설계와 재료에 있어서, 이 전은 어떠한 지상국가의 「건축 규정령」이나 방화 규정령에 일치하지 않읍니다. 이 전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최고 설계자의 건축 규정령에 일치하고 있읍니다. 이 전은 그가 일일이 지적하시고 공급하실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읍니다.

7. 여호와의 영원한 전의 건축 기간은 「헤롯」의 전과 성 「베드로 바실리카」의 건축 기간과 어떻게 비교 됩니까?

7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건축된 어떠한 다른 건물에 바쳐진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이 전을 지어 오고 계십니다. 「헤롯」의 전에 관하여 1900년 전 「유대」 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다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2:20) 「로마 가톨릭」의 주요 건물인 「바티간」시에 있는 성 「베드로 바실리카」는 4세기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 기초가 놓였는데 16세기 신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시대에도 계속 건축중이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숭배의 영원한 전을 제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지어 오고 계시는데 19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완성이 가까와 오고 있읍니다.

동료 건축자들

8. (ㄱ) 성전 건축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ㄴ) 「바울」은 이 점을 어떻게 논증하였으며, 동시에 회중 내의 파벌주의에 대하여 어떻게 경고하였읍니까?

8 하나님께서는 방화 재료로 그의 전을 건축하는 데 기쁨으로 이 땅에 있는 동료 건축자들을 사용해 오셨읍니다. 당신도 이 전 건축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료 건축자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그러한 건축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과 친하며 웅변가인 그리스도의 제자 「아볼로」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는 「애굽 · 알렉산드리아」사람으로서 개종한 「유대」인이었읍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에 관하여 「희랍」의 고대 도시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편지하면서 그들에게 어느 종교가를 추종하는 파벌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하였읍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 전 3:4-9.

9. 예를 들어 「바울」은 「고린도」 회중에 대하여 어떻게 심는 자가 됩니까?

9 물을 주기 전에 심어야 합니다. 심는 자로 비유된 사도 「바울」은 일의 시작 즉 착수하는 일을 하였읍니다. 그는 그리스도교를 위한 개척 사업을 한 것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도 역시 마찬가지였읍니다. 「바울」이 선교인으로서 그곳에 도착하자 그는 회당에서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야」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바울」은 후에 믿는 「유대」인들을 회당 옆집에 있는 집회 장소로 옮겨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바울」은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그의 온 가족에게 그리고 「가이오」라는 신자와 「스데바나」의 온 집안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었읍니다.

10. 「아볼로」는 어떻게 「바울」이 「고린도」에 심은 것에 물을 주게 되었읍니까?

10 그곳에서 1년 반 동안 그리스도교를 가르친 다음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면 안될 일이 일어났읍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그는 소 「아시아」에 있는 「에베소」에 들러서 같이 여행하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그곳에 남겨 놓고 떠났읍니다. (사도 18:1-22; 고린도 전 1:13-16) 후에 그리스도교에 관하여 일부만 공부한 「아볼로」가 「에베소」에 와서 회당에서 전파하였읍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그와 알게 되었고 그리스도교를 더욱 온전하게 설명 해주었읍니다. 이제 「아볼로」가 「아가야」(희랍)로 가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그에게 추천서를 주어 보냈읍니다. 그리하여 「아볼로」가 「고린도」 회중과 접촉하게 되었고 그는 그들 사이에서 도움이 되었읍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그는 사도 「바울」이 심어 놓은 곳에 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18:24–19:1) 그러나 누가 자라게 하였읍니까? 하나님이셨읍니다.

11. (ㄱ) 「고린도」에서 일함으로 「바울」은 사실상 무엇을 심었읍니까? (ㄴ) 자라나게 하신 분은 누구였으며, 산물이 증가하는 밭은 누구의 것이었읍니까?

11 「바울」이 「고린도」에 심은 씨는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인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었읍니다. 이 경우는 예수의 밀과 잡초(가라지)의 비유와 같았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밭은 [인류]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라].』 (마태 13:38) 「바울」은 단순한 그리스도교 진리가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전파하고 심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에게 명령하신 바와 같이 「제자들을 삼았」던 것입니다. (마태 28:19, 20) 「바울」은 하나님의 동료 일군이었기 때문에 「바울」이 믿고 침례받은 「고린도」인들의 회중에게 『너희 [사람들]는 하나님의 밭이』라고 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읍니다. (고린도 전 3:9) 사실상 그 회중의 수가 그리스도인들로서 자라 가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읍니다. 사실상 그들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읍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생명을 주는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동역자(同役者)에 불과하였읍니다. 「바울」은 그 기쁜 소식을 하나님께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자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밭은 사실상 「바울」의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참되고 정당한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축복과 영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바울」이나 「아볼로」의 모든 일은 아무런 결과도 없었을 것입니다.

12, 13. (ㄱ) 이러한 사실들은 종파를 세우는 문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칩니까? (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전도인을 가지도록 되었으며, 제자로서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마땅합니까?

12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장이나 존재에 대한 공은 「바울」이나 「아볼로」에게 돌아 갈 일이 아니었읍니다. 또한 「고린도」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들도 「바울」이나 「아볼로」의 추종자가 되어야 할 의무가 없었읍니다. 그들은 단순히 「고린도」인들이 믿게 되도록 사용된 『일군들』 즉 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그리스도인들로 존재하고 장성으로 자라게 하실 능력을 가지고 계신 단 한 분이시며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추종자 혹은 제자들이 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교파를 만들어서 탁월한 인물을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편협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이나, 모든 인류를 다 합한 것보다도 훨씬 크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군으로 사용하시는 자들도 하나님의 것이요, 그러므로 모든 것을 분석해 보면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13 우리는 어느 전도인에게 속하여있지 않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다만 한 전도인만 갖게 되어 있지 않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전도인들의 전도 봉사를 즐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베드로]나 [인류]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린도 전 3:21-23)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를 위한 그의 특별한 전도인들에 대한 그의 소유권을 인정함으로 하나님을 따르십시다.

『하나님의 집』

14. (ㄱ)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하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농부 외에 또 무엇으로 비유되십니까? (ㄴ) 따라서 하나님의 동역자들은 또한 무엇이며,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라는 점 외에 또 오늘날 무엇이 될 수 있읍니까?

14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하나님의 사업은 농사에뿐 아니라 또한 건축에도 비유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은 집의 건축자이시며, 설립자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동역자』라면 우리는 또한 건축자들이 아니면 안됩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사람들]는 . . . 하나님의 집』이라고 상기시킨 사실을 우리는 피할 수 없읍니다. (고린도 전 3:9) 이 말의 사상을 파악하였읍니까? 『너희[사람들]』가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처음 인간 창조물인 「아담」의 후손이라는 것 외에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建築)며, 우리는 독특한 종류로서 하나님의 집의 일부라는 것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온 인류는 하나님의 처음 인간 창조물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집』이 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됩니까?

15, 16. (ㄱ) 건축 사업에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지상에 있는 누구를 사용하십니까? (ㄴ) 모든 사람이 동일한 역할을 합니까, 그리고 「바울」은 이 사실을 고린도 전 3:10, 11에서 어떻게 밝혀 줍니까?

15 하나님께서는 이 건축 사업에 기쁨으로 인간 『동역자들』을 사용하십니다. 이 사업에서 인간 동역자는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건축 사업에 있어서 모든 동역자들이 같은 역할을 하거나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군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과분하신 친절을 베푸심으로써 더욱 탁월한 즉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맡은 특수한 일을 이해하였고 인식하였읍니다. 그는 이 책임을 지려고 하였고 그에게 부가된 가외의 의무, 끊임없는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특히 「고린도」 회중에 관련된 그의 특수한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16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린도 전 3:10, 11.

17.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의 한 사람으로서, 「바울」은 건물의 어떤 부분에 특히 관심두었으며, 계시 21:9-14는 그것이 적절함을 어떻게 보여줍니까?

17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건축 계획에 있어서 한 부분을 담당하였읍니다. 그는 마치 공사 감독』 혹은 우두머리 건축자 혹은 우두머리 기술자의 역할을 하였읍니다. 그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바울」은 밑바닥에서부터 건축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지혜로운 공사 감독으로서 건물의 기초(基礎)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회중의 기초 공사와 관련이 있었읍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21:9-14 을 보면 그리스도 아래 있는 회중은 한 도시 즉 새 「예루살렘」으로 비유되었는데 이 상징직 하늘의 도시의 기초는 사도들 즉 『어린 양의 십이 사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1, 2) 「바울」이 그리스도인 건축 계획의 기초를 닦는 일에 항상 가담하려고 노력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읍니다. 그는 아무도 일하지 않은 새로운 구역올 개척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18. 기쁜 소식을 가지고 그가 일하는 구역에 관하여 「바울」은 「로마」인들에게 무엇이라고 편지하였읍니까?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 (지금의 「유고슬라비아」)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로마」인들]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반아」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로마 15:18-24.

19. 건물의 중요한 부분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바울」은 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음을 어떻게 보였읍니까?

19 이와 같이 「바울」은 다만 어려운 일을 하는 것뿐 아니라 일을 시작하는 즐거움과 그 다음에 그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가졌읍니다. 그는 건축자가 그릇된 방향으로 혹은 좋지 않은 터위에 일을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는 올바르고 선한 기초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인식하였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만물의 건축자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에게 다음과 같이 기초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읍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찌니라 누가 그 도량을 정하였었는지 누가 그 준승을 그 위에 띄웠었는지 네가 아느냐 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욥 38:4-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튼튼한 기초의 중요성을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셨읍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히되 잘 지은 연고로 능히 요동케 못하였느[니라].』—누가 6:47, 48.

기초

20. (ㄱ)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누구의 설계서를 존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됩니까? (ㄴ) 왜 하나님의 동역자는 「바울」이 닦아 놓은 기초 외의 다른 기초를 닦아 놓을 수 없었읍니까?

20 어떤 사람이 건축주(建築主)이시며 건물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설계서를 무시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는 없읍니다. 그 건물이 서게 될 터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기초만을 인정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그 기초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읍니다. 그가 「고린도」 회중을 세웠을 때에, 이것은 그가 하나님과 일치하게 일하고 또 그가 한 일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 위하여 놓은 기초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다른 모든 동역자들은 「바울」이 닦아 놓은 그 기초를 인정하고 그 기초 위에다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즉 다른 기초를 닦아 놓고 그 다른 기초 위에 건축물을 옮겨 놓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이 닦아 둔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 3:11) 이 기초는 주 예수께서 사도 「베드로」에게 『이 반석 위에 나는 내 회중을 세울 것이요 「하데스」의 대문들이 그것을 압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반석이었읍니다.—마태 16:18, 신세.

21. 물의 침례에 있어서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에 놓았읍니까?

21 개척자인 「바울」은 「고린도」 회중에 관하여 『내가 터를 닦아 두』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고린도 전 3:10)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았읍니까? 「바울」이 전도하기 위하여 「고린도」에 처음 갔을 때 그는 「시몬 베드로」 즉 「게바」나 웅변가인 「아볼로」나 심지어 자기 자신을 전파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아무도 침례를 주지 않았읍니다. 그는 도전을 받았을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전 1:15)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지 얼마 안 있다가 그는 「에베소」에 머무르면서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사도 19:1-7) 그러므로 그는 「고린도」에서도 같은 이름으로 침례를 주었읍니다.

22, 23. (ㄱ) 「고린도」에 있는 「유대」인들과 함께 일할 때, 「바울」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았읍니까? (ㄴ)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석이시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제자들에게 무엇이 되셨읍니까?

22 사도 「바울」은 우리가 죄와 사망으로 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놓았읍니다. 「고린도」에서 있었던 「바울」의 파이오니아 사업에 대한 기록은 명백히 말해 줍니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희랍]인을 권면하니라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 다 밝히 증거하[니라].』 (사도 18:1-5) 멀리 이교 「희랍」 철학의 본 고장에서도 「바울」은 지혜있다 하는 이교도들이나 세상적으로 현명하다는 철학과 예수 그리스도를 혼합시키려 하지 않고,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인간 희생으로서 형주(刑柱)에서 죽임을 당하셨음을 전파하였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3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형주]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 [희랍]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 . .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 [비 「유대」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너희는 하나님께로 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여호와]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하려 함이니라.』—고린도 전 1:17, 22-25, 30, 31; 예레미야 9:24.

24. 「고린도」와 같은 이교 철학의 본거지에 갔을 때 「바울」은 누구를 계속 전파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4 「바울」이 기쁜 소식을 전도하기 위하여 「고린도」에 갔을 때에 그는 이교 「희랍」 사람들의 세상적 지혜에 위압당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희랍」 철학과 경쟁하고 그가 이교 철학자들보다 더 현명함을 나타내어 자기의 추종자를 얻기 위하여 이 세상적 방법으로 그의 지식을 과시(詩示)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세상적 지혜와 인간의 이론과 철학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곳에 온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 회중을 위한 기초로 놓기 위함이었읍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 2:1-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 . .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

25. 「고린도」의 「바울」과 같은 경우에, 개척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느낄지도 모르며, 그리나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읍니까?

25 그러므로 오늘날 개척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의 철학적 지혜의 본거지에 들어갈 때는 떨리고 매우 약함을 느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영과 능력을 나타낼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읍니다.

26. (ㄱ) 주께서는 「고린도」에 있는 「바울」을 어떻게 격려하셨으며, 그래서 그는 무엇을 하였읍니까? (ㄴ) 「고린도」 회중이 그후 여러 해 동안 견고히 서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26 주께서 「고린도」에 있는 「바울」을 격려하실 필요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 (사도 18:9-11)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적으로 지혜있다 하는 이교 철학에 의해 패주당하지 않았읍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세워놓은 회중은 여러해 후에 「바울」이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첫째와 둘째 편지를 써보낼 때도 존재했고 계속 번영했읍니다. 그 회중은 올바른 기초 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 회중은 튼튼히 서 있을 수 있었읍니다.

[각주]

a 「맥클린톡과 스트롱」 공저 「성서, 신학, 종교, 문학 백과사전」 10권 252면 1항 참조. 「플레비우스 요세퍼스」저 「유대인의 전쟁기」 4권 4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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