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맺는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만족을 나타낸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디모데 전 6:8.
1. (ㄱ)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물질적 소유에 대한 그의 태도에 어떠한 영향을 끼칩니까? (ㄴ) 이 문제에 관하여 히브리 13:5에는 어떠한 적절한 충고가 기록되어 있읍니까?
참다운 성서적 그리스도인들은 이따금씩 숭배의 장소에 건성 갔다가, 돌아온 다음에는 이 세상의 사람들과 꼭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전 인생관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라는 사실로 깊은 영향을 받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고 행동하였던 그 일들을 명심하고 있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합니다. 그 이유 때문에 만일 그들이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물질주의가 횡행하는 주위 세상의 인생관을 가지지 않읍니다. (요한 17:16) 그들은 물질적 소유를 영적 보물보다 더 높게 여기지 않읍니다. 당신의 경우도 그러합니까?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이라면 히브리 13:5에 기록된 충고를 명심하고 계십니까? 그 충고는 이러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줄로 알라.』
2. (ㄱ) 홍수 전에, 사람들은 「노아」가 전파하는 소식에 무관심함을 어떻게 나타냈으며, 그 동일한 태도가 오늘날에도 명백히 보입니까? (ㄴ) 그러한 냉담이, 『있는바를 족한줄로 알라』는 말의 의미입니까?
2 현재 『있는 바를 족한줄로』안다는 것은 그의 생활 처지에 대해서 무관심한 것을 의미하지 않읍니다. 또한 그가 영적 일에 있어서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홍수 전 사람들과 같지 않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를 통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냉담하게 그 경고를 『깨닫지 못하였』읍니다. 즉 그 경고에 주의하지 않았읍니다. 그 결과 그들은 「노아」가 전파하는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식으로 계속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딸을 시집보냈」읍니다. (마태 24:38, 39) 그들은 임박한 세계적인 멸망을 진정으로 믿지 않음을 그들의 행동으로 나타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동일한 태도가 우리 시대에 유행할 것을 예언하셨고, 사실 현실정이 그러합니다. 영적 문제에 대한 그러한 불경한 냉담과 경건한 만족을 혼동하여서는 안됩니다.—누가 17:26-30.
3. 왜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현 악한 사물의 제도를 만족하게 여길 수 없읍니까?
3 그리고 『있는 바를 족한줄로 알라』는 사도 「바울」의 영감받은 충고는 그가 현 악한 사물의 제도를 만족하게 여겨야 됨을 의미하지도 않읍니다. 이 사물의 제도는 죄로 가득차있고, 죄의 열매인 질병과 고통과 죽음으로 더럽혀져 있읍니다. 이 사물의 제도는 『돈을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이 조장하는 부정직을 행하는 사람들로 뛰어나 있읍니다. 이 사물의 제도는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5)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찌 그러한 사태에 만족할 수 있겠읍니까?—갈라디아 1:4.
4. (ㄱ) 그러면 성서에서 우리에게 가지라고 격려하는 만족은 무엇입니까? (ㄴ) 이 점에 관해서 각자는 무엇을 자문해 보아야 합니까?
4 그러면 성서가 우리에게 가지라고 격려하는 만족은 어떠한 만족입니까? 그것은 일상 생활의 물질적 필수품으로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그를 위해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후 3:10, 12; 사도 20:33, 34) 그렇지 않고 이 말은 이 세상의 물질주의적 생활방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충고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마치 생명이 물질에 달린 것처럼 혹은 그러한 소유물이 행복의 원천인 줄로 생각하고 물질적 소유를 늘리기 위해 항상 애를 씁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줄로 알 것이니라.』 (디모데 전 6:7, 8; 전도 5:15) 당신도 그러한 생활을 한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읍니까?
생명은 물질적 소유에 달려 있지 않다
5. 어떠한 사건으로 예수께서는 물질적 소유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지적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셨으며, 그 질문자가 가진 인생관의 근본적 잘못은 무엇이었읍니까?
5 예수께서 「유대」지역에서 전도하고 계시는 동안, 물직적 소유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강조하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읍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가족간의 상속 문제를 중재해 줄 것에 동의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예수께서 탐심을 경고하신 것으로 보아 그 사람은 그의 정당한 몫이 아닌 것을 얻으려고 한 것같읍니다. 즉 장자에게 두 몫의 유산을 주어야 한다는 율법의 요구 조건을 준수하지 못한 데서 분쟁이 일어난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신명 21:17) 그러나 그 사람의 문제는 그가 탐욕을 가졌다는 것보다 더 깊은 문제였읍니다. 우선 그가 그러한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된 원인은 물질적 소유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사람과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그러한 사고 방식이 불건전함을 명백히 알려 주셨읍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 12:13-15)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설명해 준대로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 . .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셨읍 니다.—사도 17:24, 25.
6. (ㄱ) 예수께서는 그 경우에 말씀하신 요점을 어떠한 비유로 발전시키셨읍니까? (ㄴ) 예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사람의 행로는 왜 헛된 행로입니까?
6 그 문제를 발전시켜서 예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드셨읍니다.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그러나 그가 그의 재물을 모두 저장해 두었지만 그가 그 재물을 모두 즐길 만큼 오래 살 것이 보장되어 있었읍니까? 그는 정말로 안전하였읍니까?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누가 12:16-22) 이러한 일은 우리 생활 가운데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이 여러해 동안 수고하여 일하여 그가 은퇴할 때쯤 되어서는 경제적으로 기반이 닦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모아 놓은 것을 누리기도 전에 그는 죽어버립니다.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전도 2:17-19.
7.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어떻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사람과 같이 행동합니까?
7 예수께서는 그 문제의 사람이 사업하는데 부정직하였다거나, 혹은 하나님께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난하시지 않았읍니다. 그 사람의 커다란 잘못은 그릇된 인생관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그는 물질적 소유를 얻는 데만 급급한 나머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하였읍니다. (누가 12:21) 그 비유는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의 경우를 얼마나 잘 묘사합니까!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하나님을 믿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돈이 믿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생활의 대부분을 물질적 소유를 획득하고 향유하는데 바칩니다. 그러나 종교는 보험(保險)과 같이 그들의 생활에 약간 포함시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우리에게 독촉합니다. (디모데 후 3:5)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활에서 영적 관심사가 첫째로 오는가?
8. (ㄱ) 어떠한 면으로 많은 사람들은 영적 관심사가 그들의 생활에 첫째로 오지 않음을 나타냅니까? (ㄴ) 그들이 열매맺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8 당신의 인생관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물질적 소유를 획득하는데 당신의 희망을 걸고 있읍니까? 혹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가 첫째로 옵니까? 이 세상에는 예수께서 그의 비유 가운데 말씀하신 사람과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읍니다. 물질적 필요와 요구에 대한 관심이 그들의 생활에서 첫째로 읍니다. 그들은 돈을 벌고, 집을 사고, 혹은 집을 새로 단장하고, 손님을 접대하고, 여러 곳을 여행하는 데 바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 소식을 좋아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항상 2차적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이생의 . . . 일락』이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왕국에 관한 말씀을 막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자랄 수 없고 따라서 결실하지 못한다고 하셨읍니다. (마가 4:18, 19; 누가 8:14) 그러한 행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9. 『과실을 많이 맺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9 한편 주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명심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터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요한 15:8) 그들 중에는 세속적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가족을 부양하고 있는 남자가 있고,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가 있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동시에 하나님의 왕국 선포 사업에 참여함으로 왕국 열매를 맺고 있읍니다. 그들은 영적 관심사를 2차적인 자리로 밀쳐내 버리지 않고 『항상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히브리 13:15) 당신의 경우도 그러합니까? 예수께서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러할 것이라고 알려 주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다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8:11, 15) 그들의 행로는 여호와께 영광이 되고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줍니다.—로마 6:22.
10. 여호와의 봉사에 참여해 온 어떤 젊은이들은 왜 대학 교육을 받기 원하며, 그러한 행로를 택할 때 생기는 함정은 무엇입니까?
10 어떤 사람들은 경건한 열매를 잘 맺어 오다가 그러한 의로운 행로에서 돌아섭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흔히 그들이 현재 『있는 바를 족한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주위 세상에 만연한 물질주의적 인생관에 쉽사리 영향을 받읍니다. 특히 그들의 부모들이 기업체에서 많은 봉급을 받는 능력 높이 평가할 때 더욱 영향을 받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세상의 『고등 학문』 기관이 제공하는 교육에 그들의 희망을 겁니다. 그들의 욕망은 단순히 직업을 가져서 자립 생활을 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끼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최상(最上)의 수입을 갖는 부류에 속하기를 원합니다. (데살로니가 전 4:10-12)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점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부자가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고 솔직히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18:24, 25) 『먹을 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에, 『고등 교육』을 받는 데 헌신한 사람들은 보통 돈으로 살 수 있는 『기타』의 것들까지도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마가 4:19) 그들이 받으려고 결정한 교육을 성공적으로 받기 위해서 그들은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서연구, 그리스도인의 회중 참석, 그리스도인의 전도 봉사 참여는 감소되게 됩니다. 세상적 교제를 많이 하게 되며, 세상 철학이 그들의 마음에 가득 찹니다.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그것은 아마 그들이 기대했던 바는 아닐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성서가 말하는 바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더라면 그러한 결과를 기대하였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33; 골로새 2:8) 그것은 그들의 부모에게 큰 충격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최근에 한 사람은 자기 아들이 『좋은 교육』을 받아서 좀더 악락한 생활을 하기를 원했는데 그 아들이 대학교에 들어간지 일년도 못되어 그만 믿음을 상실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러한 믿음은 어떠한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11. 한 때 하나님의 봉사에 활동적이던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그들의 영적 상태를 상실하게 되었읍니까?
11 또 어떤 사람은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매우 귀중하게 여기고 시간을 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 주었읍니다. 그들은 성서가 골로새 4:5에서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한 바를 적용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지키지 못하였읍니다. 그들은 정신 가운데 진리를 알고 있었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마음은 물질적 소유를 점점 더 동경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사온 시간을 다시 물질을 추구하는데 바치기 시작하였읍니다. 처음에는 회중 집회에 단지 몇번 빠졌지만 나중에는 많이 빠지게 되었읍니다. 야외 봉사 참여도 비정규적이 되다가 마침내는 중단해 버렸읍니다. 그렇게 함으로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읍니다. (디모데 전 6:10) 처음부터 그렇게 되려고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었읍니다. 그들이 물질적으로는 번창해졌을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해졌읍니다. (계시 3:15-17) 이러한 사실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진실됨을 강조합니다.—마태 6:24.
12. (ㄱ)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함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ㄴ) 왜 이것이 현재 심각하게 고려해 볼 문제입니까?
12 어떤 경우에는 일상 생활의 정상적인 필수품들만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열매의 생산이 막히도록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들과 교제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않읍니다. 세속 직장에서 가외 근무를 해야 할 때 그들은 흔히 회중 집회 참석을 포기합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드는 두려움보다도 그들의 고용주를 불쾌하게 만드는 두려움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야외 봉사가 그리스도인의 요구 조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명목상으로 참여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로 노력을 바치는 것은 다른 관심사들에 대해서입니다. 「아마겟돈」이 들이 닥칠 때 그들의 처지는 어떠할 것입니까? 마음을 감찰하시는 여호와께서 그러한 사람을 그들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그를 사랑한 사람으로 간주하시겠읍니까? (누가 10:25-28)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그의 의로운 새질서에서 살도록 보존시켜 주실 것입니까? 이것은 심각히 고려할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온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원함을 증명할 시기는 내년이나 내달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 있고 일을 할 수 있는 오늘입니다.—시 115:17, 18.
하나님께서 공급자이심을 확신함
13. 일상 필수품을 얻는 데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라고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권고하셨으며,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태도와 어떻게 다릅니까?
13 우리가 물질적 관심사를 생활에서 첫째로 둔다면, 영적 상태가 나빠질 것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견해대로 사물을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을 수 없읍니다. 이 문제에 관한 올바른 견해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셨을 때 그가 스스로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았음을 명백히 하였읍니다. 그는 하늘에 계시는 그의 아버지의 뜻을 설명해 주셨을 뿐입니다. (요한 14:10) 그러므로 이 문제에 관한 그의 말씀을 읽어 본다면 유익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가 가진 소유물에서 나오지 않음을 강조하는 비유를 말씀하신 직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원칙을 그들의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읍니다. 그는 큰 재물을 축적하는 데 관해서가 아니라 일상 필수품을 얻는 데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그런고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새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들의 식물들에게 옷올 입혀」 주시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의 종인 너희들에게는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겠는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백성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전 생활은 단순히 물질적 필수품을 얻기 위한 경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전도 6:7) 그들에게는 그러한 필수품이 불신자들보다 덜 필요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줄을 아시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누가 12:22-31.
14. 예수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위하여 공급하실 것이며, 그것은 무엇을 포함할 것입니까?
14 예수께서 이 세상 사람들 중 굶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음에 유의하십시오. 사실상 그는 우리 시대에 『기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마가 13:8) 또한 단순히 일하기를 싫어하거나 혹은 그 일이 그들에게 너무나 비천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일하기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보장도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데살로니가 후 3:10) 모든 일에 있어서 회의적인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이유는 하나도 없읍니다. (야고보 1:6-8; 히브리 11:6)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일군들」, 『그의 나라를 [계속] 구하』는 자들,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자들을 위하여 공급하십니다. (마태 10:9, 10; 6:33) 그는 물질적 사치를 약속하지 않으셨읍니다. 단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약속하셨읍니다.—디모데 전 6:8; 누가 12:22, 31.
15. 천적 아버지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한데 대하며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을 어떻게 축복하셨으며, 그들의 믿음의 본으로부터 누가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까?
15 왕국 관심사를 첫째로 두면서 일상 필수품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천적 아버지의 축복을 절실히 깨닫고 있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세계 도처에 있읍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 사는 어떤 그리스도인 감독자는 부인과 4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읍니다. 그런데 「왙취 타워 협회」에서 감독자를 위해 마련한 특별 훈련 과정에 참석할 초대를 받았읍니다. 그는 정규적으로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매우 제한된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없는 동안에 가족을 부양할 방도가 없었읍니다. 학교로 떠나기 전에 그는 하나님께 그 문제를 기도로 아뢰었읍니다. 그 기도는 응답되어 그 회중에 있는 수명이 자진적으로 그에게 와서 그가 그들 모두를 영적으로 더 잘 돌보도록 훈련받기 위해서 떠나 있는 동안, 그의 가족을 물질적으로 보살펴 주겠다고 자원하였읍니다. 그러한 감독자들의 믿음이 시험을 받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읍니다. 많은 경우에 학교 참석을 위해 고용주에게 휴가 신청을 냈을 때 처음에는 거부되었읍니다. 그러나 후에 허용되었으며 휴가중에 급료도 지불받았읍니다. 고용주는 그 고용인이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그 직장을 그만두고 나중에 다른 직장을 구할 것을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감독자들은 여호와를 숭배하는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 유익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히브리 13:7.
16. 「파이오니아」들이 그들의 물질적 필수품을 만족시키려는 노력보다 전도 사업을 첫째로 둠으로써 어떤 경험을 하였읍니까?
16 특히 「파이오니아」같이 전시간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여 왔읍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봉사를 첫째로 둔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 필수품을 공급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어떤 경우에 한 「파이오니아」는 그리스도인 대회가 끝난 후 그의 임명된 구역으로 되돌아 왔읍니다. 그러나 돈이 거의 다 떨어졌고 숙소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그의 첫날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그는 마태 6:33의 예수의 말씀을 상기하였읍니다. 하루 종일 그는 야외 봉사를 하였읍니다. 그가 전도하는 동안 집주인들에게 그가 세방을 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무도 방을 제공하지 않았읍니다. 오후 늦게, 어떤 마음씨 좋은 부인에게 증거한 다음 숙소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였읍니다. 옆방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한 하숙생이 그 부인을 자기 방으로 불러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이 잠잘 방이 있는지 찾아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식사하도록 초대하십시오. 만일 그가 돈이 없다면 제가 대신 내겠읍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였읍니다. 이러한 경험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들의 전생애를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 바치기 위하여 그들의 집과 재산을 버린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경험입니다.—사도 16:14, 15; 마가 10:29, 30.
17. (ㄱ) 사도 「바울」은 어떠한 태도를 가졌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하에서도 생산적이 될 수 있었읍니까? (ㄴ) 우리가 어떠한 확신을 가진다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에도 경건한 열매를 계속 산출할 수 있읍니까?
17 그렇다고 해서 「왕국을 계속 구하는」 사람이 항상 풍부한 공급을 받으리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는 만족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은 그당시 그가 겪은 일에 대해서 「마게도냐」 「빌립보」에 있는 회중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만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 .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 4:11-13) 「바울」은 일이 어렵게 되어 나갈 때 그만 두는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심지어 감옥에 갇혀서도 그는 하나님의 왕국의 관심사를 계속 추구하였읍니다. 그는 간수들에게, 그리고 그를 방문하도록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읍니다. (사도 28:16, 30, 31; 빌립보 1:13)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성서의 일부가 되어 있는 6통의 편지를 써서 훌륭한 영적 충고를 주고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박해라든가 경제적 곤란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을 때에도, 우리는 계속 경건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읍니다. 예레미야 17:7, 8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기운 나무가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할 때, 우리는 영적 관심사를 계속 첫째로 둘 수 있읍니다.—히브리 13:5, 6.
좀 더 나은 것을 위하여 노력함
18. 오늘날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과 같은 믿음을 가졌음을 어떻게 보일 수 있으며, 우리는 왜 그렇게 하기를 열망해야 합니까?
18 그들이 그러한 행로를 추구할 때, 현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여호와의 승인을 받은 사람으로 명기되어 있는 고대의 사람들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물질적으로 번창한 고대 「갈대아」 「우르」시를 떠나 「가나안」 땅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는 사람이 되었읍니다.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기원전 20여 세기인 그 당시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실 영원한 성 즉 그들을 통치할 천적 정부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이 제공하는 많은 안락을 서슴치 않고 버렸읍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항상 생각하였더라면 그곳에 다시 돌아갈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셨읍니다. (히브리 11:8-16)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취한 인생 행로를 꼭 같이 기뻐하십니까?
19. (ㄱ) 우리 시대는 왜 긴급한 때입니까? (ㄴ) 이러한 일들을 아는 일부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하나님의 새로운 제도에서 얻을 축복들을 상실하게 될지 모르며, 예수께서는 시대에 적절한 어떠한 경고를 해 주십니까?
19 오늘날 우리는 위기의 때에 살고 있읍니다. 오늘날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말일』입니다. 1914년에 왕국이 하늘에 설립된지 이미 52년이 지났읍니다. 인간 역사 6천년의 끝이 매우 가까왔읍니다. 우리 시대가 『이 사물의 제도의 종말』임을 알리는 눈에 보이는 증거는 뚜렷합니다. (마태 24:3) 오늘날은 매우 긴급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읍니까? 실제적 기록은 믿는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앞에 놓인 소망에 계속 고정시켜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얻을 축복을 상실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경건한 헌신과 함께 『먹을것과 입을 것』으로 만족하는 대신에, 그들은 이 세상의 소용돌이와 같은 물질주의에 빨려 들어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세상의 쾌락을 추구하기를 하나님께 봉사드리는 것보다 더 열망하고 있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니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누가 21:34-36.
20. 어떠한 방법으로 우리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임을 계속 증명할 것입니까?
20 만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풍부하고, 우리가 그의 말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세상적 추구에 휩쓸려 들어가도록 자신을 방임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욱 중요한 일』로 우리의 생활을 이끌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할 것입니다.—빌립보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