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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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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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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3/15 125-132면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누가 5:4.

1. 솔로몬과 아모스는 인간을 어떻게 물고기에 비유하였읍니까?

서양 사람들이 흔히 사람에게 사용하는 표현인 “이 불쌍한 물고기”라는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서는 인간을 상징하는 데 물고기를 사용합니다. 지혜롭기로 이름난 예루살렘의 솔로몬 왕은 그가 지은 삼천개의 잠언 가운데서 백향목과 우슬초, 짐승과 새, 그리고 다른 기어다니는 것들과 물고기에 관하여 말하였는데, 그중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있읍니다.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 (전도 9:12; 열왕 상 4:32, 33) 예언자 아모스는 기원전 9세기에 자기 민족을 압제하던 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읍니다.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임할찌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을 그리하리라.” (아모스 4:1, 2) 정녕히 여호와 하나님의 원수들은 그들이 생각지 못하는 때에 갑자기 불행한 물고기와 같이 잡힐 것입니다.

2, 3. (ㄱ) 예수께서는 어디서, 왜 배를 연단으로 사용하셨읍니까? (ㄴ) 그는 그물의 비유 가운데서 무엇을 말씀하셨읍니까?

2 기원 31년, 유월절 기념이 있은지 얼마 후였읍니다. 그때 중동 지방 갈릴리 바다 해안 가까이에 한 척의 어선이 떠 있었는데, 그 배는 고기잡이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읍니다. 큰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몰려 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바닷가로 나가셔서 그 배를 연단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일련의 예언적 비유들을 말씀하셨읍니다. 그 경탄할 만한 연설을 마치신 후에, 그는 청중들을 돌려 보내시고 해안에 오르사 집으로 들어가셨읍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원수가 밀밭에 뿌린 잡초에 관한 비유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비유에 대한 설명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새로운 비유를 부가하셨는데, 그 중의 하나는 그물에 관한 다음과 같은 비유입니다.

3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 13:47-50.

4. (ㄱ) 그릇에 담긴 “좋은” 고기는 누구를 상징합니까? (ㄴ) 버려질 “못된” 고기는 누구를 상징합니까?

4 천국에 관한 예수의 모든 비유는 그와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사람들과 관련이 있읍니다. 따라서 수입이 많은 고기로서 그릇에 담겨진 “좋은” 고기는 인류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다스리기에 합당한 자들로 증명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계시 7:1-8; 14:1-5) 하나님의 천국은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에 설립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도들과 기타 많은 충실한 제자들은 그 전에 죽었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잡혀서 저장되고, 말하자면 그릇에 담기는 상징적 고기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왕국 후사 중 남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오늘날 이 땅에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을 구성하고 있읍니다. (마태 24:45-47) 상징적 풀무불에 던지워 멸망당할 “못된” 혹은 부적당한 상징적 고기들은 천적 부름에 불충실함을 증명하여 “악”하게 되고, 멸망받기에 합당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5. 그물로 고기를 잡는 자들은 누구를 상징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그물의 비유의 성취에 있어서, 고기를 잡고 그물을 물가로 끌어내어 고기를 골라내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천사들입니다. 상징적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를 구별하고, 못된 고기들을 상징적 풀무불에 던져 넣는 자들이 분명히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닙니다.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누가 하나님의 천국에 적당하고 누가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되는가를 결정할 권리를 받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들을 심판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로마 14:4) 예수께서 이방인의 때의 끝에 그의 천국에 오셨을 때 그를 수행한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지휘 아래 분리 사업을 할 자들입니다. (마태 13:40, 41; 24:30, 31; 25:31, 32) 그러면, 그물은 무엇입니까?

6. 그러면 그물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6 예수의 비유가 묘사하듯이, 그물은 고기나 해양 생물을 무분별하게 모아들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과 국가적으로 언약을 맺은 유대인들은 특정한 고기와 해양 생물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읍니다. (레위 11:9-12) 그러므로 유대인 어부들은 그물로 잡은 것들을 고르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금한 것은 버렸읍니다.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 아래 있는 거룩한 천사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상징합니다. 그물은 중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언약 관계에 있는 하나님의 회중이라고 공언하는 지적 조직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그 조직은 영적 이스라엘, 즉 예수와 함께 통치하도록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나라라고 주장합니다. 그 조직은 참 신앙 고백자들과 거짓되고 불충실한 신앙 고백자들을 포함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는 수백 교파에 속해 있는 수억의 자칭 그리스도인들을 가진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합니다.

7. 상징적 그물이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으기 위해서, 누가 천사들 밑에서 일해야 하며, 어떻게 “좋은” 고기들이 모여져 왔읍니까?

7 천사들이 하나의 집단으로서 상징적 그물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물”이 온갖 종류의 상징적 고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그물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모으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만을 합니다. 그리고 “그물”의 조직된 성원들은 직접 눈에 보이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 “그물” 조직의 소수만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준 하나님의 지시와 성서 원칙들에 의거해서 고기를 잡습니다. 그 결과, 그러한 일군들만이 천국에 합당한 참 그리스도인 “고기”를 모을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 아래 있는 천사들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종결된 이래 우리가 처해 있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이 사실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그들은 좋은 “고기”를 상징적 그릇 안에 모았읍니다.

8. “좋은” 고기가 어떻게 하여 1914-1918년에 큰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읍니까?

8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1914년에 시작되기 여러 해 전부터 참 그리스도인 성품을 지닌 “고기”가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나와 모아지기 시작하였읍니다. 지구 도처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교국과 분리된 회중들을 형성하였읍니다. 그러자 1914-1918년 사이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대부분 그리스도교국의 국가들이 이 전쟁에서 싸웠읍니다. 대전 중, 참으로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이 분리된 회중들은 그리스도교국에 속박되었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국이 종교적 큰 바벨론의 가장 강력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은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된 후 유대인들이 고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것과 같이 포로가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그곳에 머물렀읍니까?

9. “사물의 제도의 결말”은 왜 “좋은” 고기들이 큰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있을 때가 아니었읍니까?

9 아닙니다!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났고, 그 해에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졌읍니다. 그 결과,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시작되었읍니다. 예수의 그물의 비유는 이 기간이 “천국”의 기름부음을 받은 후사로 공언하는 사람들을 분리할 시기임을 표시합니다. 그 때는 그리스도 아래 천사들이 바삐 일하며, 상징적 그물을 물가로 끌어 올려, 부적당한 자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으로 승인받은 “좋은” 자들을 회중이라는 “그릇”으로 넣을 호기였읍니다. 사실 그대로 되었읍니다.

10. (ㄱ) “좋은” 고기는 언제부터 그러한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기 시작하였으며,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ㄴ) “못된” 고기들은 이미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1919년 봄 이래로, 큰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참 그리스도인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읍니다. 하늘로부터의 음성이 전달되었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 18:4) 종교적 큰 바벨론은 거짓 바벨론적 종교 세계 제국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교와 바벨론 종교를 혼합시키려 하는 그리스도교국이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의 음성은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나오라는 것도 의미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국에 머물러 있는 수백만의 “못된” 상징적 고기들은 잠시 후에 상징적 “풀무불”에 던지워질 것이며 완전히 멸망될 것입니다. 이미, 그들은 그 방향으로 달리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위선적 그리스도인들은 “울며 이를 갈”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13:50) 왜?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들로서 마땅히 나와야 할 큰 바벨론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바벨론의 죄에 참예하고 있으며, 큰 바벨론을 멸망시킬 재앙의 전조를 이미 느끼고 있읍니다. 잠시 후, 그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큰 바벨론과 그의 정치적 정부(情夫)들과 함께 소멸될 것입니다.

11.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얼마 정도의 사람이 큰 바벨론에서 나왔으며, 그들은 어떻게 “그릇” 속에 담겨졌읍니까?

11 큰 바벨론을 사랑하는 자들과는 천양지차로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1919년에 하늘의 음성에 응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극소수,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거 19세기 동안 세워 오신 참 그리스도인 회중의 순수한 남은 자들이었읍니다. (마태 16:18; 사도 2:1-42) 천사들의 지도 아래 그들은 “그릇” 즉 해방된 그리스도인들의 회중 안으로 모아졌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며 아버지 되시는 여호와께 봉사드리기 위해 보존되었읍니다.

12. “좋은” 상징적 고기의 이 남은 자들은 왜 그 당장에 하늘로 올리워 가지 않았읍니까?

12 비록 “좋은” 상징적 고기의 이 남은 자들이 “천국”에 참예할 소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한 때 기대하였던 것과는 달리 즉시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읍니다.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 동안 그들은 큰 바벨론과 그의 정치적 정부들과 군대들이 종말을 당하기 전에 이 땅에서 해야 될 일이 있었읍니다.

13. (ㄱ) 왕국 전파로 말미암아 증거하는 일 외에 또 무슨 일이 수행되고 있읍니까? (ㄴ) 1919년 이래로 사도 시대의 사업이 왜 계속될 필요가 있었읍니까?

13 현재 세계 방방곡곡에 사는 사람들은 남은 자들의 참 그리스도인 사업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땅끝까지 추진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마태 24:14, 신세) 왕국 전파자들이 수행하는 일은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러한 왕국 전파의 결과로 생기는 분리 사업이 있읍니다. 이 사업은 천사의 지도를 받고 있읍니다. (마태 24:30, 31, 40-42) 분리 사업은 1919년 해방되던 해에 전부 수행되지 않았읍니다. 이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왕국 후사로서 예정된 숫자인 144,000을 채우기 위해서는 “좋은” 상징적 고기들을 더 많이 잡아서 회중이라는 “그릇”에 담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12사도 시대에 시작하신 그 사업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인 현재까지 계속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 사업이란 고기잡는 사업입니다. 풍어(豐魚)가 보장되었읍니다!

기적적인 고기잡이!

14. (ㄱ) 침례자 요한의 몇몇 제자들의 직업은 무엇이었으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해서 그들 중 네 사람을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셨읍니까? (ㄴ) 그들이 일하는 데 최적기는 언제였읍니까?

14 천 구백년 전, 예수의 몇몇 사도들은 직업적 어부들로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았읍니다. 그들은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례를 받으신지 며칠 후에 요단 강 상류 계곡에서 그들과 알게 되었읍니다. 그 때는 기원 29년 말경이었읍니다. (요한 1:35-44) 수개월이 지난 다음 해, 예수께서는 바로 갈릴리 바다에서 이 직업적 어부들을 만나셨읍니다. 그 때 침례자 요한은 헤롯 왕에 의해 투옥되었고, 예수께서 침례자 요한이 전하던 소식을 이어받아 전파하기 시작하시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선포하셨읍니다. (마태 4:12-17) 하루는 예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고 계셨읍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네명의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잡으려고 무진 애를 썼읍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유행한 고기잡는 방법은 여러 가지 종류의 그물을 사용하여 잡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그중 네 가지 종류의 그물을 언급합니다. (하박국 1:15, 16; 전도 9:12; 시 35:7, 8) 해진 후와 해 뜨기 전인 밤은 고기를잡는 최적기로 생각되었읍니다.

15, 16. (ㄱ) 예수께서 시몬과 그 배에 함께 탄 사람들에게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떠한 경우였읍니까? (ㄴ) 그 때 일어난 일의 즉각적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5 누가복음 5:1-10의 해설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예수는 게넷사렛[갈릴리]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16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17, 18. (ㄱ) 네 명의 동업 어부들은 무엇을 인식하였읍니까? (ㄴ) 왜 예수께서는 시몬이 그에게 간청한 대로 하시지 않았으며, 그 대신 무엇을 하셨읍니까?

17 그 배에는 시몬 베드로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는데, 특히 그의 동생인 안드레, 그리고 아마 그들의 아버지 요한도 있었을 것입니다. 도와 준 배에는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아버지인 세베대, 그리고 다른 고용인들이 있었읍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그들이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장소에서 갑자기 고기가 많이 잡히도록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셨음을 인식하였읍니다.

18 이 기적은 그들이 이미 개인적으로 알고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식을 높였읍니다. 베드로는 그와 같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 자기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많음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주 예수께 자기 배를 떠나 주시기를 간구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배를 떠나서 혼자 계실 의도가 아니었읍니다. 이제는 예수께서 문자 그대로 꾸준히 그를 따를 정규 추종자들을 가지실 때였읍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죄많음으로 인한 베드로의 두려움을 진정시키시면서,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사로잡으리라”(난외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사람을 물고기에 비하셨읍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누구와 함께 사람을 산 채로 잡을 것이었읍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입니다. 왜냐 하면 그 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자기를 따라, 더 큰 대상물인 “사람”을 사로잡는 일에 참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에게도 자기를 따라 이 새로운 사업을 하도록 초대하셨읍니다. 그들 모두 초대에 응했읍니다.

19. 한편, 야고보와 요한은 무엇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들은 얼마나 그 일을 계속하였읍니까?

19 한편, 베드로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동업자들인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배에 가득차게 잡은 기적적인 고기잡이 때에 그물이 찢어졌기 때문에 그들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 앉아서 그물을 깁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때 베드로와 안드레를 거느리고 예수께서 호숫가로 오셔서 배 안에 있는 야고보와 요한을 큰 소리로 부르셨읍니다. 그래서 그들도 더 큰 고기잡이 사업에 그를 따르도록 초대하셨읍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기록에 의하면,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기 때문입니다.—누가 5:10,11.

20. 마태와 마가는 네 명의 어부를 부른 사실을 어떻게 기술합니까?

20 사도 마태와 제자 마가는 이 네 사람의 어부를 부르신 일을 더욱 간결하게 묘사하였지만,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네사람 모두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직접적 초대를 발하신 것으로 알려 줍니다. 마가 1:16-20은 이러합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마태 4:18-20.

21. (ㄱ) 직업이 목수였던 예수는 그 네명으로 하여금 사람을 낚도록 가르칠 자격을 어떻게 가지셨읍니까? (ㄴ)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생계를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떠한 예가 확증해 줍니까?

21 예수께서 친히 네 명의 인간 고기를 그곳에서 잡으셨읍니다. 비록 그가 내륙(内陸)인 나사렛 고을의 목수였으며, 직업적 어부가 아니었지만, 그는 상징적 인간 고기를 잡는 법을 아셨읍니다. 그가 요단 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지 6개월 후 이곳에서 그는 그 일을 시작하셨읍니다. 그는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사람들을 산 채로 잡을 수 있도록 그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아셨읍니다, 그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시고 그는 네 명의 직업적 어부들을 부르사 그를 직접 따라다니고 훈련을 받도록 하셨읍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하던 고기잡이업(業)을 버려야만 하였읍니다. 보통 어부라면 그가 잡은 고기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읍니다. 그러나 사람을 낚는 어부는 사람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가장 위대한 어부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따라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읍니까? 사실 예수 자신도 침례자 요한에게 침례받으러 가셨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셨으며, 다시는 목수 일을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 일하는 그를 보살펴 주셨읍니다.

생계를 걱정할 필요가 없음

22. (ㄱ) 사람을 낚는 일이 성공하리라는 데는 왜 아무런 의문의 여지도 없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도 이 사람을 낚는 일이 중단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2 한 때 어부들이었던 이들이 대어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 아래 행하는 한, 그들이 사람을 낚는 일에 성공하리라는 데는 아무런 의문의 여지도 없었읍니다. 예수께서 시키시는 대로 베드로와 안드레는 믿음을 가지고 그물을 갈릴리 바다에 내려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을 때, 그 장소는 고기가 하나도 없는 지역임이 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이 잡혔기 때문에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의 원조를 청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었읍니다. 그 때 그들의 그물이 찢어지기 시작하였고, 배에 실은 고기가 너무나 많아서 그 두 배가 가라앉을 것만 같았읍니다. 예수께서 비늘과 지느러미가 달린 고기의 경우에 있어서, 그렇게 많이 잡히도록 하실 수 있었으니까, 상징적 인간 고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많이 잡히도록 하실 수 있었읍니다. 3년 후에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죽으셨을 때에도 이 더 중요한 사업인 사람을 낚는 일이 침해를 받거나 중단되지 않았읍니다. 세째 날에 그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받으셨고,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고기잡이를 재개할 수 있도록 힘 주는 위치에 계셨읍니다.

23. (ㄱ) 예수께서 부활되시어 영계로 가셨기 때문에, 사도들은 사람을 낚는 데 불리하게 되었읍니까? (ㄴ) 어떻게 해서 일곱명의 제자가 예수의 부활 후 갈릴리 해변에 모이게 되었읍니까?

23 예수께서는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시어 하나님의 불멸의 영자로 계시며, 따라서 보이지 않는 영계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육체로 계시지 않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사람을 낚는 이 사업을 전 세계적 규모로 완전히 성공시킬 수 있는 더 유리한 위치에 계십니다. 그는 그가 기원 33년 음력으로 니산월 16일에 부활되신지 1주일 이상이 지난 어느 때 그 점을 확신시켜 주셨읍니다. 그가 부활되시던 아침에 몇몇 제자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그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유대 도를 떠나서 북쪽 갈릴리 도로 가라고 명령하셨읍니다. 거기서 그는 그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더 많은 지시를 하실 것이었읍니다. (마태 26:32; 28:7-10, 16; 마가 16:6, 7) 그래서 어느 때 예수의 제자들 중 일곱 명이 디베랴 바다라고도 불리우는 갈릴리 바다 근처에 함께 모이게 되었읍니다.

24, 25. (ㄱ) 얼마 동안 고기를 잡으려고 한 후, 그 일곱 사람은 해변에서 질문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읍니까? (ㄴ) 그는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셨으며, 그들은 그 후 어떻게 육지로 돌아왔읍니까?

24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말하자, 나머지 여섯명도 함께 가겠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읍니다. 그러자 새벽녘에 해변에 어떤 모양이 보였읍니다. 그의 음성은 바닷물을 건너 그들의 조그만 배에 울려 왔읍니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그들은 없읍니다, 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러자 그는 말을 중단하셨읍니까?

25 그 기록은 이러합니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26. (ㄱ) 그 때 왜 그가 누구인지에 관하여 질문이 생길 수도 있었읍니까? (ㄴ) 이번이 그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신지 세 번째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6 예수께서 그 때 나타나셨을 때, 전과 다른 모양의 육체화한 몸으로 나타나셨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 기록은 계속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요한 21:1-14) 즉 그의 사도들이 전부 혹은 반 이상이 모였을 때 나타나 보이신 것으로는 이번이 세 번째라는 말입니다. 처음에 나타나신 때는 그가 부활하신 일요일 저녁이었는데, 예수께서는 화신하시어, 사도들에게 그들이 보는 것이 영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운 생선을 몇 조각 잡수셨읍니다.—누가 24:22-43; 요한 20:19-25.

27. 예수께서 두 번이나 기적적으로 고기를 잡히게 하심으로써 그의 능력을 전시하신 것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27 예수께서 두 번이나 그의 사도들의 그물을 기적적인 어획(魚獲)으로 가득 채우심으로써 그의 능력을 보이신 것은 매우 적절하였읍니다. 그는 “마지막 아담”이며, 에덴 동산에 있었던 첫 아담은 특정한 면들에 있어서 “오실 자의 표상”이었읍니다. (고린도 전 15:45; 로마 5:14) 첫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바다의 고기[를] . . . 다스리라”고 명령하셨으며 기타 땅에 있는 모든 하등 동물들을 다스리라고 하셨읍니다. (창세 1:26-28) 시편 8:4-8에 보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기까지 다스리실 것을 예언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왕국의 이익을 확장하기 위해서 실제로 그러한 능력을 행사하셨다는 기록된 증거를 가지고 있읍니다. (히브리 2:5-9) 그러한 한 가지 경우는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실 때,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신 경우입니다.—마태 17:24-27.

28. (ㄱ) 그러한 기적적인 어획을 볼 때, 그들은 사람을 낚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였읍니까? (ㄴ) 두 번째로 고기를 잡히게 하신 후에 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초대하실 필요가 없었읍니까?

28 예수께서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기억할 때, 기적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히도록 하신 그 두 번의 경우로 말미암아 그러한 사업에 대한 사도들의 믿음이 강화되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대어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를 때, 그들은 그물을 내려 허탕을 치는 일이 없을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을 낚을 때, 예수의 명령에 따라 그물을 내린다면, 빈 그물을 들어 올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즉 천국을 위하여 모여질 자들이 있을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그들에게 두 번째로 기적적인 고기잡이를 하게 해 주셨을 때, 그는 자기를 따라서, 고기를 잡는 어부로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전환하라는 초대를 재술하실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이제 다른 형태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이제부터는 사랑의 성품이 중요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 21:15-17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9. 예수와 베드로 사이에 어떠한 문답이 오고 갔읍니까?

29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들, 신세]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30, 31. (ㄱ)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첫 질문을 하셨을 때, 사용하신 “이들”이라는 대명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결정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러므로 현대 번역자들은 그 질문을 어떻게 번역하였읍니까?

30 어부들은 고기를 사랑하지 않지만, 목자는 양을 사랑합니다. 특히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던 동안에 사셨던 그 나라에서 그러하였읍니다. 동시에 목자는 자기 수중에 있는 양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에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무엇을 뜻하셨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희랍어 성서 교본에서 그 지시 대명사 “이들”은 속격(屬格) 복수형(複數形)입니다. 그리고 희랍어로 이 대명사의 속격은 남성, 여성, 중성 모두 동형(同形)입니다. 예를 들어 케이. 에스. 우스트가 번역한 「신약역」(1961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이들(고기)보다 . . .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직업보다도 그를 더 사랑하는가를 물으신 것이 됩니다. 지. 엠. 람사가 번역한 「성서역」(1957년판)도 그와 동일한 생각을 암시하고 있는데, “네가 이것들(these things)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되어 있읍니다.—난외주 참조.

31 제임스 모팻이 번역한 성서(1922년판)는 다른 생각을 제시합니다. “네가 다른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미국인역」, 「제임스 머독역」도 동일함) 예수께서 적들에게 체포당하시던 날 밤에 시몬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예수를 사랑하는 것보다 예수를 더 사랑한다고 자랑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직후 그는 그 더 사랑한다는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였읍니다. (마태 26:31-35, 55, 56, 69-75) 그러나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는 예수께 대한 자기의 사랑이 더 우월하다고 자랑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신영어 성서」(신약, 1961년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다른 모든 자들보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

32. ‘베드로’는 사람을 획득하는 데 있어서 누구의 성품을 보여야 하였으며, 그 얻은 사람들을 머물러 있게 하는 데 무슨 성품을 보여야 하였읍니까?

32 이 귀절의 대명사,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든지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부활된 보이지 않는 주께 대한 사랑을 이 땅에서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그 방법이란 이 땅에 있는 주의 “양”을 사랑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획득하는 데 베드로는 어부의 성품을 표시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나 들어온 사람들을 조직 내에 머물러 있게 하는 데 베드로는 주의 양들에게 아랫 목자로서의 부드러운 사랑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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