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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착한 일을 함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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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8
파68 6/1 255-259면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착한 일을 함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갈라디아 6:10.

1.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가족권내에만 국한됩니까?

앞기사에서 우리는 남편들과 그들의 머리로서의 책임 및 가족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도를 따름으로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과 자신에게 오는 커다란 유익을 특별히 고찰하였읍니다. 오로지 착한 것만이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하고 적절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머리이시며 창설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 가족권외(圈外)의 사람들에게까지 착한 일을 베풀 수 있읍니다. 가족권외의 것들로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고려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실천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읍니다.

2. (ㄱ) 갈라디아 6장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착한 일을 할 기회는 어느 정도로 광범위합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에게 적합하고 필수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2 특별히 성서의 갈라디아 6장은 다른 일반 사람들에게, 특히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며 여호와의 증인들이며 동료들인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한 많은 기회를 알려 줍니다. 갈라디아 6장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움과 사랑의 관계와 이로 인하여 착한 일을 표시할 수 있는 무제한의 기회를 취급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착한” 것은 그리스도인 신앙에 적절하고 적합한 것이며, 사실상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 조건과 그리스도 예수의 모본을 실제로 따른다는 필수적 증거가 됩니다.

3. (ㄱ) 어떠한 중요한 사실 때문에 여호와의 종들은 오늘날 특별한 책임을 가지게 되었읍니까? (ㄴ) 동기는 어떠한 면으로 관련되어 있읍니까?

3 갈라디아 6장의 처음 여섯 절은 상호 온유함과 겸손함과 비이기적 참여로써 돕는 데 관하여 말합니다. 그 다음 7절은 이러한 말로 시작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라디아 6:7, 8)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일을 행하므로 “심”을 기회를 분명히 가지고 있읍니다. 이러한 기회들은 오늘날 끊임없이 확장되고 증가되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큰 무리의 사람들이 현재 하나님의 선의(善意)를 받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회중과 연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종들은 더 많은 책임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책임 가운데는 잘 심을 책임도 들어 있읍니다. 왜냐 하면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는 일이 진실로 선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그 동기가 올바른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8절에서 말하듯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수가 있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하고 성경에 맞는 목적과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 심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수 있읍니다.

4. (ㄱ) 현재는 어떻게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할 호기입니까? (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그 범위가 어디까지 미칩니까?

4 오늘날 종교계의 사건과 사태로 말미암아 현대는 착한 일을 심을 최적기가 되었읍니다. 현재는 호기(好機)입니다. 현재 우리는 많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는’ 전파할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형제들과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있으며 교제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우리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도와 줄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입니다. (갈라디아 6: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전파 사업을 통해 착한 것을 심을 기회를 갖고 있읍니다. 그러나 “착한 일 행하는 것”은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인용한 상기 귀절은 “믿음의 가정들”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5. 우리가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는 목적을 말하십시오.

5 그러면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 방법들을 고찰해 봅시다. 이 목적은 우리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언급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 기사에서 열기한 것은 물론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나 지면이 허락하는 데까지 그런 착한 일을 몇가지 언급함으로써 우리 각자가 “믿음의 가정들”에 관한 갈라디아 6:10의 요구 조건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6. 여호와의 증인들의 공통된 목적을 설명하십시오.

6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우리는 믿음 안에서 우리와 관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회중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그리스도인 동료들이 전달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소식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전도 봉사를 하고 있읍니다. 우리 모두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읍니다. 즉, 성령을 위하여 심고,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기고 숭배하며, 하나님의 의롭고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살 생명의 소망을 확실히 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습니다. 이러한 도움의 대부분은 우리가 받고 우리가 주는 충고와 제안으로 베풀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하나님의 신권 조직의 노력과 일치 조화된 도움들입니다.

언제 충고가 유익한가?

7. (ㄱ) 언제 충고가 유익합니까? (ㄴ) 명백한 예를 드십시오. (ㄷ) 그러므로 우리는 충고를 줄 때 어떠하여야 합니까?

7 당신은 지금껏 충고와 제안을 받아 왔읍니다. 언제 당신은 충고로부터 유익을 받았읍니까? 당신이 그 충고를 받아들이고, 순응하였을 때 곧 당신의 유익과 개선을 위하여 주어진 제안을 따랐을 때가 아니었읍니까? 만일 당신이 그러한 방법으로 응하지 않았다면, 그 충고와 제안은 당신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신권적 제안과 충고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우리와 관련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섬길 때, 잘 순응하고 재치있게 섬겨야 함을 알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충고와 제안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것이며, 그렇게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로부터 받은 제안으로부터 유익을 받을 것입니다. 제안과 충고란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요, 배척할 때는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신권 전도 학교에서 주는 충고도 동일하지 않습니까? 그 집회에서는 공개 성서 강연을 할 자격을 갖추어 주기 위하여 연단에서 연설하는 사람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사랑에 넘치는 제안을 합니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따를 때에 발전이 옵니다. 「천국전도」는 제안과 충고를 싣고 있읍니다. 회중 감독자는 그러한 충고와 제안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좋은 충고들이 많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서 우리와 관련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섬기는 데 있어서 재치있게 한다면, 우리가 주는 충고는 효과적이고 도움이 될 것입니다.

8. 디모데 전서 5:1, 2은 어떠한 적절한 충고를 줍니까?

8 상대방이 장성한 그리스도인이며, 그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경우라 할지라도 충고를 하고 제안을 줄 때는 재치있게 하여야 합니다. 비록 “그가 더 잘 알겠지”라고 생각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사려 깊음과 예의와 재치를 가지고 회중 내의 우리 형제들을 다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집안 식구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디모데 전 5:1, 2) 이것은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충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형제들의 감정을 존중히 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충고와 제안을 줄 때 그들에게 착한 일을 하고 유익을 주려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제안에 순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재치있게 다룰 필요가 있읍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의 복지를 위한 것이며 여호와의 숭배를 앙양하기 위함입니다.

9. (ㄱ) 격려가 자주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위로 하고 격려’하는 예를 한 가지 드십시오.

9 우리는 우리 형제들에게 재치있는 격려를 줄 기회를 살펴 보아야 합니까? 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특권을 가지고 있읍니다. 실망은 흔히 있는 일이며,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도 실망할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격려는 자주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진 이러한 특권을 데살로니가 전 5:11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피차 권고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이 말씀에 순응할 때 그 결과로 개인적인 즐거움이 생기고, 위로와 격려를 준 측이나 받은 측이 모두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 일을 계속하라고 교훈합니다. 감독자나 다른 그리스도인이 어떤 형제가 낙담해 있음을 눈치채고 그 형제와 함께 그 문제를 말할 기회를 만들려고 할지 모릅니다. 낙담한 그리스도인과 그 형제 사이의 사적 대화는 아마 이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형제, 가족이 모두 무고하시죠? 형제는 요즈음 어떠하십니까?”

“글쎄, 무슨 일인지 제 자신도 모르겠읍니다. 그저 이렇게 맥이 없읍니다. 무슨 일에든지 열정이 통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겠읍니다. 너무 낙심해서 앞이 난감합니다.”

“때때로 기분이 우울할 때가 있지요.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낙담하는 일은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저도 낙담하고 실망할 때가 있읍니다. 성경을 읽어 보면 그러한 예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일시적으로 낙담한 사람을 우선 들자면 베드로와 바울이 있읍니다. 형제도 기억하시지요?”

“네,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렇게 낙담할 때는 보통 문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무슨 문제이든지 해결책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형제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아 보셨읍니까?”

“글쎄, 아직까지 깊이 검토해 보지 않았읍니다.”

“제가 좀 도와 드릴 수 있을까요?”

“예, 그렇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그러면, 우선 가정에는 별일이 없으십니까?”

“가정에 별일이라니요?”

“그러니까 부부 사이는 어떠신가 말입니다.”

“네, 좋습니다.”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면 자녀들은 모두 어떠하십니까?”

“예, 대단히 좋습니다.”

“집안 식구가 모두 별일 없으시군요. 그러면 건강도 좋습니까?”

“우리의 건강도 좋은 편입니다.”

“직장에서는 별 문제가 없읍니까?”

“에, 특별한 문제는 없읍니다.”

“그래요? 그러면 ‘특별한 문졔는 없’으시다면 무슨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시겠지만, 저의 직장은 계절에 따른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가장 바쁠 때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가외 근무를 합니다. 다른 것은 할 시간이 없고, 그저 일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대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러한 환경에 처해 있읍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 일한 후에 피로를 느낄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문제입니다. 몸이 괴로우니까 자연히 낙담하고 실망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짜증이 나겠지요.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문제가 무엇이든지 해결책이 있읍니다. 우리가 낙담하고 우울할 때 특히 격려가 되는 성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55:22인데 이렇게 충고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지금 형제가 약간 우울하고 낙담해 있는데, 이 성귀가 어떻게 도움이 될까요?”

“그 성귀에 의하면 제 짐을 여호와께 맡기면 여호와께서 저를 붙들어 주신다고 했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형제의 짐을 어떻게 여호와께 맡겨 버릴 수 있읍니까?”

“기도로써요?”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이 요동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 ‘요동’한다 함은 무엇을 뜻합니까?”

“지금 저와 같은 정신 상태에 빠지는 것 혹은 처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형제의 정신 상태는 어떠합니까?”

“예, 낙담하거나 실망한 것이지요.”

“바로 그렇습니다.”

“요점을 이해할 수 있겠읍니다. 그 성귀는 참말로 제 경우에 적용됨을 이해하겠읍니다. 정말로 저에게 필요한 것을 귀뜸해 주셨읍니다.”

“나도 항상 그 성귀로부터 많은 유익을 받고 있읍니다. 그 성귀는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하였고, 형제가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기도를 통하여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바로 지금 우리 기도로써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고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도록 하지요.”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합니다. 방문한 형제가 두사람 모두를 위하여 간구합니다. 그의 기도와 일치하게, 짐과 같이 누르는 문제를 가진 사람은 그 짐을 벗기 위하여 그의 일을 조정하고 개인 시간표를 변경하기 위한 진정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당신도 때때로 이와 비슷한 과정을 밟을 수 있을 것입니다.

10. 격려를 주어서 생긴 좋은 결과에 관한 경험담을 재술하십시오.

10 1966년도 미국의 어느 회중에서 일어난 실화를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의 한 성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우리 회중은 30퍼센트 증가를 하였읍니다. 그 근본 원인은 재활동자들이 추수 사업에 다시 참여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격려하고 세워 주는 영적 방문을 습관적으로 하였읍니다. 한 가지 간단한 경험담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3년 동안 무활동이 된 어떤 자매는 감독자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점짐 진리로 회복되기가 어려워집니다. 제가 너무나 오래 동안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어떻게 제가 감히 봉사에 나가거나 집회에 나갈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그 자매는 중병이 든 어머니를 오랫동안 돌보아야 하였었읍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사망하였을 때는 영적으로 약해지고 무활동이 된 것이었읍니다. 감독자는 그 자매가 결코 진리 밖에 떨어진 적이 없으며, 오히려 착한 그리스도인 행실과 사랑에 절대 필요한 전도 봉사의 한 분야를 수행한 것이라고 격려하고 여호와께서는 그 자매가 한 사랑의 사업을 잊지 않으신다고 말해 주었읍니다. 그리고 그 자매에게 감옥에 투옥된 형제들은 집회나 야외 봉사에 참여할 수 없지만 진리 밖에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었읍니다. 이런 견해는 그 자매를 크게 도와주었읍니다. 그는 현재 봉사에 정규적이며 집회에 참석합니다. 이런 즐거운 경험담들은 우리의 형제들에게 계속 친절을 보일 필요성을 잘 알려 줍니다.”

물질적 선물

11. 물질을 포함한 착한 일도 있읍니까?

11 물질을 포함한 착한 일 역시 영적 축복과 유익을 가져 옵니다. 이 사실은 갈라디아 6:10이 암시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물질을 형제들과 함께 관대하게 나누어 쓰라는 것입니다. 관대하게 주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의 발로이며, 이것은 요한 1서 3:13-18에 의거해 볼 때 틀림없읍니다. 그 중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이 사실을 더욱 확증하고 그 동기를 검토하면서,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여기서 말과 행함을 대조시킨 것은 관대하게 주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습관이지 단순한 탁상 공론이 아님을 표시합니다.

12. (ㄱ) 누구에게 물질적으로 관대함을 보일 수 있읍니까? (ㄴ) 무슨 “날”에 그리스도인들은 선물을 할 수 있읍니까? (ㄷ) 무엇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 적절합니까?

12 누구에게 물질적으로 관대함을 보일 수 있읍니까? 형제 모두에게입니다. 단순히 궁핍한 사람들만이 형제들의 관대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받으며, 또 받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주는 일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세상의 명절에 선물하는 일 등입니다. 그러나 흔히 경쟁하는 정신으로 선물을 하며 질투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읍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관대함을 베푸는 데 있어서 공식적인 명절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선물이란 어느 때든지 충실한 봉사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줄 수 있으며, 또 누구에게든지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있읍니다. 일례를 들면 연로한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것은 남편과 아내 사이의 사랑의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 그리고 경건한 원칙으로 생활하도록 교훈하고, 훈련시켜 주는 부모에 대한 자녀들의 사랑의 표현도 포함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해 주었거나 혹은 신권적으로 어떤 대접이나 호의나 유익을 베푼 형제에 대한 감사의 표현도 포함됩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정한 “어머니 날”, “아버지 날”, “크리스머스”, “부활제” 등과 같은 명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명절 때에 성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선물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교 기원을 가진 그러한 명절과 관련을 가진 선물을 하는 일을 피합니다. 사랑의 선물은 여러 가지 일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 있읍니다. 일례를 들면 파이오니아들이 하는 성실한 봉사에 대한 감사의 표현일 수 있읍니다. 받는 사람은 축복을 받으며, 주는 사람은 더욱 크게 축복을 받습니다. 모두가 유익을 받고 믿음 가운데 세움을 받고 노소가 모두 이익을 얻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 71:18)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들과 관대하게 함께 나누는 것은 모두를 강한 사랑의 유대로 붙잡아 매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개인적 방문

13. 개인적 방문은 어떻게 착한 일이 될 수 있읍니까?

13 앞의 몇항에서 우리는 서로 격려하기 위하여 어느 형제가 다른 사람을 방문하여 방문을 받는 형제와의 대화에서 어떠한 말이 오갔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읍니다. 사실상, 믿음 안에서 우리와 관련을 가진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적극적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 중 한 사람이 병들었거나 혹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낙담해 있는 경우와 같이 우리의 특별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예수께서는 마태 25:35-40에서 상징적 양과 상징적 염소의 비유에서 이 원칙을 활용하시어,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와 관련을 가진 사람들을 방문하는 것은 그 방문 자체가 도움이 됩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정다운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표시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는 격려와 실제적인 도움이 그들에게 유익을 줍니다. 실제적 도움 가운데는 아이를 돌봐 주는 일, 집안 일을 거들어 주는 일,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일, 기타 우리가 그곳에 있음으로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도움들이 있읍니다. 형제들을 방문하는 것은 상호 사랑의 자발적인 표현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만 방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형제가 집회나 봉사에 빠졌을 때만 방문해야 한다는 법은 없읍니다. 우리의 그리스도인 교제는 소중한 것이며, 따라서 방문한 사람이나 방문을 받은 사람 모두가 영적으로 큰 유익을 받습니다.”내가 여러분을 안타깝게 보고 싶어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영적인 어떤 선물을 나누어 드려 여러분을 굳세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여러분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분과 내가 피차의 믿음을 통하여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입니다.”—로마 1:11, 12, 새번역.

14. 앞에서 살펴 본 그리스도인 생활의 특징들을 요약하십시오.

14 지금까지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수 있는 선한 일의 몇 가지 본보기를 살펴 보았읍니다. 그 가운데는 그들과 함께 재치있게 섬기고, 그들이 그들의 선한 일을 계속하도록 격려하고, 우리의 형제들과 물질을 서로 나누고, 상호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하여 그들을 방문하는 일이 있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커다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착한 일로 말미암아 회중이 힘을 얻고 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이 재치있고, 서로 격려하고, 관대할 때, 그리고 시간을 내어 방문할 때, 더욱더 강한 연합과 사랑의 유대가 존재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생활의 일부이며,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일부입니다.

15. 생활의 이러한 착한 일로부터 오는 결과를 요약하십시오.

15 그러한 선한 일에 대한 여호와의 축복과 함께 훌륭한 결과가 생깁니다. 그것은 평화와 강력과 위로라는 축복입니다. 사도 9:31은 분명히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읍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편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평화는 의의 기초 위에 구축되며, 여호와의 축복을 가져옵니다. 그로 인해 회중과 회중 내의 각 개인은 모든 이에게, 외부의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더 잘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믿음 안에 있는 자들에게 착한 일을 할 때 참으로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됩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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