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 관계에서 균형을 유지함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요한 1서 4:21, 새번역.
1.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하며, 사도 ‘요한’은 그 점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우리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 전적 헌신을 드리는 것이 그리스도인 균형에 필수적인 요구 조건이지만, 동료 인간들에 대한, 특히 그리스도인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그러한 헌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읍니다. (갈라디아 6:10)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우리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합당한 관계도 동일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장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읍니다.”—요한 1서 4:20, 21, 새번역.
2. 흔히 세상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동료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2 그러면 동료 그리스도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무엇이 그들과의 올바른 관계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의 상호 교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위신과 체면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서 벗을 삼으려고 합니다. 흔히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거나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왕 그들은, 남을 이용하고, 먼저 남을 속이고 짓밟으려는 태도를 가집니다. 그러나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대단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교훈을 유의하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기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 . .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느니라].”—빌립보 2:2-7.
3. 모두가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를 취한다면 우리의 생활이 어떻게 될 것입니까?
3 만약 모든 사람이 이러한 성경의 충고와 일치하게 생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다면, 그 얼마나 유쾌한 생활이 되겠읍니까! 남의 재산이나 재능을 이기적으로 탐내는 일이 없을 것이며, 자기가 남보다 더 잘났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남을 무색케 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또한 창피를 주려고 남을 드러나게 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균형을 빼앗고 불유쾌한 관계를 조성하는 원인은 자신을 너무 중하게 생각하고, 탁월하고 우수함을 나타내려는 이기적인 세상적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사도의 다음과 같은 교훈을 청종하는 것이 대단히 필요합니다.
4, 5. 우리는 어떠한 성서 교훈을 따를 필요가 있으며, 그러나 그렇게 행하는 것이 항상 쉬운 일입니까?
4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 .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 . .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체 하지 말라.”—로마 12:2, 3, 10, 16.
5 그러나, 이러한 영감받은 교훈에 일치하게 행동하기보다는 그러한 일에 관하여 말로 하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즉 우리의 형제를 사랑한다든가, 마음을 겸손하게 가진다든가, 분쟁이나 이기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든가,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훌륭하게 본다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까지도 부당한 견해 때문에 잠시 균형을 크게 잃은 적이 있읍니다. 그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밤,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예수와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기념하였을 때에 일어났읍니다.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논난함
6. (ㄱ) 기원 33년 유월절 밤에 예수의 사도들 사이에 어떠한 논난이 벌어졌으며, 그 며칠 전에도 무슨 일이 그와 비슷한 문제를 일어나게 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자기의 추종자들의 상호 합당한 관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6 주의 만찬이 끝난 후, 사도들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지위 혹은 서열 문제가 일어나서 서로 다투게 되었읍니다. (누가 22:24) 바로 며칠 전, 그러니까, 그들이 예수의 지상 전도 사업의 그 중대한 마지막 주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할 때에도 그 동일한 문제가 제기되었읍니다. 그 때, 사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께 나아와, 예수의 왕국에서 자기 두 아들에게 우수한 지위를 주십사고 부탁하였읍니다. 성서 기록에 의하면,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조직 내의 마련은 그들이 세상에서 배운 것과는 전혀 다름을 지적하시어, 그들의 격분을 진정시키셨읍니다. 그들 가운데 책임 있는 지위를 맡을 사람은 동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 20:17, 20-28.
7. 무엇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의 교훈의 진의를 터득하기 어려웠읍니까?
7 그러나, 사도들은 예수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모양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항상 보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고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적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들 상호 관계에 대하여 균형 잡히지 않은 견해를 유지하였읍니다. 그들은 아마 ‘다윗’ 계통의 왕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때를 회상하고, 메시야 왕인 예수 그리스도도 지상 정부를 가지고, 사람들을 고관대작으로 임명하실 줄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는 야심도 가졌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주의 만찬식 후,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읍니다.—누가 22:24.
8. (ㄱ) 이 다툼은 예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틀림없읍니까? (ㄴ) 그 사건은 무엇을 예시해 줍니까?
8 이것이 사소한 논쟁이 아니었음을 유의하십시오. 오히려 열띤 “다툼”이었읍니다. 그 문제는 분명히 사도들이 지금까지 내심으로 생각해 오던 문제였는데, 이제, 커다란 논쟁으로 터졌읍니다. 예수께서는 얼마나 슬프셨겠읍니까! 그들과 여태까지 함께 하시면서, 그들에게 겸손의 본을 세워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일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심각한 때에, 그러한 논쟁을 하다니! 그 때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교훈과 격려로 가득찬 고별사를 하시려고 한 그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이었읍니다. 예수께서 그 밤에 하나님의 왕국을 언급하신 것이 사도들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킨 것 같습니다. 그 사건은 탁월한 지위와 위신을 가짐으로써 뛰어나 보이려는 욕망이 불완전한 인간 내부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을 수 있는가를 잘 예시하였읍니다.
예수의 사랑에 찬 교훈과 본
9. 예수께서는 이 다툼을 어떻게 다루셨읍니까?
9 예수께서는 그 다툼을 어떻게 처리하셨읍니까? 가혹하게 제자들을 시정하셨읍니까? 혹독한 비난을 가하여, 그들을 무안케 하셨읍니까? 아닙니다. 그 반대로, 사랑에 찬 방법으로, 그리고 아마 호소하는 음성으로, 그리스도인의 마련은 세상의 마련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또 다시 참을성있게 지적해 주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찌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찌니라.” 그 다음 예수께서는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하고 질문하셨읍니다. 물론 앉아서 섬김을 받으면서 먹는 자가 큰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22:25-27.
10. 사도들이 예수의 말씀을 이해하였는가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10 그들은 이번에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바를 이해할 것입니까? 그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이며, 그리스도인 조직에서 더 중한 책임을 받은 자는 “젊은자”와 같이 겸손하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겨야 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까? (마태 23:8-12) 그들은 그리스도인 조직 내의 절차는 세상의 일반 절차와 정반대라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까? 제자들은 예수가 그들의 스승이며 지도자라는 사실과, 사실상, 그들 가운데서 가장 큰 분임을 인정하였읍니다. 그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그 밤 조금 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읍니다. (요한 13:1-12)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들을 섬기셨던 것입니다!
11. 예수께서는 어떤 면으로 추종자들을 섬기셨읍니까?
11 예수께서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단순히 자기가 영적 의미로 즉 그들의 선생으로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신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실제적인 면으로도 그들을 수종드셨고 섬기셨읍니다. 즉 예수께서는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보통 하는 일을 하셨읍니다. 그러나 육신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던 그 마지막 날,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미리 ‘예루살렘’에 보내셨고, 그들은 “유월절을 예비하였”읍니다.—마태 26:17-19; 누가 22:7-16; 마가 14:12-18.
12. 이 다툼과 충고의 말씀이 있기 전, 예수께서는 어떠한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열 두 사도들을 섬기셨읍니까?
12 그 저녁에 일어난 사건을 목격한 사도 ‘요한’은 그 사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셨읍니다. (요한 13:2-5) 그런 일을 상상할 수 있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실제로 그의 사도들 한사람 한사람 앞으로 가셔서,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읍니다! 심지어 ‘가룟 유다’의 발까지도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러한 행동의 의미
13. 어떠한 성서적 예들로 보아 고대의 발 씻겨 주는 습관을 알 수 있으며, 보통 이러한 일은 누가 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13 그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는 일 그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었읍니다. 중동 지방의 길은 먼지가 많고, 사람들이 대부분 ‘샌들’을 신거나 혹은 맨발로 걷기 때문에, 발이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갈 때, 집주인이 방문객의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일종의 손대접이었읍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낯선 사람들에게 이러한 대접을 베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화신한 천사들이었읍니다. (창세 18:4; 19:2; 히브리 13:2)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한 ‘바리새’인은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읍니다. (누가 7:44) 그 일은 가장 천한 일의 하나로 생각되었으며, 일반적으로 집에서 가장 지위가 낮은 종이 그 일을 하였읍니다. 그래서 ‘아비가일’이란 젊은 여인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씻길 종이니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 여인의 진정한 겸손을 표시한 것입니다.—사무엘 상 25:41; 디모데 전 5:10.
14. 그 때 예수께서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처음에 어떻게 반응하였읍니까?
14 예수께서는 자기 교훈의 요점을 인상 깊게 해주기 위하여, 이 가장 천하면서도 필요한 봉사를 하기로 결심하셨읍니다. 그는 사도들의 발을 씻겨 주기 시작하셨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주인이 그렇게 천한 종과 같이 그를 수종드는 데 반대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다음, 발 씻겨 주시기를 다한 후, 겉옷을 두르고, 식탁 앞에 다시 앉으시고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셨읍니다.
15.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이유를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한 13:6-17.
16. 이 행동으로 예수께서는 무슨 교훈을 주셨읍니까?
16 예수께서는 사도들의 마음 가운데서 겸손의 필요성을 그 얼마나 현저한 방법으로 새겨 주셨읍니까! 예수께서는 그들이 영예나 존귀의 지위를 탐내서는 안되고, 서로를 위하여 가장 비천한 일까지도 기꺼이 해 주려고 해야 함을 뚜렷한 방법으로 보여 주셨읍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교국의 어떤 종파에서 다분히 위선적으로 행하는 ‘발 씻겨 주기’ 의식을 제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들에게 겸손한 마음씨, 남의 이익을 고려할 줄 알고, 형제를 위하여 가장 천한 일까지도 기꺼이 하려는 마음씨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상호 가져야 할 태도는 이러한 균형잡힌 태도입니다.
17. 사도들이 예수의 교훈의 요점을 이해하였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17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요점을 이해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3:8) 그 충실한 자들은 그 교훈으로부터 잘 배웠읍니다. 성서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이러한 균형잡힌 견해를 유지하였고, 그리스도인 회중을 세우기 위하여 서로 연합하여 일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 아무도 첫째가 되려거나 위신을 세우려는 야망을 가지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 후에 할례에 관한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사도와 장로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그 문제를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토의하였읍니다. 그 회의를 사회한 사람도 사도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의 이부 형제인 제자 ‘야고보’였던 것 같습니다.—사도 15:6-29; 12:1, 2.
새 계명
18. 그 후 예수께서는 그가 추종자들을 위하여 세워 주신 본에 어떻게 또 주의를 환기시키셨읍니까?
18 후에, 즉 사도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룟 유다’를 내보내신 후에, 예수께서는 그가 세워 주신 본에 다시 주의를 환기시키시면서, 남은 열 한명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요한 13:34, 35) 사도들은 율법 아래 있는 할례받은 ‘유대’인들이므로 이미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 아래 있었읍니다. (마태 22:39; 레위 19:18)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는 그의 참 추종자들은 그의 본을 따라서 더 광범위하고 더 우월한 사랑을 표시함으로써 구별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9. 예수께서는 어떠한 독특한 사랑의 본을 세우셨읍니까?
19 실로 예수께서는 사랑을 표시하는 데 있어서 독특한 본을 세워 주셨읍니다. 끊임없이 그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고, 그들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보다 앞세우셨읍니다. 그는 남을 돕는 데 너무 몰두하셨기 때문에, 흔히 인간으로 즐기는 정상적인 안락도 희생하셨읍니다. (누가 9:58) 이것은 율법 언약이 요구하는 이웃 사랑보다 더 큰 사랑입니다. 두 사도가, 자기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께 왕국에서 주요한 지위를 자기네들에게 주십사고 요청한 경우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 10:35-45; 마태 20:20-28) 예수는 결코 자신을 영화롭게 하려고 하지 않으셨고, 겸손하게 그의 추종자들을 섬기셨읍니다. 마침내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읍니다. 그 얼마나 우월하고 모범이 되는 사랑입니까!—빌립보 2:8; 요한 15:12, 13.
20. 예수의 사랑의 표시의 본을 받을 때,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20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의 이러한 본을 받을 의무가 있읍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바와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뿐 아니라, 그가 자기 추종자들에게 보이신 비이기적 사랑도 본받아야 합니다. (요한 1서 4:20, 21) 당신은 그가 표시한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계십니까? 당신은 당신의 그리스도인 동료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칠 것입니까? 물론,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목숨을 바치라는 요구는 받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그러한 일까지도 기꺼이 하려는 그러한 성질의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사도 ‘요한’은 설명하였읍니다. (요한 1서 3:16; 로마 16:3, 4)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그만한 정도의 사랑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의 이익을 위하여 겸손하게, 그리고 기꺼이 섬겨야 하지 않겠읍니까?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기꺼이 바칠 사람들에 대하여 다정하고 친절하고 사려깊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의 마음 가운데 새겨 주려고 하신 교훈은 바로 이것이었읍니다.
마음을 변화시킴
21. 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까?
21 그러므로, 당신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합당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 12:2) 그리스도인의 마음씨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씨와 전혀 다릅니다. 특수 교육을 받은 사람들, 이를테면, 교직자나 의사, 과학자, 법률가들은 고자세를 취하고, 그들이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례가 허다합니다! 특수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 이를테면, 운동 선수나 영화 배우, 혹은 뛰어난 신체미나 걸출한 머리를 가진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때문에, 흔히 우쭐한 기분을 가집니다. 그러나, 균형잡힌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남을 낫게 여기”는 태도임을 기억하십시오.—빌립보 2:3.
22.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이 나보다 낫다고 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22 그러면,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남을 낫게 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예를 들자면, 노련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이올린’을 한번도 켜 본 일이 없는 자기 동료가 자기보다 더 잘 연주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그것과는 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과 동일한 훈련을 받지 않은 혹은 상당한 재능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훌륭하게 될 만한 훈련을 받았거나 재능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그들을 우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또한 그들이 교만해지고, 남이 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할 이유도 못됩니다. 여기서 성서는 사람의 마음씨를 언급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성실한 정신 태도는 남이 자기보다 낫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가 남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남의 수종과 섬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예수의 사도들이 행하거나 생각한 행동 가운데, 예수께서 그들보다 못하실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겸손하게 그들을 섬기셨으며, 심지어 꿇어 앉아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읍니다!
23. 어떠한 면으로, 균형잡힌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견해와 다릅니까?
23 이렇게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씨를 표시하는 사람들은 참으로 생기와 즐거움을 줍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하여 참으로 훌륭하고 균형잡힌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 사물의 제도의 사람들과 전혀 다릅니다. 어떤 이들이 돈이나 재산을 더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읍니다. 그들은 돈이 그들을 우월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않음을 이해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합니다. (디모데 전 6:17) 마찬가지로, 특정한 인종이나 국적에 속한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을 결코 우월하게 만들어 주지 않음을 이해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계속 겸손한 마음을 가지며, 인기가 없는 인종이나 국적의 사람들까지도 그들보다 낫다고 성실하게 생각합니다.—로마 10:12.
24, 25. 사랑을 표시하고, 겸손한 마음을 표시하는 데 있어서, 특히 누가 솔선수범해야 합니까?
24 특히, 그리스도인 조직 내에서 임명된 감독자들, 봉사의 종들, 및 더 큰 봉사의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겸손한 마음씨를 가져야 합니다. 물론,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들과 협조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도록 격려받지만, 인도하는 이 사람들 중, 그들이 집회를 사회한다는 이유로, 혹은 연설을 더 잘하고, 조직적 재능이 더 있다는 이유로, 혹은 더 많은 시간을 여호와의 봉사에 바친다는 이유로, 자기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히브리 13:7, 17) 하나님의 양무리를 칠 책임을 가진 연로자들에게 순종하라고 젊은 자들에게 교훈한 다음,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교훈하였읍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베드로 전 5:5) 모두 다 포함되어 있읍니다. 인도하는 사람을 포함한 모두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성서는 명령합니다.—에베소 5:21.
25 사실상, 감독자는 겸손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데 있어서 본이 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의로운 목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그는 그의 추종자들이 사랑과 겸손을 가질 필요성을 모범으로 보여 주시기 위하여, 극히 비천한 일까지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감독자들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감독자는 상전이 아니라, 그의 형제들의 종입니다. (마태 20:25-27) 감독자는 이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읍니다. 사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왜냐 하면, 상호 관계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입니다.—요한 1서 4:21; 빌립보 2:2-4.
26. 지금 그리스도인 균형 유지에 참 자극제는 무엇입니까?
26 머지 않아 땅에 사는 사람 모두가 이 동일한 마음씨를 가질 때가 올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세상은 얼마나 유쾌한 세상이겠읍니까! 그 때, 모두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로 완전히 옷입을 것이며, 특히 사랑으로 옷입을 것입니다. (골로새 3:12-14) 그렇습니다, 모두는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형제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한 때에 살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은 지금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얼마나 웅대한 자극제입니까!
[39면 삽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겸손을 가르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