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않아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하게 될 사람의 다스림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태 6:10.
1. (ㄱ)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다스림”이라는 단어의 뜻은 무엇이며, 이 단어는 ‘라틴’어의 무슨 단어에서 나왔읍니까? (ㄴ) 이 단어의 뜻을 이렇게 이해할 때에, 마음이 바른 사람들은 “다스림”을 어떻게 생각할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고려하고자 하는 다스림(rule)이란 단어는 권세 혹은 통제력의 행사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또한 어느 특정한 통치자나 정부가 통제력을 행사하는 기간이며, 지배 받는 상태의 사상을 내포하고 있읍니다. ‘라틴’어를 중심으로 구축된 언어에 있어서, 이 단어는 “곧은 자, 다스림”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레굴라’(regula)에서 왔읍니다. 이 ‘레굴라’라는 단어는 또한 ‘라틴’어 동사 ‘레게레’(régere)에서 온 것으로서 “바르게 인도하다, 안내하다”라는 뜻입니다. “다스림”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서 “통치”라는 단어는 ‘라틴’어 동사 ‘구버나레’(gubernáre)에서 나왔으며 이 ‘라틴’어 동사는 희랍어 동사 ‘쿠베르난’(kybernán)에서 빌려 온 것입니다. 이 희랍어 ‘쿠베르난’은 “조종하다” 그리고 “안내하다, 관리하다”와 “키잡는 사람, 조종사의 역할을 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에 하나의 정부에 의한 “다스림”이라는 생각 자체에는 잘못이 없읍니다. 마음이 바른 사람으로서 “다스림”을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읍니까? 특히 우리 모두와 같이 불완전한 사람으로서 “다스림” 즉 “곧은 자”를 원치 않는 사람이 누구이겠읍니까? 만약 우리가 올바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일을 바르게 하기를 원한다면, 바르게 조종을 받고, 바르게 지도와 통치를 받는 것을 누가 감사하지 않겠읍니까? 현재와 같은 세상에서도 우리 대부분은 그러한 것들을 원합니다. 인류는 머지 않아 올바른 정부에 의하여 놀라운 축복을 가져 올 그러한 곧은 다스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의 힘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까?
2-4. 사람이 다스림과 통치에 관하여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 점에 관하여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어떻게 흥미있게 설명하고 있읍니까?
2 오늘날 사람들은 경험을 통하여 다스림과 통치에 관하여 잘 알고 있읍니다. 땅과 바다로 되어 있는 이 지구 위에 사람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해 왔는가에 대한 진화론 신봉자들의 연대 추산은 신뢰할 수 없읍니다. 그러한 추산들은 터무니 없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비합리적 추측에 불과합니다. 가장 권위있는 전거 곧 인간 시초부터 기록되어 있는 정확한 역사책에 의하면 사람이 이 땅에 살아 온 기간은 이제 막 6,000년에 이르고 있읍니다. 사람은 거의 이 기간 전체를 통하여 비록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형태는 다르지만 여러 가지 사람의 다스림을 받아 왔읍니다. 사람은 그동안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잔인한 전제 정치로부터 소위 “민주주의”라는 현대 공화 정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의 통치와 정부 체제를 가져 보지 않은 것이 없읍니다.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은 이 사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백과사전」 “정부”(Government)라는 항목의 (1946년 판 제 10권) 설명은 이러합니다.
3 “고대 세계에 있던 정부는 세 가지 주요한 형태였음을 알려 준다. 즉 ‘수메리아’,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샤’, ‘마게돈’의 대전제 제국과 소’아시아’, 희랍 및 이태리의 도시국가, 그리고 ‘로마’의 독특한 제국이다.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점차적으로 제국의 중심부가 되었고, 그후 ‘로마’의 공화 제도는 공화 정치의 일부 잔존한 기구와 전통으로 미미한 제약을 받은 독재 정치로 변모하였다. . . . 중세를 통하여 그리고 신성 ‘로마’ 제국의 명목상 지상권을 통하여 지속된 ‘로마’의 세계 지배론은 독립이라는 명제를 가진 민족적 지역국가의 출현을 지연시켰다. 이 지연은 범세계적 인간 순종을 요구하는 교황의 주장에 의하여 그리고 그리스도교 세계 전역에 걸쳐 교회법 및 그것을 시행하는 법정을 통한 교회 정부의 효율적 조직에 의하여 도움을 받았다. . . . ”
4 제 16세기의 정치적 발달이 정부에 미친 결과를 지적하면서 상기 「백과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현대. 만일 현대 민족 국가가 16세기에 명백히 나타난다면 현대 정부의 역사는 명백히 동등한 두 기간으로 나눌 수 있다. 즉 ‘프랑스’ 대혁명(18세기) 전 기간과 그 후의 기간이다. . . . 현대 민주주의는 정부 조직에 있어서 매우 다양하다.” 계속해서 이 「백과사전」은 연성(軟性) 조직과 경성(硬性) 조직을 말합니다.—560-565면.
5. 「브리타니카 백과사전」보다 더 오래된 무슨 책이 고대 여러 정부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그 책은 다른 책들보다 어떠한 유리한 지위에 있읍니까?
5 「브리타니카 백과사전」이 언급한 고대 정부들 즉 ‘수메리아’(바빌로니아), ‘이집트’, ‘아시리아’, ‘페르샤’, ‘마게돈’, 희랍 및 ‘로마’는 「브리타니카 백과사전」보다도 훨씬 오래된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책의 일부는 바로 ‘바빌로니아’, ‘페르샤’, ‘마게도니아’, 희랍 및 이태리 ‘로마’에서 직접 기록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책은 우리에게 그러한 곳에 있었던 다스림과 통치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알려 줍니다. 이 정확하고 권위있는 책은 통용기원 제 1세기에 기록이 완료되었지만 현재 「브리타니카 백과사전」보다 더 널리 배부되었고 현대에 관해서도 권위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읍니다. 이 책은 성서 즉 성경이라는 책입니다.
6. 성서라고 하는 이 책의 여러 가지 훌륭한 점들을 말씀해 보십시오.
6 성경은 인류의 시초에 관한 정확한 기록과 사천백여 년간의 역사를 인류에게 알려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얼마의 예언은 우리를 현 20세기까지 그리고 지금부터 앞으로 천년까지 안내해 줍니다. 따라서 이 놀라운 책은 우리에게 사람의 다스림에 관하여 그리고 그 결과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려 줍니다. 이 성경은 머지 않아 사람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할 것을 우리에게 확신케 해 주는 유일한 책입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지도적 활동력 즉 영의 감동 아래 기록되었고, 그러므로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 것이며, 그분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늘날까지 그 책을 보존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원치 않는 이유
7. 많은 사람들이 “신권 통치”라는 생각을 혐오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오늘날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혐오합니다. 이 말은 그들의 머리 가운데 신권 통치(神權統治)에 대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 말은 사실상 하나님의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신권 통치라는 말을 들을 때 부도덕하고, 탐욕적이고, 이기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종교 사제(司祭)들과 교직자들에 의한 부패와 압제적 통치를 연상케 합니다. 그들은 온 인류에게 절대적 무조건 순종을 요구하며, 거짓 종교의 미명 아래 그들의 돈을 갈취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여러 세기 동안 ‘유럽’에서 그러한 소위 신권 통치가 사제 계급에 의하여 시행되었었읍니다. 사제들이 공공연하게 세상 정치와 야합하고 정치적 통치자들을 자기들에게 예속시키려 한 시대에 관하여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1956년판 제 13권) “정부”(Government)라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8. 「아메리카나 백과사전」은 통치권의 근원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읍니까?
8 “통치권의 근원. 정부가 그 권세를 받는 근원에 관하여 여러 시대와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의견을 주장하여 왔다. . . . 여러 나라에서 오랫동안 왕들은 하나님의 권리에 의하여 다스린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통치 세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그들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유럽’의 많은 통치자들은 교황을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직접적 대표자로 인정하였고 지상의 하나님의 대리자인 교황으로부터 그들의 권세를 받았다. 왕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권리를 받았다는 일부 통치자들의 주장은 1600년 후에 있었다. 대영 제국의 ‘제임스’ I세(1603-1625년에 통치)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設)의 강직한 옹호자였다.”—89면.
9. “신권 통치”라는 말에는 어떠한 뜻이 있게 되었으며, 그러기 때문에 인류를 위한 그러한 신권 통치를 말하면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생각합니까?
9 신성 ‘로마’ 제국 시대에 ‘유럽’의 왕들만이 ‘로마’ 교황을 “지상의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교황들도 그랬고 그들 밑에 있는 종교 성직 계급 그리고 일반 사람들까지도 그런 왕들과 같이 생각하였읍니다. 그래서 성직 계급을 통한 교황의 통치를 신권 통치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사전은 “신권 통치”(theocracy)라는 말의 한 가지 뜻으로 그러한 통치를 말하게 되었읍니다. 또한 교황들은 자기들을 “지상의 하나님의 직접 대표자들”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세계 주권 혹은 세계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읍니다. ‘유럽’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교황이 왕들에게 왕관을 씌울 수도 있고 벗길 수도 있으며, 왕을 즉위시키고 퇴위시키는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읍니까? 역사 연구생으로서 교황 ‘레오’ III세가 기원 800년 ‘크리스머스’날 ‘로마’에서 ‘찰스’ 대제 즉 ‘샬레마뉴’에게 왕관을 씌워 준 것을 기억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겠읍니까?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직후에 무력한 교황 앞에서 황제로서 자신이 왕관을 쓴 것은 ‘나폴레온 보나파르트’였읍니다. 교황의 “신권 통치” 시대에 있었던 그러한 다스림을 잘 아는 오늘날 지성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그와 같은 성직 계급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머지않아 있을 하나님의 다스림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10. 그리스도교국과 이교국의 사제들과 교직자들에 의한 종교-정치의 다스림은 어떻게 되지 않으면 안됩니까?
10 다행히도 그러한 사제(司祭)들에 의한 신권적 다스림은 사람의 다스림의 서글픈 한 면에 불과하였읍니다. 교황들과 사제들 그리고 교직자들도 단순히 불완전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사제들과 교직자들에 의한 그러한 종교-정치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할 때 그리스도교국의 사제들과 교직자들의 정치-종교의 다스림도 이교국의 다스림과 함께 영원히 없어지고 그리하여 인류는 영원히 구제될 것입니다.
사람의 다스림보다 더 우월한 다스림이 불가피하다.
11. 이 땅을 사람 외에 다른 분이 다스리는 일이 실현될 것을 우리는 왜 확신할 수 있읍니까?
11 사람의 다스림이 다른 종교의 다스림에게 양보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면 이러한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즉 사람의 다스림이 아니고도 온 땅을 다스릴 다른 다스림이 있을 수 있는가? 진화론자와 유물론자는 그런 것이 없다고 강력히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완고하게도 역사적 사실을 무시합니다. 인간이 ‘로케트’나 우주선을 가지고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유형의 우주를 다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주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십니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그렇게 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분은 나머지 우주 전체를 다스리고 계시는데 이 땅을 다스리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읍니까? 그분이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읍니다. 사람이 이 땅에 약 6,000년간 살아 왔고 이제 30억 이상이 이 땅에 살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이 땅에 대한 법적 권리나 다스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의 이 땅에 대한 자기의 소유권과 이 땅과 땅의 거민들을 다스릴 권리를 결코 포기하신 일이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을 지상에서 살게 하셨을 때에 그분은 땅을 다스리고 계셨읍니다. 그 때가 약 6,000년 전이었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때 다스리시는 일이 잘못되었거나 나쁜 점이 있었읍니까?
12. 첫 사람은 어떠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신명기 32:3-6에서 이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2 이 점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소위 자연 진화 과정에서 중간쯤 발달된 꿀꿀대는 짐승 같은 동굴인(洞窟人)으로 창조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외계의 영화로운 우주 전체를 창조하신 그분께서는 사람을 그분의 창조 능력에 찬양을 가져 올 만한 작품으로 창조하셨읍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고 가장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그분이 첫 사람을 만드셨을 때에도 완전하게 창조하셨읍니다. 40년 동안 고대 애굽 통치 밑에서 살았던 일이 있는 ‘모세’라는 성서 필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위대하심을 우리 하나님께 돌리라! 반석, 그의 활동은 완전하시다. 그의 모든 길은 공평하시기 때문이다. 충실하신 하나님, 그에게는 불공평이 없으시며, 그는 의로우시고 곧으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파멸적으로 행동하였다. 그들은 그의 자녀가 아니고, 흠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이다.” (신세)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신명 32:3-6) 이러한 영감에 의한 말씀으로 볼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완전하게 창조하셨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13. (ㄱ) 인간 존재에 관한 진화론자의 이론은 왜 거짓이며 잘못된 것입니까? (ㄴ)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창조하신 사람을 어떻게 하시려고 하였읍니까?
13 진화론자들이 상상하는 털이 덥수룩하고 이마가 툭 나오고 험상궂게 생긴 얼굴을 가진 동굴인은 결코 하나님의 형상이나 모양을 닮았다고 할 수 없읍니다. 영감을 받은 예언자 ‘모세’가 기록한 창조 기록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 즉 자기 모양대로 창조하시겠다고 하였고 또 그대로 창조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첫 사람을 위하여 또한 완전한 아내도 창조해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관한 창조 사업을 마치셨을 때에 그가 하신 일을 한번 살펴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가장 훌륭하신 비평가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자기가 땅에 하신 일을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을 때 이 땅은 진실로 그러하였읍니다. (창세 1:26-31) 사람은 “심히 좋”은 이러한 완전한 상태로 출발하였읍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들의 완전성을 기초로 해서 다루실 수 있는 지상의 지성 있는 피조물들 즉 하나님을 그대로 반영하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가를 인식할 수 있고 가장 작은 일로부터 다른 모든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완전한 순종을 바칠 수 있는 남녀를 다스리고자 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14.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남녀에게 어떠한 생활 상태를 주시고자 하셨으며, 창세기 2:8-15에 있는 성서 기록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4 하나님께서 다스린다는 것은 그 완전한 첫 남녀에게 어떠한 생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읍니까? 오염된 공기와 불결한 환경 가운데 빈민들이 우굴대는 상태에서 살 것이었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맹수나 독사의 습격을 받을 위험이 있는 ‘정글’에서 살 것이었읍니까? 그렇게 하셨다면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생각도, 일관성도, 사랑도 없으신 분이 됩니다. 그의 완전한 인간 피조물에게는 완전한 상태만이 적합하였읍니다. 즉 즐거운 동산인 ‘에덴’ 낙원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그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에게 진실로 좋았다는 증거로 창세기 2:8-15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 .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니라].”
15.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완전한 인간은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완전한 인간에게 창세기 2:16, 17에 있는 제한을 두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5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과 모양을 닮았고 법과 질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완전한 사람을 창조하셨읍니다. 이 완전한 지성있는 피조물이 자기의 창조주 앞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다스림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간단한 제한을 두셨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완전한 순종을 증명할 수 있었읍니다. 창세기 2:16, 17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법의 수여자이시기 때문에 자기의 인간 피조물에게 그러한 명령을 하실 수 있는 온전한 권리를 충분히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범죄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의 악한 성향을 제어하기 위하여 법을 만들 필요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그의 창조주에 대한 존경과 그의 천적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조그만 일에 자신을 억제할 것을 요구한 것 뿐이었읍니다.
16. 그 사람이 순종하는 것은 어떻게 되게 하였을 것이며 그에게 무엇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까?
16 새로 창조된 그 사람은 그의 보이지 않는 천적 창조주께 그의 순종을 증명할 기회를 갖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가 이 단순한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순종을 완전한 것이 되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지상 낙원에서 행복하게 영원한 생명을 즐기는 것이 그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아버지께 대한 완전한 순종에 달려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그 후에 완전한 사람은 그가 영원히 하나님의 다스림을 계속 받고자 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17. 여호와께서는 ‘에덴’ 낙원에서 첫 남녀에게 어떤 다른 법 혹은 명령을 주셨으며, 그것은 좋은 법이었읍니까, 혹은 나쁜 법이었읍니까?
17 하나님께서 사랑스럽고 완전한 한 아내를 창조하시어 그들을 결혼시키신 것은 그후 일이었읍니다. 이 남녀에게 그들을 땅에 두신 이유와 그들을 ‘에덴’ 낙원에서 결혼시키신 이유를 알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완전한 부부에게 또 다른 법을 주셨읍니다. 그 법은 그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막는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아래 땅끝까지 그들이 선을 행하라는 법이었읍니다. 창세기 1:28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그것을 정복하며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들의 날으는 피조물들과 땅위에 움직이는 산 피조물들로 복종케 하라.’”—신세.
18. (ㄱ) 이 땅에 대한 사람의 권세 가운데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읍니까? (ㄴ) 그러면 사람은 누가 다스리게 되어 있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올 것이었읍니까?
18 그렇습니다, 모든 하등 동물들을 “복종케 하라”고 하셨지 다른 모든 사람들 즉 때가 되면 전체가 아름다운 낙원으로 정복될 이 땅을 가득 채울 그들의 후손들을 복종케 하라고 하시지는 않았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남녀 ‘아담’과 ‘하와’에게 사람이 인류를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시지 않았읍니다. 그때 ‘에덴’ 동산에 있었던 하나님의 다스림은 계속되게 되어 있었으며, ‘아담’과 ‘하와’의 완전한 모든 후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것은 인간 사제나 교황이 없는 순수하고 이상적인 신권 통치였읍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신 천적 아버지께 그러한 다스림을 받는 온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까? 그것은 온 땅을 덮은 낙원에서 평화스럽고 행복한 가운데 인간의 완전성을 가진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사람의 다스림의 시작
19. 그러면 이 땅에 사람의 다스림이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러한 다스림의 시작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읍니까?
19 그러한 낙원 상태 아래 하나님께서 그러한 훌륭한 목표를 앞에 정해 놓으셨는데 감히 누가 이 땅에 사람의 다스림을 시작하기를 원하였겠읍니까? 오늘날 우리가 온 땅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사람의 다스림을 시작한 자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사람 자신이 거의 6,000년 전에 바로 그 낙원에서 그것을 시작하였읍니다. 완전한 후손들로 이 땅을 채우기도 전에 여자 ‘하와’와 남자 ‘아담’이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행동으로 시작되었읍니다.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법을 깨뜨리는 일로서 충분하였읍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들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유혹을 받아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때 땅에서 뿐 아니라 하늘 전체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반역을 일으킨 자로부터 유혹을 받았읍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용한 언어로 “반역자” 혹은 “반대자”라는 말은 ‘사단’이었읍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에 반역을 일으킨 이 자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서 “사단”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20. ‘사단’은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하와’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어떻게 꾀었으며, 첫 인간 부부에게 어떠한 거짓 약속을 하였읍니까?
20 ‘사단’은 ‘아담’과 ‘하와’에게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는 초인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영물이기 때문입니다. ‘에덴’ 낙원에서 교활하게 뱀을 사용하여 뱀에게서 사람의 말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먼저 그는 의심치 않는 ‘하와’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의 법을 깨뜨리고 땅에 사람의 다스림을 세우려는 욕망을 심어 주었읍니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에 불순종해서 그것을 먹으면 죽음의 형벌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에 관하여 ‘사단’은 뱀을 통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의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 3:1-5) 다시 말하면 ‘하와’와 ‘아담’은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금단의 실과를 먹고 그의 법을 깨뜨림으로써,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들이 스스로 선과 악, 옳고 그른 것의 표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람의 다스림을 누릴 것이며, 그것은 그들에게 독립과 자유를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이보다 더 교활한 논증을 사용한 정치가가 있었읍니까?
21, 22. (ㄱ) 먼저 ‘하와’가 다음에 ‘아담’이 인간의 다스림을 갖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하셨으며 그것은 왜 그분이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까? (ㄴ) 하나님께서 ‘사단’ 마귀에 대하여 어떠한 단죄의 말씀을 선언하셨읍니까?
21 먼저 ‘하와’는 인류에 대한 사람의 다스림을 갖기로 결정하였고 다음에 그 여자는 자기 남편인 ‘아담’도 사람에 대한 사람의 다스림을 갖기로 결정하도록 설복시켰읍니다. (창세 3:6, 7)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영토였으며,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가 시행되어야 할 곳이었지 결코 사람의 다스림을 받을 곳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단죄 아래 그들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 내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24시간의 하루인 바로 그날에 죽음에 처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자비롭게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아담’과 ‘하와’가 후손을 갖는 것이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목적을 고수하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의 후손에게 자비를 베푸실 수 있고 땅에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를 다시 세우실 기회를 가지시기 위해서였읍니다. 그렇게 하여 위대하신 신권 통치자로서 자신의 우주 주권을 입증하시고 이 땅 위에 사람을 두신 자기의 목적을 입증하실 수 있으십니다. 이렇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단’ 마귀를 상징한 뱀에게 하신 교전에 관한 선언 가운데 들어 있읍니다.
22 “내가 너와 여자 사이와 네 씨와 그 여자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두겠다. 그는 네 머리를 상할 것이며,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할 것이다.”—창세 3:15, 신세.
23. 여호와께서 아직도 자신이 이 땅을 다스리실 그의 원래 목적을 고수하고 계시다는 어떠한 성서적 보증이 있읍니까?
2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옹호의 목적을 지금까지 수 천년 동안 고수해 오셨읍니다. 통용기원 제 1세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에게 영감을 주시어 ‘로마’에 있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게 하셨읍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둔하기를 바랍니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사탄’을 여러분의 발 밑에 짓밟히게 하실 때가 멀지 않습니다.” (로마 16:19, 20, 새번역) 이뿐 아니라 바로 오늘날 성취되고 있는 성서 마지막 책인 계시록 즉 묵시록은 ‘사단’ 마귀와 그의 악한 씨가 어떻게 짓밟혀서 머리를 상하게 될 것인가를 상징적 환상으로 설명해 줍니다. (계시 19:11부터 20:10) 이것은 이 땅에 인간의 다스림을 간악하게 선동한 ‘사단’을 멸망시키실 그의 원래 목적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직도 고수하시고 계시며 이곳에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를 다시 세우실 것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다스림이 계속되도록 하신 것은 다만 일시적인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의 끝은 매우 가까왔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읍니다!
재난을 가져 온 사람의 다스림—치료를 가져 올 하나님의 다스림
24. 사람의 다스림이 시초부터 창조주의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예들을 말하십시오.
24 ‘사단’ 마귀의 말을 들음으로써 첫 남녀는 사람의 다스림을 택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택한 것을 가지게 버려 두셨읍니다. 그러나 신권 통치를 받는 ‘에덴’ 동산 안에서가 아니라 ‘에덴’ 동산 밖에서 갖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까지 사람의 다스림을 받도록 버려두셨읍니다. 사람의 다스림이 이 땅에서 시작된 방법을 생각할 때, 그것이 사람의 창조주이신 홀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겠읍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의 다스림이 하나님 곧 사람들이 다스림을 받기를 거절한 그분의 축복을 받았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라는 질문의 대답에서 얻을 수 있읍니다. 그런데 사실을 조사해 보면 그런 일이 없다고 대답해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 사람은 자기의 경건한 동생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고, 나중에 도시 정부와 도시 생활의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도시를 세우기 시작하였읍니다. (창세 4:1-17) 그때부터 15세기 후에 사람이 거주하는 땅이 어찌나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폭력으로 가득찼던지 하나님께서는 그 인간 사회와 도시들을 세계를 덮은 홍수로써 일소시키셨읍니다.—창세 6:1부터 7:24.
25. (ㄱ) 홍수 때에 사람의 다스림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홍수의 생존자들에게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어떠한 명령을 반복하셨으며, 오늘날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25 이 세계적 홍수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세계 인구는 더 많아졌을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직장 문제, 식량 문제, 적당한 주택 문제, 세금 및 정부 비용의 증가와 같은 모든 난 문제와 병행해서 세계 인구 폭발은 더 빨리 왔을 것입니다. 인간 가족은 다만 여덟 명의 홍수 생존자들 즉 네 쌍의 부부로 다시 시작하였읍니다. 한 때 사람의 다스림은 “하나님의 행하신” 이 홍수로써 일소되었읍니다. 예언자 ‘노아’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와 자기 가족을 보존할 큰 방주(方舟)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은 사람이었읍니다. 홍수 후에도 그는 홍수 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하나님과 동행하였읍니다. (창세 6:8, 9; 8:18-22)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세 아들들에게도 홍수 후 땅에서 생활하는 데 관한 법을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하셨던 바와 같이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도 후손을 번성케 하여 그들의 자손들로 땅을 충만케 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9:1-7) 홍수가 있은지 43여 세기가 지난 오늘날 땅은 사람들로 충만합니까? 어떤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충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고르게 퍼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26. (ㄱ) 사람의 다스림이 어떻게 다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니므롯’은 어떻게 ‘가인’과 같았으며, 이것은 사람들을 위하여 잘 한 일이었읍니까?
26 사람의 다스림을 재건하려는 최초의 노력은 ‘노아’의 증손이요 ‘구스’의 아들인 ‘니므롯’ 때에 와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읍니다. 성서가 창세기 10:8-12에서 알려 주는 바를 유의하십시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여호와께 반대하는, 신세]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께 반대하는, 신세] 앞에 ‘니므롯’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메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더라].” ‘바벨’ 혹은 ‘바벨론’에서 있었던 ‘니므롯’ 왕국의 시작은 하나님의 왕국 즉 신권 통치의 시작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께 반대하는 능한 사냥군” ‘니므롯’에 의한 인간의 다스림의 현저한 시초였읍니다. ‘니므롯’은 살인자 ‘가인’과 같이 사람들을 자기의 통제 아래 도시로 집중시켰읍니다. 그것은 잘한 일이었읍니까? 이 조그만 시초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쌓아 온 문제들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그 대답을 얻을 수 있읍니다!
27. (ㄱ) ‘니므롯’ 시대 후에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었던 일이 있으며, 있었다면 언제 어디에서 있었읍니까? (ㄴ) 누가 왕이었으며, ‘요세퍼스’는 그것을 어떤 종류의 통치라고 불렀읍니까?
27 ‘니므롯’ 때부터 우리는 지상에 인간의 다스림을 가져왔읍니다. 이 여러 천년 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 즉 신권 통치인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은 일이 있읍니까? 그런 일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있을 신권 통치 즉 장차 올 하나님의 왕국의 축도적 예고로서 소규모로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 일은 언제 있었읍니까? 통용기원전 1513년 즉 예언자 ‘모세’ 때부터 시작하여 그후 9세기 동안 기원전 607년까지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그의 백성을 그 당시 세계 강국이었던 애굽에서 구출하신 후에 그들을 ‘아라비아’ 반도 ‘시내’ 산으로 모으셨읍니다. 거기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한 나라로 조직하셨고 그들에게 기본적인 10계명과 기타 그와 관련된 수백 가지의 법을 주셨으며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순결한 종교적 숭배 제도를 알려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깨끗하고 도움이 되는 제사직(祭司職)에 관한 엄격한 규정과 법을 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보이는 왕을 주시지 않았읍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실 뿐 아니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천적 왕이시며, 법의 수여자이시며, 그들의 재판장이셨읍니다. (출애굽 15:18-21; 19:1부터 20:26; 이사야 33:22) 이것이 제 1세기 역사가 ‘플레비우스 요세퍼스’가 호칭한 바와 같이 지상의 한 나라에 대한 “신권 통치”였읍니다.
28. 그러한 신권 통치에 무슨 잘못된 것이 있었읍니까? 만일 없었다면 백성들은 왜 창조주의 축복과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있었읍니까?
28 ‘에덴’ 동산에 있었던 신권 통치의 경우에서 물어 본 바와 같이 또 이렇게 물어 봅시다. 이 홍수 후 신권 통치에는 무슨 잘못된 것이 있었읍니까? 아무것도 없었읍니다. 다만 그 나라가 신권 통치 즉 하나님의 다스림의 표현에 일치하게 생활하는 한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땅인 중동 지방에서 번영하였읍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왕이시며 통치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그의 숭배로부터 떠나 그의 법을 깨뜨리고 그들 주위에 있는 이방들의 습관과 숭배를 따랐을 때에는 재난을 당했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시기 위하여 이웃에 있는 이방들과 같이 그들도 사람의 다스림 아래 있게 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고통을 받은 백성들이 자기들의 잘못과 불충실한 행위를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돌아 올 것을 탄원했을 때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압제자들로부터 구하시고 다시 신권적 자유와 은혜를 베푸셨읍니다.—사사 1:1부터 16:31; 21:25; 사도 13:16-20.
29.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던 그 백성의 자손들이 왜 오늘날은 신권 통치를 받지 않고 있읍니까?
29 그 당시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 아래 있었던 이 백성의 자손이 오늘날까지 수 천년 동안 생존해 왔고 한 나라까지 가지고 있읍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늘날 왜 신권 통치를 가지고 있지 않고 민주공화국을 가지고 있읍니까? 그것은 그들이 오래 전에 주위에 있는 이방들과 같이 인간의 다스림을 갖겠다고 믿음 없는 소원을 말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천적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결핍으로 인하여 예언자 ‘사무엘’에게 그들 나라를 다스릴 보이는 인간 왕을 세워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30.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들이 보이는 인간 왕을 달라고 하였을 때에 예언자 ‘사무엘’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셨읍니까?
30 ‘사무엘’은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를 믿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의 요구에 대하여 매우 분노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그들 위에 보이는 인간 왕을 갖게 될 때 있게 될 모든 문제와 부담을 말해 주었읍니다. 그래도 백성들은 그러한 인간 왕을 요구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8:1-2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그 나라를 다스릴 그러한 인간 왕을 기름붓게 하셨읍니다. 이러한 형태의 사람의 다스림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 왔읍니까?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에 의한 축도적 하나님의 왕국
31. ‘이스라엘’에서 ‘사울’, ‘다윗’ 및 ‘솔로몬’은 각각 어떠한 왕이었읍니까?
31 기름부음을 받은 첫째 왕은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이었읍니다. ‘사울’ 왕은 후에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고 마침내 영매술의 신봉자가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떠났읍니다. (역대 상 10:1-14; 사도 13:20, 21)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나라의 왕으로서 ‘유다’ 지파 ‘이새’의 아들이며 이전 ‘베들레헴’ 목동이었던 ‘다윗’을 세우셨읍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가에서 왕조가 영원히 세워질 것을 약속 즉 언약하셨읍니다. (사도 13:22; 사무엘 하 2:1부터 7:17) 따라서 ‘다윗’의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보이는 대표자로서 ‘예루살렘’에서 다스릴 보좌에 앉을 그의 후계자가 되었읍니다. 이에 관하여 역대 상 29:23(신세)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 대신에 왕으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아 형통하기 시작하였고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에게 순종하였다.” 보이는 인간 왕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은 이러한 형태의 신권 통치가 그 번영과 영광의 절정에 달한 것은 바로 이 현명한 왕 ‘솔로몬’ 통치 시대였읍니다.
32. 신권적 왕 ‘솔로몬’의 다스림은 받은 백성들의 상태는 어떠하였읍니까? 이것은 무엇의 예언적 그림이었읍니까?
32 현 20세기에 사람이 다스리는 모든 나라들의 상태를 열왕기 상 4:24, 25에 있는 신권적 왕 ‘솔로몬’의 통치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대조해 보십시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그 나라에는 많은 백성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식량 문제나 굶주림이 그 나라를 엄습하지 않았읍니다. 열왕기 상 4:20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하였[더라].” 이것은 다만 백성들이 하나님의 다스림 즉 신권 통치를 받을 때에 있을 축복의 본이 될 뿐 아니라 무엇인가 더 중요한 뜻을 내포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고대 ‘솔로몬’보다 더 현명하시고 위대하신 분으로 입증된 하나님의 천적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 통치 아래 장차 온 인류가 받을 축복의 예언적 그림이었읍니다.—마태 12:42.
33. (ㄱ)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신권 통치 아래 가졌던 축복과 보호를 상실하였읍니까? (ㄴ) 역사에 의하면 분리해 나간 ‘이스라엘’ 왕국에게 먼저 어떠한 일이 일어났으며, 다음에 ‘다윗’ 왕조 아래 있던 ‘유다’ 왕국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33 고대의 축도적이고 제한된 신권 통치 아래 축복이 그렇게 컸다면 ‘솔로몬’의 백성의 육적 자손들은 왜 오늘날 신권 통치의 축복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의 다스림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의 대답은 명백합니다. 거짓 신들 곧 고대 이방 신들의 숭배가 여호와의 은혜를 받은 나라 곧 여호와의 택하신 나라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거짓 숭배가 그들을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 떠나게 하였고 악귀 숭배국들을 통하여 악귀의 다스림을 받게 하였읍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기원전 997년에 그 나라는 둘로 갈라졌읍니다. 큰 부분은 257년간 분리된 왕국으로 존속하다가 기원전 740년에 마침내 ‘앗수르’ 세계 강국에 삼키웠읍니다. 작은 부분은 ‘예루살렘’에 수도를 둔 왕국으로서 ‘다윗’ 왕가의 지배 아래 기원전 607년까지 1세기 이상을 더 존속하였읍니다. 그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예언의 성취로서 ‘예루살렘’ 왕국이 ‘바벨론’ 세계 강국에 의하여 전복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열왕 하 25:1-26; 역대 하 36:11-21; 에스겔 21:18-27) 이 재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의 모형적 신권 통치는 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읍니다.
34. (ㄱ) ‘바벨론’에서 70년을 지낸 후에 복귀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누구의 다스림을 받게 되었읍니까? (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를 어떻게 받아들였읍니까?
34 그해 기원전 607년부터 지금까지 사람의 다스림이 온 땅을 지배해 왔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비롭게도 ‘유다’와 ‘예루살렘’의 70년간의 황폐 기간이 끝난 후에 그의 회개한 남은 자들을 ‘바벨론’의 유형으로부터 다시 돌아오게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때 그의 복귀한 백성들에게 모형적 신권 통치를 다시 세우시지는 않았읍니다. 그때 그들은 ‘마게도냐’ 즉 희랍 세계 강국이 ‘바사’를 정복할 때까지 ‘바사’ 세계 강국에게 예속되어 있었읍니다. 마침내 기원전 제 1세기에 ‘로마’ 세계 강국이 그들을 지배하였었고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 시대에 ‘다윗’ 성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왕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읍니다. (누가 2:1-20) 이 예수께서는 그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병을 고치는 일, 심지어 죽은 사람을 일으키시고, 예언을 성취시키는 일로써 자기가 약속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하셨읍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다윗’ 왕의 참다운 후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다스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가 왕이라고 주장하는 선동자라고 ‘로마’ 총독 앞에서 거짓 고발하였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누구의 다스림을 원하였읍니까?
35. (ㄱ) 그러한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보다 사람의 다스림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ㄴ) 사람의 다스림은 기원 70년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하였읍니까?
35 ‘로마’ 총독이 이들 고발자들에게 “내가 너희 왕을 못박으랴?” 하고 묻자 신권 통치를 믿었어야 할 고위 제사장은 무리를 선동하여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외치게 하였읍니다. (요한 19:1-15) 그렇게 해서 그들은 ‘다윗’ 왕가에서 나온 하나님의 메시야에 의한 하나님의 다스림 대신 사람의 다스림을 부르짖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원대로 사람의 다스림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어 죽은 자 가운데서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신지 33년 후에 그들은 왕 ‘가이사’에게 반역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와 주시지 않았읍니다. ‘가이사’에 의한 사람의 다스림이 우세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기원 70년에 반역한 사람들 백만명 이상이 죽임을 당하였고 97,000명이 노예로 잡혀 갔으며, ‘예루살렘’과 그 웅장한 숭배의 전이 멸망되었읍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시켰읍니다.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열국의 지정된 때, 신세]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 21:20-24.
‘사단’의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의 다스림
36. 사람의 다스림은 얼마 동안 계속되었으며, 사실상 그것은 누구의 다스림이었읍니까?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36 온 땅에 대한 사람의 다스림은 기원 1914년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어 왔읍니다. 이 “열국의 지정된 때” 즉 이방인의 때는 ‘바벨론’ 세계 강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처음에 멸망당한 기원전 607년에 시작되었읍니다. 그것은 그때 ‘다윗’ 왕손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형적 왕국인 모형적 신권 통치가 전복된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러한 이방인의 때는 ‘로마’ 세계 강국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두번째 멸망된 후에도 계속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인 성서로부터 이방인의 때가 ‘예루살렘’이 처음 멸망된 때로부터 2,520년 즉 이 20세기인 1914년까지 계속될 것을 알 수 있읍니다. 이 기간, 인류 세계는 사람의 다스림 아래 고통을 받아 왔읍니다. 그것은 사실상 ‘사단’의 다스림이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 마귀를 “이 세상의 통치자”라고 지적하셨고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그를 “이 세상 신”이라고 불렀기 때문입니다. (요한 12:31; 14:30, 새번역; 고린도 후 4:4) 제 4세기에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이 설립되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 혹은 하나님의 다스림은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사단’의 다스림이었읍니다!
37. 사람의 다스림의 2,520년 이상이 지난 지금의 세상 상태는 어떠합니까?
37 2,520년의 이방인의 때가 지난지 여러 해가 된 오늘날 사람의 다스림은 인류 세계에게 평화, 안정, 안전, 번영, 풍부에 대하여 어떠한 약속을 해 줍니까? 사람의 다스림은 ‘에덴’ 동산에서 완전한 ‘아담’과 ‘하와’에게 명령하신 온 땅을 정복하고 그것을 영원한 인류의 행복한 집이 되도록 지상 낙원으로 만들라는 사명을 수행하는 데 어떠한 약속을 해 주었읍니까?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후에 사람의 다스림은 두개의 세계 대전과 홍수 전 ‘노아’ 시대보다 더 심한 폭력 시대를 가져 왔읍니다. 1945년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래 사람의 다스림은 이 땅을 무서운 살륙력을 가진 원자폭탄과 핵폭탄을 저장한 병기고로 만들었읍니다. 땅을 파괴하는 일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동안 빈곤 문제는 더욱 더 심해가고 있읍니다.
38.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류가 이 땅을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38 오늘날 인류는 일반적으로 그들이 가지게 된 문제들과 치명적 위험성 때문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류는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을 대항할 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자연”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창조의 법을 대항해서도 싸우고 있읍니다. 이러한 실증으로서 1967년 마지막 주에 ‘뉴욕’ 시에서 개최된 ‘미국 과학 진흥회’ 회의에서 토의되고 발표된 바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은 현 과학, 핵, 우주 시대에 사람이 자연 환경에 가져 온 파괴성을 알려주었읍니다. 소위 “자연의 균형”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호흡해야 할 산소의 양이 점점 감소되고 있읍니다. 지구의 흙과 물은 현대 산업의 상업적 이익을 위하여 더럽혀지고 있읍니다. 동물과 인간의 생명을 유지케 해 주는 복잡한 자연계의 순환은 파괴되고 있읍니다.
39. “인간 대 자연”이란 제목의 「뉴욕 타임스」지 사설에는 어떠한 경고가 들어있었읍니까?
39 한 대학 교수는 사람의 환경이 “붕괴점”에 이를 만큼 압박을 받고 있으며, 더욱이 우리 지구는 “인간 사회를 위한 장소로서의 그 적합성이 파괴될 위기”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하였읍니다. 1968년 1월 1일자 「뉴욕 타임스」지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제목의 사설 끝 항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인간 생명을 유지시키는 땅의 능력은 한도가 있다. 만일 그 한도가 넘어가면 광대한 재난이 올 수 있으며—그러한 재난 중의 얼마는 아마 과히 멀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논증들의 진의는 ‘진보’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인간의 생존은 다만 땅을 만들어 냈고 지속시켜 온 자연적 환경이, 현재 신과 같은 지혜는 없으면서 신과 같은 능력만 사용하는 인간이 가하는 강력한 위협에 대항해서 보호를 받을 때에만 가능하다.”
40. 사람이 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어떻게 부인할 수 없이 명백합니까?
40 오늘날 세계 상태의 견지에서 관찰할 때 사람이 자신을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 되고 있읍니다.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환경을 지배하는 모든 법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도움과 지도와 축복 없이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인간 노력만 가지고는 결코 생존할 수 없읍니다. 사람이 현재 극도의 궁지에 몰려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 땅을 다스리지 않으실 수 없는 때가 왔읍니다.
하나님의 때는 가까왔다
41. (ㄱ) 사람에게 하나님의 다스림이 긴급히 필요한 이유 외에 또 고려하여야 할 더 중요한 어떠한 이유가 있읍니까? (ㄴ) 사람은 땅에 대한 그의 다스림을 평화롭게 양보할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야 합니까?
41 그러나 사람의 긴급성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메시야 왕국을 통하여 온 땅의 통치권을 잡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자신이 정하신 때가 다 찼기 때문에 이 땅에 대한 그의 다스림을 이제 다시 설립하시는 것입니다. 세계적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는 절대적으로 사람의 다스림을 믿고 나가야 한다고 느끼는 인간 통치자들과 그들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시간 엄수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정해 놓으신 시간에 따라서 정확한 때에 이 지구, 이 땅 전체에 하나님의 다스림인 신권 통치를 확보시키실 것입니다. 그 때는 가까왔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머지 않아 사람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다스림은 평화스럽게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 통치자들은 온 땅에 대한 그들의 지배권을 고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왕국을 대항해서 계속 싸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다스림은 ‘아마겟돈’이라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패배되어 멸망됨으로써 끝나게 될 것입니다. (계시 16:14, 16) 하나님의 다스림은 승리를 거두고 영원히 땅을 관할할 것입니다.
42. (ㄱ) 땅에 대한 방해 받지 않는 이방의 다스림은 언제 끝났으며, 우리는 그 사실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ㄴ) 이 땅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져 오시기 위하여 1914년에 무엇이 설립되었읍니까?
42 ‘사단’의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의 다스림이 계속된 이방인의 때가 기원 1914년에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단순한 상상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 가운데서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바로 그 해에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고 뒤따라 기근, 질병, 지진, 종교적 박해 및 국제적 고난과 혼란이 일어남으로써 뚜렷한 사실로써 증명되었읍니다. (마태 24:3-12; 누가 21:10-19) 잊을 수 없는 그 해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다는 것은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에서 전복되었던 ‘다윗’ 왕가의 후손에 의한 하나님의 왕국이 중동 지방에 있는 이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다시 설립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왕국의 권세가 하나님의 부활받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쥐어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에 계셨을 때에 그는 ‘다윗’ 왕의 보좌를 영원히 이을 자격을 가진 분이었읍니다. (누가 1:26-37) 이 왕국은 이방 중 어떠한 강국도 짓밟기 위하여 미칠 수 없는 먼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지금 다스리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이 천적 왕국을 통하여 이 지상에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져 오실 것입니다.
43.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통하여 사람의 다스림을 대치시키실 것이며, 원래 사람의 다스림을 촉진시킨 상징적 뱀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43 사람의 다스림에 믿음을 상실한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이제 머지 않아 사람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하게 될 것을 기뻐할 굳건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지난 16세기 동안 “주 기도”를 위선적으로 되풀이 해 왔읍니다. 그러나 같은 그 기간에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 왔읍니다. (마태 6:9, 10) 천적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이 기도에 틀림없이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늘에서와 같이 여기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람의 다스림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하게 될 것과 그의 천적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실 그의 왕국에 의하여 이 땅 전체가 다스림을 받을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약 6천년 전에 ‘에덴’ 동산에서 약속된 하나님의 여자의 씨의 주된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상징적 뱀인 ‘사단’ 마귀의 머리를 상하실 주요한 분이십니다. (창세 3:15; 로마 16:20) 이 상징적 뱀이 ‘에덴’에서 사람이 반역한 때부터 이 땅에 사람의 다스림을 촉진시키고 조종한 자입니다.
44. (ㄱ)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랑하는 지상의 “큰 무리”는 오늘날 43세기 전에 있었던 생존과 일치한 어떠한 생존을 바라고 있읍니까? (ㄴ) 지상의 새 질서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그들의 태도는 어떠할 것입니까?
44 사십삼 세기 전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를 통하여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세상이 종말될 때 방주 안에서 살아남았읍니다. (베드로 후 2:5; 3:5, 6) 그와 마찬가지로 이 세대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랑하고 그의 왕국이 올 것을 기도하는 이 땅에 사는 비교적 “큰 무리”가 지상의 사람의 다스림이 비참하게 종말될 때 살아 남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아마겟돈’에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통하여 보존을 받아 지상의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로 들어갈 그들의 희망의 실현을 보게 될 것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응할 것입니다. 그들은 예언자 ‘사무엘’ 시대에 살던 불충실한 사람들처럼 그들을 다스릴 보이는 지상의 인간 왕을 요구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왕권을 주신 보이지 않는 천적 왕의 다스림을 즐거이 받고 사랑과 충성으로써 그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이 천적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그들이 누릴 축복은 현명한 왕 ‘솔로몬’의 통치 아래 있던 백성들이 누린 축복보다 훨씬 더 클 것입니다.
45. ‘아마겟돈’을 통하여 “큰 무리”를 보존하는 것 외에, 메시야 왕국을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은 또 어떠한 일을 할 것입니까?
45 오늘날 핵무기 저장으로 강화된 사람의 다스림은 인류의 전멸을 위협하고 있읍니다. 메시야 왕국을 통한 하나님의 다스림은 ‘아마겟돈’ 전쟁을 살아 남을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사람이 다스린 수천년 동안에 죽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서 다시 살게 해 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죽은 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셨읍니다. (요한 5:25, 28, 29; 11:25, 26) 천적 왕으로서 그는 그러한 부활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의 기이함을 우리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46.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서 인류는 어떠한 기회를 받을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무엇을 기뻐해야 합니까?
46 메시야 왕국에 의한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을 지상 낙원에서 살 은혜를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완전한 평화와 안전 가운데서 인간의 완전성과 경건함을 누리며 끝없는 생명을 얻을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사람의 다스림은 이러한 것을 결코 가져 올 수 없었읍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머지 않아 사람의 다스림이 영원히 하나님의 다스림에 양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4면 삽화]
정확한 역사—성서
수메리아
애굽
앗수르
바사
마겟돈
희랍
로마
[11면 삽화]
‘솔로몬’ 통치 기간에 평화와 풍요와 안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