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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빌로니아’ 연대기—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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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빌로니아’ 연대기—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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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69
파69 5/1 197-200면

‘바빌로니아’ 연대기—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가?

이 20세기의 역사가들과 고고학자들의 어떤 저서를 보면, 성서에 기록된 연대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되는 ‘바빌로니아’ 연대기가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 도전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바빌로니아’ 연대기는 확고한 기초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그 연대기의 자료들은 성서에 들어 있는 사실들보다 더 높이 평가할 만한 것들인가?

‘바벨론’은 주로 ‘느부갓네살’ 시대부터 ‘유대’ 역사에 등장한다. ‘느부갓네살’의 아버지 ‘나보폴라살’의 통치를 “신 ‘바빌로니아’ 제국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 나라는 ‘나보니더스’와 그의 아들 ‘벨사살’의 통치 때에 ‘페르샤’ 사람 ‘고레스’에 의해 멸망됨으로 끝을 맺었다. 이 신 ‘바빌로니아’ 제국 시대에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사람들에 의해 멸망되었으며, ‘유대’ 땅이 황무하였던 70년 기간의 대부분이 이 시기였으므로, 성서 학자들은 이 시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느부갓네살’의 재위 제7년(즉 그가 왕위를 이은 해로부터 제8년)(예레미야 52:28; 열왕 하 24:12)에 ‘유다’ 왕국을 처음 침공한 사실을 성서는 상당히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바빌로니아’ 연대기의 한 설형 문자 비문에 이와 일치한 내용이 있다. “제7년 ‘기슬레’월에 ‘아카드’의 왕(느부갓네살)은 군대를 동원하여 ‘핫티’ 땅(시리아-팔레스타인)으로 진군, ‘유다’의 도시에 대진하였고, ‘아달’월 제2일에 그 도시를 점령하고 왕(여호야긴)을 체포하였다. 그는 거기에 자기가 택한 왕(시드기야)을 임명하고 많은 조공을 받았으며, (그들을) ‘바벨론’으로 보냈다.—‘디. 제이. 와이스맨’ 저, 「‘갈대아’ 왕 역대기」(주전 626-556), 67, 73면.

확고한 역사인가 혹은 의심스러운 합성품인가?

성서 기사와 ‘바빌로니아’ 기록이 처음에는 이처럼 잘 들어맞지만, 실제 ‘바빌로니아’에서 나온 자료는 그 다음부터는 공백이다. 예를 들면 ‘느부갓네살’ 통치의 마지막 33년에 대하여는 아직 아무런 역사 기록도 발굴되지 않았고 다만 그 왕 제37년에 있었던 애굽과의 전쟁을 알려 주는 파편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느부갓네살’ 재위 제18년(왕위를 계승한 때로부터는 19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켰다는 사실을 알리는 ‘바빌로니아’의 기록은 없다. (예레미야 52:29; 열왕 하 25:8-10) 이 사건을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오로지 성서 뿐이다.

‘느부갓네살’의 아들 ‘아멜말둑’(‘에윌므로닥’, 열왕 하 25:27, 28)에 대하여는, 그의 통치 제2년이란 기록이 있는 서판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거기는 그의 통치에 관한 정보가 거의 없으며 통치 기간에 대하여도 아무 말이 없다. 또한 ‘에윌므로닥’의 계승자라고 생각되는 ‘네리글릿살’에 대하여도, 정확히 역사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록은 하나 밖에 발견된 것이 없으며, 그것은 그의 재위 제3년의 것이라고 되어 있다.

‘나보니더스’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기념비라고 생각되는 비문에서 이 시대에 대한 연대 자료를 약간 알려 주는데 그것도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역사가들의 추측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다. 독자들은 이 비문의 일부를 번역한 하기의 번역문에서 괄호 내의 부분을 제한다면 그 비문이 얼마나 단편적인가를 인식할 것이다. 파괴되었거나 알아 볼 수 없는 부분을 맞추어 넣으려는 현대학자들의 시도를 잘 알려 주는 예가 될 것이다.

“‘앗시리아’의 왕 [‘아술바니팔’의 시대부터 그후 기간에], 그의 [통치 때에] 내가 출생하였다.—[즉]: ‘아술바니팔’ 아래 [21년], 그의 아들 [‘아술]에틸루-일라니’ [아래 4년], [‘나보폴라]살’ [아래 21년], ‘느부갓네살’ 아래 43년, [‘에윌므로닥’ 아래 2년], ‘네리글릿살’ 아래 4년, [합계 95년] 간, 신들의 왕인 ‘신’(Sin)이 자기의 [위대한] 신의 머리의 [전을 기억할 때까지] [신(神)이 외면하였는데], 그의 가리웠던 얼굴이 [빛났고], [그리고 그는] 나의 기도를 [들으셨고], [그가 명한] 노한 명령을 [잊으셨고], 그의 마음이 기뻐하시는 신전, [사원] ‘에훌훌’ 전으[로 돌아가실 것을 결심하셨다.] [그가 곧 전에 돌아올 것에 관하여 신들의] 왕인 ‘신’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바벨론’의 왕 [나의 태의] 아들 ‘나보니더스’가 [나를] 전 ‘에훌훌’[에] 들[어가게/(다시) 앉게 할 것이다!] 나는 신들의 왕인 (‘신’)이 명한 명령을 조심[스럽게] 순종하였으며, [그러므로] 내가 직접 ‘바벨론’의 왕, 내 태에서 나온 자손 ‘나보니더스’가 [어떻게] 잊어버린바 되었던 ‘신’의 의식을 완전히 회복시키는가를 목격하였고, . . . ”

이 글을 계속 보면 ‘나보니더스’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는) ‘신’이 자기로 하여금 “‘앗시리아’의 왕 ‘아술바니팔’ 때로부터 ‘바벨론’의 왕, 내 태에서 나온 아들 ‘나보니더스’ 6년까지 [곧] 104년의 다복한 연수”를 장수하게 하였다고 하였다.—‘프릿차드’ 저 「고대 근동 교본」, 311, 312면.

이 대단히 불완전한 비문에 실제로 나타난 숫자라고는 43년간의 ‘느부갓네살’ 통치와 4년간의 ‘네리글릿살’ 통치 뿐이다. ‘네리글릿살’의 경우는 4년만 통치했다고 볼 수 없고 제4년에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아술바니팔’ 몇 년에 ‘나보니더스’의 어머니(혹은 할머니)가 출생하였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104년의 다복한 연수”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는 캄캄하다. 또한 ‘아술에틸루일라니’, ‘나보폴라살’ 및 ‘에윌므로닥’ 등의 통치의 길이에 대하여도 언급이 없으며, 현대 역사가들이 ‘네리글릿살’과 ‘나보니더스’의 사이에 통치하였다고 인정하는 ‘라바시말둑’에 대한 언급도 없다.

또한 현대 역사가들이 ‘톨레미’의 정전에 근거하여 삽입한 추측한 연수를 살펴 보라. 이 수에 ‘나보니더스’ 6년을 더하면, 합계 100년 혹은 101년이 되지 그 비문 자체에 나오는 104년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 단편적인 기록은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연대에 대하여 별로 알려 주는 것이 없다.

‘톨레미’의 정전

그러면 이 ‘톨레미’의 정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가들이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연대에 관하여 그 문헌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에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 ‘클라우디우스 톨레미’는 기원 2세기 곧 신 ‘바빌로니아’ 시대가 종결된지 600여년 후에 ‘이집트’에 살던 사람이다. 그는 역사가가 아니라 천문학과 지리학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알. 티엘’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톨레미’ 정전은 역사상의 목적이 아니라 천문학적 목적으로 마련되었다. 그것은 ‘바벨론’이나 ‘페르샤’의 모든 왕들을 전부 열기하지도 않았고 왕들의 통치가 시작한 정확한 달 혹은 날자를 알려 주지도 않는다. 그것은 그 당시 구할 수 있는 어떤 천문학 자료를 광범위한 연대에 걸쳐서 정확하게 배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히브리’ 열왕의 신비로운 수」, 293면, 각주.

‘톨레미’는 ‘나보폴라살’의 통치 기간을 21년, ‘느부갓네살’을 43년, ‘에윌므로닥’을 2년, ‘네리글릿살’을 4년, ‘나보니더스’를 17년이라고 하여 총계 87년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바벨론’이 멸망된 다음에 통치하였던 ‘고레스’ 제1년부터 뒤로 계산하여 ‘나보폴라살’의 통치가 기원전 625년에 시작하였고, ‘느부갓네살’의 통치는 604년에 시작하였고, ‘예루살렘’의 멸망은 586 혹은 587년으로 본다. 이러한 연대는 성서 연대기에 나온 연수보다 약 20년 뒤늦는다. 그러나 현대 역사가들은 ‘톨레미’의 문헌에 근거한 연대를 더 좋아한다.

설사 ‘톨레미’ 정전에 기록된 ‘바벨론’과 ‘페르샤’ 왕들의 통치 기간이 기본적으로 정확하다 할지라도, 그 정전이 모든 기간에 대하여 전부 정확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바빌로니아’의 역사 기록이 전연 없기 때문에 ‘톨레미’가 말한 왕들의 통치 기간의 정확성을 반증 혹은 입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성서 비평가들은 성서 연대기에 근거한 ‘예루살렘’의 멸망 연대(기원전 607년)를 받아들이면 ‘바벨론’ 연대에 간격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톨레미’ 계산법을 철저히 따르는 사람들은 자기 이론상의 간격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 연대 사이의 간격은 그들이 ‘바빌로니아’와 ‘앗시리아’의 역사를 일치시켜, 신 ‘바빌로니아’ 시대의 시작 연대로 기원전 625년을 맞추려고 할 때에 생기게 된다.

‘바빌로니아’ 연대기를 보면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나보폴라살’ 제14년에 ‘바빌로니아’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고 한다. 세속 역사가들은 ‘톨레미’의 기록에 근거하여 그 사건을 기원전 612년으로 친다. 동시에 그들은 천문학 기록을 산출하여 ‘앗시리아’ 왕 ‘앗수르단’ 3세 제9년이 기원전 763년이라고 하며, 그 해를 절대 연대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해부터 앞으로 계산하여 ‘니느웨’에서의 ‘앗시리아’의 통치가 기원전 612년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인명록, 왕명록 기타의 자료를 사용하여, 그들이 ‘아술바니팔’의 통치 원년이라고 하는 기원전 668년까지는 연대를 맞추어 놓지만, 그 해 이후로는 혼란이 대단하다.

특히 ‘아술바니팔’의 통치에 관하여는 혼란이 대단히 심하다. 예를 들면,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에서는(1959년판, 2권 569면) ‘아술바니팔’의 통치 기간을 기원전 668-625년이라고 하였다. 그 다음에 같은 책 851면에서는 그 통치 연대를 기원전 669-630년이라고 하였다. 같은 판 5권 655면에서는 그의 통치를 “668-638년(?)”이라고 하였다. 같은 백과 사전 1965년판에서는 ‘669-630년 혹은 626년’이라고 하였다. (2권 573면) 다른 학자들은 ‘아술바니팔’ 통치의 끝 해를 다음과 같이 추정한다.

663년 (A History of Israel, John Bright, 1964)

631년 (Ancient Iraq, Georges Roux, 1964)

629년 (The Interpreter’s Dictionary of the Bible,

1962)

약 631-627년 (The New Bible Dictionary, 1962)

626년 (Ancient Records of Assyria and Babylonia,

D.D. Lukenbill, 1926)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아술바니팔’의 후계자로 생각되는 ‘아술에틸루일라니’의 통치 연대에 대하여도 의견 차이가 많다. 그리고 ‘니느웨’ 멸망 당시의 왕일 듯한 ‘신살이쉬쿤’의 통치 연대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 최후의 왕의 통치 기간을 18년까지 잡는 역사가들도 있다. 하지만 연대가 나타난 토판으로는 그의 통치 7년까지의 것이 고작이다.

이와 같이 역사가들은 ‘톨레미’의 연대와 기원전 763년이라는 그들의 중심 연대를 둘 다 지지하기 위하여 연대를 신축성있게 잡는다. 그리하여 ‘앗시리아’ 제국의 후기 통치자들의 통치 기간을 증거에 나타난 기간보다 훨씬 더 길게 추정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메꾸기 곤란한 심한 간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예루살렘’이 멸망된 해가 기원전 607년이라는 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파수대」, 1968년 11월 15일호, 512-515면 참조.

‘베로서스’—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톨레미’가 자기의 정전을 만들 때에 기원전 3세기의 ‘바빌로니아’ 승려 ‘베로서스’의 기록을 따랐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기록에 관하여 ‘옴스테드’ 교수는 이렇게 말하였다. “. . . 단지 보잘 것 없는 단편, 흔적만 오늘날까지 전할 뿐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러한 단편들은 여러 사람을 거쳐 전승된 것으로서 그것을 확증할 자료는 거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유세비어스’ 연대기의 ‘희랍’어 원본이 분실되어 버렸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번역판을 현대 ‘라틴’어로 번역한 것을 볼 수 밖에 없다. ‘유세비어스’는 일부는 ‘알렉산더 폴리히스톨’에게서 빌려왔는데 그는 ‘베로서스’에게서 직접 인용하였다. ‘유세비어스’는 또한 그 저술의 일부를 ‘아비데누스’에게서 빌려왔고 ‘아비데누스’는 ‘주바’로부터 빌려온 것 같으며, ‘주바’는 ‘알렉산더 폴리히스톨’에게서 인용하였으므로 ‘베로서스’에게서 빌려온 것이 된다. 혼란이 더욱 심한 것은 ‘유세비어스’가 어떤 경우에 ‘아비데누스’가 단순히 ‘폴리히스톨’을 베꼈다는 사실을 모르고 두 사람의 글을 나란히 인용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계속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 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폴리히스톨’의 기록은 인정받고 있으나 ‘유세비어스’는 ‘폴리히스톨’의 책 중에서도 나쁜 사본을 사용한 것 같다.” 「‘앗시리아’ 사료편찬」, 62, 63면) 제1세기 ‘유대’ 역사가인 ‘요세퍼스’도 ‘베로서스’의 것을 인용하였다고 하였으나 그가 사용한 연수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연대는 확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베로서스’와 ‘톨레미’ 사이에 적어도 300년의 기간이 있었음을 기억한다면, ‘톨레미’가 ‘베로서스’의 글을 참조한 것도 정확하게 하였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설형 문자 토판 그 자체는 어떠한가? 그것들은 얼마나 정확한가? 문외한들은 그 토판이 거기에 기록된 사건과 동일한 시기에 기록되었으리라고 생각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바빌로니아’ 역사 기록이나 심지어 많은 천문학 기록까지도 훨씬 후대에 기록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소위 ‘바빌로니아’ 연대기라고 하는 기록 중에, 현대 역사가들이 기원전 747-648년에 해당한다고 하는 기간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은 “‘다리오’ 22년에 옛날의 파괴된 기록을 복사”한 것이다.—「‘갈대아’ 왕 역대기」, 1면.

그러므로 이 기록은 기록된 사건으로부터 150년 내지 250년 후에 기록되었으며 그나마 불완전한 과거의 기록을 복사한 것이다. 그리고 상기의 책은 ‘나보폴라살’부터 ‘나보니더스’에 이르는 기간의 ‘바빌로니아’ 연대기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신 ‘바빌로니아’ 연대들은 조그마한 곳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자체로서는 세밀한 연대를 알려줄 수도 없다. 그리고 그것들은 기록된 사건들과 동시대로부터 ‘아케메니드’ 통치 말년(기원전 331) 사이에 기록되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톨레미’가 그랬을 것 같지도 않지만, 설사 확실한 ‘베로서스’의 문헌을 가지고 있었다손 치더라도, ‘베로서스’의 설형 문자 기록의 연대와 확실성에 심한 의문이 있는 것이다.

심각한 도전이 되지 않는다

현대 역사가들의 계산이나 추측으로 믿을 만한 ‘바빌로니아’ 연대가 확립되었겠는가는 독자들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아마 그들이 혼란스런 고대 기록으로 어느 정도 순서를 나열하였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톨레미’의 연대에 크게 의존하는 것을 보면 그들의 분별성이 심히 의심스럽다. 우리는 ‘톨레미’가 연대를 기록한 목적이나, 그가 전거로 사용한 자료가 다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신뢰성을 고무시켜 주지 못함을 살펴 보았다. 더 나아가 그가 사용한 자료들 중 어떤 것이 ‘베로서스’의 글에서 나왔다 치더라도 그것은 여러 손을 거쳐 내려왔을 것이고 기껏해야 빈약한 증거 밖에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설형문자 기록들은 파괴되기 쉬우므로 복구시키려면 다분히 추측에 의존하였을 것이다.

‘바빌로니아’ 당시의 역사 기록이 없고 세속적 기록이 완전히 와전될 수 있기 때문에 신 ‘바빌로니아’ 제국 왕들 중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톨레미’ 정전에 나타난 연수보다 더 오랫 동안 통치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로 볼 때 현대 역사가들이 추정한 ‘바벨론’ 연대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가? 우리는 이 연대기가 성서 기록의 정확성에 실질적 도전이 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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