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 제자를 삼고 ··· 침례를 주[십시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십시오].”—마태 28:19, 신세
1. ‘뉴스’ 보도에 의하면, 1959년 5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 해변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임시 세례식이 있었읍니까?
미국 ‘캘리포니아·샌프란시스코’에서 1959년 5월 7일에 일어난 일입니다. ‘셔리’와 ‘앨버트’가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 때 상어가 나타났읍니다! ‘앨버트’가 제일 먼저 상어를 보고 ‘셔리’에게 도망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셔리’는 해안 쪽으로 헤엄쳐 도망했읍니다. 그 때 상어가 달려들었읍니다. ‘앨버트’의 왼팔이 거의 떨어져 나갔읍니다. ‘셔리’는 상어의 공격도 무서워하지 않고, 되돌아와서 ‘앨버트’를 붙잡고 해안 쪽으로 헤엄쳐 나왔읍니다. 마침내 해변가에 도달하였읍니다. ‘앨버트’는 치명상을 입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으로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셔리’는 바닷물을 떠서 ‘앨버트’의 머리 위에 부었읍니다. 그리고 ‘셔리’는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세례를 주며, 이에 십자가를 긋노라. ···” 하고 외었읍니다. ‘셔리’는 ‘앨버트’에게 자기를 따라 고해를 하라고 말하면서, “··· 나는 천당에 못가고 지옥에서 고초를 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선하시고 나의 사랑을 받기에 합당하신 나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리기 때문에 나는 모든 죄를 미워하노라” 하고 선창하였읍니다.—「타임」지 및 「뉴스위크」지, 1959년 5월 18일호, 「뉴욕 타임즈」지 1961년 3월 24일자.
2. 그 세례식의 효력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2 ‘셔리’는 ‘앨버트’가 상어로부터 더 이상 공격을 받지 않도록 구출하였읍니다. ‘셔리’는 더 나아가 자기 교회 교리에 의거하여 세례받지 않은 사람이 당할 운명으로부터 ‘앨버트’를 구하려고 양심적으로 노력하였읍니다. 일부 사람들은 ‘셔리’의 용감한 행동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셔리’는 ‘앨버트’를 상어가 나타난 물에서 구출한 후에 그에게 제식 절차에 따라 세례를 줌으로써, 그를 영원한 불로부터도 구원하였는가? 그는 ‘앨버트’가 얼마 후 병원에서 사망하기 전에 그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았는가?”
3. 이와는 대조적으로, 1958년 7월 30일에 ‘뉴욕’ 해변에서 어떠한 대규모적 침례식이 거행되었으며, 이 침례식은 기원 33년에 거행된 어떠한 대규모적 침례식을 연상시켜 주었읍니까?
3 그러면, 이제 ‘샌프란시스코’ 만과 접한 태평양으로부터 대서양으로 눈길을 돌려 봅시다. ‘셔리’가 제식 절차에 따라 ‘앨버트’에게 세례를 주기 일년 전인 1958년 7월 30일에, ‘뉴욕·오차드 비치’에서 침례식이 거행되었읍니다. 침례받기를 자원한 7,136명은 침례받기 위하여 해변에 서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물에 서 있던 헌신한 남자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완전히 물 속에 잠갔읍니다. 이 대규모 침례식은 그날 ‘뉴욕’ 시의 장관이었읍니다. 그 도시에서는 “성의” 국제 대회가 ‘양키 스태디움’과 인근 ‘폴로 그라운드’ 야구장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었읍니다. 그 침례식은 그로부터 1925년 전에 거행된 또 하나의 대규모적 침례식을 연상시켜 주었읍니다. 기원 33년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축하하던 날,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은 약 삼천명의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었읍니다. (사도 2:1-42) 이들은 침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는 그들의 결의를 공개적으로 증언하였읍니다. 1958년 ‘오차드 비치’에서 침례를 받은 7,136명도 이 동일한 분의 헌신한 제자들이 되고자 열망하였읍니다.
4. (ㄱ) 그리스도교국이 세계 개종에 실패하고, 쇠퇴 일로를 걷는 것을 볼 때,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침례를 주는 문제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ㄴ) 오늘날 위선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생긴 것은 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까?
4 지금 우리는 1970년 초에 살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이 세계 인류를 모두 제자로 삼지 못하여 세계 개종에 실패하였으며, 종교적으로 쇠퇴 일로를 걸어가고 있으며,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혹자는 현시대를 “후(後) 그리스도인 시대”라고 부를 것을 주장합니다. 점점 종교와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현 20세기에도, 제1세기의 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생기고 있읍니까? 천 구백여년 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이 현재에도 적합합니까, 혹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입니까? 고래의 가치관이 허물어지고 있는 소위 “혁명”기인 오늘날, 이러한 질문들은 의미심장한바 있읍니다. 이웃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를 두려워하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우기를 좋아합니다. 왜냐 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이교도” 혹은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실제에 있어서 위선적 그리스도인들이 아니겠읍니까? 이러한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참 그리스도인들이겠읍니까?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는 위선적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5.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권위있는 대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누구에게로 가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가장 권위있게 대답해 줄 분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솔직한 대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에게가 아니라, 제1세기의 바로 그 스승,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야 할 것입니다. 제1세기에 예수를 충실히 따른 제자들은 성서의 마지막 27권에 그분에 관한 확실한 기록을 보존해 두었읍니다. 이 기록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추호의 의문도 남겨두지 않으며, 우리의 종교감을 상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위장된 진리나 사실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는 자들이 제1세기의 그 스승을 아무리 조롱하고 경멸한다 하더라도, 그분은 이 지상에 생존한 어떠한 인간보다도 인류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읍니다. 그분은 지상의 어떠한 인간보다도 먼 앞날을 예견하셨읍니다. 그분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 20세기의 사건까지도 예견하셨읍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의 왕국을 가르치고 전파하던 3년 반 동안에 제자를 삼는 일에만 관심을 두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현 20세기에 제자를 더 많이 삼는 일에도 관심을 두셨읍니다. 사실 그분은 현재 제자들을 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6. 그리스도께서는 이 문제에 관하여 언제 말씀하셨으며, 그는 이 말씀하실 장소를 어떻게 미리 지정하셨읍니까?
6 예수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말씀 하신 때는 그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후였읍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곳은 이 지상에 실재하는 장소였읍니다. 그곳은 당시 ‘갈릴리’ 지방이라고 불리웠고 현재 ‘갈릴리’ 해 지역이라고 불리우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한 산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전에 자기가 부활된 후에 제자들과 만날 장소로 이곳을 지정하셨읍니다. 형주에 달려 죽으시기 전 밤에 주의 만찬식을 제정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열 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양의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태 26:31, 32; 마가 14:27, 28.
7. 예수께서 부활되시던 날, 이 장소는 어떻게 다시 확인되었으며, 제자들은 그곳에서 어떠한 태도를 보였읍니까?
7 만 이틀 후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날 아침, 몇몇 여인들이 이미 텅빈 무덤을 보러 왔을 때 한 천사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이 여인들이 이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려고 가는 도중에, 그들은 부활되신 예수를 만났읍니다. 예수께서는 “무서워 말라”고 하시면서,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로부터 약 1주일 후에 제자들은 그곳에 도착하였읍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태 28:3-10, 16, 17; 마가 16:7.
인간의 명령보다 더 권위 있는 것
8. (ㄱ) 왜 지상의 어떠한 피조물도 그곳에서 주어진 그리스도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간섭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까? (ㄴ) 그분의 현재 지위에 관하여 사도들인 ‘요한’과 ‘바울’과 ‘베드로’는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8 제자들이 ‘갈릴리’ 지방에 위치한 그 무명의 산에서 들은 명령은 범상한 인간의 명령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인간이나 정부나 국가도 이분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간섭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간섭합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묵인 하에서 그렇게 할 뿐이며, 그들은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의 승인을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비밀히라도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 ‘갈릴리’의 산에서 제자들과 만난 예수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되어 영원한 생명, 아니 불멸의 생명을 받은 처음 분이었읍니다. 그분은 독특하게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고 불리웁니다. (계시 1:5)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신지 몇달 후에 기적에 의하여 그를 본 한 사람은 영감을 받아 기록하기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라고 하였읍니다. (골로새 1:1, 18) 또한 그 ‘갈릴리’의 산에서 예수를 뵈온 한 제자는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베드로 전 3:17, 18) 그는 하나님의 영자들 중에서 으뜸이 되십니다.
9. 예수께서는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 자기 제자들에게 명령하셨으며, 그 명령은 어떠한 내용의 것이었읍니까?
9 그러므로 예수께서 ‘갈릴리’ 지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을 때, 그는 초인간적 권위를 지니고 계셨으며, 그분의 명령은 인간 총독들과 군왕들의 명령보다 더 권위있는 것이었읍니다.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보십시오!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겠읍니다.”—마태 28:18-20, 신세.
10. 예수의 말씀이 지니고 있는 권세는 언제까지 계속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그 명령은 권세가 깃든 명령이었읍니다. 그 명령은 십구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동일한 권세를 지니고 있읍니다. 왜냐 하면 이 명령은 상천하지의 어떠한 피조물도 감히 도전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권위자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위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세”를 예수에게 주셨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아버지이시며 그를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시어, 영계에서 불멸의 생명을 누리도록 해주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죽은 자로부터 부활된 이후에 천적 아버지로부터 그 전보다 더 높은 지위를 받으셨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가지고 지존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임재해 계신 곳에 들어가셨읍니다. 그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모든 인류를 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하나님께 바쳤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 행사하고 집행하기 위하여 “성령” 즉 그가 사용하고 제자들에게 부어 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을 받으셨읍니다.
11. (ㄱ) 부활되신 예수의 권위에 대하여 현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까? (ㄴ)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때인 현재,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위를 행사하시는데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1 아무도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것은 천 구백여년 전의 일이었다. 현대의 과학 시대와 혁명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권위를 계속 주장할 수 없다. 그리스도교국의 영향력이 약화됨과 동시에 그의 권위도 약화되고 있으며, 오늘날 무기력하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현재 이 땅에서 권세를 잡고 있다. 우리가 실권자이며, 십구세기 전에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였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권위를 행사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전설상의 인물이 아니라 역사적 인물이며, 그는 자기의 권위를 포기한 적이 없으며, 또한 그 권위를 어떠한 인간에게나, 혹은 ‘바티칸’이나 ‘스위스·제네바’나 소련의 ‘모스코바’나 기타 도시에 있는 어떠한 인간 집단에게 양도하신 일이 없읍니다. 예수는 오늘날도 권위를 소유하고 계시며, 현재 그 권위를 가일층 강화하고 계십니다. 예수는 이러한 사실을 자기 제자들에게 확증시켜 주기 위하여, 그 권위있는 명령을 하신 다음에, “‘보십시오’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겠읍니다.” 하고 부언하셨읍니다. (마태 28:20, 신세) 현 사물의 제도는 아직 존속하고 있지만, 우리는 현재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때에 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12. (ㄱ) 오늘날 혹자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어떻게 과소평가하며, 그러나 그들은 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읍니까? (ㄴ) 오늘날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명령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부활되신 예수께서 영속적이고 초인간적이고 범세계적인 권위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고려 할 때 예수를 조롱하는 자들은 잠시 멈추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현재 그리스도교는 쇠퇴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보다 더 유명하고 더 중요한 인물이다.” 하고 말하는 자들은 잠시 멈추어, 하나님의 천적 아들인 그리스도를 올바로 평가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예수의 참 제자들은 예수의 명령을 대단히 심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그들은 예수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제1세기의 제자들이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의 명령 배후에 들어 있는 권위를 인정하고 인식할 때, 우리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끝나는 시각까지 예수의 명령을 부단히 수행할 열의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시각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후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확장되는 사업
13. (ㄱ) 제자가 되는 기회는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었읍니까? (ㄴ) 제자를 삼는 운동은 지혜로운 ‘솔로몬’ 왕의 경우와 어떠한 면에서 다릅니까?
13 한 사람이 부할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그 사람의 종교는 수동적이고 안일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침묵을 지키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 종교는 스스로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며, 그 종교는 생산하고 재생산하며, 남이 저지하거나 억압할 수 없읍니다. 제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지구상의 한 모퉁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읍니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공표되고 보급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 것이었읍니다. 제자를 삼는 일은 현명한 ‘솔로몬’ 왕의 경우와 다를 것입니다. 기원전 11세기에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솔로몬’ 왕에 관하여 역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려 줍니다. “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 (열왕 상 4:34) 심지어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의 증거를 듣고, 보기 위하여 소위 “땅 끝에서” ‘예루살렘’으로 왔읍니다. (마태 12:42; 열왕 상 10:1-13)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 계실 때에도 자기를 “‘솔로몬’보다 더 큰 이”라고 하셨읍니다. 예수의 생애와 죽음은 ‘솔로몬’의 그것보다 온 인류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지혜를 듣고 자기에 관하여 배우도록 지구 사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라고 명령하시는 대신, 그는 ‘갈릴리’의 그곳에 모였던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라고 하셨읍니다. 즉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읍니다. (마태 28:19, 신세)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찾아서 세계 방방곡곡으로 나가야 하였읍니다.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은 누구를 위한 것이며,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암시하셨읍니까?
14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그는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이었으며, ‘모세’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있었지만, 예수에 관한 소식은 ‘유대’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이 그 소식을 제일 먼저 들을 기회를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소식은 모든 인류를 위한 소식이며, 그들 모두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갈릴리’의 산에서만 암시하신 것이 아니라, 얼마 후에 이 땅을 떠나서 천적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에도 이 사실을 암시하셨읍니다. ‘예루살렘’ 동편에 있는 유명한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 예수께서는 그곳에 모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 1:7, 8.
15. (ㄱ) 이 일이 있기 조금 전에 가졌던 성서 연구 때에 예수께서는 자기를 통한 죄사함에 관한 소식이 어디까지 확장될 것을 암시하셨읍니까? (ㄴ) 왜 증거 사업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었읍니까?
15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마련 중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실 중차대한 역할에 관한 소식은 땅 끝까지 흩어져 살던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할례받지 않고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되어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 일이 있기 조금 전에 자기 제자들과 성서 연구를 하신 자리에서,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말하였읍니다. 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였읍니까? 왜냐 하면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다음 오순절 날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에 관한 최초의 증거를 그 도시에서 열린 오순절 축하객들에게 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누가 24:46-49.
16. 사도행전 2장의 기록에 의하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그 일이 시작되었읍니까?
16 실제로 그렇게 되었읍니다. 기원 33년 오순절날, 사도 ‘베드로’는 그에게 질문하는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말하였읍니다. 이미 여호와께 헌신하였던 약 삼천명의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은 그들이 이전에 그리스도에 관하여 취한 잘못된 태도와 행동을 회개하고, 그의 추종자가 되기 위하여 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침례는 그들에게 시작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들로부터 더 많이 배우고자 하였으며, 사도들은 기꺼이 그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가르쳐 주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에서 침례를 받은 후,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읍니다.—사도 2:37-42.
제1세기의 확장
17. 오순절날 ‘예루살렘’에서 침례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쁜 소식은 어떻게 전세계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전세계의 누구에게 전파되었읍니까?
17 온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마련은 전세계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오순절날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실로 현명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읍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여 침례받은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은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와 실로 “천하 각국”으로부터 온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로부터 충분히 배운 다음에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기쁜 소식을 그곳에 확장시켰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 중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에게만 전파하였읍니다. (사도 2:5-12; 11:19) 그러면 ‘유대’ 도와 ‘갈릴리’ 도 사이에 위치한 ‘사마리아’ 지방은 어떠하였읍니까?
18. 침례받고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추수 사업은 어떻게 하여 ‘사마리아’ 지방으로 확장되었읍니까?
18 한 때 예수께서는 ‘수가’ 읍에서 ‘사마리아’ 주민들에게 전도하신 일이 있읍니다. 그 결과로 ‘사마리아’인들은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유대’인들만의 구주가 아니라,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은다고 말씀하신 곳은 이곳 ‘사마리아’에서였읍니다. (요한 4:35, 36, 38-42) 그러나 제자들이 ‘사마리아’ 밭으로 가서 추수사업을 하게 된 것은 박해로 인하여 제자들이 흩어진 후였읍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시고, 그 다음 승천하시기 전, 그는 그들에게 ‘사마리아’에 가서 증거할 권한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전도자 ‘빌립’이 박해로 인하여 ‘예루살렘’ 시와 ‘유대’를 떠났을 때, 그는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전도하였고, 많은 ‘사마리아’ 신자들에게 침례를 주었읍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은 ‘시몬 베드로’와 ‘세베데’의 아들 ‘요한’을 파견하였고, 이들은 ‘사마리아’인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나누어 주었읍니다.—사도 8:1-17.
19. 아직도 어떠한 면으로 확장될 여지가 남아 있었으며 그러나 그 일을 주저한 사람들은 누구였읍니까?
19 그러나 아직도 확장될 여지가 많이 남아 있었읍니다.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그들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 즉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모든 나라의 백성”을 모으는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읍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편견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더라도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이나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메시야에 관한 소식을 증거하기를 주저하였읍니다. (사도 10:9-29)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계속 그러한 식으로 대한다면, 그리스도인 회중이 마땅히 확장되어야 할 때에 확장이 저지받았을 것입니다.
20. 그 때 어떠한 예언적 주간이 끝나가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 무엇을 주어서 누구에게 보내셨읍니까?
20 비록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깨닫지는 못하였겠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순전히 육적 ‘유대’인들에게만 은총을 베푸시는, 햇수로 70주의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으며, 기원 36년 여름철 끝에 그 기간은 차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 사이에서 왕국 활동을 할 문을 열어 주시기로 지정된 때였읍니다. (다니엘 9:24-27; 마태 16:18, 19)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칠십 주에 관한 ‘다니엘’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사도 ‘베드로’에게 둘째 “천국의 열쇠”를 주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가서 처음으로 왕국 소식을 전파하게 하셨읍니다.
21. 이제 누가 그리스도인 회중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바울’이 ‘골로새’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 정도로 확장되게 되었읍니까?
21 이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과 그 은사를 받은 후, 그들은 ‘베드로’의 지시에 따라서 물의 침례를 받았읍니다. (사도 10:1-8, 30-48; 11:12-18)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리스도인 회중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포용하여, 땅끝까지 확장되게 되었읍니다. 이제 다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 새로 열어진 문을 통하여 이방인들 사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야외로 들어왔읍니다. 이전에는 육적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로만 형성되었던 회중에 이방인들도 들어오게 되었읍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고별사를 하신지 28년 후, ‘로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회중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할 수 있었읍니다.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니라].” (골로새 1:23) 사도들과 그들의 동료 제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명령을 일평생 철저히 수행하였읍니다.
현대의 확장
22. 현 20세기의 제자를 삼는 사업의 범위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틀린 예언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2 그 이래로 ‘유럽’인들은 신대륙들을 발견하였으며, 참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사업도 이러한 대륙으로 확장되었읍니다. 그러나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나라의 백성”을 제자로 삼는 일은 현 20세기에 와서야 실현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참 추종자들이 제자를 삼는 활동을 세계 방방곡곡으로 확장시킬 것을 예언하셨을 때, 그는 틀린 예언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도에 지나친 요구를 하신 것도 아닙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을 받은 그들은 예수께서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신 대로 땅끝까지 가서 전파할 성의를 표시하였기 때문입니다.—마태 28:19, 신세.
23. 그리스도교국의 신도 수가 많은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교국이 제자를 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그 대답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23 그리스도교국의 신도 수는 현재 수억을 헤아리며, 사실 10억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은 사실상 이 제자를 삼는 사업을 하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이 약 1,337개 언어로 된 성서의 전역과 부분역을 전세계적으로 20억 부 이상 배부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일 자체가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지는 못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스도교국은 사람들을 그들의 교회에 강제로 입교시키기 위하여 불과 칼과 박해란 무기를 사용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제자를 삼”는 권한을 자기 사도들 및 기름부음받은 동료 일군들에게 주지 않으셨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방법이 올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교국이 자기 방식대로 세례를 주어 생산해 낸 자칭 그리스도인들로 보아 명백합니다. 그들은 ‘가톨릭’교와 ‘프로테스탄트’교 이하 수백개의 교파로, 나뉘어 있으므로,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24. 예수께서 마태 28:19, 20에서 하신 말씀으로 볼 때, 그리스도교국이 제자를 삼기 위하여 사용한 어떠한 방법들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까?
24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참 추종자들이 국적에 관계 없이 모든 백성을 제자로 삼는 사업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읍니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신세) 이러한 말씀으로 볼 때, 사람들에게 고문이나 박해를 가하여 강제로 강요하는 것이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양심적 이유로 제자가 되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을 살육하고 학살하는 것도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이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였다고 하여, 예수께서 자기의 순종하고 충실한 추종자들에게 그러한 방법을 사용할 권한을 주셨다고 말할 수 없읍니다.
25. 마태 28:19에 의거하여 제자를 삼는 사람들은 사실상 누구의 학생을 삼는 것입니까?
25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은 마태 28:19에 사용된 희랍어 동사의 의미로 볼 때, “배우는 자(learners) 혹은 학생(pupils)을 삼으라”는 의미입니다. 그 예로서 ‘케이. 에스. 웨스트’가 번역한 성경(The New Testament—An Expanded Translation)에 의하면 마태 28:19은 이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고, 그들을 여러분의 학생(pupils)으로 삼으십시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부터 배운 사람들은 그 추종자들의 학생이 되며, 그들로부터 배우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나 이 학생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에 관하여 배우는 것이며, 예수께서 자기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신 바를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이므로, 실제의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하고 말씀하신 바와 일치합니다. (마태 23:8) 그러므로 제자를 삼는 사람들도 이 유일한 스승, 즉 그 명령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26. 영원히 그러한 제자들의 선생이 되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26 인간 선생은 사망하거나 전근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항상 자기 제자들의 선생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한 성서 번역판(The English Bible—New Testament)은 이 귀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을 나의 제자로 삼으십시오. 또 도처에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십시오.”
27. 제자를 삼는 방법으로 허용된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며, 사람들이 올바른 침례를 받기 위하여 무엇에 관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까?
27 따라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교로 강제 개종시키기 위하여 불, 칼이나 만도(彎刀), 고문대, 종교 재판소를 사용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엄금합니다.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를 삼는 유일한 방법은 평화스럽고 사랑에 넘치는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서적 증거를 제시해주고, 그러한 증거를 제시하는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들에 관하여만 배울 뿐 아니라 그의 천적 아버지에 관하여도 배워야 하며, 또한 성령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수행하시는데 사용하시는 그의 보이지 않는 활동력에 관하여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그 배우는 자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을 수 있겠읍니까?
28. ‘바울’이 ‘에베소’에서 만난 12명의 경우는 그러한 것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어떻게 예시합니까?
28 예를 들면, 고대 ‘에베소’ 시에서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은 약 12명의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들은 침례자 ‘요한’이 베풀던 침례라고 이해한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지 않았읍니다. 비록 그들이 하나님에 관하여는 알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그리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지 못하였으며 인정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후 그들은 다시 침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이 이 새로 침례받은 자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고 그 힘을 입어 예언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러한 일은 그들이 이전에 성령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행하지 못하던 일이었읍니다.—사도 19:1-7.
29. 제자가 침례를 받은 후에는 배우기를 중단해야 하는가의 여부를 무엇이 잘 알려 줍니까?
29 제자들은 침례받은 후에도 더 배울 필요가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침례를 줄 뿐만 아니라, 침례를 받은 자에게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침례받은 사람은 스승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속 배우는 학생이 될 필요가 있읍니다. 그들은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지키도록” 강요받거나 고문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든 명령을 지키도록 인내심깊고 평화스럽고 사랑에 넘친 방법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 방법이야 말로 사도들이 제자를 삼는데 사용한 방법으로 성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교국의 방법이 아니라 이 방법이 올바름을 증명해 줍니다.
30. 제자를 삼는 사업은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어떠한 다른 사업과 병행하여 수행되었으며, 소‘아시아’에서 행한 ‘바울’과 ‘바나바’의 일에 관한 기록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30 물론 제자를 삼는 이 사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 24:14에 예언하신 사업과 병행하여 수행됩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기쁜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신세) 그러나 이 왕국을 선포 혹은 포고하는 사업은 좀 더 대중적 성질을 띈 사업이며, 그 목적은 모든 민족을 개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증거”하려는 것입니다. 제자를 삼는 사업과 전파하는 사업이 병행하였다는 사실은 소‘아시아’에서 일한 사도 ‘바울’과 ‘바나바’에 관한 기록이 잘 알려 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니라].”—사도 14:21, 22.
31. 전파사업과는 달리 제자를 삼는 사업에 있어서는, 제자를 삼는 자와 제자는 각각 어떠한 일을 해야 합니까?
31 그러나 제자를 삼는 사업은 왕국을 포고하고 선포하는 공개 증거 사업보다도 훨씬 더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성질을 띈 일입니다. 제자를 삼기 위하여는 먼저 증거하는 이외에 가르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일반 대중은 공개적 증거를 무시하거나 거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제자, 배우는 자, 혹은 학생이 된다 함은 가르치는 자가 전한 소식을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물의 침례를 받고 그 후에도 계속 스승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우고 적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2. 침례받은 사람이 침례 준 자나 어떤 인간의 제자가 되는가의 여부를 무엇이 밝혀 줍니까?
32 그 지정된 방법으로 침례를 받은 신자는 이 땅에 육신으로 거하는 어떠한 인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침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는 그에게 물의 침례를 준 헌신한 사람의 제자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 전 1:12-17) 침례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사실을 사도 11:26의 말씀이 명백히 알려 줍니다. “제자들이 [시리아] ‘안디옥’에서 비로소 [‘바울’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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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성의” 국제 대회에서 7,136명이 침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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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지상의 평화” 국제 대회에서 5,095명이 침례를 받았다. 1969년 봉사 연도에 전세계적으로 120,905명이 침례를 받았다